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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탈, 재맥락화, 그래픽 비전 토포텍 1의 디자인 철학
    18년 전 창립한 이래로 토포텍 1Topotek 1은 작거나 큰 규모, 전통적이거나 예측 불가능한 방식, 몽환적이거나 이성적인 형태, 그리고 논란의 여지가 있거나 조화로운 스타일 등 광범위한 디자인 영역을 지속적으로 개척해 왔다. 초창기부터 우리는 극단적 표현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디자인 접근법에 있어서도 타협을 모르는 솔직하고 단호한 성격을 견지해 왔다. 다양한 유형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소재를 활용하면서도 아름다움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일관성을 창조했다. 더불어 주어진 현실을 가공하고 변용하려는 열망과 단호하지만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접근법을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평화로운 것을 추구하든 도발적인 것을 요구하든 우리만의 방식을 결합, 분할, 확장, 단순화, 취합, 역발상, 과장, 차용, 제거, 축적, 그리고 강조등의 방법을 통해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고객이 원하는 그 어떤 것도 해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 모든 것은 매력적이고 강력한 공간을 창조하는 동시에 우리가 만든 작품이 분명한 색깔을 띠게 하려는 궁극적 목표에 귀속된다. 우리는 만병통치약 같은 주먹구구식 접근법을 따르지 않는다. 대신 대상지에 특화된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그리고 물리적 맥락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디자인 도구를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있다. 토포텍 1의 철학은 일탈aberration을 그 근간으로 한다. 다시 말해 합리성에 대한 회의를 바탕으로 특이함, 부조화, 그리고 예측 불가능성이 부추겨지는 성격의 철학이다. 현대의 도시설계 사조는 다양성과 갈등을 상쇄시킴으로써 도시를 조직하고 구획하고자 하는 것이보편적인 데 반해 우리는 상충하는 특성들을 디자인을 위한 디딤돌로 삼는다. 설사 표준화가 평화를 가져다주는 방법일지라도, 갈등을 빚는 상황을 회피하는 것은 혁신적 디자인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부정적인 측면’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황을 반전시키고 불리해 보이는 요소들을 디자인의 견인차로 활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간혹 외부적인 요구 조건들이 디자인 프로젝트의 일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헤어 렌슈얼리 스포츠 콤플렉스Heerenschürli Sports Complex의 경우 경기장 규격이 거의 추상 미술 작품에 가까운 울타리를 필요로 했다. 우리는 딱히 정이 가지 않고 주변을 갈라놓기만 하는 울타리 요구 조건을 그대로 수용하기로 결정했으며, 과잉 디자인을 통해 수월성을 추구하는 사례를 남기게 되었다. 우리는 실용성을 풍성함으로 대체했으며, 6m 높이의 강렬한 녹색 울타리는 두 배로 늘렸다. 코펜하겐 인근 뇌레브로Nørrebro에서 진행한 수퍼킬렌Superkilen 프로젝트의 경우 지역 주민들은 특히 거리 폭력에 대한 우려를 분명히 드러냈다. 우리의 해결책은 야외 권투 경기장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태국의 복싱 링을 본떠 만든 이 경기장 덕분에 당면한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겉으로 드러내는 한편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게 되었다. 긴장 상태를 겉으로 드러내고 다른 방향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은 계획적 충돌calculated collision이나 독창적 이종교배inventive hybridisation 같은 디자인 전략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 마르틴 라인–카노·로렌츠 덱슬러·키아라 펠리츠 디 팔마www.topotek1.de / 2015년02월 / 322
