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비평 봄 공개세미나 _ 다시, 용산공원을 말하다
지난 3월 네 번째 ‘봄’이 찾아왔다. 조경비평의 담론을 생산해내고 있는 ‘조경비평 봄’이 지난 3월 용산공원에 초점을 맞춘 비평집 『용산공원 -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출품작 비평』을 출간했다.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출품작 비평을 모은 것으로 20인의 필자가 약 1년여의 준비를 거쳤다. 이 책의 서문(배정한)에서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세 번째 ‘봄’ 『공원을 읽다』의 서문은 “공원은 희망의 공간이다. 그래서 공원이다.”로 끝난다. “희망의 용산공원”을 기다리며 ‘조경비평 봄’은 네 번째 ‘봄’ 『용산공원』을 보낸다. 후속 토론과 비평을 기대한다.”
아직 못 다한 이야기가 많았을까? 혹은 독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던 탓일까?조경비평 봄은 약속대로 지난 5월 31일 후속 토론인 조경비평 봄 공개세미나 ‘다시, 용산공원을 말한다’를 개최하고 역사, 생태, 시간 등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용산공원 당선작과 출품작을 리뷰했다. 용산공원이 생산해 낸 쟁점과 이슈에 대해, 또 최초의 국가공원으로 조성되는 용산공원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대형공원의 설계 이슈에 대해 다함께 고민해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열린 이번 세미나는 ‘봄’이 개최한 첫 번째 공개세미나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용산공원 -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출품작 비평』에 참가한 4명의 필자 발제에 이어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의 사회로 4명의 발제자(김영민 교수, 류영렬 교수, 박희성 연구교수, 장보혜 박사)와 함께 남기준 편집장(나무도시), 박승진 소장(디자인 스튜디오 loci), 박선희 연구원(서울대학교 대학원 통합설계미학연구실), 유시범 학생(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이명준 연구원(서울대학교 대학원 통합설계미학연구실)이 참석해 토론회가 진행됐다. 토론을 통해 남기준 편집장은 너무나 자세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기본계획과 지침서도 보다 창의적인 안의 도출을 방해하는데 일조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2013 아라문화축제
조경이 만드는 문화콘텐츠, 지속가능한 아라뱃길을 만들다서울과 인천을 잇는 국내 최초 운하인 경인아라뱃길에는 뱃길수변의 녹지를 따라 크고 작은 오픈스페이스가 18㎞에 걸쳐 길게 이어져 있는데, 크게 ‘수향8경’과 ‘파크웨이’, 그리고 ‘아라자전거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경인아라뱃길의 친수경관은 지난 2009년 설계공모전으로 시작된 이후 약 4년간의 공정으로 작년 하반기에 대부분 마무리되어, 지금은 시민들의 여가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지역의 문화명소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다. 설계과정에서부터 기존의 건설방식을 넘어선 새로운 문화아이콘을 찾고자하는 시도로, 인문사회분야 전문가들이 포함된 자문위원회(창조문화환경위원회)가 운영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 아라뱃길 친수시설을 중심으로 ‘문화콘텐츠 구현’의 성과가 기대되었고, 뱃길 수변이 새로운 문화명소로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기를 희망하였다.
문화명소화를 만들기 위한 그 전략적 방안으로써 지속가능하고 대중적 설득력이 있는 문화콘텐츠를 창출하고자 하는 미션은 친수공간의 설계·시공 이후의 이용효율에 대한 실질적인 과제로 대두되었으며, 지난 1월부터 지역사회(지자체, 정부기관, 지역사회단체 등)를 중심으로 관련 자료수집, 관계자 회의, 전문가 자문 등이 이어졌다. 특히 지역사회의 관계자와의 공감대 형성은 동일한 목표를 향한 큰 원동력이 되었다. 아라뱃길 친수공간의 문화콘텐츠 구현방안을 찾는 과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된 요소는 세 가지였다. 첫째 지역사회의 참여, 둘째 뱃길친수공간의 정체성, 셋째 정례적 콘텐츠로 이어갈 수 있는 지속가능성이다. 이 3가지 요소의 통합적 가치 속에 창출된 콘텐츠가 “아라문화축제”였다. 아라문화축제는 일상에서의 문화적 요소와 일상에서 체험할 수 없는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구상하여 친수변의 정체성을 최대한 인식시킬 수 있는 ‘뱃길 고유의 문화명소화 전략’으로 기획되었다.
