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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공간 문해력
    생태 문해력, 미학적 문해력이라는 표현까지 있듯 요즘 다양한 분야에서 ‘문해력(literacy)’이라는 용어가 쓰인다. 디지털 리터러시나 메디컬 리터러시처럼 번역하지 않고 그냥 리터러시로 쓰는 경우도 많다. 사전은 문해력을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 정도로 간략하게 정의하지만, 그 의미와 용례는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사용 매체와 소통 방식, 사회 참여 등을 결정하는 데 관여하는 기본 소양이나 문화적 기술을 뜻하기도 한다. 텍스트의 해독을 넘어 그것을 생성하고 수용하는 모든 능력을 뜻하는 말로 확장되고 있기도 하다. 나도 어느 유튜브 강의에서 ‘공간 문해력’을 말한 적이 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어떤 공간이나 장소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뭐가 왜 좋은지 물으면, 답변에 등장하는 표현이 정말 제한적이에요. 멋있다, 예쁘다, 대박이다 정도죠. 사용하는 어휘가 그것뿐이라는 건 곧 공간 문해력이 낮다는 거죠. 도시의 일상생활에서 좋은 공간을 구별하고 잘 경험할 줄 아는 능력, 즉 공간 문해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좋은 공간은 도시의 일상을 풍요롭게 합니다. 하지만 정부나 공공이 다 해주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공간을 둘러싼 이슈에 개입하고 참여해야 합니다. 공간 문해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나는 이 도시를 어떻게 경험하고 감각하는가, 그 장소가 왜 좋은가, 저 경관의 어떤 면이 아름다운가, 그런 환경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어렵더라도 자주 생각해보고 구체적으로 표현해보면 공간 문해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설익은 의미로 공간 문해력 개념을 말했는데, 뜻밖에 많은 피드백이 왔다. 누군가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살아가게 해주는 능력”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누군가는 구체적인 의미와 사례를 묻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좋은 공간을 구별하고 경험하는 소양’이라는 뜻 정도로 쓴 말인데, 깊이 있는 연구와 토론을 거친 학술적 개념은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공간 문해력은 공간이라는 텍스트를 잘 이해하고 해석하는 공간 수용자/경험자의 능력이지만, 그러한 힘은 텍스트의 독해자―즉 공간 수용자/경험자―뿐만 아니라 텍스트 자체―즉 공간 자체―에서도 나온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으나 짐작에 가까운 거친 논리라 숙제로 남기기로 했다. 1차 리노베이션을 마친 목동 ‘오목공원’을 개장 첫날 둘러봤다. 설계공모 당선작 ‘도시의 공공 라운지’(디자인 스튜디오 loci)와 똑같이 완공된 점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옛 공원의 바탕 위에 산뜻하고 날렵하게 삽입된 ‘회랑 라운지’. 회랑의 넓은 그늘과 넉넉한 의자가 모두를 환대한다. 회랑 위 공중 산책로에 오르면 풍성한 숲과 도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오래된 숲에 간결하게 삽입된 ‘숲 라운지’는 공원의 시간감을 두텁게 한다. 빈 의자를 찾기 어려웠다. 스스로 의자를 옮겨 자신의 라운지를 디자인하고 오래 머물며 가을을 즐기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공원을 산책하다 여러 번 놀랐다. 공원 디자인과 경관을 품평하는 이들이 곳곳에 있는 것 아닌가. 한 노인은 “공원이 현대식이라 사람들이 공원을 다르게 쓴다”고 말한다. 어느 커플은 “회랑 위 산책로 덕분에 공간이 두꺼워졌다”는 평을 나누며 걷는다. 중학생 몇몇은 “예전 공원도 좋았는데 왜 새로 만들어야 했는지” 토론한다. 이날따라 공간 문해력 출중한 사람들만 모였을 리 없다. 평범한 이용자들이 전문가 못지않은 평가를 하며 공원에 머무는 상황, 뭐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텍스트(공간)의 구성과 형태가 수용자/경험자의 문해력을 높인 게 아닐까. 언젠가 『환경과조경』 지면에서 공간 문해력을 다뤄보기로 마음먹으며 오목공원을 빠져나왔다. 그간 서울과 수도권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 도시의 조경 문화를 지면에 담아달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편집위원들과 독자들의 이런 의견을 조금이나마 반영해보고자 이번 호 대구 특집을 기획했다. 특집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는 대구의 도시 맥락과 경관 특성을 다각적 시선으로 독해한다. 정태영(경북대 교수)은 대구의 공원을, 최이규(계명대 교수)는 골목을, 양진오(대구대 교수)는 원도심을 읽는다. 편집자들이 꾸린 기사 두 편도 함께 엮었다. ‘편집부가 꽂은 대구 책갈피’는 1982년부터 2020년까지 『환경과조경』에 실은 대구 관련 기사를 요약, 소개한다. ‘대구 도시 공간 10선’은 유서 깊은 공원부터 새롭게 떠오르는 복합문화공간까지 주목할 만한 대구의 공간들을 살핀다. 이번 대구 특집을 계기로 본지는 1년에 한두 차례 지역 도시의 공간과 문화, 일상을 탐사하는 지면을 마련해볼 참이다.
  • [풍경 감각] 조각 하늘
    빨간 벽돌 다세대주택과 그 사이로 뻗은 전깃줄이 하늘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 있었다. 그곳은 대학교 2학년, 틈새 정원 설계 수업의 대상지였고, 내가 살던 동네였다. 이름은 청량했지만, 시원하게 트인 하늘을 볼 수 없었던 곳. 나무를 심는 대신 전봇대보다 높은 곳에 닿는 공중 계단을 놓아보았다. 손바닥 정도의 공간은 예쁜 것도 없이 빙빙 도는 계단으로 가득 차버렸지만, 그곳에 오르면 하늘을 통째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빨간 벽돌 속 작은 방에서 나와 골목골목을 돌아 학교 옥상에 올랐다. 시선 저 끝까지 고만고만한 집들이 밀물처럼 들어와 있다. 그 위로 크고 작은 산이 섬처럼 떠 있고, 하늘은 까만 도자기같이 매끄러웠다. 먼 곳의 가로등 불빛은 공기에 일렁거렸는데, 별이 빛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괜찮아졌다 싶을 때까지 이 풍경을 보고 돌아오곤 했는데, 사실 뭐가 어떻게 괜찮은지는 몰랐다. 귀가 먹먹해지는 걸 모르는 호텔 엘리베이터는 침을 삼키지도 않고 층을 오른다. 모르는 사람들과 루프탑에서 내린다. 맥주를 계산하고 자리에 앉으니, 뜻밖에도 귀뚜라미가 운다. 21층 꼭대기에서 산딸나무와 억새가 살랑인다. 사람들은 작업실 보증금보다 무거운 가방을 끼고 있다. 작업실의 한 달보다 비싼 호텔의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일까. 밤하늘을 보며 이상하게도 오래전의 공중 계단을 계속 빙빙 돌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 Reading Daegu and Its Landscape Culture
    대구는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다. 분지이자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진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여름이면 기온이 높게 치솟는다. 이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대구는 1996년부터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을 진행해왔다. 수천 그루 나무가 식재됐고, 도심 한복판에 두류공원, 팔공산자연공원 같은 굵직한 공원이 조성되었다. 쓰레기 매립장과 고수부지 주변의 방치된 땅은 생활의 숲으로 바뀌었다. 두세 줄로 풍성하게 심긴 키 큰 가로수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널찍한 띠 녹지 역시 대구의 특징적 도시 경관이다. 같은 해 시작된 ‘담장허물기 운동’ 역시 도심에 더 많은 녹지 공간을 만들어냈고 마을공동체 문화를 형성시키는 효과를 냈다. 대구는 국내 대도시 중 보기 드문 단핵 도시이기도 하다. 대구에서 가장 번성한 거리인 동성로가 중심에 있고 방사형으로 외곽 시가지가 펼쳐진다. 주요 도로 역시 중심가를 둘러싼 여덟 개의 고리형 순환도로로 구성되어 있다. 시가지에서 가지처럼 뻗은 원도심의 촘촘한 길들은 도시화 과정을 거치고도 살아남았고, 켜켜이 쌓인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특색 있는 골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구는 문화라는 키워드 아래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된 달성군은 ‘누구에게나 호혜로운 문화도시’로 변모를 꾀하는 중이다. 2023년 7월에는 군위군이 대구로 통합되며, 특‧광역시 중 가장 큰 도시로 발돋움하게 됐다. 군위군을 상징하는 삼국유사의 고장을 비롯해 풍부한 자연자원이 더해져 문화‧예술적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변화를 앞둔 대구의 도시 문법을 공원, 골목, 원도심을 통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를 조경의 관점에서 풀이함으로써 도시 대구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대구에서 진행된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의 면모를 살펴본다. 이번 특집이 도시의 구조와 특색이라는 맥락에서 조경 문화의 의미를 살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 대구 도시공원 르네상스를 위하여 _ 정태열 대구 골목길에 대한 인상 비평 _ 최이규 대구 원도심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_ 양진오 편집부가 꽂은 대구 책갈피 _ 김모아 대구 도시 공간 10선 _ 금민수
