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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광장의 공원화
    벌써 6년이 지났다. 그해 가을은 광장의 계절이었다. 가을을 넘겨 이듬해 봄이 움틀 때까지, 광화문광장을 촛불로 타오르게 한 집회에 연인원 1,500만 명이 참가했다. 차디찬 계절의 뜨거운 광장을 통과하며 『환경과조경』은 특집 ‘광장의 재발견’을 기획했다(2017년 3월호). 특집 서문 일부를 다시 옮긴다. “……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래 최대의 인파, 광장의 역사를 새로 쓴 날 …… 우리는 광장을 뒤덮은 인파를 보며 주체적 시민의 힘에 압도되기도 하고, 그 축제적 가능성에 전율하기도 한다. 한국의 도시민에게 광장은 익숙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1960년 4.19 혁명을 통해, 긴 침묵 후 1987년 6월 민주화 시위를 통해 시민이 주체가 된 광장을 발견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과 촛불집회를 통해 우리는 광장을 매개로 집단적 정치 참여를 축제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폭발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광장이 형성되고 있는 지금의 광화문광장 현상은 광장과 광장 문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논의를 촉발하고 있다. …… 여러 공공 공간 가운데 광장만큼 일상적 이용과 비일상적 이용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공간이 있을까. 광장만큼 도시와 장소의 맥락, 정치와 역사적 상징과 관련된 공간이 있을까. 그럼에도 전 세계적으로 광장이 녹음을 드리운 공원과 유사한 오픈스페이스로 변신하는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김정은, 당시 편집팀장). 4년 전 여름, 만든 지 10년도 안 된 광화문광장을 천억의 예산을 들여 뜯어고치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잃어버린 역사성 회복’과 ‘시민의 일상과 조화된 보행 중심 공간화’라는 석연치 않은 명분을 앞세운 서울시는 많은 전문가와 시민 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업을 강행했다. 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하는지 소통과 토론을 생략한 채 정치 일정에 맞춰 완공 시점을 못박고 과속으로 질주한 사업. 누가 봐도 전시성 포퓰리즘의 산물이었다. 급기야 2019년 초,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 결과가 발표됐다. 『환경과조경』 2019년 3월호는 당시 에디토리얼의 제목처럼 “새 광화문광장, 토론은 이제 시작”이기를 바라며 당선작 ‘깊은 표면’과 수상작들을 무려 다섯 편의 비평문과 함께 게재했다. 2020년 여름, 토건 시대에 버금가는 속도로 사업을 주도하던 서울시장이 광장에서 사라졌다. 공사는 이미 시작됐지만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새 시장은 10년 전 자신이 만든 광장에 새 옷을 입혔다. 숙의와 합의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직진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는 결국 올해 8월 초, 공원의 옷을 입고 일단락된다. 서울시 보도자료의 머리글은 “녹지 면적 3.3배로 늘어난 ‘공원 품은 광장’”이다. 광장의 1/4을 녹지로 채웠고, 녹음이 풍부한 편안한 쉼터에서 일상의 멋과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5천 그루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역사성 회복과 접근성 향상을 명분 삼아 시작된 공간 정치 프로젝트가 자연 브랜드와 휴식 아이템이 한가득 연출된 공원으로 귀결된 셈이다. 8월의 광장은 나무 그늘 밑에서 더위를 식히는 시민들, 바닥분수에서 첨벙대며 즐거워하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10월의 광장 위에선 다시 누군가를 퇴진시켜야 하고 또 누군가를 구속해야 한다는 외침이 맞붙어 충돌하고 있다. 봉건 왕조의 흔적과 근현대사의 파편이 흩어져 쌓인 혼돈의 장소를 낭만의 광화문‘공원’으로 교정할 수 있을까. 선한 공간의 대명사인 공원으로 모순의 광장을 구원할 수 있을까. 이번 호에는 지난한 굴절과 수정 과정을 겪으며 마무리된 새 광화문광장 당선작 ‘깊은 표면’의 최종안을 싣는다. 설계자 조용준의 디자인 노트와 이명준, 정평진 두 비평가의 글을 함께 싣는 것은 광화문광장이 여전히 우리의 토론을 초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광장의 필요충분조건이 좋은 설계인 것은 아니다. 광장은 천천히, 아주 느리게 만들어진다. [email protected]