갑갑한 갑을문화
Time to Right Distorted Relationship
국민권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는 9시 뉴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지금 조경 관련 회사 몇 군데가 서로 얼굴을 붉히고 있다. 엔지니어링 한 곳과 조경설계사 몇 곳이다. 대규모 조경설계를 진행하다가 문제가 생겨 더 이상 같이 하기 힘들어졌다. 남은 것은 그 때까지의 비용 정산인데, 계약서 없이 진행해 왔기에 기준이 모호했다. 좋게 헤어지는 것도 아니기에 서로의 입장 차이가 컸다. 유리하게 해결될 낌새가 보이지 않자 을인 설계사들은 갑인 엔지니어링을 건너뛰어 원발주처 감사실에 문제제기를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슈퍼갑을 직접 상대하려는 을들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설계사들은 다시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소했고, 공정거래위원회로 이관되어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두 기관은 사회적 약자를 우선하므로 아마도 합당한 결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설계비를 둘러싼 이 분쟁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짓누르는 갑을문화의 한 단면이다. 기본적으로 계약 관계에서 생긴 권력의 불평등성에서 비롯되므로 모든 사회에서 발견된다. 근데 왜 한국사회에서 유독 심할까? 갑을문화는 조선시대 관존민비의 잔재로까지 해석되고 있어(강준만), 그 뿌리가 상당한 고질병임을 알 수 있다. 전근대적인 의식의 발로임에도 불구하고 나아지긴 커녕 최근에 와서 더 크게 사회문제화 되었다. 그 이유는 불공정한 관계에서 비롯된 양극화 문제가 핵심으로 제시되기도 한다(정운찬 등). 힘 있는 갑이 을에게 강제하면 을은 거부할 수가 없게 된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불공정한 관계 청산과 재설정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갑을문제의 원인으로 양극화가 지목된 것은 올해 다보스 포럼에서 평등과 정의,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소수 부자들만의 자본주의체제는 존속하기 힘들다고 논의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특히나 건설 분야는 여러 공종으로 구성되어 계약관계가 복잡하다. 그 과정에서 다단계 하도급이 오랜 인습으로 남아 있다. 거의 피라미드 구조를 방불케 한다. 대개 조경은 갑보다는 을의 위치에 있을 때가 많다. 설계에서는 건축설계나 토목설계의 하도급인 경우가 꽤 있다. 시공 역시 전문건설업의 비중이 높아 종합건설업체의 하도급으로 일할 때가 많다. 이렇게 을의 자격으로 공사를 하다 보니 이런저런 불이익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의 조경공사 분리발주 제도화 논의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을은 항상 약자인가? 피라미드 구조에서 을도 돌아서면 갑이 된다. 자신이 받은 피해를 그대로 전달한다. 아니 오히려 더 가혹할 때도 적잖다. “나만 손해 볼 수 없다.” 혹은 “당한만큼 돌려 준다.”는 논리이다. 따라서 처음의 갑질을 막지 못하면 악습은 계속 확대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 갑을문화 개선이 시급한 이유이다. 우리는 원래 삼국시대부터 교역과 계약에 능했었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사농공상과 관존민비의 폐습으로 그 본래의 능력을 십분 활용치 못하고 있다. 이제 그 능력을 되살리고 그 동력으로 불황의 그늘을 빠져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갑과 을 모두 제대로 된 기업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제도적 장치나 기관의 개입만으로 과연 원활하고 활기찬 기업 활동이 보장되고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답은 “아니오.”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학설을 회고해 볼 때, 이제 우리 사회는 갑이 먼저 나서서 약자를 배려하고, 을의 아픔을 공유하는 기업문화 확산, 정착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갑도 존속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정책 못지않게 문화적 여건이 필요하다. ‘창조적 기업문화’의 이해와 활발한 동참만이 갑도 을도, 강자도 약자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시험대에 서 있다.
