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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생산
The Way They Design: Production
지난 두 번의 연재를 통해 설계에 대한 나의 테제 몇가지를 공유했다. ‘문제제기’와 ‘과정’에 이어 마지막으로 ‘생산’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단상을 풀어놓는다. 생산의 문제는 어떻게 보면 설계의 가장 즉각적인 행위다. 다양한 도구와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고방식이자 작업으로, 머리와 손 그리고 도구의 친밀한 연장 관계 속에서 구현된다.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사적이지만 가장 대중적이고 능동적인 공간 생산 방법이다. 이를 개인의 기술, 감각, 경륜의 결과로 설명하면 설계를 너무 사적인 행위로 한정하게 된다. 설계는 공간의 사용을 통해 지식 담론을 탐색, 항해, 생산하는 행위다. 비평가나 학자가 글쓰기를 통해 담론을 생산하듯 설계가는 공간 재현을 매체로 담론을 구축한다. 텍스트뿐만 아니라 다이어그램, 도면, 스케치, 이미지, 그래픽, 모형, 등 각양각색의 재현 매체와 이 매체와 관련된 담론은능동적 공간 생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조금은 더 즉각적인 생산의 단상을 짚어본다.
보르헤스의 지도
첫 설계 수업에서 교내 건물 실측과 도면 그리기 과제가 주어졌다. 처음 접하는 스튜디오 문화였고, 2주 안에 캠퍼스 내에 위치한 르 코르뷔지에의 카펜터 센터Carpenter Center를 실측하고 도면화 해야 하는 과제였다. 어마어마한 작업량에 매달리면서 왜 현존하는 건물을 그대로 베끼는 작업을 해야 하는지 의아해 했다. 졸업하고 난 후 한참 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과학의 정밀성에 대하여On Exactitude in Science”1라는 짧은 단편을 읽고서야 이 과제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축소·재현된 지도에 만족하지 못한 제국의 뛰어난지도 제작자들은 전국을 일대일로 상세히 복제한 지도를 제작한다. 하지만 지도 제작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후세는 이 지도가 쓸모없다고 생각했고 결국 이 지도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다. 이 이야기는 현실의 일대일 복제의 부질없음을 말한다. 축소를통한 선택적 편집과 재현은 현실의 복제보다 더 강력한 매개체이며 지도와 같은 레프리젠테이션 또한 동의된 코드와 언어적 구조 속에서 재현의 메커니즘을 구축한다. 따라서 보르헤스의 지도는 설계에 있어 세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공간은 항상 레프리젠테이션, 즉 재현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둘째, 공간의 재현은 스케일을 매개로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셋째, 재현은 능동적 편집의 문제라는 점이다. 현실화되기 전까지 상상과 이미지로 존재하는 공간은 도면이나 모델 등으로 축소되어 소통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스케일은 선택적 편집의 능동적 도구가 된다. 현실과 재현 사이의 차이는 문제가 아닌 기회다. 설계는 실제와 레프리젠테이션 사이에 존재하는 스케일의 갈등을 선택적 축약, 의도적 지난 두 번의 연재를 통해 설계에 대한 나의 테제 몇 가지를 공유했다. ‘문제제기’와 ‘과정’에 이어 마지막으로 ‘생산’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단상을 풀어놓는다. 생산의 문제는 어떻게 보면 설계의 가장 즉각적인 행위다. 다양한 도구와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고방식이자 작업으로, 머리와 손 그리고 도구의 친밀한 연장 관계 속에서 구현된다.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사적이지만 가장 대중적이고 능동적인 공간 생산 방법이다. 이를 개인의 기술, 감각, 경륜의 결과로 설명하면 설계를 너무 사적인 행위로 한정하게 된다. 설계는 공간의 사용을 통해 지식 담론을 탐색, 항해, 생산하는 행위다. 비평가나 학자가 글쓰기를 통해 담론을 생산하듯 설계가는 공간 재현을 매체로 담론을 구축한다. 텍스트뿐만 아니라 다이어그램, 도면, 스케치, 이미지, 그래픽, 모형, 등 각양각색의 재현 매체와 이 매체와 관련된 담론은 능동적 공간 생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조금은 더 즉각적인 생산의 단상을 짚어본다.