    • / 2023년10월 / 426
  •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 대구 도시공원 르네상스를 위하여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내용은 이정연과 정태열의 논문 “대구 도시공원의 변천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 해석”1에서 발췌했고, 2000년대 이후는 대구시 자료를 참조했다. 도시공원 계획‧개원 과정의 특징을 시대별로 분석하고, 이를 시대적 상황과 연관 지어 고찰함으로써 도시공원의 변천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를 알아보고자 했다. 향후 대구 도시공원 르네상스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대구 도시공원 태동기 1960년대 이전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복구기 등을 거치면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체계적인 공원 계획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면서 도시민의 건전한 휴식 공간 확보 및 자연 경관 보전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1967년 공원법이 제정되면서 공원‧녹지 관련 정책은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됐으나 대부분 공원 지정에만 그쳤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달성공원은 대구의 유일한 공원이었다. 달성공원은 고대 달구벌 부족국가의 성터로, 대구에 있는 도시공원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이다. 1905년(고종 38년) 처음 공원으로 조성된 이래 일제강점기에는 신사가 건립되는 등 각종 성역화 사업이 추진됐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군사 시설 주둔지로 활용됐다. 1964년 국유 재산인 달성공원이 대구시에 무상으로 양여된 후 재정비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먼저 대구시는 공원의 운영 및 시설에 대한 자문 기관으로 시민 대표와 권위자들로 구성된 공원조성위원회를 만들고, 막대한 예산 확보를 위해 시비와 국비를 최대한 할애하고, 시민과 대구 출신 재벌들의 후원을 얻는 등 공원 재정비 계획의 대략적 원칙을 세우고 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공원 설계는 당시 경북대학교에서 조원학을 강의하던 임순문 교수에게 의뢰했고, 1964년 7월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소요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1966년 8월 공원 내 신사 건물 철거를 계기로 공원 재정비를 계획했으나 자금난으로 3년 만인 1969년 8월에 개원했다. 당초 계획했던 어린이 놀이터, 도서관, 분수 시설, 연못 등은 예산 부족으로 손대지 못하고 시민의 여론에 쫓겨 미완성인 채로 문을 열었다. 당시 공원 입장료는 어른 20원, 어린이 10원이었다. 1960년대에 계획‧개원된 또 하나의 공원은 중앙공원(현 경상감영공원)이다. 중앙공원은 조선시대 감영監營이 있던 장소로, 해방 이후에는 경북도청, 공무원교육원 등으로 사용되기도 한 곳이다. 당시 대구에는 달성공원 외에 변변한 공원이 하나도 없었던 상황이었으므로 시민들은 이 부지가 공원이 되는 것을 열망했다. 이를 받아들여 대구시는 1965년 2월 건설부고시로 공원(당시 포정공원)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대구시의 결정과 달리 1966년 5월 경상북도는 이 부지에 관광호텔과 백화점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구시와 경상북도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다. 당시 건설부가 시민들의 여론과 결정‧고시 후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부지의 공원화가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으나, 공원을 원하는 시민들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공원 조성은 실현되지 못하고 계속 방치됐다. 그러다 1970년 1월에 포정공원 조성계획을 확정하고 10월에 개원했다. 당시 입장료는 어른 30원, 어린이 10원이었다. 1960년대는 국가적으로 경제적 빈곤이 문제시 되던 시기로, 시민은 물론 일부 정책 결정자들조차도 도시공원에 대한 인식이 매우 미흡한 상태였으나, 시민들의 공원을 열망하는 여론이나 기부 문화는 싹트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당시 사회적 상황을 종합해보면 시 외곽이나 도심부의 새로운 장소에 도시공원을 조성한다는 것은 재정적 면에서 불가능했으므로 시민의 접근이 용이하고 공원 조성 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 도심지 내 역사 유원지의 공원화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당연했다. 대구 도시공원 준비기 1970년대 들어서면서 백만 명을 넘어선 대구 시민이 이용하기에는 공원이 너무 부족한 상태였고, 계속되는 인구 증가와 도시화로 공원의 중요성은 부각됐다. 1965년 2월 공원으로 지정된 앞산공원은 별다른 계획 없이 방치되고 있었다. 대구시는 앞산공원을 자연공원 성격을 띤 대규모 공원으로 개발하고자 1970년부터 개발 사업에 착수했고 1971년 공원조성계획을 수립했다. 계획 당시, 앞산공원은 규모가 커 조성 비용이 많이 소요되어 전체 개발은 불가능했다. 계곡별로 성격이 다른 다섯개 지구로 분류해 1년에 한 지구씩 1975년까지 연차적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앞산공원 역시 민간 자본 유치 저조와 대구시의 재정난 등의 이유로 개발이 늦어지게 된다. 1975년 12월 앞산순환도로가 준공되면서 다시 조성에 탄력을 받게 된다. 비록 준공 시기를 여러 번 넘기긴 했으나 제2지구는 각종 놀이공원을 갖춘 유기장으로 1979년 4월에 완공됐다. 대구 도심에서 서쪽으로 약 3km 떨어진 서구 내당동과 서당동 일원에 위치한 두류산이 두류공원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두류공원은 1965년 2월 공원(건설부고시 제1387호)으로 결정‧고시되면서 조성 계획이 마련됐다. 1966년 2월에 발표된 두류공원 종합계획을 보면, 박물관, 대도서관, 야외 음악당, 드라이브 인 극장, 실내체육관, 풀장, 종합경기장, 어린이 놀이터, 식물원, 동물원, 양어장 등과 함께 케이블카와 두류산 정상에 높이 300m의 대구 타워 설치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재원 확보 방안을 고려하지 않은 계획이여서 두류공원은 종합대공원이란 이름으로 설계만 된 상태로 방치됐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원 조성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고 1974년 두류공원 기본계획이 확정된다. 그러나 공원 전체 면적의 92%가 사유지로 부지 매립 문제와 앞산공원 개발과 병행으로 실시에 따른 대구시의 재정난으로 인해 공원 조성은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하다가 1977년 5월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개원됐다. 1970년대에 수립된 도시공원 조성계획은 주로 자연 경관이 수려한 풍경지와 명승지에 구상됐고,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대규모 공원으로 계획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인구 증가와 도시화 등으로 도시가 거대화됨에 따라 도시의 기초 기반 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공원 또한 보다 발전적 방향으로 계획되는 점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당시의 공원조성계획은 시대적 상황과 재정적 문제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과도하게 수립되어 결국 재정적 문제 등으로 공원 조성은 계획 기간 내 완공하지 못하게 됐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이정연, 정태열, “대구 도시공원의 변천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 해석”, 『한국조경학회지』 41(3), 2013, pp.72~82. 정태열은 경북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랜드스케이프연구소(TLA)에서 11년간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도쿄공업대학에서 공학박사(경관공학)를 취득했다. 이후 서울에서 소울랜드스케이프(SLA)를 창립해 일하다가 2012년부터 경북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공간을 역사적 공간에서 찾는 중이며, 풍경을 어떻게 하면 팔 수 있을지 자문하고 있다.
