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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되어 가는 여행
Travellers going to be legendary
몇 달 전 나에게 이상한 프로젝트가 하나 생겼다. 폐교의 조경설계이다. 언제부터인가 폐교는 미술관, 동호회장 등으로 다양하게 변모되어 갔다. 대개 폐교를 인수한 사람들은 공공의 건물을 인수해 자신들의 취미 또는 개인적 공간으로 바꾸기를 원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주인장과의 첫 번째 회의 주제는 ‘나무의 이용가치’였다.
2차 회의 결과, 장소성을 유지하되, 나무를 살리기 위해 위치변동을 하기로 했다. 나무의 뿌리를 걷어 보니, 서로가 살기 위해 뿌리가 한 쪽으로만 뻗고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마치 서로가 부부인 것 같았다. 순간 나는 “할배나무, 할매나무야” 라고 외쳤다. 조경팀이 뿌리돌림 하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마지막 날 위치이동을 위해 25톤 크레인을 섭외했다. 느티나무를 드는 순간, 동네사람들이 몰려 왔다. 나무를 옮기지 말라고 항의를 했다. 자신들의 소유라고. 사실 동네의 소유는 아니다. “나무가 아파서, 잘 살리려고 잠깐 앞으로 위치 변동하는 거예요. 어르신.” “하지마. 죽든지 살든지. 그 자리에 놓아.” 어르신의 답이었다. 순간 인간의 욕심이 야속해지는 순간이었다. 알고 보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속셈이었다. 주인장은 나무를 생명으로 살리려고 하고, 어떤 이들은 단지 소유물로 보려하고, 인간들의 관점에 따라 말없는 자연생명이 어떻게 생존되는지를 아는 순간이었다. 할 수 없이 느티나무를 그 자리에 다시 묻었다. 다행히 약간 서로의 간격을 떨어뜨렸다.
세 번째 회의주제는 학교본관 앞에 있는 향나무였다. 등나무로 인해 그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었다. 처음은 살리기보다는 없애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소장님의 생각은 역시 달랐다. “작업비 생각하지 말고 생명이 있는 것이니, 어떻게든 한번 살려봐” 어떻게 보면 나도 느티나무를 소유로 바라보았던 동네 어르신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 졌다. 향나무를 살리는 작업은 은단풍과 느티나무 보다 힘들었다. 등나무를 걷어내고 하루가 지나서 서서히 그 자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가려서 보이지 않는 나무들이 용처럼 보였다. 특별한 안목의 건축가가 나무들의 생명을 살렸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향나무, 호랑가시, 석류, 산수유, 동백, 목련, 소나무 등을 살려 학교 운동장에 이식하니 하나의 정원이 완성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토목이다. 학교본관과 운동장과는 약 5m 정도의 단차가 발생되었다. 내 생각은 그 단차를 완만히 하려 했다. 토목장비에게 단차를 무너뜨리라고 지시하고, 나는 식재에 집중했다. 그런데 토목장비는 단차를 무너뜨리지 않고 마치 논두렁 조성하듯 스탠드 단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공사 중지를 시켰고, 그 다음날 단차를 무너뜨렸다. 하나의 장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심한 신경이 쓰인다. 잠시라도 한 눈을 팔게 되면 의도하지 않는 일들이 발생된다. 순간의 판단력도 중요하다. 그래서 조경가는 경관위에 글을 쓰는 시인이다. 어느 정도 공사가 마무리 될 무렵, 성균관대 정기호 교수과 이 소장님이 방문하셨다. “그래. 이 소장 여기다 뭘 짓을 건데?.” “허참. 안 짓는 다니까” 이 소장님의 답이었다. 공사를 하기 시작하면서 동네사람들도 말이 많았다. 요양원이 들어선다, 별장이 들어선다… 별 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이 소장님과 나 그리고 주인장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단지 건물 철거와 나무를 살리자는 것이었다. “그래. 정말 아무것도 안 해?” 정교수는 다시 친구에게 물었다. “그래 그대로 둘 거야. 그냥 정원부터 조성할거야. 주민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게. 앞으로 김 박사가 다 알아서 해야지.”새로운 조경시대의 서막이었다. 건축을 하고 조경이 마무리 하는 것이 보통은 관례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무엇인가 독특하다. 마을주민을 생각하는 주인장과 건축소장의 마음이 아름답다. 나무 하나도 생명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아름답다. 이번 글을 소개하는 이유는 전설이 되어가는 실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앞으로 그 땅이 어떻게 변해갈지 아직 모르겠다. 단지 나도 시나브로 생각할 것이다. 사계절, 아침과 밤, 그리고 별과 달과 바람. 이 모든 것을 느낀 후에 계획할 것이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최대한 비워둘 것이다. 진정한 대지예술은 자연이 지니고 있는 본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지금 그 곳에 가면 산수유와 목련이 봄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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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 대한 불만
Complaint about Bench
(중략) 공원을 만났습니다. 아이들 놀이터가 있고 화장실과 벤치 몇 개가 놓여 있을 뿐인 공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반가웠습니다. 화장실이나 놀이기구나 벤치 등이 모두 새것이었습니다. 그곳이 공원으로 조성된 지 얼마 안 되어 보였습니다. 공원 둘레에 서 있는 나무들은 빈약해 보였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팍팍한 길을 걷다가 만나게 된 공원은 반갑기 그지없었습니다. 한숨을 내쉬면서 걸음의 속도를 늦추었습니다. 화장실에도 다녀왔습니다. 다리쉼을 하기 위해 빈 벤치에 걸터앉았습니다. 벤치는 등받이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한 사람씩 따로따로 떨어져 앉으라는 듯 세 칸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쇠로 만든 낮은 팔걸이로 칸을 나눴습니다. 등을 편하게 기대고 앉아 어깨의 긴장을 풀고 싶은 사람은 앉을 수 없는 벤치였습니다.
