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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공간 문해력
    생태 문해력, 미학적 문해력이라는 표현까지 있듯 요즘 다양한 분야에서 ‘문해력(literacy)’이라는 용어가 쓰인다. 디지털 리터러시나 메디컬 리터러시처럼 번역하지 않고 그냥 리터러시로 쓰는 경우도 많다. 사전은 문해력을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 정도로 간략하게 정의하지만, 그 의미와 용례는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사용 매체와 소통 방식, 사회 참여 등을 결정하는 데 관여하는 기본 소양이나 문화적 기술을 뜻하기도 한다. 텍스트의 해독을 넘어 그것을 생성하고 수용하는 모든 능력을 뜻하는 말로 확장되고 있기도 하다. 나도 어느 유튜브 강의에서 ‘공간 문해력’을 말한 적이 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어떤 공간이나 장소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뭐가 왜 좋은지 물으면, 답변에 등장하는 표현이 정말 제한적이에요. 멋있다, 예쁘다, 대박이다 정도죠. 사용하는 어휘가 그것뿐이라는 건 곧 공간 문해력이 낮다는 거죠. 도시의 일상생활에서 좋은 공간을 구별하고 잘 경험할 줄 아는 능력, 즉 공간 문해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좋은 공간은 도시의 일상을 풍요롭게 합니다. 하지만 정부나 공공이 다 해주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공간을 둘러싼 이슈에 개입하고 참여해야 합니다. 공간 문해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나는 이 도시를 어떻게 경험하고 감각하는가, 그 장소가 왜 좋은가, 저 경관의 어떤 면이 아름다운가, 그런 환경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어렵더라도 자주 생각해보고 구체적으로 표현해보면 공간 문해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설익은 의미로 공간 문해력 개념을 말했는데, 뜻밖에 많은 피드백이 왔다. 누군가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살아가게 해주는 능력”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누군가는 구체적인 의미와 사례를 묻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좋은 공간을 구별하고 경험하는 소양’이라는 뜻 정도로 쓴 말인데, 깊이 있는 연구와 토론을 거친 학술적 개념은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공간 문해력은 공간이라는 텍스트를 잘 이해하고 해석하는 공간 수용자/경험자의 능력이지만, 그러한 힘은 텍스트의 독해자―즉 공간 수용자/경험자―뿐만 아니라 텍스트 자체―즉 공간 자체―에서도 나온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으나 짐작에 가까운 거친 논리라 숙제로 남기기로 했다. 1차 리노베이션을 마친 목동 ‘오목공원’을 개장 첫날 둘러봤다. 설계공모 당선작 ‘도시의 공공 라운지’(디자인 스튜디오 loci)와 똑같이 완공된 점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옛 공원의 바탕 위에 산뜻하고 날렵하게 삽입된 ‘회랑 라운지’. 회랑의 넓은 그늘과 넉넉한 의자가 모두를 환대한다. 회랑 위 공중 산책로에 오르면 풍성한 숲과 도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오래된 숲에 간결하게 삽입된 ‘숲 라운지’는 공원의 시간감을 두텁게 한다. 빈 의자를 찾기 어려웠다. 스스로 의자를 옮겨 자신의 라운지를 디자인하고 오래 머물며 가을을 즐기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공원을 산책하다 여러 번 놀랐다. 공원 디자인과 경관을 품평하는 이들이 곳곳에 있는 것 아닌가. 한 노인은 “공원이 현대식이라 사람들이 공원을 다르게 쓴다”고 말한다. 어느 커플은 “회랑 위 산책로 덕분에 공간이 두꺼워졌다”는 평을 나누며 걷는다. 중학생 몇몇은 “예전 공원도 좋았는데 왜 새로 만들어야 했는지” 토론한다. 이날따라 공간 문해력 출중한 사람들만 모였을 리 없다. 평범한 이용자들이 전문가 못지않은 평가를 하며 공원에 머무는 상황, 뭐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텍스트(공간)의 구성과 형태가 수용자/경험자의 문해력을 높인 게 아닐까. 언젠가 『환경과조경』 지면에서 공간 문해력을 다뤄보기로 마음먹으며 오목공원을 빠져나왔다. 그간 서울과 수도권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 도시의 조경 문화를 지면에 담아달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편집위원들과 독자들의 이런 의견을 조금이나마 반영해보고자 이번 호 대구 특집을 기획했다. 특집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는 대구의 도시 맥락과 경관 특성을 다각적 시선으로 독해한다. 정태영(경북대 교수)은 대구의 공원을, 최이규(계명대 교수)는 골목을, 양진오(대구대 교수)는 원도심을 읽는다. 편집자들이 꾸린 기사 두 편도 함께 엮었다. ‘편집부가 꽂은 대구 책갈피’는 1982년부터 2020년까지 『환경과조경』에 실은 대구 관련 기사를 요약, 소개한다. ‘대구 도시 공간 10선’은 유서 깊은 공원부터 새롭게 떠오르는 복합문화공간까지 주목할 만한 대구의 공간들을 살핀다. 이번 대구 특집을 계기로 본지는 1년에 한두 차례 지역 도시의 공간과 문화, 일상을 탐사하는 지면을 마련해볼 참이다.
