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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DA] 특별한 편집, 특집
    이 글을 쓰는 시점은 드디어 마감 날이다. 그러나 이미 두 시간 전에 자정이 지났건만 마지막 원고가 도착하지 않았다.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다. 마지막 원고는 바로 이번 호에서 특집으로 다루는 토포텍 1의 수장인 마르틴 라인-카노와의 인터뷰 원고다. 해외 출장이 잦은 라인-카노와 인터뷰 일정을 조율하기 쉽지 않았지만, 생생한 지면을 위해 인터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평소에 비해 상당히 늦은 시점에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아마 지금쯤 멀리 베를린에서 인터뷰어인 고정희 대표가 원고의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늘 새로운 주제와 형식을 고민해야 하는 ‘특집’에 대한 부담은 만만치 않다. 독자들이 원하는 주제와 우리가 독자들에게 환기하고 싶은 내용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고민스러운 일이다(대다수의 독자들은 과묵(!)하기 때문에 그 숨겨진 요구를 파악하는 것은 늘 어렵다). 또한 시의성 있는 주제를 선정하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러한 줄다리기 속에서 매달 특집이 탄생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11월호에 실린 ‘하이라인의 교훈’은 예정에 없었던 특집이다. 편집부는 하이라인 3구역의 공식 오픈 일정을 주시하며 기사화 시점을 가늠하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특집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그러다 서울역 고가 공원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작품소개에서 특집으로 급선회했다. 다행히 하이라인의 설계에 참여했던 윤희연 교수와 프롬나드 플랑테를 읽어준 황주영 박사가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원고 청탁에 응해주어 깊이 있는 들여다보기가 가능했다. 특히 두 명의 핵심 인사인 제임스 코너와 조슈아 데이비드의 인터뷰는 최이규 뉴욕지사장의 발 빠른 섭외로 가능했던 지면이다. 물론 그 사이에서 수많은 일정을 조율한 JCFO의 조경가 안동혁 씨의 노고는, 전 세계에 동일한 보도자료가 배포되는 상황에서 『환경과조경』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면 이번 토포텍 1 특집의 경우는 그 준비 기간이 꽤 긴 편에 속한다. 지난 10월호 work & criticism에 ‘포티피케이션 에렌브라이트슈타인’을 소개한 뒤, 토포텍1은 우리에게 작품집 출간을 제의해왔다. 편집부는 『환경과조경』 해외판 론칭을 계획 중이었기 때문에 콘텐츠의 중복이 우려되기도 했고, 국내 조경가들에게 토포텍 작업의 규모와 성격이 단행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만큼 흥미로운지 확신하기 어렵기도 했다. 그러나 2012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덴마크 파빌리온에서 수퍼킬렌이 소개된 뒤, 국내에서도 수퍼킬렌과 토포텍 1에 대한 관심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던 차였다. 이런저런 논의 끝에 편집부는 토포텍 1에게 작품집 대신 특집을 제안했다. 2015년을 준비하며 편집부는 한 조경가의 작품 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특집을 연간 계획 속에 넣어 두었다. 가급적 새롭게 부상하는 오피스를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국내외 조경가를 두루 조명할 요량이었다. 마침 그 대상자와 게재 시점을 고민하던 중이었으므로, 반쯤은 필연적으로 또 반쯤은 우연히 조경가 특집의 첫 번째 작가로 토포텍 1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토포텍 1과의 만남은 2013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함부르크 국제정원박람회장에서 아쿠아 사커를, 코펜하겐에서 수퍼킬렌을 답사했다. 고백하건데 아쿠아 사커는 박람회장에서 일별하는 수준이었다. 넓은 박람회장을 빠르게 둘러보아야 했던 촉박한 일정 탓도 있었지만 수많은 정원들 사이에서 아이들을 위한 놀이 정원 정도로 보고 지나쳤던 것 같다. 수퍼킬렌의 첫인상은, 여러가지 이질적인 오브제들이 흩어져 있는 강렬하지만 바랜 듯한 붉은색 공원(아마도 처음 도착한 곳이 레드 스퀘어였기 때문일 것이다)이었다. 그 전에 둘러보았던 그림같이 아름답게 가꿔놓은 유럽의 여러 공원과 달리 수목이 별로 보이지 않는, 어딘지 모르게 나른하고 묘하게 이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런 인상이 남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수퍼킬렌의 다문화적인 맥락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이해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 토포텍 1의 작품이 정원의 전통과 다원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들의 작품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한 조경가 집단이 보여주는 작업의 진화와 그 다양한 스펙트럼을 살펴보고, 또 그 개념에 몰입하는 과정을 거치다보니, 바로 이 지점에 종이 매체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공고해졌다. 인터넷으로 수많은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정보의 홍수 시대에, 종이 매체는 그 존재의 이유를 고민하게 된다. 결국 어떤 정보를 선택하고, 어떻게 가공(편집)하는가에 따라 잡지의 역할이 달라질 것이다. 이번 특집이, 그간 지면의 한계 때문에 부족함을 느꼈을 독자들에게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는 특별한 편집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토포텍 1이 도발적인 작업을 하면서도 그 모티브를 설득력 있게, 혹은 논쟁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드문 오피스 중 하나이기 때문에 거는 기대이기도 하다. 이번 특집은 양다빈 기자가 토포텍 1과의 연락을 담당했다. 토포텍 1의 출판 담당자인 이폴리타는 마감이 끝나갈 무렵, 이번 호가 출간되고 나면 다니엘(양다빈 기자의 영어 이름)이 그리울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메일만 100통이 넘는다고 하는데, 이폴리타의 그 메일의 의미가 양 기자의 집요한 확인과 질문, 끈질긴 추가 요청에 대한 귀여운 항의인지, 아니면 그간 진짜 정이 들어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 [편집자의 서재]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유키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게 된다. 불황기에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격이다. 그런데 아뿔싸! 임업이란다. 가무사리,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산골짜기로 가게 되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부에서 지원하는 녹색 고용 제도에 가입되어 임업 연수생 신분이 된 탓이다. 이는 모두 선생님과 부모님의 합작품이다. 유키는 그 길로 쫓겨나듯 짐을 챙겨 기차에 올랐고, 도시 청년의 산골 적응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은 최근 개봉한 영화 ‘우드잡’(2015)의 원작 소설이다. 영화에서는 전단지 모델로 나온 여자(나오키)에게 반해 임업 연수생에 자원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원작에서는 어떠한 동기도 없이 강제로 떠밀려 시골로 가게 된다. 