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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DA] 술과 공원
    K의 남편 L에게 감사한다. 그가 밤낮으로 도면을 그리며 저녁 없는 삶을 보내는 바람에, 나는 L 대신 창경궁의 밤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고궁을 찾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나 싶던 내 예상과 달리 창경궁 야간특별관람은 인기가 좋아서 난 번번이 예매에 실패했다. 예매에 성공한 부지런한 K는 어느 초여름, 나를 데리고 홍화문에 들어섰다. 제한된 인원만 예약을 받아 운영하니 붐비지는 않았다. 저녁 바람은 시원했고 길을 따라 세워진 미색 조명은 땅거미가 지는 고궁에 은근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연인들은 명정전을 배경으로 서로를 찍어주기 바빴고, 녹색과 푸른색 조명으로 빛나는 통명전에서는 고궁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여자 둘이서, 명정전을 지나 한창 공연 중인 통명전을 흘깃 보고 춘당지를 따라 걷다가 불 꺼진 대온실을 보고 돌아오니 산책은 금방 끝이 났다. 생각보다 심심한, 그런 풍경이었다. 무얼 기대했던 걸까. 다시 홍화문을 빠져나온 K와 나는 맥주나 한잔 하자며 원서동까지 걸었지만, 9시면 문 닫을 준비를 하는 조용한 북촌 동네에서 그날의 음주는 불발되었다. 사실 창경궁의 야간 개방 역사는 짧지 않다. 그렇다고 왕조 시대에 지엄한 궁궐을 개방했을 리 만무하니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조선이 망국의 길로 들어서고, 일제가 창경궁을 유원지 창경원으로 만들면서, 원내에 ‘사쿠라’를 대량으로 심었다. 매년 늘려 심은 벚나무가 자리를 잡아가자, 1924년부터 창경원에서 밤벚꽃놀이, 야앵夜櫻이 시작되었다. 봄이 되면 흰 꽃이 구름처럼 피고 지며 밤을 밝히는 풍경을 보기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창경원 야앵은 1945년 광복 때까지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매년 열렸다. 1920~30년대 창경원의 밤벚꽃놀이는 기자들의 단골 취재거리였다. 이번 휴일에는 얼마나 많은 입장자들이 몰렸는지,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어떤 새로운 조명 시설을 갖추었는지, 연예장에서는 또 어떤 공연이 펼쳐지는지, 그리고 곳곳에서 벌어지는 볼썽사나운 일들에 대한 개탄까지. 당시 창경원의 봄밤은 무질서와 향락, 일탈의 도가니였다. 야앵의 첫날밤. 20일 밤 7시 반 대경성의 지붕 밑에는 춘흥에 취한 무리들이 수백수천으로 떼를 지어 창경원으로 창경원으로! 꽃구경하러 밀려든다. 창경원 쪽 하늘을 바라보면 큰 불이 난 듯이 환한 화광이 하늘을 뻗찌르고 그 속에는 검은 하늘 산허리에 안개가 끼인 듯 밤 벚꽃은 흰데 찬란한 오색등이 열을 지어 꽃 속에 꽃을 피우고 흥에 겨워 미친 듯한 사람 떼는 물결을 이루고 있다. … 이 나무 밑에 춘흥에 취한 떼의 젊은이들이 잔디 위에 둘러 앉아 잔을 돌리는데 삐루는 거품을 내며 넘쳐흐른다. 요란스럽게 울려오는 축음기 소리에 장단을 맞추어 손뼉 치는 사람 엉덩춤추는 사람, 가고 오는 사람보고 웃는 사람까지 모다 취하여 버렸다.1 신문과 잡지 기자들은 난장판이 되어가는 창경원의 밤벚꽃놀이에 혀를 끌끌 차면서도 꾸역꾸역 기사를 내보냈다. 당시 대중잡지인 『별건곤』의 한 여기자는 퇴근 무렵 ‘야앵 첫날밤에 창경원에 가보라’는 편집국장의 명령을 받았다. “그저 구경을 하러 가라는 말은 아니겠고 무슨 기사를 얻어 오라는 말이겠는데 창경원 야앵 기사야 그동안 신문에서 잡지에서 신물이 나도록 우려먹지 아니했나? 그러니 그대로 평범한 꽃 이야기만 늘어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다지 신기한 것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2 80여 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퇴근 무렵 잡지사 풍경은 별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광복 이후에도 그런 창경궁의 밤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창경원의 밤벚꽃놀이는 1958년 재개되었고, 창경원이 다시 창경궁으로 복원되는 1980년대 초까지 계속되었다. 해마다 벚꽃이 망울질 무렵인 4월 15일쯤부터 시작해서 약 한 달간 계속되는 창경원의 밤벚꽃놀이는 이제 40여년의 역사를 가진 시민축제라기보다는 온 백성의 축제인지도 모른다. 매년 높아가는 인기 속에 맞는 밤벚꽃놀이지만 “오색등에 조명된 벚꽃 아래서 조용한 봄밤의 정서에 젖어 본다”는 낭만은 요란한 고고 리듬이나 니나노 가락에 흥청대는 소란 속에 밀려나고 있고 놀랍게 번창하는 갖가지 바가지 상혼과 폭력 풍기 사범 등으로 한때나마 서민의 휴식처를 엉망으로 만드는 것은 마음 아픈 일. … 요새는 10대 20대의 청소년들이 포터블 전축을 간편히 들고 들어와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고고춤의 일대 향연을 벌이고 있으니 세상은 많이도 변했다.3 광복 이후에도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서울 시민들에게 창경원은 대중적인 공원과 다름없었다. 벚나무 아래서 니나노 가락을 흥얼거리는 어르신들에게나, 음악을 틀고 고고춤을 추는 청소년들에게나.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난 지 30여 년이 넘었는 데도 일제가 만들어 놓은 유원지에서 식민지 시대와 똑 닮은 모습으로 봄밤을 즐기는 모습을 떠올리면 서글프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그 창경원의 봄밤이 세파에 시달리는 서울 시민들에게 해방구 역할을 하지 않았나도 싶다. 사람들의 관성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안’이 입법 예고되었다고 한다. 도시공원이나 어린이 놀이터, 그 밖의 서울시장이 지정한 장소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는 일명 ‘음주청정지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한강공원이나 얼마 전 개장해 인기를 누리는 경의선숲길도 역시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버린 쓰레기나 밤이 되도 멈추지 않는 소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하니 공원에서의 음주가무의 역사는 길고도 끈질기다.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공원이 우리의 해방구가 되고 있다는 의미인지 입맛이 쓰다.
