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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혼탑 추모공원 설계 공모] 당신의 동네에도 충혼탑이 있습니다
충혼탑. 다소 딱딱하고 무겁게 느껴지지만 일견 성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 같지만 나와 크게 상관없는 시설이 아닐까 싶은 이 탑은, 사실 당신의 동네에도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국가보훈처가 제공하는 ‘현충시설정보서비스’에서 현재 검색되는 현충시설 2,260건 중 ‘충혼탑’은 186건, 유사한 명칭인 ‘충혼비’는 90건으로 총 276건에 달한다. 전국 기초지자체 수가 229개인 것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기초지자체마다 하나 이상의 충혼탑 또는 충혼비가 있는 셈이다. 비슷한 느낌의 이름을 가진 현충탑(63건), 현충비(8건), 위령탑(30건), 위령비(35건)를 포함하면 그 수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충혼탑은 대체 무엇이기에 동네마다 있는 걸까. 충혼탑은 법적으로 ‘현충시설’에 속하며, ‘현충시설의 지정·관리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국가보훈처가 지정해 관리하는 시설을 말한다. 현충시설은 국가유공자의 공훈을 기리는 시설인 경우 법적 지정 요건을 갖추며, 이 ‘공훈’에는 일제 식민지기의 독립운동, 6.25 전쟁(한국전쟁) 참전용사 및 군인·경찰·소방 공무원 등의 국가 수호 활동이 들어간다. 특히 충혼탑의 경우 6.25 전쟁 당시 각 지역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산화한 참전용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한민국 어느 지역이든 6.25 전쟁의 참화가 휩쓸지 않은 곳이 없으니, 어찌 보면 어느 지역이든 충혼탑이 있는 게 당연한 것이다. ‘충혼탑 추모공원 조성사업 마스터플랜 설계공모’(이하 충혼탑 추모공원 설계공모)의 충혼탑도 마찬가지다. “6.25 전쟁에서 산화한 청주, 청원 출신 등 3,203위의 호국전몰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1955년 건립됐다.1
문제는 충혼탑이 의미 있고 중요한 시설임은 분명한데 우리 일상에서 전혀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단 우리 동네의 충혼탑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게다가 보통 공원 내에 위치하기 때문에 산책길에 지나가다가 본 적이 있어 모양이 다소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져도, 그게 무엇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시설은 대부분 비슷비슷한 모습이기 때문에 우리 지역의 충혼탑은 이런 점이 특별하다고 내세울 만한 경우도 드물다. 심지어 공원 안에 각종 조형물도 많다 보니, 이 조형물이 국가에서 지정·관리하는 현충시설인지 일반 조형물 인지 구분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일차적인 답은 충혼탑 추모공원 설계공모 지침서와 수상작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몇몇 표현을 발췌해 본다. 익숙하지 않고 무겁게 느껴지는 ‘충혼탑’이라는 명칭에서부터, 낮은 접근성 및 편의 시설 부족과 노후화, 산책과 휴식을 위한 그늘 및 공간의 부재, 일방적으로 현충의 정신과 공동체 의식을 전달하는 위압적인 구조물, 정해진 날에만 관련 이용자들이 참여하는 제한적인 추모 행사, 엄숙하고 신성한 공간으로만 제한된 기능, 젊은 세대에게 거리감을 주는 수직으로 높이 솟은 탑의 모습. 설계공모의 방향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혼탑이 중심이 되는 기억의 공간을 친숙하고 일상적인 공원의 공간 안에 함께 녹여내고, 추모의 공간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체험의 영역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한편 역사적 맥락에서 좀 더 복잡하게 들여다보면, 이 문제는 시대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충혼탑과 같은 현충시설은 상징물, 곧 기념비(모뉴먼트)로 분류할 수 있는데,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체제와 권력, 사상을 표현하는 거대한 상징물인 기념비는 점차 그 성격을 잃어갔고 기능의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와 맞닥 뜨리게 되었다. 전통적인 기념비는 국가 또는 권력 집단이 정체성을 확고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세워졌기에, 기념비의 존재는 곧 이를 통해 집단의 정체성과 과거의 역사적 의미를 동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통합된 의식과 문화가 존재하는 시대에서만 가능”2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가 이러한 기념비와 상징물의 성격을 얼마나 잘 이용했는지 보면, 기념비가 통합된 정신과 시대의 부산물이라는 점을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역사에 대한 해석이 단일화되지 않는 현대에는, 단일한 의미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수직으로 높은 조형물을 올리고 광장 중앙에 대칭 구조로 배치해 어디서나 잘 보일 수 있게 만든 전통적인 기념비의 형식을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워졌다.3 이런 점에서, 설계공모 지침서에 충혼탑의 위치를 옮겨도 무방하며 기존 충혼탑을 대체하는 새로운 추모 조형물을 제안하거나 잠긴 봉안실 안에 안치된 국가유공자 위패도 개방해 활용할 수 있도록 창의적 제안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 아닐까 한다.
한국의 현충시설에서 특히 충혼탑처럼 어느 지역에나 있는, 대체로 2000년대 이전에 조성된 오래된 기념물은 위압적이고 일방적인 구조물의 형태라는 문제뿐 아니라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먼저 우리 지역에도 현충의 정신을 보여준 국민이 있었다는 점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각 지역마다 비슷한 형태의 충혼탑이 세워졌는데, 결과적으로 충혼탑처럼 어느 지역에나 있는 시설이 우리 지역만의 특별한 기념물 혹은 랜드마크가 되기 어려워진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과거의 사건이 현 세대와 점점 시간적으로 멀어지는 현 시점에서, 기존의 추모 행위에 새롭게 참여할 이들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예컨대 충혼탑의 경우 6.25 참전용사와 유족, 정치인 등 일부 관계자만 제한적으로 추모 행사에 참여하는 방식이 굳어진 상황에서 새로운 세대가 기존의 방식을 이어받는 추모의 주체로 참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러한 배경과 상황을 고려하면서 다시 설계공모를 살펴보자. 변화한 시대에 적합한 충혼탑 추모공원의 방향이란, 추모와 일상을 결합하고 한데 녹여 사람들이 공원에서 휴식과 일상 활동을 하면서도 추모를 경험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상징’과 ‘일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한국에 이러한 선례가 많지 않고, 우리는 추모 공간은 물론 추모 문화에도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충혼탑과 추모공원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설계공모의 수상작을 살펴보며 조경과 건축이 함께 어떤 고민을 했고 주어진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어떤 아이디어를 냈는지 살펴보는 일은 꽤 유의미한 일이다.