  • [풍경 감각] 틈
    평소보다 짙은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학교 화장실에는 그리 환하지도 어둡지도 않은 하얀 전등이 여러 개 설치되어 있었고, 평범한 회색 가벽이 화장실 두 칸을 나누고 있었다.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가벽과, 가벽에 붙은 화장지, 그리고 지나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수선하게 흩어져 보였다. 그날 밤 가벽과 바닥 사이의 한 뼘 채 되지 않는 틈에는 여러 개의 그림자가 모여 만든 검고 선명한 그림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휴대폰을 쥔 손이 불쑥 튀어나와 찰칵 셔터 소리를 냈다. 설계 스튜디오로 돌아와 숨을 골랐다. 다음날까지 결과물을 제출해야 했고, 늦은 시간이지만 환하게 불이 켜진 설계실에는 과제를 하는 동기들이 모여 있었다. 안심이 되었다. 가벽 아래로 손을 뻗어 사진을 찍은 사람이 누구였는지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모른다. 혹시라도 해코지를 할까 무서워 따지기는커녕 누구인지 확인조차 못했고, 옆 칸에 있던 사람이 문을 열고 나간 뒤 발자국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나서야 화장실에서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도 낯선 화장실에 갈 때면 바닥과 가벽 사이의 틈에서 아른거리는 그림자에서 눈을 뗄 수 없다. 길게 늘어져 흐늘거리는 휴지 그림자 위로, 금방이라도 카메라를 쥔 낯선 손이 불쑥 솟아오를 것 같아서다. 10cm도 되지 않을 그 틈을 막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보면 손이 닿을 듯한 높이의 낮은 가벽도, 벽면의 크고 작은 구멍도 전부 신경 쓰인다. 오래 전 짙은 그림자의 주인을 향해야 할 화살을 작은 틈에 돌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천장부터 바닥까지 모두 막아주는 매끈하고도 완전한 벽을 자꾸만 상상하게 된다. 글·그림 조현진 | 연필 드로잉에 디지털 채색 조현진은 조경학을 전공한 일러스트레이터다. 2017년과 2018년 서울정원박람회, 국립수목원 연구 간행물 『고택과 어우러진 삶이 담긴 정원』, 정동극장 공연 ‘궁:장녹수전’ 등의 일러스트를 작업했고, 식물학 그림책 『식물 문답』을 출판했다. 홍릉 근처 작은 방에서 식물을 키우고 그림을 그린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씨에이티 조경설계사무소 대지의 기억을 읽고 장소의 서사를 담는 디자인
    조경이 하는 일은 공간을 장소로 만드는 일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먼저 찾게 되는 것은 그 지역만이 가진 이야기들이다. 문학적 이야기가 아니라 그 땅이 생겨남으로써 발생한 자연과 사람의 현상적 이야기들. 그것은 역사, 지리, 기후, 생태, 인문 등 대지의 시간과 공간에 관한 기록일 것이다. 우리는 공간 디자인에 앞서 그 장소가 지닌 이야기를 탐색하고, 그 공간이 요구하는 적합한(올바른) 이용을 탐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서 풀기 프로젝트가 주어지면 가장 먼저 그곳의 내력을 살핀다. 오랫동안 배어 있던 본 모습, 원래의 쓰임, 여기에 왜 이렇게 큰 나무가 남아있는지 등의 이야기에 궁금증을 품는다. 사실 가장 기초적이고 당연한 설계 수순이다. 그런데 의외로 프로젝트를 의뢰한 사람도 그런 내력을 모르고 오히려 놀라는 경우가 많다. 설계안에 지역의 이야기를 담겠다고 하자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지역의 이야기를 제공해주어, 그 속에서 중요한 키워드를 택하는 경우도 있었다. 장소성 찾기와 공간 디자인 공간을 다룰 때 시각적 디자인의 완결성은 공감각적 측면에서 신선함, 안정감, 흥미를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시각적 디자인보다 먼저 하는 일은 장소성 찾기다. 장소의 가치와 쓰임을 정립하고 그것을 가장 적합한 형태로 공간에 녹여내는 것이 좋은 공간 디자인이다. 최근 진행한 부산 사상구 감전당산공원이 그랬다. 구청장 보고회 때 발표의 절반 이상을 장소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는 데 썼다. 오래된 나무가 있고 주택가가 밀집한 지리적 연유를 고지도와 함께 설명하고, 오래전부터 살기 좋은 마을이었음을 알리는 내용으로 구성했다. 담당 국장은 이런 방식의 설계 보고회는 처음 본다고 놀라며 사업에 대한 기대를 표했다. 이러한 긍정적인 반응은 이후에 선보인 계획안의 디자인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감전당산공원 오래된 나무가 있는 곳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당시의 풍경을 추측할 수 있는 옛 지도는 오래된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준다. 