  • [편집자의 서재] L의 운동화
    『L의 운동화』의 주인공은 실력을 인정받은 예술 작품 복원 전문가다. 이야기는 어느 날 그에게 운동화 복원 의뢰가 들어오며 시작된다. 복원함의 유리창 너머로 마주한 운동화의 고무 밑창은 거의 다 떨어져 나갔고, 손끝으로 건드리면 당장에라도 내려앉아 먼지가 되어버릴 것처럼 낡았다. 심지어 왼쪽 한 짝은 어디로 갔는지, 보관함에는 오른쪽 운동화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이런 낡은 운동화가 소중히 보관되고 있는 이유는, 운동화의 주인이 ‘L’이기 때문이다. 소설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L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청년 이한열이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 참여했던 그는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았고, 현장에는 최루탄 냄새가 밴 오른쪽 운동화만이 남았다. 작년은 이한열의 28주기였고, 미술품 복원 전문가인 김겸 박사가 3개월에 걸쳐 운동화의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책의 저자인 김숨은 김겸 박사의 연구소에서 복원 작업을 지켜보았고, 그 과정을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해외 작품을 소개할 때면, 번역에 애를 먹을 때가 있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1를 영어로 완벽하게 옮길 수 없듯이, 다른 나라의 언어에도 한국어로 대체할 수 없는 단어나 문장들이 있다. 결국 문장의 맥락이나 작품의 사진을 보고 유추해 적절한 단어를 고르게 된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했던 일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어렵게 느껴진다. 과연 내가 고른 단어가 맞는 것일까.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가치관이 정보를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간에 쫓겨 섣부르게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L의 운동화』가 느릿하게 그려내는 운동화 복원 과정이 내겐 그다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주인공의 끈기와 깊이가 부러웠다. 소설은 총 271페이지인데, 그중 본격적인 복원 작업이 담긴 지면은 118페이지뿐이다. 전체 분량의 채 반도 되지 않는다. 그 나머지 페이지는 복원 작업에 들어가기 전 끊임없이 계속된 주인공의 고민과 생각들이 차지했다. 주인공은 자신이 운동화복원 작업의 적임자임을 알지만 의뢰를 받아들일지 말지 고민한다. 한참 후에야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한 뒤에는, L에 의해 운동화가 어떻게 변형되었을까 생각하기 시작한다. “L에게 척추 측만증이 있었다면 어깨가 평형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었을 것이고, 기운 쪽 발 운동화 밑창이 그렇지 않은 쪽 운동화 밑창보다 빠르게 닳았을 것이다”2 이어 그는 L이 걸을 때 왼발에 더 힘을 주었을지, 오른발에 힘을 더 주었을지 또 보폭은 어땠을지 생각한다. 그 이유는 “습관뿐 아니라 성격과 기질이 그 사람의 옷과 신발과 가방 같은 물건에 고스란히 기록된다는 것”3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L의 운동화는 단순한 신발 하나가 아니다. 과거 L의 친구였던 이는 편지로 “제 친구 M도, J도, L도, K도 R도 운동화를 신고 다녔습니다. 그러니까 L의 운동화는 저의 L의 운동화는 … ‘우리 모두’의 운동화이기도 했던 것입니다”4라고 말한다. 운동화에는 L의 모습이 담겨있으 며,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 당시 일어났던 사건을 넘어 L과 함께했던 모든 이들을 대표한다. 주인공이 L의 운동화를 소중하게 다루는 만큼, 김숨 역시 L을 조심스럽게 그려나간다. L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서 어렴풋이 서술되며, 담담한 서체는 독자에게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복원 작업을 상세하고 느리게 묘사하며 그 사이사이 주인공의 고민을 숨이 막히도록 빽빽하게 늘어놓는다. 그 과정과 고민들을 통해 L의 운동화가 지닌 무거움 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최소한의 복원을 할지, 레플리카 방식의 복원은 어떨지, 운동화 끈을 풀지 말지 고민하는 주인공을 보니 자연스럽게 잡지 편집 작업이 연상됐다. 작품에는 작가의 가치관이 담기기 마련이고, 작품을 설명하는 사진은 여러 가지 기법을 사용해 의도를 드러낸다. 활기찬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노출 시간을 늘려 사람들이 움직이며 남기는 궤적을 찍기고 하고, 밑에서 올려다보는 구도를 사용해 수목이나 구조물의 웅장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긴 수평선이 주는 안정감은 바닷가의 평화로운 풍경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된다. 이런 의도를 잘 파악해야 작품을 잘 소개할 수 있는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주인공은 운동화의 고무 밑창을 복원하기 위해 에폭시수지를 주입한 후, 이틀 내내 L의 운동화를 바라보기만 한다. 밑창이 딱딱하게 변하기를 기다리며 그저 운동화가 담긴 플라스틱 상자의 온도와 습도를 확인할 뿐이다. 잡지의 마감 기간, 교정부호 하나 없이 깨끗한 교정지를 눈앞에 둔 내 모습이 떠오른다. 꼼꼼히 살폈는데도 오타나 비문을 찾을 수 없을 때, 불안함에 원고를 더 샅샅이 뒤지게 된다. 한참을 들여다보면 모든 문장이 어색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오타는 꼭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툭 튀어나와 나를 민망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뭔가를 할 때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 서울역 7017 인포가든 미리 만나는 서울역 고가, 2016. 6. ~ 11.
    서울도서관 모퉁이의 보행 통로에 흰색 원통들이 등장했다. 원통 위에는 푸른 식물이 자라고 있고, 바닥은 회색 블록이 깔린 주변 보도와는 다르게 흰색 시멘트로 포장됐다. 주변과 확연히 구분되는 이 공간은 2017년 완공될 서울역 고가 보행길을 미리 체험할 수 있도록조성된 ‘서울역 7017 인포가든(이하 인포가든)’이다. 인포메이션과 가든의 합성어인 인포가든은 서울역 고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서울시가 조성한 작은 정원이다. 지난 6월 23일 서울시는 인포가든을 개방했고, 이를 기념하며 같은 달 26일까지 다양한 전시와 공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인포가든의 설계는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의 당선 작가인 비니 마스(MVRDV)가 맡아 진행했다. 218m2의 작은 보행 공간 위에 원통형의 전시 시설과 안내 시설, 식재 화분tree pot 열 개, 가로등 세 개가 설치됐는데, 이는 비니 마스의 서울역 고가 설계안 ‘서울수목원The Seoul Arboretum’의 핵심 요소들이다. 실제 서울역 고가에는 20개의 편의 시설과 684개의 식재 화분이 설치되어, 서울 곳곳을 연결하는 거대한 수목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직경 5m, 높이 3.5m의 원통형 전시 시설의 지붕에는 사계장미가 식재됐다. 벽면에는 커다란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특히 내부의 벽면이 붉은색으로 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이 시설에서는 서울역 고가의 역사와 미래를 체험할 수 있다. 중앙에 설치된 스마트 미디어 테이블에서는 서울역 일대의 변화와 서울역 고가가 완공된 모습을 3D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전시관 상부에 마련된 5개의 모니터에서는 서울역 고가를 공원으로 탈바꿈시키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과 서울역 고가 시민 개방 행사, 서울역 일대 스케치투어 영상 등이 상영된다. 이 밖에도 전시 시설 대각선 방향에 있는 안내 시설에서 프로젝트 관련 정보를 추가로 얻을 수 있다. 10개의 식재 화분에는 반송, 백송, 소나무, 잣나무, 사계장미, 팥배나무, 산사나무가 식재됐다. 이 화분은 일반형과 벤치형으로 나뉘는데, 지름이 1.7m 정도 되는 식재 화분에는 앉아서 쉬어갈 수 있는 목재 벤치가 설치됐다. 여러 나무와 서울도서관이 만들어내는 그늘이 더위에 지친 시민들에게 작은 피난처를 제공한다. 인포가든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주말, 공휴일에는 오전 10시 ~ 오후 7시)까지 운영되며, 월요일은 휴무다. 11월 말까지 운영한 후에는 실제 서울역 고가로 옮겨 활용할 계획이다. 현재 서울역 고가는 지난 5월 기존의 바닥판을 걷어낸 데에 이어 새로운 바닥 판을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10월 말이면 새로운 상판 포장 작업을 마무리하고, 내년 4월 시민에게 개방하는 것을 목표로 남은 공사를 진행할 것이다. 새롭게 태어날 서울역 고가는 어떤 모습일까? 인포가든 외에도 시민들의 참여와 관심을 모으기 위해 트리팟 기부 캠페인, 고가 만화 전시, 서울 드로잉 전시회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11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추후 서울역 7017 홈페이지(www.ss7017.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 2016 쇼몽 국제 정원 페스티벌 2016 Chaumont International Garden Festival
