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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시그니처 롯데캐슬
Songpa Signature Lotte Castle
송파구 거마로와 만나는 지점, 그 중심에 위치한 광장은 사람들의 발길을 송파 시그니처 롯데캐슬로 이끈다. 광장 안쪽에서 고개를 들면 입구가 올려다 보이는데, 계단을 따라 오르는 캐스케이드가 꼭대기의 말 조형물과 그 뒤를 병풍처럼 감싼 소나무와 어우러져 웅장한분위기를 형성해 단지의 시작을 알린다. 단지 내부의 큰 레벨 차는 캐스케이드와 같은 수직 동선으로 활용하거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곡선 보행로를 두어 경직되지 않은 숲 경관을 연출했다.
계단을 오르면 고요한 분위기의 거울연못이 나타난다. 단지 내부로 몇 발짝 걸음을 옮겼을 뿐인데, 역동적인 광장과는 상반된 분위기의 공간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잔잔한 수면 뒤편으로는 구름 모양의 조형석이 서있고, 거울연못 가장자리에서 바닥을 향해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물소리가 오히려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층 강조한다.
계절을 품은 길
단지를 직선으로 크게 관통하는 대로 대신 모든 공간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순환 동선을 계획했다. 동선이 형성한 틀 안에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잇는 공간으로 역할하도록 했다. 주요 동선을 따라서 송파구의 특성수이자 단지 대표 수종인 소나무를 심었다. 수고가 높고 수형이 아름다운 수목을 선별해 심어 울창한 숲이 연상되도록 했다. 소나무 아래에는 다양한 초화를 심어 계절정원을 조성했다.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의 다채로운 색과 모
양이 소나무길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을 느끼게 한다. 자연스럽게 굽은 소나무길을 따라가다 보면 단지에서 가장 높은 공간에 도달하게 된다. 단지 내부를 가로지르며 높고 낮은 대지를 잇는 이 길은 단지를 딱딱하게 구획된 공간이 아닌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단지 외곽을 따라서는 느긋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둘레길을 조성했다. 전 단지를 순환하는 형태로 계획하고, 주요 동선 및 공간과의 연결로를 두어 드나들기 쉽도록 했다. 숲길처럼 울창한 수목 아래 다층 구조의 녹지와 육생 비오톱 사이로 구불구불하게 뻗어나가는 산책로를 거닐며 다채로운 경관과 다양한 사람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마주할 수 있다.
*환경과조경405호(2022년 1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조경설계 서안+유일종합조경
건설 롯데건설
시공 유일종합조경(식재), 경원필드(시설물)
놀이 시설 원앤티에스, 청우펀스테이션
휴게 시설 데오스웍스
위치 서울시 송파구 거마로 56
규모 1,945세대
대지 면적 68,332.20m2
조경 면적 31,506.57m2
완공 2021. 12.
사진 롯데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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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 소니 파크
여백의 공원, 도시공원을 재정의하다
1966년 긴자에 지은 지상 8층과 지하 5층의 소니 빌딩은 소니 제품을 전시하는 곳이자 판매하는 쇼룸이었다. 2013년 소니는 기존 건물을 허물고 새 빌딩을 세우기로 했다. ‘긴자 소니 파크(Ginza Sony Park, 이하 소니 파크) 프로젝트’의 출발이었다. 일반적으로는 헌건물을 해체하고 바로 새 건물을 세우지만, 소니는 건물을 허물고 빈 공간에 잠시 공원을 짓기로 한다. 2016년 건물을 해체하고 2018년 공원을 열었다. 건물이 사라진 긴자 스키야하시 교차로에는 면적 707m2의 지상 공원과 지하 4층 규모의 로우어 파크(Lower Park)가 생겼다. 지상에는 세계 각지의 특별한 식물이 모여 있다. 지하 1층에는 음식점이 들어섰고, 카페가 있는 지하 3층은 인근의 니시 긴자 주차장 지하 2층과 직접 연결된다. 지하 4층에는 크래프트 맥주 가게가 있고, 지하 2층은 이벤트나 전시가 열리는 공간으로 쓰인다.
2018년 인터넷에서 우연히 접한 소니 파크,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도심 속 사적 공간인 소니 빌딩을 올림픽 개최 시기에 맞추어 도쿄 시민을 위한 공공 공간으로 임시 활용한다는 아이디어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흥미로운 사례였다. 처음 소니 파크를 방문한 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소니 빌딩 일부를 소재로 한 한정판 기념품을 사기 위해서였다. 그 뒤에도 꾸준히 찾아가 소니 워크맨 40주년 기념행사 ‘워크맨 인 더 파크(Walkman In The Park)’를 소니 워크맨을 10년 넘게 애용한 세대로서 추억에 잠겨 둘러보고, 크리스마스에는 아이와 함께 ‘에르메스 징글 게임’을 관람하기도 했다. 소니 파크는 나와 가족에게 도심 속 놀이터 같은 공간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2020년 이후에는 직접 찾아가지 못했지만 다양한 채널을 통해 소니 파크에서 벌어지는 인터랙티브 전시와 이벤트를 확인했고 그 속에서 ‘소니다움’, 즉 예측 불가능한 혁신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긴자라는 보수적이면서도 럭셔리한 콘텍스트 안에서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혁신적 허브로 발돋움해 다양한 커뮤니티 역할을 하는 소니 파크의 활기찬 모습이 큰 감명을 남겼다.
