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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와 디테일] 바닥 포장 설계, 패턴을 위한 패턴?
한동안 수원에 있는 공기업의 일을 하면서 그 사옥에 자주 드나들었다. 개발 사업을 하는 회사였는데, 어느날 그 사옥의 현관에서 전시 중이던 공동 주택 공모전 출품작을 보게 되었다. 600세대 규모의 주택 단지였는 데 전시된 출품작은 서로 다른 개념을 이용해 각각의공간을 표현하고 있었다. 작품들을 보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네 개의 출품작이 모두 같은 형식으로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길의 모양과 색상을 표현하고 있었다. 길이 흘러가는 방식이며 선형을 표현하는 패턴과 색상이 너무 똑같아서 신기한 마음으로 한참을 구경했다.
몇 달 뒤 우리에게도 그런 프로젝트를 할 기회가 찾아왔다. 프로젝트를 맡은 기쁨은 잠시였다. 공동 주택 설계 경험이 없어 프로젝트가 익숙하지 않은 데 다가 특정한 형식의 그림을 요구하는 건축팀과의 마찰 때문에 쉽지 않은 나날을 보내야 했다. 왜 이렇게 패턴을 요구하고 심지어 강요까지 하는지. 패턴이 공간 개념을 나타내는 방식 중 하나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 이유는 작업을 진행하며 인터넷을 통해 공모전 자료를 찾아본 후에야 알수 있었다. 찾아본 공모전 자료의 열에 아홉은 서로 닮은 평면 그래픽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보는 이를 강렬하게 빨아들이는 그래픽이 있는가 하면, 유유히 흘러가는 형상도 있었다. 하지만 그 표현과 형식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마 공모전의 특성상 혼자 튀면 수상 후보에서 제외될 위험이 있어서 과한 표현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다른 작품을 따라 하고 싶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 같았다.
길을 잘 보이게 해서 공간을 잘 설명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공간의 볼륨을 조작하는 눈속임의 장치로 여겨질 뿐이다. 과연 주거 단지에서 길의 포장 패턴이 중요한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2차원 공간을 조작하고 그 위에 세워질 부피에 대해 고민하고 계획해야 하는 조경의 속성상 바닥 처리는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은 일이다. 바닥 포장은 녹지와 녹지 사이에 만들어져 사람들이 이동하거나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의 기반이다. 또한 차량과 건물 사이에 만들어져 완충 작용을 하며 도시의 생활을 담기도 한다.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양이 필요하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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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공감] 제주 주택
이번 ‘공간 공감’ 답사는 제주의 어느 식당에서 일정을 짠 특별한 케이스다. 새벽 비행기로 제주에 도착한 직후 아침상을 마주한 채 각자 답사하고 싶은 곳을 추천하며 한 곳씩 답사 루트를 짜나갔다. 그렇게 해서 1박 2일 동안 둘러볼 대상지로 정한 곳은 총 8곳(‘공간 공감’에서 모두 다룰 예정은 아니다. 아마 한 곳 정도만 더 소개될 것이다), 그 중 주택이 3곳이었다. 덕분에 평소 프로젝트를 같이하며 알고 지내던 한 건축가의 제주 주택을 찾게 되었다. 정확한 정보가 없으면 도저히 찾아가기 힘든 곳이기에 그 주택 답사는 더욱 특별했다.
진입 도로에서 약 10m 이상의 고저차가 있는 산자락의 귤 밭에 지어진 ‘리틀 화이트’라는 이름의 주택은, 다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나름 공동 주택 단지다. 10여 년 전 건축가의 부친이 제주에 정착하기 위해 구입했던 땅에 아들이 건축을 완성했다. 포르투갈의어느 해변에서 마주한 하얀 박스 형태의 주택으로 이루어진 마을과 제주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귤 창고를 설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경사진 땅의 구조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집의 일부를 띄워서 설계했고, 그 덕에 기존의 귤 밭을 자연스럽게 정원으로 삼고 있다. 다섯 가구의 집을 모두 둘러보는 과정은 마치 산자락을 걸어 올라가는 느낌을 준다. 공간을 채우기보다는 덜어내는 작업이 읽히는 곳이다. 제주에 올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과연 여러 가지 요소가 갖춰진 넓은 집과 풍성한 조경수로 장식된 정원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 까’라는 물음이 이 주택을 보며 다시 한 번 떠올랐다. _ 이홍선
제주의 지형은 사뭇 한국의 다른 곳과 구별된다. 토양은 검고 돌은 거칠다. 그래서 유독 유채나 감귤이 선명해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제주에서 만난 ‘리틀 화이트’ 주택은 지금까지도 잔상이 제법 오롯이 남아 있는데, 그 이유는 제주 지형의 원래 모습에다가 밝고 모던한 주택의 매스를 대비시켜 도드라지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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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뉴스의 시대
The Age of News
이번 ‘코다’ 제목은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 따왔다. 책의 부제목은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이다. “온갖 이례적인 사건들을 이처럼 단호히 추적함에도 불구하고 뉴스가 교묘히 눈길을 회피하는 딱 한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뉴스 자신, 그리고 뉴스가 우리 삶에서 점하고 있는 지배적인 위치다. ‘인류의 절반이 매일 뉴스에 넋이 나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언론을 통해 결코 접할 수 없는 헤드라인이다. 그 밖의 놀랍고 주목할 만하거나 부패하고 충격적인 일들은 무엇이든 드러내려고 안달하면서 말이다.”1 뭐, 이런 대목이 흥미롭긴 하지만, 이 책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환경과조경’사는 박명권 발행인 체제로 바뀌면서 달라진 점이 몇 가지 있다. 개인회사에서 주식회사로 전환되었고, 파주출판도시를 떠나 지금은 방배동에 자리하고 있다. 회사명과 영문 제호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Environment & Landscape Architecture of Korea(약칭 ela)’를 사용했는데, 지금은 ‘Landscape Architecture Korea(약칭 laK)’로 표기하고 있다(『환경과조경』 리뉴얼에 대해서는 소개한 바 있기에, 여기서는 부연을 생략한다). 『조경생태시공』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계간에서 월간으로 발간 주기가 당겨졌고, 무엇보다 잡지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제호가 달라졌다. 이제는 월간 『에코스케이프』라는 타이틀로 독자를 만나고 있다. 또, 콘텐츠도 디자인도 지속적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단행본 출판과 관련해서는 새로운 식구가 늘어났다. 1987년도에 설립한 ‘도서출판 조경’ 이외에 ‘도서출판 한숲’이란 브랜드가 2013년 하반기에 탄생한 것이다. 이후 『신의 정원 조선왕릉』, 『영국 정원에서 길을 찾다』,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 『꽃보다 아름다운 잎』,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 등의 단행본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유청오 작가가 전속 사진가로 합류한 것도 작지만 큰 변화다. 이외에도 내용과 형식면에서, 또 제작 시스템과 관련해서 달라진 부분들이 적지 않다(달라졌다는 의미이지, 좋아졌다는 자찬은 아니다. 오해 없으시길).