    고려에 망국의 빛이 드리워지고 조선 건국의 조짐이 보이던 혼란스러운 시기인 14세기 말 15세기 초, 유럽에서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핏빛이 가득한 전쟁이 한창이었다. 바로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백년전쟁이다.프랑스에서 가장 긴 루아르Loire 강변의 건물들이 요새 역할을 해준 덕분에 프랑스는 영국의 공격에도 버틸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 요새는 아름다운 루아르 강변을 바라보며 오랜 전쟁의 피로를 푸는 오락과 휴양의 장소로 거듭나게 되었다. 프랑스 서남쪽, 길이 200km의 강변을 따라 위치한 인구 2,000명의 작은 마을 쇼몽에는 매년 30만 명의 관람객들이 다녀간다. 세계 3대 정원 축제인 쇼몽 국제정원 페스티벌Chaumont International Garden Festival이 열리기 때문이다. 200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19개의 루아르 고성The Loire Valley between Sully-sur-Loire and Chalonnes 중 쇼몽 성Château-Chaumont에서는 1992년부터 쇼몽 국제 정원 페스티벌이 개최되고 있다. 올해로 25주년을 맞은 이 축제에서는 작가의 개성이 담긴 정원뿐만 아니라 고성 곳곳에 전시된 예술 사진, 설치 예술 작품을 즐길 수 있다. 축제는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열리며 올해는 한국 설치미술가 이배의 작품과 한국과 프랑스 작가의 합작품인 ‘대단원을 위한 정원Le Jardin du Dernier Acte’, 2015년 조성된 ‘한국 정원Le Jardin Coréen’등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기라도 하는 듯 한국의 색채를 축제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다가올 세기의 정원 쇼몽 국제 정원 페스티벌은 매년 독특한 주제로 진행된다. 올해의 주제는 ‘다가올 세기의 정원Gardens from the coming century’으로 미래의 정원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프랑스에서 개최한 축제이니만큼 프랑스 작가의 참여율이 높지만, 국제 정원 페스티벌의 명성에 걸맞게 러시아, 이탈리아, 영국, 스위스, 미국, 벨기에, 캐나다, 한국 등 다양한 나라의 작가가 출전했다. 매년 300~400개의 출품작이 등록되고 그 중 25개 내외의 작품만이 실제 정원으로 구현된다. 이 축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특별한 자부심을 갖는 데, 축제를 준비하는 조직 그리고 작가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와 관람객의 분위기가 여느 정원박람회와 다르기 때문이다. 진행위원회는 산업의 진흥을 위해 여러 물품을 모아 놓고 판매·선전하는 박람회와 구별되도록 작품 조성 의도를 부각시키고 관람객의 집중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정원을 하나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이 관람하는 방문객의 모습은 쇼몽 국제 정원 페스티벌을 세계 조경가가 참여하고 싶은 3대 정원 축제로 만든 힘이다. 다가올 세기, 미래의 정원은 어떤 모습일까? 2016 쇼몽 국제 정원 페스티벌에서 각기 다른관점으로 표현된 24개의 작품을 통해 미래의 정원을 만나볼 수 있다. 케 비에네 라 플뤼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는 지구의 환경을 걱정하는 관점에서 표현한 ‘케 비에네 라 플뤼Que Vienne la Pluie’는 미얀마의 인레Inlé 강에서 영감을 얻어조성됐다. 마치 거대한 맹그로브mangrove 아래에 생긴 터널에 휴식 공간이 마련된 것처럼 보인다. 이 정원은 하나의 실험장으로, 자연이 인간의 통제 아래에 있지 않으며 인간이 자연 안에서 자유로이 서로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올해 쇼몽 국제 정원페스티벌에서 창작상Le prix de la Création을 수상하였다. 익스플로시브 네이처 미래의 환경이 아무리 척박해져도 자연은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을 찾아 적응해나갈 것이다. ‘익스플로시브네이처Explosive Nature’의 거대한 구조물 틈새 사이사이에는 씨앗 폭탄Seed Bombs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식물이 자라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환경을 스스로 찾아내고, 그 환경이 조성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요소로 표현됐다. 인간의 힘이 아닌 자연 스스로의 힘으로 정원이 조성되는 모습을 통해 자연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정원으로 디자인 및 혁신적인 아이디어상Design et idées novatrices을 수상하였다. 대단원을 위한 정원 안지성 작가가 참가한 한-프 합작팀의 ‘대단원을 위한 정원’은 트랑스포자블상Le prix du Jardin transposable을 수상하였다. 이 작품은 자연이 거의 남지 않은 2250년에 고가로 소비되는 제품이 된 자연을 느끼기 위해 극장을 찾아야만 하는 미래를 보여준다. 이밖에도 같은 트랑스포자블상을 수상한 ‘누 아이언스 투 오 자르댕Nous Irons tous au Jardin’과 식물의 색채 및 조화상 Palette et harmonie végétales을 수상한 ‘르 자르댕 데 에멜장스Le Jardin des Emergences’를 선보였다. 몇 백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 정원박람회가 세계 곳곳에서 열리지만, 3.5헥타르의 공간에 24개의 정원이 조성된 쇼몽 국제 정원 페스티벌이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정원 축제가 된 이유는 정원을 조성하는 작가의 철학과 개념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정원을 단순히 휴식을 제공하는 공간,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공간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다룬다. 또한 작가의 철학과 주제에 대한 개념이 한정된 공간 안에서 어떻게 물리적으로 표현되는지에 주목한다. 매년 사회적인 이슈 혹은 즐거움, 원죄와 같이 철학적인 주제를 선정해 정원으로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를 생각하고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에 전 세계 조경가의 꿈의 무대가 될 수 있었다. 올 여름 프랑스 파리 혹은 유럽으로 휴가를 계획하고 있다면 쇼몽 국제 정원 페스티벌에 한번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왕이면 쇼몽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도록 여유롭게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매년 밤 10시부터 자정까지 ‘빛의 정원’이라는 이름의 저녁 축제가 열리는 데, 올해도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 난민과 홈리스의 시대, 도시와 건축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New Shelters: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 & ‘홈리스의 도시’ 전