추모와 일상의 접속 전략
당선작 ‘청주 360’은 지형과 경관에 주목했고, 역설적으로 충혼탑 자체에는 거의 변화를 주지 않았다. 대상지는 임금이 제사를 지내던 사직단 터이기도 했는데, ‘청주 360’은 흥미롭게도 사직단의 역사적 의미가 아니라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위치한 제단의 입지에 주목했다(71쪽 상단 이미지). 기존의 높은 지대가 도시화로 인해 경사면과 옹벽으로 단절됐고 식물이 자라 숲을 이루면서 높은 지대가 가진 경관 조망의 장점도 사라져 공간의 이용 가능성이 낮아진 상태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청주 360’이라는 이름은 추모 공간에서 바라보는 청주 시가지의 경관을 360도로 열린 경관으로 재구성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열린 공간, 열린 경관이라는 키워드는 고립된 추모 공간에 일상성을, 즉 시민들을 유입시키는 방향으로도 연결된다. 공간의 성격을 열린 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면,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자주 방문할 수 있을 것이고, 새로운 기억의 주체가 충혼탑과 자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접근법이다.
반대로 2등작 ‘기억의 터, 환유 언덕’은 충혼탑이라는 오래된 상징물을 바꾸는 작업에서 출발한다. 충혼탑이라는 같은 대상을 향한 두 팀의 접근법이 반대된다는 점이 상당히 눈여겨볼 만하다. 이들은 충혼탑의 기억을 시민들이 체험하는 방식으로 보전해 나갈 수 있도록 수직적이고 위압적인 오브제 상징물을 땅 아래로 끌어내리고 형태를 바꾸었다(76쪽 상단 이미지). 봉안실 안에 있던 위패를 꺼내 희생자를 드러내고 시민들이 헌화할 수 있도록 했고, 참배 공간에 부족한 그늘을 만들기 위해 설치한 파빌리온을 기억의 공간으로 활용했으며, 시민들이 참여해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체험 방식도 구상했다. 이 추모 공간을 일상적 공원과 섞는 전략으로 레벨 차이를 통해 공간을 구분하고 조정하는 수평적 공간 사용을 제안했다. 3등작에 선정된 두 작업은 각각 ‘두 개의 메모리얼’, ‘두 개의 단’이라는 설계 개념을 사용했다. ‘상징’과 ‘일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각각 다른 공간 또는 요소에 놓은 뒤, 이를 조화롭게 섞는 전략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더블메모리얼’의 경우, 기본 개념을 ‘추모’에 놓고 이를 공식적이고 연례적으로 행해지는 ‘공식적 추모’와 일상생활에서 매일 시민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상적 추모’로 구분했다. 건축물과 탑이 공식적 추모의 공간이라면 공원과 물은 일상적 추모의 공간이며, 이 네 개 요소를 전체 대상지 안에 공간적으로 중첩하고 연결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특히 기존 메모리얼에서 많이 쓰는 추모 매개체인 물을 사용했다. 메모리얼에서 보통 기념물의 형태가 비치는 거울연못(reflecting pool)이라는 기념물을 많이 사용하는데, ‘더블메모리얼’의 물은 잔잔한 파동이 일고 공원을 가로질러 흐르며 겨울철에는 스케이트를 타는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하는 일상적 공간을 만든다(83, 84쪽 이미지). 한편 새롭게 제시한 충혼탑은 더 거대한 수직 구조물이 되었는데, 충혼탑을 외부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오브제가 아니라 내부로 들어가 체험할 수 있는 건축물로 바꾸어 제시했다.
‘가림단원’은 충혼탑, 미술관, 도서관 부지가 서로 단절된 판이자 단壇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지형과 단차를 조정해 끊어져 있던 부지를 연결하고, 장기적으로 숲의 형성을 통해 공간의 통합을 꾀했다(88쪽 하단 이미지). 우선 동일한 공원 부지에 묶인 공간들이 경사면과 옹벽 등 지형과 단차에 의해 분리된 문제부터 해결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대상지의 역사적 배경인 사직단에서 착안한 단의 개념을 분리된 공간을 지칭하는 용어이자 충혼탑을 중심으로 한 추모 공간을 재구성하는 판의 개념으로 사용했다. 충혼탑은 형태를 바꾸지 않고 이설했는데, 수직적이고 위압적인 구조물 자체를 땅 아래로 일부 숨겨 높이를 낮추는 전략을 취했다. 충혼탑 앞쪽의 레벨이 높은 윗광장은 참배 공간으로 기능하는 잔디밭으로, 충혼탑 뒤편의 침잠된 아랫광장은 일상 공간으로 구분해 구성했다(89쪽 마스터플랜). 하지만 아랫광장을 통해 접근하는 충혼탑 하부에 공간을 ㄷ자로 둘러싸는 추모 전시관이 위치하고 추모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울연못 조성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아랫광장 또한 추모와 일상이 혼합되어 일상적으로 추모를 체험하는 공간임을 읽을 수 있다.
충혼탑 추모공원 설계공모의 의의
사실 설계안의 아이디어만큼 중요한 것이 공모 운영팀이 제시하는 공모 지침이다.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조경과 건축이 함께 참여했다는 점을 비롯해 여러 점에서 의미 있는 공모라는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현충시설 측면에서 보아도 공간 전문가인 조경과 건축 전문가가 함께 추모 공간을 일상적 체험 공간으로 구성하고자 했다는 점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현충시설이란 문화재와 달리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시설이 아니다. 문화재와 구별되는 현충시설의 특수성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 공헌 또는 희생의 행위, 즉 공훈을 기념/추모하고, 더 나아가 국민들에게 이러한 공훈을 널리 알리는 데 있다. 이러한 행위를 다소 어려운 표현으로 선양이라 부르는데, 결과적으로 국가의 보훈 정책에서 현충시설이 지니는 궁극적인 목적은 공훈 선양과 보훈 문화의 확산이라 할 수 있다. 익숙하지 않고 거리감이 느껴지던 기념과 추모 행위를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체험하고 국가유공자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반 국민들도 자주 현충시설과 접촉하면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하려면, 결국 일상의 공간 속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공원은 이런 해법을 펼칠 수 있는 좋은 도시 공간 플랫폼이 될 수 있다.
