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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누비는 라이더를 위한 안내서
자전거 타고 싶은 도시
시크한 라이프스타일의 대명사, 자전거
이 글은 사실 사진 한 장에서 출발했다. 선명한 체크무늬 스타킹을 신은 늘씬한 다리가 클로즈업된 사진 말이다. 자세히 보면 그녀의 굽 높은 샌들은 빨간색 자전거의 페달 위에 올려져 있다. 그녀의 발밑에는 “자전거가 아닌, 자전거를 타는 당신에 관한 이야기”라고 쓰여 있다. 덴마크의 사진작가이자 ‘코펜하게나이즈’라는 디자인컨설팅회사의 CEO인 미카엘 콜빌레-안데르센Mikael Colville-Andersen의 저서 『사이클 시크Cycle Chic』1의 표지 이미지다. 자전거 타기는 친환경적이고 교통 체증을 극복하고 운동 효과가 있고 등등…. 그러나 이 모든 이유보다 우리를 더 매혹시키는 것은 소위 ‘에지’라고 불리는 ‘멋’ 아니겠는가. 자전거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 도시에서 형광색 저지와 일명 쫄바지(사이클링 하의)는 안전한 라이딩을 위한 필수품이겠지만, 선뜻 입고 나서기 주저되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 『사이클 시크』에 등장하는 수많은 라이더들은 “여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목적지에 어울리도록 옷을 입”고 있다. 이 책의 매 페이지는 도시의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히잡을 두른 이슬람 여성이든 양복을 입은 신사이든 짐을 실은 아주머니이든,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에도 비가 오는 여름에도, 세련되고 우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것을 거듭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섹스 인 더 시티’를 보면서 그녀들이 걸어 다니는 뉴욕의 거리와 카페의 브런치를 선망하게 되듯이, 이 책은 ‘이것 봐, 자전거를 타는 이 사람들, 정말 멋지지 않아’라고 속삭이며 자전거의 세계로 유혹하는 듯하다.
한 파리의 유학생은 파리의 공공 자전거인 벨리브가 성공을 거둔 이유는, 파리 시민들의 자부심을 미묘하게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콧대 높은 파리에서 무언가가 유행이 되려면 감각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즉, 새롭고 특출하고 무엇보다 아름다워야 하며, 또 ‘그럼에도 나는 문명인임’을 표출할 어떤 윤리가 가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혁신적인 대중교통 수단이자 환경친화적이고 빈부에 상관없는 접근 용이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공정하며, 무엇보다 자유롭다livre는 상징성을 표방하는 벨리브는 그 출신 성분부터가 유행에 민감한 파리지앵들에게 강렬하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2 이제 자전거는 ‘멋스러움’과 ‘정치적인 올바름’이 절묘하게 결합된 문화를 형성하며 그 영토를 넓히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사이클 시크 선언문’은 자전거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살짝 비틀며 넘어서고 있다. 몇 가지만 옮겨 보면, “어떤 경우에도 속도보다 스타일을 선택”하고, “도심의 풍경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시각적으로 일조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며, “나의 개성과 스타일을 반영한 자전거를 선택”한다. “내 자전거 가격이 옷차림의 총 가격보다 높을 정도로 유지하는 일은 없도록 노력할 것”이며, “주류 자전거 문화의 기준에 맞추어 부품을 달 것이며” “그 어떤 ‘사이클 복장’도 소지하거나 착용하지 않을 것이다” 등이다. 일견 스타일만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상 속에서 감당 가능한 보편적 자전거 문화, 그렇지만 매력적인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고자 하는 ‘사이클 시크’ 운동의 지향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번역자인 시인 김경주는 “도심에서 속도를 잃어버리는 일은 거의 공포와도 같다. 일상과 우리 주변은 더 빠른 속도를 갖고 싶은 열망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우리는 자본이 만들어낸 그 수많은 속도 값에 대가를 치르며 살고 있다. 더 빠른 자동차, 더 빠른 배달과 결제, 더 빠른 컴퓨터, 그런 점에서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느끼며 도심을 여유롭게 가로지르자고 외치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아이러니가 얼마나 우리의 일상을 회복시키는지 깨닫게 한다”고 말한다. 도시에서 속도의 변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도시 사이의 거리를 좁힌다. “자전거족들은 도시의 환경과 얼굴을 마주할 뿐만 아니라 동료시민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린다.” 자전거는 느린 속도로 우연한 만남과 스침을 주선하고, 도시의 리듬에 더욱 민감하게 섞여 들어가게 만든다. 각 도시의 개성과 지역성은 자전거족의 일상적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리우데자네이루의 한가롭고 평온한 해변 문화권에서는 북유럽의 매서운 바람과 맞서야 하는 코펜하겐과는 매우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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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시를 달리다
자전거 타고 싶은 도시
아주 어렸을 때, 무언가 정의감에 타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인도에 함부로 주차된 차들을 필름 아까운 줄 모르고 사진 찍고 다녔었다. 자동차에 대한 반감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을까. 거칠게 운전하는 기사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정지선을 지키지 않는 차들이 불만스러웠다.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대수는 1997년에 1천만 대가 넘었고, 2014년에는 2천만 대가 넘었다고 한다. 교통 체증은 일상화되었고, 주차난은 더 심각해졌다.