    전 세계는 지금 난민과 홈리스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프랑스 니스의 트럭 테러, 브렉시트, 반이민 정책을 구호로 외치는 정치인의 지지율 상승 등 최근 화제가 된 이슈들은 난민이나 이주민을 둘러싼 갈등과 관계가 깊다. 비단 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누적 난민 신청자는 1만 5천여 명이지만, 난민 자격을 인정받은 사람은 580여 명 정도로 단 4%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편 모국에서 일명 ‘난민’이 된 사람들도 있다. ‘전세난민’, ‘취업 난민’, 심지어는 ‘연애 난민’까지. 타국에서 새로운 신분으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주민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이제 ‘난민’이란 단어는 평범한 지위와 경제적 안정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일반 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과 경제 불황은 평범한 사람들을 홈리스로, 난민으로 내몰고 있다. 난민과 홈리스의 시대, 도시와 건축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지난 7월 8일부터 8월 7일까지 아르코미술관에서 선보이는 두 개의 전시, ‘New Shelters: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과 ‘홈리스의 도시’는 우리 앞에 던져진 질문에 도전한다. 물리적인 보호를 넘어 인식의 전환으로 아르코미술관 1층에서 선보이는 ‘New Shelters: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은 국내 난민의 열악한 현실을 고발하고 이러한 현실이 일부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돌보아야 할 공통의 문제임을 환기한다. 정림건축문화재단이 기획하고 주관한 이번 전시는 ‘건축적 제안들’이란 부제를 달고 있지만, 난민을 위한 물리적인 보호소나 쉘터를 단순히 디자인하는 작업보다는 영상, 아카이브, 사진, 일러스트 등 난민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는 폭넓은 작업을 선보인다. 한 예로, 건축팀 에스오에이는 문화인류학자 김현미 교수(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와 협업해 농촌 지역 여성 이주자들의 주거 실상에 대해 연구하고 새로운 거주 형태를 제시하는 ‘다시-정착’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제대로 된 거주 공간이 아니라 농장 옆에 가설 구조로 지어놓은 비닐하우스에서 공동으로 생활하는 이주자들의 거주 환경을 사진과 맵핑으로 소개하고 이들을 위한 새로운 공동 주택 유형으로 농산물 간이 집하장을 변형시키는 안을 제시했다. 건축가 인터뷰 영상에서 강예린 공동 소장은 “이주자는 새로운 삶과 기회를 찾아서 이주를 실행할 만큼 모험심이 강한 사람들”이라며 이주민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들을 동정하거나 불쌍한 시선으로 대하는 것은 또 하나의 차별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건축가 집단 레어 콜렉티브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와 함께 ‘마음 한쪽 마당 한쪽 내어주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참여 의사가 있는 지역 주민의 집 마당 한 구석에 설치할 수 있는 유기 동물 임시 대피소를 프로토타입의 설치물로 선보였다. 우리 사회에서 난민 문제는 무관심 속에 버려지고 사람들이 혐오하기까지 하는 유기 동물의 상황과 유사할 지도 모른다는 은유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레어 콜렉티브는 일상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유기 동물의 문제를 다루면서 내 삶과는 동떨어진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난민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도록 했다. 이번 전시의 디렉터를 맡은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이사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해 우리 사회의 ‘난민’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들을 우리 사회로 아우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홈리스의 삶 ‘New Shelters: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이 난민문제에 대한 공론화와 대안을 건축적인 방법으로 제시했다면, 아르코 미술관 2층에서 선보이는 ‘홈리스의 도시’는 현대 도시의 주거 문제와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할 기본적인 생활 조건 등의 문제를 파고든다. 10여 개국 16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아시아 대도시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21세기형 난민의 삶과 그 배경에 대해 영상, 사진, 설치 등의 작업으로 풀어냈다. 전시를 기획한 목홍균 독립큐레이터는 홈리스의 시선에서 도시의 거주 문제를 주목했다. 그는 “UN은 홈리스를 집이 없거나 옥외 또는 여인숙에서 잠을 자는 사람, 집이 있지만 UN의 기준에 충족되지 않는 집에서 사는 사람, 안정된 거주권과 직업, 교육, 건강관리가 충족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홈home’의 첫 번째 사전적 의미는 ‘(특히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다. 집은 물리적인 공간일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공간이며 고향이다. 따라서 ‘홈리스’는 ‘노숙자’만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며 현대 도시에서 살아가는 누구나 다양한 이유로 홈리스의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에게 구타당해 집을 떠난 여자(조영주, ‘가정상실’, 혼합매체, 2016),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시의 개발이 중단된 고층 빌딩에 슬럼을 이룬 빈민들(U-TT, ‘토레 다비드’, 영상, 20분, 2013), 1950년대에 지어진 베이징 아파트의 지하 벙커에 거주하는 도시인들(심치인, ‘쥐종족’, 영상설치, 10분, 2010~2015), 일제강점기, 한국 전쟁 등 일련의 비극을 겪으며 고향을 떠나게 된 사람(김혜민, ‘옛날 옛적에 판문점’, 싱글채널 비디오, 47분, 2013) 등 전시에서는 도시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홈리스가 등장한다.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현대 도시의 홈리스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의 도시는 홈리스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도시의 홈리스에게 과연 희망이 있는가’란 질문이 떠오른다. “도시는 지구에서 가장 무정하고 인공적인 장소다. 그 궁극의 해법은 도시를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도시를 떠남으로서 도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도살장의 고기 운송 방식에 착안해 획기적인 대량 생산 시스템을 도입한 헨리 포드의 말이다. 그의 절망적인 인식처럼 도시를 버리고 떠나는 것만이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일까? 어떤 작가는 풍자적으로, 어떤 작가는 시니컬하게 ‘홈리스의 도시’를 해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6명의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현대의 도시가 잃어버린 ‘홈’의 인간적인 정서를 그리워한다. 레고 블록을 이용해 관객 참여를 유도하는 진행형 설치 작품인 ‘함께 만드는집’(문재원, 레고 설치, 2016)이 어두운 분위기의 전시물로 구성된 ‘홈리스의 도시’ 전에서 유일하게 화려하고 유쾌한 작품이었다는 점은 무정하고 인공적인 홈리스의 도시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공동체’와 ‘공감’의 가치를 믿고 기대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난민과 홈리스의 시대, 우리에게 던져진 거대한 도전에 이번 두 전시는 소박한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 소박한 답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지난 7월 15일, ‘New Shelters: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 전시와 연계한 난민 포럼에서 인권학자 조효제 교수(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는 “난민에 대한 배척과 혐오가 점점 심해지는 오늘날, 사회운동가나 인권단체가 아닌 건축계와 예술계에서 난민의 인권에 대한 전시를 기획한 시도 자체가 새롭고 의미 있는 것”이라며 이번 전시의 의의를 강조했다.