    • 정태열 / 2023년10월 / 426
  •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 대구 골목길에 대한 인상 비평
    석류나무, 콩국 냄새, 오페라, 고요하고 바람이 정체된 밤공기. 대구의 골목길 인상들이다. 사뭇 소박하다. 대구란 도시는 한 쪽으로 치우치는 정치색을 제외하고는 딱히 뭐라 연상 작용이 없는 곳이다. 본인들 외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도시랄까. 어지간해서는 좀처럼 올 일이 생기지 않는 도시. 부산, 제주, 속초처럼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라이프스타일 도시 근처도 못가는 무척 심심한 도시다. 대도시지만, 그 흔한 호텔 체인도 없다. 노보텔이 있다 없어지고, 최근에 매리어트가 하나 생겼다. 아마 한국에서 재미없는 도시 뽑기 경기를 한다면 1, 2위를 다툴 만한 라이벌은 대전 정도 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구에 와서 할 만한 유일한 소일거리는 구도심의 골목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그 골목길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냐 묻는다면, 그런 건 기대하지 말고 그냥 잠자코 걸어볼 수는 있다고 하겠다. 대구는 무채색의 도시다. 약간 거무스름한 회색이랄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도시. 대구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고요함이 아직 뇌리에 남아있다. 늦여름이었고, 머물던 게스트하우스 근처 골목을 돌아다녔다. 마치 도시만 남겨두고 모든 사람들이 휴거해 버린 분위기는 적막함 이상의 정체된 흐름이었다. 분지라 그런가. 고요함에도 색이 있다면 아마 검회색일 것이다. 일전에 대구의 어바니스트이자 대한민국 최초로 근대골목지도라는 걸 만든 역사 연구가인 권상구에게 외지인으로서 느끼는 대구의 도시색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한동안 대구시가 공식적으로 내세웠던 도시 브랜드가 ‘컬러풀 대구’였는데, 나는 이 말이 더없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고 대답했다. 정치적 쏠림에 대한 시니컬한 농담인지, 아니면 지루한 도시에 대한 반어법적 표현인지, 다양성에 대한 뜬금없는 강조라니. 목표와 현실이 이렇게 수만 광년 떨어져 있어도 되는 것인가. 대구는 채도가 낮은 도시고, 굳이 그걸 감출 필요가 없다. 단단한 무채색은 세련되고 깊다. 요즘 대구에서 오픈하는 새로운 상업 공간들은 꽤나 감각적이고, 그건 블랙으로 요약된다. Green is the new black(초록이 새로운 표준이 되다)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나무조차도 회녹색이다. 조용히 골목을 걸으면서 메뉴가 적당하고 디자인이 괜찮은 카페에서 공간과 시간을 즐기는 것. 내가 추천할 수 있는 유일한 팁이다. 낮에는 더위 탓에, 어느 정도 어두워진 밤거리를 걷는 것을 권한다. 습기에 눅진해진 공기 사이를 헤쳐 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대구는 천만그루 나무 심기 등 나름 도시 녹화에 신경을 썼다고 하는데, 생활자로서 특별히 무성한 도시라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오히려 나에게 대구의 일반적인 골목은 가끔 촘촘히 박혀있는 붉은 석류열매와 함께 연상된다. 예전에는 사과가 유명했다고 하지만, 이제 대구와 사과를 연관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주택가를 걷다보면 종종 만나는 주렁주렁 열린 과일이 석류다. 붉게 익은 석류와 땅에 떨어져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과육은 아마 다른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그 아래에서 평상을 짓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쉬고 있는 노인들을 볼 수 있다. 석류는 이란 근처의 중동이 고향이니, 한반도에서는 무조건 남부 수종이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바람이 적은 대구에서 잘 적응했다. 팔공산과 비슬산 줄기에 둘러싸인 분지라는 지형적 특성은 기후 외에도 독특한 역사적 궤적을 만들었다. 대구 시내는 한국의 대도시 중 거의 유일하게 한국전쟁의 직접적 피해를 겪지 않은 곳이다. 미8군 사령부의 제공권 덕에 폭격이 덜하기도 했고, 육상 전투가 낙동강 전선에 한정되었기에 연합군이 지켜낸 마지막 요충지였다. 부산의 경우에 수많은 피난민들이 자리 잡으면서 일종의 난개발이 진행된 것과 달리 대구는 일제가 계획한 도시 구조를 이어받으면서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1960~1970년대, 섬유가 주축이 된 공업화와 국가산업단지 조성 또한 성서와 서대구 지역에서 꽤나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초량 일대에 남아있던 적산가옥이 빠르게 소실된 부산과는 대조적으로, 대구는 군산과 함께 상당량의 일식 가옥을 보유한 도시이기도 하다. 북성로 일대는 일본식 상점가인 마치야에서 해방 후 소규모 공업사 골목으로, 최근에는 다시 예전 가옥의 복원을 통한 재생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일본인들이 철수하자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자를 재활용하여 금속과 전기, 공구 등을 취급하는 제조업이 사뭇 어울리지 않는 목조 적산가옥에 자리 잡게 되었다. 100년 가까이 된 건물 안, 온갖 기계의 굉음과 기름때가 거뭇거뭇한 설비 사이에서 작업 중인 수작업 장인들, 일명 브리콜레르bricoleur. 이들의 존재가 부각된 것은 소위 국가적으로 창조경제를 외치던 때였다. 개인이 가진 아이디어를 시험하고 시제품을 만들기 위해 소규모 공업사의 존재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북성로는 일찍부터 일종의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로 기능해 온 셈이다.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그려 가면 물어물어 그걸 제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북성로 어디에선가 찾을 수 있다. 발명이나 디자인, 혹은 그저 만들기에 취미를 가진 사람에게 이곳은 영감을 주는 곳이다. 서울로 치면, 을지로나 성수동, 부산의 신암로 같은 곳이랄까. 하지만 막상 북성로에서 뭘 만들기는 쉽지 않다. 업주들이 고령화되어 현장에서 통용되는 은어와 그들만의 용어를 알아듣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체계화된 검색 도구가 없어 온종일 발품을 팔아도 허탕을 칠 때가 많다. 권상구는 현장에서 쓰이는 단어들을 수집하여 요즘 우리가 알아들 을 수 있는 말로 풀어낸 책을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단지 지나간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나 단순히 지적 취미에 그치지 않으려면 기술자와 기술을 데이터베이스화 하여 손쉽게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명맥이 끊어질 손기술들이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후계자들에 대한 교육을 지원하고 양성하는 일이다. 적산가옥이라는 과거의 유물보다 거기서 쌓인 경험과 노하우가 훨씬 값지기 때문이다. 북성로 서쪽 끝 지점은 유서 깊은 달성공원이다. 대구의 종가집이라 할 달성 서씨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일제가 신사와 동물원으로 바꾸었다. 한강 이남의 창경궁 정도가 되겠다. 지금은 이용자의 대다수가 노인들이라 탑골공원의 분위기를 풍기는데, 역시나 매일 새벽에는 도로변과 인근 골목에서 장터가 열린다. 오전 4시부터 상인들이 좌판을 펼치기 시작하는데 어둑어둑한 길에서 생선이나 채소를 파는 모습이 이채롭다. 차량 통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도로는 사람들로 붐벼 널찍한 프롬나드를 방불케 한다. 이런 곳을 돌아다니는 전문 상인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텃밭에서 기른 채소를 작은 소쿠리에 담아 파는 할머니들도 볼 수 있다. 뱀파이어처럼 새벽 시장은 해가 뜨면 파장 분위기가 된다. 주변 상권에는 아침부터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소주를 들이키곤 한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최이규는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과 환경관리학을 전공하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내외 설계사에 근무했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공과대학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식물벤처기업 에어리 대표를 맡고 있다.
