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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한강공원 자연형 물놀이장 설계공모] 그랜드 블루, 블루 그라운드
2등작
한강의 자연과 물놀이장
거대한 모래톱과 식생이 어우러진 한강의 자연환경은 수중보와 직강화 사업으로 본래의 모습을 잃었다. 이곳에 ‘자연형’이 아닌 ‘자연’ 물놀이장을 만들고 한강 자연의 회복을 꾀하고자 한다. 인공적인 저수 호안을 자연 호안으로 회복하고 조수 간만의 차이에 따라 자유롭게 넘나드는 물과 식생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경관을 만드는 것이 ‘그랜드 블루, 블루 그라운드(Grand Blue, Blue Ground)’의 목표다.
전략
자연과 수영장의 공존: 대상지의 자연 지형을 복원하고, 붕 떠 있는 판 형태의 그랜드 풀(grand pool)을 조성해 자연과 수영장이 공존하는 환경을 마련한다. 침수 식생부터 초본 식생, 유수역 다년생 초본 식생, 교목류에 이르기까지 한강의 생태를 고려한 하반림을 복원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87호(2020년7월호)수록본 일부
- 기술사사무소 이수 + 스튜디오 테라 + MWDlab + 김아연 + 김소라 / 2020년07월 /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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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한강공원 자연형 물놀이장 설계공모] 우리들의 한강
3등작
강, 모래사장, 초지와 숲으로 이루어진 한강 경관의 원형을 모티브로 삼았다. 목표는 자연의 복원이 아닌 자연성의 복원이다. 사람들을 위해 변화하는 새로운 경관을 조성한다. 옛 한강의 모래사장을 닮은 큰 물놀이장을 대상지 중앙에 계획한다. 물놀이장은 물이 차고 빠짐에 따라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며, 한강의 자연이 그러했듯 사계절 모두 즐길 수 있는 장소다. 지형을 조작해 모래사장은 한강과 물놀이장을 조망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물과 모래의 영역에는 녹지를 더한다. 다양한 활동을 수용하는 너른 잔디밭, 아늑한 자연 속 놀이터와 쉼터를 제공하는 숲 속 계곡을 마련한다. 이렇게 변형된 자연은 인공 층과 융합된다. 기존 물놀이장을 일부 보존해 옛 잠실한강공원 수영장의 기억을 드러내고 새롭게 활용한다. 지난 기억과 앞으로 올 기억, 물과 바람, 여름과 물,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우리들의 한강이 만들어진다. ...(중략)
- Viron + 김영민 / 2020년07월 /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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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한강공원 자연형 물놀이장 설계공모] 한강 자연물놀이장
4등작
잠실한강공원 수영장은 시민들의 시원한 여름나기를 위해 만들어졌으나 시간이 흐르며 시설이 노후되어 전면적인 보수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단순히 낙후된 시설을 개선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강의 자연 경관을 복원하고 도시재생 정책에 부합하는 자연형 물놀이 시설을 조성하고자 했다. 사계절 내내 이용 가능한 공간을 조성하고 잠실한강공원의 이용도를 높여 여름에만 반짝 이용되고 잊히는 시설이 아닌, 시민의 삶과 함께 하며 도시재생에 기여하는 친환경 물놀이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한강 자연물놀이장’은 국제교류복합지구에서 잠실관광특구로 이어지는 수변 공간을 활성화할 것이다. 또한 올림픽대로 밑 나들목을 통해 한강 산책로까지 연결되는 잠실동 주민들의 여가 장소이자 사각사각 플레이스 및 자연학습장의 확장된 공간으로서 사람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물과 강변 풍경의 건축적 해석
자연적 형태가 아닌 픽셀 형태를 사용함으로써 습지대를 기하학적 형태로 해석하고자 했다. 자연적인 강변과 연계되는 경관을 연출하고, 인위적으로 자연을 흉내내는 것을 지양하며, 인간의 손에 의해 조성된 공간임을 보여줄 수 있는 계획안을 세웠다. ...(중략)
*환경과조경387호(2020년7월호)수록본 일부
-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 Topotek 1 / 2020년07월 /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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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한강공원 자연형 물놀이장 설계공모] 시프팅
5등작
조망
잠실한강공원 물놀이장은 성인 키 높이 정도의 펜스에 둘러싸여 있다. 이로 인해 주변 자연환경과 단절되고 고립되었다. 한강변에 있으나 친수성이 부족하고 부지 남쪽 왕복 8차선의 올림픽대로에서 자동차 소음이 발생해 교통섬 같은 인상마저 준다. 원경을 고려해 시설을 배치하고 레벨을 조정하고자 했다. 한강으로 뻗은 새로운 경사지 위에 조성되는 자연형 물놀이장은 자동차의 시청각적 영향을 상쇄하고, 한강의 자연 경관을 회복해 조망으로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이 한강과의 시각적·맥락적 관계 속에서 풍부한 물놀이를 체험하게 한다.
