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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향연
Feast of Star
지루한 장마 끝에 해가 떴다. 비바람 속에 나무들도 제 옷을 입는다. 소나무 줄기는 빨간 빛을 발하고, 백합도 핀다. 하늘은 떠오르는 태양과 구름이 함께 신비스러운 장관을 펼친다. 오늘 밤은 별이 뜨기를 기대해 본다. 별은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인도한다. 밤하늘에 수놓은 향연을 보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밤하늘에 총총히 박혀있는 별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토해 놓는다. 바다에서 길 잃은 사람들에게 반짝이는 별은 등대가 된다.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의 향연을 보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장소에 대한 생각이 든다. 이들은 철학, 미술, 지리학, 건축, 조경 등에서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주제이다. 투안, 슐츠, 하이데거 등을 논하기 전에 필자는 시를 떠올린다. 지구로 보내온 별빛. 그 별은 이미 사라졌다. 그 빛을 바라보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 뱃속의 아이. 더욱 시간이 흐른 뒤에 그 별빛을 바라보았던 바닷가를 기억하면 우리는 몇 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일까. 별과 나는 하나가 되어 그 차원의 세계를 다시 만난다. 자연은 어머니의 품이다.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존재의 고향이다.
(중략)
1년 전쯤 전주 근교에 있는 시골로 이사를 갔다. 필자가 살고 있는 동네는 나무를 키워 생계를 유지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초록바다이다. 이동통신도 되지 않는 우리 집터 덕에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은 오로지 만남뿐이다. 사람들은 ‘갑갑하지 않냐’고 말을 하지만 어느덧 난 이곳 생활에 적응을 했다. 이곳 생활에서 즐거운 것은 사계절 먹을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겨울이 지나가고 가장 먼저 먹을 수 있는 것은 매실이다. 매실이 지고 나면 살구가 있고, 그 다음은 자두가 있다. 자두를 지나가면 복숭아가 있고, 그 다음 차례는 사과와 배 그리고 감이 있다. 그렇게 자연의 맛을 느끼면 어느 덧 한해가 간다. 이사를 오고 나서 나의 생활 태도는 바뀌었다. 차를 타는 시간보다 걷는 시간이 많아졌다. 순간적인 충동에 의해 차를 구입했지만 1년에 만 킬로미터도 타지 못했다. 그것도 잦은 지방출장으로 인한 것이다. 전주를 갈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버스를 타고 다니며 보는 경관이 즐겁기 때문이다. 며칠 전 지인의 결혼식이 있어 시내를 나갔다. 간만에 나가는 외출이라 예전의 길을 걷고 싶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가슴이 애절한 것도 있고 막힌다는 느낌이 들었다. 큰길가를 나가면 우뚝 서 있는 건물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불과 1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내 눈은 초록빛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회색빛 도시 등 온갖 미사여구를 쓰며 초록이 아름답다고 했던 나의 작품들이 쓰레기처럼 여겨졌다. 그 때는 회색빛 도시를 알지 못했다. 숨통이 막힐 것 같은 시내를 벗어나니 내 영혼이 맑아지는, 아니 안도의 숨이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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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세나폴리스의 밤
The Night of Mecenatpolis
2006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중네트워크센터(현 다중지성의 정원)는 합정역 2번 출구에서 1분 거리에 있는 작은 건물의 2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여 질 들뢰즈(Gilles Deleuze),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철학책들을 읽거나 안토니오 네그리(An tonio Negri)의 정치학을 공부하거나 칼 맑스(Karl Marx)의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던 때였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면 합정역 모퉁이에 자리 잡은 마포 순대집에서 떡볶이나 만두, 순대를 먹으며 허기를 달랬고 더운 날에는 다중네트워크센터 바로 앞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늦게까지 뒷이야기를 이어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건물주가 갑자기 방을 비워달라고 했다. 아직 계약 기간도 남아 있던 때였다. 이 지역이 재개발지구에 포함되어 머지않아 철거가 된다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근처에 있는 현재의 ‘다중지성의 정원’ 자리로 이사를 했다. 우리가 떠나가고 수년 동안 합정동 개발예정지구는 사람이 살지 않는 썰렁한 유령지구로 남아 있었고 쓰레기만 높이 쌓여가고 있었다.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면 우리가 모여 즐거운 시간을 나누었던 호프집이 부동산으로 바뀐 것이었다.
그로부터도 몇 년 뒤인 2012년에야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하늘을 찌를 듯이 수직으로 높이 솟은 주상복합아파트 세 동이었다. 그것은 주변의 낮은 빌라촌 건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로변에 들어선 꽤 높은 오피스텔 건물들까지 짓누르기에 충분했다. 메세나폴리스라 불린 이 빌딩들이 들어선 이후 부근 서교동으로부터 한강으로 열리던 시선은 시커멓게 가로막혔고 한강 남쪽에서 북쪽으로 들어올 때에 상상력을 자극하던 북한산의 모습도 묻혀버렸다. 이로써 산과 강에 대한 조망은 입주자들의 독점적 전유물로 되어 갔다. 메세나폴리스는 2012년 한 해 동안 종양세포처럼 이웃세포들의 가치를 침식하며 더 분명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자신의 우월성과 승리를 증명해 갔다. 그 내부는 이탈리아산 천연무늬목 가구, 스페인산 거실바닥 대리석, 프랑스산 조명, 일본산 벽지, 독일산 원목마루 등의 소재들로 장식되어 있다고 했다. 남다름을 보여주긴 위한 것이리라. 차별주의는 내부 장식 소재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77가구의 임대아파트 주민이 사용하는 별도 출입구를 설치하고 커뮤니티 이용을 제한하려한 시도에서 그 차별주의는 인종주의적인 것으로까지 발전했다. 무술유단자인 경호원들을 배치하여 24시간 외부인의 무단출입을 통제하는 것은 이 차별주의를 보안하는 장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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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목관아
Jeju Mokgwana
제주 목관아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43-3번지에 위치하며, 면적 19,533㎡의 조선시대 지방 통치기관이다. 세종 16년(1434) 화재로 인해 건물이 불탄 것을, 안무사 최해산(1380~1443)에 의해 종루, 홍화각 등 건축군 조영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내내 신축·개보수하였다. 관아의 전체구성은 홍화각, 우련당, 귤림당, 관덕정 등을 주축으로 평평한 대지에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93년 3월 31일 사적 제380호로 지정되었다.
Jeju Mokgwana(Old Government Office of Jeju) which is located in 43-3, Samdo2-dong, Jeju-si, Jeju-do is 19,533㎡ area. It was burned in the King Sejong’ 16th period(1434) and then was reconstructed the buildings and the gardens by Choi, Hae San(1380~1443). The aesthetics of adaptation is connected spatially, topographically and functionally on the flat ground with Honghwagak, Uryeondang, Gyullimdang and Gwandeokjeong. It was appointed as Historical Site no.380 in 31st, March,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