  • [풍경 감각] 조각 하늘
    빨간 벽돌 다세대주택과 그 사이로 뻗은 전깃줄이 하늘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 있었다. 그곳은 대학교 2학년, 틈새 정원 설계 수업의 대상지였고, 내가 살던 동네였다. 이름은 청량했지만, 시원하게 트인 하늘을 볼 수 없었던 곳. 나무를 심는 대신 전봇대보다 높은 곳에 닿는 공중 계단을 놓아보았다. 손바닥 정도의 공간은 예쁜 것도 없이 빙빙 도는 계단으로 가득 차버렸지만, 그곳에 오르면 하늘을 통째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빨간 벽돌 속 작은 방에서 나와 골목골목을 돌아 학교 옥상에 올랐다. 시선 저 끝까지 고만고만한 집들이 밀물처럼 들어와 있다. 그 위로 크고 작은 산이 섬처럼 떠 있고, 하늘은 까만 도자기같이 매끄러웠다. 먼 곳의 가로등 불빛은 공기에 일렁거렸는데, 별이 빛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괜찮아졌다 싶을 때까지 이 풍경을 보고 돌아오곤 했는데, 사실 뭐가 어떻게 괜찮은지는 몰랐다. 귀가 먹먹해지는 걸 모르는 호텔 엘리베이터는 침을 삼키지도 않고 층을 오른다. 모르는 사람들과 루프탑에서 내린다. 맥주를 계산하고 자리에 앉으니, 뜻밖에도 귀뚜라미가 운다. 21층 꼭대기에서 산딸나무와 억새가 살랑인다. 사람들은 작업실 보증금보다 무거운 가방을 끼고 있다. 작업실의 한 달보다 비싼 호텔의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일까. 밤하늘을 보며 이상하게도 오래전의 공중 계단을 계속 빙빙 돌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 [어제의 대화, 오늘의 재구성] 공간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풀어내다 박영석
    신출내기 에디터에게는 특집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2016년 5월호)에 등장한 사람들이 멀고 신기했다. 나와 그렇게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데, 모두들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고, 먹고 살기 바쁜 나와 달리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고, 무엇보다 굉장히 열정적이었다. 박영석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을 모이게 만들어 놓고 물러나 있었다. 가끔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개입해 농담이나 웃음으로 사람들이 이야기를 털어놓도록 유도했다. 몇 달 뒤 용산공원 라운드테이블 1.0을 이끌게 된 박영석을 인터뷰했다. 주요 골자는 용산공원을 만들기 위해 청년 활동가를 모아 다양한 활동을 벌이겠다는 것이었지만, 내 머릿속에 남은 건 ‘사람’이라는 키워드였다. 그의 말과 목소리에서 사람을 정말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좋은 공간이 필요한 이유도, 좋은 기획을 하려는 이유도, 모두 사람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박영석이 ‘유엘씨 프레스’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열었을 때에도 필진 소개란부터 뒤적였다. 사람을 좋아하는 발행인은 어떤 사람과 책을 펴낼지 궁금했다. 발행인인 그를 에디터로서 인터뷰하러 갈 때 가장 궁금했던 건 “계속해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지치진 않나요?”였다. 스스로 반성을 좀 할 필요가 있어 던진 질문이었는데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지치죠. 하루에 몇시간씩 워크숍 진행하고 나면, 그날 회식 자리에서 말 한 마디 안할 때도 있어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도 업으로 삼으니 힘들 때가 있더라고요.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듣다 내가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때면, 일부러 장난을 치기도 하고 농담을 하기도 해요.” 인터넷에 떠도는 다정은 노력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제는 뭐했나요? 질문지를 처음 받자마자 육아라고 메모했어요. 어제도 어김없이 육아를 했습니다. 요새는 삶이 제가 하는 일보다는 육아에 방점이 찍혀 흘러가는 거 같아요. 아이를 돌보는 일뿐 아니라 그에 관련한 공동체, 공동 육아를 지지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늘 기획자 역할을 하다가 이번엔 참여자가 되었네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나요? 공동 육아를 하는 엄마, 아빠들을 줄여서 ‘아마’라고 해요. 현재 26가구의 아마가 있는 공동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참 많은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수행했는데, 제가 참여 워크숍에서 활동하는 모습은 생경하더라고요. 기획자일 때는 가장 좋은 이상적인 안, 현실적인 안, 경제적인 안, 합리적인 안을 도출하고,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 대안을 만드는 프로세스를 너무 중시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안을 실천하는 건 해당 커뮤니티에 속한 참여자로서 플레이어인데, 그간 프로세스나 솔루션 그 자체에 더 공을 들인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워낙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서 어떤 질문으로 시작하면 좋을지 고민했어요. 오래 전 이야기부터 해볼까 해요. 석사과정을마친 후 독일 뮌헨에서 도시 공간과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접점을 탐구하려 했다고 들었어요. 일반적으로 택하는 유학 코스가 아니기도 하고, 연구 주제도 독특해요. 학부 때 독일에서 공부하고 온 은사님을 많이 만났어요. 고정희 대표님(써드스페이스 베를린), 정기호 교수님(당시 성균관대학교), 황재선 박사님, 이재문 박사님을 비롯해 일하면서 만난 분 중에도 독일에서 유학한 분이 많았는데 하나같이 비슷한 결이 느껴졌었어요. 독일은 코스워크 없이 스스로 연구하고 탐구하는 식으로 공부를 한다는 게 멋있기도 했고요. 그래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더 공부를 한다면 독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고,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지역으로 알아보다가 뮌헨 공대에 있는 교수님과 연락이 닿아 비행기에 올랐죠. 연구 주제는 석사과정의 연장선이었어요. 