그중에서 특히 라펜트와의 분리를 빼놓을 수 없다. 아직도 ‘환경과조경’과 ‘라펜트’를 같은 회사로 알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이제는 회사도 대표자도 구성원도 사무실도 다르다. 같은 사무실을 쓰던 시절에도 잡지 제작 인력과 라펜트 담당 인력이 구분되어 있었기에, 분리 과정에서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환경과조경’과 ‘라펜트’가 한솥밥을 먹던 시기에 유지되던 콘텐츠 분리 원칙으로 인해 『환경과조경』과 『에코스케이프』의 뉴스 매체로서의 역할이 현저히 줄었다. 당시의 콘텐츠 배분 원칙 중 하나는 뉴스를 라펜트에 집중적으로 싣기로 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환경과조경』은 작품 위주의 설계 콘텐츠와 조경 담론을, 『조경생태시공』은 환경복원, 조경 시공, 조경 자재 등의 콘텐츠를 맡는 식으로 내용 분담이 이루어졌다. 라펜트는 일간 단위의 온라인 매체였기에 뉴스를 전담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현재 두 종의 정기간행물과 두 개의 출판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환경과조경’사의 지향점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꾸는 환경과조경!” 그런데 2014년 이전에는 “한국 조경 정보의 구심점”이란 모토를 가장 크고 굵게 강조했었다. 그렇다면 지향점도 달라진 것일까? 공식 블로그(http://la-korea.co.kr)에는 이런 문구가 한 줄 덧붙여져 있다. “어제와 오늘의 한국 조경을 기록하고, 내일의 새로운 조경 문화를 설계합니다.” 얼마나 그럴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 조경의 기록 = 조경 정보의 구심점’, ‘내일의 조경 문화 설계 = 조경 문화 발전소’로 읽히길 내심 기대하며 쓴 모토다. 또 그런 역할을 하리라 다짐도 하면서(물론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냐 보다 무엇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지만 말이다).
실제로, 중요 완공 작품을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해 소개하고, 설계공모 수상작을 가급적 상세히 수록하고, 동시대 설계가들의 단상과 담론을 공유하고, 조경과 도시를 바탕으로 한 이슈와 키워드를 특집으로 다루고,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에코스케이프』를 통해 환경 복원, 조경 시공과 관련된 중요 프로젝트와 이슈를 조명하고, 전문가의 노하우와 정보를 연재로 소개하고, 새로운 조경 공법과 자재를 수록하고, 정원 관련 콘텐츠를 다루고, 관련 도서도 꾸준히 발간하고 있으니 적지 않은 정보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전과 비교할 때, 확실히 뉴스는 부족하다.
뭐,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닌데, 참 멀리도 돌아왔다. “작년 하반기부터 『에코스케이프』의 뉴스 지면 강화를 꾀하고 있으니, 따뜻하고 따끔한 관심을 부탁드린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데 말이다. 물론, 누군가의 진단처럼 지금이 ‘뉴스의 시대’인지 ‘뉴스 포화의 시대’인지 ‘정보 과잉의 시대’인지에 대한 점검도 분명 필요할 것이다. 단순히 정보가 많다고, 뉴스가 많다고 시간과 시선을 내어줄 독자들은 더 이상 없을 테니까. 나 역시 그러하니까.
알랭 드 보통이 지은 책의 부제목처럼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뉴스에 대해 매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더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새롭기만 하다고 해서 뉴스인 시대는 이미 저물었으니까. 더 이상 뉴스만 정보인 시대도 아니니까. “무엇이든 드러내려고 안달하”2기보다는 보다 정제된 콘텐츠를 아름답고 적절하게 제공해야 하는 시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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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세계의 끝 여자친구
Editor's Library: World’s End Girlfriend
잡지에 실릴 작품 이미지를 고르는 작업은 언제나 두통을 몰고 온다. 이제 제법 익숙해 질 때도 되었건만, 이미지의 우선 순위와 레이아웃을 구상하는 작업은 여전히 어렵다. 한 번집중력을 잃고 무언가에 홀리기 시작하면 결정 장애의 블랙홀에 빠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이런 점 때문에, 그 사진은 그런 점 때문에 좋아 보였다가도, 또 어느 순간에는모든 사진이 부적합해 보인다. 1차적으로는 프로젝트의 주변 맥락과 설계 의도, 디자인 해법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몇 가지 핑계를 댈 만한 변명거리도 있다.
보통, 사진의 화질이나 구도가 좋지 않은 경우, 컷 수가 너무 적은 경우, 사진 출처가 불분명한 경우엔 머릿속에서 레이아웃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작업한 캇베이크 해안 프로젝트는 평소와는 다른 이유로 메인 컷을 고르는 데 애를 먹었다. 캇베이크 해안 프로젝트는 네덜란드 남서부, 북해 연안에 위치한 인구 4만 1,000명의 소도시, 캇베이크의 사구 경관을 복원했다. 캇베이크는 1848년 해수욕장을 개장한 오랜 휴양 도시이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건축물도, 화려하고 이국적인 식생도, 특별한 레포츠 시설도 없는 조용한 마을이다. 마을 분위기에 어울리게 프로젝트도 차분하고 소박했다. 제방을 덮은 사구 언덕이 프로젝트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미지라고 생각해서 메인 컷으로 넣어보았는데 다른 프로젝트와 비교하니 뭔가 아무것도 없는 것 같고 심심해 보였다. ‘메인 컷은 시선을 사로잡는 ‘쌈박한’ 이미지가 들어가야 한다’는 고정관념 아닌 고정관념이 있던 터라 고민이 많이 됐다. 몇 번의 회의와 이미지 교체를 거친 끝에 최종적으로 선정한 메인 컷에는 억세고 질겨 보이는 사구 식생이 뒤덮은 언덕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쓸쓸해 보이기도, 다정해 보이기도 하는 두 사람의 모습과 네덜란드 북해 연안의 허허로운 풍경에서 연상되는 소설이 있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남자의 경우엔 호불호가 갈렸지만, 대학 시절, 국문학과 여학생치고 김연수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애는 없었다. 2013년도쯤인가 한 출판사의 기획으로 김연수의 낭독회가 학교 소극장에서 열렸는데 신청한 사람의 90% 이상이 여자였을 정도다.