프로그램
현재 물놀이장 인근의 백사장과 트랙구장, 자연학습장, 안심생존수영 실기 교육장은 서로 분절되어 있어 연계성이 부족하다. 본래의 용도대로 활용되지 않거나 이용률이 떨어지는 프로그램은 제거 혹은 재배치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더하고자 했다. 이 같은 프로그램의 재편성을 통해 새로운 물놀이장이 주변 시설과 통합적으로 연계·운영되도록 한다....(중략)
*환경과조경387호(2020년7월호)수록본 일부
- 지역활성화센터 + Our Studio / 2020년07월 /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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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그래스호퍼 연대기Ⅰ
변신
다행히 변해 있었던 건 아니다. 술을 끊은 뒤에도 여전히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형편없는 껍질이 그대로 누워있을 뿐 그렇게 의미 있는 변화는 아니었다. 다들 세련된 매너를 표현하느라 분주한 나이가 됐다. 그래스호퍼 같은 기술의 향방에만 관심을 두기에는 합리적으로 소모해야 할 사회적 일들이 너무 많아졌다. 지나고 나서야 내가 왜 이런 사람이 됐는지 이해하게 되는 법이다. 이제 와 누군가를 설득하려 해봤자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될 뿐이다.
그렇게 나는 그래스호퍼를 배우게 됐다. 어느 날 벌레로 변해 버린 건 아니지만 자유로운 선택의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내 코딩을 공부하고 있다. 사람들은 조경가가 그래스호퍼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오곤 했는데, 실존적인 입장에서 꺼낸 얘기는 아닌 것 같아 진지하게 대답하지는 않았다. 아마 나는 비교적 젠틀한 언어로 위대한 진실보다는 서로의 관계에 의미 있는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물론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이유 같은 건 없었다. 모든 미디어는 가치 중립적이고 새로운 미디어는 활용 방법이 덜 개발됐을 뿐이다. 예술가는 어떻게 사용할지만 고민하면 된다. 미지의 세계에 도착했으니 창의적 경쟁심을 잔뜩 탐닉할 기회를 즐기면 그만이다. 그래서 배웠다. 인간들의 편견에서 출구를 찾으려고 조련사를 속인 것은 아니다.
미디어와 레퍼런스의 시대
내 생각은 그렇다. 패러다임의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 경제나 환경 문제에 있어 지구적 재난의 시대가 도래할지언정 포스트모더니즘 이후는 없다. 거대 서사의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다.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고 해야 하는 것은 기술 개발 시대의 새로운 미디어를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일이다. 그리고 주체성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가치를 발현하고 포화된 역사를 레퍼런스로 재창조의 문화를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지금은 미디어의 시대이고 자기 주체의 시대이며 레퍼런스의 시대라고. 그래스호퍼, 코딩, 파이썬, 클라우드, 스위프트 같은 말들은 더 이상 기술 어휘가 아니고 가치 판단의 문제도 아니며 시대의 역할에 대한 개인의 실천일 뿐이다.