보르헤스의 지도
첫 설계 수업에서 교내 건물 실측과 도면 그리기 과제가 주어졌다. 처음 접하는 스튜디오 문화였고, 2주 안에 캠퍼스 내에 위치한 르 코르뷔지에의 카펜터 센터Carpenter Center를 실측하고 도면화 해야 하는 과제였다. 어마어마한 작업량에 매달리면서 왜 현존하는 건물을 그대로 베끼는 작업을 해야 하는지 의아해 했다. 졸업하고 난 후 한참 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과학의 정밀성에 대하여On Exactitude in Science”1라는 짧은 단편을 읽고서야 이 과제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축소·재현된 지도에 만족하지 못한 제국의 뛰어난 지도 제작자들은 전국을 일대일로 상세히 복제한 지도를 제작한다. 하지만 지도 제작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후세는 이 지도가 쓸모없다고 생각했고 결국이 지도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다. 이 이야기는 현실의 일대일 복제의 부질없음을 말한다. 축소를 통한 선택적 편집과 재현은 현실의 복제보다 더 강력한 매개체이며 지도와 같은 레프리젠테이션 또한 동의된 코드와 언어적 구조 속에서 재현의 메커니즘을 구축한다. 따라서 보르헤스의 지도는 설계에 있어 세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공간은 항상 레프리젠테이션, 즉 재현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둘째, 공간의 재현은 스케일을 매개로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셋째, 재현은 능동적 편집의 문제라는 점이다. 현실화되기 전까지 상상과 이미지로 존재하는 공간은 도면이나 모델 등으로 축소되어 소통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스케일은 선택적편집의 능동적 도구가 된다. 현실과 재현 사이의 차이는 문제가 아닌 기회다. 설계는 실제와 레프리젠테이션 사이에 존재하는 스케일의 갈등을 선택적 축약, 의도적 편집 등의 협상을 통해 적극적으로 수용, 변형시킬 수 있는 능동적 생산 행위다. 컴퓨터 3D 모델링 프로그램과 캐드의 등장으로 디지털상에서 실제 스케일 작업이 가능해지면서 레프리젠테이션이 시뮬레이션으로 대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3D 모델링에도 목적에 따른 선택적 편집이 요구된다. 궁극적으로 3D 모델은 대부분 2D 도면으로 축소, 전환되어야하기 때문이다. 3D 모델링으로 정교한 모델을 만들었지만 이를 제대로 렌더링, 편집, 출력을 하지 못해 작업이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이는 시뮬레이션이 목적이 아니라 레프리젠테이션이 목적임을 인식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다. 보르헤스의 경고를 우리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머니샷
시애틀 올림픽 조각공원 설계공모를 준비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디자인 방향과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미팅이 있었다. 패널의 마지막 이미지인 조감도가 나오자 파트너는 “머니샷money shot을 위해 멋있어 보이도록 세로포맷으로 디자인을 조정합시다”라고 말했다. 사용 공간에 대한 고려 대신 레프리젠테이션의 효과를 중심으로 디자인을 생각하는 데 충격을 받은 내가 그 이유를 묻자, 그녀는 웃으며 모든 잡지 표지는 세로 포맷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기억은 나를 항상 불편하게 한다. 설계를 하면서 우리는 항상 프로젝트가 구상하는 공간의 미적, 경험적, 사용 공간에 대한 고민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설계는 다양한 차원에서 존재해야 하는 행위다. 실제로 지어져 사용자가 경험하는 물리적 공간이 되기도 하지만, 구상하는 공간의 재현만으로 존재하기도 하고 그 재현 매개체 자체가 설계 대상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공간의 생산Production of Space』에서 공간을 공간적 실천spatial practice, 공간의 재현representations of space, 그리고 재현의 공간 representational spaces으로 구분하여 정의한다.2 공간이란 실제와 재현 사이의 다양한 개념으로 존재하며 설계는 그 다양한 가능성을 활용한다. 재현을 통한 공간의 파생과 배포는 공간적 실천과 함께 설계의 중요한 생산 과정이다. 파트너와의 미팅 당시에는 마케팅 효과를 위해 디자인 콘셉트를 희생하는 게 저속하다고 생각했지만, 되돌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다. 물론 사용자를 위한 완성된 공간 생산에 전념하는 것이 설계가의 윤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행위력을 지닌 설계의 확장적 역량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공간의 재현과 재현한 공간의 다양한 능력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설계는 순수하고도 교활한 행위여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설계안은 결국 설계공모에 당선되었고 문제의 머니샷은 실제 공원이 현실화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많은 국제적 잡지와 여러 책의 표지를 장식했다.
어반 스레드(Urban Thread),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공공공간 설계 국제공모(2015)
세운상가에 대한 많은 재개발 의욕이 있었다. 1979년부터 네 차례 재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되었지만 상점 소유자와의 자금 문제로 실시되지 못했다. 그 후 이명박의 청계천 사업이 한참 진행 중이던 2004년, 세운상가 국제 지명 설계공모가 실시되면서 세운상가를 대신할 녹지축 공원과 이를 둘러싼 고층 첨단 산업 단지 개발이 시작될 듯 했다. 하지만 2005년 초, 청계천 관련 비리 의혹으로 세운상가 사업이 중지되었고 결국 오세훈 시장에게로 넘겨졌다. 그 후 종묘 앞 건물 높이 규제 완화로 인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보류와 상점 소유자와 임대 상인과의 마찰이 있었다. 2009년 초, 세운상가 1구역의 현대상가가 헐리면서 드디어 전 구역의 재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듯 했지만, 국제 금융 대란의 타격으로 사업이 폐지됐다. 2015년 박원순 시장 아래, 다시 재개된 세운상가 설계공모는 이전과는 다르게 기존 건물을 보존하면서 공중 도보 데크 설치와 순차적인 공공 공간의 개조, 보완, 리프로그래밍을 통한 재정비를 제안한다. 하지만 여전히 기존 임대인과 상인 사이의 이해 관계와 보상 문제 그리고 주변 지역의 고층, 고밀도 재개발과 기존 도시 조직 재개편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세운상가는 매 정권마다 도시 성장 기계로의 변신을 명목으로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따라서 이번 설계공모를 빌미로 낙후되고 기술은 뒤떨어졌지만, 그동안 존속되어 온 독특한 상권의 자의적인 업데이트와 새로운 기술력을 가진 중소 상점의 입주를 도와줄 수 있는 소프트 인프라구축의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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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의 젠트리피케이션 시나리오
젠트리피케이션, 몇 가지 시선
성수동은 최근 ‘뜨는 동네’로 각광받는 동시에 소위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를 고스란히 앓고 있는 문제의 현장이다. 10년 전 서울숲이 들어설 때 이미 성수동의 변화는 예견되었다. 서울숲 주변에는 갤러리아포레를 시작으로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줄줄이 세워지고 있다. 서울숲 북쪽으로는 사회적 기업, 비영리재단, 소셜 벤처 등이 모여들면서 이 일대가 핫 플레이스로 조명되고 있다. 한편 1950년대부터 형성된 낙후된 공장과 수제화 관련 매장이 혼재하는 성수동 2가는 문화예술인들이 개성 있는 작업실과 갤러리, 공방을 만들면서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의 여러 특색 있는 동네가 그러하듯 임대료 상승으로 동네의 변화를 이끌었던 이들이 쫓겨 나가는 현상도 빠르게 반복되고 있다. 성동구는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하고 건물주와 임차인 간의 상생협약을 맺는 등 지역 상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여전히 성수동의 미래에 대해서 회의적인 전망도 많다.