도시의 골격이 자동차 통행을 더 빠르게 하기 위해 재편되는 와중에도 보행권에 대한 목소리 또한 커져갔다. 고가도로가 걷히고 청계천이 복원되었고, 덕수궁 돌담길과 홍대 앞처럼 차도를 좁혀 ‘걷고 싶은 거리’, 보차 공존 도로를 조성하였으며, 수원 행궁동은 한 달간 차 없는 거리를 실험해보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한강변에만 놓였던 자전거 도로가 도심에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통학 및 출퇴근을 위한 주요 수단으로 사용했던 터라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지는 것에 많은 기대를 했다. 하지만 좀처럼 길게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지더라도 시설물에 가로막히거나 주차된 차로 인해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해 답답한 적이 많았다.
그러다 우연히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는 온라인 카페를 알게 되어 자전거로 전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많은 짐을 자전거에 싣고 여러 나라를 누비는 모습은 당시 군인이었던 나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자전거 교통 분담률이 30%에 달하는 도시에서 도시민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며 그들의 자전거 문화를 몸소 체험하고 싶었다. 조경, 건축 작품 답사와 식도락 여행을 겸하면 일석삼조라 생각되었다. 건축 공학을 전공한 같은 부대 친한 동기에게 같이 가자고 설득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짐을 실을 수 있는 자전거
자전거 여행을 위해선 텐트, 침낭, 옷 등 많은 짐을 실을 수 있어야 했다. 흔히 ‘짐받이’라고 부르는 리어 랙rear rack이라는 것을 설치하고 리어 랙에 부착하는 전용 가방인 패니어pannier를 구입해서 짐을 실을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이런 가방의 사용이 일상화되어 있으며 디자인이 다양해서 패션 아이템으로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어린 아이를 태우거나, 짐을 실을 수 있도록한 카고 바이크cargo bike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자전거에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다는 것은 자전거가 자동차의 운반 기능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자전거 도난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여행용 자전거를 만드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스마트폰 거치대, 휴대용 스피커, 풍력 발전기, 태양광 발전기, 전조등, 후미등, 사이드 미러 등 다양한 부품들을 자전거에 부착하면서 자전거여행을 떠나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여행 시작 6일만에 파리에서 자전거를 도둑맞고야 말았다.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다행히 마음을 추스르고 대형 마트에서 적당한 자전거를 구매할 수 있었다. 자전거 도난은 유럽에서도 빈번한 일이다. 파리의 대여 자전거인 벨리브velib는 2012년 한 해에만 전체 자전거 1만4천 대 중에서 무려 9천 대가 분실되거나 파손되었다고 한다. 파리에서 구매한 자전거도 여행 막바지에 이르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또 한 차례 도둑 맞았다. 웬만큼 좋은 자전거는 밖에 묶어두고 하룻밤을 보내기 어려운 듯 싶다.
자전거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안전한 실내에 자전거를 보관하거나 CCTV가 달린 자전거 보관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잠시 밖에 세워둘 경우에는 끊기 힘든 종류의 자물쇠를 이용하여 프레임을 거치대에 고정하는데, 퀵릴리즈로 쉽게 바퀴를 분리할 수 있는 경우에는 바퀴 살 안쪽으로도 통과시켜야 안전하다. 자전거를 통째로 가져가기 어려운 경우에는 바퀴와 안장 등 다양한 부품을 뜯어가서 프레임만 남기도 한다.