역사는 언제나 새로운 것들에 대해 보수적으로 말해 왔으며, 이형의 개인에게 집단은 불편함을 내보였다. 현재를 유지하는 것과 관성을 지속하는 것은 인류에 내재된 방어적 본능이며 돌연변이가 가져올 미래의 가능성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 수 없다. 잠에서 깨어보니 나는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었고, 자취를 남기고자 하는 사람은 달라진 상황을 이해하고 적응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래스호퍼로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이후에 받는 같은 질문에 대해서는 어색한 웃음과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은 대화 주제를 조합해 대응해 나갈 것이다.
파라메트릭 선언
목록을 나열하기 전에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선언을 하겠다. 파라메트릭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래스호퍼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코딩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당연하지 않은가? 코딩은 1940년대에 시작됐다. 파라메트릭은 변수를 활용하는 지극히 보편적 개념이며 세상 어디에라도 이미 적용되어 있다. 가치 판단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일렉트로닉 음악이 비틀즈를 대체한 것이 아니지 않나. 비틀즈는 비틀즈고 다프트 펑크(Daft Funk)는 다프트 펑크고, 톰 미쉬(Tom Misch)나 FKJ(French Kiwi Juice)같은 지금 세대의 뮤지션들은 심지어 비틀즈이고 다프트 펑크이며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다. ‘대체’가 아니라 ‘확장’이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인식의 변화’다. 세상에는 아날로그로 설계하는 사람, 아날로그와 컴퓨터로 설계하는 사람, 그리고 아날로그와 컴퓨터와 파라메트릭으로 설계하는 사람이 있게 된 것이다. 그뿐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87호(2020년7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한국의 디자인 엘,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한국,미국,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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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잇기] 마을 기억지도로 찾은 잊힌 공간
기억이 나요
철원에서 아홉 세대를 거치며 대대로 살아온 이근회 어르신이 가만히 앉아 있다 한마디 거든다. “여기 요 옆에 감나무가 있었고 그 옆으로 냇물이 졸졸 흘렀어요.” 각자의 기억을 더듬으며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던 열 명 남짓 주민들이 일제히 어르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어렸을 때 동네 친구들이랑 이 감나무에 올라가 감도 따고 옆 냇물에서 첨벙첨벙 놀고…그러던 곳이에요. 한참 뛰어놀다 목마르면 요 개울 아래 우물에서 물 한 모금씩 마시기도 했죠.” 어르신은 테이블에 펼쳐 놓은 지도의 한 곳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천진한 미소를 띠며 이야기한다. 이곳에서 대를 이어 살아 ‘천 년의 철원 토박이’라 불리는 어르신은 지역에서 공무원 생활도 오래 한 터라 누구보다 철원이 변해온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주민들도 어르신이 가리키는 지도의 위치를 열심히 따라가 본다. 하지만 주거지가 들어선 현지도 어디에도 물길과 우물은 보이지 않는다.
“시공간의 이야기를 한 장에 담은 지도를 우리 지역에서도 만들 수 있게 도와주세요. ‘계동100년, 시간을 품은 지도’처럼”(4월호 참조). 지방의 한 연구소에서 ‘일상 공간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강연을 마친 내게 누군가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철원군청 소속 공무원인 그는 철원에도 잊힌 공간들이 많아 안타깝다며 지역의 사라진 공간을 찾고 싶다고 했다. 주민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한 진행 과정이 특히 인상적이었다며 말을 이어간 그는 철원이 고향이라고 했다. 짧게 나눈 대화였지만 진정성 담긴 눈빛에서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애틋함이 느껴져 강한 여운이 남았다. 이런 인연으로 시작된 신철원 일대의 ‘시간을 품은 지도’1 프로젝트는 초반에는 순조로운 항해를 할 것처럼 보였다.
