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권,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시작하며조경가 인터뷰의 발단이 되었던『봄, 디자인 경쟁시대의 조경』에 썼던 글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그룹한=아파트조경’이란 세간의 인식은 박명권 대표에게 약일까, 독일까? 잘 할 수 있는 것, 지금 하고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사이에 괴리가 있진 않을까? 공간을 테마로 풀어내는 걸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생태적이라는 수식은 어디까지 붙일 수 있을까?” 사실 그룹한 어소시에이트(이하 그룹한)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펴낸 작품집을 보며 어느 정도의 궁금증은 해소된 터였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었기에, 거기에 몇 가지 새로운 궁금증을 더해 박명권 대표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
그룹한은 2008년 12월호에 실린 영종하늘도시 경제자유구역 개발사업 조경현상설계공모와 지난달 잡지에 실린 의정부민락(2)지구 도시기반시설 조경설계공모의 당선자이다. 둘 모두 동인조경 마당(대표 황용득)과의 공동작업이었는데, 영종은 동인조경 마당이 대표 설계사였고, 의정부민락은 그룹한이 대표 설계사였다. 또 그룹한은 광교 호수공원 국제설계공모에서 필드 오퍼레이션스(대표 제임스 코너)와 함께 “8경”이란 작품을 출품해 2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대 규모의 설계사무소
내비게이션의 화살표만 쳐다보며 핸들을 돌리다보니, 어느새 이수역 부근. 내방역과 이수역 사이의 눈에 잘 띄는 언덕에 위치한 그룹한 사옥의 외관에는 리모델링 전에는 없던 “그룹한”이란 큼지막한 사인물이 내걸려 있었다. 2000년대 초반에 사옥을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그 건물이 그룹한 사옥인지 알 수 있는 사인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명함에도 번지수와 층수만 기재되어 있을 뿐, 그룹한빌딩이란 표시는 없었다. 당시에는 아무래도 주변의 이목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그룹한은 언제부터인가 분야 내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그 관심과 호기심은 대략 두 가지 방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우선 설계사무소의 규모다. 사옥의 3개층을 쓰고 있는 서울 본사와 부산지소, 그리고 미국 뉴욕과 보스턴지소의 임직원을 모두 합하면 무려 직원수가 103명에 달한다. 국내 최대 규모의 조경설계사무소인 것이다. 더구나 그룹한을 제외하고는 50명을 넘는 설계사무소가 1곳 정도에 불과하고, 30명 이상인 설계사무소도 채 열 곳이 되지 않을 정도로 국내 조경설계분야에는 대규모 오피스가 많지 않다보니(엔지니어링 제외), 그룹한의 규모는 이래저래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 가지는“아파트 조경과 테마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우선 대형 디자인 오피스 이야기부터 들어보았다.
사실 아뜰리에 형태의 소규모를 지향하는 설계사무소가 있는가 하면,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디자인 프로세스를 진행해나가는 대형 디자인 오피스가 공존하는 상황은 국내만의 추세가 아니다. 1939년 가렛 에크보 등에 의해 설립된 EDAW는 세계 각국에 36개의 사무소와 1천7백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매머드급 디자인 오피스이고, 히데오 사사키가 설립한 사사키 어소시에이츠 역시 보스턴 본사에만 약 240명, 샌프란시스코 오피스에 약 4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또 최근 잇따른 ASLA Award 수상으로 주목받고 있는 중국의 Turenscape는 1998년 3명의 직원으로 출발해 10여년만에 300여명의 디자이너가 근무하고 있는 중국 최대의 디자인 오피스로 성장했다. 이에 반해 최근 국내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발모리 어소시에이츠는 2005년 특집을 진행할 당시 직원이 11명에 불과했고, 필드 오퍼레이션스 역시 직원이 10명을 넘지 않은 창업 초기에도 이슈가 되는 작품들을 다수 발표했었다. 대규모와 소규모 설계사무소에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 터인데, 그룹한은 어떻게 대형 디자인 오피스로 커나가게 되었을까? 이것이 첫 번째 궁금증이었다.
