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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연주, 우리엔디자인펌
    큰 선에 가려진 것들의 가치 2006년말 한국조경사회에서 “2006 대한민국 조경대전”을 개최했을 때 작품집을 한 권 펴냈다. 총 39개 업체가 59개 작품을 출품했는데, 대부분이 계획안이었다. 아무래도 잡지에서 보지 못했던 작품들, 그중에서도 특히 완공 사진이 실려 있는 페이지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는데, 그중의 한 컷이 역삼 대우 푸르지오였다. 특히 단지의 정중앙에 위치한 마을숲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곳에는 으레 아파트 중심공간에 등장하곤 하는 현란한 바닥 패턴도, 눈에 띄는 수경공간이나 시설물도 없었다. 그렇다고 시각적 초점이 되는 조형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단지 중심 공간을 가득 메운 그린 매스(Green mass)”라는 사진설명처럼 녹색 덩어리가 있었을 뿐, 한 마디로 큰 선이 없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기억에 남은 두 번째는 바로 큰 선에 대한 이야기였다. 강연주 소장은 이용자의 입장에서 체감되는 공간감을 강조하며, 선 하나 긋는 것의 지난함과 거기에 담겨 있는 책임감을 강조했다. 남기준 _ 우리엔 홈페이지(www.urien.co.kr)를 보니 회사 소개가 이런 문구로 시작된다. “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삶이 빚어내는 정겨운 이야기를 담은 따스한 소통의 장입니다. 그리고 무절제한 훼손으로부터 되살아나는 자연, 그 네트워크 속에서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지속가능한 우리 환경입니다. ‘우리엔’은 우리(URI)+환경(Environment)의 약자로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환경을 지향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의미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역삼 대우 푸르지오가 떠올랐다. 특히 현란한 패턴 없이 매스감이 강조된 마을숲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강연주 _ 역삼 푸르지오는 위에서 보면 사각형 녹색 덩어리만 보이는데, 그 사각형도 주어진 부지의 형상이었을뿐이다. “자연에 품어진 도심 주거형 생태단지 조성”이 그곳의 계획 목표였는데, 마을숲, 계류, 휴게쉼터, 기다림의 숲 등 최대한 인공적인 시설을 배제하고 자연적인 공간을 꾸미고자 노력했다. 사실 마케팅과 연계된 최근의 트렌드와 좀 맞지 않는 부분도 있는데, 발주처와 협의가 잘 되어 꽤 만족스러운 공간이 나올 수 있었다. 언젠가 블로그에도 한번 쓴 적이 있는데, “유행으로서의 생태”에 휘둘리지 않고“생태적 질서와 조화를 유도하는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마음가짐”을 견지하고자 노력 중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고, 특히나 생태는 디자인과 결부될 때 꽤나 어려운 숙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아파트 단지는 더 그런 측면이 강한 것 같다. 역삼 푸르지오 소개글에서도 나타나있듯이 24시간 사람과 부대끼는 아파트의 자연이 과연 어디까지 자연 그대로일 수 있을까, 사람과 자연 사이에 밀고 당기는 힘의 균형점은 어디쯤일까, 늘 고민하게 된다. 남기준 _ 예전에 강화도에서 아주 잘 생긴 대왕참나무를 본 적이 있는데, 마을숲 사진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격자 형태로 심겨진 대왕참나무 군락이 얼마나 근사한 그늘을 드리워줄까, 나무가 좀더 자라면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역삼 푸르지오의 경우, 강한 패턴을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강연주 _ 처음 우리환경이란 이름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 아파트 외부공간 설계를 하나 맡았다. 창립해서 하게 된 일이니, 멋을 좀 부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큰 선으로 중앙공간을 채우고 패턴을 만들고 시설물을 넣었는데, 막상 완공되고 나서 가보니 너무 썰렁했다. 