석사 때 장소성 재생을 위한 미디어 공간 설계를 모바일 미디어를 중심으로 탐구했거든요. 이미 미디어 아트를 많은 곳에서 접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모바일 미디어가 급격하게 대중화되고 보급되면 개인이 어떤 장소에서 느끼는 감각과 그 방식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어요. 사진과 영상 콘텐츠를 더 쉽게 만들어낼 수 있고 공간이나 시간 제약 없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스마트폰은 신체 감각의 확장기, 도시의 광역적 이해 증진, 인간과 공간의 유희적 인터페이스-새로운 아카이빙 수단이라는 결론을 내렸죠. 어떤 지역이나 공간을 더 광역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했어요. 어찌 보면 평이한 결론인데 그때는 제가 노벨상을 탈 줄 알았어요(웃음). 2011년 무렵, 아이폰이 국내에 처음 출시됐어요. 스마트폰으로 인해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일상에 빠르고 깊게 침투할 거라고 생각했죠. 당시 독일 스마트폰 보급률은 유럽에서 가장 빨리 늘어나고 있었고 관련 기술도 발달해 있어서, 이 기술을 통해 공공 공간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기대했는데 제 예상이 빗나갔죠. 지금 되돌아보니 스마트폰이라는 게 결국 일상생활을 조금 더 편리하게 만들어주고 감각을 확장시켜주는 건 맞지만,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다르게 정의할 만큼 침투하기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였는지 연구계획서가 수차례 바뀌었어요. 그 과정에서 다루고자 한 연구 내용도 조금씩 달라졌죠. 연구 주제를 새롭게 바꾸어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한국에서 ‘노들꿈섬 운영구상 1차 공모’에 함께 참여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이 왔죠. 그때가 큰 전환점이 아닌가 싶어요.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 특집에 노들꿈섬 공모 당시 이야기가 실렸더라고요.준비하며 여러 사람을 만났고 “이때의 만남과 대화는 조경가로서 도시를 공간적인 행위만으로 접근하려던 관점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했었죠. 그 변화가 무엇인지 늘 궁금했어요. 관점은 여전히 유효한가요? 당시에도 참여라는 키워드가 중요했고, 도시계획과 공간 계획 측면에서 이용자의 의견이 설계에 반영되는 게 큰 흐름이었어요. 오픈스페이스처럼 공공성이 대두되는 곳은 더욱 더 중요했죠. 노들꿈섬 공모 준비를 함께한 김연금 소장님(조경작업소 울, 이하 모두 당시 소속), 문정석 소장님(소셜디자인랩), 박혜리 소장님(KCAP)에게 많이 배우고 영향을 받았죠. 사람을 만나는 일과 여러 부수적인 일을 도맡아 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책이나 논문에서 읽은 것을 토론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진짜 사람들을 만나 도시에 대해 대화하고 함께 호흡한다고 느꼈어요. 그 과정에서 깨달은 점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소수의 엘리트가 설계하고 시공하고 관리하는 시대가 저물고 다수의 시민이 함께 이니셔티브를 구축하고 그 과정을 꾸리며 다 같이 무언가를 경험한다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는 거예요. 둘째는 결과적으로 실패할 수 있지만 과정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과정은 실패로 남지 않고 경험이 되더라고요. 지난 번에는 파란색을 많이 써서 이런 결과가 도출되었으니 이번에는 빨간색을 많이 써보자 하는 식으로, 과정 자체가 새로운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거나 전략이 되어줄 수 있더라고요. 마지막으로, 깊은 고민이나 오랜 연구도 중요하지만 우선 시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점이에요. 생각은 크게 해야 하지만 작은 실천이 있어야 변화가 시작되죠. 노들꿈섬 공모 팀 이름이자 법인명인 ‘빅바이스몰(Big by Small)’이 그 의미를 잘 보여주죠. 이 관점은 지금도 견지하고 있습니다. 박영석이 하는 일의 핵심은 사람과 사람의 연결인 것 같아요. 특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이를 풀어내는 일이요. “조 경가로서 공공 공간을 대하는 태도와 접근 가능한 전략을 바 탕으로 도시와 지역, 공간과 장소, 개인과 공동체, 기억과 표 현에 관한 모든 작업에 명함을 내밀기 시작했다”(『환경과조경』 2016년 5월호)고 말한 적도 있죠. 언뜻 쉬워 보이지만 다양한 목 소리를 담고 풀어낼 때 경계해야 할 점들이 있을 것 같아요. 저 스스로를 제일 경계해요. 약속을 잡고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 오늘 상대가 풀어내는 거 한 판 다 듣고 오자하고 마음을 다잡죠. 되도록 이야기 중간에 끼어들지 않고요. 사람들은 대부분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에 가득 품고 살더라고요. 내성적이고 말이 없는 것 같은 사람도 어떤 물꼬만 트여주면 술술 이야기를 풀어놔요. 모든 이야기가 영양가가 있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나면 중요한 알맹이들이 나오기 시작해요. 우리 모두 바쁘게 살다보니 짧은 시간에 콤팩트하게 필요한 것을 뽑아내려 할 때가 많잖아요. 필요한 답변만 취하려 하면 결국 중요한 내용을 놓치게 되더라고요. ‘용산공원 라운드테이블 1.0’ 활동을 흥미롭게 봤어요. 그중 에서도 ‘공원산책’(2017)이 참 좋았는데, 공원을 조경가 혹은 전문가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대중의 관심과 공감은 저 렇게 끌어내는 거구나 싶었거든요. 기획 배경이 궁금해요. 참고한 사례가 있다면요? 2016년에 김연금 소장님과 함께 서울시에서 공원산책이라는 프로그램 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서울의 대형 공원 다섯 군데를 선정하고, 공원 을 설계한 조경가와 함께 걸으면 이야기를 나눴죠. 반응이 열렬했어요. 신청 페이지를 열자마자 30시간도 안되어서 모든 회차가 매진됐죠. 그 동안 왜 사람들을 공원에서 만나 이야기할 생각을 못했나 싶더라고요. 산책을 가기 전 시민들이 공원을 더 깊숙이 여행할 수 있도록 돕는 작업 도 진행했어요. 조경을 잘 모르는 일반 대중은 공원이 어떤 이유로 설계 되었는지, 벤치는 왜 이곳에 설치되었는지, 동선이 왜 이렇게 뻗어있는 지, 바닥 소재는 왜 돌인지 등 공원 설계의 디테일에 대해 알지 못하잖 아요. 공원이라는 공간이 전문성을 갖고 체계적으로 설계되고, 그에 따 른 이론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요. 