박명권 _대학 시절, 전국조경학과학생연합회 회장을 했었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보다 업계 사정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당시의 조경계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종합 조경업체도 11곳 밖에 없었고, 조경설계사무소는 한림을 비롯해서 극소수에 불과했다. 설계사무소와 협회를 비롯해서 여러 곳에서 인턴을 해보았는데, 특히 건축이나 토목분야와 비교했을 때 조경업의 위상이 너무 낮았다. 이건 조경계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 내 자신이 조경에 대한 비전을 갖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학부생 시절에 설계를 무척 좋아하고 적성에도 잘 맞는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이 컸다. 조경설계가 좋긴 한데, 도무지 미래가 보이질 않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학 선배들도 대부분 관공서나 공기업, 대기업 혹은 학계로 진출했지, 조경업체에 취직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전조련 학생회장을 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게 된 후배들과 대학 졸업 전에 실내조경 회사를 창업했다.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했던 만큼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선배가 운영하는 회사에 들어가서 설계실장으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현업에서 겪어본 조경설계업의 현실은 더 충격적이었다. 건축, 토목과의 격차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한이 생겨서, 이 조경에 대한 ‘한’을 좀 풀어보자는 각오로 그룹한을 창업했다.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룹한이란 이름은 그래서 짓게 된 것이다(웃음).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설계사무소로 ‘크게’ 키워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중의적으로 그룹‘한’이라고 지은 것이다. 또 조경설계는 다른 예술분야와 달리 개인 보다는 팀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룹’을 붙였다. 아무튼 초기의 열악한 상황 때문에, 회사를 설립하면서 조경설계의 사회적 인지도를 높여서 우리 사회에 조경설계에 대한 인식을 뿌리 내리고, 후배들에게 조경설계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솔직히 처음에 시작할 때는 큰 규모의 설계사무소 사례를 보질 못했다. 국내에는 조경설계사무소 자체가 많지 않았고, 해외와는 교류가 적어서 해외 업체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뜰리에 규모로 하겠다’ 혹은 ‘큰 규모로 하겠다’란 생각 자체가 없었다. 다만 ‘조경설계를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생각만 가지고 일을 해나가다보니 어느새 직원이 30명이 되었는데, 그때까지는 그냥 일만 열심히 하면 됐었다. 그런데 30명에서 50명으로 늘어날 때, 특히 50명이 넘어가면서는, 이를테면 작가적인 마인드만 가지고는 오피스를 끌고 갈 수 없었다. 100명에 육박해가면서 더 키워나갈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을 때, 와튼스쿨 최고경영자 과정을 다니게 되었는데, 그 시간동안 차분히 큰 회사들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경영이론도 습득하게 되어, 그룹한은 대기업은 아니지만 조직구성이나 시스템을 조금씩 개편하면서 대규모 디자인 오피스로의 성장을 꾀할 수 있게 되었다.
우연한 풍경은 없다(2)
빠이(Pai), 하이(Hyperlink, Hybrid 그리고 Hi)의 장소성
만국인이 ‘멍’ 때리는, 유토빠이
빠이는 유토빠이(UtoPai)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유토피아라는 것이다. 치앙마이의 한국인 민박집에서 만난 한 배낭여행자는 빠이의 홍보대사를 자처해, 만나는 모든 이에게 ‘빠이 방문’을 권했다. “ 그곳의 무엇이 좋으냐? 어떤 곳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요즘 말로 ‘멍 때리는 곳’이라고 간단히 정의한다. 다른 말로 하면 휴식하는 곳, 게으름 피울 수 있는 곳, 빈둥거리는 곳, 그냥 죽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영어로는 ‘killing time’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별 이유 없이 길을 서성이고 강가에 누워 책을 보고, 인터넷 서핑을 하고. 그렇게 각종 인종이 멍 때리기를 하는 곳이 빠이, 유토빠이다.
