구법의 기술
처음 방문한 풍문여고의 흙 운동장에 반해서,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무조건 프로젝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지금의 폐쇄적인 담장만 허물 수 있다면, 도시의 인상적인 오픈스페이스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공공 공간을 설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프로젝트 초청 당시 서울공예박물관장이 오피스박김에게 보여준 신뢰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자문과 심의 그리고 동료의 불평 불만 속에서 초기안은 당연히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그동안 만들고 구현한 ‘박김사례’의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었고, 그 안에 담겨진 구법의 기술은 수많은 사변을 넘어서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구법의 진화
형태나 형상이 아닌 과거의 물성―풍문여고의 흙 운동장, 안동별궁 터의 지형 언덕―을 구현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를 위해 재료 실험을 했고 수차례에 걸친 목업시공을 통해 배수가 잘되며 하이힐을 신고도 편히 다닐 수 있는 흙 포장을 구현할 수 있었다. 관행적인 흙 포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 새로운 흙 포장은 야구장에서 착안한 것으로, 마사토와 섞였을 때 점성이 생겨부드럽지만 단단한 경도를 갖는다.
수직으로 단절된 축대 위에 놓인 400년 수령의 은행나무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완만한 지형 언덕을 구상했다. 이미 사라진 안동별궁의 지형을 재현하되 오피스박김만의 진화된 방식으로 제안했다. 선형의 콘크리트는 지형의 높이와 함께 경관에 변화를 만들어내며, 지형의 미세한 차이를 더욱 드러낸다. 우리는 이 선형의 콘크리트를 ‘지형틀’이라고 불렀다.
* 환경과조경 402호(2021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설계 및 시공 감리 오피스박김(박윤진, 김정윤)
시공 아이엠유건설(김충호)
발주 서울공예박물관
위치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3길 4
면적12,830m2
준공2021
사진 김종오
오피스박김(PARKKIM)은 2004년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서 박윤진, 김정윤이 설립한 조경설계사무소다. 2006년 서울로 이전했고, 2018년 김정윤 대표의 하버드 GSD 교수 임용을 계기로 보스턴 지사를 개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