이제 성수동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본지는 서울숲 조성 이후 성수동의 변화를 짚어보기 위해 도시계획 및 부동산 전문가인 서울대학교의 김경민 교수와 서울숲을 중심으로 도시 공원운동을 펼치고 있는 서울그린트러스트의 이한아 사무처장을 만났다. 두 인터뷰이의 시각을 통해 공원과 젠트리피케이션의 함수를 느슨하게 살펴보고 성수동뿐만 아니라 우리 도시에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또 어떤 대안이 있는지 고민해 보고자 한다. _ 편집자 주'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김경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교수
Q. 최근 유행처럼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내 젠트리피케이션의 특징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A. 한국의 현상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기보다는 상업화다. 젠트리피케이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주거지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빈곤한 동네에서 극단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사는 사람들이 쫓겨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것이 가장 큰 사회적 문제며 젠트리피케이션의 핵심이다. 두 번째는 상업화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지역에 문화·예술인들이 들어옴으로써 (소비 공간이 고급화된) 소매상 지구retail district로 바뀌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상업화 젠트리피케이션만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주거지 젠트리피케이션에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다. 예를 들면 1970~1980년대에 진행된 재개발을 주거지 젠트리피케이션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 그것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상업화 젠트리피케이션만 문제시 하는 것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정의 자체를 좁게 보는 것이며 관련 연구가 축적되지 않았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사실 최근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는 지역으로 회자되는 인사동, 신촌, 홍대앞, 합정, 북촌, 서촌, 성미산, 해방촌, 세운상가 가운데, 해방촌을 빼면 나머지는 모두 쇠퇴 지역으로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압구정동처럼 고급 주거·상업 지역은 아니어도 건강한 동네라는 의미다. 유럽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단어의 일반적 의미는 슬럼이나 다름없던 동네가 중산층의 주거지로 바뀌거나 소매상 지구로 바뀌는 현상이다. 즉 주거지의 용도는 유지되면서 환경이나 거주자가 변하는 것이다. 반면 상업화 젠트리피케이션의 경우는 용도가 바뀐다. 주택이나 기존의 문화예술인이 썼던 오피스가 소매상점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도시에서는 이 두 가지 젠트리피케이션이 동시에 진행된다. 예를 들어 서촌에서는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지역 주민도 쫓겨나고 상인도 쫓겨났다. 즉 한국의 경우 건강한 동네에서 주거지 젠트리피케이션과 상업화 젠트리피케이션이 동시에 그리고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상업화현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것도 굉장히 극단적인 상업화이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 자체가 긍정적인 단어로 쓰이기도 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면 동네의 환경이 개선되기 때문에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도시계획가들도 일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문제시되는 지역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종착역은 대규모 프랜차이즈가 들어오면서 지역의 특색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만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바라본다면 문제를 잘못 파악하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과 지역 커뮤니티의 관계
Q. 지난 1~2년 사이 서울숲 인근에 사회적 기업, 비영리재단, 소셜 벤처 등이 모여들면서 이 일대는 소위 뜨는 동네가 되었다. 그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세입자들이 쫓겨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곳에 모인 사회적기업이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을 촉발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A. 부동산 개발 측면에서 보자면 (기업은) 당연히 지금의 위치로 들어가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제일 고가의 아파트가 갤러리아포레 아닌가.1 갤러리아포레 주변은 서울숲이라는 대형 녹지, 한강으로의 조망, 편리한 교통 등 고급 주거지로 부상할 만한 조건을 갖춘 동네다. 이 지역이 모두 개발되면 현재 사회적 기업들이 밀집한 곳은 고급 주거 단지의 배후지로써 상업화의 물결이 들이닥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이곳이 소매상 지구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기업인 루트임팩트2가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그 기간을 단축했을 뿐이다. 소셜 벤처나 사회적 기업에게 공간을 제공하는 카우앤독도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그러한 활동은 지역 자체를 바꾸게 되고, 이들은 원하지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젠트리파이어가 되어 젠트리피케이션을 가속화하는 역할을 했다. 사회적기업을 돕겠다는 의도는 선할 수 있으나 그 결과는 비판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Q. 서울숲길 인근이 사회적 기업들이 활동하기에 적절한 장소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A. 지역 커뮤니티를 바꾸고자 한다면, 공장 지대인 대림창고 부근이나 가리봉동으로 갔어야 했다. 거기서 혁신을 주도하면서 기존의 산업 및 공업과 연계한 활동을 하면 된다. 사회적 기업가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옆에서 혁신을 일으켜야지 주거지에서 활동하면 오히려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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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곡예를 하는 예술가,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