특히 추모 공간의 예술적 가치와 질적 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전문가와 시민의 참여가 중요하다. 공모 지침과 설계안에도 여러 번 언급되었듯, 오늘날의 추모 행위는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강압적 방식으로는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최근 물리적·내용적으로 추모 문화를 바꾸기 위한 여러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조경·건축·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참여를 통해 공간의 질적 가치 향상을 꾀하고 있으며, 일반 국민의 인식과 활용성 증진을 위해 조성 및 이용 과정에서 시민 참여 방식을 함께 적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4
특히 한국의 현충시설에서 충혼탑 추모공원 설계공모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글을 시작하며, 당신의 동네에도 충혼탑이 있다는 화두를 던졌다. 이는 다른 지자체 또한 청주시와 유사한 고민을 하고 있거나 하게 될 수 있으며, 이번 공모와 유사한 설계공모나 프로젝트가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도 충혼탑 또는 충혼비가 전국에 276개소나 있으니, 앞으로도 이번 공모처럼 오래된 현충시설에 새로운 일상적 해법을 요구하는 일이 적어도 200번 이상은 생기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번 충혼탑 추모공원 설계공모는 국내 충혼탑 공원 사례의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다. 선례란 완벽한 정답의 사례가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사례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공모의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시대의 변화 뒤편에 남겨진 오래된 현충시설, 충혼탑처럼 형식은 다소 구시대적이지만 그 의미는 여전히 중요한 시설들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 설계는 물론 조성 과정, 조성 이후의 관리와 운영은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당신의 동네에는 여전히 어딘가 공원 한편에 우두커니 놓인 충혼탑 같은 오래된 현충시설이 있다. 퇴근길에 또는 공원을 산책하는 중에 이런 현충시설을 만난다면, 공간 전문가로서 고민을 해 보아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각주 정리
1. 현충시설정보서비스, ‘충혼탑(흥덕구)’, mfis.mpva.go.kr
2. Josep L. Sert, Fernand Léger and Sigfried Giedion, “Nine Points on Monumentality”, Architecture Culture , 1968(originally published in 1943), p.29.
3. 이러한 변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타났으며, 1980년대 경부터는 이러한 사고의 변화가 반영된현대적 메모리얼의 사례들이 나타난다. James E. Young, The Stages of Memory: Reflectionson Memorial Art, Loss, and the Spaces Between , Amherst: University of MassachusettsPress, 2016.
4. 공간적 측면에서 본 현충시설의 가치 향상 및 개선 방향과 관련하여 관심이 있다면 다음 보고서와글을 더 살펴볼 수 있다. 이상민·손은신·송윤정, 『현충시설의 가치향상을 위한 정책 및 제도 개선방향 연구』, 건축공간연구원, 2022; 손은신, “국내외 사례를 통해 본 현충시설의 가치 향상 전략과 시사점”, 「아우리 브리프」 253호, 2022년 8월 22일.
손은신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고, ‘기억 경관’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축공간연구원에 근무하고 있으며, 조경과 건축, 도시의 경계에서 새로운 연구자들을 만나고 외연을 넓히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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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펜스트라트 공원
Kempenstraat Antwerp
부둣가를 따라 펼쳐진 녹색 가장자리
벨기에 캠펜스트라트(Kempens traat)와 노르데를란(Noorderlaan) 사이에 앤트워프 병원 네트워크(Hospital Network Antwerp)(ZNA)의 병원 ZNA 카딕스Cadix와 새로운 주거 타워 두 동이 건설되고 있다. 자전거도로와 북부 라인(north line) 철도가 연결되면, 이 지역은 도시와 항구의 경계에 있는 교통 요충지로 거듭날 것이다. 앤트워프 시는 새로운 병원과 부두 사이에 풍부한 녹지, 자전거 네트워크, 트램 정류장, 병원 방문자와 응급 서비스를 위한 출입구를 갖춘 공공 공간을 조성했다.
친환경 설계
부두와 ZNA 사이에 조성된 새로운 공공 공간은 스포르 노르트(Spoor Noord) 공원과 에일란디어(Eilandje) 지역을 연결한다. 인접한 공공 공간의 미학적 특성에 부합하는 식물과 소재를 사용해 녹지를 설계했다. 하르덴보르트(Hardenvoort) 다리 아래의 자전거 및 보행자 도로 주변 녹지에는 와디wadi(평소 건천이지만 비가 내리면 물이 흐르는 강)를 조성하고, 스포르 노르트 공원에 심은 것과 비슷한 야생화와 수목을 선정해 식재했다.
병원 앞 중앙 공간은 5,000m2 규모의 다년생 식물이 심긴 정원이다. 정원 중앙을 가로지르는 넓은 길을 조성하고, 정원 사이를 통과하는 좁은 오솔길을 만들어 동선을 보완했다. 병원 방문자들은 이 고요한 정원에서 사색을 즐길 수 있다.
정원 식재 디자인은 희망과 생명을 상징하는 어린이의 초상화를 기반으로 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식물이 자라나면, 병원에서 차츰차츰 완성되는 초상화의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다. 이 숨겨진 초상화는 MAS 미술관에 설치됐던 석재 모자이크 ‘데드 스컬Dead Skull’(2010)을 향한 헌사이기도 하다.
정원에 약 38,000주의 다년생 식물과 37,000개의 구근을 심었다. 정원 일부는 지하 주차장과 응급실 바로 위에 위치해, 지하 건축물로 떨어지는 빗물을 흡수하고 저류하는 역할을 한다. 이곳에 모인 빗물은 최대 100㎥의 우수를 담을 수 있는 6개의 지하 콘크리트 수조에 저류되어 건기에 관개용수로 사용된다.
다년생 식물과 야생화는 생물 다양성을 높이고, 스포르 노르트 공원과 에일란디어를 잇는 강력한 연결고리가 된다. 부두를 따라 자라는 플라타너스 주변으로 더 넓은 녹지를 마련하고 투과성 석재 블록으로 포장해 토양을 개선함으로써 수목이 생육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부두 가장자리에는 켐피스(Kempisch) 부두를 조망할 수 있는 좌석을 설치했다.
높은 접근성
ZNA 입구에는 새로운 트램 및 버스 정류장이 있다. 트램 1호선과 600번대, 700번대 버스가 이곳에서 정차한다. ZNA는 대중교통 네트워크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특히 트램 1호선은 뤼흐트발(Luchtbal)에서 출발해 자위트(Zuid) 종점까지 운행해 도시 전체를 연결하는 노선이며, 여러 노선으로 환승할 수 있는 오페라 메트로 역도 지난다.