‘아직까지 김연수 소설을 안 읽었냐’는 주위 친구들의 성화를 못 이겨 읽는 체 했지만, 나는 사실 ‘세계의 끝 여자친구’와 같은 제목의 소설은 너무 단 디저트처럼 왠지 껄끄럽고 낯간지러웠다. 그러다 21살 여름, 나 역시 결국 김연수의 광팬이 되었다. ‘세계의 끝’은 아니지만 친구의 집에 놀러간다는 핑계를 대고 좋아하는 선배를 보러 태풍을 뚫고 한반도 남쪽 끝까지 내려갔던 여름방학의 일이었다. 그렇게 단단히 제대로 눈에 콩깍지가 씌자 그렇게도 질색을 하던 연애소설과 유행가가 전에 없이 애틋하게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혼자만의 속앓이로 끝난 내 짝사랑의 말로처럼, 사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로맨틱하거나 달콤한 소설은 아니었다. 심지어 소설에서 등장한 ‘세계의 끝’은 내가 기대했던 ‘아득한 저 너머’는커녕, 메타세쿼이아 한 그루가 서있는 동네 호수 건너편이다. 소설의 플롯은 강렬하기보다는 잔잔하다. 요약하면, 도서관 게시판에 붙어 있는 시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우연히 읽고 ‘함께 시를 읽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하게 된 ‘나’가 모임에서 만난 ‘희선 씨’를 통해 시를 쓴 시인의 이루어질 수 없던 사랑이야기를 듣고 시인의 전 여자친구에게 시인이 부치지 못한 편지를 전달하게 된다는 내용이 전부다. 그렇지만 이 소소하고 평범한 사랑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세상의 끝’을 걸어가는 연인의 모습을 본 듯한 기분이 든다. 아주 사소한 계기, 평범한 일상의 단초가 그 이면의 배경·맥락과 만나 거대하고 깊은 삶의 서사로 긴밀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게시판에 시를 소개하곤 했던 한 사서의 부지런함이 단초가 되어 시 모임이 만들어지게 되고, 모임의 회원이 소개한 시를 읽은 ‘나’가 호기심에 책 한 권을 찾아보게 되며, 덕분에 시인의 과거와 사랑 이야기를 알게 된 ‘나’를 통해 시인의 편지가 옛 여자친구에게 전해지는 일련의 과정은 거미줄처럼 촘촘하고 섬세하게 진행된다. 작가는 평범한 일상에서 우연과 우연이 만나 필연처럼 전개되는 순간을 예민하게 포착한다. 불가사의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던 삶의 원초적인 비밀을 한 꺼풀 벗겨보는 느낌을 받는다. 소설에서 ‘나’는 이렇게 회상한다. “비록 형편없는 기억력 탓에 중간중간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빠진 것처럼 보이긴 하겠지만, 어쨌든 인생은 서로 물고 물리는 톱니바퀴 장치와 같으니까.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최초의 톱니바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1
그러니까, 뭔가 아무것도 없는 것 같고 심심해 보이기까지 하는 캇베이크 해안의 사구 언덕 사진에도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가, 최초의 톱니바퀴가 숨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쓸쓸해 보이기도, 다정해 보이기도 하는 두 사람은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넘어 ‘세계의 끝’을 향해 걸어가는 연인인지도 모른다. 마을과 바다 사이의 거리가 더 늘어난 덕분에 어쩌면 그들은 전보다 더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을지도 모른다. 모래에 뿌리를 박고 자라난 억세고 질긴 풀 숲 사이에 누군가 부치지 못한 편지를 묻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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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베니스 길목에서 만나는 ‘세상의 골목들’
The 56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 la Biennale di Venezia
두 손을 마주 잡은 듯한 형상의 베니스는 120여 개의 섬, 400여 개의 다리가 엮인 미로와 같은 수상 도시다. 지중해의 절경, 유서 깊은 건축물, 낭만적인 운하의 정취를 북돋는 곤돌라 등 베니스의 매력은 전 세계 여행자들을 불러들이지만, 미술전과 건축전이 격년으로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수많은 예술인들 역시 베니스로 불러들인다. 바로 얼마 전 성황리에 막을 내린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2015년 5월 9일 ~ 11월 22일)는 아프리카계 큐레이터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가 총감독을 맡아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 Futures’를 주제로 전 세계 미술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정치학을 전공한 엔위저의 사회ㆍ정치적 관심에 응답하듯 53개국 136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에는 동시대의 분쟁과 사회적 현상을 직시한 작업이 주를 이뤘으며, 국가관 전시 또한 각각의 사회ㆍ정치적 이슈로부터 미래의 전망을 모색했다. 베니스 섬의 가장 끝 부분에 위치한 지아르디니Giardini와 아르세날레Arsenale 두 장소에서는 총감독이 기획한 본 전시와 각 나라별로 기획한 국가관 전시를 개최한다. 현재 89개의 국가관이 있는데, 이곳에 국가관을 두지 못한 30여 개 나라는 베니스 곳곳에 흩어져 건축 공간을 활용한 전시를 선보인다. 전시 기간 동안 세계적으로 저명한 작가들의 작품은 큰 화두가 되고, 각 국가관의 전시도 자본력에 힘입어 여러 매체가 경쟁적으로 다루곤 한다. 사실 짧은 일정으로 베니스를 방문한 미술인들은 이 두 장소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벅차다. 시종일관 스펙터클한 수백여 개의 작품을 하루이틀 만에 모두 보려 한다면,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넘쳐나는 정보에 머리가 멍해지곤 한다. 마치 국제적 이슈가 가득한 신문을 연이어 읽는 듯하다. 행사가 모두 끝난 시점, 2017년의 비엔날레 감독이 발표되고 올해의 건축 비엔날레가 곧 드러날이 시점에 필자는 골목길에서 묵묵히 울려 퍼지던 작은 국가관들과 전시들을 이번 지면을 빌려 소개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이 연재가 동시대 예술과 도시성에 주목하고 있는 만큼 비엔날레 전시를 통해 베니스 도시 깊숙이, 건축물의 외부와 내부를 여행하듯, 세계 곳곳에서 온 목소리를 들어보자.