젠트리피케이션, 몇 가지 시선
소위 ‘작가’ 또는 ‘예술가’로 불리거나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는 이들을 한두 가지 유형으로 묶어둘 수는 없겠지만, 그 내용과 형식이 무형의 것이든 유형의 것이든, 정치적 함의를 가지든 그렇지 않든, 감각에 따른 것이든 이성이나 감성에 따른 것이든, 내 한몸 고사하면서 창작 욕구를 풀어내고자 하는 것만은 아마도 그들 공통의 원동력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여기에 더해 예술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고, 훌륭한 작가로서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도 있을 수도 있고, 명성을 쫓는 일을 떠나 예술, 철학, 사회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반응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자가 천민자본주의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런일들에 맞서겠다는 투쟁 정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도 있을 것이고, 한편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잘 팔리는 ‘비싼’ 작가가 되어 럭셔리한 생활을 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원동력이 무엇이든 대체로 애초부터 확실한 경제적 성공이나 안정을 담보로 하지는 않는 예술가의 노력은, 바로 그런 이유로 ‘굶어 죽을지언정 빵보다는 장미를 택한다’거나 ‘그림 때문에 귀를 자른다’는 둥 딱히 반드시 예술성과 결부되지 않았어도 되었을 사례를 통해 보편화의 오류를 거쳐 신화화되거나, 반대로(그러나 같은 이유로) 부르조아나 한량들의 시간 때우기, 또는 엘리티시즘, 더 나아가서는 한낱 어린아이의 미성숙함 쯤으로 치부되고는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회의 일원으로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사각지대에서 ‘기타 등등’으로 존재하며 쓸모없는 잉여인간으로 부유하던 예술가들이 돌연어떤 부분에서 필요한 사람들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 같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값을 받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우리가 사실은 버티기 위해 종합곡예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여기가 맹지인데, 자네 친구들 좀 불러서 건축 실험하고 그럴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하나 지어서 레지던시같은 것도 좀 하고. (밤이면 늑대들이 울부짖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섬이라 조용히 작업 구상하기에도 좋을 거야.”또는, “미술 해요? 어머 잘 됐다, 그림 그리고 싶으면우리 동네 와요. 벽화 좀 그려 줘. 사람들한테 그림 알려지고 그러면 좋잖아? 나는 지금 빚까지 내어가면서(물론 그가 소유한 집이 있는 동네에) 마을 만들기 하고 있는거야.”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문화 예술계 언저리에서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을 가지고 최근에는 메이커스 문화나 신연금술, 인공지능 등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들에 매료되어 엿보기를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하여 활동하였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 지역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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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 쫓겨나는 사람들을 위한 블루스
젠트리피케이션, 몇 가지 시선
지난 1월 28일 용산구의 지역 부동산 공인중개사들이 나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자정 결의 대회를 열었다. ‘한국 공인중개사 용산구 지회장’과 ‘용산구청장’의 명의로 6개 항목의 ‘자정 결의문’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임대료 및 권리금 상승 담합’, ‘건물주에게 과다한 임대료 상승을 부추기는 행위’, ‘과다한 중개수수료의 요구’ 등을 금지하고, ‘건물주와 임차인 모두 안정적인 지역경제 상생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행정구에서 지난 몇 달 사이에 발생한 이 사건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어려운 단어가 이제 학계를 넘어 업계를 거쳐 관계에까지 도달한현상으로 보인다. 방금 어렵다는 말을 쓴 이유는 아직도 이 단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판단에 기인한 것인데, 어쩌면 이런 판단도 그릇된 것인지 모르겠다. 젠트리gentry라는 계급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나 역시도 대학교 시절 ‘경제사’ 수업에서 몇 줄 읽은 게 전부다. 사실, 이제 그런 역사적 맥락을 뒤져보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뜨는 동네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현재 한국의 도시에서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대략 ‘동네가 뜬다 → 임대료가 상승한다 → 임차인들이 쫓겨난다’로 요약된다. 임차인들이 쫓겨나는 자리에는 본격적으로 투자 혹은 투기를 수행하는 임차인이 들어오는 과정이 뒤따른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영세한 구멍가게 자리에 대기업 편의점 체인이 들어서고, 아담한 동네 카페가 화려한 프랜차이즈 카페로 바뀌는 것이다. 한 주간지 기사가 “뜨는 동네의 역설”1이라고 표현한 것이 이런 과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준다.