    • 최이규 / 2023년10월 / 426
  •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 대구 원도심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먼저 말하고 싶은 것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그래서 원도심은 재생되었을까? 막대한 예산이 집행된 도시재생 사업의 결과와 효과가 ‘참으로’ 궁금하다. 이렇게 질문하니 원도심이 사업 방식으로 재생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원도심 재생이라는 표현은 어쩌면 관료, 공무원, 지식인 그룹의 상상속에서 존재하는 판타지적 기호가 아닐까. 과연 원도심은 재생될 수 있을까? 다른 지자체 사정은 어떨까? 대구 외의 여타 지역은 이전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도시재생 사업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결론을 말하자면, 대구 원도심은 재생되지 않았다. 아니 재생될 수 없었다. 애초에 원도심 재생을 기대한 게 무리였다.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원도심은 재생될 수 없다고 말이다. 사람이 재생될 수 없는 것처럼. 원도심은 사업 방식으로 인위적으로 재생되는 게 아니다. 원도심은 진화한다. 원도심은 단지 오래된 거리, 골목, 집 그리고 원주민을 뜻하지 않는다. 원도심은 오래된 거리, 골목, 집, 원주민을 포함하여 유입자,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커뮤니티가 종횡으로 엮인 복잡 생태계다. 또한 원도심은 과거‘들’과 현재‘들’의 서로 다른 시간이 교차하는 복잡 생태계다. 놀라운 사실은 이 복잡 생태계가 진화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진화의 표정은 한 가지로 그려지지 않는다. 대구의 대표적인 원도심인 북성로. 북성로 거리에는 여전히 공구 가게가 성업 중이다. 도시재생 사업을 계기로 더 주목받은 북성로 공구 가게. 이 가게들의 몰락을 예고한 리뷰와 언론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문닫은 가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아직 이 거리의 주인공은 공구 가게들이다. 북성로 거리와 달성공원의 교차 지점 도로에는 여전히 새벽마다 번개 장터가 열린다. 토요일, 일요일 번개 장터는 인파로 가득하다. 향촌동 골목 콜라텍에는 어르신들이 출입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원도심의 풍경이다. 달라진 풍경도 있다. 북성로 입구에 고층 주상복합건물이 여러 동 신축되고 있다. 올해 내로 입주 예정이라고 한다. 달라진 풍경이 더 있다. 청년 사장이 영업하는 레트로 카페들이 원도심에 입점하고 있다. 더 놀라운 풍경도 있다. 대구 교동시장과 인근은 지역의 ‘힙’한 청년들이 즐겨찾는 거리로 탈바꿈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2023년 가을의 대구 원도심은 불변과 가변이 뒤섞인 진화의 풍경을 연출한다.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다. 불변과 가변이 혼재된 대구 원도심의 진화는 도시재생 사업과는 무관하게 전개된 풍경이거나 일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풍경과 일상은 그 자체로 선이거나 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풍경과 일상은 대구 원도심의 풍경과 일상이며 우리는 이 풍경과 일상을 선입견 없이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원도심을 재생 대상으로 간주한 원도심 초보자였다. 수제화 골목에 ‘스토리텔링 공방 북성로대학’을 만들 정도로 원도심 마니아를 자처하며 도시재생 사업의 예산을 지원받아 이런저런 일을 주도하거나 관여했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원도심은 재생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을 게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원도심은 재생되는 어떤 대상이 아니었다. 원도심은 사업 대상이 아니라는 반성과 원도심은 스스로 진화하는 생태계라는 성찰을 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원도심은 사업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임을 깨달았다. 원도심 진화의 풍경을 조망하고 인정하는 너른 사랑이 내게는 부족했다. 정말 말하고 싶은 건 대구에 교동시장이 있다. 교동시장은 대구역 정문에서 그리 멀지 않다. 교동시장의 교동은 고유명사가 아니다. 향교가 문을 연 마을은 대개 교동으로 불린다. 교동마을이 전국에 산재한 이유이다. 대구도 그렇다. 본래 교동시장 인근에 대구 향교가 있었다. 현재 대구 향교는 남산동에 있다. 1932년 일제 총독부는 대성전, 명륜당 등을 남산동으로 이전한다. 이리하여 대구 향교의 역사가 남산동에서 새로이 시작한다. 향교는 이전했으나 마을 이름은 바뀌지 않는다. 도깨비시장으로 불리던 교동시장은 한국전쟁기에 탄생한다. 교동시장의 인기 품목은 미군 PX 군수품이었다. 이렇게 문을 연 교동시장은 여타의 재래시장과는 성격이 다르다. 다른 재래시장에서 찾기 어려운 구제 의류, 일제 상품, 전자 제품, 시계 가게 등이 교동시장에는 흔하다. 그런데 교동시장이 언제나 호황을 누릴 수는 없었다. 교동시장은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지자 도시재생 사업의 대상으로 지목된다. 그런데 교동시장을 청년들의 레트로 거리로 바꿔낸 주역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지역 청년들이다. 도시재생 사업의 결과가 아니다. 교동시장과 인근의 오래된 집과 건물, 거리, 골목은 전형적인 원도심의 표상을 연출한다. 그런데 이 거리가 ‘힙’한 청년들의 아지트로 변모하고 있다. 교동의 변모는 인근 동성로와는 비교될 만한 현상이다. 대구 대표 상권 동성로는 터주 역할을 하던 대구백화점이 문을 닫으며 부진을 겪고 있다. 교동은 그렇지 않다. 교동시장과 그 인근에는 터주 역할을 하는 고급 브랜드가 없다. 고층 건물도 없다. 높아야 2층, 3층 게다가 구축이다. 골목은 미로 같다. 임대료는 교동이 동성로보다 저렴하다. 그런데 이런 원도심의 여건이 교동을 살린다. 교동이 대구 레트로의 성지로 변모하고 있다. 교동의 진화는 누가 의도한 게 아니다. 정책 당국자들은 더욱이나 아니다. 누가 의도하였다 하여 이렇게 교동이 바뀔 일이 아니다. 지자체마다 앞다퉈 개업한 청년몰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 주된 이유가 거리 생태계와 무관한 청년몰의 개업이다. 반면에 교동은 그렇지 않다. 교동은 진화의 여건이 충분하다. 시장, 구축 건물, 거리, 골목이 교동을 청년들의 레트로 거리로 바꿀 진화 토대다. 교동의 예기치 않은 진화를 반기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그와 함께 원도심의 진화를 초래하는 청년들의 더 많은 관여와 상상력을 응원하는 마음이 컸다.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그렇다.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진화할 수 있고 진화해야 한다. 원도심이 진화할 수 있는 생태계라면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그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이론이거나 주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 역시 충분히 진화할 수 있으며 어쩌면 더 진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는 박제화된 담론이지 않아야 한다. 만약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박제화된 담론처럼 이야기된다면 청년 세대들에게 환영받기 어렵다. 아니 청년 세대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 환영받기 어렵다. 이는 대구 원도심도 해당한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는 재발견, 재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재구성될 수 있다. 