이수창은 1984년생으로 생태 도시를 꿈꾸며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했으며 동 대학원 도시조경설계연구실에서 공정 여행과도보 여행 관련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부대 동기와 함께 91박 92일 동안 유럽 곳곳을 자전거로 누볐고, ‘달려라 꿈벅지(꿈꾸는 허벅지)’라는 타이틀로 시작된 자전거 답사 여행은 ‘시즌2 - 호주’와 ‘시즌3 -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 현재 충남 서천에 위치한 국립생태원에서 야외 식물 관리 업무를 담당하며 온몸으로 자연을 다시 배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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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시 설계의 황금률
자전거 타고 싶은 도시
문제 제기: 도시에서 자전거는 불안하다
우리나라의 도시 자전거 도로는 보도 위 겸용 도로가 대부분이다. 보행자가 조심스럽고 단절되어 실효성이 없다, 최근에는 차도 위 전용 도로를 설치했지만 민원으로 철거되기도 하고 불법 주·정차 차량 등에 위협받는다. 이와 같아서는 자전거 도로는 있으나 마나 한 무용지물이다. 그 배경에는 자동차 중심 도시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도로 중간중간 자동차 진입로를 허용하고 있는 ‘자동차 고속도로’의 운영 규칙이 ‘사람의 거리street’에까지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본질적이며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자전거 도시를 건설할 수 없다. 사람 중심의 도시를 건설할 수 없다. 다음에서는 그 동안의 자전거 도시를 연구하며 찾아낸 황금률을 소개한다. 자전거가 자동차와의 경쟁과 공존을 통해 신뢰성 있는 ‘도시 교통수단’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설계적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개념과 유형: 자전거 도로를 넘어
자전거는 자동차와 경쟁하기 이전에 공존하는 도로 인프라를 필요로 한다. 도시의 자전거 도로가 문제가 된 것은 공존의 개념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자전거 전용 도로는 경쟁력은 있지만 단절된 도로를 만들 수 있다. 단절되지 않은 자전거 도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 ‘자전거이용활성화에 관한 법률’의 ‘자전거도로’ 개념을 뛰어 넘어 ‘도로교통법’ 제13조의 자전거 통행권이 보장된 최우측 차로 등을 포괄할 수 있는 ‘자전거길’이라는 개념으로 확대해야 한다. 미국도로교통공무원협회American Society of State Highway and Transportation Officials (ASSHTO)에서도 자전거길bikeway이란 용어를 자전거 도로의 상위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ASSHTO(1999)에 따르면 자전거길이란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모든 도로 또는 도로의 일정 부분 등을 포괄한다. 자전거길이라는 개념 속에서 보면 자전거 전용 도로bike track와 자전거 차로bike lane와 아울러 자전거 루트bike route라는 유형을 도입할 수 있다. 자전거 루트는자전거가 다른 교통수단과 도로를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고 공유하는 유형이다. 실제로 자전거 도시에서 가장 폭넓게 적용되는 부분이 자전거 루트라는 개념이다. 지금 서울시와 경찰이 추진하는 존30, 안전행정부에서 법제화한 자전거우선도로, 보행우선구역, 공유 공간haredspace, 보차 구분이 불가능한 골목길, 공원 산책길 등이 모두 자전거 루트가 적용되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도시 자전거길 설계에도 보편적 황금률이 있다:
대접받기 위해 대접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자전거 도로 하면 자동차와 분리하는 안전가드레일 등 교통사고 예방 장치부터 생각한다. 자전거가 집에서 나오는 국지도로, 골목길 연계 교통망, 목적지의 보관 편의 시설이 없는데, 간선도로의 도로 다이어트와 분리 시설로 자전거가 자동차와 ‘갈등 관계’를 형성한다. 분리 시설로 전용 도로만 설치했다가 철거된다. 이는 공유 도로shared roadway 개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공유 도로는 교통 조사와 행태 분석 등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설계 구간별로 자동차와 자전거의 공존과 경쟁의 황금률을 적절하게 나누어 설계해야 한다. 교차로에서는 ‘기다림과 배려의 공간’, 목적지 환승지 주변에서는 ‘편재성 있는 완충 지대’를 설치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을 조화롭게 운영할 수 있는 정보 안내 네트워크로써 자전거 인프라는 완성된다.