추상적으로 들릴까봐 몇 가지 예만 언급하겠다. 앞에서 언급했던 용산구와 성동구 이전에 종로구의 인사동과 삼청동, 마포구의 홍대앞과 상수동, 강남구의 가로수길과 세로수길 등이 2000년대까지 뜨는 동네, 혹은 ‘핫 플레이스’의 대표적 장소였다. 세 곳의 성격은 각각 다르지만 2010년대 중반인 현재 이곳을 찾으면 여가와 소비를 위한 대규모 상권으로 변모되어 십 수 년 전만해도 이곳에 예술가를 비롯하여 이른바 창의적 유형의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은 마치 거짓말처럼 들린다. 즉, 현재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뜨는 동네’가 다른 무언가로 변환되는 순간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용산구의 자정 결의안이 ‘자백’한 대로, 동네가 어느 정도 ‘뜬다’고 판단되면, 부동산업체가 건물주를 ‘들쑤시고’ 건물주는 이때다 하고 ‘갑질’에 나서면서 새로운 업체가 하나둘씩 투자를 하면 동네 전체의 성격이 본격적 상권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 때깔이 바뀌는 과정에서 이전의 세입자가 쫓겨나는 현실이 존재한다. 그 세입자들은 대체로 원주민(소상인)이거나 예술가다. 그 현실은 이렇게 건조한 문체의 글로 적는 것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힘겹고 눈물 나는 과정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본토에서는 이렇게 ‘쫓겨나는’ 현상을 ‘displacement’라고 부른다. 전치나 축출 등의 번역어가 신통치 않다면, 사전을 뒤져서 ‘제자리에서 쫓겨난 이동’이라는 뜻을 확인해 두자. 즉, 전치는 젠트리피케이션 동전의 이면이다. 따라서 ‘전치 없는 젠트리피케이션도 있는가’ 등의 질문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곳에서 전치 당하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도 있을 수는 있지만, 전치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길고도 난해한 말을 굳이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리한다면, ‘뜨는 동네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젠트리피케이션의 핵심이다. 그러니 아직도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그럴싸한 어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없애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그럴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 그건 왜 그럴까? 이런 질문은 ‘뜨는 동네’에서 ‘뜬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을 요구한다. 뜨는 동네는 왜 그리고 어떻게 생성된 것일까?
신현준은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및 국제문화연구학과 HK교수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문화 산업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은후 정치경제학과 문화 연구를 접속하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왔다. 대중문화, 국제 이주, 도시 공간이 주요 관심 분야다. 2006~2007년에는 싱가포르 대학교 아시아연구소의 방문연구원, 2008~2009년에는 네덜란드 레이든 대학교 방문교수, 2015년에는 듀크 대학교의 방문연구원으로 각각 재직한 바 있고, 국제 저널인 『Inter-Asia CulturalStudies』의 편집위원, 『Popular Music』의 국제고문위원을 역임해 왔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 팝의 고고학 1960/1970』(2005, 공저), 『귀환혹은 순환: 아주 특별하고 불평등한 동포들』(2013, 공저), 『가요, 케이팝 그리고 그 너머』(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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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 그리고 디즈니랜드
젠트리피케이션, 몇 가지 시선
나는 현재 서촌 통의동에 거주하고 있다. 집과 사무실이 한 건물 안에 있는 직주근접의 삶이다. 이러한 삶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나의 졸저인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와 『무지개떡 건축』에 자세히 설명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건물은 개인 소유다. 주거용으로 사용하지 않는 부분은 내가 운영하는 건축설계사무실을 비롯한 몇 개의 작은 회사에게 임대하고 있다. 즉, 나는 지주이며, 건물주이며, 임대인이다. 나에게 원고 청탁을 한 배경에 이런 이유가 있을 것이므로 미리 밝혀 둔다. 소유 지분의 상당 부분은 당연히 대출로 해결했으며 그 원리금의 상환을 위해 노력 중이다. 서촌으로 이사 온 지 햇수로 14년째가 되었다. 따라서 완전히 ‘굴러온 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박힌 돌’도 아니다. ‘이웃사촌’이라는 표현은 낯간지러워서 못쓰겠다. 필요할 때 만나서 서로 상의하거나 힘을 합치는 정도다. 이사 온 직후 도시가스 간선 설치 문제를 두고 이웃적선동과 해묵은 갈등이 불거졌을 때 그랬고, 눈을 치우거나 골목길 주차 문제가 심각해졌을 때 그리 한다.
(주차와 관련해서 대놓고 싸운 경험 또한 물론 있다.) 몇 년 전 인근의 작은 공원이 사라지게 될 상황이 되었을 때는 사회적 명분이 뚜렷했기 때문인지 이웃들 못지않게 다른 지역 사람들도 많이 모였고 결국 없던 일로 만들었다. 긴밀하게 참여해 온 지역 단위의 움직임은 ‘오픈하우스 서촌’이나 보안여관이 주최하는 벼룩시장 정도다. 자율 방범대에 속해 있기 때문에 다소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이웃 및 경찰들과 순찰을 돈다. 결론적으로 이웃과의 관계는 이전에 아파트 단지에 살았을 때와 그리 다르지 않다. 어차피 도시에서의 삶은 여러 변수들로 구성되는 인간관계의 맵핑mapping에 의해 결정된다. 공간적 인접성, 오래된 역사, 골목길과 같은 물리적 요소 등은 그 변수의 일부일 뿐이다.