  • 토포텍 1 TOPOTEK 1
    수퍼킬렌Superkilen을 통해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토포텍 1Topotek 1은 통념을 뛰어 넘는 디자인으로 조경 설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디자인 오피스다. 1994년, 그래픽으로 완성한 ‘아파트 주차장 놀이터’로 독일 조경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마르틴 라인-카노Martin Rein-Cano는 1996년 베를린을 기반으로 토포텍 1을 설립했다. 이후 20여 년 동안 토포텍 1은 작은 옥상 정원에서 부터 대규모 역사유적지까지, 정원박람회의 쇼가든에서 신도시의 마스터플랜까지 다양한 규모와 지역을 넘나들며 전복적인 형태뿐 아니라 풍부한 상징과 문화적 해석을 선보여 왔다. 처음 베를린 미테Mitte 지역에 작은 설계사무소를 설립했을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현재 토포텍 1은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40여 명의 인력을 보유한 회사로 성장했다. 1999년부터 렌츠 덱슬러Lorenz Dexler가 경영 파트너Managing Partner로 함께 일해 왔고, 2010년부터는 프란체스카 베니어Francesca Venier(현 공동 대표)가 합류해 건축 설계를 담당하고 있다. 토포텍 1은 다양한 유형과 규모의 대상지를 다루는 과정에서 지역 구성원들은 물론, 로스메리 트로켈Rosemarie Trockel과 수퍼플렉스Superflex와 같은 예술가, 그리고 MVRDV, BIG, 치퍼필드 아키텍츠Chipperfield Architects와 같은 건축사무소와 협업하며 그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본지는 2013년 1월호와 2014년 10월호에서 각각 ‘수퍼킬렌’과 ‘포티피케이션 에렌브라이 트슈타인Fortification Ehrenbreitstein’을 소개한 바 있다. 이번 호는 최근 10여 년의 주요 작업들을 통해 토포텍 1의 작품 세계와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기획을 준비했다. 토포텍 1의 작품에는 ‘갈등의 미학’, ‘계획적 충돌’, ‘독창적 이종교배’, ‘위치 변경’, ‘재맥락화’, ‘그래픽적 표면’ 등 다양한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 이번 특집에서는 모두 17개의 작업을 전복subversion, 종합synthesis, 이중성duplexity, 명료성clarity, 프레임워크framework 다섯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소개한다. 함께 수록된 두 편의 에세이에서는 분명한 색깔을 추구하는 이들의 작품이 정원의 전통과 동시대의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흥미롭게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고정희 대표(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가 베를린에서 라인-카노를 만나 못다 풀어낸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경의 세계에 유머, 예술성, 사회적 상호작용, 그리고 감성”을 부여하고 싶다는 토포텍 1의 작품 세계를 탐험하는 흥미로운 여정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essay 일탈, 재맥락화, 그래픽 비전: 토포텍 1의 디자인 철학 _ 마르틴 라인–카노 로렌츠 덱슬러·키아라 펠리츠 디 팔마 이주하는 경관: 다원주의와 정원 _ 마르틴 라인–카노·로렌츠 덱슬러·키아라 펠리츠 디 팔마 subversion 수퍼킬렌 | 카이아크 마켓 파킹 | 마젤라케카날 스포츠 파크 | 헤어렌슈얼리 스포츠 콤플렉스 아쿠아 사커 | 빅 딕 | 인플래터블스 | 반데켈 테레지엔회에 | 르 크루아상 synthesis 볼프스부르크 캐슬 가든 | 클로이스터 로르쉬 duplexity 보드 가이스 네트워크 센터 | 그리시셰 알리 킨더가르텐 clarity 마르틴 루터 할레–비텐베르크 대학교 | KPM 쿼터 | 하케셔 쿼터 framework 창사 글로벌 빌리지 마스터플랜 interview 도전적인, 너무나 도발적인: 마르틴 라인–카노와의 대화 _ 고정희
    • 양다빈, 조한결, 김정은 / 2015년02월 / 322
  • [칼럼] 한국 조경과 리얼리티의 회복