하지만 소니 파크는 기간 한정 공간이다. 2022년, 이곳은 새 빌딩을 들이기 위한 준비에 돌입한다. 본래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에 맞춰서 2020년까지 소니 파크를 개방할 계획이었지만 1년 연장해 2021년 9월까지 공원을 운영했다. 2024년 완성될 뉴 소니 빌딩은 어퍼 파크(Upper Park), 파크(지상 공원), 로우어 파크로 구성된다. 새로운 빌딩 역시 거리에 공공 공간을 제공하는 공원이라는 소니 파크의 콘셉트를 계승한다. 소니답고 독특하고 장난기 있는 공간을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프로젝트 1단계가 마무리된 시점에서 그간 소니 파크가 도시건축적 관점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뉴 소니 빌딩은 어떤 모습으로 고객과 시민에게 다가갈지 궁금해졌다. 소니의 대표이사이자 소니 파크 프로젝트를 이끈 나가노 다이스케(Nagano Daisuke)와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환경과조경405호(2022년 1월호)수록본 일부
나가노 다이스케(Nagano Daisuke)는 소니 기업의 대표이자 치프 브랜딩 오피서(CBO)다. HQ 브랜드전략부 브랜드인큐베이션그룹에서는 제네럴매니저를 담당하고 있다. 긴자 소니 파크 프로젝트 인솔자로서 2013년부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2018년 8월부터 2021년 9월까지 긴자 소니 파크 시즌 1을 이끌었다. 2024년에 공개 예정인 다음 시즌을 준비하며 소니 그룹의 새로운 브랜딩 실험을 주도하고 있다.
이원제는 도심 속 다양한 공간과 상호 작용하는 데 관심이 많다. 공간을 구성하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휴먼웨어를 라이프스타일 관점에서 읽고 해석해 ‘도심에서 풍요로운 삶의 질이란 무엇인가’를 찾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상명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교수이며, SPC그룹과 UDS 코리아 자문교수를 역임했다. 중앙일보 폴인에서 ‘밀레니얼의 도시’(2018) 콘퍼런스를 총괄·기획했고, 저서 및 번역서로는 『인간을 위한 도시 만들기』(2014), 『도시를 바꾸는 공간기획』(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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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디자인 오피스] 조경하다 열음
삶의 그릇을 빚는 젊은 조경가의 매니지먼트
조경 ‘설계’를 기반으로 사회를 바꾸는 전문가
대학 입학 때부터 지금까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조경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었다. 비슷한 시기에 조경 공부를 시작한 이들 중 조경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경을 떠난 사람도 적지 않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전공자로서 그동안 해온 고민의 공통분모는 조경일 것이다. 그 속에서 길을 찾은 사람 혹은 찾고 있는 사람은 아직 조경 제도권에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났다. 나 또한 수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아직 조경이라는 궤도 위를 달리고 있다. 그렇다고 답을 찾은 것은 아니다. 다양한 인연과 기회를 통해 떠올리게 된 새로운 화두가 동력이 되어주고 있을 따름이다. 조경 설계 도면만 그리는 사람이 조경가일까, 이 질문은 내게 기연(機緣)과도 같다. 답을 찾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헤맨다 해도 좋을만큼.
‘조경하다 열음’(이하 열음)을 꾸린 지 5년째다. 대학에서는 설계 중심 커리큘럼으로 조경을 배웠다. 졸업 후엔 조경설계사무소를 다니며 10년간 경력을 쌓았지만, 교육 과정이 조경의 영역을 스스로 제한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실무를 하다 보니 사회에는 조경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다는 걸 체감했다. 하지만 제도와 구조적 문제로 손을 뻗는 데 한계가 있었다. 물론 의견을 제시하거나 활동 참여가 제한되는 건 아니다. 어느 분야나 회사에 속하지 않은 한 명의 자연인으로서 접근한다면 말이다.
지역의 자원이나 문제를 발굴하더라도 조경업의 측면 그리고 회사에 소속된 직원으로서는 공모에 참여하거나 설계 도면을 납품하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설계를 위해 대상지를 조사하면 할수록 갑갑했다. 도면을 완성하는 일 외에도 조경학과에서 배운 역량으로 솔루션을 내놓을 수 있는 일이 많은데 눈을 감아야 한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판을 만들기로.
조경가의 역할은 주어진 대상지에 대한 디자인을 완성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장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래서 디자인을 넘어 여기에 초점을 맞춰보기로 했다. 조경 ‘설계’를 기반으로 사회를 바꾸는 전문가, 열음이 지향하는 조경가의 모습이다.
생활밀착형 조경
코로나19로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공원 녹지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생활 공간 속으로 자연을 가져올 수 있도록 도시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꾸준히 나온다. 도시를 쾌적하게 하는 대형 공원과 녹지와 더불어 일상 속 생활밀착형 공간의 쾌적성을 높여주는 일 또한 중요하다. 이러한 공간에는 선과 숫자 중심의 기존 엔지니어 방식을 넘어 커뮤니티 디자인을 통한 솔루션 제시가 요구된다. 석수골 마을정원 조성(2018),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동네정원 코디네이터(2019, 2021)는 시민의 욕구를 듣고 때로는 디자이너, 때로는 전략가가 되어 현장을 바탕으로 해법을 찾아본 경험이다. 열음은 주민들을 만나 소통하고 공간 조사, 설계, 시공뿐만 아니라 교육과 컨설팅까지 아우르는 현장 중심의 ‘생활밀착형 조경’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국가 정책의 변화와 시대적 수요를 조경가가 주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다양한 정책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국가 과제의 핵심은 지역 주민과 함께 공간을 개선하고 운영하는 것이다. 조경가는 관계를 만들고 대응하며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있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이 강하다. 이해관계가 복잡한 주민 참여 공간 조성 사업에는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열음의 조경가들은 소셜 디자이너로서 전문적 식견과 경험을 가지고 지역을 변화시키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북촌 도시 재생, 여수 농촌 재생, 강화도 어촌 재생이 그 사례다.