특정 장소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알리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일은 공간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다. 장소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알리는 일련의 과정이 공간을 시각적으로 화려하게 디자인하는 것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 디테일 설계를 하면 할수록 디테일의 중요성을 느낀다. 디테일은 직접 시공에 참여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다루기 까다로운 영역이다. 감리나 시공을 병행하지 않는 설계자가 가까이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작은 요소에 공간의 정체성과 이미지가 드러나도록 설계하고 싶어도 현장의 성격과 여건에 따라 공식적이고 효율적인 설계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공에 필요한 것을 빠짐없이 작성하는 디테일과는 다른) 디테일한 설계를 하고 싶어도 기회가 잘 생기지 않았다. 김해시의 작은 프로젝트에서 복잡하고 민감한 설계안을 내자, 담당 부서가 비공식 감리를 요청하는 상황이 생겼다. 우리가 원하던 바였다. 공사의 외주 업체인 시설물 팀은 대충 빨리 마무리하고 현장을 떠나고 싶어 했고, 우리는 현장에서 꼼꼼하게 위치, 각도, 높이 등 하나하나를 조정하고 싶었다. 시청 담당자는 우리에게 감독의 권한을 넘겨주며 원하는 품질이 나오도록 시공사와 협의하도록 했고, 우리는 도면과 다르게 만들어온 시설물을 설계 의도대로 조정하여 완성할 수 있었다. 작지만 완성도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 것을 본 다른 발주처도 비공식 감리를 자연스럽게 요청했다. 중요한 공정의 경우 자재의 종류, 색상, 시설물의 위치 등을 시공자가 설계자에게 허락을 받고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비공식 감리를 진행했던 부산 금정구의 어느 쌈지공원 공사. 약 300평 공간에 경사지를 활용해 모던한 계단 공간과 상징 공간, 휴게 공간을 계획했다. 우리는 시공사와의 첫 미팅에서 도면과 공사에 문제가 있으면 우리에게 먼저 연락 달라, 공사의 모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고 이야기하며 서로 신뢰와 유대를 형성했다. 경사지에 계획한 UHPC 계단은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복잡한 하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복잡한 구조 도면을 본 철골 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레벨을 못 맞춘다고 현장을 포기해 버렸다. 사실 복잡하긴 했다. 너무 복잡해서 레벨을 이해하고 철골 도면을 작성해 줄 수 있는 구조 팀을 구하지 못해 직접 작업했던 도면이다. 다행히 빠른 시간에 다른 철골 시공팀을 찾았고, 시공 팀은 복잡한 도면을 잘 소화해 상판만 얹으면 되는 깔끔한 계단 구조를 만들어냈다. 공간 계획의 실마리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며 풀어나간다. 오래된 지도 한 장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설화의 짧은 문구에서 시작하기도 하며, 그 장소에서 필요한 이미지를 찾거나 그곳에 있었을 법한 이미지를 상상하기도 한다. 김해 경전철 하부의 작은 공간 시설물은 김수로왕의 탄생 장면을 묘사하며 가야 왕도 김해의 오랜 역사를 한번에 보여주었다. 해운대수목원의 생명의 숲은 수목원에 결여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시작했다. 종류별로 모아놓은 묘목장 같은 수목 전시장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한 장소에서 다양한 식물과 자연 소재, 공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계획했다. 김성완(씨에이티 조경설계사무소 대표)의 논문에서 시작된 영도 근대 역사 흔적 지도는 조경설계사무소에서 흔치 않은 종류의 일이다. 강영조 교수(동아대학교)가 100년 전 영도 지도를 입수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김성완 대표는 오래된 길에서 보아온 풍경을 ‘경관 유산’이라는 새로운 유산의 개념으로 제시하며 강영조 교수와 함께 2018년 한국조경학회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100년 묵은 영도의 도시 풍경 연구를 계기로 근대 영도의 흔적을 따라 걷는 탐방 지도와 안내 책자를 제작하고 전시 공간까지 조성했다. 100년된 지도 한 장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2020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2022 아시아 도시경관상 본상에도 올라 현재 심사 중이다. 