새로운 곳, 신철원
철원에는 새 도읍이 필요했다. 구舊철원이라 불리는 화려한 명성의 옛 도읍은 한국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됐다. 군청, 경찰서, 법원, 우체국 등 주요 관공서가 있던 자리는 치열한 전쟁의 상흔으로 흔적도 찾을 수 없게 초토화돼 한때 기능이 마비되기도 했다. 새로운 중심지가 필요했다. 강원도 철원군의 남쪽 끝에 위치한 갈말읍이 휴전 협정이 체결된 이듬해 새 도읍지로 선정됐다. 1950년대판 신도시였다. ‘칡뿌리의 끝’이라는 뜻의 갈말葛末이라는 이름을 가질 만큼 척박해 아무도살지 않던 땅이었다. 전쟁 이후 불안정한 상황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된 남쪽 끝에 새 터를 정한 것이다. 비옥한 구철원 땅을 뒤로하고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를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지 않았을까.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와 지포리 일대에 조성된 신도시는 신철원이라 불렸다. 구시가지에 있던 철원군청을 비롯한 주요 관공서와 학교 등의 공공 시설을 새 중심지로 옮겼고, 철원군민, 실향민, 외지인이 함께 정착할 환경을 하나둘 만들어갔다. 사람이 산 흔적이라고는 없던 허허벌판에 집을 짓고 마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철원의 신도시, 신철원의 70년 역사가 시작됐다. “죄송하지만 그런 자료는 없습니다.” 신철원 주민들과 초기 워크숍을 통해 알아낸 1차 자료를 모아 문헌 조사를 시작할 단계였다. 현재는 사라지고 없는 곳들을 파악하고 역사적, 사회적 배경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려던 참이었다. 관련 관공서, 교육 기관, 문화 시설을 모두 찾아다녔지만 돌아오는 답은 자료가 없어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채 창고에 쌓여 있던 옛 자료를 최근 새 건물을 짓고 이전하면서 모두 불태웠다는 설명이었다. 전쟁으로 불에 탄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불과 십여 년 전에도 존재했다는 그 자료들을 임의로 없앴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타임머신이라도 있다면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그 자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실 확인을 할 사료가 없다는 점이 막막하게 다가왔다. 도대체 무슨 수로 지역의 사라진 공간들을 연구할 것인가.
마을 기억 더듬기
신철원은 조직적으로 계획된 요즘 신도시와 확연히 다르다. 전쟁의 폐해를 피해 급하게 만든 만큼 민관의 소통과 협업이 필수였다. 주민들은 사람이 살 만한 땅이라 생각되면 힘을 합쳐 그곳에 마을을 만들어나갔다. 땅을 다져 집을 짓고 농사지을 땅을 다듬었다. 신철원 일대를 가로지르는 용화천은 한탄강으로 흘러드는 지류다. 인근 명성산과 각흘산에서 삼부연폭포의 절경을 통해 쏟아져 내려오는 물은 신철원의 젖줄이었다. 용화천의 맑고 힘찬 물은 신철원 일대 크고 작은 물길과 우물의 생성에 영향을 미쳤다. 척박한 땅에서 물은 삶의 원천이었다. 신철원의 마을들은 실개천과 우물을 빼면 이야기할 수 없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삶도 이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1960년대 관이 지은 철원 최초의 대중목욕탕이 있던 곳이에요.” 80대 이근회 어르신은 지도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용화천 물을 수동식 펌프로 끌어와 시작한 목욕탕은 당시 철원 사람들이 우물에서 길은 물로 고무 대야 목욕을 하던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지금은 한무관이라는 태권도장이 있던 흔적만 남아 있다. “나는 어려서 잘 몰랐지만 어머니께 여쭤보니 사람들이 빨래를 한 바구니씩 들고 와 빨래를 그렇게 했대요. 물이 펑펑 나오니까. 그래서 주인이 그거 단속한다고 들어갈 때 짐 검사하고 사람들은 안 보여주려고 하고. 그런 시절이 있었대요.” 함께 있던 조금 젊은 60대 주민이 거든다. “지포리에도 목욕탕이 있었어요. 아직도 기억나는 게, 1960년대에는 5원짜리 지폐 내고 들어갔죠.” 당시 입장료를 현재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185원 정도로 저렴했다. 목욕탕은 1971년 문을 닫을 때까지 주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목욕탕 있던 자리 옆이 지금 폐가로 남아 있는 양조장이에요.” 현장 조사 때 본 폐공장 터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제법 큰 우물이 있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곳으로, 한 동짜리 공장 내부 숙직실에는 당시 사용하던 달력과 관리 일지 등이 무심한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듯 먼지를 뒤집어쓰고 벽에 걸려 있다. 물이 좋아 막걸리 맛도 일품이던 이곳에서 생산된 막걸리는 동네 사람들에게 단연 인기였다. 말통(20리터 플라스틱 통) 단위로 판매하던 막걸리는 자전거 리어카에 실려 신철원 일대 주점에 배달됐다. “이쪽으로 좀 와보세요. 여기 막걸리 통이 있어요.” 함께 조사 나간 30대 주민이 반가운 듯 소리친다. 오래 관리하지 않아 잡초가 우거진 폐가 마당에서 버려진 막걸리 통을 발견한 것이다. 술에 취해 아무데나 막걸리 통을 버렸을 누군가에게 순간 고마웠다. ...(중략)
각주 1.‘시간을 품은 지도’는 특허청의 인증을 받았다(상표등록 제40-1454765호).