  •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로테르담 건축 비엔날레, 대안 경제를 논하다 2016 로테르담 건축 비엔날레 ‘넥스트 이코노미’
    세계적인 현대 건축물로 유명한 도시 로테르담에서는 2003년부터 로테르담 건축 비엔날레IABR(International Architecture Biennale Rotterdam)가 개최되고 있다. 올해의 주제는 ‘넥스트 이코노미Next Economy’로, 로테르담 항구 산업 지구인 카텐드레흐트Katendrecht에서 4월 23일부터 7월 10일까지 열렸다. 전 지구적으로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각 도시마다 분투하고 있는 상황에서 건축 비엔날레가 제안하는 ‘다음번 경제’는 무엇인가? 다가올 미래 경제에 대한 건축적 비전과 가능성을 로테르담 건축비엔날레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로테르담, 폐허에서 대안적 도시 모델로 세계적인 현대 건축물과 도시 환경의 혁신적 모델로 손꼽히는 도시 로테르담. 이 도시는 어떻게 현대 건축의 실험적 무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네덜란드의 대표적 항구도시로 유서 깊은 건축물이 가득했던 로테르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도시전체가 파괴된 비극적 역사가 있다. 전후 폐허가 된 도시에서 시작된 로테르담의 건축적 실험은 ‘살 수 있는 도시’로 재건해야만 했던 도시계획적 관점에 의한다. 2003년부터 개최된 로테르담 건축 비엔날레는 건축의 역할을 건축 미학에서 벗어나 도시 공간과 도시 환경 안에서 모색해 왔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건축 행사다 보니 IABR의 건축적 제안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IABR가 6회에 걸쳐 탐색해온 주제는 2003년 모빌리티Mobility, 2005년 홍수The Flood, 2007년 권력Power, 2009년 오픈 시티Open City, 2012년 도시 만들기Making City, 2014년 자연에 의한 도시Urban by Nature 등으로 심상치 않다. 매해 정치, 사회, 경제적 관계에서 도시 공간, 도시 환경, 도시계획을 분석하고, 이로부터 모색 가능한 건축의 역할을 현실 사회에 끊임없이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을 통해 도시적 삶을 재건한 지극히 로테르담적인 도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IABR이 접근하는 도시 경제란? 특히 지난 2014년 ‘자연에 의한 도시’에서 IABR은 오늘날 도시 개발의 환경 파괴를 염려하며 환경, 자원, 에너지에 주목한 건축적 방안을 논의했다. 이는 마치 올해의 주제 ‘넥스트 이코노미’와 상반된 주제처럼 보일 수 있다. 도시 경제란 최근 전 세계 도시마다 내세우는 ‘창조도시론’이 추구하는 경제적 효과와 관련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IABR에서 이러한 개발 지향적 도시 제안을 구상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다음번 경제에 접근하고자 하는 건축 비엔날레의 목적은 자본화된 도시 발전을 비판하고, 도시에서 지속가능한 다른 경제적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접근은 지난 회 ‘자연에 의한 도시’의 연장선상에서 심화된 것이다. 올해 IABR은 지난 비엔날레에서 탐색했던 자연과 공생하는 도시적 삶, 전 지구적으로 개선해야 할 대안 에너지 등에 대한 논제로부터 대안 경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건축은 발생부터 자본에 민감한 분야다. 도시 발전, 경제 성장과 뗄 수 없는 분야이기에 건축이 ‘경제’를 논의한다는 것은 자기비판적인 모순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오해의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IABR의 대안 경제적 관점은 과감하고 대담하다. 올해의 비엔날레는 오늘날 무차별적인 도시 성장이 초래한 도시 문제와 불균형에 대한 비판적 자기성찰부터 시작한다. 글로벌 도시들이 직면한 도시 성장의 폐해로부터 벗어날 어떠한 대안적 경제를 기대해 볼 수 있을까? 전시의 시작, ‘첨단도시론’에 대한 비판 “테크놀로지는 답이다. 그런데 질문이 무엇이었나”(Cedric Price, 1966) 본격적으로 전시장에 진입하기 전 벽면에 쓰인 이 글귀는 오늘날 첨단 기술 사회에 대한 비평적 견해를 전한다. 글귀가 적힌 벽면 앞에서 관객들은 3D 안경을 쓰고 미래 도시를 탐험하게 되는데, 가상현실은 놀라운 기술적 재현으로 현재를 투영할 뿐이다. 첨단 기술에 갇힌 사회,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다. 신체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스마트 폰마냥 첨단 기술은 현재의 시간 속에 있다. 테크놀로지가 선도할 줄 알았던 미래 도시에 대한 전망은 기술을 사용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불투명해진 모습이다. 첨단 기술을 몸에 착용한 우리는 여전히 어떠한 미래가 다가올지 예측할 수 없다. 점점 더 확실해지는 것은 도시 성장이 초래한 불평등 문제와 전 지구적인 기후 변화, 이민자와 난민 문제, 슬럼 등 도시 문제의 증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비엔날레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도시 성장에서 소외된 지역과 도시 개발에서 추방된 로컬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건축 디자인을 통해 지지하고 경제적으로도 지속가능한 모델을 제안하는 것이다.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도시 관련 비평을 쓰고 있다.‘신지도제작자’(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2014) 등 현대 미술과 도시 연구를 매개한전시 기획을 해왔으며, 도시 개입 프로젝트 ‘마이크로시티랩’(2016)을 선보일 예정이다.2016년 난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 [시네마 스케이프] 트립 투 잉글랜드 여행의 일기
    6월 20일 영국 여행을 며칠 앞두고 작년에 개봉했던 ‘트립 투 잉글랜드’를 다시 봤다. 두 남자가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여행하는 영화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같은 감독의 이전 개봉작인 ‘트립 투 이탈리아’에 비해 덜 재미있다고 느꼈다. 영화는 고층 아파트의 통유리로 보이는 런던 시내를 스케치하며 시작한다. 배우인 스티브(스티브 쿠건 분)가 창가에서 친구 롭(롭 브라이든 분)에게 전화한다. 잡지사 청탁으로 가게 된 유명 레스토랑 탐방 여행에 함께 갈 수 있냐고 묻는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단순한 형식의 영화다. 사륜 자동차로 이동하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잔다. 그리고 수다를 떤다. 유명 셰프의 음식이 등장하지만 정작 그들은 음식에 대해서는 별로 대화하지 않는다. 누가 더 성대모사를 실감나게 하는지 티격태격하면서 가족, 죽음, 미래와 같은 무거운 주제를 농담처럼 주고받는다. 스티브는 워즈워드의 고향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폭풍의 언덕』의 배경인 거친 들판에서도 풍경을 감상하기보다는 아들이나 여자친구, 에이전트와 통화하는 데 더 주력한다. 전처와 아들이 잘 지내는지, 당분간 시간을 갖자는 여자 친구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그가 원하는 예술 영화에 출연하게 될 건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더 절실하다. 다시 보니 처음 볼 때 보이지 않던 영국 북부의 겨울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들의 시시한 대화 속에 숨겨진 속마음이 들린다. 긴 여행에 대한 우려가 조금씩 기대로 바뀐다. 6월 26일 1866년에 지은 브라이튼 해변의 웨스트 피어는 2003년에 화재로 손실되어 앙상한 철골만 남아 있다. 10년 넘도록 뼈다귀만 남은 잔재를 그대로 둔 것과 138m 높이의 얇은 기둥과 원형 전망대를 새로운 랜드마크로 건설 중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쥬빌리 공원의 모티브가 된 순백의 절벽, 세븐 시스터즈. 과연 영화 ‘나우 이즈 굿’에서 남자 친구가 시한부 여자 친구를 위해 선사할 만한 풍경이다. 더 놀라운 건 70m의 백악질 수직 벽이 파도에 계속 부서지고 수많은 관광객이 절벽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는데도 안전 난간 하나 없다는 점이다. 그 흔한 안내판도, 말끔하게 포장된 보도도 없다. 이 나라 공무원은 게으른 걸까. 간이 큰 걸까.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메디치가의 정원들
