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은 단지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이용되면서 보여지는 것 - 피터 워커
그의 시작 Stanley White를 만나다.
박준서 : 인터뷰를 하게 되서 정말 기쁩니다. 우선 이 질문으로 시작하지요. 어떻게 조경 을 직업으로 선택하게 되셨는지요?
Peter Walker : Staley White라는 이름의 사람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Illinois 대학의 교수였지요. 그전에 Berkeley 대학에서 한 과목을 수강 했었는데, 그게 설계, 예술, 건축 그리고 식재를 포함한 바로 이 분야였습니다. 그 첫 과정을 매우 좋아했어요, 그게 3학년 설계 수업이었지요. 그리고 4학년이 되어 White교수를 만났습니다. 그는 그 학교에 방문교수로 와 있었죠. 상당히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는데, Olmsted 밑에서 일한 적이 있는 사람으로 내가 그간 만난 어느 교수 보다 뛰어난 선생이었습니다. 이미 그때 저는 Journalism에서 조경으로 전공을 바꾼 상태였지만 직업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었지요. 그를 만나서야 비로소 이 분야의 깊이와 복잡함 그리고 재미를 알게 된 겁니다. 그래서 Berkeley 대학을 졸업하고는 Halprin의 사무실에서 한 일년 정도 일하고, 그 다음해에 Illinois대학에 석사과정을 밟으러 갔습니다. 거기에 그가 있었으니까요. 그는 Stuart Dawson, Charles Harris, Richard Haag 그리고 Hideo Sasaki를 비롯한 당시의 매우 중요한 사람들의 선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나를 이 길로 들게 하고 그리고는 그 훌륭한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만나게 되었습니다.
박 : 알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 때 당시는 지금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PW : 이 직종의 범위는 매우 작았어요. 전국에 겨우 2000명 남짓한 조경가가 있었지요. 그리고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그 사람들을 거의 다 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사실, Illinois로 갔다가, Harvard를 거쳐 다시 Berkeley로 돌아오는 기간 동안 전국에 있는 거의 모든 유명한 사람들을 다 만난 것 같습니다. 물론 45년이 지난 지금은 다 알지 못하지요. 왜냐하면 이젠 전국에 약 3만명 정도의 조경가가 있는 셈이니까요.
박 : 구체적으로 어떻게 틀린 가요? 특히 조경가와 건축가와의 관계, 의뢰인과의 관계 그리고 사무실의 문화 같은 면을 말씀해 주십시오.
PW : 한 2000명 정도의 조경가 뿐이라면,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지는 몇몇 사무실이 있었다는 뜻일 겁니다. 그 당시는 대략 한 사무실에 5명 내지 6명(사장 하나에 몇 명의 보조설계가) 정도의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내가 Lawrence Halprin의 사무실 갔을 때 - 그게 1955년쯤이었는데 - 거긴 겨우 5명의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었고, 내 가장 친한 친구인 Tito Patri는 지금 EDAW의 전신인 Eckbo, Royston과 Williamson의 사무실에 다녔는데 거기도 5명이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다들 그렇게 작았어요. 또 하나 다른 점은 대개의 사무실들이 서부지역 아니면 동부의 Boston과 New York사이 지역에 다 몰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곤 나머지 지역에는 거의 사무실이 없었지요. 그게 큰 차이점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전국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들 예전의 사무실들은 그 근처 지역의 일만 했습니다. 비록 Eckbo나 Royston, Tommy Church 같은 유명한 사람들이 있었어도 그들의 일은 매우 작은 지역에 국한된 일이었습니다.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 언제나 그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학교에 있다가도 가서 그들의 정원과 공원들을 볼 수 있었지요. 그건 결국 그만큼 그 분야의 범위가 작았고, 그 일의 범위 자체도 작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내 생각에는 그것이 오늘날과는 다른 주된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서부 지역 사무실들은 건축가들과 매우 가깝게 일을 했습니다. 그것은 Tomas Church 때문이었어요. 그가 거의 전체 건축가 그룹과 함께 매우 가까이 일을 했었지요. 내 생각에 그는 다른 사무실들의 전형과 같은 사람이었고, 그리고 그를 따라 다른 사무실들도 모두 건축가와 가까이 일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건축 설계 사무실도 작았어요. 대략 15명 남짓한 인원이었지요. 그 후 사무실들이 커지고, 보다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보다 광범위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사무실이나 SWA, 혹은 Sasaki의 사무실들이 전국적 규모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일을 하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제 생각에는 의뢰인이 더욱더 중요하게 인식되어진 것 같아요. 오직 개인주택을 가지려는 의뢰인만 있는 게 아니고, 보다 큰 회사 규모의 일들, 도시 재정비 그리고 큰 회사의 본사 등을 원하는 의뢰인들을 가지게 된 거죠. 그래서 건축가나 조경가 모두 보다 더 규모가 큰 의뢰인에 종속적인 입장이 되어간 겁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우리는 매우 친밀한 관계였습니다, 특히 60년대와 70년대까지는. 그리고 나서는 다소 덜 친한 관계로 변했어요. 사실 300여명의 사람들이 근무하는 회사와는 친해지기 어렵죠. 반면, 예를 들어 그 쪽이 작은 건축가 집단이고, 나 역시 작은 조경가 집단이면서 함께 2~3개의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상황이라면 우린 친구가 될 수 있고, 저녁도 같이 먹으러 가는 그런 매우 사교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 관계가 지난 45~50여 년 사이 점점 더 협력관계로, 보다 형식적인 관계로, 보다 덜 개인적이고 덜 사교적인 관계로 변해 왔습니다.