*환경과조경387호(2020년7월호)수록본 일부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 10년간 생활했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 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주거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 한국인의 생활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수료했다. SOM 뉴욕 지사, HLW 한국 지사, GS건설, 한옥문화원,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약 16년간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 한국인의 참다운 생활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 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 ‘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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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스케이프] 정원, 보다 더 위대한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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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학기가 끝나간다. 매주 온라인 강의 준비에 허우적대다 보니 어느새 종강이 코앞이다. 마스크 너머로나마 회색의 인물 아이콘이 아니라 실재하는 수강생들을 만날 기대에 기말고사가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재택 근무 모드로 지내다 보니 일상의 모든 경계가 자꾸 흐려지는데, 이럴 때일수록 방학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어수선한 책장을 정리하고, 아래쪽에 내려놨던 탐구 생활용 책과 몇 년째 지지부진한 번역 초고를 담은 두툼한 링 바인더의 먼지를 털어 잘 보이는 곳에 꽂는다. 이 책의 제목은 존 딕슨 헌트(John Dixon Hunt)의 『그레이터 퍼펙션즈(Greater Perfections)』다.1
정원 이론을 공부하면서 헌트의 연구를 피해가긴 어렵다. 그런데 그의 글을 단박에 이해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유려하지만 번역은커녕 해석도 잘 안 되는 문어체 영어 문장은 그렇다 치고, 인문학의 전 영역을 종횡무진 누비는 방대한 지식을 대할 때면 도대체 나는 학부와 석박사 과정에서 뭘 했나 하는 좌절감마저 든다. 하지만 의지할 만한 선학이 있음에 안도할 때가 더 많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활발한 학술 활동을 펼치는 그는 대개 조경사학자(landscape historian)로 소개된다. 그의 학문적 경력은 영문학에서 시작하여 미술 이론과 비평으로, 이어 정원 역사와 이론, 비평으로 이어진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작업이 주로 18세기 영국 풍경화식 정원 관련 연구였다면,2 보다 더 포괄적인 정원 이론 연구는 『그레이터 퍼펙션즈』에서 시작된다. ...(중략)
각주 1. John Dixon Hunt, Greater Perfections: The Practice of Garden Theory, Thames &Hudson, 2000, 2004.
*환경과조경387호(2020년7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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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일생, 보존과학자의 일상
‘보존과학자 C의 하루’ 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5. 26. ~ 10. 4.
탄생은 곧 변화의 시작이다. 모든 물체는 만들어진 순간부터 자연적으로 노화를 겪게 되고, 때로는 외부의 충격으로 상처를 입기도 한다. 예술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작품의 수명을 좀 더 연장시키고, 본래의 모습에 가깝게 되돌리기 위해 보존·복원 작업이 이루어진다.