하르덴보르트 다리 아래에는 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양방향 자전거도로와 자전거 터널을 조성했다. 자전거 터널은 스포르 노르트 공원, AP 응용과학대학(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 캠퍼스, 병원을 위한 실용적이고 새로운 연결로이며, 복잡한 교차로를 건너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지름길이 되어준다.
ZNA와 부두 사이에 공공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새로운 병원으로 향하는 차량 통행은 가능한 지하에서 이루어지게 했다. 노르데를란에서 오는 방문자는 첫 번째 출입구를 통해 지하 주차장으로 안내된다. 응급실도 지하 2층에 위치하며, 두 번째 출입구를 통해 바로 접근할 수 있다.
글 OMGEVING
Landscape Architect OMGEVING
Main Contractor Aertssen Infra
Stability VK Architects & Engineers
Client AG VESPA + City of Antwerp
Location Antwerpen, Belgium
Area 3ha
Completion 2022
Photograph Lucid
옴헤빙(OMGEVING)은 벨기에 앤트워프에 있으며, 건축가, 조경가, 도시계획 및 환경 계획 전문가로 구성된 디자인 그룹이다. 주변을 뜻하는 플라망어 ‘omgeving’를 사명으로 삼아, 우리를 둘러싼 주변 공간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힘쓰고 있다. 다양한 규모의 중첩을 모색하면서 문화·사회·환경적 차원에서 공간의 연결 고리를 탐구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
- OMGEVING / 2023년04월 /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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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파크
Albert Park
벨기에 할레(Halle) 중심부에 위치한 알버트 파크(Albert Park)는 유기적인 산책로 동선, 풍부한 수목 경관, 기념비, 그리고 다채로운 경관축이 특징이다. 우리는 랜드 스케이프 파크 할레(Landscape Park Halle) 연구를 통해서 도시 경관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낙후된 알버트 파크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이를 바탕으로 할레 시는 동선 재설계, 완성도 높은 공원 시설물 설치 등을 위한 알버트 파크 리모델링을 결정했다. 설계 과정에서 후원과 실현성 높은 계획안을 위해 시 정부 및 다양한 이해 관계자의 의견 조율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글 OMGEVING
Landscape Architect OMGEVING
Client City Council of Halle
Location Halle, Belgium
Area 1.2ha
Completion 2022
Photograph Tim Delmoitie
- OMGEVING / 2023년04월 /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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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디자인 오피스] HEA
합리적이고 세심하며 감각적인 자연을 만들다
우리의 오피스 문화
HEA에이치이에이는 디자인과 삶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건강한 관계를 지향한다. HEA에서 좌충우돌 성장하고 있는 네 명의 팀장이 네 개의 주제로 회사와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 소개한다.
최고 수준의 복지와 자유로운 분위기
HEA는 디자이너의 창의성과 유연한 사고를 위해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를 조성하고 최고 수준의 복지를 보장한다. 회사 측이 연차 사용을 적극 장려해 개인 일정에 맞게 자유롭게 휴가를 붙여 쓰는 건 물론이고, 급한 일이 없는 경우 눈치 보지 않고 반차를 내고 퇴근할 수 있다. 또한 1시간 단위로 유연 근무제를 적용해 각자의 생활 패턴과 일정에 맞춰 자신만의 근무 시간을 정할 수 있다.
직원들이 회사에 의견을 건의하는 것도 매우 자유롭다. 개진된 의견을 진지하게 수렴할 준비가 된 수평적인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이러한 여러 복지 혜택뿐만 아니라 격주 금요일마다 1시간씩 일찍 퇴근하는 패밀리데이, 한 달에 한 번 팀별로 답사를 하는 문화데이, 그리고 직원들의 건강 관리를 위한 운동비 지원 등이 있다.
사무실에 오면 들리는 최신 음악과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는 HEA의 창의적이고 편안한 업무 공간 분위기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라운지에서 부드러운 분위기의 재즈와 팝송을 들으며 격의 없는 일상 대화부터 시작해, 업무 시간에도 좀 더 수평적인 분위기의 회의를 이어갈 수 있다. 원하는 노래가 있다면 누구든 스피커로 들을 수 있다. 이처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마찰을 최소화하고, 오로지 창의성과 유연한 사고를 위해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다. (한지수 팀장)
답사의 즐거움, 문화데이
좋은 설계를 하려면 두 눈으로 직접 좋은 공간들을 보고 체험해보면서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설계사무소 직원들은 평일에 햇빛이 있을 때 좋은 공간, 요새 뜨는 ‘핫플’을 방문하는 게 쉽지 않다. 주말에도 갈 수 있지만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정도로 인구 밀도가 높기 때문에 여유롭게 한 공간을 보고 오지는 못한다. 이러한 상황을 보완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팀별로 답사를 가는 날인 문화데이를 만들어 실천 중이다.
아파트, 상업 시설, 리조트, 카페, 아울렛, 미술관, 특색 있는 동네 등 팀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영감을 줄 수 있는 다양한 공간에 방문했다. 각 동네의 고유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음식, 디저트를 먹으며 근황이나 일하면서 힘들었던 점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예쁜 공간을 눈에 담을 수 있어 여러모로 유익하다. 특히 혼자 방문하거나 조경에 관심 없는 친구들과 가면 충분히 공간을 즐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조경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면 여유롭게 공간을 익히고 디테일한 부분도 눈에 담을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문화데이 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 공간을 주변 지인에게 성향과 상황에 맞게 추천해주는데, 그 공간이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공간으로 인식될 때 즐겁다. 이번 달에도 어떤 지역으로 갈지, 어떤 사례를 보아야 할지, 어떤 음식을 먹을지 기대감에 부풀어 장소를 검색하고 있다. (염혜리 팀장)
머물고 싶은 오피스
최근 논현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서초동 사무실에 이어 HEA의 네 번째 공간이다. 논현역 도보 3분 거리, 초역세권에 아담한 소공원이 인접해 숲세권, 팍세권(파크+세권)까지 갖추었다. 무려 6개월간 발품을 팔아 물색한 공간으로 커다란 통창으로 들어오는 주변 풍경마저 완벽하다. 사무실 인테리어는 강지호 건축가(아틀리에 오)가 맡았다. 강지호 건축가의 열정과 노력으로 기능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사무실이 완성됐다.