유키는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문명화 된 첨단의 도시에서 자란 청년에게 휴대전화도 제대로 터지지 않는 시골의 숲은 감옥과 다름없다. 지루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숲은 온갖 위험 요소로 가득 차있다. 봄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꽃가루 바람과 싸워야 하고, 눈에 보일 정도로 커다란 이吸蝨目와 거머리까지 그를 괴롭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억지로 끌려온 마당에 아무런 이유 없이 붙들려 있을 필요가 없다. 영화에서는 탈출 와중에 나오키를 만나면서 가무사리에 남을 결정적 동기가 생기지만, 원작에서는 숲 그리고 자연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스스로 가무사리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유키가 자연과 소통하는 과정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다루는 점은 동일하지만, 영화는 몇몇 장면을 통해 이를 단편적으로 나열된 컷으로 표현하는 데 그친다. 반면 원작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점층적으로 변화하는 유키의 감정을 세밀하게 담아낸다. 물론 영화는 소리와 시각이 중첩된 공감각적 효과로 관객에게 가무사리 숲을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해주지만, 유키가 자연과 교감하는 지점에 대한 설득력은 부족한 감이 있다. “눈에 부러지는 나무도 살아 있는 존재고,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열심히, 정확히, 신속하게 눈 털기를 하는 사람도 살아 있는 존재다. 나무는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살아서 움직인다. 그런 나무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바로 이 일이다. 나는 가무사리에 온 지 1년이 지나서야 겨우 그 사실을 깨달았다.” 유키가 자연과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 중도中道를 깨닫는 대목이다. 나무와 가까이 하며 ‘친자연적’임을 표방하는 임업이 사실 가장 직접적으로 나무를 해한다. 나무를 베고 가지를 치고 땅에서 뽑아낸다. 모순이 느껴졌다. 이에 대한 해답은 책을 읽어 나가며 가무사리 사람들의 태도와 생활 방식을 조금씩 이해하면서 얻을 수 있었다. 아직 가무사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유키는 요키(가무사리 마을의 토박이로 유키의 숲 생활을 돕고 산 일을 가르친다)가 넓은 잎딱총나무의 밑동을 도끼로 잘라내자 “불쌍하다”고 말했다. “불쌍하다고? 이 경사면에서 자라는 잡목을 전부 베어내지 않으면 땅 고르기를 못해. 땅 고르기를 못하면 묘목도 심을 수 없고. 그러면 우리는 일거리가 없어서 굶겠지.” 이어 사장과 또 다른 팀원인 이와오 아저씨가 차례로 답한다. “모두베기를 끝낸 곳에 잡목이 무성해지면 나무도 자라지 않아. 오히려 꾸준한 식목 작업이 산의 환경을 유지시켜주지.” “일본의 삼림도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은 드물어. 나무를 베고, 나무를 사용하고, 나무를 심어서 산을 유지하는 거야. 중요한 일이지. 그게 바로 우리가 하는 일이기도 하고.” 가무사리의 사람들은 필요한 만큼만 나무를 벌채하고 그 자리에는 같은 종의 묘목을 심는다. 그리고 산을 세심하게 관리하며 경건함을 유지한다. 이들이 직접적으로 나무에게 가하는 1차적 행위보다 그 정도와 마음가짐, 숲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느긋한 자세에서 자연과 관계 맺는 사람의 위치가 어디쯤이어야 할지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람 묘사에 능숙한 작가는 이번에 그 재능을 풍경 묘사에 쏟았다. 가무사리의 풍경과 자연의 현상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묘사된 장면을 통해 독자는 유키가 자연과 교감하는 과정과 자연의 매력을 느끼는 지점을 공유하고 장소에 대한 애착이 생겨나는 걸 공감하게 된다. 교감의 과정에서 유키는 숲의 초자연적 존재 들과의 영적 교류를 경험한다. 가무사리 사람들은 산을 신성하게 여기는데, 산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산신에게 기대고 노하지 않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이다. 가무사리 사람들의 조언을 그저 시골 사람들의 실없는 소리로 여기던 유키는 여러 번 산의 영靈들과 조우한다. 이때 작가는 일상에서 착각으로 여기는 것들을 영적 존재로 상정하지만 이를 판타지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시각적으로 복잡하지 않은 자연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인지되는 현상으로 그려 가무사리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살려내는 데 십분 활용한다. 도망칠 궁리만 하던 유키가 자연의 황홀경에 빠져 “아, 죽을 때까지 여기에 있고 싶다”는 마음을 먹는다. 이 마음은 단계적으로 “갈수록 마음을 사로잡는다”, “가슴이 벅찼다”, “자부심이 충만했다”로 진화해 결국 가무사리 마을의 주민으로 남게 된다. 나는 뉴에이지를 즐겨 듣는다. 대부분 자연을 주제로 하고 때로는 음악에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담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귀가 심심하면 곁들여서 들을만하다. 가무사리의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나아나아’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천천히 하자’, ‘마음을 가라앉혀’ 정도의 뉘앙스를 가진다. 자연의 소리와 함께 이 책을 펼치면 절로 “나아나아”를 읊조리게 된다.
  • 미래의 조경가 키우는 어린이 조경학교 초등학생 대상으로 조경의 미적·생태적·사회적 가치 교육
    “여기 앞에 있는 건 화단이고요, 정원에 있는 건 파라솔이랑 큰 벚나무고요, 또 이 옥상에 있는 건 작은 벚나무인데 여기는 하늘 공원이에요.” 작품 설명을 부탁하자 정우진 군(숭덕초 4학년)은 부끄러운 듯 망설이는 가 싶더니 이내 또박또박 설명을 이어갔다. 도로변을 따라 지점토와 인조 꽃술로 울타리를 만들고 정원에는 철사를 구부려 만든 키 큰 벚나무로 포인트를 주었다. 칵테일 장식용 파라솔로 휴식 공간도 만들었다. 스티로폼으로 만든 건물 옥상에는 한지로 잔디를 만들어 깔고 작은 벚나무를 심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옥상녹화’다. 과장을 좀 보태서 전문가 뺨치는 모델링 실력이다. 지난해 12월 30일 문을 연 ‘어린이 조경학교’가 4주간의 과정을 마치고 1월 24일 수료식을 가졌다. 서울시와 환경조경나눔연구원(원장 임승빈)이 공동 주최한 어린이 조경학교는 아이들에게 조경의 미적·생태적·사회적 가치를 가르치고 미래의 조경가를 육성하기 위해 기획됐다. 어린이 조경학교의 교장을 맡은 주신하 교수(서울여자대학교)를 필두로 정욱주 교수(서울대학교),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송영탁 상무이사(가이아글로벌)가 강의를 맡았으며, 서울시 소재 초등학교에 다니는 4, 5, 6학년 학생 30명이 참가했다. 프로그램은 보라매공원, 꽃과 나무, 놀이터, 공원 조성 과정 등에 대한 강의와 실습으로 구성되었다. 서울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대학생 및 대학원생이 보조 교사로 자원해 아이들 가까이에서 지도했다. 지난 1월 6일, 꽃과 나무에 대해 배우는 두 번째 수업을 방문했다. 이날 강의를 맡은 정욱주 교수는 계절별로 피는 꽃의 종류와 나무의 특징에 대해 설명했다. 아이들에게 알고 있는 꽃 이름을 물어보자 개나리, 장미, 산수유, 모란 등 대답이 끝없이 이어졌다. 정욱주 교수는 “단언하건데 우리 학교 학생들보다 낫다”며 혀를내둘렀다. 