    “레알이야” 리얼이 리얼로 보이지 않는 세태에 대해 청춘들은 ‘리얼’ 대신 ‘레알’로 말한다.“레알리!” 나도 믿기 어려운 꿈과 같은 현실이다. 조경 40년의 숙원이던 ‘조경진흥법’을 우리는 작년 말에 제정해냈다. 조경 공동체는 재작년 말에 조경 가문의 가훈이라 할 ‘한국조경헌장’을 제정한데 이어 드디어 법이라는 제도적 집을 갖게 되었고, 대한민국에서 조경은 더 이상 임의적 분야가 아닌 정규적 분야로서의 지위를 공인받았다. 이제 조경은 조경진흥법 이전과 구분되는 진흥법 이후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되었다. 이제 이 ‘집’의 구성원인 조경 가족과 함께 리얼한 실천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주변 세상의 행복에 기여해야 할 차례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서 한국조경의 대내외적 현실을 새로운 각도에서 반성하고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대외적으로 보자. 조경의 인접 분야들은 21세기의 전환기에 시대 정신을 꿰뚫는 담론과 개념들을 창출하여 해당 분야의 사회적 위상을 제고하고 이들 담론을 국가적 어젠다로 추동하여 중장기적인 공공 수요를 창출한 선례들을 내보였다. 도시 쪽은 일찍이 1990년대 후반에 ‘걷고 싶은 도시’나 ‘살고 싶은 도시’ 담론을 시민 운동으로 추진하여 근 10년 이상 국가적, 지역적인 연구와 사업 수요를 창출해 왔다. 이에 따라 도시 곳곳에 보행 전용 가로와 공원, 광장 등 보행 공간들이 증설되었으며, 조경 분야 또한 이의 시행 단계에서 수혜를입었다. 산업디자인 분야도 2000년대에 들어 ‘공공디자인’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해 도시 환경의 새로운 분야로서 입지를 확보한 바 있었고, 건축 분야는 더욱 저돌적으로 ‘건축기본법’ 속에 ‘공간 환경’이라는 전대미문의 개념을 만들어 도시와 조경까지 건축의 영역에 포섭하려는 전략을 제도화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그동안 지속적인 애증관계를 가져왔던 산림 분야에 이르기까지 최근의 업역 경쟁은 가히 담론 전쟁과 개념 전쟁의 형태로까지 가열되고 있다. 이에 비해 조경 쪽에서는 그간 이들에 필적할 만한 정책적 담론 제시가 미약했다. 뼈아픈 고백이지만 조경의 기원에서 최근의 급성장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외부의 정치·경제적 계기와 여건에 편승하여 발전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스스로 창출한 가치와 담론, 그에 의한 사회적 수요의 견인은 상대적으로 희박했던 것이다. 그 이면에는 조경 지성의 현실 인식의 부재, 이론 연구의 부재가 있었다. 이것이 과거 한국 조경의 대외 정책의 리얼리티였다. 다음으로 대내적 현실을 보자. 교육·연구 분야와 계획·설계 분야의 현실에 대한 많은 지적이 있어왔으나, 주요 쟁점들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문제가 계속 잠복되어 온 상태다. 특히 현재 50여 개 대학에서 행해지는 교육·연구의 틀은 조경 40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고식적·획일적이며 실무와 연동되지 못하여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대표적인 지적이었다. 계획·설계에 있어서는 생태적 접근이든 예술적 접근이든 아직도 ‘그림 같은’ 녹색 낭만주의에 머물러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반복되어 왔다. 내가 보기에 조경 교육과 연구의 기본적인 한계는 조경의 본질적 가치인 지역성과 현장성을 등한시한 데 있었다. 특히 이론 연구에 있어서는 1980년대 이래 미국발 실증주의의 프레임에 의한 추상적논리가 아직도 연구 방법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또한 지적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연구 방법은 생생한 현장의 구체성을 수리적 예측 모형으로 추상화시키는 반면 조경의 전통적인 인문적·예술적·미학적 가치를 위축시킴으로써 조경 교육과 연구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이론 연구와 계획 설계의 연동성을 약화시켜 왔다. 계획·설계의 경우, 새로운 프로세스와 표현 방법에도 불구하고 많은 결과물이 반복해서 낭만적 자연주의에 그치고 있다. 이는 수요층의 완고한 보수적 관점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결국 냉정하게 말하자면 조경가들의 시대 정신의 인식 부족과 실험 정신의 부족 때문이라고 기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조경 문화의 정체성 결핍을 타개할 수 있는 한 방안으로 새삼스럽게 사실주의의 회복, 리얼리티의 복권을 거론하고 싶다. 