    #90 피에솔레 정원이 과연 이탈리아 르네상스 초기 정원의원형이었을까? 니콜로 니콜리NiccolòNiccoli(1364~1437)라는 사람이 있었다. 본래 피렌체 대상의 자손으로 태어나 가업을 물려받았으나 고대 문학에 심취하여 전 재산을 고서적 수집하는 데 탕진했다. 고서적 수집에 방해된다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니 마니아 수준도 훨씬 넘어섰던 것 같다.1 물론 고서적을 수집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이를 번역하고 정성스레 필사하여 복사본을 뜨고 주석을 달았다. 고서적 수집은 14세기 후반부터 이탈리아, 특히 피렌체의 ‘인문주의자humanist’라면 누구나 앓았던 열병이었다. 인문주의자, 즉 휴머니스트라는 용어 자체가 고서적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이 있는데 르네상스의 휴머니스트는 지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휴머니스트와는 뜻이 좀 다르다. 일찍이 키케로 등 고대 사상가들이 설명한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2 ‘후마니타스’의 요점은 ‘인간됨’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이다. 인간은 전지전능한 신의 창조물이므로 인간됨이란 곧 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기독교 교리와는 전혀 다른 관점, 즉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됨을 정의했던 키케로 등의 고대 사상은 충격이었으며 교리의 굴레로부터의 해방을 뜻했다. 기원전 1세기를 살았던 키케로의 명성은 꾸준히 이어져 내려왔지만 시인 페트라르카가 그를 다시 유명하게 만들었다. 1345년 베로나의 대성당 도서관에서 키케로의 친필 서신 수백 점을 발견하면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온 듯하다. 너도나도 혈안이 되어 고대 시인들과 사상가들의 책을 찾아다녔다.3 대학에 그전에 없었던 언어학, 수사학, 문학, 윤리학 등의 과목을 새로 개설하고 이를 인문학studia humanitatis이라고 칭했으며 이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들을 일컬어 ‘후마니스타humanista(humanist)’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휴머니스트는 곧 인문학 교수라는 뜻이었는데, 나중에는 꼭 교수가 아니더라도 인문학에 심취한 사람들을 모두 휴머니스트라고 했으므로 피렌체는 휴머니스트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자유로워진 정신으로 바라보니 사람과 세상이 아름다웠고 새로운 자유는 엄청난 창의력의 원천이 되었다. “천년간 갇혀있던 아름다운 정신이 이렇게 활짝 피어나는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 한다”4고 말하며 사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러나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듀런트는 “문화의 뿌리는 경제력이다. 상인, 금융인과 교회가 돈을 벌어 그것으고서적들을 수집해 고대를 되살아나게 할 수 있었다”라고 시원하게 지적한 바 있다.5 아닌 게 아니라 니콜로 니콜리가 재산을 다 쓰고 빈털터리가 되자 그의 친구였던 코시모 메디치가 자신의 은행에 무한도의 계좌를 만들어 주었다. 옛날 알렉산드리아와 같은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던 니콜리가 평생 수집하여 남긴 필사본은 모두 800점이었고 남긴 빚 또한 산더미였다. 그는 제발 이 서적들이 사방으로 팔려나가지 않도록 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그러자 시에서 니콜리 채무 위원회를 조직했고 다시 코시모가 나섰다.그의 빚을 다 갚아줄 테니 그 대신 고서적을 모두 자기한테 넘기라는 조건을 걸었다. 그중 200점은 자신이 소장하고 나머지는 산마르코 수도원 도서관에 보관하여 대중에게 공개했다. 이것이 현재 피렌체 메디치아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의 시작이 되었다.인문주의자들은 고서적 수집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고대 조각상도 수집하기 시작했다. 니콜리에게 포조 브라촐리니Poggio Bracchiolini라는 절친한 후배가 있었다. 그 역시 고서적 수집가이자 인문주의자였다. 말년을 시골에서 조용히 보내려고 근교에 빌라를 하나 샀다. 그런데 정원을 만들려고 땅을 파니 고대 대리석 조각상들이 나왔다. 문득 키케로가 묘사한 고대 빌라의 조각 정원이 생각나 정원에 세워두었더니 그 소문을 듣고 인근의 농부들이 조각상들을 주섬주섬 들고 나타났다.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는 땅만 파면 대리석 조각상들이 나타났다는데, 그때까지는 이를 구워서 석회로 만들어 쓰거나 깨서 건축 소재로 쓰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점잖은 학자가 정원에 세워놓는 것을 보고 혹시 돈이 될까 하여 팔러 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브라촐리니의 조각 수집이 시작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친구들도 따라 했고 코시모는 이때도 편리한 방법을 썼다. 니콜리와 브라촐리니의 조각 수집품도 모두 사들인 것이다. 이것이 메디치 가문의 유명한 고대 조각 컬렉션의 시작이 되었다. 이 시기에 코시모는 피렌체 근교에 네 개의 빌라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중 세 개는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넓은 포도밭, 올리브 밭, 경작지와 숲이 딸려있어 가족들의 먹거리, 마실 거리를 직접 생산했다. 나머지 하나는 그의 말년, 1451년경에 둘째 아들 조반니에게 주기 위해 산 것이다. 피에솔레Fiesole라는 도시의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중세의 작은 성을 하나 사서 주고 마음에 맞게 고쳐 지으라고 했다. 여기엔 농장이 딸려있지 않았다. 구세대의 코시모에게 시골 별장은 ‘농사도 짓는 곳’이라는 인식이 깊이 각인되어 있었으나 그의 아들 세대에서는 이미 개념이 달라진 듯했다. 인문학에 심취한 아들은 오로지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함께 토론하고 곡을 연주하며 소일했다. 아버지와는 달리 포도나무 접붙이기 등의 농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아름다운 레몬 나무와 붉은 꽃을 보고자 했다. 공기 좋은 피에 솔레는 이런 허약한 책벌레 아들이 지내기에 맞춤한 곳이었다. 미켈레초Michelezzo 8라는 건축가에게 의뢰하여 구식의 성을 철거하고 신개념의 빌라를 지어달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 정사각형의 단정한 건축에 삼단의 테라스 정원이 나왔다. 바로 이 빌라와 정원으로 인해 ‘초기 르네상스 빌라 건축과 정원의 원형’이 탄생했다고들 한다.9 그러나 여기 문제가 좀 있다. 건축은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므로 신개념의 디자인이었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정원은 20세기 초에 신르네상스 개념으로 복원한 것이어서 조반니 시대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알 길이 없다. 삼단 테라스 외에는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므로 ‘르네상스 정원의 원형’이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그러나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기는 하다. 제일 상층 테라스에 보면 낮은 장식벽 일부가 남아있다. 이 장식벽 양쪽에 기둥이 서 있고 그 위에 로마의 흉상들이 올라앉아 있다. 벽의 모자이크 문양도 옛 로마의 것을 그대로 닮았다. 공사가 한창이던 1453년 조반니가 로마에 있는 친구로부터 옛 황제들의 흉상 열두 점을 구해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이 흉상들을 담장이나 옹벽에 배치해 두면 멋질 것 같지 않느냐고 묻는 편지도 전해진다.10 이런 정황으로 보아 조반니는 아마도 그가 흠모해 마지않았던 키케로나 플리니우스 등 먼 선조들의 빌라 정원을 재현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 정원의 주인공은 레몬 나무도, 붉은 꽃도 아닌 선조들의 흉상이었다. 이는 우리가 전통 정원을 짓고 꽃담을 세우고 문인석과 무인석을 구해 세워놓는 것과 같은 욕구였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정원은 이렇게 책에서만 접한 선조들의 정원을 재구성하면서 시작되었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고정희[email protected] /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 2016년08월 / 340