이어진 실습 시간에도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스스로 재료를 찾고 원하는 형태로 정원을 만들어 나갔다. 스티로폼으로 건물을 만들고 색종이, 수수깡으로 나무를 만들었다. 건물 꼭대기에서 정원까지 미끄럼틀로 연결된 아이다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부터 피뢰침이 탑처럼 우뚝 솟은 전위적인 작품까지 아이들의 손에서 다양한 정원이 탄생했다. 두 시간의 실습 시간이 짧다며 “더 잘 만들 수 있는데 아쉽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어린이 조경학교는 윤세형 과장(서울시 공원여가과)이 독일에서 공원녹지과 행정 인턴으로 일할 당시 경험했던 독일의 공원 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기획됐다. 당시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를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어른들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놀이터를 만들어 깜짝 놀랐다고. 그에게 어린이 조경학교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을 묻자 “첫 번째 시간에는 아이들이 조금 쭈뼛쭈뼛 했는데 오늘은 아주 적극적이다. 마지막 수업 즈음에는 아이들이 얼마나 적극적이고 재미있게 임할지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조경을 배우고 실습하면서 재미있게 놀 수 있고 아이들의 창의력도 기를 수 있다는 걸 학부모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며 조경의 학습적 효과에 대해서 강조했다. 어린이 조경학교의 교장을 맡은 주신하 교수는 “작년에 시민조경아카데미에서도 강의를 했는데 주로 중장년층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엔 좀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조경을 알리고 싶었다”며 “앞으로는 중고등학생을 위한 프로그램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조한결 / 2015년02월 / 322
  • 찬란한 유산, 그 두 개의 시간 로마제국의 도시 문화와 폼페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4월 5일까지
    어릴 적 로마군에 의해 가족을 잃은 마일로는 노예 검투사다. 대규모의 검투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폼페이에 방문한 마일로는 영주의 딸 카시아와 사랑에 빠진다. 마일로는 경기에 참여해 사투를 벌이는데 경기가 절정에 달한 그때, 베수비우스 화산이 터지고 도시는 아수라장이 된다. 마일로와 카시아는 살아남기 위해 도시를 벗어나려 사력을 다하지만 역부족임을 깨닫는다. 두 사람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기로 결심하고 처음이자 마지막 키스를 나눈다. 그 순간 고온의 화산재가 도시를 덮어버린다. 79년 8월 24일 화산 폭발로 폼페이는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2014)’은 폼페이에서 발굴된 실제 인간 화석을 모티브로 삼았다. 폼페이는 1592년 한 농부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서로를 끌어안은 연인의 화석을 비롯해 유독가스와 화산재를 피해 망토로 입을 가린 남자, 치맛자락으로 얼굴을 감싼 채 쓰러져 숨을 거둔 여자, 정원으로 피신한 상태에서 죽은 사람들이 화석으로 출토되었다. 발굴 보고서에 따르면 도시 안에서 발굴된 희생자는 총 1,047명이다. 그중 103건이 캐스트로 제작되었고 일부는 시체의 체적과 형태, 자세가 잘 보존돼 당시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에서 열리는 기획특별전 ‘로마제국의 도시 문화와 폼페이’에서 그 현장을 만나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폼페이에서 출토된 조각품, 장신구, 벽화, 캐스트 등 298건의 다양한 유물을 선보여 고대 로마제국의 화려한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폼페이 유적을 조명한다. 폼페이는 고대 로마의 도시다. 사르누스 강 하구에 위치한 항구 도시 폼페이는 로마인들에게 각광받는 휴양지이자 상업지로 번성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18세기부터 현재까지 발굴 조사가 계속되고 있다. 로마 문명은 서양 문명의 본류로 예술과 철학, 종교, 과학, 생활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현대 문명의 원형을 볼 수 있어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고학 발굴을 통해 고대 사람들의 생활문화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운데, 폼페이 유적은 화산 폭발로 당시의 생활 모습이 그대로 정지된 상태로묻혀 있어 고고학적 가치가 높다. 당시로서는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후대에는 귀중한 사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폼페이 회화에서 자연 풍경은 모든 그림의 배경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신화와 도시 풍경, 신전, 항구와 바닷가 저택, 목가적인 장면 등을 그렸다. 전시품 중에는 집 내부의 벽을 장식하던 벽화들이 대거 전시되었는데, 전시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정원 벽화는 단연 압권이다. 정원 벽화는 4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실제 건물 벽면을 장식하던 크기 그대로 옮겨와 전시장 높이를 넘어서는 웅장함을 자랑한다. 때문에 3면은 벽면에 그대로 재현되었고, 반원형의 상단부 1면은 다른 벽면에 전시되었다. 정원 속에 심긴 꽃과 나무가 수종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고, 물 수반과 가면 등의 점경물, 새가 노니는 모습을 통해 당시의 정원 문화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정원 벽화가 전시된 섹션은 직사각형으로 공간이 구획되어 있는 데, 둘레를 실제 기둥과 같은 건축적 양식으로 재현해 놓아 전시물을 로마인들이 감상하던 느낌대로 간접 체험하는 효과가 있다. 폼페이에서는 실제로 정원 그림에 건축 구조를 도입해 실내 공간에서 외부로 개방되는 구조를 통해 실제 자연을 보는 듯한 효과를 연출했다. 당시에는 정원을 가꾸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는데, 이는 지속적으로 그림의 소재가 되었고 건축물의 경계 없이 벽 전체를 마치 정원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화려함을 장식하는 요소가 되었다. 이밖에 도시 곳곳에 세워졌던 신들의 조각상과 화석으로 남은 젊은 여인의 팔을 두르고 있던 금으로 만들어진 팔찌와 장신구 등이 호화로웠던 도시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상점에서 구워져 판매되었던 빵이 그대로 굳어진 화석, 와인을 담았던 항아리, 저울과 추등은 활발한 경제 활동이 이루어졌던 당시의 역동적인 시대상을 전달해 준다. 아름다운 예술과 풍요로 가득 찼던 고대 로마제국의 도시 그리고 화산 폭발로 한순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비극의 도시. 폼페이는 극과 극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폼페이 전시회는 1800년 전의 찬란했던 도시의 유산을 자랑하지만 동시에 처참했던 화산 폭발의 현장을 증언한다. 대비되는 두 개의 상황은 영광의 시간보다 자연 재해로 한 순간에 몰락의 길을 걸은 참사의 시간을 더욱 강렬하게 인상에 각인시킨다. 전시는 전반적으로 화려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지만, 마지막 섹션의 ‘최후의 날’을 맞이하면 숙연함이 더 짙게 남는다. 이곳을 찾은 날,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이 전시관을 점령했다.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도슨트 설명을 듣기 위해 어머니 몇 분이 인솔해 오신 모양이다. 설명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섹션을 옮겨 다니는 모습이 마치 자기들이 로마군이라도 된 냥 전투적이다. 어려운 질문도 호기롭게 받아낸다. 여유롭게 감상하기에는 짜증이 일기도 하지만, 일견 대견하다. 조심스레 대열에 합류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시종일관 북적북적하더니 폼페이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섹션에서는 분위기가 잠잠해졌다. 두 개의 시간을 공유한 아이들은 전시관을 나서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영원한 풍경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10주기 회고전