사실주의란 문예사에 있어서 낭만주의와 근대주의 사이에 위치하여 후자를 태동시킨 계기적 사조로서 근대 이전의 이상주의를 타개하고 동시대의 사회문화적 현실 그 자체에서 미적 가치를 발견하고 표현하려 한 태도를 말한다. 미술의 여러 인접 장르 중에서 유독 조경 디자인은 사실주의를 건너뛰었다. 조경사조에서는 이 부분이 공백이었는데, 최근에 이르러 설치 미술이나 팝아트 등을 적용한 조경의 등장과 함께 일상의 세속 환경을 모티브로 채택하는 작품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신사실주의적 조경이 대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피터 라츠가 설계한 철강 공장 공원의 장중한 회고적 리얼리즘을 지나서, 최근 세상을 크게 한방 때린 아르헨티나 출신 마르틴 라인-카노Martin Rein-Cano의 수퍼킬렌Superkilen 공원이 대표적인 예다. 바닥에 그린 전위적 페인팅, 다문화적 낙서 그림과 같은 이 공원은 마치 미국 지하철의 낙서 화가 바스키야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실험적 경관을 통해서 주변 문화 집단의 다양한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한다. 나는 다른 글에서 한국 최초의 사실주의적 공원으로 쌈지공원을 든 바 있는데, 최근의 도시재생 운동과 함께 도시 가로와 골목길의 생활 환경을 주민과 함께 재탄생시키는 현장 지향적 리얼리즘이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는 시대 정신의 반영으로 보인다. 조경 운동도, 교육과 연구도, 설계도 이러한 최근의 리얼리스틱한 흐름을 주의 깊게 보고 현장 연구를 통해 조경 독자적인 창의적 방법론을 세울 필요가 있다. 당장 큰 사업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나 이 속에서 그동안의 조경의 거품과 리얼리티의 빈곤을 반성하고 보다 윤리적인, 그래서 조경인과 시민이 함께 행복한 차세대 조경의 싹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이를 도시 전역으로 확장시키면서 새로운 도시의 경관 양식의 창조를 조경이 주도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이 글이 아직 레알에 이르지 못한 가설이라 하더라도. 김한배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한국조경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우리 도시의 얼굴 찾기』 외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고, ‘도시 환경 설계의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사조에 관한 고찰’,‘혼성적 환경 설계의 기원과 전개’, ‘동양 그림의 경관관이 작정원리에 미친 영향’ 외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미술과 조경, 도시경관 양식의 상호 관계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 김한배[email protected]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 2015년02월 / 322
  • [에디토리얼] 편집된 공간
    방배동에 짐을 푼 지 한 달 반이다. 『환경과조경』 식구들의 행동 반경이 슬슬 넓어지기 시작했다. 마감에 쫓기더라도 매끼를 배달 음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주일 전에는 요즘 뜨고 있다는 ‘사이길’로 진출하기에 이르렀다. 간식이라고는 맥주밖에 모르는 남기준 편집장도 이곳에서는 수제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었다. 방배동 사이길은 함지박사거리 근처에서 서래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작은 골목길이다. 입에 쉽게 붙는 길 이름은 도로명 주소 ‘42길’을 그대로 사용한 것인데, 20세기 초의 옛 지도에서도 이 길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강남에서는 보기 드물게 시간의 흔적이 쌓인 장소다. 300미터 남짓한 거리지만 느긋하게 산책하며 커피 한 잔 하거나 아이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골목이다. 당근 케이크로 유명한 동네 빵집, 개성 강한 가죽 수제품 가게, 발길을 유혹하는 아트갤러리, 제작과 판매를 같이 하는 향수 공방, 빈티지 소품 가게와 디자인 편집 숍이 적당한 여유와 밀도 속에 늘어서 있다. 