조경가 역시 자신의 설계 의도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었고요. 그래서 공원을 설계한 조경가를 먼저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정리해 워크북으로 만들었어요. 그 질문과 답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시민들에게 공원에 대해 설명하도록 했죠. 공원산책이 공원도 설계의 대상이라는 걸 알리는 데 효과가 있었다고 보나요. 결과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고 생각해요. 또 굳이 몰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20대에 겪었던 일인데, 친구를 만나러 가 다가 서울어린이대공원을 지나친 적이 있어요. 도로 한쪽에 차가 줄지 어 서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날이 어린이날이었어요. 그중 한 차에서 자녀와 어머니가 내리는데, 운전석에 앉은 아버지가 “가서 좋은 그늘 하 나 잡아놔”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때 좀 놀랐어요. 사실 우리가 공원이 나 공공 공간을 여러 이론과 전략을 통해 설계하지만, 실제로 이용자에 게 중요한 건 설계 논리보다 자신에게 편안하고 이용하기 좋은 쓸 만한 그늘 하나잖아요. 형이상학적 가치나 공간에 담긴 메시지보다 그 장소 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결국 사람의 기억에 남겠죠. 공원 설계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어떤 노력과 과정을 거쳐 공원이 만들어졌는지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자신의 주변, 동네 공공 공간에 대한 관심이 생길 수 있을 테니까요. 도시와 공원 등 어떤 대상지를 이해할 때 다양한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잖아요. 세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작은 골목 단위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도시 맥락 차원에서 어떤 역할을 차지하는 곳인지에 먼저 집중하기도 하고요. 어떤 순서로 대상지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걸 좋아하나요? 앞서 답변한 공원의 그늘과 맥이 닿아 있는데, 결국 제게 와 닿은 건 장 소라는 개념이에요. 공간과 장소를 바라보는 관점이 굉장히 다양하지 만, 두리뭉실하게 정리해보면 공간은 물리적 경계의 끝이 있고 영역성이 확고하며 규격이 있는 곳이더라고요. 장소는 좀 더 인문학적 측면에 서 사람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거나, 형태가 없는데도 자신만의 감각으 로 인지되는 곳을 칭하기도 하고요. 졸업식을 알리는 현수막을 만들어 야 한다면, 장소와 일시라고 적지 공간과 일시라고 쓰지는 않잖아요. 어 떤 특별한 사건을 겪으며 공간이 나의 장소가 되는 거죠. 그 과정이 좋 아요. 그래서 어떤 공간이나 대상지에 갈 때, 이곳이 나에게 장소가 될 수 있을지 상상해보곤 해요. 반대로 컨설팅을 하러 갈 땐, 이곳을 누군 가에게 잘 팔리는 장소로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하고요. 2019년 유엘씨 프레스ULC Press를 창간했죠. ‘창간’이라는 표 현이 적당한지 조금 고민했습니다. 처음 홈페이지가 공개되었 을 때는 웹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을 지향한다 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필진이나 큐레이션 방식도 남달랐고, 영상 콘텐츠도 많았고요. 처음에 구상했던 유엘씨 프레스는 어떤 모습인가요? 가장 먼저 떠올린 코너가 있다면요? 대학원에서 지리학과 이정만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유엘씨 프레스 라는 형태의 플랫폼을 구성하게 됐어요. 그 수업의 모토가 완벽한 발표 가 아니더라도 괜찮으니, 주제와 관련된 자료를 읽고 한 사람당 한 마디 씩은 하고 돌아가자였어요. 서른 명 남짓한 학생이 듣는 강의였는데, 보 통 대학원 수업이면 서로 이야기도 잘 안하고 자기 발표와 질문 답변에 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런데 교수님이 계속 수다를 떨자며 분 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주니까 한두 명씩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죠. 잡 담처럼 꺼낸 이야기를 다음 사람이 받아주며 점점 두터워지고, 소위 말 하는 담론이 쌓이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도 하고 요. 엄청 흥미로웠어요. 다 같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많은 정보와 의견이 축적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죠. 이후에 같은 연구실에서 공부하던 임한솔 박사와 신명진 박사에게 ‘유엘씨 프레 스’라는 일을 벌여보지 않겠냐고 꾀었어요. 유엘씨 매거진에 꼭 들어가는 꼭지가 라운드 테이블이에요. 필진, 편 집진 모두가 모여 다 같이 대화하는 내용인데, 이 라운드 테이블이 유엘 씨 프레스의 모티브에요. 유엘씨는 어반 랜드스케이프 카탈로그(Urban Landscape Catalog)의 약자인데, 카탈로그에 나름 의미를 두었어요. 물건 을 팔기 위해 제작하는 게 카탈로그인 것처럼, 시민들을 소비자라고 상 정했을 때 도시에서 아직 팔리지 않았거나 또는 잘 팔리고 있는 상품으로서 공공 공간과 경관을 소개하는 잡지를 만들어보자는 의미를 담았죠. 많은 실험을 거치는 중이에요. 요새 잡지 에디터로서 공간을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해외 조경설계사무소에서 프레스 키트에 동영상을 포함해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거든요. 유엘씨 프레 스가 최종적으로 만들어내는 결과물 역시 ‘잡지’라는 형태의 인쇄 매체에요. 이야기를 전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글과 사진을 포함한 인쇄물의 형태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소위 영상 우점의 시대잖아요. 이미 영상 콘텐츠가 많은 상태에서 굳이 비슷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만들 필요는 느끼지 못했어요. 미디어 종 다양성을 편협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영상이 대세가 된다하더라도 저는 텍스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극놀이에 프리텍스트pretext라는 개념이 있어요. 예를 들어, 테이블 위에 놓인 종 이컵이 해적의 망원경이 되기도 하고 인류에 마지막 남은 물을 담은 컵이 되기도 해요. 