사무실은 크게 업무 공간과 회의 공간, 휴게 공간으로 구분된다. 채광이 가장 좋은 위치에 업무 공간이 있다. 직원들의 편의를 우선으로 고려한 두 대표의 배려다. 대표실은 일명 골방이라 불리는 가장 구석진 자리에 있다. 직원들에게 내어준 자리보다는 못하지만, 이곳 역시 채광이 좋다.
업무 공간에는 6인 체제인 3개의 소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흰색을 기본으로 잡고 모노톤을 가미해 화사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두 개의 문을 통해 테라스로 나갈 수 있어 때때로 리프레시 시간을 갖기에도 좋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회의실은 글라스월과 시크한 블랙 가구를 배치해 전체적으로 현대적인 인상을 풍긴다. 회의실 맞은편으로는 일명 ‘H바’라고 불리는 우드톤의 라운지가 자리한다. 긴 바 테이블과 널찍한 소파, 여기에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더해져 멋진 카페를 연상케 한다. 이번 사무실 인테리어를 하면서 가장 많은 공을 들인 장소로 다양한 어메니티가 갖춰져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
사무실은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물론 영감도 불어넣어 줘야 한다.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이어야 아이디어가 샘솟을 것이다. 일에 집중할 수 있고 온전한 휴식을 만끽하는 근사한 오피스를 만들어준 아뜰리에 오와 경영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김라희 팀장)
한 달의 꿈같은 휴식
HEA에는 3년간 근무를 하면 한 달간의 유급 휴가와 이에 붙여서 사용할 수 있는 한 달간의 무급 휴가가 주어진다. 장기간 휴식을 갖기 쉽지 않은 직장인으로서는 그동안 가고 싶었던 곳에 가서 버킷리스트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연차와는 별개로 주어진 한 달의 휴가를 받고 떠나는 날, 웃으면서 회사 동료들에게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며 오세아니아 대자연의 품으로 떠났다.
돌이켜보면, 첫 일주일 정도는 평소 휴가를 떠난 기분으로 주어진 휴식 시간에 많은 것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던 것 같다. 주어진 시간에 더 많이, 더 잘 쉬고 싶다는 생각에 쉬는 것도 빡빡한 일정 속에서 전투적으로 임했다. 하지만 2주차에 접어들면서 일을 규칙적으로 하다보면 생기는 몸의 리듬감이 점차 사라졌다. 그때부터 조금 더 편안한 기분으로 휴가를 즐길 수 있었고, 마지막 4주차가 되니 연예인이 활동을 하지 않는 비수기에 느낄 법한 적당한 게으른 일상 속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장기 휴가만이 줄 수 있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넘치는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여행 기간 동안의 사진들을 차근차근 넘겨봤다.
휴가를 가기 전후로 많은 지인으로부터 축하를 받으며, 다른 업계에서도 이렇게 한 달씩 비울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회사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회사에 더욱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다. 특히 자리를 비운 동안 진행하던 업무를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맡아준 팀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백충석 팀장)
새로운 생각, 새로운 시도
HEA는 자연을 다루는 창의적인 생각을 가진 디자이너를 위한 그룹이다. HEA에서는 새로운 생각이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다고 믿으며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고 즐기는 편이다. 고리타분한 회식을 거부하고 용산 미군기지 내 드래곤호텔 회식, 한강 요트파티 등 새로운 장소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회식 문화와 인공지능 프로그램 챗GPT, 달리2DALL·E 2와 같이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기술을 접했을 때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즐기는 행위는 HEA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백종현 대표)
우리의 프로젝트
HEA에서 하루하루 누적되어 쌓이는 새로운 시도와 경험은 직간접적으로 우리의 디자인과 설계 과정을 보다 풍부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HEA를 대표하는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조치원문화정원
첫 준공작(2019)으로 EMA건축사사무소와 함께 협업해 설계한 복합문화공간이다. 기능을 잃은 기존 정수장을 지역 사회를 위한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장소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로, 기존 숲과 방치된 정수장의 건물들을 존중하는 세심한 복원과 재생의 설계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HEA 초기 멤버 이수 소장(현 한화건설 과장)이 설계와 현장 디자인 감리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2019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대상, 2019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을 수상했다.
대유평공원
우리의 최장기 프로젝트다. KT&G의 오래된 연초제조창 공장 부지를 복합 개발하는 프로젝트로 대형 쇼핑몰(스타필드 수원), 공동주택(화서역 파크푸르지오, 화서역 푸르지오브리시엘)이 새롭게 들어서게 되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공원의 설계를 6년째 진행하고 있다. 주변의 학교, 교회, 주거단지, 먹자골목으로부터의 수많은 민원과 발주처, 수원시로부터의 다양한 요구사항들을 해결하며 2021년 11월, 1단계가 준공되어 시민에게 개방됐다. 2022년 제12회 대한민국 조경대상 국토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성문안 컨트리클럽
성문안 컨트리클럽(이하 성문안 CC)은 국내 최대 규모의 오크밸리 리조트 내 새롭게 조성된 전장 6,662m의 18홀 프리미엄 퍼블릭 골프 코스로, 웅장한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홀마다 매력적인 경관을 구현한 프로젝트다. 우리는 코스 전반의 조경 특화설계와 현장 디자인 감리를 수행했다. 2021년 5월부터 2022년 7월 개장 전까지 1주 또는 2주에 한 번씩 현장을 방문해 돌 하나, 나무 하나의 모양과 위치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프로젝트다.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HEA 구성원 대부분이 한 번씩은 현장을 경험했고 대자연과 새로 만들어지는 자연의 과정을 만끽하며 소중한 추억을 많이 쌓았다. 가든랩스의 이안숙 소장(@garden_traveler)과 협업해 현장에서 많은 것을 깨달으며 배웠다.
제주 스타빌
천혜의 자연 제주도 한라산 600고지 근방에 위치한 프리미엄 글램핑 리조트 스타빌의 조경 리뉴얼 설계를 오픈니스 스튜디오와 협업해 진행했다. 미리내길을 콘셉트로 하는 스타빌 자연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동시에 새롭게 확장되는 영역의 설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보고 자료를 매주 만들어내는 숨 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HEA 심재연 소장의 감각적 설계가 큰 역할을 한 스타빌 프로젝트는 2021년에서 2022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리조트가 잠시 휴장하는 사이 공사가 진행되어 2022년 4월 리뉴얼 오픈했다.