대구 원도심이 식민지 근대를 경험하며 탄생한 배경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한 예로 대구 원도심에는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이 있다. 대구를 포함한 경상도 지역에 위안부 강제 연행을 겪은 어른들이 있는 까닭이다. 물론 위안부 강제 연행이 비단 대구와 경상도에 한정하여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위안부 할머니를 기억하는 역사 관은 지역에 인권과 평화라는 인문학적 가치를 파급한다는 점에서 위안부 문제를 인권 문제로 현재화하는 효과가 있다. 이 또한 인문학적 가치의 진화이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는 필요하다. 그런데 이 논의 과정에서 청년 세대의 참여가 긴요하다. 그런데 청년 세대 의 참여는 언어적 이론으로 피력될 이유는 없다. 청년 세대의 참여는 놀 이와 퍼포먼스, 축제의 방식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매년 5월이면 대구 중구 일대에서 거리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름하여 ‘파워풀대구페스티벌’. 적어도 페스티벌이 열리는 날은 거리의 주인공이 시민이다. 차로를 막고 개최된 여러 행사 중에 유독 돋보였던 것은 K-POP 커버 댄스 경 연이었다.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청년들이 저렇게 신나게 춤을 추는 한, 이 나라에 희망이 있구나 싶었다. 저 청년들의 춤이 저 세대들의 언어이구나 싶었다.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원도심 거리에서 자기를 표현했다. 인문학적 가치라는 게 뭘까? 인문학에서의 ‘문’을 나는 꼭 글로 해석하지 않는다. 나는 ‘문’을 ‘무늬’로 더 해석한다. 인문학의 ‘인문’은 ‘사람 의 무늬’라는 말이다. 그 무늬는 우리들의 노래일 수도 율동일 수도 호흡 일 수도 있다. 지역 원도심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기록하는 청년 들을 인문학의 새로운 주체로 보고 싶은 마음이 각별하다. 또 다른 예를 들고 싶다. 해마다 10월이면 대구 향촌동 골목에서 독 립출판작가들의 북페어가 열린다. 2022년 10월 22일부터 23일, 이렇 게 이틀 ‘아마도 생산적 활동’이라는 슬로건으로 북페어가 열렸는데, 8회를 맞이해 대구의 대표적인 독립출판서점 더폴락과 인근의 어울리커피클럽에서 진행됐다. 이 북페어가 열리는 장소는 향촌동 골목이다. 향촌동은 ‘향기로운 마을’이라는 뜻을 가졌다. 향촌동의 유래는 식민지 대구로까지 소급된다. 대구에서 향촌동 골목은 한국전쟁 전시 문화의 본산으로 기억된다. 그럴 이유가 있다. 한국전쟁 때 대구는 경향 각지 피난민들의 집결지였다. 서울에 이어 대전을 잃은 한국군은 대구에 사령부를 차린다. 대구가 반격의 거점이었다. 서울의 내로라하는 시인, 소설가, 음악가, 화가들이 대구로 피난 왔다. 그들은 향촌동 골목에서 우정과 돌봄의 후일담을 남겼으니 그 주역이 구상 시인이다. 독립출판작가들의 북페어는 향촌동 골목에 또 다른 기억을 입히는 작업이다. 과거의 전시 기억만이 아니라 독립출판작가들의 현재의 기억 이 입혀진 향촌동 골목. 골목은 이처럼 여러 기억을 보유할 때 빛나는 인문학의 자산으로 탄생한다. 그래서 이 북페어가 좋았다. 대구 독립출 판작가들의 북페어는 향촌동 골목을 청년들의 골목으로 바꿔내는 놀이 였고 축제였고 사건이었다. 향촌동 골목이 전시 문화의 본산으로 기억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향촌동 골목이 전시 문화의 본산으 로‘만’ 기억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향촌동 골목이든 원도심의 어떤 골 목이든 기억의 중첩을 거듭하며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를 갱신해야 한다. 독립출판작가? 서울과 부산에 비하자면 그 수가 많지 않다. 그리고 독립출판서점도 서울과 부산에 비하면 그 수가 많은 게 아니다. 그러나 대구에서도 어느새 ‘아마도 생산적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북페어가 열리고 있다.북페어 참여 작가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즐거웠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책을 몇 권 샀다. 그러는 사이에 졸업한 제자를 북페어 현장에서 반갑게 만났다. 나는 그날 책을 산 게 아니다. 나는 그날 청년들이 새롭게 일궈낸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를 산 것이다.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다. 대구의 인문학적 가치, 좀 젊게 가자는 말이다. 그래야 대구 원도심이 인문학적 자산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대구 원도심이 특정 시기의 기억만을 보유하지 않게 하자는 말이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과거 회귀나 회고에 머물지는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하고 싶은 건 대구 원도심 진화의 풍경은 다양하다. 교동은 청년들의 레트로 거리로 진화하고 있다. 식민지 대구의 표상인 북성로 입구에는 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우람하게 세워지고 있다. 어르신들은 콜라텍 출입을 계속하실 것이다. 청년 사장이 개업한 카페는 더 늘어날 추세다. 또 다른 한편으 로는 북성로 도시재생 사업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마무리될 상황이다. 어떤 풍경은 반가움으로, 어떤 풍경은 우려로, 또 어떤 풍경은 아쉬움으 로 나에게 남는다. 그런데 반가운 풍경, 우려의 풍경, 아쉬움의 풍경 모두 원도심 진화의 풍경이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그럴 것이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다양하게 진화할 수 있다. 원도심을 지배하는 권위적이고 절 대적인 인문학적 가치는 애초부터 없다. 또한 최고의 가치도 없다. 진화 하는 원도심의 풍경처럼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진화할 수 있다. 예 를 들면 이렇다. 틈틈이 들르는 극장이 있다. 대구 오오극장이다. 정확 한 명칭은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오오극장이다. 오오극장 은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를 견인하는 독립영화 전용관이다. 시 설은 롯데시네마나 CGV와 같은 멀티플렉스를 따라갈 수 없다. 그렇더 라도 나는 틈틈이 오오극장에 들른다. 8월의 대구는 ‘덥다’라는 말이 무색하다. 습기까지 더해져 8월의 대구는 사람을 완전히 지치게 한다. 8월 대구에서 오오극장 중심으로 ‘대구단편영화제’가 열린다. 올해로 24회째다. 국내 독립영화계를 대표하는 유일한 전국 규모의 경쟁영 화제가 바로 ‘대구단편영화제’다. 그런데 이 영화제를 아는 대구 시민들이 많지 않다. 전주와 부산만 영화제가 있는 게 아니다. 대구 원도심에서도 개성적인 영화제가 열린다. 이 영화제에서 재현되는 대구는 어른 들이 경험한 대구와는 또 다른 대구다. 이 대구에는 지역 청년들의 삶이 다양하게 재현된다. 그들은 영상으로 그들의 대구를 이야기하고 있었 다. ‘대구단편영화제’ 때문에 8월의 대구가 뜨거웠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다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고여 있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이상화, 현진건만 말할 게 아니다. 국채보상운 동의 의의만을 말할 게 아니다. 지금 여기, 특히 청년들이 만들어 내는 인문학적 가치도 이야기하자는 말이다. 대구 원도심의 장소를 밀어내고 신축 아파트는 완공되고 있다. 원도심의 오래된 거리와 골목, 집들은 사라지거나 철거되고 있다. 이러는 사이에 교동은 청년들의 레트로 거리로 탈바꿈했다. 대구 오오극장은 ‘대구단편영화제’를 거행했다. ‘아마도 생산적 활동’이라는 이 름의 북페어는 올해에도 개최되리라. 롤러커피처럼 대구를 전국적인 커피 명소로 이끌 청년 커피 장인들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골목 책방들은 폐업과 개업을 반복하리라. 그리고 청년들은 계성중학교에서 춤을 춘 뉴진스처럼 어딘가에서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활약이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를 견인하는 몸짓이 아 닐까?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원도심 골목과 거리에서 영화를 찍고 글을 쓰고 춤을 추는 청년들에 의해 진화하기를 응원한다. 그럴 수 있고 그렇게 가야 한다. 느리더라도 꾸준히 그렇게 가야 한다. 그래야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죽지 않고 지역도 소멸의 오명을 피할 것이다. 양진오는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했다. 현재는 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에서 학생들에게 지역 문화, 스토리텔링 창작을 강의하고 있다. 대구 수제화 골목에 스토리텔링 공방 북성로대학을 만들어 마을 인문학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 양진오 / 2023년10월 / 426