    물 위를 뛰어 건너는 (마치 물 위를 걷는 듯한) 한 남자를 포착한 사진(‘생 라자르 역 뒤에서’, 파리, 프랑스, 1932)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빠질 수 없는 ‘결정적 순간’의 미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결정적 순간’이란 풍경을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가 아니라 외부 세계에 대한 작가만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다는 개념으로, 미국과 프랑스에서 출판된 카르티에-브레송의 작품집 제목으로 처음 사용되었다. 이 용어는 사진 한 컷에 담겨지는 순간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을 구성하는 사물들이 정돈되고 조직화되어 미학적으로 특정한 의미를 띠는 어떤 ‘절정Clement Cheronx’의 순간을 의미한다. 스토리가 풍부한 이 사진은, 이번 전시를 구분하는 세개의 큰 구성 중에서 ‘거장의 탄생-그의 초기작부터 1947년 MOMA까지’에 속하는 카르티에-브레송의 초기 작품 중 하나다. 카메라를 처음 움켜쥐었을 때부터 이러한 장면을 포착했다는 것은 천재적인 능력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어느 특정한 순간에 우연히 이런 피사체를 발견하고 포착했다고만 생각하면 그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한 것이라 볼 수 없다. 저널리즘 교수인 클로드 쿡먼Claude Cookman은 카르티에-브레송이 “사전에 연구하고 계획을 세워 역사적 사건의 현장에 있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으며, 그토록 철저한 자세로 혼신의 힘을 다해 사진을 찍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을 ‘행운’과 ‘우연’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진작가가 되기 전의 행보 또한 그의 이런 능력이 단순한 천재성이나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알게 한다. 카르티에-브레송은 화가가 되기 위해 1926년부터 2년간 미술아카데미에서 입체파 예술가 앙드레 로트Andre Lhote로부터 기하학과 황금분할, 신성한 비율, 구도의 법칙 등을 배우며 예술적 재능을 발전시켰다. 전시 감독 김이삭은 그가 이 2년의 시간 동안 “미술을 통해 구도를 배웠을 뿐만 아니라 커다란 창조적 성취를 이루는 데 필수 불가결한 ‘자기 통제’와 프레임의 ‘내적 침묵’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을 익히게 되었다”고 얘기한다. 또한 회화를 할 때부터 교류했던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 살바도르 달리Salvadore Dali,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와 같은 초현실주의자들과의 교류도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고, 이는 공방의 화폭에서 거리와 세계의 풍경으로 그의 시야를 넓히게 된 결정적인계기가 된다. ‘풍경landscape’은 사전적으로는 ‘눈으로 보았을 때 한 번의 조망으로 포착되는 사물의 전체’를 의미한다. 이번 전시의 메인 테마인 ‘영원한 풍경’을 접하게 되면, 그의 작품은 이러한 단어의 나열이 한정할 수 없고 수식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번의 조망이고, 분명 한 장의 정지된 사진이지만 생동하는 영원성과 살아 숨 쉬는 영혼을 갖고 있기에 오직 이미지로서의 커뮤니케이션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카르티에-브레송은 1968년 사회변혁운동으로 프랑스가 급진적인 변화를 겪는 동안 이와 관련된 사건의 현장을 찍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 시기에 어떠한 움직임도 없는 정적인 프랑스 브리의 광활한 평원을 찍었다(‘브리’, 프랑스, 1968). 어떠한 움직임도 없는 정적인 풍경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결정적 찰나’가 잘 나타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화면에서 약간 왼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늘어선 큰 키의 가로수들은 멀어질수록 작아지며 시선을 깊이 이어진 길의 끝으로 이끈다. 이 사진은 보는 이의 심리 상태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해석되기도 한다. 언제나 사회 속에 살아가는 인간에게 가장 큰 관심을 두었던 카르티에-브레송의 작품이라서 일까? 단 한 명의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 사진에서조차 관객들이 자신만의 휴머니즘humanism을 찾아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번 전시의 메인 테마는 ‘풍경’이지만, 카르티에-브레송의 ‘결정적 순간’과 그의 천재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전시는 마지막 구성인 ‘순간의 영원성’이 아닐까 싶다. 보통의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에 앞서,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먼저 탐색한다. 그러나 카르티에-브레송 의 사진은 그런 단계를 생략한 채, 날 것의 생생함을 곧 바로 담아낸다. 달리 스냅숏snapshot의 마이스터Meister라 불린 것이 아니다.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작가의 피사체가 되었다는 인식을 전혀 하지 못한 듯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찰나를 포착하는 그의 능력은 인물의 내면을 포착하는 사진에서 그 정점을 이루었으며, 그렇게 찍힌 사진은 삶의 한 순간을 예리하게 관통한다. 카르티에 앙리-카르티에 브레송은 “사진작가라면 어느 개인의 세계에 대해 내면적인 부분만큼, 외면적인 것에 대해서도 진정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물을 찍는 과정에서 그 인물을 둘러싼 환경의 중요성도 인지한 카르티에-브레송은 그만의 ‘주변 환경을 포함하는 포트레이트environmental portait’를 제시했다. 한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소품, 의상, 배경 등을 통해 그 인물의 내면까지 담아낸 사진을 완성한 것이다. 담배, 차tea 그리고 고양이를 비롯 사진 곳곳에 배치된 소품들이 사진의 주인공을 스포트라이트하는 방식을 찾아내는 것도 카르티에-브레송의 작품을 보는 특별한 재미가 될 것이다. HCB재단과 매그넘Magnum Photos이 공동 주최한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10주기 회고전인 ‘영원한 풍경’전展은 한국에서는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을 포함하여 카르티에-브레송이 생전에 제작한 총 253점의 오리지널 프린트Original Print가 함께 전시된다. DDP 디자인 전시관에서 3월 1일까지.