직업적으로는 스스로를 ‘동네 건축가’라고 불러왔다. 동네에 대해서 주민으로서의 입장을 넘어서는 건축적, 역사적 차원의 관심이 있다. 그리고 서촌 및 북촌, 광화문 일대를 대상으로 다수의 작업을 수행해 왔다. 지금은 작업 범위가 넓어졌지만 건축가로서의 나의 경력이나 건축적 사고의 많은 부분은 이 지역에서의 경험에 기초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동네의 여러 문제에 매우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노라고 할 정도는 아니기에 그런 점에서 ‘동네 건축가 1.0’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개념도 앞으로 좀 더 진화하기를 바란다.여기까지가 주로 사실의 기술이라면, 이제부터는 의견을 제시한다. 오늘날 서촌의 화두는 단연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그리고 디즈니랜드화disneyfication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맞물려 있는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동일시할 성격은 아니다. 디즈니랜드화하지않고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고 또 그 반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젠트리피케이션의 경우, 이것은 시장 경제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다. 일종의 부작용이므로 사회적인 해결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서로 다른 차원의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시장 경제 자체를 부정하며 완전히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것인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자명하며, 이 글의 주제나 사회적 통념과 거리가 있으므로 더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제도적 개입이다. 시장 경제 자체는 인정하되, 법과 제도 및 행정력을 통해 그 부작용의 해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아무리 민주적인 사회라도 각종 권리를 제한하는 제도적 개입은 존재하며, 그것은 종종 놀랄 정도로 강력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프랑스의 파리 시가 얼마 전에 발표한 구도심 내 주거용 건물의 매매에 대한 제한 규정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각종 건축 심의에서 제시되는 내용들도 그러하다. 2016년 현재 서촌 일대에 적용되고 있는 건축 행위에 대한 강제적 제약은 법리적으로는 심지어 위헌 가능성도 제기될 정도다. 하지만 사유 재산권에 대한 이러한 공공적 개입 자체를 원론적으로 부정하는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임대차와 관련된 합리적인 법률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할 의무가 있는 국회보다 일선 행정 기관이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적극적인 것은 역설적으로 흥미롭다. 마침 몇몇 지자체가 앞장서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 그 좋은 예다.
건축가황두진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2년 서촌으로 이주한 이후 구도심에서의 경험을 배경으로 자신의 건축적 생각을 키워 왔다. 이 과정에서 현대 건축가지만 한옥 작업을 병행하게 되었다. 대표작으로는‘가회헌’, ‘춘원당 한방병원 및 박물관’,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 ‘원앤원 빌딩’ 등이 있다. 활발한 저술 활동을 통해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2005, 해냄), 『한옥이 돌아왔다』(2006, 공간사), 『무지개떡 건축』(2015, 메디치미디어) 등을 펴냈다. 서울시 건축상, 대한민국 한옥 대상, 대한민국 공공 디자인 대상, 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 문화 유산상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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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의 유행을 다시 생각하다
젠트리피케이션, 몇 가지 시선
최근 1년 사이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학술적·대중적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주제로 한 각종 정책적·학술적 논의(도시정책 포럼 ‘젠트리피케이션 없는 도시재생 가능한가’ 등)에서부터 소위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이라 불리는 지역의 자생적 젠트리피케이션 포럼(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포럼’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젠트리피케이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2016년 1월 한 달 사이에만 약 300여 건의 신문 보도가 이뤄질 정도로 대중 매체의 관심이 이러한 논의의 확산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서구에서 1960년대 초 루스 글라스Ruth Glass에 의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란 용어가 만들어진 이후 지난 50년 동안 다양한 경험 연구와 이론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다뤄질 정도로 용어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1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현재 젠트리피케이션이라 불리는 도시 상황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학술적 논의가 부족함에도 거의 매일 언론 보도로 일반인들에게 젠트리피케이션이 ‘소개’되고 ‘주입’되다시피 하고 있다.
글라스가 정의한 젠트리피케이션의 개념은 “중간 계급이 도심과 도심 주변 지역의 저소득층 주거지에 있는 오래된 주택을 수리하여 이주해옴으로써 기존의 저소득층을 대체하는 과정”으로, 50년간 서구에서 진행된 젠트리피케이션 논의는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이 주를 이뤘다.2 그러나 현재 한국 언론에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명명되는 도시 현상은 상권이 활성화됨에 따라 상승하는 임대료로 인해 소상공인(세입자를 중심으로)이 떠나는 사회 변화를 일컫는다. 즉, 한국 미디어 속 젠트리피케이션은 주거 젠트리피케이션residential gentrification이 아니라 서구의 상업 젠트리피케이션commercial gentrification, 또는 관광 젠트리피케이션tourism genrification과 유사하다.
서구에서 오랜 기간 동안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뤄져 온 것과 비교하면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관심을 갖고 논의한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다. 그러나 주거 젠트리피케이션과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3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은 상업 지역 또는 상업 건물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의미하는 단어로, 부티크피케이션boutiqueification이나 소매 젠트리피케이션retail gentrification으로 불리기도 한다.4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이 이뤄짐에 따라 새로 유입된 중간 계급의 기호에 맞는 새로운 상업 시설들이 생겨나면서 기존 소비공간에 큰 변화를 야기했다.