건축가나 조경가가 폼 잡고 설계한 공간이 아니다. 과하지 않게 디자인된 잡지처럼 자연스럽게 잘 “편집된 공간”이다. 허나, 아쉽지만, 뻔하다. 매체를 조금 더 타고 셀카족 언니들이 더 많이 몰려들기 시작하면 이 사이길도 예의 ‘길 시리즈’처럼 대기업 프랜차이즈 숍에 점령당할 것이다. 가로수길처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더 세련되고 쾌적하게 개선하자는 심산으로 조경가를 불러 가게 앞에 녹지를 끼워 넣으면, 건축가가 폼잡고 손을 대면, ‘걷고 싶은 길’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보차를 분리하거나 없던 인도를 억지로 만들면,이런 길이 오히려 망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전문가의 디자인이 자연발생적인 공간 편집을 망쳐놓은 사례를 무수히 목격해 왔다. 진한 농도의 수제 밀크 아이스크림콘이 녹아내릴 때쯤, 토포텍 1Topotek 1의 마르틴 라인-카노Martin Rein-Cano에게 사이길을 설계 사이트로 맡기면 어떤 기막힌 아이디어를 내놓을지 궁금해졌다. 이번 호 특집을 위해 몇 달째 토포텍 1을 붙잡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례적으로 100쪽의 지면을 할애한 토포텍 1의 작품들에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기다려진다. 토포텍 1처럼 평가가 엇갈리는 동시대의 조경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생태, 과정, 작동 등과 같은 최근의 설계 이슈가 이제 지겨우시다면, 라인-카노라는 쟁점적 인물과 그의 문제작들을 놓고 모처럼 신선한 토론을 즐겨보시길 권한다. 강렬한 패턴과 고채도의 색과 굵은 선으로 가득한 토포텍 1의 작품은 과격하고 도발적이다. 꼭 포르노그래피를 보는 느낌이다. 재작년 여름에 만났던 코펜하겐의 수퍼킬렌Superkilen은 숨이 막힐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데뷔작인 스카이 가든Sky Garden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라인-카노의 많은 작품들은 ‘시각적’ 어필만을 위해 원색과 강한 선으로 ‘바닥’에 마음껏 그림을 그렸군, 하는 첫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렇게 한방에 단언해 버리며 책장을 덮을 일은 아니다. 토포텍 1의 작업을 가로지르는 핵심은 ‘표면 전략surface strategy’이다. 3차원의 공간에 대한 관심보다는 지구의 표면, 즉 바닥에 주목한다. 설계의 대상이 정원이건 공원이건 광장이건 넓은 대지이건 간에, 라인-카노는 그것을 무언가를 채워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하늘과 만나는 이차원의 표면, 즉 바닥으로 환원한다. 표면으로 환원된 공간을 그는 시각적으로 ‘편집’한다.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때로는 통제된 규칙을 허물고 자유를 얻기 위해. 이러한 편집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 그의 일관된 ‘그래픽 비전graphic vision’이다. 토포텍 1의 작품들은 물리적 스케일이나 표면 질료의 성격과 상관없이 늘 그래픽적이다. 의도적인 선형 패턴의 그래픽을 통해 시각적 편집을 넘어서는 역사적·문화적 편집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리스의 신전, 모로코의 분수, 팔레스타인의 토양, 프랑스 정원의 자수화단, 영국 풍경화식 정원의 낭만, 일본 정원의 사색, 중국 정원의 정자 등 이질적 역사와 문화의 성분이 편집된다. 라인-카노의 작업은 표면이라는 같은 텍스트에 그래픽이라는 같은 매개체를 투입하여 이종의 가치와 복수의 문화가 교배된 새로운 콘텍스트를 편집해낸다. 그의 디자인에 단 하나의 개념을 달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편집’일 것이다. 편집 앞에 조금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자면 ‘미학적’보다는 ‘사회학적’이 오히려 나을 것 같다. 잘 편집된 공간 사이길에 토포텍 1의 편집된 공간들을 엎고 섞다 보니, 불현듯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편집”이라는 김정운의 구라가 그럴듯하게 와 닿는다. 이번 마감이 끝나면 요즘 잘 팔린다는 그의 신간 『에디톨로지』를 날라리 책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한번 찬찬히 읽어봐야겠다. 그나저나 이번 호가 잘 편집된 잡지일지, 근심이다.