백남철은 1994년 우리나라 최초로 ‘자전거 도로의 계획과 설계’에 관한 학위 논문을 썼다. 이후에 녹색교통, 걷고싶은도시연대, 서울환경연합 등에서 지속가능한 도시 교통을 위한 시민운동을 해 왔다. 또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국가 기준으로서 자전거 도로설계 기준을 만들면서 현장 교통 관리를 통해 실용적인 교통기술 개발에 기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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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자전거 타기가 정착되려면
자전거 타고 싶은 도시
들어가며
춘사불래춘春使不來春. 봄은 와있으나 봄은 아직 멀었다는 의미이다. 이 글을 쓰는 3월 초의 날씨이기도 하지만, 자전거 타기가 그러한 듯싶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는 듯하지만, 유럽의 선진국과 비교해서는 아직 못 미친다. 지난 몇 년간의 분위기로 보아하건대 금방 자전거길이 사람들로 넘쳐날 듯도 싶은데 그렇지않은 것을 보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자전거 타기는 언제나 정착될까?
지구온난화에 대한 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의 과다사용으로 인한 기후 변화 문제는 이제 강 건너 불이 아니다. 교통 분야에서도 지속가능성은 강력한 화두가 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우리나라 교통 정책의 목표가 자동차 위주의 인프라 및 운영 체계 구축이 었다면, 그 결과는 교통 혼잡뿐만 아니라 환경 오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교통 혼잡으로 인한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지구온난화로 대변되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가능 교통을 향한 시선 전환이 필요함은 이제 모두가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지속가능한 교통수단의 하나로, 녹색 패러다임을 충족할 수 있는 녹색 교통수단은 장기적으로는 전기자동차나 수소자동차와 같은 새로운 교통수단이 가능하겠으나 단기 문제 해결에 있어서 현실적으로는 환경친화적인 교통수단인 자전거가 답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것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자전거의 장점은?
자전거는 개인 교통수단이다. 승용차와 달리 평균 주행속도가 15km/h 미만으로, 통행 시간이 짧고, 통행거리도 수 km 내이다. 그래서 주로 통학이나 단거리쇼핑에 이용된다. 따라서 저비용 고효율의 도어투도어door-to-door 교통수단이다. 또한 자전거는 작기 때문에 자동차에 비해 주차 공간도 적게 차지한다. 자전거는 자동차의 26배, 전철의 14배, 버스의 2배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으며 자동차 수요 억제를 통해 자동차 배출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 통행 비용도 줄이고 자전거 이용이 활성화되면 자동차 교통량이 감소되어서 교통 정체를 해소할 수도 있다. 더불어 자전거는 여가활동을 위한 훌륭한 수단으로 자전거를 통하여 건강과 체력을 증진할 수 있다.
우리나라 자전거 현황은?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을까? 도시마다 다르고 조사 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2010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1.2%가 조금 넘는다. 국토교통부 조사치는 2% 정도로 조금 더 높다. 그래서 자전거를 잊힌 수단forgotten mode이라고 한다. 요즘 사람들은 자전거를 레저용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좀 오래된 자료지만, 한국교통연구원에서 2007년 조사한 결과를 보아도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절반이 자전거를 레저형으로만 이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1980년대까지만 해도 당당한 교통수단이었던 자전거가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개발 시대를 지나며 자동차에 밀려났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자전거보다 편리하고 멀리 간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닌가?
그럼 정부 정책은 어떨까? 대한민국의 공식적 자전거 정책은 1995년, ‘자전거이용활성화에 관한 법률’ 이 공포된 이후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법률은 자전거도로 및 자전거 주차장 등 자전거 이용 시설의 설치·유지관리 등에 관한 사항과 자전거 도로의 이용 방법을 규정하여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과 편의를 도모하고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이후 많은 자전거 관련 정책이 입안되어 집행되었으나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처음에는 중앙 정부 위주로 추진되었으나, 2003년 이후 우리나라 자전거 정책은 지자체 위주로 전환되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중앙 정부가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기도 했으나 기본적으로 자전거 정책은 지방 사무로 지자체장의 관심에 따라 상대적 격차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도시의 물리적 특성 등에 따라 이용 현황에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최근 서울시와 창원시 등에서 지자체장의 의지로 활성화 조짐이 있는 것은 다행이다.