맴돌면서 ‘Hi’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무엇보다 즐기는 일은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20분이면 충분한 마을의 길을 맴도는 것이다. 네모난 마을의 처음과 끝이 따로 없이 연결되어 있는 길을 그냥 맴도는 것이다. 길을 맴돌면서 길거리 음식으로 아침을 먹고 점심도 먹고, 좌판 물건을 구경하고 잠깐 잠깐 길에서 펼쳐지는 공연도 구경하고. 돌 때마다 다른 노점상이 나타나고 다른 이벤트가 있어 맴도는 것이 지루하지 않다.
계속 맴을 돌다보니 보는 이들을 계속 보지 않을 수 없다. 영어로 ‘하이(Hi!)’ 태국어로 ‘싸왔디 캅(카)!’. 그러면서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통성명도 하게 된다. “또 만났네”, “그런데 너는 얼마나 빠이에 있을 거야?”, “다음 여행지는 어딘데?” 물론 “Where are you from?”도 잊지 않는다. 그러다 관계가 더 발전되면 수다를 떨기도 한다. “오늘은 뭘 하면서 하루를 보냈어?”, “어제는 왜 안 보였는데? 궁금했잖아”, 어떤 이는 맴을 돌다 친해진 노점상의 옆에 주저앉아 장사를 돕기도 한다. 이곳을 안내하는 많은 정보들이 ‘프렌드리(friendly)’를 자랑거리로 내세우는데, 그럴 만도 하다. 겔Jan Gehl은 우연한 만남이 거듭되다보면, 눈인사를 하게 되고 그러다 친구가 되기도 한다고 했는데 그의 이론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이 곳이다.
2008년 봄, 우연히 찾은 빠이의 매력에 빠져 네 달에 한 번씩은 찾고, 올 때 마다 보름 이상은 머문다는 한국 여자 분은 길에서 만난 미국인에게 “언제 다시 왔어?”라고 정말 ‘프렌드리’하게 인사를 한다. 그들은 이웃이다. 혼자 여행을 하는 이들은 모두가 이방인인 이곳에서 자신의 안부를 묻는 이를 만나고 다정함을 느끼고 소속감을 갖는다. 모두가 혼자이기 때문에 섞이는 것이 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틀 머물려고 했던 계획을 바꾸어 2주일, 2주일만 머물겠다는 계획을 바꾸어 2개월, 2개월만 머물겠다는 계획을 바꾸어 2년. 그리고 그냥 주저앉기도 하면서 빠이오니어(paioneer)가 된다. 프랑스인, 미국인, 영국인이 아니라 파리지앵, 뉴욕커, 런더너이듯이 말이다. 민족과 국가를 초월해 그냥 그 장소의 일원으로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것도 멍 때리면서.
하이퍼링크(Hyperlink)는 하이브리드(Hybird)를 부르고
신기하지 않은가? 수많은 발길이 잠깐 멈추어 이곳을, 이곳의 오묘한 장소성을,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그것도 산속 오지에다 말이다. 하이퍼링크의 시대이기에 가능한 하이브리드의 장소성이라고 감히 정의해본다. 인터넷과 로밍한 전화와 ATM은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이들을 또 세계 각지로 하이퍼링크 시킨다. 이들이 묻혀온 다양한 문화는 ‘Hi’를 매개체 삼아 서로 뒤섞여 빠이를 만들었다.
근래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비평적 지리학자 마세이(Doreen Massey, 2003, The conceptualization of place(in place in the world))의 “이 세상 어디에도 원주민은 없다”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글로벌 시대의 장소와 장소성이라는 시대적 화두에, 뿌리내림이나 고착성과 같은 장소성에 대한 전통적 이해 방식에서 벗어나 흐름, 이동, 연결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답한다. 또 최정민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2008, 현대 조경에서의 한국성에 관한 연구)에서 한국성이라는 것도 어떤 운명적인 자연이나 전통이 아니라 발견적이고, 생성적이고 전략적인 것이라면서 열린 태도를 강조했는데 ‘한국성’을 ‘빠이성’이라고 치환해보면 그의 진의가 보다 쉽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