건축과 현대 미술 사이의 황홀한 대화 : 창조의 소리전, 션 스컬리전, 단색화전
베니스에 있으면 어느 건물 하나 역사적이지 않은 게 없다. 수백 년, 어떤 건축물은 천년 이상 되기도 했으니 도시 전체가 박물관과 같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이런 진귀한 건축물이 가득하지만 사실 관광객에게 개방된 유적지와 박물관, 전시실, 공공건물을 제외하고는 개별 건축 공간을 경험하기란 쉽지가 않다. 더군다나 전 세계에서 온 여행 인파까지 북적거리니 공간의 사색에 고요히 잠기기란 더욱이 어렵다. 건축 공간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그리고 사색의 골목길을 즐기고 싶다면,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동안 진행되는 병행 전시와 도시 속 국가관 전시들을 최대한 활용하라 조언하고 싶다.
숨겨진 현대 미술 전시를 발견하는 묘미와 더불어 평상시에는 개방되지 않는 사적인 공간을 경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골목 곳곳을 누비며 비밀스런 저택의 풍경을 탐닉하는 즐거움을 덤으로 안게 된다.
처음 소개할 전시는 1603년에 지어진 팔라초 피사니Palazzo Pisani에서 열린 뮤지션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화가 비지 베일리Beezy Bailey의 전시 ‘창조의 소리The Sound of Creation’다. 이 건축물은 현재 베네데토 마르첼로Benedetto Marcello 음악 학교로, 내부공간에 들어서면 클래식 선율이 울려 퍼지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이곳 내부의 주 계단을 활용해, 베일리의 그림을 보며 이노의 음악을 헤드셋으로 청취할 수 있도록 했다. 청각과 시각이 결합된 특별한 협업 전시다. 그림은 음악의 이미지를 풍부히 연상시키고, 음악은 미술의 시각 작용을 더 깊숙이 자극한다.
“우리는 음악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눈으로만 이미지를 보지 않는다.” 기획의 변처럼 공간에 울리는 소리가 잠재된 기억들을 현재로 생생히 불러들인다. 두 작가의 시각적 소리, 청각적 그림은 건축물에서 울려 퍼지는 선율과 만나 더욱 풍성해진다. 뿐만 아니라 건물의 한 홀에는 작년 국가관 황금상을 받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앙골라관의 ‘여행길에서On Ways of Travelling’가 동시대 앙골라 작가들의 사회적 의식을 소개했다.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건축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신지도제작자’(송원아트센터, 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송원아트센터, 2014), ‘Hidden Dimension’(갤러리 스케이프, 2013)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갤러리 스케이프 책임큐레이터, 갤러리킹 공동디렉터,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15년 동북아시아 도시 리서치(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를 진행했으며, 2016년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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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유스
젊음의 조건
공모 제출을 며칠 앞두고 설계실엔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감돈다. 초콜릿으로 당을 보충하고 커피를 거푸 마셔보지만 체력은 급속히 떨어진다. 대세에 큰 지장이 없는데도 수치지도와 항공지도 중 어떤 것을 베이스로 할지 토론을 거듭하고, 같은 다이어그램을 수십 번도 더 바꿔본다. 미세한 선 두께 하나, 눈에 띄지도 않을 토씨 하나 바꾸고 박수를 치는 지경에 이르면 누군가의 입에서 변태(?)라는 표현이 저절로 나온다. ‘예전엔 말이야. 이 그림자를 다 연필 가루로 갈아서 만들었어. 글자 스티커를 일일이 손으로 따 붙이고 동선은 띠 테이프로 표현했지.’ 마우스로 설계를 배운 세대들에게는 한국전쟁 때 이야기로나 들릴 법한 무용담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선배들에게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내가 왕년에’로 시작하는 모험담이었는데, 이제 내가 후배들에게 읊고 있다. 나이 들었다는 증거다. 나이 들면 지혜가 저절로 생기는 줄 알았다. 경험의 사례가 많아지는 것 외에 나이 들어서 나아지는 건 별로 없다. 무엇이 사람을 늙게 하는가.