    • 양다빈 / 2015년02월 / 322
  • 살고 싶은 집으로의 초대 ‘즐거운 나의 집’, 아르코 미술관에서 2월 15일까지
    “귀를 기울이자, 한 시간이 지나 저기 작지만 영원한 순간이 부드럽게 나를 요람처럼 흔들며 깨우는 신선한 목소리가 들린다. 집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다.” 헤르만헤세는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에서 ‘집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아침에 대문을 나서면서부터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기까지, 때로는 모든 것을 잊기 위해 떠난 여행 중에도 ‘집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2014년 12월 12일부터 2015년 2월 15일까지 아르코 미술관에서 열리는 ‘즐거운 나의 집’ 전시회는 ‘집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시각화한 전시다. 아르코미술관과 글린트의 협력 기획전으로 까사미아와 대림바스가 후원했다. 전시는 ‘기억의 집’에서 시작해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거쳐 ‘살고 싶은 집’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집에 대한 추억과 낭만 “우리 삶에는 유년 시절을 보낸 기억의 집, 현재 사는 집, 살아보고 싶은 꿈속의 집이 있다. 이 세 가지 집이 겹친 곳에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현재의 ‘집’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전시는 건축가 고故 정기용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기억의 집’을 형상화한 제1전시실을 들어서며 관객들은 누군가의 집에 초대된 느낌을 받는다. ‘집’을 얘기할 때 으레 떠올리곤 하는 일상의 사물들과 ‘집’을 구성하는 공간들이 재구성되었다. 전시실 입구에 설치된 현관문에 다가서자 현관 센서등이 기다렸다는 듯 켜지며 관객에게 작은 즐거움을 준다. 전시실에 들어가자마자 관객들을 맞이하는 상패, 액자, 화병, 시계 등의 일상의 사물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소한 물건들이지만 동시에 집주인의 취향과 기호를 읽을 수 있는 물건들이다. 찌개 끓는 소리, 그릇 내려놓는 소리, 식기와 집기가부딪히는 소리 등이 맛깔스럽게 담긴 영상과 소담한 식탁을 재현한 베리띵즈의 ‘마주앉는 식탁’은 보는 것 만으로도 즐겁다. ‘가족과 함께 식탁에 둘러 앉아 본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나’ 문득 그리워진다. 금민정의 ‘비밀기지 만들기’는 다락방에 대한 추억을 환기한다. 지붕과 맞닿은 높고 좁은 다락방에서 아이들은 꿈을 키우곤 했다. 하지만 도심에서 나고 자란 아파트 세대들에게 ‘다락방’은 생소한 공간이다. 금민정은 바닥에 붙은 낮은 다락방을 만들어 공간에 대한 추억과 기억을 관객들과 함께 나눈다. 에스오에이SOA의 ‘자기 몸과 생각에 집중하다’는 화장실을 아름다운 사색의 공간으로 재해석했다. 인간의 몸에서 배출되는 가장 더럽고 지저분한 오물을 받아내는 화장실이 전시실에서 가장 깨끗하고 빛나는 공간으로 탄생했다. 하늘거리는 샤워 커튼과 빛나는 조명은환상적이다. 다가가면 자동으로 올라가는 변기 뚜껑과 그 위에 적힌 글귀는 사색을 유도한다. 집, 나의 쉴 곳은 어디에 제1전시실에서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추억의 집을 보여주었다면, ‘현재 사는 집’을 주제로 한 제2전시실에서는 삼포 세대의 불안과 물질화된 욕망이 농축된 집을 보여준다. 옵티컬레이스의 ‘확률가족’은 에코 세대(1979~1992)의 최대 독립 자금과, 에코 세대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로 이루어진 4인 가족의 향후 30년간의 가계 상황을 예측할 수 있도록 그래픽화한 작품이다. 부동산 조사 연구자와 그래픽 디자이너의 합작품인 이작품은 자신의 소득 및 대출 가능 금액과 부모의 증여 가능액을 합한 금액으로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집을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전시 공간의 바닥과 벽면을 활용한 입체적인 그래프는 관객이 그래프상의 꼭지점이 된 느낌을 받게 한다. 본격적으로 그래프 안으로 들어가기 전, 관객은 열 개의 문 중 자신의 소득 수준이 적힌 발판 앞에 있는 문에 선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적자를 의미하는 흰색 발판이 절반 이상을 채운 그래프를 마주한다. 숨이 턱 막힌다. 조혜진의 ‘섬’은 철거 지역에서 수집한 간유리와 철제대문을 이용해 주상 복합 빌딩을 만든 작품이다. 작품설명을 읽지 않았다면 이 세련된 설치물이 폐자재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 도시의 고급 개발 지역 역시 폐허와 쓰레기 더미 위에 지어졌다. 무너진 폐허에서 나온 폐자재를 고급 주거 문화의 상징으로 만든 작품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역설을 담아낸다. 그럼에도, 다시 집으로 제3전시실은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아카이브 전이다. 제2전시실에서 ‘집’에 대한 청년 세대의 불안감을 보여주었다면 제3전시실에서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대안을 모색한다. 현재 한국인들이 경험하고 있는 주택불안을 앞서 경험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가고 있는 일본, 스웨덴, 핀란드 등의 주택 정책을 패널로 소개한다. 또한 ‘집’과 관련한 50여 권의 서적과 새로운 마을형태와 대안 주택을 제시하는 건축가들의 평면도도전시된다. 많은 사람들이 동요로 알고 있는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은 존 하워드 페인 대본, 헨리 비숍 작곡의 오페라 ‘클라리, 밀라노의 아가씨’에서 불린 곡이다. 이 노래는 미국 남북 전쟁 때 전쟁에 지친 군인 사이에서 남군, 북군 할 것 없이 유행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집을 떠난 군인들이 불렀던 노래를 전시의 제목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나의 쉴 곳은 작은집, 내 집 뿐이네’라고 맘 편히 노래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전시의 제목은 ‘즐거운 나의 집’이다.