  • [리질리언스 읽기 3] 새로운 사고의 틀, 리질리언스 사고
    리질리언스 사고에서 해답을 찾다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은 3.5m의 거대한 크기와 20톤의 엄청난 무게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석상에 숨어있는 기이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몰려들었다. AD 800년경 이스터 섬에 정착한 원주민은 비옥한 토양, 다양한 포유류와 조류가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 야자나무로 이루어진 넓은 숲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숲을 태워 화전 농업을 하고 야자나무를 베어 카누를 제작했다. 부와 권력의 상징인 넓은 정원과 석상을 만들었다. 15세기에 이르자 이스터 섬의 모든 생물체가 멸종했고, 살아남은 인간은 생존을 위해 식육을 자행할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섬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이스터 섬 같은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보르네오 섬은 야자나무의 한 종류인 팜나무가 풍부한 지역이다. 탄소배출권거래제와 산림탄소상쇄제도의 시행으로 바이오디젤의 원료인 팜나무의 열매가 각광받고 있다. 또한 화석 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팜유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말레이시아 정부와 플랜테이션 기업은 늘어난 팜유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탄 습지림1을 불태워 팜나무 농장을 조성 중이며, 열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다량의 비료와 살충제를 사용하고 있다. 이같은 과도한 팜나무 플랜테이션은 주변 생태계와 지역 사회를 붕괴시킬 뿐만 아니라, 팜유 1톤을 생산하기 위해 석유 1톤을 사용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양의 10배를 배출하는 모순적인 상황까지 연출하고 있다. 두 사례의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은 생태적 문제가 모두 그 지역의 사회 경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자연은 인간이 없는 아름다운 미지의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은 인간과 공존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사회생태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생태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을 관계자actor라 한다. 이스터 섬의 경우 원주민, 보르네오 섬의 경우 말레이시아 정부, 플랜테이션 기업 그리고지역 주민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단선적 안목으로 자연 자원을 착취하여 생산량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으나, 그들이 속한 사회생태시스템의 특성인 문턱threshold, 체제regime, 적응 주기adaptive cycle를 알지 못했다. 사회생태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관계자의 자연 자원 관리는 이스터 섬의 열대 우림을 초지와 모래밭으로, 보르네오 섬의 이탄 습지림을 팜나무 농장으로 변하게 하는 체제 변환regime shift을 야기했다. 특히 보르네오 섬의 경우 지역 스케일의 생태적 문제인 이산화탄소 대량 발생과 더 큰 스케일의 생태적 문제인 기후 변화가 파나키panarchy라는 개념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생태적 문제의 다변화 및 대형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두 시스템의 관계자는 어떻게 사회생태시스템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사고에서 해답을 찾고자 한다. 리질리언스 사고의 틀, 사회생태시스템 리질리언스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사회생태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회생태시스템이란 사회 시스템과 생태 시스템으로 구성된 하나의 통합 시스템을 말한다. 이는 경제학자와 사회학자 그리고 과학자가 문제를 세분화하여 각자의 대안을 찾는 환원주의와 정반대의 개념이다. 사회생태시스템은 문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모여 전체 시스템의 해결책을 도출하는 전일주의 개념이다. 다양한 문제를 사회생태시스템에 대입하여 이해하면 그 문제들의 특별한 의미와 새로운 대안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사회에 큰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사회생태시스템의 구성 요소인 사회 시스템과 생태 시스템은 다양한 스케일로 구분된다. 생태 시스템은 생태계 서비스를 사회 시스템에게 제공한다. 반면 사회 시스템은 생태 시스템의 자원을 이용하거나 토지 이용을 변경시키지만, 동시에 생태 시스템을 보전하기도 한다. 두 시스템의 연결 고리가 얼마나 긴밀한지, 연결 고리를 통해 자원들이 얼마나 원활하게 순환하는지에 따라 외부 교란에 대한 사회생태시스템의 리질리언스가 결정된다. 사회생태시스템은 스케일-도메인 매트릭스로 표현할 수 있다. 스케일은 ‘소규모-중규모-대규모’로 구성된다. ‘주요 스케일’을 중규모로 설정하여 사회생태시스템의 경계가 규정된다. 도메인은 ‘사회적-경제적-생태적’으로 구성되며, 각 도메인은 스케일을 넘나들며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대규모 스케일의 변화와 각 도메인의 연결 고리를 감지하기 어려운 동물이기에 장기간의 안목이 필요한 정책이나 대안을 세우기 어렵다. 따라서 사회생태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리질리언스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개념이 필요하며, 이 개념들이 머릿속에서 구체화되어야 한다. 첫째, 인간은 사회생태시스템 속에 존재한다. 과거의 이스터 섬이든, 현재의 보르네오 섬 혹은 서울 한복판이든 간에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곳의 생태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 시스템 혹은 생태 시스템이 변한다면 다른 시스템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일부 시스템을 따로 떼어놓고 해석한다면 사회생태시스템의 전체적인 행태와 구조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 둘째, 사회생태시스템은 복잡계다. 사회 시스템과 생태 시스템을 잇는 연결 고리는 매우 복잡해서 어떤 교란이 일어났을 때, 전체 시스템이 언제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또한 최적의 평형 상태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두 개 이상 존재한다. 따라서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억측에 불과하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로렌츠Edward Norton Lorenz의 주장은 이와 일맥상통한다. 기상학뿐만 아니라 경제학, 생태학 등 모든 분야에서 불확실성을 복잡계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으로 활용하고 있다. 셋째, 사회생태시스템의 속성인 리질리언스는 지속가능성의 핵심 개념이다. 리질리언스란 변화를 흡수할 수 있는 시스템의 능력이다. 리질리언스가 높은 사회생태시스템은 외부 교란과 직면했을 때 바람직하지 않은 시스템으로 변환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교란을 회피할 수 있는 사회생태시스템의 능력과 재화 및 서비스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 리질리언스가 꼭 사회생태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태풍, 쓰나미, 부동산침체 등과 같은 위기를 잘 관리해 인간 사회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려면 리질리언스가 필요하다. 전진형은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습지생태계 조성과 생태환경회복기술 개발,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활용한 도시 내 저탄소 경관 디자인 요소 개발 및 야생생물 군집 변화 모델링등 생태계 복원 및 설계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생태학적 이론과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한 다양한 디자인 시뮬레이션을통해 설계 단계부터 시공 후까지 생태계 변화를 예측하여 대상지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 생태적 조경 설계와 유지관리 방안을 연구하고 교육하고있다. 최근에는 생태환경의 보존과 인간의 이용 및 개발의 조화라는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을 통한 생태회복성(eco-resilience)에관심을 갖고 이를 조경 분야에서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 전진형[email protected] /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부 교수 / 2016년08월 / 340