신희철은 현재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이며, 국가자전거교통연구센터장을 역임했다. 행정안전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경기도녹색성장위원회 등 다수의 위원회 위원이었고, 현재도 대전시 등의 자전거활성화위원회 위원이다. 국내 대부분의 국가 자전거 정책을 입안했고, 국내 거의 모든 도시의 공공 자전거 계획을 수립하거나 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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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위한 도시에서 사람을 위한 도시로
자전거 타고 싶은 도시
지속가능한 도시로 가는 지름길
우리는 지금 작은 행성에 지나지 않는 우주선 지구호에 탑승해 살고 있다. 이 지구호가 난파되는 것을 방지하고 오랜 세월 동안 큰 무리 없이 항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능한 한 모든 자원을 소비하고 오염시키는 ‘선형의 물질대사 도시’를, 투입과 배출을 최소화하고 재생을 극대화하는 ‘순환형 물질대사 도시’로 점진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이는 우리가 도시를 하나의 ‘닫힌 계’라는 전제 아래 소비를 줄이고 자원 재활용을 극대화하면서 도시의 전반적인 효율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한 이것을 이루기 위한 열쇠는, 지금까지 진전된 국제 사회의 논의와 경험을 토대로 할 때, 우리가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어 가는 것임을 뜻한다.
필자는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구현해 가는 성공의 열쇠는 다른 어떤 변수보다 교통에 달렸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토지이용 계획과 교통 계획을 통합시켜 우리가 사는 삶터를 고밀도 도시로 만들고, 도시 내에서 자가용 자동차의 통행량을 줄이고 속도를 저감시키며 에너지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방안이 바로 교통에 농축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위해 주거·상업·공공 기능 등이 혼재된 복합용도 개발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단일 기능 개발과 자동차의 지배력을 배제하려는 노력을 도시 안에서 다양하게 동원해 적극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한 첫 걸음으로 새롭게 도로 건설을 하거나 도로 폭을 넓히는 것이 교통 정체라는 질병을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생각하는 그릇된 고정 관념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많은 사람이 흔히 드는 비유처럼 허리띠를 조금 푼다고 비만이 해결되고 코를 넓힌다고 코 막힘이 치료되지 않듯이, 복잡한 도로의 수용 능력을 늘려 준다고 실제로 차량 흐름이 빨라지거나 개선되지 않음을 현실 속에서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도로를 폐쇄하거나 가로를 좁게 둔 채 건물을 집약적으로 배치하고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장려하면 교통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거주하는 주민들도 보다 안전하게 살 수 있다.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와 같은 인식의 대전환이 이루어질 때 우리 앞에 새로운 세상이 좀 더 빨리 열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살고 싶은 도시는 승용차가 절대 군주처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괴물과 같은 도시가 아니다. 반대로 보행·자전거·대중교통 등의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주거 지역과 상업 지역에 대한 접근성을 제고하면서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고 이용 수요를 극대화할 수 있는 도시가 우리가 꿈꾸는 도시이다. 동시에 교외화에 의한 도시의 평면적 확산을 억제하고 도심공동화를 방지할 수 있는, 작은 행성에 더욱 적합한 유형의 도시가 우리가 꿈꾸는 도시이다. 이것은 최근에 국내에서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대중교통 지향형 도시 개발TOD’이나 ‘현명한 성장 정책Smart Growth initiatives’ 등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실현가능하다.
이러한 노력과 병행하여 다양한 교통 정온화 조치를 취하고, 차량 진입 금지 지구를 지정·관리하거나 주차장을 폐쇄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교통 수요 관리 정책을 추진하며, 보행이나 자전거와 같은 녹색 교통을 진작시키는 일도 적극 전개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도시 내에서 여러 장소를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브라질 꾸리찌바의 ‘꽃의 거리’와 같은 보행자 전용 거리나 광장을 만들어 운영하고, 길과 건물의 관계도 자동차가 아닌 사람 중심으로 재설정해야 한다. 대도시 가로변의 많은 건축물, 특히 대형 건물은 드나드는 차량이 보행자의 흐름을 끊고 관상목을 심거나 접근이 어려운 조각품을 배치해 건물을 더욱 배타적으로 만들고 있을 뿐 아니라 길과 아주 유리된 장소로 만들고 있다. 