    • 조한결 / 2015년02월 / 322
  • 오도바이를 탄 조경가 조경가 고 이광빈의 1주기 맞아 추모전 개최
    작년 12월 26일부터 30일까지, 청담동의 갤러리 원에서는 조금은 생소하지만 특별한 전시가 열렸다. ‘오도바이를 탄 조경가’라는 제목의 이 전시회는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조경가 고故 이광빈(1972~2013)1을 추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그와 함께 공부하고 일했던 경신원, 김아연, 박희성, 배정한, 손방, 송영탁, 신준호, 안세헌, 오형석, 정욱주, 주신하가 준비하고, 가원조경, 현디자인,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91학번, 서울대학교 조경미학연구실이 후원한 이번 추모전에는, 고 이광빈이 생전에 설계를 하면서 그렸던 드로잉 수십여 장이 전시되었으며, 전시장 한쪽에는 그가 그림을 그렸던 작업실도 재현되었다. 또 ‘이광빈의 작업실’ 맞은편에서는 그가 음악 감독으로 참여했던 애니메이션 ‘서커스Circus’도 상영되었다. 고 이광빈은 ‘손 드로잉’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탁월한 능력을 지녔던 조경가다. 단지 손재주가 있었다거나 보기 좋은 그림을 그렸던 조경가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는 거의 모든 설계 구상과 작업이 컴퓨터 그래픽으로 생산되는 환경 속에서도 손 드로잉의 역할과 의미를 재조명하고 그 가치를 발견하고자 했다. 이광빈의 드로잉은 그가 생전에 발표했던 글 제목인 ‘드로잉, 탐구와 소통을 위한 미디움’(『LAnD: 조경·디자인·미학』, 도서출판 조경, 2006)에서 나타나듯 ‘탐구’와 ‘소통’을 위한 매체로 기능했다. 그는 자신의 드로잉이 설계안을 재현하는 그림보다는 설계 과정에서 ‘창조적 탐구를 위한도구’로, 또 설계 주체 및 여러 이해 당사자 간의 ‘소통수단’으로 작동하기를 원했고, 실제로 다양한 방식으로 그러한 탐구와 소통을 실험했다. 전시회가 마무리된 후, 여러 선후배와 함께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한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를 만나 조경가 이광빈과 이번 전시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 교수는 그의 20대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덩치가 꽤 컸어요. 근데 그 덩치에 안 맞게 여렸고요. 재즈를 즐겨 들었죠. 설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정말 ‘꾸역꾸역’했어요(웃음). 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죠.” 전시된 드로잉의 섬세함과 자신감에 차있는 선의 움직임에 놀라움을 표시하자, 김 교수는 “한 장의 드로잉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아보았나요”라는 질문을 역으로 던졌다. 고 이광빈이 그림 한장을 그리기 위해 들였던 시간을 알면 그리 놀랍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김 교수는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때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설계를 참 좋아했어요. 자리에 앉아서 계속 그렸죠. 그렇게 ‘꾸역꾸역’, 아주 섬세한 그림을 그리다가도, 어느 순간 ‘할리 데이비슨’을 타러 나가곤 했어요. 그러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또 그림을 그렸어요. 꾸역꾸역.”전시회의 기획 의도와 관련하여 김 교수는 “단지 한 개인을 추모하는 것에 그치지 않길 바랐다”며 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는 전시회가 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했다고 밝혔다. 50평 넘는 전시실에 모두 펼쳐놓을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정교한 드로잉은 그의 설계에 대한 열정과 꿈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했다. 그의 추모전이라는 것도 중요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드로잉을 통해 “설계에 대한 애정은 물론 관심조차 찾아보기 쉽지 않은 지금의 젊은 세대, 그리고 과거의 열정을 잃어버린 듯한 기성 세대 조경가들 모두에게 설계가 주는 즐거움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바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설계에 대한 열정과 고민의 흔적을 보여줄 수 있는 ‘드로잉 전’을 계속 기획하고 싶다는 생각도 밝혔다. “지금은 컴퓨터로 하는 작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이러한 ‘수작업’이 설계과정의 전부였던 시절도 있었다”며 각 세대를 대표하는 이들의 드로잉 작품을 모아 한 곳에 전시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아무래도 이러한 드로잉은 전시를 목적으로 준비된 것들이 아니고, 중간 단계의 결과물이다 보니 보관이나 수집, 분류하는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번 전시에도 방대한 양의 드로잉이 수집되었지만, 그의 사고의 깊이만큼 정교하게 분류하고 기록하기에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며, 조경 분야도 아카이빙archiving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최종 결과물들만큼 중간 과정이나 체계적으로 분류된 기록들에서, 조경이 새로운 차원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발판을 찾을 수도 있을 거라는 얘기였다. 조경가 이광빈이 좋아했던 음악가 빌 에반스의 가장 빛나는 시기로 평가받는 작품은 ‘익스플로레이션즈explorations’다. ‘탐험’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을 나타내며, 공간이든 음악이든 창조적인 무엇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 그 자체다. 고 이광빈은 드로잉 또한 그런 원동력을 바탕으로 설계자가 내적 사고를 통해 생산해내는 결과물이며 소통 수단이자 설계를 완성하는 도구라 했다. 그가 드로잉을 통해 실험하고자 했던 ‘탐구’도,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의 가치를 보여준다. 재즈를 즐겨 듣고, 키보드로 음악을 만들고, 외롭고 답답할 때면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세계를 탐험했던 ‘오도바이를 탄 조경가’ 이광빈, 그의 설계에 대한 고민과 열정은 수많은 드로잉 속에서 여전히 진행형이라 믿으며, 이번 전시가 훗날 그의 ‘탐구와 소통을 위한 드로잉’을 재평가하는 기반이 될 수 있길 바라본다.
    • 양다빈 / 2015년02월 / 322
  • [시네마 스케이프] 업 집은 그냥 집일 뿐이야
    어릴 적 꿈을 그대로 실현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꿈이 이루어지면 과연 행복할까? 대부분의 사람은 학창 시절에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 어른이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혹시 알게 되더라도 ‘나’의 행복은 이미 사회나 가족의 구조 속에 너무촘촘히 구속되어 있기 마련이다. ‘나’보다는 그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할 때가 많다. 언젠가부터 내 욕망으로 산다기보다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살아가는 건 아닌지 가끔 불안해진다. ‘업Up(2009)’은 평생 동안 꿈꾸던 신비의 폭포를 찾기위해 수많은 풍선을 매단 집을 타고 떠난 칼 할아버지와 꼬마 러셀의 모험담이다. 어린 시절, 칼은 말이 없고 소심한 아이였다. 우연히 말괄량이 소녀 엘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본인의 욕망을 드러내지 못하는 아이였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가 포도 소다 병뚜껑을 칼의 가슴에 달아주기 전까진 그랬다. 엘리가 어느 날 밤 창문을 넘어들어와 자기의 꿈은 남아메리카의 파라다이스 폭포로 탐험을 가는 것이고 폭포 옆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고 속사포 같이 쏟아내기 전까진 확실히 그랬다. 