즉, 무언가를 상상하게 하거나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드는 최초의 물리적 소재를 뜻하는 말인데, 어미에 텍스트가 붙어있듯 이 용자가 개입할 여지를 준다는 점이 글의 성질과 비슷해요. 반면에 영상 이나 사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결된 형태를 제시하죠. 크리에이터가 원하는 곳만을 가장 예쁘게 다듬어서 보여줄 수도 있죠. 글은 좀 더 날 것의 느낌이 나고, 빈틈이 있어서 그 부분을 제 상상으로 채워 넣을 수도 있어요. 또 영상이 아무리 득세를 하더라도 리터러시literacy 측면에서, 공간을 이해하는 문화의 관점에서 텍스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간을 소개할 때 사진이나 영상으로 호도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근데 텍스트는 좀 더 건조하고 단순하기도 해서 오히려 사람들을 더 기대하게 만들고 덜 실망시키는 면도 있어요. 예쁜 사진과 영상으로 공간을 더 빠르 게 팔 수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는 그 공간의 가치와 의미, 재미를 더 빨리 소진시킨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잡지를 만드는 만큼 인쇄 매체를 읽는 것을 좋아하나요? 좋아하는 잡지나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 세요. 『론리플래닛Lonely Planet』이라는 여행 가이드북이 있어요. 한 권에 하나 의 나라나 도시를 다루는데, 독특하게도 사진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소 개해요. 대부분의 필진이 여행 작가들인데, 지도에 밥 먹을 곳, 놀 곳 등을 표시해놓고 간단한 설명을 달아놓아요. “이 도시에 와서 이 바에 가지 않으면 이 도시에 오지 않은 것과 같다.” “이 나라에서 이곳만큼 맛 이 뛰어난 핫도그는 없을 것이다.” 이런 문장을 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공간을 떠올리게 되고 당장 가보고 싶어져요. 막상 가서 보니 설명과 다른 경우도 있었지만, 그게 실망이 아닌 경험의 증폭으로 느껴지더라고요. 도시와 지역, 공간 구조를 상상하게 만들고 걸어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어서 좋아하는 책이에요. 잡지의 경우는 당연히 『환경과조경』을 좋아하고(웃음), 최근에는 공동 육아와 관련된 책을 많이 봐요. 필자와 배경이 다양해서 흥미로워요. 사실 공원이나 정원을 다루는 특집을 꾸리면, 걸어온 길이 비슷한 필자들을 섭외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공동 육아는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아본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에요. 그렇다보니 다양한 관점과 삶의 이야기가 다루어져 재미있어요. 필진 섭외는 어떻게 하나요? 편집위원들과의 회의에서 나온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누구의 글이 좋더라, 이번 포럼에서 발제한 누구의 발표 내용이 흥미롭더라, 하 는 얘기가 들리면 바로 연락을 해봅니다. 아는 사람을 건너 건너면서 필진 풀을 넓히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꼭 조경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분야를 넓게 보며 새로운 글쓴이를 발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티클 분류 기준이 숏, 톨, 그란데에요. 커피 사이즈처럼 글 분량에 따라 구분을 했는데 이유가 있나요? 분량에 상관없이 다양한 글을 싣기 위해 나눈 카테고리에요. 숏은 특히 짧은 글도 상관없으니 사람들이 많이 투고해주길 바라며 만든 분류이기도 하고요. 저는 사실 짧은데 울림을 주는 글을 좋아해서 숏 카테고리를 아끼는 편입니다. 기획, 편집, 발간까지 어떤 사이클을 통해 매거진을 만들고 있나요? 분기별로 발행되는 만큼 주제 선정에 공을 들여야 할 것 같아요. 트렌드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지만, 잡지가 완성될 때까지 그 관심이 계속되어야 하잖아요. 유엘씨 프레스 발간 주기가 좀 복잡해요. 봄과 가을에 발간되는 정규호에는 숫자가 붙어 나와요. 단행본처럼 기획되어 발간되는 특별호에는 알파벳이 붙어 나오는데 겨울에 내려고 노력하고 있죠. 발간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세 달 전부터 준비하는데, 텀블벅이라는 클라우드 펀딩에 기반을 두고 발행하다보니 최소한 한 달 전에는 구성이 확정되어야 하 더라고요. 주제 선정의 경우, 월간지도 시기적인 이슈를 다루지 못하는 상황이 잖아요. 화제가 되는 이야기도 시시각각 빠르게 바뀌고요. 그래서 저희 도 목차를 구성해놓고 계속해서 바꿔요. 처음에는 고정된 섹션을 만들고 유지해볼까 하다가, 4호를 기획하며 조경 분야의 사람 이야기를 담아보자고 마음먹었죠. 그렇게 4호 ‘나의 조경 연구기’에는 조경 연구자 들의 이야기를, 5호 ‘조경 설계가의 하루’에는 조경 설계사무소를 다니는 사람들의 일상을, 6호 ‘조경 시공의 최전선’에서는 조경 시공자가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아 일종의 조경 트릴로지를 만들었어요. 창 간준비호, 정규호, 특별호를 포함해 지금까지 발간한 책이 딱 열 권이더 라고요. 이 시점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어서 가을방학을 갖기 로 했어요. 그 성찰한 내용을 겨울에 나오는 특별호 ULC D에 담을 예 정입니다. 현재는 큰 틀에서 구성을 조정해나가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에게 리뷰만큼 기쁜 일이 없어요. 독자 에게 받은 리뷰 중 기억나는 말은 없나요? “조경을 전공하지 않아 공원에 대해 잘 몰랐는데 알게 되어 유익했다”, “공원과 정원이 이렇게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지 몰랐다”, “조경이 예술 등 여러 학문과 교점이 있어 보인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짜릿했습니다. 미디어 매체가 다변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반드시 지키고 자 하는 유엘씨 프레스만의 기조가 있다면요? 만들어가는 중이에요. 아직 뚜렷한 색이 있다기보다는 실험을 거듭하고 있어요. 이 실험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어쩌면 안 끝날지도 모르죠. 실험의 중간 결과물을 통해 새로운 실험을 하거나 결과값을 보정하는 일을 계속하려 합니다. 유엘씨 프레스에 쓴 글을 읽으면서, 무언가를 기록하는 일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특히 기억이 베어든 장소와 그곳에서 느낀 감상이요. 