지난 5월 26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미술품수장센터)에서 개최된 ‘보존과학자 C의 하루’ 전은 이 같은 보존과학을 조명하는 기획전이다. 화이트 큐브 뒤편에서 이루어지던 작품의 보존 및 복원 작업을 ‘보존과학자 C’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소개한다. 가상 인물의 이름인 C는 유적이나 예술품을 관리하는 사람인 컨서베이터(conservator)와 청주(Cheongju)의 영문명 첫머리 글자이며 삼인칭 대명사인 ‘씨’를 의미하기도 한다. 윤범모관장(국립현대미술관)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와 같이 미술품의 생명을 연장하고 치료하는 보존과학자의 다양한 고민들을 시각화”하고 “하나의 작품을 보존, 복원하기까지 이루어지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담론”을 전시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상처, 도구, 시간, 고민, 서재 등 보존과학자의 하루를 보여줄 수 있는 다섯 개의 단어가 전시의 큰 줄기를 이룬다. ‘상처와 마주한 C’는 작품의 상처를 마주하게 된 보존과학자의 감정을 소리로 전달한다. 류한길의 ‘상이 작동(Differently Animated)’은 어둡고 텅 빈 공간에 찢기는 소리, 쇠붙이가 마모되는 소리 등 물질의 손상을 연상시키는 소리를 내뿜는다. 시각적 영향을 최소화한 공간에서 다양한 상상력을 일으키는 각종 소리들이 긴장과 불안을 일으킨다. ...(중략)
* 환경과조경 387호(2020년 7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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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언유주얼
“일하는 존재로서의 밀레니얼 세대에 관한 이야기다. 퇴근은 쟁취해야 하는 대상이고, 퇴사는 더 이상 일생일대의 사건이 아니며, 나쁜 일을 거절하고 거절당해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워야 살아갈 수 있다.”2 밀레니얼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잡지 『언유주얼(An Usual)』 2020년 6월호의 주제는 ‘퇴근, 퇴사, 퇴짜’다. 노동의 세계에서 멀찍이 떨어져 용돈으로 떡볶이나 사 먹던 시절에는 몰랐다. ‘퇴’로시작하는 말들이 이렇게 크게 다가올 줄은. 하루 중 퇴근만큼 설레는단어가 없고, 이직과 퇴사는 친구들의 근황을 듣는 가운데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키워드다. 퇴짜는 그 자체로는 많이 쓰는 말은 아니지만 일하면서 계속 맞닥뜨리는 일상적 상황이다.
단지 책을 좋아하고 남들보다 글을 읽고 쓰는 데 거부감이 덜하다는 이유만으로 잡지 분야에 발을 들였다. 기사 쓰고 교정보는 데 익숙해지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한 권에 여러 콘텐츠를 담아야 하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글이나 자료를 부탁하는 일이 잦았다. 애석하게도 내 DNA에는 입력되지 않은 철면피 기질이 필요했다. 일면식도 없는 이들에게 친한 척하면서 원고나 인터뷰를 요청하고, 거절당하면 재차 설득을 시도해야 했다. 전문지 특성상 전업 작가가 아닌 본업이 따로 있는 이들에게 약간의 보람과 변변찮은 금전적 보상, 덤으로 두통과 마감의 압박을 주는 글쓰기를 부탁해야 했기에 더 곤혹스러웠다. 말주변도 없어서 청탁 이메일을 쓰는 데만도 필요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극존칭을 써가며 갖은 명분을 들다가, 좀 비굴해 보여서 담백하게 고쳤다가, 다시 보니 공손해 보이지 않아 또 고치는 비생산적인 활동으로 오전 업무 시간을 날리기도 했다. 그렇게 메일을 전송하면 온 우주의 힘을 빌려 부디 일이 원만히 진행되기를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하루에 몇 번씩 수신확인 버튼을 눌렀다. ‘RE: 안녕하세요 환경과조경입니다…’라는 제목을 보고 들떴다 ‘죄송하지만…’으로 시작되는 내용에 곧바로 울상이 됐다.