북촌은 개발이 아닌 보존을 선택한 주민들 덕분에 600년 역사적 자산을 지키며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세계적 명소가 된 곳이다. 하지만 최근 무분별한 상업화로 인한 정체성 훼손, 과도한 관광객 방문으로 인한 생활 환경 침해 등의 문제가 대두됐다. 살고 싶은 마을과 머물고 싶은 동네를 위한 공존·상생의 길을 현장에 상주하며 찾고자 했다. 먼저 한옥 보존에 대한 규제로 인한 경직된 지역민의 마음을 달래고자 ‘북촌정원산책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부담 없이 접근하고 식물을 통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정원을 만들어 도시재생의 포문을 열었고, 지금까지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여수 새뜰마을에서는 개발제한구역과 여수 국가산업단지로 인해 열악해진 생활 환경을 개선하고 잠재된 마을 자원을 발굴해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자 했다. 봉계동 일원의 ‘주삼지구 새뜰마을사업’을 통해 지역 내 빈집 및 노후 주택을 정비하고,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및 복지 지원을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다.
강화도에서 진행한 ‘어촌뉴딜사업’은 주민이 주도해 해양 경관 개선 및 경제 활성화 기반을 마련하는 프로젝트다. 곳곳에 산재된 유휴 공간과 해양 경관을 개선하며 지역 사회 구성원과 방문객을 위한 공간 개선 활동을 전개했다. 우리의 역할을 찾고 비전을 제시하면서 조경가의 활동 무대를 바다로 확장하는 중이다.
조경은 가진 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고품질의 차별화된 조경 공간은 매체를 통해 소개되는 고급 주택의 정원 등 사적인 공간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오피스 빌딩이나 호텔, 상업 공간, 아파트 조경이 주로 완성도가 높은 조경 공간으로 꼽힌다. 따라서 디자인적 조형미, 고가의 자재와 식물 활용, 시공성, 식물 간의 균형과 조화로움 등은 차치하고 들어주기를 바란다.
동네에서 더 나은 조경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한 주민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다. 조경은 워낙 다양한 역할을 하기에 그 의미도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근간에는 자연의 모습을 도시에 재연하는 편집자로서의 사명이 있다. 자연과 멀어진 사람의 일상으로 자연을 끌어와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도시의 누군가는 이러한혜택을 받지 못하고 소외되는 실정이다.
정원에 공공성이 더해지면서 조경이 태동했다. 그런데 다수의 공공을 위한 공간일수록 좋은 품질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적 약자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조경 공간의 품질은 더 떨어진다. 좋은 소재와 기술을 쓰고 인력을 많이 투입하면 품질이 좋아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자본력을 가진 클라이언트만 좋은 조경 공간을 가질 수 있다면 과거 귀족에게만 허락된 정원(loyal garden)과 다를 게 없다. 다수의 공공을 위한 공간일수록 좋은 품질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적으로 경제 자본과 멀어지면 쾌적한 환경을 누릴 수 있는 권리도 제한되는 것인가.
예산 분배는 정책가의 역할이니 접어두고 조경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조경가의 손길을 원하는 곳이 있다면 돈이 되지 않는 일이라도 일단 뛰어들어 솔루션을 제시하고 자격을 갖추어 판을 만들자는 전략을 세웠다. 많은 비용이 요구되는 디자인이나 재료를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변화의 체감률을 높이는 방법을 찾는 데 주력했다. 지금까지 조경가는 주민들이 원하는 걸 듣고 설계하기보다는 현장에서 자체 진단과 직관에 의한 설계 결과물을 공청회를 통해 주민들에게 통보하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다. 조경가는 일을 마치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아서 공간을 누리는 사람들은 주민이란 점을 종종 잊어버린다. 꾸준하게 마을과 연을 맺고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은 이를 잊지 않기 위함이다.
누구나 집 앞에서 고급 정원을 향유할 수는 없겠지만, 보다 나은 공간에서 쾌적함을 누리는 일에는 공평하면서 보편적인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돈이 되는 고급형 조경이 아닌 누구나 누릴 있는 녹색 복지로서 보급형 조경에도 관심을 갖고 힘을 쏟아야 한다. 이게 조경의 공공성이 아닐까. 자연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으면 도시에 영양 결핍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결핍은 결국 사회 문제로 이어지니 손을 놓아서는 안된다. 열음이 주목하는 지점이다.
아이들의 일상에 자연을 놓아주다
공간적인 측면에서 소외되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관심을 가졌다. 학교는 창의적인 인재 육성보다 효율적인 통제를 목적으로 설계됐다. 주인인 학생을 위한 공간이 어디에도 없는 모순적인 구조다. 교육부도 이를 인지하고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라는 학교 공간 혁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외부 공간에 대한 접근은 크게 변한 게 없었다.
특히 운동장은 일상에서 자연을 접하고 숲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공간인데도 대부분 방치되어 있다. ‘생태 숲 미래학교’는 경기미래교육 핵심 과제 5가지 중 하나다. 우리는 2개 학교(김포 고창초등학교, 부천 송내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에게 생태적 가치와 감수성을 일깨워주고 기후 변화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진로 탐색 기회를 제공하는 외부 공간 조성이 목표였다. 그 과정을 통해 조경가로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경기도 교육청은 학교 공간 혁신을 위한 공간 전문가를 촉진자로 위촉하고 건축·도시·조경 전문가가 참여할 길을 열어놨으나 조경 분야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업적 측면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점과 기존과 접근 방식이 다른 생소한 프로젝트인 점이 이유인 것 같다. 촉진자 선정에 참여한 40여 명의 전문가 그룹 중 조경가 그룹은 열음이 유일했다. 학교는 미래 세대가 자라는 공간이고 전국의 학교 개수를 고려하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잠재적 탄소 흡수원이자 환경 교육 거점으로서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참여 계기였다. 이후 조경 분야가 참여할 길을 열어두기 위한 교두보 역할만 해도 충분히 가치가 있어 보였다.