한 서평에서 “평범하고 익숙한 일상을 특별하게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은 우리 삶을 두텁게 만드는 새로운 보물창고를 여는 것과 같다”(서평: 일상연습-당신의 일상은 익숙한가?)라는 문장을 읽고 나니 더욱 더요. 이런 성향이 언제부터 발현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메모광이었어요. 중학생 시절에는 힙합에 빠져서 가사를 쓰기 시작했는데, 일상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좋은 표현을 잊어버리면 안 되니까 늘 주머니에 종이와 펜을 넣어 다니면서 기록하고 꺼내보곤 했어요. 시도 때도 없이 메모를 하니까 함께 성당에 다녔던 동생이 미사 시간에 뭘 그렇게 적냐고 물어보기도 했고요. 요새는 주로 스마트폰에 메모를 하거나, 어느 종이에든 적은 메모를 사진으로 찍어 자료화하는 식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어요. 박영석이라는 이름 뒤에 붙일 수 있는 직함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해요. 대표, 소장, 기획자, 퍼실리테이터, 발행인. 그중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직함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예시로 들지 않은 어떤 단어를 말해주셔도 좋습니다. 다양한 이름으로 활동해왔는데요. 종국에는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로 불리기를 바랍니다. 공간과 사람 사이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 또는 풀어 낼 대화들이 있다고 믿고 있거든요. 특히 공공 공간은 조성하고 나면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그 쓰임은 늘어나는 데 반해 그간의 과정이나 이후의 방향에 대한 소통이 늘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공간과 사람 사이 대화의 물꼬를 트고 잘 흐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설계하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궁금합니다. 좋은 선배 같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는 건 어 려울 것 같지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먼 훗날에는 술을 함께 마실 수 있는 선배 같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아이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좋은 선배가 되고 싶은 마음도 커요. 주변의 좋은 선배에게 도움을 받아왔기 때문에 저 또한 베풀고 싶어요. 요즘 드는 생각 하나를 덧붙이고 싶어요. 가령 예전에는 백 명을 위 한 집을 지었고, 천 명의 끼니를 책임지는 식당이 있고, 일만 명이 오 갈 수 있는 공원을 만들었다면, 최근에는 오십 명 정도의 사람이 이백 끼 정도의 식사를 하고 공원에는 천 명 정도가 다녀가는 것 같아요. 다 시 말해 도시 경관의 이용성이나 유용성, 경험의 결과 폭이 대폭 축소 된 것 같아요.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일 수도 있지만, 생활 방식과 사 람들의 소통 방식이 달라졌어요. 그래서 대동대이(大同大異)라는 말을 열심 히 쓰고 있어요. 도시의 물리적 환경과 일상 공간은 외형적으로 비슷하 지만, 사회적 상황과 대중의 의식은 크게 변한 현상을 빗대어 지어냈어 요. 내 아이가 한창 도시와 동네를 쏘다닐 무렵에는 대동대이 사회가 한 결 성숙해져서 나름의 재미와 흥미로 가득한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막연하지만 제가 벌일 수 있는 흥미로운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 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좋은 선배 같은 아빠가 되기 위한 노력 중 하나 일 거예요. 박영석은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공공 공간 공론화 설계, 놀이 환경 연구, 도시 문화 콘텐츠 기획, 정원 컨설팅 및 소재 연구를 하며 유엘씨 프레스(ULC Press)를 발행하고 있다. 빅바이스몰(Big by Small) 공동대표이자 플레이스온(Place_On) 소장이기도 하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디멘션 조경설계사무소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마음의 창을 디자인하다
    뜻밖의 선물 근 30년의 세월 속에서 우리가 추구했던 설계 철학을 작업으로 정리해 보았다. 1995년, 우리가 개업할 무렵 대구엔 변변한 전문 조경설계사무소가 없었다. 건축설계사무소도 조경설계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다. 시공사나 건설사의 조경 부문에서 시공용의 식재 계획도 등을 컴퓨터가 아닌 수작업으로 그려서 시공하던 시절이라 캐드로 설계하는 것이 획기적인 일이었다. 처음엔 두 소장의 이전 회사 근무 인연 덕분에 건설사의 아파트 설계 전문 건축사무소와 연결돼 주로 아파트 조경설계를 하면서 직원도 늘어나고 차츰 자리를 잡았다. 구·군청과 같은 관광서 프로젝트를 맡아서 수행하기도 했고, 특히 박찬용 교수(영남대학교 조경학과)와 협력해 북구청 관내의 미개발되거나 노후한 공원들을 설계하면서 본격적으로 조경설계사무소의 위상을 높였다. 1998년으로 기억되는 ‘해바라기공원’과 ‘운암지 수변공원’의 기본설계 및 실시설계는 그 당시 이명규 북구청장의 적극적인 뒷받침과 배려로 완공 다음 해(1999년) 대구 경실련 주최 제1회 도시환경문화상 대상을 공동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그 당시의 공원으로는 획기적인 디자인과 시설들로 주목을 받았다. 지금 그 공원들은 다시금 리모델링을 거쳐 많은 주민에게 인기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밀레니엄과 함께 다가온 기회 새천년의 빛과 정신을 담은 해맞이광장 새천년을 맞이하며 전국적으로 여러 지역에서 밀레니엄 행사가 열렸다. 국가 차원의 새천년 해맞이 행사지로 포항의 호미곶 일원이 지정됐다. 경상북도와 박찬용 교수가 함께 ‘새천년 기념공원 조성 기본 구상도’를 수립했다. 우리는 그 안을 골격으로 2000년 1월 1일 개최되는 ‘한민족 새천년의 해맞이’ 축전을 수용할 수 있는 ‘2000년 해맞이광장’을 설계하는 행운을 얻었다. 해맞이광장은 밀레니엄의 기념성, 2000년 첫 해맞이 행사, 파도, 만남, 화해와 통일 염원 등 다양한 의미와 공간 요구를 충족하면서 바다와 해돋이 장면의 직접적인 조망이 가능토록 동·서 방향 폭 50m, 길이 320m 규모의 직사각형의 장방형 중심축을 설정했다. 이 동서축 공간을 해상 및 해변 해맞이 공간, 기념 조형 공간, 공연 및 관람 공간, 서비스 공간으로 분절했다. 분절된 각 공간의 중심에 상징적인 조형 작품 등을 배치해 시각적 지표성과 상징성을 강조했다. 