무엇이 젊은 걸까. 시간 외에 다른 변수는 정말 없는 걸까.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다는 노래 가사처럼 젊음은 그 당시엔 알지 못한다. 그저 서툴고 불안하기만 했다. 영화 ‘유스Youth’는 늙음을 보여 줌으로써 역설적으로 젊음을 이야기한다. 유스의 주인공은 두 노인이다. 은퇴한 지휘자 프레드는 비서 역할을 하는 딸과 함께 스위스 호텔에 투숙 중이다. 건강 검진을 겸하며 휴양 중인 프레드는 영국 여왕의 특별 행사에서 그의 대표곡인 ‘심플 송’을 연주해 달라는 요청을 받지만 거절한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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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이집트 유전자 찾기
History of Landscape Architecture with 100 Scenes: Finding the Egyptian Gene
#75
나일 강에서 빌라 데스테까지
1549년 이탈리아의 티볼리.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그의 전설적인 이상향, 빌라 아드리아나1를 지었던 곳. 그 빌라의 폐허를 뒤지고 다니는 인물이 있었다. 피로 리고리오Pirro Ligorio(1514~1583)라는 이름의 화가이자 건축가, 고미술 전문가였다. 당시 그는 유적지의 돌무더기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고고학자로서 새로운 경력을 쌓는 중이었다. 데스테Ippolito II. d’ste(1509~1572) 추기경이 그에게 명을 내린 것이다. 데스테 추기경은 티볼리의 총독이 되어 새로 부임해 왔다. 기왕티볼리에 부임한 이상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진정한 후계자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살 곳을 찾아보니 성벽에 높이 자리 잡은 성 프란시스코 수도원의 위치가 좋아 보였다. 언덕 위에서 계곡을 내려다보는 형상이었다. 주변 경관이 수려했고 동쪽으로 아이에네 강이 감싸 돌고 있었다. 추기경은 이 수도원을 자신의 거처로 정하고 주변의 농가를 모두 사들였다. 이들을 철거한 뒤 거대한 정원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리고리오에게 설계의 총책임을 맡기고 빌라 아드리아나 유적지를 샅샅이 탐사하라고 지시했다. 리고리오에게는 고대의 건축과 예술을 연구할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였으므로 발굴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 물론 발견된 조각상들을 퍼가는 것도 임무 중의 하나였으나 건축물의 잔재, 조형물, 시설 등을 꼼꼼히 그려 스크랩북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에 영감을 얻어 ‘빌라 데스테Villa d’ste’를 설계했다. 이탈리아 정원 중 최고의 걸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리고리오의 눈앞에 드러난 유적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 지 우리는 확실히 알지 못한다. 영원한 발굴 현장이므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일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드리아나 빌라 유적지 항공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중요한 ‘물의 축’들을 리고리오도 본 것은 틀림없다. 지하에 거미줄처럼 연결되었던 수로도 탐험했을 것이다. 빌라 데스테는 두말할 것 없이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할’ 명소로 꼽을 수 있는 곳이다. 정원의 기본 틀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지만 수백 개의 크고 작은 분수가 장관을 이루며 웅장한 콘서트를 연주하는 물의 오케스트라 정원이다. 특히 백 개의 분수가 나란히 정렬된 길은 너무나 유명하다. 전체 공간 구조를 보면 사면, 즉 테라스 정원과 평지 정원으로산뜻하게 이분 된다. 언덕 위의 건물 정면에서 종축을 따라 다섯 단의 테라스를 내려가면 평지에 도달하는데 여기서 바로 횡축과 만나게 된다. 이 횡축은 긴 연못 세 개가 연속된 ‘물의 축’이다. 동쪽으로는 거대한 물 오르간과 넵튠 분수가, 서쪽으로는 엑세드라Exedra라고 하는 장식벽이 축을 마감한다.2 아콰에둑투스와 지하 수로망을 만들고 아이에 네 강의 물을 끌어와 초당 1,200리터의 물 공급이 가능했다고 한다.3 횡축 아래쪽의 평지 정원은 본래 설계되었던 것과 지금 모습이 전혀 다르다. 당시엔 좌우로 복잡한 미로가 조성되어 있었고 중앙에서 트렐리스 두 개가 교차했다. 현재 방문객들은 건물 뒤로 입장하여 정원으로 ‘내려’가게 되어있으나 본래는 정원 쪽에서, 즉 종축이 끝나는 곳에서 입장하여 건물을 향해 ‘올라’가도록 유도되었다.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다. 우선 정원 게이트를 통해 입장하면 바로 터널과 같은 트렐리스로 들어간다. 컴컴한 터널 속을 걷는 동안 갑자기 우레 같은 대포 소리, 총소리가 들려와 간이 서늘해진다. 그러다 잠잠해지면서 아름다운 새들의 합창이 들리는가 하면 다음 순간엔 파이프 오르간이 장중하게 울리고 어디선가 높은 트럼펫 소리가 공기를 가른다. 물을 이용하여 각종 음향 효과를 냈던 것인데 터널의 어둠 속을 걷던 방문객들은 소리의 원천을 모르니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그러다 터널 중간 지점에서 길이 좌우로 갈린다. 갈림길을 따라 좌우로 가면 깊은 미로로 연결되어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그러나 좌우의 유혹을 물리치고 직진하면 터널 끝에 빛이 보이며 밝은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이때 아마 모두 ‘아!’ 하고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어둠과 위협 속에서 헤매다 마침내 낙원에 도착한 것이다(에티엔 뒤페라크의 빌라 데스테 조감도 참조).
빌라 데스테는 일종의 ‘도상圖像 정원’이다. 상징과 부호가 가득 담겨 있는 그림처럼 뜻을 해독해야 하는 정원이다. 분수, 조형물, 시설물 등이 바로 상징과 부호 역할을 한다. 해석하기에 따라 우주의 심각한 비밀이 숨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표면적으로 보면 숨은그림찾기나 퀴즈 같은 일종의 지식 게임이다. 세 가지 주제가 도입되었다. 첫째는 ‘자연과 예술의 관계’, 둘째는 ‘지역의 아름다움’이며, 셋째는 ‘헤라클레스와 헤스페리데스 정원’이다.4 자연과 예술의 관계는 우선 정원 그 자체에서 읽어낼 수 있지만 백 개의 분수에도 가득 숨어있다. 이 분수는 두 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단의 분수는 모두 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나 상단의 형상들은 제각각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형상들이다. 당시의 방문객들은 이들의 정체를 알아보고 그에 얽힌 사연들을 설명할 수 있어야 체면이 섰을 것이다. 다음주제, 즉 지역의 아름다움은 티볼리 분수라거나 로마 분수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영웅 헤라클레스의 차례다. 데스테 가문 역시 조상이 헤라클레스라고 우겼던 사람들이었다. 정원 도처에 황금 사과 모티브가 숨겨져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위에서 설명한 정원 체험 콘셉트다. 헤라클레스처럼 어두운 지하 세계를 통과한 뒤 마침내 도달한 낙원. 이것이 헤스페리데스 정원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런 의미에서 트렐리스와 미로가 없어진 것과 동선이 달라진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숨은그림찾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수년 전부터 이집트 학자들 사이에 ‘빌라 데스테에서 이집트 유전자 찾기’ 게임이 시작되었다. 이 게임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다시 빌라 아드리아나로 되돌아가야 한다. 빌라 아드리아나가 이집트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빌라 데스테가 여기서 영감을 얻었으니 이집트의 유전자도 함께 묻어갔을 것이라는 짐작은 그리 황당한 것이 아니다. 빌라 아드리아나의 카노푸스Canopus라는 파노라마 연회장을 기억할 것이다. 카노푸스는 나일 강 하구에 있는 운하 도시다. 