학생들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학교에선 교실 말고는 딱히 갈 곳이 없으니 쉬는 날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산과 바다와 같이 먼 곳으로 바캉스를 떠난다. 완벽한 스트레스 해소는 어려울지라도 일상에서 잠깐이라도 자연을 마주하며 힐링하는 경험은 스트레스 총량을 줄이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소생물 서식처 기능까지 고려한다면 사람과 야생 동물이 공존하는 지역의 생태적인 거점으로 거듭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3년의 시간, 12계절의 변화를 체감하면서 생활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특히 부천 송내고등학교에서는 교내 환경 교과목 교사와 합을 맞추면서 소프트웨어와 어우러진 공간 조성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기존 환경 교육은 학교 바깥의 녹지를 간헐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정도였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교육할 수 있도록 학교 구성원들과 심도 있는 상의를 통해 교육 과정과 연계한 AI 교육 등의 학습 공간을 계획했다. 음악회나 독서와 같은 공간 경험을 넘어 진로 탐색과 연계할 수 있는 모델로 서 숲을 제안했다. 교직원과 학생들 모두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진행 과정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처음에는 일부 위요된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과업이었으나 또 하나의 위요 공간부터 필로티, 건물 틈새 중층, 옥상 등 내외부를 관통하는 하나의 녹지 네트워크를 아우르는 마스터플랜을 제시하여 추가로 예산을 받아 과업을 수행하게 됐다. 학생들과 함께 도출한 생각을 설계로 구현했지만 공사는 가격 입찰로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의 손을 벗어나 의도가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을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정식 공사 감리는 아니지만 디자인 감리 제도를 통해 시공사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소재 선택부터 디자인 디테일 조정 등 여러 부분에 관여했다. 프로젝트 성과에 100%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학생들이 빗물, 숲, 옥상, 실내 등 여러 가지 유형의 정원을 일상의 일부인 학교에서 체험할 수 있게 된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조경하다 열음’의 구성원
현재 열음은 경영 관리, 설계와 엔지니어링, 공동체 등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조민영 소장이 경영 관리 총괄로 회사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고, 윤호준 소장은 설계 및 엔지니어링, 김도훈 소장이 공동체 파트 총괄이다.
엔지니어링 파트 행동대장 이병우는 온갖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건 식재다. 설계부터 시공, 활착 후 모니터링까지 본인 머리에서 현장으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걸 좋아한다. 식재와 관련된 부분에선 회사 내 ‘원 톱’이다. 이외에도 각종 설계가 실제 현장에서 구현될 수 있게끔 관리한다.
신혜지는 기획과 구상을 실시설계로 구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장하니는 내역을 담당하면서 다른 직원들이 의욕으로 채운 도면을 현실과 연결시키는 데 주력한다. 김윤은 사회초년생이지만 기복이 없고 뚝심이 강해 선배들을 든든하게 뒷받침해준다. 그래픽 기술을 특화해 역량을 키우고 있다.
공동체 파트는 현재 북촌 도시재생활성화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임은경은 현장에서 주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정리하는 소통 창구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김용진은 다양한 의견을 북촌에 맞게 체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다. 어떤 문제가 들어와도 북촌화하여 주민과 협의해 적절한 프로그램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김범진은 사업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오랜 시간 머물며 자리를 지켰다. 시대적 흐름이나 상황 속에서 북촌에 대한 이야기를 연결해준다. 박지영은 센터 내 유일하게 도시 공학을 전공한 도시재생 전문가로 하드웨어 중심의 계획 수립과 사업 실행을 전담해서 진행하고 있다.
조경가 매니지먼트를 꿈꾸며
회사와 대표는 동일체가 아니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법인은 또 하나의 인격체다. 회사와 대표가 등가 관계로 매칭되는 순간 동료들이 빛을 잃을 우려가 있다. 그래서 열음에는 직급이 없다. 창립 때부터 직급 체계를 두지 않았다(물론 나이 차에 따른 구분과 예를 갖춘다). 모든 동료의 명함에는 ‘조경가’란 타이틀만 있을 뿐이다. 각 파트장들만 소장이란 직함을 달고 있을 뿐, 다른 동료들은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열음의 조경가들은 대외 업무 시 회사를 대표하며 자기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책임질 권한을 갖는다. 그렇다고 경력자나 소장이 자기 업무만 하면서 방치하는 건 아니다.
권한을 주되 책임을 선배들이 분담하며 업무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한다. 직원들이 연봉만으로 설계업을 영위하는 건 회사나 개인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다. 설계는 계량이 어려운 지식 서비스 산업이므로 야근, 주말 출근까지 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다 나은 방법을 고민하다 보면 시간을 정해놓고 일을 마무리하는 게 어려운 법이다. 그렇기에 직원 개개인의 역량 차이가 있더라도 최소한 일정 수준의 품질을 맞추기 위해 함께 스터디 하면서 해법을 마련하는 구조를 취하고 이를 보상하는 시스템을 갖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열음을 배경으로 한 조경가 개인의 커리어 축적, 수익 배분, 방학 제도 운영이다.