  • 팔로 알토 어도비 크리크 보행·자전거 다리 다리, 연결 그 이상
    101번 고속도로 보행교 프로젝트 실리콘 밸리의 심장부에 위치한 팔로 알토Palo Alto에는 101번 고속도로와 베이 트레일 주변에 자리한 기술 및 연구 회사―구글, 인튜이트(Intuit), 스페이스 시스템즈 로랄(Space Systems Loral) 등―에 다니는 수백 명의 회사원이 거주한다. 이 직장인들이 출퇴근 시 이용할 수 있는 지하도―101번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한다―가 마련되어 있지만 인근의 연못이 자주 범람하기 때문에 일 년 중 절반 정도만 이용이 가능하다. 이에 팔로 알토 시는 101번 고속도로 위를 지나는 보행교 프로젝트The Highway 101 Pedestrian Overpass Project를 계획했다. 이 공모 프로젝트를 통해 조성되는 다리는 기존의 지하도를 대체할 뿐만 아니라 팔로 알토 지역과 산타 클라라 밸리 정비 지구Santa Clara Valley Water District를 연결하게 된다. 따라서 팔로 알토에 거주하는 직장인은 전보다 쉽게 회사로 이동할 수 있으며 산책로와 자전거의 이용이 활발해져 베이랜드의 아름다운 경관을 많은 이가 즐길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2015년 1월 최종 후보에오른 세 팀 중 64노스64North의 작품이 당선되었다. 당선작은 2016년 의회의 승인을 받은 후, 2018년 건설을 시작해 2019년 완공될 예정이다. 수년 동안 이 지역의 인프라스트럭처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조직되고 설계되었다. 덕분에 지역 간 이동과 연결은 쉬워졌지만 상당한 비용 지출, 탄소 배출, 소음,분진 등의 문제도 발생했다. 이에 팔로 알토의 지역 사회는 보행로와 자전거 도로, 레일, 무인 자동차 등을 활용하여 보다 다각적인 미래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인프라스트럭처는 하나의 기능만을 염두에 두고 단기간에 설계된다. 64노스는 인프라스트럭처가 오히려 다양한 기능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프라스트럭처 중 하나인 다리는 연결이라는 기능뿐만 아니라 좀 더 유연하게 미래 계획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다리는 아름다운 경관과 경험을 선사하며, 더 나아가 주변의 자연 세계를 다채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수년 동안 이 지역의 인프라스트럭처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조직되고 설계되었다. 덕분에 지역 간 이동과 연결은 쉬워졌지만 상당한 비용 지출, 탄소 배출, 소음, 분진 등의 문제도 발생했다. 이에 팔로 알토의 지역 사회는 보행로와 자전거 도로, 레일, 무인 자동차 등을활용하여 보다 다각적인 미래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인프라스트럭처는 하나의 기능만을 염두에 두고 단기간에 설계된다. 64노스는 인프라스트럭처가 오히려 다양한 기능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프라스트럭처 중 하나인 다리는 연결이라는 기능뿐만 아니라 좀 더 유연하게 미래 계획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다리는 아름다운 경관과 경험을 선사하며, 더 나아가 주변의 자연 세계를 다채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Architect64North Landscape ArchitectBionic EngineeringHNTB ArtNed Kahn Environmental ConsultingWRA LightingSean O’Connor Lighting CyclingAdvisor Jeff Selzer LocationPalo Alto, California, USA Design2015 로스앤젤레스에 기반을 둔64노스(64North)는 종합 설계사무소로서 혁신적인 공간과 경험을 만들기 위해 전통적인 경계를뛰어넘어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와의 협업에 주력하고 있다. 디자인 소장인 윌 카슨(Wil Carson)이 이끌고 있으며 엔지니어링 뉴스-레코드(Engineering News-Record)가 선정한 40세이하의 상위 20위 설계 전문가(Top 20 Design ProfessionalsUnder 40)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건축가협회(The AmericanInstitute of Architects), 헤이즈 브랜다이스 펠로우십(TheHays Brandeis Fellowship)의 예술 부문, 대통령 우수 환경 메달(Presidential Medal for Environmental Excellence)에서여러 상을 수상하고 각종 국제 디자인 공모전에서 우승하면서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 64North / 64North / 2015년02월 /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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