바로 다음은 어른이 된 칼과 엘리가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약 4분간 대사 한마디 없이 칼과 엘리가 함께 살 집을 수리해서 꾸미는 장면으로 시작해 그들의 일상, 그들이 함께 꾸는 꿈과 좌절, 할머니가 된 엘리가 먼저 세상을 뜨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시퀀스는 잔잔한 음악과 함께 한 편의 시같이 그려진다. 최근 개봉해서 감동을 준 독립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4분으로 축약한 듯하다. 몇 번을 다시 봐도 아프게 아름답다. 영화는 엘리가 세상을 떠나고 칼이 홀로 남겨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엘리의 부재가 그녀의 빈 의자와 항상 둘이 같이 앉았던 빈 식탁으로 표현되어 칼의 상실감이 전달된다. 칼과 엘리의 아름다운 목조 주택은 개발 사업으로 들어선 고층 빌딩에 둘러싸여 있다. 칼은 집값을 두 배로 쳐 준다는 제안도 거절하고 수없이 많은 자물쇠를 걸어 잠근 채 공사로 인한 소음과 먼지 속에서 살아간다. 그에게 집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엘리의 등의자, 엘리의 사진, 엘리와 같이 동전을 모은 저금통, 엘리와 함께 꾼 꿈이 담긴 ‘엘리’ 그 자체다. 결국 집을 비워주고 요양원으로 떠나는 날, 칼은 거대한 풍선 다발을 이용해 집을 하늘로 띄워서 탈출에 성공한다. 오래전부터 엘리와 함께 가고 싶었던 파라다이스 폭포로 향한다. 형형색색 아름다운 풍선이 하늘로 튀어 오르고 집을 대지에 고정했던 장치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오래된 목조 주택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장면은 가히 압도적이다. 주변 고층 빌딩 사이에 고립된 섬 같았던 칼의 집은 풍선으로 띄워져 보란 듯이 자유롭게 날아간다. 형형색색의 원색 풍선 그림자가 회색 빌딩의 유리창을 화려하게 물들인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윌리엄 켄트와 스토우 정원
    #36 후원자 – 샤프츠베리 백작 때 1712년 11월 장소 나폴리에 있는 샤프츠베리 백작의 저택 등장인물 샤프츠베리 백작, 비서, 윌리엄 켄트 영국의 정치가이자 저술가, 초기 계몽철학자, 박애주의자였던 샤프츠베리 백작Shaftesbury, 3rd Earl of(본명은 Anthony Ashley Cooper, 1671~1713)은 그의 독특한 윤리적·자연주의적 종교관으로 후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알렉산더 포프가 그를 흠모했다. 1712년, 백작은 지병인 천식을 치유하기 위해 1년 가까이 나폴리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이 무렵 영국은 헨리 8세 이후 근 200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구교와 신교 사이의 분쟁을 뒤로 하고 앤 여왕의 통치하에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었다. 겉으로는 평화가 왔으며 구교도와 신교도도 큰 갈등 없이 화합하며 지내는 듯했다. 문제는 앤 여왕이 후사가 없다는 점이었다. 만약에 앤 여왕이 갑자기 승하하는 경우, 후사 문제로 다시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있었다. 비록 1701년에 다시는 가톨릭 왕이 영국의 왕좌를 차지할 수 없다는 법이 제정되었지만1 당시 프랑스에 망명하고 있던 가톨릭 왕 제임스 3세2는 자신의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고 소위 자코바이트Jacobites라 불리는 그의 추종자들 역시호시탐탐 반정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샤프츠베리 아, 드디어 왔구나. 이번엔 로랭이군. 님프와 파우누스와 사티루스가 있는 풍경이라… 아주 좋군. 이번에도 윌리엄 켄트William Kent 군이 심부름을 했다지? 켄트 군은 아직 있나? 비서 예, 마이 로드. 제가 식사나 하고 가라고 해서 지금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샤프츠베리 켄트 군은 로마에서 그림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지? 미술품 구매를 중재하는 건 체류비를 벌기위해서라고 했고. 그 친구 스승이 누구인가? 비서 주세페 키아리Giuseppe Bartolomeo Chiari(1654~1727)라는 마스터 밑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3년 전에 런던에서 존 탈만John Talmann(1677~1726)과 같이 왔답니다. 존탈만이 젊은 화가 지망생을 몇몇 모아 팀을 짜서 왔다고 합니다. 모두 키아리 밑에서 공부하고 있고요. 샤프츠베리 존 탈만? 윌리엄 탈만William Talmann(1650~1719)의 자제? 수집가 윌리엄 탈만의 자제란 말이지. 흐음. 골수 가톨릭 가문이 아닌가. 그림을 수집하러 유럽에 다닌다는 핑계를 대고 사실은 제임스 3세를 옹립하기 위한 거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있어. 로마에 아마 연락책이 있는 모양이야. 비서 (사색이 되어) 마이 로드! 샤프츠베리 걱정 말게. 늘 그래왔지 않나. 이번에 거사를 한다 해도 실패할 걸세. 영국에서 가톨릭은 이제 더 이상 세력을 구축할 수 없어. 그나저나 켄트 군도 가톨릭인가? 그 친구 어딘가 호감이 가던데. 비서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그냥따라 왔을 겁니다. 그 친구 좀 백치 같은 데가 있어서 정치 쪽으로는 통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샤프츠베리 그렇다면 다행이네. 이번에도 수고비 넉넉히 챙겨주게. 참, 자네도 잘 알다시피 우리 영국이 지난 몇십 년 동안 스페인,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연거푸 승리하면서 지금 유럽의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지 않은 가. 다만 문화적으로는 크게 내세울 게 없네. 미술이나 건축은 이탈리아, 프랑스에 비해 백 년 이상이 뒤져 있어. 음악은 독일이 앞서가고 있고. 그러니 우리 귀족들이 능력 있는 젊은이들, 특히 서민 출신의 젊은 인재들을 적극 후원해야 한다네. 그게 우리의 의무야. 앞으로도 켄트 군에게 계속 주문을 넣게. 비서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아 참. 음악 말씀을 하시니 생각나는데 미스터 헨델이 런던으로 아주 이주했다는 데요. 하노버 왕실에서 많이 노하지 않을까요? 샤프츠베리 그거 일이 재미있게 되었군. 하노버 왕실에서 미스터 헨델을 곧 따라올 걸세. 하하하. 비서 네? 샤프츠베리 이 친구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야. 생각해보게. 여왕 폐하께서 옥체가 미령하시니 조만간 후사 없이 승하하실 가능성이 크지. 그렇다면 다음 왕좌에는 누가 앉겠나. 계약대로라면 하노버 왕실에서 영국 왕위를 계승하게 되어 있지 않은가. 두고 보게 독일인이 영국 왕좌에 올라앉을 날이 머지않았네. 어허, 그렇게 이상한 표정 지을 것 없네. 유럽 왕족들이 따지고 보면 모두 친인척 관계 아닌가. 조지 왕은 재목이 썩 시원치 않다지만 그 아들과 며느리는 똘똘해. 특히 왕자비 캐롤라인이 대단히 명민하고 씩씩해요. 라이프 니츠가 애지중지하며 기른 제자라네. 그런 여인이 나중에 왕비가 된다면 영국에 해 될 일 없을 걸세. 그건 그렇고 저 그림이 볼수록 마음에 드는군. 비서 저, 마이 로드. 오늘 크라플리 경Sir John Cropley(1633~1713)에게 편지 쓰신다고 하셨는데 그건 어떻게 할까요? 샤프츠베리 참, 그랬지. 잊을 뻔했네. 구술할 테니 받아적게나. 인사말은 늘 하던 대로 하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이렇게 쓰게. “경께서 지난 번 편지에서 말씀하시길 새로 지은 저택에 어울리는 정원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지요. 지상 낙원을 만들어 여생을 쾌락하게 지내고 싶다는 데에 저도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송구하나 저는 신께서 부르실 날이 머지않은 듯합니다. 먼저 가서, 신의 정원에서 경과 함께 거닐 날을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신의 정원은 어떤 곳일까요? 곧 그곳에 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오늘 새로 그림 한 점을 주문해서 받았습니다. 