열음은 정원박람회 작가나 공모전 등 개인 커리어를 쌓는 것도 장려하고 있다. 연봉 외에 노력하는 만큼 수익을 배분하는 경영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회사 매출의 일정 수익금은 직원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 나가고 있다. 방학은 주로 연말에 주어지며 2~3주 동안 회사와 어떤 연락도 하지 않는 휴식기를 갖게 한다. 자기 프로젝트를 끝까지 완수할 정도로 성장한 조경가는 각자 독자적 조직을 구축하도록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연예인의 방송 활동 외 경영 전반을 관리해주는 매니지먼트 회사 개념을 모티브로 한다. 회사가 소화하지 못하는 전문적인 역량은 다양한 전문가와 의 협업 관계를 통해 보완하며, 이를 연결하는 것 또한 열음의 역할이다. 조경을 잘 하고 싶은 사람이 조경에만 전념할 수 있게 도와주는 회사가 되려 한다.
자기만의 확고한 철학을 갖고 조경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온전하게 자기 일에 시간을 쏟을 수 있는 배경이 되어주는 회사로 성장하는 것이 열음의 꿈이다. 조경 설계에 국한해 우수한 사람들을 모아놓는 게 아니라 도시, 공동체, 스마트 시티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편하게 이야기 나누고 업무를 수행하는 조경 전문 소속사, 그게 바로 ‘열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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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하다 열음의 대표 조경가 윤호준은 조경 설계를 기반으로 사회를 바꾸고자 한다. 학부에서 조경을 전공하고 설계사무소에서 10년간 경력을 쌓은 뒤 제도권을 넘어 새로운 판을 만들자는 포부로 2017년 조민영과 함께 사무실을 열었다. 주민과 소통하고 공간의 조사, 설계, 시공뿐만 아니라 교육과 컨설팅까지 아우르는 생활밀착형 조경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자연의 모습을 도시에 재현하는 편집자로서 사무실보다 현장에서 답을 찾고, 직관보다 경험, 발주처보다 주민의 이야기에 귀를 더 기울인다. 예비 조경가를 발굴·육성하는 매니지먼트 회사로 조경설계사무소를 키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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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스케이프] 도시 균열의 시작, 전차 노선이 만든 미완의 풍경
교통에 의한 도시 경관의 균열은 19세기 말 서울에 부설된 전차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제 전차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수백 년을 이어온 도시 경관에 전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느낀 충격은 상상하기 어렵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가 된 고종은 경운궁을 중심으로 제국의 격에 맞는 근대 도시로 전환을 시도했다.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도성 한양에 궁궐과 단묘(壇廟), 성곽을 축성하여 새로운 국가의 출발을 알렸던 것처럼, 대한제국은 황제국으로의 표상을 도시 경관에 실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대한제국은 혁명에 의한 체제 전복으로 탄생한 국가가 아니었고, 중국에 대한 사대를 극복하려 하면서도 그들로부터 전승 받은 제도를 따르는 모순을 안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대한제국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근대 도시로의 변혁을 이루어야 했기에, 전통적인 지배 구조로서의 황도(皇都)와 무역 등 경제 활성화를 꾀하는 근대 도시의 이중적 구조가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을 기준으로 재편된다.
경운궁 동쪽에 건설된 환구단과 황궁우가 황제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면, 전차는 근대 도시로의 실천을 보여주는 시설이다. 서대문정거장(지금의 서대문역 일대)에서 시작해 황토현(지금의 광화문사거리)~종로~흥인지문을 지나 홍릉(천장 전 명성황후의 묫자리, 현재 안암동 고려대학교 부근)까지 가는 홍릉선이 먼저 개통되었다. 선로를 부설하여 전선을 놓고 발전기를 돌려 전차가 다니도록 개통한 것이 1899년 5월 4일이다. 우리보다 근대화를 먼저 시작한 일본에 견주어도 결코 늦은 것이 아니었다.1 홍릉선 외에 종로에서 용산까지 이어지는 용산선(1899년 12월 20일), 서대문정거장과 남대문정거장을 연결한 의주로선(1900년 7월 6일), 그리고 마포까지 연결된 마포선(1907년)까지 네 개의 전차 노선이 개통되었다.
각주 1.교토에서는 1895년 1월 31일, 도쿄에서는 1903년 8월 22일에 개통했다.
참고문헌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 전차』, 서울책방, 2019, pp.28~35.
신경진, “[뉴스 클립] 중국 도시 이야기<4> 황제의 도시 베이징 (하)”, 「중앙일보」 2011년 2월 9일.
그림 출처
그림 1. American Street Railway, “The Electric Railway in Corea”, Street Railway Review vol.
IX, 1899, p.534.
그림 2. commons.wikimedia.org/wiki/File:Travelogues;_(1908)_(17).jpg
그림 3.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 전차』, 서울책방, 2019, p.16.
그림 4. 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39921
*환경과조경405호(2022년 1월호)수록본 일부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 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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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LA Best Books 2021
‘2021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11권의 조경 서적
장기화된 팬데믹으로 일상이 송두리째 바뀐 지 벌써 2년, 조경가들은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다. 과거를 점검하고 미래를 그리는데 연말연시만큼 좋은 시기가 또 있을까. 미국조경가협회(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 ASLA)는 매년 ‘올해의 책(ASLA Best Books)’을 선정한다. 앞으로 펼쳐질 조경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2021 올해의 책’ 11권을 소개한다.