여기서 일단 이집트와 만나게 된다. 그런데 어째서 하드리아누스는 로마 황제이 면서 이집트 도시를 자기 정원에 형상화했던 것일까. 그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로마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왕조를 무너뜨린 뒤 이집트는 로마 황제의 직속 통치령이 되었다. 로마 황제들은 자동으로 파라오가 되었고 이집트는 그들의 ‘사유지’나 다름없었다. 또한 이집트 정복과 함께 로마에 이집트 바람이 크게 불었다. 한시적인 돌풍이 아니라 근 오백 년간 지속된 기후 변화 현상이었다. 무엇보다도 평민들이 이집트의 이시스 여신을 ‘종합 신’으로 받아들여 이시스 컬트가 크게 융성했다.5하드리아누스는 오랫동안 이집트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들처럼 아끼던 안티노오스Antinous라는 미소년이 동행했는데 카노푸스 근처의 나일 강에서 익사하고 말았다. 이를 슬퍼한 황제는 안티노오스의 이름을 딴 도시를 설립하고 그가 오시리스 신이 되었다고 선언했다.6 집으로 돌아와 티볼리의 빌라에 이제는 신이 된 안티노오스의 신전을 세우고 카노푸스 연회장을 지었다. 빌라에 연회장이 여러 개 있었으나 이 카노푸스는 아마도 안티노오스를 조용히 애도 하는 사적 연회에 이용되었을 것이다. 빌라 데스테에서 카노푸스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횡으로 연계되는 물의 축에서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여기에 리고리오는 강한 종축을 교차시켰을 뿐이다. 이런 종축은 하드리아누스 시대에는 없던 것이다. 르네상스 전성기에 시작되었으며 후에 바로크에서 완성된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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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의 경제학] 조경가의 경제학적 스타일 1
Economics of Landscape Architecture: Economic Style of Landscape Architects 1
조경가의 스타일
당신은 조경가다. 사람들이 휴식하고 사색하고 땅과 교감할 수 있는 정원을 디자인하는 것이 당신의 일이다. 어제 중요한 프로젝트를 하나 끝낸 터라 오늘은 좀 한가하다. 의자를 젖히고 뒤로 기대본다. 작업실 책장 높은 곳에 언제부터 인지 모르게 꽂혀 있는 낡은 그림책에 눈이 간다. 느긋함을 좀 더 즐기기 위해 먼지를 털어내며 펼쳐본다. 책에는 유명한 정원들이 소개되어 있다. 정원마다 특색이 있어서 굳이 단락을 나누지 않아도 시대나 작가가 다름을 짐작할 수 있다. 학창 시절 그 이름들을 외우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문득 진지한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사람들은 나의 작품을 어떻게 알아볼까? 작가로서 나의 스타일은 무엇인가’예술에서 ‘양식style’은 크고 진지한 이야깃거리다. 양식은 작가 개인, 시대나 민족, 범주로서의 장르 등 다양한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미학적 개념이다. 특히 시대나 민족에 따라 다른 문화와 예술 형식의 관계를 다루는 ‘역사적 양식’은 예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조경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조경사는 대체로 양식사로서의 정원사다. 그래서 조경학을 전공한 사람은 양식이라고 하면 절대 왕정 시대 프랑스의 기하학적 정원이나 18세기 영국의 풍경화식 정원 같은 전형을 먼저 떠올린다.
반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스타일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 그것이 패션이든 영화든 (심지어 예술이 아닌) 사람의 성격이든 일관되게 관찰되는 형식이 있어서 한 종류로 묶을 수만 있으면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어떻게 묶든 뭐라고 부르든 그건 내 맘이다. ‘그 남자는 잘 해줘도 고마운 줄 모르는 왕자 스타일이야. 내가 전에 사귄 오빠도 같은 스타일이었잖아. 늦기 전에 어서 헤어져.’ 전혀 어색하지 않은 훌륭한 문장이다.
당신은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의 스타일을 생각한다. 미학 이론처럼 심각하지 않더라도 일상용어보다는 좀 더 무게 있는 방식으로. 우선 작품에서 자주 발견되는 형태에 주목해 본다. 시각적 특징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차별화된 체험을 주는 핵심적인 요소니까. ‘그런데 눈에 보이는 형태로 스타일을 정의하다니, 너무 식상하지 않은가’ 이번에는 부지를 해석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방법에 주목해 본다. 세계적인 조경가들이 난해한 이미지와 다이어그램으로 자신의 작업방식을 표현한 것을 떠올리면서. ‘하지만 어지간히 유명하지 않고서야 누가 나의 디자인 과정에 관심을 가지겠는가’ 그 외에 생태적 건강성에 대한 태도, 정원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철학 등 여러 측면을 배회한 끝에 당신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조경가의 스타일을 정의하기 위한 접근 방법은 매우 다양하며, 당신이 그 중 어느 하나에 주목한다고
해도 나머지의 의미가 상실되지 않는다는 것을. 형태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생태주의자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참신한 방법론이 적용된 작품이 과연 정원이라불릴 수 있는지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작가의 생애와 작품의 의도에 자상하게 주목하는 전기傳記적 비평은 문학에서도 주류의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오늘날 비평은 창작으로부터 자유롭다. 하물며 정원이라는 실물을 생산하는 조경에서야.조경가의 스타일이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해서 조경이 특이한 예술인 것은 아니다. 그러한 사정은 문학이나 음악이나 미술에서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다만 조경은 토지라는 자원을 사용하고 사람이 생활하는 장소를 만든다는 점에서 환경이나 사회적 측면을 깊게 고려하는 특징을 가진다. 그러니 경제적 측면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문학이나 음악이나 미술과 차이를 갖는 조경이라는 예술의 특징이다. 이 글에서는 시장균형을 다루는 경제 모형을 통해 조경가의 경제학적 스타일을 살펴보고자 한다. ‘조경가가 추구하는바’와 그것이 초래하는 ‘시장균형의 변화’가 중요한 관심사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접근 방법은 전혀 미학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살펴볼 경제학적 메커니즘으로부터 조경가가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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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생산
The Way They Design: Production
지난 두 번의 연재를 통해 설계에 대한 나의 테제 몇가지를 공유했다. ‘문제제기’와 ‘과정’에 이어 마지막으로 ‘생산’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단상을 풀어놓는다. 생산의 문제는 어떻게 보면 설계의 가장 즉각적인 행위다. 다양한 도구와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고방식이자 작업으로, 머리와 손 그리고 도구의 친밀한 연장 관계 속에서 구현된다.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사적이지만 가장 대중적이고 능동적인 공간 생산 방법이다. 이를 개인의 기술, 감각, 경륜의 결과로 설명하면 설계를 너무 사적인 행위로 한정하게 된다. 설계는 공간의 사용을 통해 지식 담론을 탐색, 항해, 생산하는 행위다. 비평가나 학자가 글쓰기를 통해 담론을 생산하듯 설계가는 공간 재현을 매체로 담론을 구축한다. 텍스트뿐만 아니라 다이어그램, 도면, 스케치, 이미지, 그래픽, 모형, 등 각양각색의 재현 매체와 이 매체와 관련된 담론은능동적 공간 생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조금은 더 즉각적인 생산의 단상을 짚어본다.
