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득, 동인조경 마당
시작하며
2009년 1월부터 달라진 네이버에서 “한국인”코너를 즐겨보고 있다. 미술가, 건축가, 의사, 스포츠인, 영화인 등 카테고리는 총 다섯으로, ‘가’가 둘에, ‘사’가 하나, ‘인‘이 둘이다. 의사 같은 경우에는 전공분야별로 100명의 의사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100개 의학분야의 해당 교수들에게 “가족이 귀하가 전공하는 분야의 병에 걸렸을 때 어떤 의사에게 보내고 싶은지 5명씩 추천해 달라”고 묻고 이를 집계해서 1명씩 소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질문이 참 와닿기도 하고, 인기투표와 같은 이런 설문조사의 위험성이 편치 않기도 하다. 그렇지만, 제한된 기회를 통해 누군가를 소개해야 할 때, 설문조사만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 지면을 시작한 1월호에 선정의 어려움을 구구절절 소개한 바 있으니 상세한 부연은 생략하더라도, 매호 간단한 선정 이유를 밝히며 글을 시작하는 까닭은 설문조사와 같은 방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정 원칙은 “최근 개최된 설계공모 당선자나 근래에 완공된 작품을 설계한 조경가를 대상”으로 하겠다는 것뿐이다. 설문조사를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기왕이면 최근에 잡지를 통해 소개되는 작품의 뒷이야기도 좀 들어보자는 취지로 그러지 않았다. 또 설계공모의 취지 중 하나가 신진 작가의 등용문이니, 자연스레 새로운 조경가들을 소개하는 기회도 될 수 있으려니 했다. 이달의 인터뷰이(interviewee)인 황용득 소장이 ‘조경가 인터뷰’같은 코너를 통해서 새로운 인물을 발굴해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며 완곡한 거절 의사를 밝힐 때까지만 해도, 원칙에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황용득 소장의 말을 듣고 나서 되짚어보니 첫 회의 박윤진·김정윤 소장을 제외하곤, 2월부터 4월까지 모두 창립한 지 10년 이상 된 설계사무소 대표자들을 연달아 모시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말이다. 원칙을 크게 바꾸지 않는 선에서 운영의 묘를 찾아보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이번 달은 3월호에 이어, 1월의 광교 특화 컨셉과 2월의 광교 호수공원 이외에 규모가 컸던 설계공모전이었던 영종하늘도시 당선자이자, 의정부민락(2)지구 당선자인 동인조경 마당(이하 마당)의 황용득 소장을 모셨다. 둘 모두 그룹한 어소시에이트(대표 박명권)와 공동작업이었고, 황용득 소장은 광교 특화 컨셉 지명설계공모에 초청받기도 했으며, 오는 5월 5일 완공 예정인 상상어린이공원의 설계자이기도 하다.
황용득 _ 조경가로서 당신은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설계를 하느냐고 물었을 때,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만의 고유한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을텐데, 제 3자가 인정을 해주고 안 해주고는 중요치 않다. 작업을 계속해나갈수록 자신만의 내러티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내가 디자인을 할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원칙은 무엇인지를 늘 자문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점차 정리된 화두가 대략 네 가지 정도 있는데, 첫 번째는 “자립형 체계”에 대한 관심이다. “신 에너지의 창출”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공원과 같은 조경공간을 소비적 구조가 아닌 생산적 구조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땅을 공원으로 만들게 되었다 치자. 그런데 그 공원은 공원으로 조성되기 이전에 논이거나 밭이거나 숲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무엇인가를 생산해내던 시기가 있던 대지였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공원으로 그 땅이 바뀌게 되면, 그곳에서는 오로지 소비만 이루어질 뿐이다. 더구나 그 공원을 유지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한다. 요즘 들어‘저탄소 녹색성장’이 유행처럼 회자되고 있는데, 그 이전에 이미 소비를 줄이고 자족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을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에너지를 생산해내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로 공원 디자인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소규모 공간이라면 몰라도, 일정 규모 이상이라면 그에 대한 고민이 기본 전제가 되어야한다. 특히 대형 공원은 어떠한 제약도 없이 태양열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는 곳이다. 태양 에너지의 생산이 가능하고, 그 에너지를 공원 내의 조명등에 사용할 수도 있다. 자체적인 에너지 순환이 가능한 것이다. 또 시설의 비중을 최대한 줄이고 식재량을 늘려서 이산화탄소 저감에 기여하고 산소를 공급하는 것을 비롯, 새로운 에너지 생산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자립형 체계가 가능한지를 계속해서 찾고, 그런 고민을 디자인에 반영해보고자 한다. 그런 모색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면, 거기서 새로운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파주 Ubi Park에서 실제로 제안했던 것인데, 태양 전지판으로 둘러싸인 경관 구조물이 세워지게 되면,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로도 활용할 수 있고, 그 자체가 색다른 경관요소가 되면서 동시에 에너지 발전소가 될 수 있다. 태양 전지판이 조경자재처럼 쓰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면, 다른 디자인이 결과로 나올 수 있다. 그런 관심의 연장선에서 요즘에는 Auto Park의 구현을 모색중이다. 살아있는 생물처럼 유기적으로 커나가는 공원을 우리가 제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연한 풍경은 없다(3)
도시의 무지개, 우주가 보여준 찰나의 아름다움
찬란한 만남
위키백과에게 물어보니 무지개는 ‘공기 중에 떠 있는 수많은 물방울에 태양빛이 닿아 그 물방울 안에서 굴절과 반사가 일어날 때, 물방울이 프리즘과 같은 작용을 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란다. 그러니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기 위해서는 먼저 수많은 물방울과 태양빛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를 보는 당신도 있어야 한다. 당신이 적당한 위치에 서 있어야만, 당신이 발견해주어야만 무지개는 존재한다. 이 삼자간의 대면이 있어야 무지개는 있다. 현상학적 표현으로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우주, 무한을 바라보기
자연의 기본적 원소들인 공기, 물, 태양과의 만남. 궁극적으로 이러한 만남은 당신과 ‘우주’와의 만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나타나기 전에도 있었고, 우리가 사라진 뒤에도 있을 근원적인 것들이 무시간적으로 순환하는 우주. 우주라는 커다란 단어 앞에서 ‘만남’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좀 건방져 보일 수도 있으니 우주의 현상을 잠깐 엿보는 순간이라고 바꿔 말해야겠다. 우리의 문명이 만든 세상이 전부일 것이라고 착각하고 살지만, 우주는 문득 문득 자신을 보여줘 도시 너머 ‘저기’가 있음을 암시한다. 누구는 계곡의 가파름을 가벼이 무시하고 즐기기도 하고, 또 누구는 분수라는 것을 발명하여 도시 속에 들여 놓기도 하지만 그 누구도 무지개는 의도적으로 만들 수 없다.
가끔은 우주를 만나자
이 도시에서, 우주를 만나자 혹은 무한을 바라보자. 시간을 쪼개어, 들로 바다로 산으로 달려갈 수도 있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 도시 안의 일상에서 ‘찬란하게 잠깐’이나마. 섬광같이 찬란히 빛나는 그 만남을 갖자.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일상과 도시를 아름답게 보고자 하는 마음과 눈이 필요할 터이다. 누가 보건 말건, 우주는 자신의 순환을 지속하면서 무심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뿐이니, 찰나의 풍경을 엿보는 건 온전히 우리의 몫.
조경이라는 작업도, 공공미술이라는 작업도 우리를 순수한 자연의 한 요소로 되돌리는 그런 작업일 수 있으니, 우리부터 그런 감수성을 챙기자. 그리고 사람들이 가끔은 우주를 만나도록 도와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