1. 조경가가 알아야 할 250가지
B. Cannon Ivers, ed., 250 Things a Landscape Architect Should Know , Birkhäuser, 2021
2. 해안 적응을 위한 청사진: 설계, 경제, 정책의 통합
Carolyn Kousky, Billy Fleming, Alan M. Berger, eds., A Blueprint for Coastal Adaptation: Uniting
Design, Economics and Policy, Island Press, 2021
3. 역동하는 지형들
Barbara Wilks, Dynamic Geographies , ORO Editions, 2021
4. 생태지역적 옥상 녹화: 미국과 캐나다 서부에서 찾은 이론과 사례들
Bruce Dvorak, ed., Ecoregional Green Roofs: Theory and Application in the Western USA and Canada , Springer, 2021
5. 코펜하겐: 도시 건축과 공공 공간
Sandra Hofmeister, København: Urban Architecture and Public Spaces , DETAIL, 2021
6. 재구성: 미국의 건축과 흑인 정책
Museum of Modern Art, Reconstructions: Architecture and Blackness in America , Museum of Modern Art, 2021
7. 회복탄력적 도시: 기후변화를 위한 조경
Elke Mertens, Resilient City: Landscape Architecture for Climate Change , Birkhäuser, 2021
8. 우리를 구원하기: 분열된 세계에서 희망과 치유를 위한 기후학자의 변
Katharine Hayhoe, Saving Us: A Climate Scientist’s Case for Hope and Healing in a Divided World , Atria/One Signal Publishers, 2021
9. 치유하는 학교들: 정신 건강을 고려한 설계
Claire Latané, Schools That Heal: Design with Mental Health in Mind , Island Press, 2021
10. 진지하게 즐거운: 클로드 코미에의 경관
Marc Treib, Susan Herrington, Serious Fun: The Landscapes of Claude Cormier, ORO Editions, 2021
11. 사회적 어바니즘: 공간 설계의 재구성–라틴 아메리카의 담론들
Maria Bellalta, Social Urbanism: Reframing Spatial Design–Discourses from Latin America , Applied Research+Design, ORO Editions, 2021
*환경과조경405호(2022년 1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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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달러구트 꿈 백화점
여행을 떠나기 전날 예약한 비행기나 호텔이 취소되는 꿈, 낯선 외국인에게 사기당하는 꿈을 종종 꾼다. 이런 꿈을 꾸고 나면 기분이 영 찝찝하다. 괜히 불안해 애꿎은 예약 확인증을 몇 번이나 확인해본다. 대부분은 기우에 그친다. 불행하게도 한번 예외가 있었다. 몇 년 전 가족 여행으로 냐짱(Nha Trang)의 랜드마크인 빈펄랜드(Vinpearl Land)에 갔을 때다. 한국에서 미리 케이블카 표를 예매했다. 매표소에 도착해 표를 받으려고 했는데 예약이 되어 있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며 꿈에서 본 장면이 재생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난감한 상황이다. 예약 페이지 화면을 보여주었지만, 직원은 자신은 잘 모르겠다며 어딘가로 전화해보겠다는 모호한 대답만 웅얼거렸다. 결국 한참의 시간을 허비한 후 현지에서 다시 돈을 지불하고 표를 구했다. 여행 전날 꾼 꿈의 데자뷰인가, 꺼림칙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펼쳤을 때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다섯 개 층으로 이루어진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옷, 음식, 잡화 등을 파는 곳이 아닌 꿈을 파는 백화점이다. 사람은 하루 중 4분의 1 이상 잠을 자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동안 현실에선 볼 수 없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풍경, 자주 등장하는 어떤 한 사람, 다신 겪고 싶지 않은 기억을 마주하기도 한다. 마치 생생한 영화처럼 말이다. 이게 바로 꿈이다. 꿈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내가 만들어 낸 이야기인 걸까, 원하지 않는 꿈은 왜 꾸는 것인가. 늘 궁금했다.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무의식이 만들어낸 몽상에 불과하다고 하기에는 어떤 꿈은 지나치게 선명하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꿈속에서만 갈 수 있는, 꾸고 싶은 꿈을 사고 그 꿈에 대한 감정을 돈 대신 지불하는 백화점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담은 책이다. 꿈 제작자, 꿈 백화점 같은 키워드만으로도 책을 펼치고 싶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아침부터 재입대하는 꿈, 또다시 시험을 치는 꿈 등 악몽을 꾼 수십의 손님들이 어떻게 이런 꿈을 팔 수 있냐며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찾아왔다. “손님. 죄송하지만 그냥 악몽과는 다릅니다. … 정식 명칭은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꿈’입니다.”1 주인장의 말에 꿈속에서 싫은 일을 다시 겪는 게 얼마나 불쾌한 일인지 아냐며 손님들은 불평불만을 가득 토로했다. “정말 싫은 기억이기만 할까요.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거꾸로 생각하면 온 힘을 다해 어려움을 헤쳐 나가던 때일지도 모르죠. 이미 지나온 이상,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랍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 이렇게 건재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손님들께서 강하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2 달러구트의 설명을 들은 손님 중 절반은 계약을 철회하고 절반은 비장하게 서로를 다독이며 잘 버텨보자며, 다신 이런 꿈을 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잊지 마세요. 손님들께서는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 많은 것들을 이겨내며 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순간 이전보다 훨씬 나아질 수 있죠.”3 달러구트는 생각을 좋은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향수를 뿌려주며 지상으로 올라가는 손님들을 배웅했다.
빈펄랜드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예약 사이트에 전화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예약 내용이 사이트 오류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다소 맥 빠지는 답을 들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잊고 있던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케이블카 예매 오류의 원인을 직원이 알아보는 동안, 발길 닿는 대로 둘러보았던 곳에서의 시간들. 예매 오류가 없었다면 가보지 못했을 장소, 그곳에서 먹은 기막히게 맛있었던 아이스크림. 코로나19로 인해 여행 캐리어를 꾸릴 일도 예약이 취소되는 꿈을 꿀 일도 없지만, 다시 한 번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좀 다르게 대처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틀어진 계획 덕에 하게 될 새로운 경험을 은근히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잡지 에디터 2개월 차인데, 원고가 펑크 나는 악몽은 아직 꾸지 않았다. 오늘 밤에는 원고가 뚝딱 써지는 꿈을 사러 달러구트를 찾아가볼까.