인간은 이런 폐쇄적인 건물보다 길과 바로 붙어 열린 형태로 존재하는 개방된 건물이 있을 때 더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우리가 자동차로부터 해방된 도시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시급한 것이 길과 건물이 서로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안을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박용남은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으로, 지역화폐, 공동체은행, 내셔널 트러스트와 같은 다양한 대안 운동을 도입·정착시키는데 이바지해 왔고, 국내에 생태교통도시를 도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저서로는 『도시의 로빈후드』, 『꾸리찌바 에필로그』, 『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 『꿈의 도시 꾸리찌바』 등이 있고, 최근에는 전국의 수많은 지방자치단체에 정책 자문을 해주면서 외국의 유명 생태·환경도시, 저탄소도시, 창조도시 등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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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고 싶은 도시
Bicycle City
자전거는 이제 단순한 레저의 차원을 넘어섰다. 주요한 도심 이동 수단이자 녹색 도시의 대표 아이콘으로 떠올라, 최근에는 영국의 ‘런던 사이클 슈퍼하이웨이London Cycle Superhighway’와 같은 혁신적인 자전거 위주의 교통 시스템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도 매력적이지만, 자동차 위주의 교통 패러다임에 대한 반성이 자전거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한 덕분이다. 세계 주요 도시의 자전거 인프라는 사람들의 일상과 자전거를 더욱 긴밀히 연결시켜 색다른 도시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자동차와 전혀 다른 속도로 기존과 다른 문화 지형도를 그려가고 있는 자전거가 이제는 도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는 그 결이 무척이나 다양하다. 지구 온난화와 같은 거창한 담론과 결부되기도 하고, 보행자와 함께 느린 속도를 대변하는 역할도 떠맡고 있다. 누군가에겐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받았던 애틋한 추억의 한 페이지이면서, 또 다른 이에겐 페달을 밟는 것 자체가 목적이자 기쁨이 되기도 한다.그린 시티, 에너지 문제, 대안적 교통수단, 자출족(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이들), 데이트 등 자전거의 앞뒤에 매달리는 단어의 스펙트럼도 폭넓다.
우리는 그 가운데 하나의 이슈에 집중하기보다, “자전거 타고 싶은 도시”라는 타이틀 아래 다양한 형식의 원고를 통해 ‘두 바퀴로 움직이는 도시’의 거친 밑그림을 그려보고자 한다.
1. 자동차를 위한 도시에서 사람을 위한 도시로 _ 박용남
2. 대한민국에서 자전거 타기가 정착되려면 _ 신희철
3. 자전거 도시 설계의 황금률 _ 백남철
4. 유럽 도시를 달리다 _ 이수창
5. 도시를 누비는 라이더를 위한 안내서 _ 김정은
6. 서울 자전거 출근기 _ 조한결
- 조한결, 김정은 / 2015년04월 /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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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전거의 조용한 혁명
21세기 들어 자전거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오늘날의 자전거 붐은 1890년대‘자전거 대유행기’에 버금가는 것이다. ‘자전거 대유행기’는 1890년 중반의 세계적인 자전거 열풍을 말하는 것인데 이 시기를 거치면서 자전거는 세계로 널리 확산됐고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21세기의 자전거 붐은 ‘자전거 르네상스’라고 할 만하다.
이처럼 자전거가 인기를 끄는 것은 세계 각국이 도시의 교통 문제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자전거에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자전거의 소박한 매력에 이끌려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한 사람이 늘고 있는 것도 자전거 붐이 확산되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대자연으로 향하고 있다. 사이클링 스포츠의 열기도 본고장인 유럽 대륙을 넘어 다른 대륙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도시의 거리를 지배한 것은 자동차였다. 그러나 자전거가 다시 도시의 거리에 돌아오면서 도시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변화를 이끈 것은 바로 파리와 뉴욕 같은 대도시들이다. 세계 주요 도시들이 자전거를 미래의 교통수단으로 꼽으며 도시 어디서나 자전거를 빌려서 탈 수 있는 공공 자전거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2007년 파리는 공공 자전거의 대명사가 된 ‘벨리브velib’를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 ‘자전거와 자유’라는 뜻을 담고 있는 벨리브는 이제 파리 거리의 아름다운 풍경이 됐다. 2013년에는 뉴욕 시가 오랜 준비 끝에 야심차게 미국 내 최대 자전거 공유 시스템인 ‘시티 바이크City Bike’를 시작했다. 이 두 도시는 공공 자전거를 더 확대할 예정이다.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시장은 올해 초 자전거 전용 도로를 확장해 파리를 자전거 친화적인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서울, 대전, 창원, 고양, 순천 같은 여러 도시에서 공공 자전거가 도시를 누비고 있다. 서울시는 2020년까지 공공 자전거를 2만 대로 늘린다는 계획을 지난해 말에 발표했다.