보르헤스의 지도
첫 설계 수업에서 교내 건물 실측과 도면 그리기 과제가 주어졌다. 처음 접하는 스튜디오 문화였고, 2주 안에 캠퍼스 내에 위치한 르 코르뷔지에의 카펜터 센터Carpenter Center를 실측하고 도면화 해야 하는 과제였다. 어마어마한 작업량에 매달리면서 왜 현존하는 건물을 그대로 베끼는 작업을 해야 하는지 의아해 했다. 졸업하고 난 후 한참 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과학의 정밀성에 대하여On Exactitude in Science”1라는 짧은 단편을 읽고서야 이 과제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축소·재현된 지도에 만족하지 못한 제국의 뛰어난지도 제작자들은 전국을 일대일로 상세히 복제한 지도를 제작한다. 하지만 지도 제작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후세는 이 지도가 쓸모없다고 생각했고 결국 이 지도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다. 이 이야기는 현실의 일대일 복제의 부질없음을 말한다. 축소를통한 선택적 편집과 재현은 현실의 복제보다 더 강력한 매개체이며 지도와 같은 레프리젠테이션 또한 동의된 코드와 언어적 구조 속에서 재현의 메커니즘을 구축한다. 따라서 보르헤스의 지도는 설계에 있어 세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공간은 항상 레프리젠테이션, 즉 재현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둘째, 공간의 재현은 스케일을 매개로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셋째, 재현은 능동적 편집의 문제라는 점이다. 현실화되기 전까지 상상과 이미지로 존재하는 공간은 도면이나 모델 등으로 축소되어 소통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스케일은 선택적 편집의 능동적 도구가 된다. 현실과 재현 사이의 차이는 문제가 아닌 기회다. 설계는 실제와 레프리젠테이션 사이에 존재하는 스케일의 갈등을 선택적 축약, 의도적 지난 두 번의 연재를 통해 설계에 대한 나의 테제 몇 가지를 공유했다. ‘문제제기’와 ‘과정’에 이어 마지막으로 ‘생산’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단상을 풀어놓는다. 생산의 문제는 어떻게 보면 설계의 가장 즉각적인 행위다. 다양한 도구와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고방식이자 작업으로, 머리와 손 그리고 도구의 친밀한 연장 관계 속에서 구현된다.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사적이지만 가장 대중적이고 능동적인 공간 생산 방법이다. 이를 개인의 기술, 감각, 경륜의 결과로 설명하면 설계를 너무 사적인 행위로 한정하게 된다. 설계는 공간의 사용을 통해 지식 담론을 탐색, 항해, 생산하는 행위다. 비평가나 학자가 글쓰기를 통해 담론을 생산하듯 설계가는 공간 재현을 매체로 담론을 구축한다. 텍스트뿐만 아니라 다이어그램, 도면, 스케치, 이미지, 그래픽, 모형, 등 각양각색의 재현 매체와 이 매체와 관련된 담론은 능동적 공간 생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조금은 더 즉각적인 생산의 단상을 짚어본다.
보르헤스의 지도
첫 설계 수업에서 교내 건물 실측과 도면 그리기 과제가 주어졌다. 처음 접하는 스튜디오 문화였고, 2주 안에 캠퍼스 내에 위치한 르 코르뷔지에의 카펜터 센터Carpenter Center를 실측하고 도면화 해야 하는 과제였다. 어마어마한 작업량에 매달리면서 왜 현존하는 건물을 그대로 베끼는 작업을 해야 하는지 의아해 했다. 졸업하고 난 후 한참 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과학의 정밀성에 대하여On Exactitude in Science”1라는 짧은 단편을 읽고서야 이 과제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축소·재현된 지도에 만족하지 못한 제국의 뛰어난 지도 제작자들은 전국을 일대일로 상세히 복제한 지도를 제작한다. 하지만 지도 제작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후세는 이 지도가 쓸모없다고 생각했고 결국이 지도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다. 이 이야기는 현실의 일대일 복제의 부질없음을 말한다. 축소를 통한 선택적 편집과 재현은 현실의 복제보다 더 강력한 매개체이며 지도와 같은 레프리젠테이션 또한 동의된 코드와 언어적 구조 속에서 재현의 메커니즘을 구축한다. 따라서 보르헤스의 지도는 설계에 있어 세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공간은 항상 레프리젠테이션, 즉 재현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둘째, 공간의 재현은 스케일을 매개로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셋째, 재현은 능동적 편집의 문제라는 점이다. 현실화되기 전까지 상상과 이미지로 존재하는 공간은 도면이나 모델 등으로 축소되어 소통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스케일은 선택적편집의 능동적 도구가 된다. 현실과 재현 사이의 차이는 문제가 아닌 기회다. 설계는 실제와 레프리젠테이션 사이에 존재하는 스케일의 갈등을 선택적 축약, 의도적 편집 등의 협상을 통해 적극적으로 수용, 변형시킬 수 있는 능동적 생산 행위다. 컴퓨터 3D 모델링 프로그램과 캐드의 등장으로 디지털상에서 실제 스케일 작업이 가능해지면서 레프리젠테이션이 시뮬레이션으로 대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3D 모델링에도 목적에 따른 선택적 편집이 요구된다. 궁극적으로 3D 모델은 대부분 2D 도면으로 축소, 전환되어야하기 때문이다. 3D 모델링으로 정교한 모델을 만들었지만 이를 제대로 렌더링, 편집, 출력을 하지 못해 작업이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이는 시뮬레이션이 목적이 아니라 레프리젠테이션이 목적임을 인식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다. 보르헤스의 경고를 우리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머니샷