각주1.이미예, 『달러구트 꿈 백화점』,팩토리나인, 2020, p.141.
각주2.같은 책, p.144.
각주3.같은 책,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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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눈물 금지
아마도 1960년대 즈음, 잡지가 주요 미디어였던 시기의 이야기다. 아서 하위처 주니어(Arthur Howitzer, Jr.)는 미국의 여행 잡지 『피크닉』을 인수해 프랑스의 앙뉘 쉬르 블라제(가상 도시)로 떠난다. 최고의 저널리스트들을 모아 도시와 예술, 사회, 음식, 대중 문화를 깊게 들여다보는 지면을 구상하고 그에 걸맞게 제호를 바꾼다. 그렇게 『프렌치 디스패치』는 세계적 매거진으로 발돋움한다. 보통은 이 변혁의 과정을 조명할 테지만, ‘프렌치 디스패치’는 영화 시작 5분 만에 편집장의 부고를 알린다. 편집장의 유언은 직원과 기자들에게 후한 퇴직금을 주고, 『프렌치 디스패치』를 폐간하는 것. 동료의 죽음이,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소식이 잔인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누구도 화를 내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대신 편집장의 사무실에 모인 기자들은 종간호를 위한 마지막 편집 회의를 시작한다. 뒤편으로 벽에 새겨진 문장 하나가 보인다. No Crying눈물 금지.
동화적 색감, 강박적 대칭 구도, 숨 쉬는 박자마저 계획했을 것 같은 치밀한 연출, 웨스 앤더슨 특유의 탐미적 감각은 잡지 구성을 플롯으로 삼은 ‘프렌치 디스패치’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평면적 구도의 미장센은 화면을 더욱 지면답게 만들고, 이야기와 그 속의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도드라지게 한다. 에디터의 입장에서 바라본 『프렌치 디스패치』의 마감 풍경은 너무나 이상적이라서 도리어 끔찍하다. 온몸으로 체험하느라 터무니없이 긴 시간을 취재에 매달려 마감을 지키는 기자가 없다. 그뿐인가, 기획 의도에서 벗어난 내용을 써오는가 하면 약속된 분량의 다섯 배나 되는 원고를 떡하니 내어놓기까지 한다. 그래도 아서는 우선 읽는다. 기사의 취지를 다시 묻고 쳐낼 곳은 없는지 혹은 중요한데 버려진 부분이 있는지 확인한다. 게시판에 붙은 수많은 교정지를 한참 들여다보던 그는 소리친다. “난 아무도, 그 어떤 기사도 안 잘라. 인쇄 종이를 더 확보하고 페이지를 늘려!”
겪어본 적 없는 저 풍경에 묘한 그리움을 그리는 까닭은, 시대가 저물며 사라지고 있는 가치가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웨스 앤더슨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어린 시절 즐겨 읽은 『뉴요커(New Yorker)』에서 영감을 받아 이 영화를 기획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일까 107분에 달하는 긴 영상은 마치 숭고한 저널리즘과 그 속에 담긴 낭만을 향한 찬사 같다. 『프렌치 디스패치』의 기자들은 단순히 기삿거리를 쫓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사건에 몸을 던져 그 속에 얼마나 복잡한 진실이 엉켜 있는지, 사람들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 배경에 숨겨진 이야기는 무엇인지 파헤친다. 도시, 아트, 정치‧시사‧국제, 음식 생활, 꼭지의 이름은 다르지만 네 편의 기사의 종착지는 결국 보편적인 인간사다(에피소드는 실제 뉴요커에 실린 기사를 바탕으로 한다. 검색해보기를 추천한다). 이미지, 짧은 문 장, 영상으로 세상을 소비하는 시대, 잡지를 비롯한 여러 인쇄 매체는 올드 미디어가 되었다. 그러니 편집장의 방에 적힌 ‘눈물 금지’는 ‘네가 뭘 잘했다고 우냐’며 직원을 닦달하는 말이 아닌, 시대를 통과하며 변화를 맞이하는 매체를 향해 보내는 위로, 저물며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애도의 인사일 것이다.
직업 때문일까, 에피소드 사이사이 취재 노트처럼 삽입된 장면들에 유독 마음이 갔다. 편집장과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기자들은 제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다. 어린 혁명가들과 엉켜 각양각색의 낯을 띄우던 기자는 타자기를 두드리는 뒷모습만을 보여주고, 요리사를 취재하러 갔다가 납치된 경찰청장의 아들을 추적하게 된 기자는 마감에 지쳐 누워 있는지 침대 위로 뻗은 다리만이 화면에 담길 뿐이다. 그게 꼭 이야기의 주역과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 사이의 거리처럼 느껴져 괜히 쓸쓸했다.
아서와 기자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2021년 내내 잘려나간 수많은 문장을 생각했다. 지면의 특성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자리를 잃은 글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느냐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 사람 이야기를 담는 기획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경은 우리를 둘러싼 공간이자 환경이고, 이를 완성시키는 건 결국 사람일 테니 말이다. 2월호의 서두에는 공간뿐만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새로운 꼭지가 등장한다. 슬쩍 흘린 이 예고가 독자 여러분의 흥미를 자극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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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NY] 스페이스톡
조경 시설물 분야의 게임 체인저를 꿈꾸는 기업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은 개척자. 조경 시설 분야에서 스페이스톡을 일컫는 말이다. 2002년 설립된 스페이스톡은 사람과 환경을 위한 토털 디자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디자인 그룹으로 출발해 조경 시설, 놀이 시설, 환경 조형물, 야외 운동 시설을 만들어왔다. 개척자라는 별명에 걸맞게 늘 혁신을 꾀해왔는데, 업계 최초로 아이들이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 우레탄 바닥 놀이터를 제안하고 교통사고로부터 안전한 차 없는 아파트의 모습을 제안한 이력이 그 예다.