Both Anti-Corruption and Civil Rights Commission and Fair Trade Commission are the organizations whose names we have heard of on the television news from time to time, and where an engineering corporation and several landscape architecture companies are now quarreling with one another. They were working together on a large-scale landscaping project, but some unexpected problems occurred forcing them to put an end to their cooperative practice. The expense settlement process was not detailed in the contract with no specific standards set up in advance. Each of them had totally different views on the issue, and the landscape architects, who regarded themselves as a party in the weaker position, stopped talking with the engineering corporation and finally filed a complaint against the original ordering organization. However, landscape architects ended up losing the case against the major company, and they filed a petition again to Anti-Corruption and Civil Rights Commission. Fair Trade Commission is currently in charge of the case. As these two organizations are designed to protect the socially weak, we will probably be able to witness a fair settlement.
The dispute over the design costs is a classic example of a distorted relationship between small businesses and bigger firms. Since it derives from an unavoidable inequality in power resulted from a contractual relationship, it can exist virtually anywhere in the world. Yes, it seems true that the trend is more apparent in the Korean society. Why? It could be a result of the caste system in the Joseon Era, as Professor Kang Joon-man points out, which means it’s a deep-seated problem besetting the country. It clearly is an outdated way of practicing business, but the situation has been terribly worsened these days. The reason behind this might be a social polarization resulted from unfair relationships, as dozens of researchers suggest. If a stronger party forces a relatively weaker one, the latter can never resist. It has been insisted that in order to solve this problem, unfair relationships be terminated and a new set of rules established. Polarization appears to be a plausible explanation of the unjust business practices when you consider that the participants in this year’s Davos Forum express their sympathy for an idea that the capitalism, governed by the few selected super-rich, without any concern for equality, justice, and the socially weak, is destined to fail.
As the construction industry, in particular, includes a variety of construction types, the contractual relationships are likely to be highly complicated. Multistage subcontracting with pyramid-like structures has been regarded as common practice. Landscape architects are usually in a weaker position, carrying out works subcontracted by bigger architectural design offices and major construction companies. As one can easily imagine, it inevitably creates numerous disadvantages to participate in a project as a weaker party. In this sense, it will be worth discussing the suggestion that separate ordering system be established for landscaping projects.
However, small businesses are not necessarily on a weaker position. In a pyramid structure, a small company can easily be on a stronger position, dealing with a smaller business, and attempts to offset the damage created by a major corporation. It seems to be following a principle that it doesn’t need to be an only victim. The vicious trend will keep snowballing unless it is prohibited at the early stage. This is why the fair relationship between a weaker party and a stronger one should be established as soon as possible. Traditionally, Koreans have been thought of as being skillful at cultivating a trade and making a contract, which will be a valuable asset to go through the global economic recession and revitalize the country’s economy. Systematic and legal conditions should be developed to guarantee the fair and just business practices for both small businesses and major firms.
However, the legal devices and government interventions alone can never facilitate the business practices and promote the innovative corporate activities to the fullest. As Milton Friedman points out, it is time that bigger corporations take positive actions to protect weaker parties and enhance the corporate culture of sharing benefits and debenefits together. Otherwise, major companies wouldn’t be able to survive, without any partner to work with. Cultural support is required as much as supportive government policy. We seem to be in great trouble, but with every stakeholder’s active participation and constant effort, there’s also a chance for us to overcome this and move forw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