  •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 편집부가 꽂은 대구 책갈피
    이번 특집 의도 중 하나는 한 권의 잡지를 후루룩 훑어보는 것만으로 대구를 궁금하게 하는 것이다. 대구라는 도시의 역사와 특징을 완벽하게 읽어내지는 못하더라도, 한 번쯤 가보고 싶어지게 만들고 여행의 큰 틀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 지면을 꾸리고자 했다. ‘편집부가 꽂은 대구 책갈피’는 『환경과조경』에 실렸던 대구와 관련한 기사를 정리해 소개한다(1982년~2020년). 모든 장면을 포착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구의 조경사에서 중요한 지점 몇몇을 이어 변화의 궤적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글의 제목, 발행년월을 표기해 언제든 궁금해지면 책갈피가 꽂힌 책장을 열어볼 수 있도록 했다. 참고로 환경과조경은 2014년 이전에 발행한 잡지를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단, 가입은 필수. 지방도시의 녹지행정: 대구직할시의 녹지 행정 이재환, 1989년 3월호 산업화의 여파로 자연이 점점 사라지고 지방자치제가 활성화되는 시기에 지방 도시의 바람직한 녹지 정책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살피는 특집을 기획했다. 서울특별시와 당시 직할시였던 대구, 인천, 광주를 다뤘다. 당시 대구직할시 도시계획국 녹지과장 이재환이 글을 썼다. 대구시 녹지 공간의 현황 및 이용 실태, 대구 공원 정책의 기조 및 공급 지표, 개발 계획의 문제점 및 개원방향, 녹지 공간 창출에 대한 의견이 주요 내용이다. 당시 대구는 급격한 인구 증가에 따라 도시의 과밀화를 겪고 있었다. 더불어 소득 증대에 따른 여가 선용 기회가 확대되며 시민들은 공원, 녹지 공간의 확충과 시설의 수준 향상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에 부응해 대구는 1982년 ‘제1차 5개년 공원, 유원지 개발계획’(1982~1986)을 수립해 두류공원과 범어공원을 비롯해 8개소의 도시공원을 개발 조성했다. 이어 ‘2차 5개년 공원, 유원지 개발 계획’(1987~1991)을 수립해 팔공산 자연공원을 활용해 개발 광역관광권을 형성하는 데 힘쓰고 있었다. 녹지 공간이 집중적으로 개발되었지만, 절대적인 녹지 공간이 부족해 유지·관리에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고 그 비용이 막대하게 들고 있다는 사실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캠퍼스 조경: 경북대학교 김용수, 1990년 11월호 전국 대학교의 캠퍼스 조경을 살펴보는 연재 꼭지에 경북대학교를 소개했다. 당시 경북대 조경학과 교수 김용수가 글을 썼다. 경북대학교는 1946년 대구사범대학, 대구의과대학, 대구농과대학을 모체로 문리과대학과 법정대학을 신설해 1952년 국립종합대학교로 개편됐다. 당시에는 25만평 규모의 부지에 12개 단과대학 87개 학과와 6개 대학원의 154개 학과를 갖추고 있었다. 경북대학교 캠퍼스는 본래 산격동과 북현동 일대의 야산이었고, 지반 대부분은 청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게다가 극한 극서로 유명한 대구의 기후 특성으로 인해 식생 생육의 기반이 좋지 못했다. 교육 기능의 역할을 초월해 더 큰 스케일의 단지 혹은 도시로서의 질을 겸비한 활기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부적절한 식생 기반과 기후 악조건을 고려해 쾌적한 환경 조성에 역점을 두었다. 이를 통해 국내 최초 꽃시계를 비롯해 일청담, 지도못, 야외 박물관, 교시탑과 시계탑, 야외 공연장, 장미원, 운동 공간, 학생회 관할 광장, 다목적 강당 앞 광장, 본관 앞 광장 등이 조성됐다. 태창철강 성서공장 1992년 12월호 1992년 도시환경문화상 조경부문 수상작 중 하나로, 설계·감리는 녹지환경연구소가 맡았다. 일반적으로 공장 조경은 공장의 본래 기능인 생산 기능에 치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태창철강 성서공장의 경우 토지이용계획단계에서부터 인공적이고 딱딱한 공장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나아가 종업원의 후생 복지, 지역 사회에서의 봉사 등 여러 측면에서 조경에 보다 많은 역할을 부여해 정원의 위치와 면적을 결정했다. 공장은 부지 안쪽으로 배치하고 길이 120m, 폭 40m의 정원을 과감하게 대로변에 접하도록 조성했다. 대로를 따라 높이 3m 정도로 계획했던 옹벽은 1m 이하로 낮춰 경사면으로 처리했다. 더불어 투시형 담장을 설치함으로써 외부에서도 감상할 수 있는 개방된 정원을 전개시킨 것이 핵심이다. 대구광역권 녹색플랜과 환경보전전략 이석희, 1996년 5월호 특집 ‘지방자치단체 녹색플랜과 환경보전’의 두 번째 시리즈에 수록된 글이다. 당시 대구경북개발연구원 지역개발실장 이석희가 글을 썼다. 주요 내용은 대구의 입지 특성과 개발 여건, 환경 오염 실태, 녹지자연도, 환경 보전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등이 다. 당시 대구는 ‘지방의제 21’의 제정과 환경도시 선포를 앞두고 있었다. 이에 대기, 수질, 생활환경의 오염을 적극 예방하고, 기존에 실시하고 있는 각종 환경 사업과 연계해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1차, 1996~2006)을 진행했다. 11년간 천만 그루의 나무 심기를 목표로 추진해 1,093만 그루를 심었으며, 그 성과로 한국조경학회가 주관하는 2001년 제1회 한국조경대상에서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되어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 다. 전국 광역자치단체, 기초단체, 연구 기관 등에서 110회에 걸쳐 벤치마킹을 하기도 했다. 2차 사업(2007~2011)은 담장 없는 열린 문화 실현, 일상생활에서 즐길 수 있는 생활권 녹지 및 공원 확대 조성, 시민과 함께하는 쾌적한 숲의 도시 실현을 목표로, 3차 사업(2012~2016)은 양적 목표 달성을 넘어서 디자인 질을 높이는 녹화 사업으로 추진됐다. 2017년부터는 미세 먼지 절감과 도시 열섬 현상 완화를 목표로 4차 사업이 진행 중이다. 실험적 도시가로 테마공원: 들샘공원 1999년 2월호 대구시 북구 동북로 229에 위치한 공원으로, 박찬용 교수(영남대학교 조경학과)와 디멘션 조경설계사무소가 설계했다. 대상지는 예부터 맑은 샘물이 솟아나 농사가 잘 되었다고 해서 ‘물새미’라 불리던 곳이다. 북구의 ‘휴먼도시 북구 창조’ 발전 계획에 따라 테니스장으로 활용되고 있던 부지를 도시가로형 테마공원으로 새롭게 바꾸었다. 공원법상으로는 어린이 공원에 해당하지만, 지역의 상징성을 지녔으며 접근성이 좋다는 점을 고려해 어린이 이용 중심의 단편적인 기능을 위주로 하기보다 지역 주민의 정서와 문화 행사를 담는 복합 용도의 공동 휴식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공간감과 인지성을 높인 주진입광장, 중앙수변광장, 휴게광장, 조형벽체, 놀이 공간과 가로 공간으로 구성된다. 한국도로공사 경북지역본부 사옥 1999년 9월호 한국도로공사 경북지역본부 사옥의 조경은 조경과 박수미가 설계하고 감독했다. 토목 공사 일정이 늦어지며 식재 공사 물량의 80%를 식재 부적기인 혹서기(6~7월)에 시공하게 되었는데, 여러 노력을 기울여 하자 발생률을 최소화한 과정을 담은 기사다. 이를 통해 얻은 교훈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생육 기반 조성 공종을 조경 공사 설계 단계부터 적극 반영해야 한다. 