『언유주얼』에는 인터뷰이에게 가상의 설정을 부여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페이크fake 인터뷰’ 코너가 있다. 6월호의 페이크 인터뷰는 언유주얼 편집부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작가가 퇴사 하루 전 시간대에 갇혀 n번의 퇴사날을 경험한다는 내용이다. 분명히 퇴사했는데 다음날 또 출근을 해야 하는 혼돈의 상황이 반복되다, 인터뷰 요청을 수락하자 거짓말처럼 타임 루프에서 풀려난다. 퇴근과 퇴사 퇴짜를 반복하는 작금의 세대의 노동 환경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설정이라기엔 어딘가 짠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언유주얼 편집부의 절망과 불안에서 비롯된 간절한 염원을 보았다. 그것은 동시에 나의 염원이기도 했다.
특집호를 준비하는 달은 더 잦은 승낙과 퇴짜에 맞닥뜨리게 된다. 어김없이 다양한 거절의 이유가 있었다. ‘자랑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워요’, ‘너무 오래전에 했던 작업이라 싣고 싶지 않아요’, ‘요새 너무 바빠서 그거까지 챙길 여유가 없어요’ 등 지난 시간을 다시 떠올리니 콧잔등이 시큰거린다. 아쉽게도(?) 내겐 제안을 승낙할 때까지 타임 루프에 가두는 신묘한 능력이 없다. 그렇다고 마냥 징징대고 있을 순 없으니 그간 지나쳤던 거절의 말들을 다시 꺼내 본다. 귀찮아서 둘러댄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재고해볼 만한 이유와 사정도 있지 않았을까. 매달 쌓이는 거절에 매몰되기 보다는 거절하는 이유에 좀 더 기민해지기를. 그래서 다음번엔 좀 더 그럴듯한 제스처로 승낙하지 않고는 못 배길 제안을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우리의 일상은 매일매일 그 날의 파도를 넘기 위해 바다로 나갔다가 해변으로 돌아오는 일의 반복이다. 우리가 얼마나 허우적거리든지 파도는 지치지 않고 밀려든다. … “무언가 죽어가면서 태어나고 있었다”라는 문장은 출근과 퇴근, 입사와 퇴사, 승낙과 퇴짜의 반복을 통해 우리가 그저 소진되기만 하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한 차례의 파도를 타고 돌아왔을 때 오늘 내가 뛰어들었던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 사실을 되뇔 필요가 있다.”3 매달 반복되는 기획, 제안, 거절, 승낙, 마감의 사이클을 한차례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내 앞엔 자연스럽게 잡지가 놓인다. 여느 때처럼 1일이 되면 나는 막 나온 책을 손가락으로 슬쩍 들춰보고, 곧바로 다음호를 위한 물밑 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다시 승낙과 거절로 점철될 한 달이더라도 독자, 필자, 편집자 모두에게 더 만족스러운 잡지를 만들기를 바라면서. 무엇보다, 더없이 소중한 나의 월급과 지체 없는 퇴근을 위해.
각주 정리
1. 『언유주얼』, 언유주얼.
2. 김희라, 『언유주얼』 2020년 6월호, p.21.
3. 김유라, “파도 타기: 이제니 『아마도 아프리카』”, 위의 책, pp.138~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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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사심을 담은 특집
시작은 지난해 겨울이었다. 인터뷰에서 나눈 이야기 한 조각이 자꾸 머릿속을 성가시게 긁어댔다. 인터뷰이는 제2회 젊은 조경가 수상자 박경탁, 한때 여러 공모전에서 대상을 거머쥐며 상금 사냥꾼이라 불린 그에게 슬쩍 당선의 비법을 물어봤다. 대상지에 접근하는 태도나 설계를 풀어나가는 방식 정도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항상 위닝 샷(winning shot)을 먼저 정해요. 한 달 이상 고민하는 설계자와 다르게 심사위원들은 단 몇 시간 안에 판단을 해야 하죠. 그 짧은 시간 동안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장면을 만드는 거예요. … 위닝 샷은 설계자가 대상지 내에서 제안하는 가장 중요한 경험의 장면이라 생각해요.” (『환경과조경』 2020년 1월호, “한계를 넘어 실천으로” 중)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았다 한들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 헛수고가 될테니까. 특히 쇼타임이 짧은 공모전에서 설계 핵심을 단시간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는 당락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일 것이다. 그때부터 궁금했다. 모두 이 말에 동의할까. 동의한다면 그 노하우는 무엇일까. 조금씩 쌓인 의문이 모여 ‘공모의 한 수’ 특집의 틀이 되었다. 이것저것 조금씩 건드려 두루뭉술한 이야기를 하기보단 구체적인 방법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주제에 접근하는 방법, 작품 설명서 작성법, 프리젠테이션 전략 등을 제쳐 두고 제출 패널에 집중하기로 했다. 묵은 기억을 헤집어 졸업 작품 패널을 만들던 과정도 더듬어보고,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물어 여섯 가지 질문을 선정했다. 질문들은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이메일을 타고 각국의 조경가에게 전달됐고, 15개 팀이 응답했다. 공모에 참여한 지 오래되어 그 기술이 신선하지 못한 것 같아서, 반대로 아직 경험이 부족해 노하우라 부를 만한 것이 쌓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쉬워하며 다음을 기약한 이들도 있었다.