위에서 보면 뭔가 있어 보이지만, 막상 아래에서 그 공간을 이용할 때는 그늘도 없고, 이게 뭔가 싶었다. 멋있는 열주가 있다 치자. 그걸 보고 입주자가 뭘 할 수 있을까. 그런건 왠지 권위적인 디자인이란 생각이 들었고, 이래선 안되겠구나 싶었다. 내가 너무 베끼는데 치중한 것은 아닌가 반성도 했다. 푸르지오는 그런 고민들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인데, 여러 가지로 여건이 좋았다. 그렇다고 녹색 매스만 있는 것은 아니고, 양재천을 상징화한 계류도 있고, 하부에는 어느 정도 패턴도 있다. 맨 처음에는 위에서 볼 때는 채워지고, 안에 들어갔을 때는 비워진 공간으로 가자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래도 뭔가 좀 들어가는게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서, 진행과정에서 조금씩 변경을 했다. 에지 처리도 경계석을 놓지 않고 포장이 쭉 이어져 오다가 풀과 어울리게 하려고 했는데, 관리 문제 때문에 경계석도 놓여졌다. 남기준 _ 흔히들 큰 선 이야기를 많이 한다. 회사 내에서도 큰 선을 그릴 줄 알아야 현상팀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큰 선과 거리가 좀 있어 보인다. 강연주 _ 전에 함께 일했던 선배도 큰 선을 강조했다. 설계를 하려면 직관적으로 큰 선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내키지가 않았다. 언젠가 발주처에서 두 개의 대안을 요구해서, 선배와 내가 각각 하나씩 안을 잡은 적이 있다. 그 선배는 정말 반나절만에 뚝딱 안을 내놓았는데, 나는 사흘을 질질 끌며 주어진 조건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고민했다. 차는 어떻게 들어와야 할까, 사람들은 어떤 길로 다니면 좋을까, 어떤 곳에서 공간이 맺어져야 할까, 뭐 그런 식으로 작은 것들을 하나 하나 고민하다 보니까 큰 선은 안나오고 오밀조밀한 공간들이 짜여지게 되었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정확치는 않지만, 그때 발주처에서 내가 그린 안을 선호했다. 뭐랄까, 아 큰 선이 아니어도 되는구나, 뭐 그런 자신감 같은 걸 얻었다. 사실 현상이나 턴키에서는 큰 선에 대한 여러 가지 대안을 요구한다. 또 지금은 나도 큰 선을 원하면 그에 맞춰서 안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어느 경우에는 채우는 것 보다 비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남기준 _ 왠지 이야기를 듣다보니 실시설계를 중요시 여길 것 같다. 강연주 _ 또 예전 이야기인데, 독립 직후에 식재부분의 실시설계를 한 적이 있다. 요즘에도 그런 경우가 많지만, 당시에는 웬만한 식재설계는 도면대로 하지 않고 시공과정에서 현장 여건에 맞게 설계변경해서 시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공사 후에 가보니 내가 그린 실시 설계 도면 그대로 시공이 되어 있었다. 사실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았다(웃음). 그런데 그 때 선을 긋는다는 것의 무거운 책임감 같은 걸 많이 느꼈다. 특히 실시설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제대로 깨달았는데, 우리가 마지막 단계에서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보다 나은 공간이 이용자들을 만날 수 있고, 그랬을 때 우리의 보람도 정말 크다는 생각을 했다. 설계의 전 과정에서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특히나 실시설계의 중요성을 젊은 친구들이 많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공간감이 중요한데, 그러려면 나무를 많이 알아야하고 많이 보아야 한다. 사실 나도 나무를 잘 몰라서 이야기하기 부끄럽지만, 2006년에 부설 조경설계연구소를 설립할 때 원래 식재설계연구소를 만들고 싶었다. 무엇보다 나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멋있는 그림을 그리고, 보다 광역적인 차원에서의 계획을 하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럴수록 나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생각하는 원초적인 부분은 그런 거다.
