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나게 하는 것보다는 웃게 만드는 게 더 힘들더라. 그래서 영화도 드라마도 좋지만 시트콤 작가가 신기하고 위대해보였다. 첫 문장만큼 중요하고 어려운 게 글의 마무리였다.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제일 쉬운 건 당연한 말로 끝맺는 것이었다. 교훈적이고 감동적인 내용들 말이다. 답을 내리기 어려울 때는 의문문으로 끝내는 방법도 유용했다. 그런데 수십 차례 같은 전략으로 지면을 채우다보니 지겨웠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닌지, 친구가 “너 그만 반성해도 될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건네기도 했다. 그래서 늘 재치 있는 문장들이 탐났다. 쉽게 공감하고 피식피식 웃으며 볼 수 있지만, 이런 걸 왜 여기다 쓰지 일기장이 없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 문장들. 하지만 글은 쓰는 이를 닮기 마련이다. 그다지 유쾌한 편은 아닌 내가 쓰는 글은 늘 고만고만한 결을 유지했고, 가끔 벗어나보려고 바둥대봤지만 늘 제자리로 돌아왔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해야 할 일들. 무엇이 적혀있을지 뻔히 알면서도 비슷한 제목을 발견하면 매번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우선 많이 읽기, 솔직하게 쓰기, 쓸데없는 수사를 빼기 등 익숙한 전략을 훑어보고 있으면 꼭 그 가운데에서 ‘필사하기’가 등장했다. 베껴 쓴다는 의미의 필사(筆寫)는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키는 유명한 훈련 방법 중 하나다. 정호승 시인은 서정주와 김현승의 시를 필사했고, 신경숙은 “눈으로 읽을 때와 한 자 한 자 노트에 옮겨 적어볼 때와 그 소설들의 느낌은 달랐다. 소설 밑바닥으로 흐르고 있는 양감을 훨씬 세밀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그 부조리들, 그 절망감들, 그 미학들. 필사를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1고 말했다. 난 오래전 이들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 인생 첫 만년필을 마련하고 그에 어울리는 노트를 샀다.
필사는 책을 손으로 읽는 작업이다. 이 훈련법의 핵심은 글을 단어 단위가 아닌, 문장 단위로 옮기는 데 있다. 눈을 바삐 왼쪽 오른쪽으로 굴리며 글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잠깐이라도 외워 머릿속에 박아 넣는 것이다. 글자들이 휘발되기 전에 종이에 적는 일은 문장의 구조와 말맛, 문체를 만드는 법, 더 풍부한 어휘를 자연스럽게 익히게 만든다. 쉼표의 적절한 위치를 고민하게 되고, 접속사의 의미를 더욱 크게 느끼고, 문장을 매듭짓는 수많은 방법을 깨닫는다. 잘못 쓴 글자는 화이트로 지우는 대신 가운데 줄을 긋고 고쳐 쓰면 안 좋은 습관도 발견할 수 있다.
문장을 배우는 데만 깊이 몰입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 깃털 같은 집중력은 그리 오랜 시간 발휘되지 못한다. 쓰다보면 삐죽빼죽 삐침이 못나게 빠져나오고 어딘가 못생긴 글자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글씨의 형태에 공을 들이다보면 문장은 휘발되고 손 마디마디에 아픔만 고인다. 어딘가 비효율적인 필사 작업이지만, 그래도 완성된 글씨체가 마음에 든다. 길쭉길쭉한 모음(성공한 사람의 필적을 분석한 결과 가로획이 길다는 말을 듣고 더욱 길게 쓰려 노력하고 있다)과 조금은 작은 ㅁ과 ㅇ, 세로로 가늘어 조금 해체된 듯 보이는 ㅅ과 ㅈ.
디지털 기기의 자판에 더 익숙한 시대에 펜으로 꾹꾹 눌러 적은 글씨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겠지만, 매년 이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는 대회가 있다. 올해 8회를 맞은 ‘교보문고 손글씨대회’는 심사위원 평가와 대중 투표를 통해 매년 아름다운 필체를 선정한다. 겉옷의 두께를 고민하게 되는 계절이면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수상작들을 볼 수 있다. 개성이 묻어나는 글씨체는 아는 글을 새롭게 읽히게 만들기도 한다. 올해는 으뜸상 수상자의 글씨를 오래 들여다봤다. 역대 최고령 수상자 82세 김혜남은 필체와 잘 어울린다며 며느리가 추천해준 나카가와 히데코의 『음식과 문장』의 한 구절을 적었다. “곡선에 싱싱한 탄력이 있고, 간결하게 새침”(유지원 심사위원)한 글자 모양 덕분일까, 글에서 새콤한 복숭아와 달큰한 밤의 맛이 나는 것 같았다. “글씨는 사람의 마음인 것 같아. 사람의 마음이 거기 담기는 것 같아요.”2 김혜남의 소감을 읽으며, 묘한 떨림을 가진 그의 글씨에 어떤 마음이 담겨 있을까 가늠했다. 글도 사람을 닮고, 글씨체도 사람을 닮으니, 공간 역시 그 공간을 만든 사람을 닮을까. 역으로 좋은 글을 쓰려 노력하다 보면 사람이 글을 닮아가기도 할까. 오늘도 손쉬운 방법 중 하나인 의문문으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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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신경숙, 『아름다운 그늘』, 문학동네, 2004, pp.155~156.
각주 2. 윤상진, “‘손글씨엔 마음이 담겨 있어요’… 82세 할머니의 글씨, 폰트로 제작된다”, 조선일보 2022년 9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