  • [조경의 경제학] 공원 공급의 효율성과 형평성
    경제학자가 좇는 두 마리 토끼, 효율과 형평 철학자가 진리를 추구하듯 경제학자도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 바로 효율efficiency과 형평equity이다. 경제학은 세상의 자원이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하여 탄생한 학문이다. 따라서 경제학자의 관심사는 부족한 자원으로 무엇을 생산하고,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누가 사용할 것인가에 쏠려있다. 그들은 전자를 자원 배분allocation of resources의 문제, 후자를 소득 분배distribution of income의 문제라고 부른다. 물론 효율성은 자원 배분과, 형평성은 소득 분배와 관련이 깊다.1 문제는 효율적인 상태가 항상 형평성 또한 달성된 상태인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아니 그보다는 이 두 가지 가치가 동시에 달성된 상태를 우리가 본 적이 없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효율과 형평은 제각기 날뛰는 두 마리의 토끼와 같다. 주류 경제학은 시장기구가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실제로는 시장을 둘러싼 조건이 이를 허용하지 않거나, 재화나 서비스의 특성이 이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게도 공원과 같은 공공재가 그렇다. 정부는 시장실패를 해결하기 위해서 직접 공원의 공급에 나선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공원의 적정량을 찾아내는 것부터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지난 두 차례의 연재를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전문가에 의한 비용편익분석이나 시민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는 시장기구를 대신하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력한 접근방법이지만, 공원의 적정량에 대해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 효율성에 더하여 형평성까지 고려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형평성은 애초부터 시장기구에 의해 달성되기 어려운 가치기 때문이다. 그러니 효율성과 형평성을 모두 고려한 공원의 적정량을 찾아내는 일이 쉬울 리 없다. 한정된 땅에 공원을 얼마나 만들고 주차장을 얼마나 만들지 고민하는 중이라고 하자. 경제학에서는 효율성에 대해서 생산의 효율성과 교환의 효율성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한다. 생산의 효율성이란 우리 사회가 보유한 자원으로 공원과 주차장을 각각 얼마나 생산할지 따지는 것이다. 효율성의 달성 여부는 동일한 자원을 투입하여 지금보다 공원이나 주차장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지 여부를 통해 판단한다. 반면 교환의 효율성이란 공원과 주차장으로부터 사람들이느끼는 효용의 크기를 따지는 것이다. 효율성의 달성 여부는 어떤 사람의 효용을 희생시키지 않고 다른 사람의 효용을 증가시킬 수 있는지 여부를 통해 판단한다.3 이 두 가지 측면의 효율성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야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물론 실제로는 이렇게 조화를 이룬 상태에 도달하기 어렵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이렇게 조화를 이룬 상태가 매우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많은 효율적인 상태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 하나를 골라야 한다.4 여기서 가치, 또는 선호 체계의 문제가 개입한다. 각 개인이 느끼는 효용의 크기를 조합하여 사회 전체적인 후생의 크기를 도출하기 위해 경제학에서는 ‘사회후생함수’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이 사회후생함수의 모양이 그 사회가 가진 가치 또는 선호 체계를 반영한다.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끌어낸 계몽사상은 공리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공리주의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식에서도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공리주의의 사회후생함수를 수식으로 나타내면 <식 1>과 같다. 사회 전체적인 후생의 크기 SWSocial Welfare는 각 개인(A, B, …)이 느끼는 효용utility의 크기를 단순히 합한 것이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어떤 선택에 의해서 SW가 커진다면 우리는 옳은 판단을 한 것이다. 여기서 각 개인 간 형평성은 고려될 여지가 없다. 이에 반해 공리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공정으로서의 정의 justice as fairness를 주장한 롤스John Rawls는 그의 저서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에서 <식 2>와 같은 사회후생함수를 제시하였다. 여기서 SW는 각 개인이 느끼는 효용 중 가장 작은 값minimum이다. 효용의 수준이 가장 낮은 개인이 관심의 대상인 롤스의 모형에서는 사회적 최약자의 효용이 개선되지 않는 한 사회 전체적인 후생 또한 증가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실제로 어느 사회의 가치 또는 선호 체계는 이 두 함수 사이 어디엔가 존재할 것이다. 문제는 이를 파악하는 것이 효율적인 상태를 찾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 정도 했으면 사적 재화와 같이 시장기구가 작동하지 않는 공공재에 대해서 그 적정량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더 이상 말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의 목적이 단지 그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공원을 계획하는 관행을 한번 되돌아보는 데 있다. 현실적으로 도시계획상 공원의 면적은 원단위를 통해 결정된다. 원단위는 아마도 사람이 살기에 좋다고 평가되는 여러 도시들의 사례를 통해 도출된 것이라 생각된다.5 그런데 공공재에 대한 앞의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적정량은 일률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공공재의 적정량은 생산의 효율성, 교환의 효율성뿐 아니라 그 사회의 가치 또는 선호 체계와도 연관되기 때문에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원단위라는 접근 방법은 그 출발에서부터 공원의 적정량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있다. 이러한 원단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정교한 원단위가 아니다. 그보다는 시장기구의 부재를 보완할 수 있는 의사소통 또는 정보 교환의 수단이 필요하다. 한편 다른 공공재와 구별되는 공원만의 특징은 무엇일까? 공원이 국방이나 치안과 같은 다른 공공재와 가장 다른 점은 자연을 활용하고 위치가 고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특징은 공원 공급의 효율성과 형평성에 영향을 미친다.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면서 공원의 경제학을 마친다.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 민성훈[email protected] / 수원대학교 도시부동산개발학과 교수 / 2016년08월 /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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