글빛누리공원
HEA의 첫 공원 프로젝트로 2020년 준공됐다. 당시 인턴이었던 김지학(현 오픈니스 스튜디오 팀장), 염혜리(현 HEA 팀장)와의 밤샘 작업 끝에 만든 보고용 모델은 결국 쓰이지 못했지만, 방치된 논밭의 경관을 재해석한 중앙의 초지 경관과 도서관의 공원으로의 확장 등 초기 콘셉트가 대부분 그대로 시공까지 이어지게 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HEA가 한층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된 프로젝트다. 2021년 제11회 대한민국 조경대상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을 수상했다.
HEA(에이치이에이)는 도시 공간의 자연을 다루며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디자이너를 위한 그룹이다. 자연과 도시 라이프의 새로운 조화를 꿈꾸고, 자연의 가치를 토대로 지속가능한 사회적 영향을 추구하며, 도시 자연의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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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스케이프] 효창공원 단상
유네스코(UNESCO)는 2011년 제36차 총회에서 ‘역사도시경관에 관한 유네스코 권고안(UNESCO Recommendation on the Historic Urban Landscape)’을 채택하고 사회와 문화의 가치가 도시 경관을 의미 있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임을 공론화했다. 경관을 다루는 조경 분야에서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당연한 말이지만, 미래 세대에 계승해야 할 유산(heritage)의 범주에 ‘도시 경관’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유산에 내재한 무형의 가치, 즉 시간이 만들어낸 인간과 환경의 맥락을 존중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큰 변화다.
도시 유산은 생성과 변화가 뒤따르기 마련으로, 이를 속성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한 이 권고안은 도시에서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중첩된 경관’에 주목하게 한다. 서울 효창공원(이하 효창공원)은 이러한 동향을 보여주는 하나의 특별한 사례다. 우리의 오래된 공원 대부분이 그렇듯 효창공원도 처음부터 공원은 아니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효창공원의 시작은 원묘(園墓)다. 효창孝昌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원자인 문효세자 묘소의 명칭이며, 효창묘는 1870년(고종 7년) 12월에 원(園)으로 승격됐다. 무덤은 1944년 10월 9일 고양시 원당동 서삼릉 경내로 이장되기 전까지 당시 경기도 고양군 율목동(현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효창공원 일대)에 있었다. 식민지기에 들어서면서 묘역 일대는 근대의 성격이 간섭되기 시작했고 다른 곳과 달리 여러 시설의 층위가 중첩되어 진화했다.
첫 번째는 식민지기에 지정된 공원으로서의 층위다. 효창원은 송림을 배경으로 한 원유회(園遊會)를 시작으로, 1921년부터 1924년까지 골프장으로 사용됐다. 한국 묘역의 특징인 비산비야(非山非野)의 구릉과 상대적으로 양호한 산림, 열린 경관 등의 환경은 코스 설계에 장점이 되었을 것이다. 이밖에도 이곳은 도성으로의 진입과 외부로의 진출입이 편하고 당시 개발로 인해 급부상하는 용산, 영등포 지역과도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골프장이 아닌 무엇이 들어서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장소였다.
참고문헌
노형석, “왕실묘 → 골프장 → 유원지 → 독립투사 묘지 ‘영욕의 232년’”, 「한겨레」 2018년 5월 31일.
박희성, “효창공원 성역화 사업의 비판적 고찰”, 건축역사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 특별세션, 2019.
이연경, 『효창공원의 연혁과 공간적 변화』, 서울특별시, 2018.
『조선총독부관보』 제3945호, 1940년 3월 12일.
효창독립100년 메모리얼 프로젝트 www.hyochangpark.com
서울역사아카이브 museum.seoul.go.kr
서울기록원 archives.seoul.go.kr
그림 출처
그림 1. 『朝鮮』, 朝鮮總督府, 1925
그림 2. 「한겨례」 2018년 5월 31일.
그림 3. 구글 지도 www.google.co.kr/maps/?hl=ko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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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의 장소성을 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장소의 순환’ 전
서울 성곽은 중요한 국가 시설이 있는 한성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도성(都城)이다. 흥인지문은 성곽 여덟 개 문 가운데 동쪽에 있는 문으로, 흔히 동대문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태조 5년(1396) 도성 축조 때 건립되었으나 단종 원년(1453)에 고쳐졌고, 지금의 흥인지문은 고종 6년(1869)에 새로 지은 것이다. 도성의 여덟 개 성문 중 유일하게 옹성을 갖추고 있으며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잘 보여준다.
해방 이후, 동대문 일대는 본격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도성의 동쪽 끝에 놓여 있다 해서 동촌이라 불렀던 이 일대는 북촌, 서촌, 남촌에 비해 번화하거나 부유한 지역은 아니었지만 한양의 간선 도로와 주된 물줄기를 따라 사람이 모이고 경제 활동이 일어나는 도성의 한 축이자 요충지였다. 근대기에 접어들면서 이곳은 새로운 교통 체계가 생기고 8.15 해방과 6.25 전쟁 이후 기존의 시장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며 급속하게 성장했다.
1980년대, 동대문 일대는 광장시장을 비롯해 동평화·제일평화·흥인·덕운·남평화·광희·청평화 시장 등이 들어서며 전국 최대 규모의 의류 도매시장으로 발돋움했다. 뿐만 아니라 의류, 직물 등의 해외 수출 기지로 자리 잡으며 거대 의류 시장으로 성장한다. 1990년대에는 현대식 시설을 갖춘 대규모 상가가 들어서면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꾸기도 했다. 20세기 초 한양 도성의 동쪽 끝에 자리 잡았던 하도감 터에 동대문운동장이 들어섰지만, 2006년 운동장은 철거됐다. 그 자리에 들어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동대문의 장소성과 역사적 가치를 미디어 아트로 풀어낸 전시 ‘장소의 순환’이 DDP에서 개최됐다. 이번 전시는 ‘서울라이트 DDP’의 차세대 미디어 아티스트 육성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다섯 명의 미디어 아티스트는 한양 도성부터 훈련도감, 동대문운동장, 패션 상권, DDP까지 동대문이라는 장소에 오랜 시간 층층이 쌓여온 이야기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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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경계를 모른다
페이스갤러리, 마야 린 개인전
너른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느슨한 V자 모양의 틈. 단단한 쇠붙이를 툭 찍어 생긴 상흔처럼 벌어진 자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짝이는 검은 화강석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닥에서 시작해 사람의 키를 훌쩍 넘어설 정도까지 서서히 높아지다가 다시 지면으로 하강하는 검은 벽에는 베트남 전쟁 희생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흰색으로 새긴 이름을 보며 개인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이곳은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다.