(중략)
나는 벤치에서 일어났습니다. 등받이가 없어서 어깨를 옹송그린 채 잠시 걸터앉는 것만이 허용된 벤치였습니다. 공원의 벤치는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화단 턱에 걸터앉아 해바라기를 하는 노인들의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나 연인들 심지어 그 동네 주민들의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벤치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드러눕는 것은 안 됩니다. 입을 맞추거나 끌어안고 있는 것도 안 됩니다. 옆 사람과는 적당히 떨어져 앉아 있어야만 합니다. 오래 앉아 있어도 안 됩니다. 잠시 걸터앉아 있는 것만허용됩니다.”
(중략)
늦도록 노닥거릴 수 있는 여름밤 공원을 상상해 봅니다. 도시 공원에서 잠든 아이를 안은 채 말놀음을 놀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부질없는 상상인 줄은 압니다. 그래서인지 느리게 노닥거릴 수 있는 여름날밤 공원에 대한 상상은 가닿을 수 없는 낙원의 꿈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공원을 나서기 전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벤치들은 여전히 모두 비어 있었습니다. 벤치의 말이 아니라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의 말이 들리는 공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저귀를 찬 갓난아기와 그를 돌보는 엄마가 돋보이고 그들의 말이 들리는 환경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노인들처럼, 느리게 걷는 것이 가능한 구역이 어딘가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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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하는 정원. 파도바 대학 식물원
L’Orto Botanico dell’Università 야 Padova
파도바 대학 식물원이탈리아 북부 Veneto(베네토)주에 위치한 Padova는 Sant’Antonio산 안토니오로 인해 전 세계에서 몰려 온 독실한 기독교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성지이다. 1222년에 설립된 파도바대학6은 Bologna볼로냐대학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들 중에 하나이기에 배움에 목마른 젊은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온 도시를 누비는 활기찬 도시이기도 하다.
Padova는 Breda(브레다)강을 중심으로 발전해 나갔고 Venezia와 겨우 30㎞의 거리에 있어 베네치아의 영화(榮華)를 함께 누리게 된다.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졌던 베네치아의 항구를 통해 들어온 신기한 물품들 중에는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도 끼어 있었다. 필자가 처음 이탈리아에 도착했을 때도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했던 식물들에 매료되어 종종 편지에 말린 잎을 동봉해서 보냈던 기억이 있다. 씨앗들을 가져다가 키워보려고 애쓰기도 했는데 기후의 차이와 미숙함으로 인해 성과는 낮았고, 겨우 수확한 것조차도 미니어처 수준이었다.
1997년 UNESCO에 의해 “파도바 식물원은 전 세계 식물원의 원형이고 과학의 요람이며, 과학 교류와 자연과 문화의 관계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현대 과학, 특히 식물학, 의학, 화학, 생태학과 약학 등 교육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렇게 해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또 하나 이탈리아9에게 안겨준 이 식물원은 1545년 베네치아 공화국 상원의 결정으로 조성되었는데, 식물 연구의 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그 건축적 가치 또한 높다.
그 당시 식물연구에 관해 파도바 대학은 이미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와 Theophrastos(테오프라스토스)와 같은 그리스 학자들의 식물학에 관한 작품들이 읽혀지고 토론되었다. 독일의 Albertus Magnus(알베르투스 마그누스, 1193~1280)와 고대 의학을 집대성한 Claudius Galenus(클라디오스 갈레노스)의 의학서적을 라틴어로 번역한 Pietro D’Abano(피에트로 다바노, 1253~1316) 등 많은 학자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당시는 무지無知에 의한 약물 오용이 난무했던 시대였는데 이를 바로 잡기 위해 Francesco Bonafede(프란체스코 보나페데)는 학생들에게 약용식물을 식별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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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향교
Sacheon Hyanggyo
사천향교는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선인리 119번지 일원에 위치하며, 면적은 3,455㎡로, 세종 22년1440 치성재(致誠齋)·동재(東齋)·서재(西齋)·명륜당(明倫堂) 등의 건물을 짓고 수학원 학사서재(修學院 學舍書齋)라고 칭한 것이 효시이다. 이후 임진왜란1592 때 소실되었다가, 인조 23년1645 현재의 위치로 옮겨 중건하고, 현종 5년1664 대성전(大成殿) 등을 건립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요 건물로는 외삼문, 풍화루, 동재, 서재, 전사실, 명륜당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83년 8월 1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0호로 지정되었다.
Sacheon Hyanggyo which is located in 119, Seonin-ri, Sacheon-eup, Sacheon-si, Gyeongsangnam-do is 3,455㎡ area. After constructed in the 22th year of King Sejong’s reign(1440), it was used for a religious service to ancient sages as a emotional support of the Joseon dynasty. The aesthetics of adaption is connected with Daeseongjeon, Gongbansil, Chiseongjae, Myeongnyundang, Dongjae, and Seojae spatially, topographically and functionally. It was appointed as tangible cultural properties of Gyeongsangnam-do 220 in 12th of August,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