둘째, 조경용 보조 약품의 국산화 및 사용 기준의 명확한 설정이 필요하다. 셋째, 수목의 대형 용기(컨테이너) 재배가 정착되어야 한다. 넷째, 식재 공사에 유지·관리비를 적극 반영해 철저한 사후 관리를 꾀한다. 다섯째, 부적기 시공의 경우, 적기 시공과 시공 단가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현장감독 박수미와 함께 확장 구간을 감독한 이흡 과장(한국도로공사 경북지역본부 조경과)은 “조경 관리는 사후 관리만이 아닌 공사의 시작 단계부터 고려되어야 하며 공사의 엄연한 과정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운암지 수변공원 1999년 10월호 대구시 북구 구암동 349에 위치한 공원으로, 박찬용 교수(영남대학교 조경학과)와 디멘션 조경설계사무소가 설계했다. 당시 대구의 여러 저수지는 도시개발로 인한 농지 감소에 따라 무차별적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대상지 역시 농지가 택지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매립될 저수지였으나, 조경가의 강력한 권유와 지자체의 적극적 지원으로 수변공원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완성된 공원에 많은 시민이 찾아와 대구 경실련이 실시하는 도시환경문화상에서 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설계 주안점은 자연성과 현대적 감각의 조화였다. 기존 저수지 보존을 원칙으로 하되, 저수지 동쪽 일부 밭으로 이용되고 있는 평지를 집약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동쪽에 전망데크, 계류, 놀이 시설, 체력 단련 시설을 설치했다. 전망데크 주변에 무대 개념을 도입해 친수 공간의 이용성을 함께 도모했다. 반면 자연학습장으로의 기능을 위해 수변에는 목재 데크를 조성해 저수지와 사람의 관계를 더욱 밀착시켰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1단계 완공 1999년 10월호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의 1단계 구역이 완성됐다. 대구시는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인 대구에 나라 사랑 정신을 기리고자 49억 원의 예산을 들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계획했다. 1만3천여 평 중 1단계 구역에 해당하는 2천 7백여 평에 종각과 광장, 진입로, 조형 분수, 산책로 등이 조성됐다. 광장에는 달구벌대종이 설치된 종각이 들어섰는데, 종각 후면부에 조성될 잔디밭과 함께 대규모의 행사장으로 쓰이도록 계획했다. 광장의 바닥 포장에는 종의 울림을 상징하는 곡선을 반영했다. 진입부에서 시작하는 산책로에는 단풍나무를 열식하고, 그 아래 아이비와 옥잠화, 맥문동, 원추리를 군식해 숲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공원의 일부를 완성해 개장했음에도 하루 1천여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릴 정도로 호응이 좋았고, 특히 동성로와 가까워 젊은 층의 유입이 활발했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 대구 도시 공간 10선
    편집부는 이번 특집을 위해서 주목할 만한 대구 도시 공간 10곳을 선정해 안내한다. 대구라는 도시가 궁금해서 방문했는데, 막상 어디로 가야할지 감이 안 잡히는 이들을 위해서 준비했다. 유서 깊은 공원부터 새롭게 떠오르는 복합문화공간까지 다채로운 공간을 잡지로 미리 둘러보며 대구가 가진 매력을 살펴보자. 두류공원 대구광역시 달서구 공원순환로 36 대구의 중심에 위치한 도시공원. 산자락에 조성된 공원을 가로지르는 두류공원로를 중심으로 두류산 권역과 금봉산 권역으로 나뉜다. 두류산 권역에는 대구의 대표 랜드마크 83타워, 이월드 등이 있어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금봉산 권역에는 성당못 수변길, 분수대 등 자연 친화적인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최근 기존의 두류야구장을 리모델링해 시민광장으로 조성했다. 시민광장에는 넓은 잔디광장, 피크닉 공간, 전망대 등 시민들이 다양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오픈스페이스를 마련했다. 사유원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치산효령로 1150 태창철강 유재성 회장이 그동안 수집하고 가꾸었던 바위, 소나무, 배롱나무, 모과나무 등을 활용해 팔공산 자락에 조성한 수목원. 축구장 4개에 달하는 면적에 알바로 시자, 웨이량, 정영선, 승효상 등 세계적 건축가, 조경가, 서예가 등이 조성한 공간과 산책길이 펼쳐진다. 팔공산을 조망할 수 있는 소대, 한국 전통정원을 구현한 유원, 108그루의 모과나무로 조성한 정원인 풍설기천년 등 계곡과 능선을 가로지르는 산책길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은 사색과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금호꽃섬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665 금호꽃섬은 대구시 북구 팔달교와 노곡교 사이에 위치한 금호강 하중도로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섬이다. 강변 안에 있는 들이라는 뜻으로 ‘갱부내들’로 불린다. 원래 농가에서 버린 폐비닐과 쓰레기로 인해 악취가 나던 버려진 땅이었는데, 테마공원 등이 조성되면서 많은 시민이 찾는 관광 명소로 거듭났다. 봄에는 유채꽃과 보리,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메밀을 심어 계절별로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하류에는 물억새를 심어 하천 정화를 꾀했다. 금호강을 따라 조성된 산책길과 자전거길이 있어 대구 나들이 명소로 손꼽힌다. 대구 삼성 창조캠퍼스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51 대구 삼성 창조 캠퍼스는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제일모직 부지에 조성된 복합문화공간이다. 창업을 지원하기 위한 벤처창업존, 문화 체험을 위한 문화벤처융합존, 삼성의 역사를 담은 삼성존, 그리고 주민생활편익존 등으로 구성된다. 부지 내 기존 수목과 기숙사 외벽 담쟁이를 보존해 부지의 역사성을 반영한 특색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대상지 앞 호암로 특화설계를 통해 대형 수목 식재 및 조형 가벽을 조성해 도시 경관 개선을 꾀했다. 특히 넓은 잔디광장에 야외무대, 바닥분수 등 지역 주민이 다양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었다. 디아크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강정본길 57 디아크는 낙동강과 금호강 합수 지점에 위치한 강 문화관으로 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전시를 선보인다. 건축가 하니 라시드(Hani Rashid)가 설계했는데, 물고기가 물 위로 뛰어오르는 순간과 물수제비가 물 표면에 닿는 순간의 파장을 건축물의 형상으로 표현해 조형미와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3층 규모로 갤러리, 전망데크 등은 시민들의 휴식과 다양한 문화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3층 전망데크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노을과 수시로 변하는 디아크의 조명은 대구 야경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670 1907년 대구에서 비롯된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기리며 조성한 공원이다. 넓은 잔디광 장과 주위에 심은 1,000여 그루의 수목과 곳곳에 벤치를 배치해 여가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도심의 오픈스페이스로 기능한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겨울에 는 공원 주변 곳곳의 루미나리에, 은하수 길을 통해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야경을 선 사한다. 22.5톤의 달구벌대종이 있어 해마다 제야의 종 타종식을 거행하며, 대구 시 민의 도심 내 휴식 공간으로 각종 전시회와 공연장으로 활용된다. mrnw(미래농원) 대구광역시 북구 호국로 300-22 소나무 농원 부지에 조성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카페, 전시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즐 길 수 있어 MZ세대에게 인기 있는 장소로 거듭났다. 