시애틀 올림픽 조각공원 설계공모를 준비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디자인 방향과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미팅이 있었다. 패널의 마지막 이미지인 조감도가 나오자 파트너는 “머니샷money shot을 위해 멋있어 보이도록 세로포맷으로 디자인을 조정합시다”라고 말했다. 사용 공간에 대한 고려 대신 레프리젠테이션의 효과를 중심으로 디자인을 생각하는 데 충격을 받은 내가 그 이유를 묻자, 그녀는 웃으며 모든 잡지 표지는 세로 포맷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기억은 나를 항상 불편하게 한다. 설계를 하면서 우리는 항상 프로젝트가 구상하는 공간의 미적, 경험적, 사용 공간에 대한 고민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설계는 다양한 차원에서 존재해야 하는 행위다. 실제로 지어져 사용자가 경험하는 물리적 공간이 되기도 하지만, 구상하는 공간의 재현만으로 존재하기도 하고 그 재현 매개체 자체가 설계 대상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공간의 생산Production of Space』에서 공간을 공간적 실천spatial practice, 공간의 재현representations of space, 그리고 재현의 공간 representational spaces으로 구분하여 정의한다.2 공간이란 실제와 재현 사이의 다양한 개념으로 존재하며 설계는 그 다양한 가능성을 활용한다. 재현을 통한 공간의 파생과 배포는 공간적 실천과 함께 설계의 중요한 생산 과정이다. 파트너와의 미팅 당시에는 마케팅 효과를 위해 디자인 콘셉트를 희생하는 게 저속하다고 생각했지만, 되돌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다. 물론 사용자를 위한 완성된 공간 생산에 전념하는 것이 설계가의 윤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행위력을 지닌 설계의 확장적 역량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공간의 재현과 재현한 공간의 다양한 능력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설계는 순수하고도 교활한 행위여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설계안은 결국 설계공모에 당선되었고 문제의 머니샷은 실제 공원이 현실화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많은 국제적 잡지와 여러 책의 표지를 장식했다.
어반 스레드(Urban Thread),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공공공간 설계 국제공모(2015)
세운상가에 대한 많은 재개발 의욕이 있었다. 1979년부터 네 차례 재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되었지만 상점 소유자와의 자금 문제로 실시되지 못했다. 그 후 이명박의 청계천 사업이 한참 진행 중이던 2004년, 세운상가 국제 지명 설계공모가 실시되면서 세운상가를 대신할 녹지축 공원과 이를 둘러싼 고층 첨단 산업 단지 개발이 시작될 듯 했다. 하지만 2005년 초, 청계천 관련 비리 의혹으로 세운상가 사업이 중지되었고 결국 오세훈 시장에게로 넘겨졌다. 그 후 종묘 앞 건물 높이 규제 완화로 인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보류와 상점 소유자와 임대 상인과의 마찰이 있었다. 2009년 초, 세운상가 1구역의 현대상가가 헐리면서 드디어 전 구역의 재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듯 했지만, 국제 금융 대란의 타격으로 사업이 폐지됐다. 2015년 박원순 시장 아래, 다시 재개된 세운상가 설계공모는 이전과는 다르게 기존 건물을 보존하면서 공중 도보 데크 설치와 순차적인 공공 공간의 개조, 보완, 리프로그래밍을 통한 재정비를 제안한다. 하지만 여전히 기존 임대인과 상인 사이의 이해 관계와 보상 문제 그리고 주변 지역의 고층, 고밀도 재개발과 기존 도시 조직 재개편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세운상가는 매 정권마다 도시 성장 기계로의 변신을 명목으로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따라서 이번 설계공모를 빌미로 낙후되고 기술은 뒤떨어졌지만, 그동안 존속되어 온 독특한 상권의 자의적인 업데이트와 새로운 기술력을 가진 중소 상점의 입주를 도와줄 수 있는 소프트 인프라구축의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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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공감] 제주 도립미술관
Space of Sympathy: Jeju Museum of Art
제주도의 아름답고 멋진 풍광에 비해 관광객을 맞이하는 수많은 시설의 수준은 그다지 미덥지 못하다. 특히 곳곳에 난립해 있는 사설 뮤지엄과 테마 공간들은 더더욱 열악하다. 그런 면에서 제주도립미술관의 등장은 신선한 뉴스였다. 넓은 대지에, 전면의 수 공간이 가지는 정갈함도 여타의 관광지와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건축적인 수 공간이 가지는 힘은 대지의 성격을 강하게 규정한다. 그래서일까? 건축물과 한몸을 이룬 이 공간이 대지 전체를 엮어내기보다는 앞뒤로 분절시킨다는 느낌이 강하다. 미술관에서의 옥외공간은 자연스럽게 전시 공간의 일부분일 뿐 아니라 전시물 그 자체가 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그 관계가 참 애매하다. 어떤 내러티브를 가진 듯도 하지만, 마치엄마의 밥 먹으라는 성화에 못 이겨 잘 그리던 미술 숙제를 도중에 놓아버린 느낌이랄까? 가능성에 비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건축과 대지, 작품과 경관이 어쩌면 환상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생각에…. 지금이라도 약간의 보완 작업을 가미하면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곳이다. _ 박승진
항공 사진으로 제주도립미술관을 확인해 보고 나서야 현장에서 본 식재와 포장이 조금이나마 이해되었다. 2D 화면에 펼쳐진 미술관의 레이아웃은 ‘큰 축과 선으로 감아주고’, ‘다양한 조형들이 과감하게 오버랩되면서 분절된 새로운 형태들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구사된 익숙한 플랜이었다. 그러나 겨울이었다고는 해도, 눈앞에 펼쳐진 공간은 설계자의 의도와는 꽤 차이가 있어 보였다. 이 거리감은 시공 과정에서 세밀함을 챙기지 못한 탓일까? 기본 설계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약한 탓일까?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