1982년 설계공모를 통해 만든 이 기념비의 계획안은 당시 큰 논란을 일으켰다. 높은 기념물이 들어선 주변의 내셔널 몰과 달리 단순한 형태에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기념비는 영웅적 디자인을 기대한 대중들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게다가 당선자가 유명한 건축가가 아닌, 당시 나이 23세, 중국계 미국 여성이자 예일대학교 건축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마야 린(Maya Lin)이었다.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었고 영향력 강한 정치가가 목소리를 더했지만, 기념비를 처음 계획한 얀 스트럭스(Jan C. Scruggs)가 강력히 밀고 나간 덕분에 설계안을 지켜낼 수 있었다. 논란이 불거지는 과정에서 마야 린이 남긴 말은 줄곧 애국의 선전물로 여겨졌던 기념비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상실이라는 뼈아픈 현실을 인식하게 될지라도, 상실감을 극복하는 것은 어차피 각 개인의 몫이다. 죽음은 결국 개인의 사적인 문제이며, 따라서 이 기념물의 내부 공간은 개인의 명상과 심판을 위해 마련된 조용한 장소다.”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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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96년생 이조경
이번 호 특집을 준비하고 매만지면서 본 선배들의 이야기에 조경학과를 졸업한 나도 공감한 부분이 많다. 특히 ‘만약 지금 대학생이라면 무엇을, 왜 해보고 싶나요’에 대한 답을 읽으며 대학 시절의 내가 저런 조언을 들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기도 했다. 조경 전문지 에디터인 나는 꽤 오랜 시간 고민하고 이곳저곳을 둘러본 끝에, 전공에서 조금 빗겨났지만 그래도 조경 동네에 머물고 있다.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몇 문항에 답을 해보았다.
1 『환경과조경』 4월호 마감을 코앞에 두고 있다. 에디터는 남들보다 한 달 일찍 산다. 월 초에는 자료 수집과 필자 발굴로 바쁘다. 4월호 편집과 동시에 5월호 기획을 점검한다. 그리고 잡지 콘텐츠를 웹에 업로드하기 적합한 형태로 가공해 디자인한다. 환경과조경 공식 인스타그램(@lak_korea)에 업로드하는 잡지 콘텐츠 제작을 담당하고 있는데, 좋아요와 팔로워의 숫자에 예민해졌다. 특히 지금 가장 공 들이고 있는 콘텐츠는 유튜브1다. 영상 길이는 짧지만 기획과 제작에 그보다 몇 배의 시간이 소요되는 게 ‘넘기다, 살짝’이다. 그달의 잡지를 예고편처럼 소개하는 영상인데, 몇 차례의 회의를 거쳐 인트로를 찍고, 제작에 필요한 이미지를 추리고, 콘티를 정리해 영상 편집자에게 편집계획서를 넘긴다. 3월부터 최신호와 과월호 특집과 연재의 한두 문장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30초 남짓의 ‘하루 한 문장’ 쇼츠 영상도 정성 들여 만들고 있으니 많은 구독 부탁드린다.
메일함에 도착한 원고를 읽으며 부족한 자료는 없는지 필자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점검하고, 교정 및 교열을 하고, 디자이너에게 넘겨 함께 디자인 레이아웃을 고민한다. 교정지가 나오면 몇 차례 교정을 보며 오타와 비문을 찾고, 글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이미지 배치를 다시 고민해보고, 전반적으로 통일성 있는 잡지를 만들기 위해 에디터들과 의논하며 잡지를 완성해 나간다. 틈틈이 인스타그램 게시물도 업로드한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마감을 마치면 한 달이 끝난다. 다시 새로운 기획과 특집을 위한 자료 수집을 시작해야겠다.
2 “한때 두루뭉술하게 국어 교사나 광고 기획자를 꿈꾸던 문과생은 수능 참사라는 핑계로 공대까지 기웃거리게 된다.”(31쪽) 한 필자가 이렇게 답했다. 사실 나도 비슷했다. 수능 참사로 여러 학과를 기웃거리다 학과 홈페이지에 있던 식물이 가득한 곳에서 수업하는 사진에 끌려 조경학과에 입학했다. 그림엔 소질이 없는데, 도면 그리기와 스케치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조경학과를 다니며 나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했다. 캐드, 일러스트, 포토샵 등 디자인 프로그램을 잘 만지는 것이다. 디자인 툴이 조경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 능력 덕에 나름 만족스러운 패널들을 만들면서 조경에 재미를 느끼고 정을 붙여나갈 수 있었다.
3 어렸을 때부터 꿈꾼 교사에 대한 꿈을 저버릴 수 없어 교직이수를 했다. 졸업 후 임용고시를 준비했지만 (뽑지 않아서 더 좁았던) 합격의 문을 열지 못했다. 결국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꿈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대학 시절 즐거웠던 적이 언제인지 돌이켜보니 환경과조경 통신원 활동이 떠올랐다. 기사 작성을 위해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질문 준비부터 인터뷰이 섭외 등 풍성한 글을 구성하기 위한 기획에 꽤 열정적이었다. 특히 인터뷰이의 우물쭈물한 답변에 추가 질문과 호응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냈을 때 처음 느껴보는 짜릿함을 맛봤다. 과제 속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내게 새로운 기분을 선물해준 이 기억에 푹 빠져 있었는데, 운명처럼 환경과조경 에디터 공고가 올라왔다. 타이밍과 운이 잘 맞물렸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던 것 같다.