오래된 도시를 걷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벽면 녹화 프로젝트인 율리 강변 풍경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보았을 풍경을 상상하며 시작했다. 대상지 인근에는 선사시대 유적이 있는데,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볼 수 없지만 삼십여 년 전만 해도 서쪽의 낙동강 변이 보이는 지역이었다. 우리는 선사시대부터 보았을 강변의 풍경을 상상하며 대상지 벽면에 잔물결의 이미지를 담았다. 작은 공간의 설계 건축가와 함께하는 개인 주택, 카페 등의 조경 설계는 작은 공간이지만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개인 공간의 설계는 감리를 병행하고 시공사 선정에도 깊게 관여하며 진행한다. 작은 공간일수록 도면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작은 바위, 야생화, 소관목, 이끼류 등을 배치할 때는 직접 시공하기도 한다. 중요한 위치의 수목 한 그루, 바위 하나를 찾기 위해 공사 기간의 대부분을 보내기도 한다. 개인 공간 설계의 경우 거의 모든 공정을 다루다 보니 별도의 시공사가 있는 공공 공간 설계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 하지만 그만큼 공간에 대한 애착이 더 가게 된다. 양산의 개인 주택 정원의 경우 더 좋은 공간으로 쓰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약에도 없는 작은 정원 수첩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땅의 기억 아직 많은 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지 않았지만 프로젝트마다 깊은 이야기를 담고자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이야기를 담으려는 시도는 발주부서의 의욕적인 업무 수행과 관심이 아니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아직은 여러 가지 이유로 현실과 타협하고 의도와 다르게 진행되는 상황을 경험하며 배워나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한 뼘이라도 더 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 함께하고 있는 동료들의 생각을 옮긴다. 조경이 디자인할 수 있는 영역이나 범위가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하지만 여러 분야와 협업하는 일들, 특히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제한된 공간 안에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한정된 공간이지만 많은 고민을 통해 공간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 좋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큰 변화가 아니더라도 가용 범위 내에서 분위기를 바꿀 방법과 재료를 찾아보며 작업에 임하고 있다. 누군가의 일상 속 기억에 자리 잡을 수 있는 담백한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다. 언제든 편하게 다시 찾아오고 싶은 그런 공간(모현호). 입사 초기에는 땅의 형태에 집중하며 디자인했다. 그 결과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설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은 땅의 기억에 집중하고자 한다. 장소가 가진 이야기, 장소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기억과 같은 것들.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만든 공간을 다수의 사람과 공유하는 즐거움 때문이다. 앞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질 공간들을 기대한다(김경언). [email protected] 씨에이티 조경설계사무소(CAT Landscape Design Group)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생각하는 젊은 조경설계인들과 함께 21세기를 이끌어갈 창의적인 지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고 쾌적한 삶과 사람의 가치가 보장되는 맑고 밝은 세계를 꿈꾸는 우리는 다양한 영역의 공간과 시간을 우리만의 신선하고 새로운 역량으로 디자인해나간다. 고양이를 좋아해서 CAT를 회사명으로 정했다.