사실 질문 중 첫 순서를 차지한 “패널에서 가장 중요한 이미지와 그 이유”에는 개인적 사심이 묻어 있다. 공모를 소개하는 지면을 꾸릴 때면 매번 비슷한 고민에 빠진다. 어느 정도 통일된 형식으로 수상작을 소개해야 하는데 작품의 컨디션이 제각기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대상지 분석에 설명서 반 이상을 쓴 팀이 있는가 하면, 설계안의 디테일에 골몰한 팀도 있다. 대표 조감도로 대상지 전체를 내려다본 시점을 택한 작품이 있는 반면, 세부 공간에 집중하거나 과감하게 조감도를 생략한 경우도 있다. 결국 핵심을 놓치지 않되 작품을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도록 정보를 선택해 가공하게 되는데, 꼭 잔뜩 부푼 빵을 납작하게 짓눌러버리는 듯한 기분이 되곤 했다. 아마 편집자뿐 아니라 작품의 주인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 질문이 나와 더불어 그들의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랐다. 주상절리를 관광 목적의 경관 자원 대신 지역의 사회·문화적 유산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리서치 다이어그램(‘인건이 기정의 기억과 조망’, HLD), 벽면 가드닝을 유도하는 전략을 명쾌하게 표현한 다이어그램(‘버티컬 가드닝’, 그람디자인), 마스터플랜과 나란히 놓여 설계 개념, 공간 정보, 추상적 분위기를 전달하는 다이어그램(‘모르스브로흐 성 공원’, POLA)이 그 예가 되지 않을까 싶다.
패널 제작에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대체로 비슷했다. 가장 선호하는 이미지 유형에는 조감도, 투시도와 더불어 어떤 질문에도 유용하며 바른 자세로 뽑힐 수 있는 ‘때에 따라 다르다’는 답이 가장 많았다. 이미지 유형보다 이미지간 정보와 스타일이 겹치지 않아야 한다(‘한강코드’, 랩디에이치), 패널에서 두 번째로 눈에 띄는 이미지에 설계의 핵심을 담는다(‘리프레싱 코스트’, 그룹한) 등 색다른 답변을 내놓은 팀도 있었다. 제목에 관한 의견이 가장 다채로웠다. 모두 작품의 “제목이 중요할 수도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 그대로 작품의 이름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깊은 표면’, CA조경+김영민)는 데 공감하는 듯했다.
조금 욕심을 부려보자면, 변해가는 공모의 양상을 짚지 못한 게 아쉽다. “시간과 움직임, 디자인과 스케일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영상이나 플라이스루”(‘홀스슈 만’, 플레처 스튜디오)처럼 미디어의 발전에 따라 다변화되고 있는 공모 제출품에 대해 다루고 싶었다. 얼마 전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잠실한강공원 자연형 물놀이장 설계공모’의 심사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항상 정제된 문장으로만 만났던 심사평들이 훨씬 생생하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조경 전공자가 아닌 친구들에게 링크를 보냈더니,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다는 의견을 전해오기도 했다. 어쩌면 주민들을 초대해 그들의 응원 소리가 설계자에게 닿도록, 축제처럼 심사를 진행한다는 해외의 사례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