그걸 보고 있노라니 바로 저런 곳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강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곳의 풍경을 그린 것 같습니다. 저 멀리 푸른 산이 아득히 보이는 것을 보니 아마도 만灣인가 봅니다. 강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평화롭게 흐르고 있습니다. 주변의 능선에는 아름다운 빌라나 성이 서 있는데 암울한 고딕 양식도 아니고 폐허도 아닙니다. (가만, 그런데 저 원형 신전은 폐허가 아닌가. 쯧쯧, 옥의 티로구먼) 그래요. 모든 사물이 미소를 짓고 있는 듯합니다. 물은 잔잔하고 훈풍이 수면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갑니다. 장면 앞에는 큰 나무가 서서 그늘을 드리워줍니다. 해가 이미 반쯤 넘어가 노을이 물들기 시작하고 님프들이 동굴을 떠나춤을 추러 나타났습니다. 파우누스와 사티로스도 이에 합류했고요. 파우누스는 플루트를 연주하고 사티루스는 젊은 님프에게 춤을 청합니다. 이 어찌 즐거운 낙원의 정경이 아니겠습니까.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고정희[email protected] /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 2015년02월 / 322
  •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큰 도시, 작은 도시
    뉴욕은 지나치게 크다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상위 도시들은 시간에 따라 크게 바뀌지 않았다. … 이들은 대체로 부유한 나라에 있는 중간 크기의 도시다.”1 이러한 영국 『이코노미스트』 기사에 따르면 ‘도시 규모’와 ‘살기 좋은 환경’ 사이에는 꽤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일까?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크기의 부유한 도시들—이를테면 멜버른, 비엔나,밴쿠버, 헬싱키 등—에서 공통적으로 살기 좋은 환경이라는 특질을 발견할 수 있을까? 반대로 일정 규모를 초과하는 대도시는 그 거대함으로 말미암아 불가피한 도시 문제로 신음해야 할 운명일까(그림1) 흥미롭게도 이미 1990년대 말 미국 시카고의 리처드 데일리 전 시장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처럼 보인다. “뉴욕은 지나치게 크다.” 데일리 시장은 … 두 팔을 양 옆으로 쭉 펴며 덧붙였다. “마찬가지로 로스앤젤레스도 너무 크다. 그 외의 다른 도시들은 너무 작다. (우리) 시카고가 딱 적절한 크기다.”2 이러한 “딱 적절한 크기”의 도시에 대한 추구는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신규 도시 개발에 대한 수요가 큰 시기에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를테면 중국에서는 개혁 개방을 전후로 1970~80년대에 적정 규모의 도시에 대한 논의가 정점에 다다른다. 미국 밀워키 대학교 데이비드 벅 교수나 하와이 대학교 궉인왕 교수에 따르면 특히 작은 도시(小城镇 xiǎo chéngzhèn)에 대한 정책적 추구가 이 시기에 두드러졌으며, 이는 중국에서 큰 도시의 수에 비해 작은 도시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3 작은 도시에 대한 정책적 선호는 1980년 개최된 국가도시계획 콘퍼런스에서 잘 드러났다. “큰 도시의 성장을 억제하고, 중간 도시의 확장을 적절히 추구하며, 작은 도시의 개발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라”는 원칙이 여기서 선언되었고,4 같은 해 12월 중국 도시 개발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국무원에서 이를 승인하게 된다.이렇게 한 지역이나 국가에서 몇몇 도시가 과도하게 성장하는 것을 규제하자는 주장을 반-수위도시론anti-primate city 혹은 반-대도시론anti-metropolitanization이라 부를 수 있다. ‘수위 도시’란 한 국가나 지역에서 인구, 경제, 일자리, 서비스 등의 측면에서 그 비중이 지배적인 도시를 말한다. 이를테면 한국에서는 서울(혹은 수도권)이, 중국 양쯔 강 델타 지역에서는 상하이가 수위 도시에 해당한다(그림2). 국내에서도 수도권 과밀 해소나 지역 균형 발전과 같은 일종의 반-수위도시론이 서울의 행정 기능 분산이나 지방 거점 도시 육성을 통해 구체화된 바 있다. 좀 더 지역적으로는 서울주변에 분당(계획 인구 39만 명)이나 일산(27만 명)과 같이 비교적 큰 규모의 신도시 개발이 가져올 폐해에 대한 우려가 팽배한 적이 있다. 이에 따라 수도권 신도시 정책을 인구 10만 이하의 미니 신도시 건설로 선회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안건혁 교수는 “자족적 신도시의 적정 인구 규모”에 대해 20~30만 명을 그 기준으로 삼아도 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인구 집중은 해당 지역이 여러 가지 도시적 매력이 있음을 방증하기 때문에 인구를 강제로 분산시키기보다는, 제한된 수의 신도시를 만들고 인구 집중에 따른 여러 문제를 계획적으로 잘 해결하면된다고 주장했다.5 안 교수의 주장이 옳다. 다수의 미니 신도시를 건설하여 인구 집중의 폐해를 해소하자는 주장은 억지스러워 보인다. 더욱이 현재 분당이나 일산의 규모가 너무 커서 통제 불가능할 정도의 문제가 일어난다고 보기도 어렵다. 적정 규모 이론 주변 사람들에게 한 번 질문해 보자.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는 큰 도시입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시 기억을 더듬은 후 이에 답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떠한가. 지금의 도시 규모가 적절합니까? 혹은 인구 천 만의 도시와 백 만의 도시 중 삶의 다양성, 주거 만족도, 출퇴근의 편리성을 모두 고려하면 어느 쪽이 더 좋습니까? 이쯤 되면 난처하다. 적정성 자체와 여기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에 대한 가치 판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도시의 적정 규모에 대한 고민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정치학』에서 도시 규모는 일정한 하한선과 상한선 사이에서 결정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도심지 면적의 하한선, 즉 최소 규모는 도시민들이 요구하는 음식이나 땔감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최소 영토로 결정되며, 상한선은 적의 침입으로부터 도시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최대 면적이라고 보았다.6 꽤 그럴듯한 논리임에도 여기에는 큰 약점이 있다. 물론 도시가 최초로 형성될 시점에 규모의 상·하한선이 존재한다는 설명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상·하한선이라는 기준 자체가 시대와 관습의 산물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땔감을 구하는 방법이나 효과적인 방어를 위한 영토라는 기준은 시대에 따라 크게 다르다. 정확한 기록이 없는 상태에서 과거로 돌아가 하나의 규모에 대한 기준이 가장 효과적이었는지를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한 시대의 상·하한선은 다른 시대에 큰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조선 초 한성부의 방어를 위한 적정 성곽 규모가 조선 중기 임진왜란 시기에 방어를 위한 최적의 성곽 규모와 얼마나 다를지 떠올려 보자. 적정 규모에 대한 논의는 이와 같은 시·공간적 맥락성과 함께 도시 규모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는 여러 가지 잠재적 요소—이를테면 도시의 지형적 특성, 주요 이동 수단의 기술적 수준, 또는 한 사회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도심지 크기나 과거 도시 개발의 관습—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 김세훈[email protected]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도시설계전공 교수 / 2015년02월 /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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