  • 우연한 풍경은 없다(6): 원서동의 작은 화분, 여름 이야기를 시작하다
    저곳에 누가? 왜? 저 나무를? 심었을까?일단 옹색하게 심겨진 나무들을 보자.이제, ‘저곳에 누가? 왜? 저 나무를? 심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자. 정원이 있는 이는 있는 대로, 없는 이는 없는 대로 열심히 꽃과 나무를 심는다. 작은 화단에, 빨간 물통에, 화분에. 그런데 우리만의 이야기만은 아닌듯하다. 방콕이라는 도시의 한 장면을 보자. 도시의 물길을 따라 펼친 저들의 생활 풍경만큼, 나무도 치열하게 심겨져 있다. 누가? 어떻게? 저기에? 나무를 심을 생각을 했을까? 저렇게 누추한 곳에 나무를 심는 이유는 짐작하기 쉽지 않다. 주인장의 소일거리로? 꽃이 피어서? 자신의 상가 앞에 주차하지 말라고? 공기 정화 차원에서? 무수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어떨까? 무수한 짐작 중의 하나로서. 나무 이야기원서동의 어느 오후, 길가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고추 모종을 화분에 나란히 심은 후, 얼마간 이 작은 식물의 자립을 도와줄 기둥을 세워 모종과 함께 실로 묶고 계셨다. 저 작업이 끝나면 아마 물을 주실 것이다. 어린 식물은 애잔하고, 심겨진 모습은 가지런하다. 사진을 찍을 테니, 포즈를 취해달라는 주문에, 어색하게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해주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여름엔 저기서 고추가 꽤 열릴 거야.” 그 한마디에 여러 장면이 머리를 스친다. 잎이 마르지는 않았나 유심히 살피시는 모습, 열매에 기뻐하실 모습, 주변에 자랑하실 모습, 한 여름 끼니때, 저런 옷차림새로 갓 따낸 싱싱한 고추를 된장에 쿡 찍어서 드실 모습. 그가 물질적으로 손에 쥐게 될 것은‘고추 몇 개’이겠지만, 그는 앞으로 몇 개월을 저 고추와 함께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남길 것이다. 원서동 작은 화분의 올여름 이야기 시작. 신이 사라진 시대의 집, 마을, 도시의 이야기를 위하여다시 앞에서 말했던 ‘짐작’으로 돌아와서. 당신은 위의 이야기들에서 ‘그 나무’를 심는 이유로 왜 ‘이야기’를 제시했는지 짐작했을 것이다. 그 나무들은 우주의 흐름에 응대해 자라면서, 우리의 일상에 섞여 감성과 시간을 함께하고 우리와 소통하며 이야기를 만든다. 그런데 오래된 집과 마을, 절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는 나무뿐만이 아니다. 절로 향하는 길가에는 어김없이 일주문이 있는데, 절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하나로 모으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또 대웅전에 도달하기 전에 나타나는 종루는 불법을 중생에게 알리기 위해서란다. 어느 오래된 집 담벼락에 그려진 포도나무는 ‘다산’을 상징한다고 하고, 어떤 마을에서는 풍수지리 때문에 우물을 팠다고 한다. 공간 여기저기에서 자꾸 말을 건다. “나는 그냥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야! 내가 품은 뜻은 말이야…”하면서. 지금은 ‘신기한데’ 정도로 그들의 말 걸기에 응대하지만, 예전에는 어떠했을까? 진지하게, 진심으로 말 걸기에 대꾸하지 않았을까? 물리적이고 기능적인 계단, 담, 우물을 넘어, 그 숨겨진 상징과 의미는 생활 속에서 유기적 관계를 가지면서, 혹은 어떤 주제를 향해 재배치되면서 의미의 연결을, 즉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우리의 도시공간에서도 다시 이야기가 있었으면 한다. 공간과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만들기 어려운 지금, 우리와 말이 통하는 것은, 서로의 말 걸기를 알아듣고 응대할 수 있는 건, 그나마‘나무’이다. ‘생명’에, ‘우주’에 기초한 언어는 범용적이기에. 그런데 나무 외에도, 우리 집의, 마을의, 도시의 다른 것들과도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 수는 없을까? 그리고 또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 할까? 그게 다신이건 기독교의 신이건, 불교의 신이건, 신이 사라진 시대에 우리가 도시에 숨겨야 할 상징과 도시와 함께 꾸려나갈 이야기는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또 다른 짐작을 해본다. 신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일상의 이야기. 우리가 살아가는 ‘여기 지금’의 이야기. 나무와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처럼 어떤 진심어린 이야기. 방법은? 글쎄. 나무에게서 배워야 하나. 우리의 일상과 감성에 참여하는 방식을, 소통하는 방식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