5 필자들의 답변에서 가장 공감한 부분이 72시간 프로젝트, 시민정원작가 디딤돌 프로젝트 등 대학생 때 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참여를 추천하는 이야기다. 물론 일이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고 과제와 시험으로 바쁜 일상은 더욱 분주해지겠지만 이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성향과 능력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나도 대외활동 덕에 기획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이끄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전공과 관련된 것이 아니어도 좋으니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길 권한다. 이왕이면 대학생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을 많이 누려보기를
각주 1. 환경과조경 공식 유튜브 채널, www.youtube.com/c/환경과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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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계속 1번부터 5번 중에 답이 있었잖아
우리 동네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집에서 두 골목 떨어진 곳에 있는 카페의 사장이다. 원두 로스팅을 하며 소일거리로 커피를 파는 곳이라 부르는 게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테이크아웃 매장인 데다 주문할 수 있는 공간도 사람 서너 명이면 가득 찰 정도로 좁다. 카페는 저녁 다섯 시가 넘어서야 문을 연다. 장사를 할 생각이 있는 거야? 투덜거리면서도 골목에 카페 입간판이 세워져 있으면 얼른 달려간다. 각종 로스팅 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쥔 실력으로 내린 커피 맛이 좋기도 하지만, 샷을 추출하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사장의 취미를 엿볼 수 있는 가게 앞 공간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손수 만든 의자와 도장, 붓 그림과 캘리그라피로 완성한 메뉴판, 흑백 타일로 바닥에 새긴 카페 이름까지. 이토록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그가 언제 로스팅을 자신의 길로 삼았는지 궁금했는데, 한 인터뷰를 보니 아버지가 로스팅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더라.
이번 특집에도 과수원을 한 부모님 덕분에 일찍 나무와 자연에 대한 흥미를 느꼈다는 인터뷰이가 있었다(39쪽). 어린 시절부터 직업으로 삼을 분야를 가까이에서 접할 기회가 있었다는 점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좋아하는 일로 성공한 사람의 행복한 일상을 지켜보면 덩달아 즐거워지고 선망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가는 길에 언제 확신이 생겼을까. 비슷한 이유로 미니멀리스트를 동경한다. 나는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의도치 않게 맥시멀리스트로 살고 있다. 카메라, 건반, 잡다한 서적들까지 관심이 생긴 것들을 좁은 방에 꾸역꾸역 욱여넣는다. 외출 가방을 꾸릴 때도 마찬가지다. 나가서 뭘 할지 모르니까. 변명하며 가득 채운 가방 속 물건을 반도 사용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도대체 나에 대해 아는 게 뭘까.
직업을 고민할 때면 맞닥뜨리는 아이러니가 있다.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삼으라고 조언하는 이가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행복하지 않겠냐고 묻는다. 하지만 양자택일 전에 직업으로 삼을 만큼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 앞에 멈칫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가심비, 소확행 같은 단어가 쓰이는 세상은 사람들이 실패를 겪고 다시 일어날 시간을 내어주지 않으니 말이다. 8년차 에디터인 나도 “내가 나를 잘 모를 때 / 선택하기조차 어려울 때 / 어떻게 보면 호불호 강한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1 죽겠으니 말이다. 82년생 김조경들이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하고 싶은 일로 나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기를 추천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돈은 없어도 그나마 시간 여유가 가장 많은 때가 대학 시절이니까.
대학 졸업반 시절, 동기는 크게 두 분류로 갈렸다. 일찌감치 공사, 공무원, 임용을 위해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과 건설사 취업을 위해 인적성 문제집을 사는 친구들. 업무 강도와 걸맞지 않은 연봉 문제로 조경설계사무소를 기피하던 때였다. 나는 어디에도 끼지 못한 여집합의 원소였지만, 대세를 따라 괜히 두 그룹을 기웃거려보기도 했다. 산책하듯 시험장에 가고 면접을 봤으니 붙을 리가 없었다. 당시에는 어떤 목표 없이 방황하는 게 참 부끄러웠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계속 1번부터 5번 중에 답이” 있는 삶을 살아왔으니까. 늘 오와 열을 맞춰 나인 적이 없고, 눈치를 계속 보며 나를 잃어버리는 중이었을 거다.2
연구소 행정 인턴, 언론고시생, 조경설계사무소 공무팀을 거쳐 환경과조경에 정착한 난 어쨌든 잘 살고 있다. 탈조경을 할 거라던 선배는 조경 동네 한복판에 머물고 있고, 식물이 좋다던 친구는 얼마 전 조경과 전혀 상관없는 분야의 공부를 시작했다. 빠르게 적성을 찾은 동기들도 있지만, 적어도 10년은 헤매야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가닥을 잡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러니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는, 또 무위의 상태를 유지해보라는 82년생 김조경의 조언들은 의미가 있다. 한 가지 조건만 더 갖춰지면 더 완벽해질 거다. 면접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빙자한 무안 주는 말을 하지 않기. “휴학을 2년이나 하셨는데 (졸업한 지 2년이나 지났는데), 유학을 다녀온 것도 아니고 자격증도 별거 없네요. 그냥 놀기만 했나요?”
**각주 정리
1. 우원재 ‘호불호’ 가사
2. 위의 노래 가사 변형. 기존 가사는 다음과 같다. “계속 1번부터 5번 중에 답이 있었잖아. 넌 오와 열을 맞춰 너인 적이 없고 눈치를 계속 보다가 또 잃어가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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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공원에서 즐기는 물놀이터, 원더풀
도시의 새로운 물놀이 문화를 만드는 놀이터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면 시원한 워터파크에서 물놀이를 하며 피서를 즐긴다. 하지만 멀리 나가지 않아도 집 근처 공원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디자인파크의 ‘원더풀’은 기존 조합 놀이대에 물놀이 기능을 결합해 만든 공원형 물놀이 시설로 도심 한복판에서 무료 바캉스를 즐기게 만든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고, 다른 계절에는 놀이 시설로 사용된다.
원더풀은 쾌적한 물놀이 환경을 제공하며 감성적인 디자인을 선보인다. 특허를 받은 살균 여과기를 통해 미생물 처리와 물리적 이물질 제거 공정의 효과를 높였다. 인체에 무해한 친환경 고밀도 펄프를 소재로 활용하고, 패널에 직접 프린팅을 해서 다양한 색상의 감성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GRC 조각 등과 철재의 적절한 조합을 통해 조형성 및 기능성을 더했다.
최근 신축 아파트에서 물놀이 시설을 많이 볼 수 있고, 노후화된 어린이공원을 물놀이 시설 중심으로 리모델링하는 지자체도 늘어나고 있다. 디자인파크는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전국 지자체 500여 곳에 물놀이장을 설치 및 운영하고 있다. 도시의 새로운 물놀이 문화를 제공하며 지역에 맞는 테마와 콘셉트에 맞는 디자인을 통해 지역의 랜드마크로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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