특히 해상과 광장에 설치된 조형 작품 ‘상생의 두 손’은 김승국 교수(영남대학교 디자인미술대학)의 작품으로, 해맞이광장의 가장 상징적인 오브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재 조성 당시와 다르게 많은 시설이 새로 설치되면서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이 공간이 주는 역동성과 상징성은 새천년의 기념 정신을 잘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행운처럼 찾아온 기념광장 설계 대구가톨릭대학교 100주년 기념광장 조성사업 실시설계 개교 100주년 기념 공간을 대구가톨릭대학교 캠퍼스 내 대강당 전면 주차장에 조성하는 프로젝트로 엄붕훈 교수(대구가톨릭대학교 조경학과)의 기본 구상안에 우리 사무소의 정성 어린 보완과 수정 작업을 거친 끝에 모두가 만족하는 100주년 기념광장을 완성했다. 대강당 건물 주변에 차도를 두고 광장 북측엔 주차장과 이벤트 마당, 조형 안개 분수와 녹음 군집 식재를 배치해 남측 광장의 빈 공간을 보완했다. 주출입 동선의 남측 광장에 설치한 100주년 기념 원형 문주와 가운데 바닥분수는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됐다. 또한 전체적으로 화강석과 잔디 포장의 격자형 바닥 패턴을 통한 미니멀한 경관을 연출해 기념광장의 상징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주차장 입구 모퉁이 공간에 100주년 기념 조형 작품을 배치해 광장의 시각적 인지성과 상징성을 배가했다. 북측 주차 공간은 기존 녹음수를 최대한 존치하면서 경계 식재를 연출했다. 조형 안개 분수 주변은 대왕 참나무 군집을 식재하고, 기념 원형 문주 광장의 동·서측 가장자리엔 메타세쿼이아를 열식해 광장에 위요감을 불어넣었다. 남측 경사지는 계단식 화계를 조성해 경관성을 도모했다. 공동주택 조경설계 남산그린타운 이 아파트는 대구도시개발공사(이하 대구도시공사)가 발주한 프로젝트였다. 협력사인 환경건축이 수주한 프로젝트로 우리는 하도급 설계를 맡았다. 당시 대구도시공사의 조경 부문 담당자가 비교적 우리의 설계 의도와 공간 디자인에 대한 배려를 많이 해준 덕분에 나름대로 열정적으로 임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타 아파트에 비해 지상 주차장을 최소화하여 지상 공간에 대부분 광장, 놀이터, 조경 녹지와 산책로, 운동 공간 등을 배치했다. 덕분에 남측 공간이 다소 높았던 2단의 공간에 역동성과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더구나 남·북의 두 광장에 조형성이 높은 게이트형 구조물과 어우러진 분수 시설을 배치해 공간의 상징성과 풍부한 경관성을 부각하면서 원형 및 격자형 포장 등을 적절히 도입하여 독창적인 공간감을 부여했다. 놀이 시설도 그 당시 각광을 받았던 다양한 색상과 기능미, 조형미가 뛰어난 테마형 조합 놀이대를 선정해 어린이들의 모험심과 상상력을 자극시킬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2005년 대구시 조경상 우수상을 받아 대구도시공사로부터도 인정받은 프로젝트였다. 캐슬골드파크 캐슬골드파크는 지금까지도 대구 최대의 재건축사업으로 꼽히는 황금주공아파트 재건축을 통해 탄생했다. 당시 4,256세대의 거대한 클러스터를 연상시키는 대규모 사업으로 당초 인·허가 설계를 무시하고 우리는 조경 특화설계를 맡게 되어 상당한 부담과 책임감으로 임했다. 물소리·바람소리 어우러지는 정겨운 마을마당, 보행축을 따라 숲이 그려지는 싱그러운 초록 마을이라는 개념 아래 전체 5개 단지별 특징적 공간과 시설물, 식재 기법을 도입하여 차별성을 부여했다. 도시공원 요소를 도입한 열린 가로 공원을 조성하고 단지 주요 공간에 조형 작품을 설치해 생활 속의 예술 공간을 마련했다. 결절 지점에 소광장 및 휴게 공간을 만들었다. 입구의 상징성을 위한 문주 및 조형물, 수경 시설을 배치하고, 지형 극복을 위한 화계 조형 옹벽, 계류, 돌담 등을 조성했다. 다양한 색감의 포장 재료와 패턴으로 시각적, 경관적 흥미를 더하는 화려한 단지 공간을 연출하고자 했다. 공원 리모델링 상록어린이공원 대구시 달서구 두류동에 위치한 상록어린이공원은 주변의 저층 아파트와 주거 지역으로 둘러싸인 공간으로 유아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동네 공원이다. 노후화된 공원을 현 실정에 맞도록 새롭게 재정비해 주민들에게 쾌적하고 편리한 환경을 제공하고자 했다. 공원을 둘러보며 걸을 수 있는 산책로와 체력 단련 시설, 모험성과 유지 관리성이 우수한 놀이 시설물과 적절한 휴게 시설을 배치하여 통합된 공원의 역할을 부여했다. 기존의 대형 수목을 최대한 보존하고, 하부에 지피류와 화관목을 대량 식재하는 등 다층 식재 구조를 통해 풍부한 식생 경관을 만들고자 했다. 학산공원 대구시 달서구 월성동에 위치한 학산공원은 10층 규모의 아파트 단지와 초등학교, 유치원이 있는 오래된 택지개발지구 내의 공원으로 상당히 노후화되어 재정비가 시급했다. 공원 내 기존의 화장실이 얼마 전 리모델링됐고, 오랜 시간 정리가 되지 않았던 기존 수목들은 다소 무질서하게 자란 상태였다. 다만 일부 낙엽수들은 좋은 수형을 가지고 있어 그 자리에 그대로 보전하기로 했다. 공원 외곽에 시설과 수목 사이를 지나는 순환 산책로를 새롭게 만들고, 진·출입 동선은 지형적 한계로 기존의 출입구를 유지하면서 폭과 형태를 보완했다. 진입 동선은 중앙광장과 놀이 공간으로 집중되도록 조정하면서 곳곳에 정자 등 휴게 시설을 배치했다. 음수대도 기존 위치에 새로운 형태로 재설치하여 편의성을 도모했다. 아이들의 놀이 행태를 고려한 산책로, 남측에 모래 놀이터와 놀이 시설은 이곳만의 시그니처가 됐다. 채정공원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에 위치한 채정공원은 시장, 어린이집과 저층 주거지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주택가의 마을 공원으로서 오래된 택지개발지구의 공원 중 하나다. 도시재생 부서의 마을재생 프로젝트공모에 선정되어 재정비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보름달에 꽃비가 내리는 마을마당’의 개념 아래 다음 두 가지를 설계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했다. 첫째, 하늘의 보름달처럼 환하고 축복처럼 꽃비가 내려 마을마당이 꽃동산으로 물든다. 둘째, 달빛이 비추는 분수에서 풍요의 결실이 샘솟아 넘쳐흐르고, 채정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한다. 여러 안을 협의하면서 수경 시설 제안과 동선이나 시설물의 위치와 사양들도 여러 번의 수정·보완을 거친 후 결정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설계안을 완성할 수 있었다. 특히 공원 중앙의 테마형 조합 놀이 시설은 안개 분수를 갖추고 있으며, 조형 분수대는 달빛을 연상하는 조명과 커튼처럼 낙하하는 분수가 야간 조명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기존의 양호한 큰 수목들은 존치하면서 계절감과 향기, 질감 등을 잘 나타내는 화관목과 지피류를 집중적으로 도입하여 사계절의 변화감과 풍성한 경관을 느낄 수 있게 식재했다. 