2014년 6월까지 세계 712개 도시가 공공 자전거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공공 자전거는 도시의 교통 혼잡과 소음, 환경 오염을 줄이기 위해 도시에서 짧은 거리는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공공 자전거의 도입으로 도시에서 자전거 이용이 늘고 자전거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 것이 큰 성과다.대중이 다시 자전거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후반이다. 특히 1970년대 들어 사람들은 자전거를 다시 발견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자동차 문화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자동차는 편리하지만 수많은 인명 피해를 가져오고 교통 체증, 환경 오염의 주범이 됐다. 대도시에서 자동차는 점차 악몽이 되어 가고 있다. 자전거 저술가인 리처드 발렌타인Richard Balentine은 자동차 문화의 비효율성을 이렇게 비판한다.
“자전거를 탄 사람이 움직이는 데는 1마일에 35칼로리를 소모하고 자동차와 한 사람이 움직이는 데는 1,860칼로리를 소모한다. 150마력의 2,200kg에 달하는 차를 68kg의 사람을 움직이는 데 사용하는 것은 카나리아를 죽이기 위해 원자 폭탄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선진국은 자동차 문화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전거 이용을 장려했다. 자전거 운동가들이 통근과 오락을 위한 자전거 도로 건설에 앞장섰다. 선진국은 도시에 자전거 도로를 건설했다. 유럽에서는 강과 운하를 따라 길게 자전거 도로가 놓였다. 또 버려진 철도는 훌륭한 자전거 전용 도로로 거듭났다. 선진국이 자전거 이용을 장려한 반면 이 시기에 개발도상국은 역설적으로 경제 발전을 위해 자동차 이용을 장려했다. 개발도상국에서 자전거는 가난한시대의 상징이었다. 중국의 베이징은 자전거 물결이 아름다운 도시였으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자전거는 거리에서 밀려났다. 오늘날 베이징의 하늘은 스모그가 뒤덮고 있다. 끔찍한 재앙이다.
오늘날 자전거는 단순히 기계가 아니라 삶의 한 방식이 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하면서도 아무에게도 해를 주지 않는 삶이다. 자전거는 사람의 두 다리로 움직이는 기계로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자전거를 타다 죽거나 크게 다치는 경우도 자동차를 타는 것보다는 훨씬 적다. 어릴 적부터 자전거는 사람들의 좋은 친구가 되고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있는 가장 선한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자전거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소박하고 단순한 삶의 방식을 상징한다. 자전거를 시대에 뒤떨어진 기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자전거는 가장 문명화된 기계다.도시에 다시 자전거가 돌아오면서 자전거의 혁명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요란하지 않다. 그것은 조용한 혁명이다. 자전거는 도시의 환경을 살리고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해준다. 자전거는 삭막한 도시에 인간의 따스한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장종수는 중학교 때부터 취미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해 지금까지사이클과 산악자전거를 타고 있다. CBS의 사회부와 경제부에서기자로 일했으며, 대한사이클연맹 MTB 위원회 홍보위원, 한국산악자전거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인터넷 자전거 매거진 ‘바이시클 뉴스’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재미있는 자전거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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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자전거 탄 풍경
다시 봄입니다. 봄의 절정인 4월 특집으로 자전거를 올린 건 온화한 기운을 열망하는 마음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도시·환경 전문지의 편집을 맡고 있으니 자전거 하면 녹색 도시, 지속가능한 환경과 에너지, 대안적 교통 같은 묵직한 주제를 이야기해야 마땅하겠지만, 왜 그런지 사랑, 추억, 동경 같은 낭만적인 낱말이 먼저 연상됩니다. 자전거는 이미 19세기에 발명되었지만 속도와 효율을 먹고 사는 우리 도시의 현실에서는 아직, 아니 여전히, 일상적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전거가 등장하는 영화 속 장면들이 머리를 스쳐갑니다. 어릴 적 KBS ‘주말의 명화’에서 봤던 ‘내일을 향해 쏴라’의 자전거 신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혹시 기억나시나요? 폴 뉴먼이 로버트 레드포드의 연인 캐서린 로스를 몰래 자전거 핸들 위에 태우고 아침의 목장을 가로지르는 풍경 말입니다. 자전거 위에서 사과를 따 함께 먹는 이 장면엔 지금 들어도 경쾌한 팝송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가 흐릅니다. 피비린내 나는 서부 활극을 낭만으로 전환시킨 이 명장면은 여러 광고에서 패러디되기도 했습니다.