이선영은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 지리학과에서 ‘뉴빌드 젠트리피케이션과 젠트리피케이션 반대 운동(New-Build Gentrification and AntigentrificationMovements in Seoul, South Korea)’ 이란 주제로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아시아 지역의 도시 개발과 주민 운동에 관해싱가포르 국립대학교에서 비교 연구를 수행했다.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가 맺어지는 공간이자 사회적 관계 그 자체로서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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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erse Perspectives on Gentrification
젠트리피케이션, 몇 가지 시선
최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 cation’이란 단어가 유행처럼 쓰이고 있다. 언론 매체는 연일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지자체도 이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서울시는 지난 2015년 12월 젠트리피케이션을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으로 정의하고 원주민을 지키기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상황이 심각한 6개 지역(대학로, 인사동, 신촌ㆍ홍대ㆍ합정, 북촌, 서촌, 성미산마을, 해방촌, 세운상가, 성수동)을선도적으로 지원해 시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 젠트리피케이션의 유행을 다시 생각하다 _ 이선영
• 젠트리피케이션, 그리고 디즈니랜드 _ 황두진
• 젠트리피케이션, 쫓겨나는 사람들을 위한 블루스 _ 신현준
• 종합 곡예를 하는 예술가,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 _ 진나래
• 성수동의 젠트리피케이션 시나리오 _ 김경민·이한아
- 김정은, 조한결, 김모아 / 2016년03월 /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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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공감] 제주 도립미술관
Space of Sympathy: Jeju Museum of Art
제주도의 아름답고 멋진 풍광에 비해 관광객을 맞이하는 수많은 시설의 수준은 그다지 미덥지 못하다. 특히 곳곳에 난립해 있는 사설 뮤지엄과 테마 공간들은 더더욱 열악하다. 그런 면에서 제주도립미술관의 등장은 신선한 뉴스였다. 넓은 대지에, 전면의 수 공간이 가지는 정갈함도 여타의 관광지와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건축적인 수 공간이 가지는 힘은 대지의 성격을 강하게 규정한다. 그래서일까? 건축물과 한몸을 이룬 이 공간이 대지 전체를 엮어내기보다는 앞뒤로 분절시킨다는 느낌이 강하다. 미술관에서의 옥외공간은 자연스럽게 전시 공간의 일부분일 뿐 아니라 전시물 그 자체가 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그 관계가 참 애매하다. 어떤 내러티브를 가진 듯도 하지만, 마치엄마의 밥 먹으라는 성화에 못 이겨 잘 그리던 미술 숙제를 도중에 놓아버린 느낌이랄까? 가능성에 비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건축과 대지, 작품과 경관이 어쩌면 환상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생각에…. 지금이라도 약간의 보완 작업을 가미하면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곳이다. _ 박승진
항공 사진으로 제주도립미술관을 확인해 보고 나서야 현장에서 본 식재와 포장이 조금이나마 이해되었다. 2D 화면에 펼쳐진 미술관의 레이아웃은 ‘큰 축과 선으로 감아주고’, ‘다양한 조형들이 과감하게 오버랩되면서 분절된 새로운 형태들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구사된 익숙한 플랜이었다. 그러나 겨울이었다고는 해도, 눈앞에 펼쳐진 공간은 설계자의 의도와는 꽤 차이가 있어 보였다. 이 거리감은 시공 과정에서 세밀함을 챙기지 못한 탓일까? 기본 설계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약한 탓일까?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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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마크 호텔
Seamarq Hotel
태백산맥의 관문으로 불리는 대관령의 산줄기가 조금씩 낮아지면서 푸른 바다와 만나는 곳이 강릉이다. 동해와 맞붙은 경포호를 따라 달리다보면 소나무 숲 위로 우뚝 솟은 흰색 건물이 보인다. 1971년 개관한 ‘호텔 현대 경포대’를 철거하고 신축해 2015년 6월 문을 연 씨마크 호텔이다. 뒤로는 대관령의 굽이굽이가 병풍처럼 펼쳐지고 해송과 어우러진 평화로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이 호텔은 다가오는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과 늘어가는 강릉의 리조트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계획되었다. 씨마크 호텔의 설계는 백색을 트레이드마크로 하는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Richard Meier가 맡았다.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Field Operations(이하 JCFO)는 리차드 마이어 앤 파트너스Richard Meier & Partners Architects(이하 RMP)와 함께 이 호텔의 초기 구상부터 기본설계Concept & SchematicDesign, Design Development까지 진행하며 조경설계를 풀어나갔다. 이후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따라 조경설계 서안과 디자인 스튜디오 loci가 조경 기본설계안을 수정하고 실시설계를 진행했다.
등대beacon와 수평선horizon,
설계 개념의 두 가지 대안콘셉트를 만들어가는 단계에서 RMP와 JCFO는 부지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두 가지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이 두 대안을 통해 건축과 프로그램이 주변 지형과 효율적으로 상호작용 할 수 있는 안을 찾고자 두 회사의 긴밀한 협업이 진행되었다. 기본 구상에 관해 JCFO의 조경가 안동혁은 건축과 조경,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이라는 기본적인 역할 분담은 있었지만 (특히 초기 디자인 과정 중에는 더욱) 서로의 조언에 열린 자세로 협업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RMP의 건축 매스 스터디mass study 진행 과정과 대안 모색에 JCFO가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한편, JCFO가 전체 부지의 지형조작, 차량 진입로를 비롯한 동선 재배치, 주변 컨텍스트와 맞물린 프로그램 배치를 진행할 때 RMP는 이러한 제안이 건축 구상scheme에 더 잘 부합할 수 있도록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JCFO와 RMP의 유기적인 협력 관계는 씨마크 호텔 이전부터 몇몇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며 쌓아 온 신뢰와 잘 구축된 협업 시스템의 산물이다. (클라이언트와 팀 내부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양 사의 위치가 워낙 가깝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실제 이 프로젝트 진행 당시 JCFO와 RMP 사무실은 뉴욕의 같은 건물 10층과 6층에 각각 위치하고 있어 거의 매일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디자인 협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
기본 구상 단계에서 RMP는 ‘등대beacon’ 안과 ‘수평선horizon’ 안, 두 가지 디자인을 제시했다. JCFO 또한 컨텍스트와 건축물에 부합하는 독창적인 프로그램을 배치하고, 이에 따른 지형의 조작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 큰 그림을 그렸다. 안동혁은 “‘등대’ 안에서는 수직적으로 솟은 강릉의 새 랜드마크인 타워형 건축물에 상응하는 곧은 직선형의 진입로와 이에 상반되는 유기적이고 대담한 구조의 수변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반면 ‘수평선' 안에서는 주변 경관을 포용하는 매스에 맞추어 기존 지형을 따라 구불구불한 진입로를 계획하고 수변 프로그램 역시 기존의 지형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이용하는 방향을 제시했다”며 초기의 밑그림에 관해 설명했다. 수차례의 협의와 토의 끝에 ‘수평선’안을 바탕으로 하고 ‘등대’ 안에서 흥미 있는 요소들을 차용하는 방향으로 디자인의 가닥이 잡혔고, JCFO는 전반적인 디자인의 구성과 형태를 잡는 기본구상Schematic Design, 재료 선정과 디테일 디자인, 그리고 실제 부지 상황 및 국내 법규 등에 맞춰 설계를 조정하는 기본설계Design Development를 이후 약 반년 가까이 진행했다.