  • [모던스케이프] 종묘의 공원화
    지난여름, 의미 있는 사업 하나가 오랜 시간 끝에 완공됐다. 식민지기에 분리된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작업으로, 90년간 두 장소를 갈라놓은 율곡로 일부에 지붕을 덮고 지형을 복원한 것이다. 사업은 2007년 녹지문화축 사업 계획의 일환에서 시작되었다. 북악산 자락의 응봉에서 창덕궁과 창경궁–종묘–세운상가(철거 계획)–남산을 잇는 사업의 첫 단계인 셈이었는데, 이 구간은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회복해야 마땅한 곳이기도 하다. 서울 종묘(宗廟)는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시는 사당으로, 수도 한양을 건설할 당시 사직(社稷)과 함께 가장 먼저 조성되었다. 종묘 북측에 있는 창덕궁과 창경궁은 각각 1405년(태종 5년)과 1483년(성종 14년)에 건설되었으니, 창덕국·창경궁 일대인 동궐(東闕)과 종묘가 하나의 큰 권역을 이루기 시작한 것은 16세기부터인 셈이다. 임진왜란 이후 오랜 시간 빈터로 있었던 경복궁과 달리, 조선왕조 대부분 기간에 동궐을 왕과 왕후의 주궁으로 이용했기에, 위치적으로도 종묘와의 긴밀성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이번 사업에서 복원된 북신문(北神門)은 왕이 궁궐과 종묘를 오갈 때 사용한 문이라고 하니, 두 장소의 연속성은 이용 측면에서도 드러나는 셈이다. 두 공간을 설명하는 또 다른 관점은 풍수지리다. 한북정맥인 북한산 기운이 백악을 타고 동굴 권역을 지나 종묘로 흐른다는 해석은 정서적 측면에서의 위상과 상징을 공고히 하였는데, 일제의 율곡로 건설로 이 논리는 극심한 타격을 입는다. 이른바 지맥을 끊어 민족혼을 말살하려 했다는 통설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사학자 염복규는 율곡로 건설의 근거가 어디에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음에 의구심을 갖고 도로 개설의 과정과 여론을 전방위적으로 살펴본 바 있다. 동궐 권역과 종묘 사이를 관통하는 율곡로의 처음 이름은 경성시구개수(京城市區改修) 제6호선이다. 조선의 길은 전통적으로 잎맥 형태를 하며 길 끝에 가옥이 있는 막다른 길이 많은데, 이는 도성 길도 마찬가지였다. 丁자 형태의 대로를 갖췄을 뿐 순환형 도로 체계는 아니었다. 헤이안 시대부터 격자형 도시계획을 체화한 일제는 병합 초기인 1910년부터 순환형 도로망 구축에 공을 들였는데, 그중에 제6호선, 즉 율곡로 계획은 처음부터 궁궐과 종묘를 관통해야 한다는 난제를 안고 있었다. 총독부 청사였던 경복궁 이전·신설 계획을 가지고 있던 일본은 제6호선 건설을 관철시켜야만 했기 때문에, 순종은 물론 이왕가(李王家), 전주 이씨 종중의 격렬한 반대 속에서도 이완용계와 내통하며 도로 부설 계획을 추진했다. 그 와중에 놀라운 점은 종묘의 공원화를 논의했다는 사실이다. *환경과조경415호(2022년 11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염복규, 『서울의 기원 경성의 탄생』, 이데아, 2016. 경성부, 『경성도시계획구역설정서』, 1926. “犬牙錯雜한 今日의 京城이 卅年後에는 一大理想園 (14) : 公園遊步地增設과 火災豫防大計劃 火災를 防禦하기 爲하야 新築家屋은 全部 防火材 旣築家屋도 改造”, 「매일신보」 1926년 4월 29일. “社說: 宗廟地帶를 開放함이 如何 – 安息處 없이 헤매는 北部民을 보고”, 「동아일보」 1929년 6월 28일.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