아름다운 경관을 꿈꾸며 요즈음 조경업계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발주처의 터무니없는 갑질, 회사 운영을 위한 박리다매 수주, 권위주의적이고 일방적인 각종 위원회와 트집 잡기 문화, 타 분야에서의 영역 침범, 좋은 인력을 뽑지 못해 발버둥치는 소규모 회사들과 공공 부문과 대기업만 선호하는 전공 졸업생, 현재의 어려운 경제 상황 등 이런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조경계 전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조경의 본질은 새로운 경관, 인간을 위한 공간을 꿈꾸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우리들의 보람은 이 꿈과 이상을 현실로 바꾸는 힘과 과정에 있다. 좋은 공간, 아름다운 경관에 대한 상상(꿈, 염원)은 새로운 경관을 만드는 조경 행위를 발생시키는 원동력이다. 더 나은 세상, 더 좋은 삶에 대한 집단적 상상력과 실천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현장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더 좋은 것에 대한 꿈과 비전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좋은 결실을 맺으면 전문가의 역할과 능력에 대한 확신과 믿음에 따른 배려와 대우가 따라주지 않을까. 1995년, 디멘션조경설계사무소는 이동화 소장이 영남대학교 조경학과 1년 후배 김맹곤 소장과 의기투합해 대구에서 거의 처음으로 연 조경설계사무소다. 20여 년간 이어오다 김 소장이 시공사 대표로 독립한 뒤 지금까지 이동화 대표가 이끌고 있다. 좋은 공간, 아름다운 경관에 대한 상상(꿈, 염원)은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원동력이라 믿는다. 서두르지 않는 세심한 디자인으로 모두가 원하는 조경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이동화 / 2023년10월 / 426
  • [모던스케이프] 전원에서 도시로, 한강의 근대 풍경
    지금의 한강은 서울 중심을 동서로 관통하는 대표 경관이지만,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도성에서 족히 4~5km는 걸어 나와야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사람이 많아 복잡하고 정신없는 성안과는 달리, 한강 일대는 강 하류 특유의 한적하고 유유자적함이 있었다. 강 하구인 탓에 유속은 느리고 강폭도 약 1km나 됐고 백사장 풍경은 아름다웠다. 도성과도 가까워 예로부터 시인 묵객과 화인 가객이 즐겨 찾았는데, 조선을 방문한 중국 사신들에게도 한강은 꼭 한번은 들러볼 만한 명소였다. 1539년 명나라 사신 화찰(華察, 1497~1574)은 조선을 방문하던 중, 통역사의 권유로 한강을 유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현장의 느낌을 『유한강기(游漢江記)』로 남겼다. “내가 장막을 들어 올리고 보니 남산이 눈앞에 보이고 북악산이 뒤에 있으며 용산과 필운대가 좌우로 어리어 비치고 잠두봉을 비롯한 여러 봉우리가 천태만상으로 들쭉날쭉하여 완연히 그림과 같았다(予搴帷視之, 則見南山在前, 北嶽在後, 龍山弼雲, 映帶左右, 蠶頭諸峰, 起伏萬狀, 宛然如畫).” 양화나루까지 가려던 배가 갑자스러운 바람에 움직이지 못했지만, 그 덕분에 한강의 기가 막힌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풍경에 감동한 화찰은 바로 양화나루행을 취소하고 그 자리에서 연회를 열고 뱃놀이를 즐겼다. 진경산수화의 종주이기도 한 겸재 정선(謙齋 鄭歚, 1676~1759)은 1741년부터 1759년까지 서울 근교의 명승을 그린 그림들을 모아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를 엮었는데, 수록된 33점의 그림 중 무려 20여 점이 한강이 주제가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1740년부터 1745년까지 양천현령으로 있었던 그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양수리의 전경을 그린 ‘독백탄(獨栢灘)’과 상암 월드컵경기장과 월드컵공원이 들어선 난지도 일대를 묘사한 ‘금성평사(錦成平沙)’, 해 지는 안산(鞍山)(무악산)과 한강의 모습을 담은 ‘안현석봉(鞍峴夕奉)’ 등, 겸재는 한강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경점(景點)들을 우리에게 전승해주었다. 지금의 우리가 한강의 옛 풍경을 감히 상상해 볼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그가 남긴 그림 덕분이다. 한강의 이러한 심미적 가치는 서울의 근대화와 함께 사라지거나 변질됐는데, 그 첫 시작은 한강철교의 건설이다. 1876년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 체결 이후 제물포(인천)의 존재감이 급부상했고 급기야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선 건설까지 견인했다. 이 철도 건설에는 한강의 이남과 이북을 이어야 하는 난제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한강철교의 건설 배경이다. 나룻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한강에 대규모 철교가 들어서게 된 전례 없는 광경은 보는 이들에게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지금의 한강철교는 총 네 개의 교량으로, 철도와 수도권 전철의 복선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한강철교 건설을 처음 추진했던 대한제국 정부는 선박이 지나갈 수 있는 도개교로 하고 사람들이 보행할 수 있는 보도까지 설치할 것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철도와 교량 부설권이 일본에 넘어가면서 계획은 변경됐고, 1900년 7월 철교 하나를 완공하면서 마무리됐다. 대신 1917년에 인도교 하나를 별도로 가설하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한강대교다. 한강철교와 인도교는 단순히 한강의 풍경을 근대화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철교 남단의 영등포 일대를 자족의 공업도시로 개발했으며 서울의 행정구역 경계를 확장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京城府, 『大正乙丑の水災』, 1925 김종근, “일제하 京城의 홍수에 대한 식민정부의 대응 양상 분석: 정치생태학적 관점에서”,『한국사연구』 157, 2012, pp.291~327. 이국진, “명나라 사신들의 한강 유람과 문학적 형상화”, 『한문고전연구』 25, 2012, pp.7~42. 이영민, “개항 이후 경인지역의 역사지리적 변화와 경인선 철도의 역할”, 『지리교육논집』 49, 2005,pp.285~299. 그림 출처 그림 1.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