건축물 앞 기존의 소나무 밭을 가로지르는 메탈 브리지는 숲속에 온 듯한 느낌을 자아내며 입체적 보행 경험을 선 사한다. 크기와 형태뿐 아니라 모든 식재 수종이 동일하게 구성된 쌍둥이 중정은 건 물에 들어온 이용자들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방향 감각을 잃게 함으로써 건물 내부가 거친 숲 한가운데 놓여 있다는 착각을 들게 만든다. 건축설계는 SoA, 조경설계는 디 자인 스튜디오 loci가 맡았다. 더 상세한 내용은 본지 415호(2022년 11월호)에서 볼 수 있다. 동성로 대구광역시 중구 용덕동 12 대구를 대표하는 상징 거리로 편리한 교통, 백화점, 쇼핑센터, 학원가, 공원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문화와 쇼핑의 중심지다. 2007년부터 시작된 ‘동성로 공공디자인 사업’은 동성로 거리 정비는 물론 역사, 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상인, 시민, 지자체, 전 문가 등과 함께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길 한복판을 가로질러 설치됐던 배전반을 땅에 묻고, 붉은 점토 블록의 보행자 전용 도로를 만들어 걷기 좋은 거리를 조성했다. 거리 구간마다 벤치를 설치하고 목백합과 대왕참나무 40여 그루를 심어 자연 친화적 경관을 만들었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6-11 대구 출신 가수 고 김광석을 기리며 조성된 길. 명칭은 김광석의 앨범 ‘다시 부르기’에 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며, 그를 그리워(miss)하면서 그리다(draw)라는 중의적 의미가 담겼다. 2010년 쇠락해 가던 방천시장을 되살리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수성교부터 송죽미용실까지 이어지는 구간에 김광석의 모습을 담은 조형물, 벽화 등 을 조성했는데, 전국적 명소로 거듭나면서 방천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현재는 버스킹, 벼룩시장, 공방 등 다양한 문화 예술 활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아양기찻길 대구광역시 동구 해동로 82 2013년 금호강 위를 지나던 ‘아양철교’를 리모델링해 산책로, 전망대, 카페 등을 갖 춘 도심 속 여가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아양철교는 2008년 2월 대구선이 폐선되기 전까지 70여 년 동안 대구시의 산업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근대 산업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는 아양철교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일부 구간의 바닥을 유리 로 마감해 이전까지 사용했던 철길과 그 아래로 흐르는 금호강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동촌유원지 등 주변의 관광 명소들과 인접해 있어 접근성이 좋고, 중앙 유리 구조물 안의 카페와 전망대 등에서 금호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 제20회 환경조경대전
    네이처(The) Nature 주최 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협회, 한국조경가협회 주관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운영위원회, 환경과조경 후원 늘푸른 심사위원장 박명권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대표 심사위원 김준연 STOSS 디렉터 박소현 코네티컷대학교 교수 오화식 사람과나무 대표 이영주 국토교통부 녹색도시과 사무관 정홍가 쌈지조경 대표 최혜영 성균관대학교 교수 대상 에이비언 엑소더스 앳Avian Exodus at GMP_김아윤·김도연(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금상 타이들스케이프Tidalscape: 대지의 주름, 자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관_최준영·신재호·백지웅(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은상 티핑Tipping –3℃_신아영·권가령·양찬희(동아대학교 조경학과) 둠벙_김현우·김한빈·박초현·안민지·김지응(청주대학교 조경도시학과) 동상 시간의 메타포: 세 개의 숲_민세린·박나리·정인주(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브레이킹 더 월Breaking The Wall_Ke Fangni(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 박사과정), Mai Haotian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조경학과 석박통합과정 탈바꿈: 경사지를 복원하다Metamorphosis: Restore a Slope_이희수·이민서·권용조·최민 배재대학교 조경학과
    • / 2023년10월 / 426
  • [제20회 환경조경대전] 공모 경과와 심사평
    지난 9월 13일, 수원시 대유평공원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111CM 라운지에서 ‘제20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의 시상식이 개최됐다. 공모에는 104개 팀이 접수했다. 공모 주제인 네이처라는 큰 키워드 아래, 자연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이해 그리고 응용을 통해 어떤 해법을 제시했는지에 주안점을 두고 심사가 진행됐다. 그 결과 본상 수상작 7작품과 장려상 및 입선 수상작 15작품이 선정됐다. 전시는 시상식이 개최된 111CM 라운지에서 9월 17일까지 열렸다. 공모전 주제와 심사 총평을 수록하고, 대상부터 동상까지의 수상작을 소개한다. 주제: 네이처 네이처(The) Nature는 일반적으로 ‘자연’을 의미하고 더불어 ‘본질’이라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조경은 자연으로부터 시작하여 급속한 현대 문명의 발전 속에서 상실되어가는 자연성을 지켜주고 이어주는 중요한 균형자 역할을 해 왔다. 최근의 급격한 환경 파괴는 더 이상 지구와 인류가 버티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고, 자연 스스로 치유하거나 유지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조경은 이러한 위태로운 상황과 문제를 대면하며 자연 속에 숨겨진 수많은 지혜를 찾아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해법을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 더불어 이는 과거 익숙하게 여겨왔던 자연의 보전과 이용이라는 행위와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새로운 조경과 자연에 대한 관계와 접근법을 고민할 수 있다. 자연과 조경에 대한 관계를 되돌아봄과 동시에, 조경은 현대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경제적 양극화, 고령화, 공동체 해체, 도시 소멸, 탄소 중립, 재난 재해 등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문제에 대한 표피적 해결책을 제시하기 이전에 대상의 본질을 보다 섬세하게 가독하는 참가자들의 시선 또한 엿보고자 한다. 조경의 시작점이었던 자연성을 다시 돌아보고 그 속에 숨겨진 지혜와 관계를 재발견해 보고자 한다. 더불어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한 본질적 가치를 살핌으로써 참가자들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상상력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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