그의 디자인 조용함의 미
박 : 네, 전적으로 동감하는 부분입니다. 자 그럼 이제 설계에 대해 질문해 보겠습니다. 지난 50여년 동안 백 여 가지가 넘는 프로젝트를 하셨는데 혹 그 중 특히 선호하시는 프로젝트가 있으신지요?
PW: 많은 프로젝트들이 우리 사무실의 발전에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그것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냐는 또 다른 질문일 것 같군요. 왜냐하면, 직접 진행하는 동안은 각각의 프로젝트가 다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니까요, 마치 자식들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것처럼요. 그러나 분명히 Foothill College 프로젝트가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 프로젝트 덕에 우리 사무실이 더욱 규모가 큰 프로젝트들을 수행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죠. 그리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우리 사무실을 매우 신중하게 생각토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Weyerhaeuser 프로젝트가 매우 중요했고, Solana 또한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이들 프로젝트를 통해 상도 받고, 많은 출판의 기회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건축가들로부터 좋게 평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12년 내에서는, 몇몇 일본 프로젝트들, 특히 Toyota Museum이 중요했었습니다. 그리고 Berlin의 Sony 타워, 동경의 Saitama Plaza가 사람들로 하여금 중요한 것으로 생각케 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최근 Norman Foster와 함께 하고 있는 몇몇 Stanford 대학 프로젝트들이 조만간 매우 중요한 것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박 : 그들 프로젝트들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겠습니다만 혹 설계 자체나 그 스타일에서 매우 만족하시는 프로젝트들이 있으신지요?
PW : 사실 저는 스타일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개개의 부지가 특별한 뭔가를 제공하고 있고, 개개의 건축가가, 개개의 의뢰인이 특별한 뭔가를 제공하고 있지요. 의뢰인은 목적을 제시하고, 부지는 배경을 제공하며, 건축가는 건물을 주죠. 그래서 항상 거기에는 서로 다른 이들 인자들을 있게 되는 겁니다. 나는 일종의 표준화된 접근법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이 모든 것들을 하나로 묶어 넣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가능한 한 매우 간명하고, 직접적이며, minimal하며 그리고 우아한 방법으로 설계해 내는 겁니다. 내 의도는 항상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그 하나는 의뢰인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름답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이상적 아름다움은 조용함입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뭔가를 찾아내려 하는데, 그 무언가란 아음다움을 갖고 있고, 자연을 표현하며 그리고 뭔가 상당히 함축적인 그런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훌륭한 작품은 그 조용함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설계의 질입니다. 그 안에 15개의 서로 다른 무언가를 갖기 보다는 오히려 3을 갖고 그 각각이 5의 역할을 하도록 하려합니다. 그래서 나는 간명함을 매우 많이 고려합니다.
박 : 그 점은 아마도 당신이 설계의 가시성을 얻으려는 의도와 연계될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리고 그 가시성을 간결함을 통해 얻으려 하시지요.
PW : 그리고 저는 또한 사람들이 기억할 그 무언가를 만들려고 합니다. 모든 설계에는 모든 개인들에서도 발견되듯 독특한 무언가를 필요로 합니다. 사람들이 기억할, 아마도 개성이라고 부르는, 그래서 많은 면에서 유사성을 가지지만, 개개인을 다르게 만드는 그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요. 그간 저와 친구로 지낸 사람들을 떠올 릴 수가 있는데 그들은 특정한 방식으로 바라보고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구분해 낼 수 있고 또 기억할 만한 것들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박 : 그것이 당신이 늘 말하는 경관에서의 의미입니까?
PW : 그렇습니다. 만일 당신이 높은 사무실 건물에서 아래를 내려 본다면, 사람들의 개성을 알아 차릴 수 없지요. 그러나 만일 그 중에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야, 저기 빨간 옷 입은 사람 봐. 눈에 띄는데 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경관을 그 빨간 옷을 입은 사람과 같이 만들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럼으로써 그 경관을 다른 것들과는 구분이 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박 :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예술적인 안목을 갖고 있지 않은 실 이용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어떻게 그들의 비예술적 사고와 설계가의 예술적 방식 사이를 조절하는 지요?
PW :글쎄요. 단지 사람들이 예술적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술적인 그 무언가를 설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내 생각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사람들을 위한 중요한 요구조건이 있습니다. 거기에 앉을 수 있다거나, 뭔가를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거나 그리고 그늘이 있다거나 하는 것들이 중요한 것이지요. 그리고 안전하게 걸어 지날 수 있고, 어디로 가야 할 지를 알게 하는 것들이 또한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매우 중요한 많은 기능적인 요소들이 있게 마련인데, 그것은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을 더 쉽게 만들고 즐거운 것으로 만드는 것들입니다. 제 생각에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컴퓨터, 전화 벨 소리, E-mail 그리고 차량 소음 등 너무나 시끄러운 환경 속에 살기 때문이지요. 조용함이란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그리고 기능성을 얻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능과 인간의 방식이라는 것은 매우 추상적인 것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참고로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기후가 더운 곳에 그늘을 제공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곳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분명한 동선을 제시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거기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사람들이 그 공간을 이용하지 않으면 그 공간을 감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단지 보여지는 것만이 아니라, 이용되면서도 보여지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조각을 생각해 보세요. 사람들은 그것을 편안하게 앉아서 볼 벤치가 필요한 것입니다. 조각가는 그 점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일입니다.
박준서 Park, Joon Seo·(주)삼성에버랜드 환경개발사업부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