너무 옛날 영화인가요? 그럼 3040세대의 추억 ‘ET’는 어떤가요. ET 최고의 명장면을 하나만 꼽는다면 영화 후반부의 ‘공중 부양’ 신일 겁니다. 자동차를 타고 쫓아오는 어른들에게 잡힐 듯한 찰나, ET의 초능력으로 아이들의 자전거가 훌쩍 날아오릅니다. 이 장면에 전 세계의 수많은 아이들이 발 구르고 손뼉 치며 환호했습니다. 주인공이 자전거에 ET를 태운 채 달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이 컷은 다양한 장난감과 퍼즐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자전거가 아니라 자동차였다면 그만큼 매력을 주지 못했을 겁니다.
15초, 30초짜리 광고에서도 자전거는 꿈과 사랑의 메신저로 등장하는 단골손님입니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1990년대 초를 강타했던 빈폴의 광고 카피, 아마 많은 분들의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할 겁니다. 이 땅의 뭇 남성들을 설레게 했던 포카리스웨트 광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내일을 향해 쏴라’의 캐서린 로스보다 훨씬 예쁜 손예진이 디테일 없는 순백의 원피스를 입고 자전거를 타며 지중해 산토리니의 새파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도시를 달립니다. 자전거가 음악과 모델과 배경을 하나로 엮는 고리 역할을 합니다. 당대의 역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자전거는 여유와 낭만을 아름답게 매개하지만, 현실의 도시인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환상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전거에 대한 로망은 있지만 막상 실제로 타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서울 같은 자본주의 도시에서 속도를 포기한다는 건 아주 두려운 일입니다. 속도보다 더 큰 이유는 무섭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자전거로 동네 여행을 하다 움푹 파인 노면에 자전거가 뒤집혔고 브레이크 핸들이 목에 꽂혔습니다. 다행히 동맥을 피해갔지만 아직도 목에는 커다란 흉터가 남아있습니다. 대학교 때는 다섯 시간짜리 지루한 드로잉 시간을 견디다 못해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가 오픈 트렌치에 자전거와 함께 빠졌습니다. 얼굴 전체가 피범벅이 되어 교실로 귀환한 저를 교수님은 바로 응급실로 보내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캠퍼스 전체의 트렌치에 철제 덮개가 설치됐습니다.이런 트라우마 때문인지 저에게 자전거는 로망과판타지일 뿐, 현실의 세계에선 불안과 위험의 상징입니다. 딸아이가 하도 졸라대기에 어린이날 선물로 자전거를 사준 날, 제발 그 자전거가 베란다에서 먼지 쌓인 고물로 변해가길 기도했을 정도니까요.
이번 호 지면을 넘기다 보면 김정은 팀장의 원고에서 『사이클 시크Cycle Chic』라는 근사한 책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덴마크의 영화감독이자 사진작가인 미카엘 콜빌레-안데르센Mikael Colville-Andersen의 역작입니다. 그가 말하는 ‘사이클 시크’는 자전거 타기와 도시적 스타일링을 함께 담은, “자전거와 함께하는 ‘패셔너블한’ 일상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얼핏 보면 스트리트 패션 화보집 같지만 찬찬히 다시 보면 자전거 타기가 환상이 아니라 일상인도시 코펜하겐의 힘이 읽힙니다. 그의 말처럼 “치마를 입고 힐을 신고 자전거로 도심을 유유히 누비는 여자, 더블 재킷에 로퍼를 신고 자전거로 출근하는 남자”가 도시의 평범한 풍경이 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저에게도 자전거가 낭만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현실의 일상으로 다가오겠지요.
사실 이번 특집은 몇 달 전 조한결 기자가 낸 기획서에서 시작됐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자전거 전문가와 연구자들이 필자로 동참해주셨지만, 가장 눈여겨봐주셨으면 하는 꼭지는 조 기자의 ‘서울 자전거 출근기’입니다. 기획을 한 원죄로 조 기자는 홍대 근처의 집에서부터 방배동 사무실까지 자전거 타기를 감행하며 환상과 일상의 경계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두 차례의 예행 연습과 실전에서 페달을 밟은 그녀에게, 또 자전거로 동행하며 사진 취재를 맡은 이형주 기자에게 위험이 닥치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그 심정은 제 아이가 자전거로 아파트 단지를 처음 돌던 날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속도의 도시 서울에서 자전거 출퇴근이 일회성 탐험이 아닌 시크한 일상이 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우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책과 설계의 과제를 챙겨보아야 할 때입니다. 오늘로 꼭 3주째인 환절기 독감을 떨치고 내일은 자전거 두 바퀴로 서울의 봄을 ‘시크’하게 가로지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