조경 계획 및 기본설계(원설계)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
조경 기본설계(재설계) 및 실시설계, 디자인 감리
조경설계 서안(주) + 디자인 스튜디오 loci
단지계획 및 건축설계
리차드 마이어 앤 파트너스(Richard Meier & Partners Architects LLP)
건축설계(주)현대종합설계
한옥설계(주)황두진건축사사무소
조경시공총괄현대건설(주)
조경시공감리(주)토문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식재시공(주)장원조경, 부림조경
시설물시공(주)동영조경
한옥동 조경시공부림조경
발주현대중공업(주)
위치강원도 강릉시 해안로 406번길 2
대지면적약 47,000m2
설계기간2011 ~ 2012(JCFO), 2012. 10. ~ 2014. 2.(조경설계 서안 +디자인 스튜디오 loci)
시공기간2014. 4. ~ 2015. 5.
- 김정은 / JCFO, 조경설계 서안 + 디자인 스튜디오 loci / 2016년03월 /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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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 유니티
Common-Unity
커먼 유니티Common-Unity는 공공 지원 주택을 위한 공공 공간 재생 프로젝트로서 멕시코시티Mexico City의 16개 행정구 중 하나인 아스카포살코Azcapotzalco의 과밀한 도심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약 7,00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대상지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된 것은 분절된 주거 단위였다. 오랜 세월에 걸쳐 입주민들이 만들어 온 벽, 담장, 장애물 등이 공공공간에의 접근을 어렵게 했고 지역 사회는 공공 공간이 제공할 수 있는 여러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개인적 사용에 의해 공공 공간이 침해되었고, 이로 인해 공공 공간에 대한 활용도가 떨어지거나 공공공간 자체가 사라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는 입주민들이 개인적 모임이나 파티를 위해 공공공간에 반복적으로 임시 차양을 설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이를 통해 개인적 공간을 (공공 공간으로까지) 확장시키는 셈이다. 우리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그대로 살려내고자 했으며 주민의 여가 및 사교 목적에 활용될 수 있는 지붕 있는 공간을 설계하게 되었다.
우리의 목표는 ‘단절된 아파트 유닛’을 ‘서로 연결된 커먼 유닛’으로 변모시키는 것이었다. 커뮤니티를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펼치는 것뿐만 아니라 커뮤니티와 더불어 디자인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프로젝트에 차용된 전략은 입주민이 만든 장벽을 활용하여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장벽들을 관통하고 민주적으로 변화시키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분절된 유닛 사이에 통일성unity을 부여하고자 하였다. 각기 다른 용도(칠판, 등반용 인공 암벽, 난간, 그물망)를 지원하기 위해 지붕을 갖춘 4개의 모듈을 시공 및 설치했는데, 이를 통해 네 곳의 공공영역을 재생하고자 했다. 또한 다양한 포장 도로를 디자인했는데, 이들 가운데 일부는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투수성을 갖추도록 했다.
Project DesignRozana Montiel | Estudio de Arquitectura
Associated ArchitectAlin V. Wallach
ProgramPublic Space Rehabilitation
CollaboratorsAlejandro Aparicio, Cecilia Brañas,Diana León, Valery Michalon, Luis Galán
ClientINFONAVIT(National Trust for Workers Housing Institute)
LocationSan Pablo Xalpa Housing Unit, Azcapotzalco,Mexico City, Mexico
Rehabilitated Area5,000m2
Roofed Area480m2
Budget180USD/m2
Completion2015
PhotographsSandra Pereznieto
로자나 몬티엘 건축 스튜디오(Rozana Montiel|Estudio de Arquitectura)는 로자나 몬티엘이 이끄는 설계 스튜디오로 건축과 주변 맥락,건축 설계, 공간과 도시 생활의 예술적 재개념화 등에 전념하고 있다. 특히 도시의 사회적 관계성을 복구하기 위해 공공 공간에서 연구와 실험을실시하고 있다. 로자나 몬티엘 건축 스튜디오는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와주변 맥락에 기초하여 각 작업에 대해 일관되고 구체적인 건축 담론을제안한다.
- Rozana Montiel | Estudio de Arquitectura / Rozana Montiel | Estudio de Arquitectura / 2016년03월 / 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