2017년 스페이스톡은 또 한 번의 도전에 나섰다. 사물인터넷IoT과 AR 및 VR 기술을 접목해 다음 세대를 위한 시설물을 개발하고자 한 것이다. 수년간의 기획과 개발을 통해 2021년 12월 공간 솔루션인 ‘넥스트톡Nexttalk’을 선보였다. 넥스트톡은 좀 더 다채로운 삶을 위해 우리가 누리는 환경을 휴게, 운동, 놀이 공간으로 정의한다. 각 공간을 스마트 기술과 융합해 라잇플Life+(휴게 공간), 핏플Fit+(운동 공간), 플레잇플Play+(놀이 공간)을 완성했다. 김필주 대표는 “디지털 기술 중심의 사회 변화를 감지해 신사업 발굴을 위한 경영 전략을 수립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어, 디지털 기술을 탑재한 시설물이 분야의 새로운 도약점이 될 것이라 예감했다”고 넥스트톡의 출시 배경을 밝혔다.
편안한 휴식 생활을 지원하는 라잇플은 스마트 티하우스, 스마트 퍼걸러, 스마트 버스 정거장, 스마트 키즈맘 스테이션으로 구성된다. 공기 청정 기능과 냉난방 시스템, 유해 화학물을 친환경적으로 제거하는 그린월이 있어 미세먼지와 대기 오염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을 제공한다. 전력 공급에 따라 투명도가 달라지는 스마트 글라스를 이용해 영상이나 음악 등 미디어 콘텐츠를 즐길 수도 있다.
핏플은 야외 피트니스를 위한 공간이다. 유산소 운동 기구, 스트레칭 기구, 근력 운동 기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으면 운동 기록 저장과 운동 기구별 목표 설정이 가능하다. 운동 기구와 연동할 수 있는 게임도 애플리케이션에 탑재해 재미를 더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고안된 플레잇플은 현실과 가상을 연결한 신개념 놀이 공간이다.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AR 놀이터에서 가상의 공룡 및 동물과 놀 수 있다. 버추얼 스포츠 리그Virtual Sports League는 학습과 운동,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가상 현실 플랫폼이다. 공이나 화살 등 물체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3D 비전 센서를 이용해 VR 스포츠를 즐길 수 있으며, 초등학교 교과서와 연계된 콘텐츠를 설치하면 학습 프로그램으로 활용할 수 있다.
김필주 대표는 스마트 시설물의 핵심은 ‘스마트’라는 단어에 있다고 강조했다. “스마트하게 작동하는지, 스마트하게 관리할 수 있는지가 IoT 기반 시설물의 차별화 지점이다. 넥스트톡은 별도의 설정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주변 환경 정보를 수집해 그에 맞추어 작동한다.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모든 시설물을 원격으로 운영 및 제어할 수 있고, 고장이 나면 쉽게 대처할 수 있도록 AS 신청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물론 개발 과정이 녹록하지는 않았다. 시대가 요구하는 제품이 무엇인지, 또 시장의 반응이 어떨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마트 시설을 원하는 이들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어 불안했다. 하지만 2021년 ‘부산 에코텔타시티 스마트 공원시설물 공모’에 당선되며 우려가 해소되었고, 시장과 제품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넥스트톡은 더 나은 공간을 창조해가는 진행형 브랜드다. 한층 더 진화한 넥스트톡을 위해 스페이스톡은 AR 가든, AR 탐조대, AR 안내 지도 등 이제껏 다른 회사가 시도하지 않은 제품을 개발하는 데 매진할 계획이다. 시대의 흐름에 부응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늘 사람과 공간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고 더 나은 삶의 공간을 마련하고자 노력해온 스페이스톡의 철학을 담은 포부다. 마지막으로 김필주 대표는 “스페이스톡은 독보적 디자인 노하우와 IoT, AR, VR 기술을 융합한 넥스트톡을 통해 시설물 분야의 판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되고자 한다. 기술 기반의 시설물 분야를 이끄는 선구자로서 나아갈 것이니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한다”고 전했다. 글 김모아 사진 스페이스톡
TEL. 02-525-3274 WEB. spacetal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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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리비오스톤
하나의 모듈로 다채로운 패턴 연출
형태가 일정하지 않은 부정형 블록은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간을 연출할 때 쓰기 좋다. 블록 사이의 틈새로 잔디와 작은 초화가 자라게 할 수도 있고, 별도의 경계석을 설치하지 않아도 주변 부지와 위화감 없이 연결된다. 하지만 블록 형태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배치 방법과 시공 숙련도에 따라 공간의 완성도가 좌우되기도 한다.
2021년 12월 출시된 리비오에코디자인의 ‘리비오스톤’은 부정형 판석을 모티브로 한 투수 콘크리트 블록이다. 모듈은 길이 290mm, 너비 390mm, 높이 60mm로 하나지만, 표면 디자인과 질감이 달라 다섯 가지 종류처럼 쓸 수 있다. 이를 조합하면 다양한 패턴을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크기가 각기 다른 블록을 사용한 듯한 효과를 낼 수 있다. 표면에 섬세한 요철을 만들고, 블록 가장자리를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처리해 천연 석재의 형태와 질감을 재현했다. 색상은 스톤그레이와 골드옐로우 두 가지인데, 한 가지 색상에 여러 안료를 혼합해 그러데이션 효과를 내는 블렌딩 기술을 사용해 이국적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냈다. 기층에 투수 기능이 가미되어 있어 보도, 광장, 공원 산책로에 적용하면 장마철에도 쾌적하고 안전한 보행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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