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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설계공모의 난맥을 되짚어보며
설계공모라는 네 글자는 언제나 기대와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설계공모가 생각만큼 꿈과 낭만의 보물 상자인 것만은 아니다. 성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경쟁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과정과 결과를 둘러싸고 의혹과 불신이 끊이지 않는다.
설계공모의 목적은 좋은 설계안 또는 설계자를 뽑는 데 있다. ‘좋은’은 ‘독창성 뛰어난’이나 ‘실험성 강한’처럼 가슴을 뛰게 하는 어휘로 대체할 수 있다. 주최자의 의도를 대변하는 설계 지침서들을 보면 “○○를 ○○할 수 있는 ‘독창적’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구한다”는 공모 목적이 예외 없이 쓰여 있지만, 말 그대로 독창적이기만 한 제출작은 당선되기 쉽지 않다. ‘좋은’의 자리를 경제성, 합리성, 공공성 같은 가치가 차지하는 설계공모도 적지 않다. 하지만 경제성은 값싼 재료와 시설, 합리성은 뻔한 디자인, 공공성은 실체 없는 말 잔치로 귀결되는 예가 허다하다.
설계공모의 성과물을 누릴 주체는 당선작에 따라 실현될 공간의 사용자들이지만, 그들이 공모의 과정에 개입할 기회는 매우 드물다.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주체는 출품자, 주최자(또는 그를 대리하는 전문위원), 심사위원 정도다. 세 배역을 조금씩이나마 맡아본 경험담을 나누고자 한다.
설계공모의 꽃은 게임의 선수인 출품자다. 나는 자신을 조경가가 아니라 이론가 또는 비평가로 정의하고 있지만 아주 드물게 공모전에 출품한 적이 있다. 다양한 인력으로 구성한 팀의 일원으로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거나 전반적인 디자인 개념을 잡는 데 조력하는 역할을 했다. 불확실한 경쟁의 장에 뛰어드는 일이었음에도 초조함이나 불안감보다는 엔돌핀이 샘솟는, 아주 자극적인 경험이었다. 자신의 디자인 아이디어와 해법을 실험할 수 있다는 기대, 자신의 구상이 실현되거나 적어도 공론화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을 테다. 당선의 기쁨을 맛본 적은 없다. 억울하진 않았지만 아쉬움은 컸다. 무엇보다도 패인을 알 수 없다는 점이, 더 정확히 말하자면, 패인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주최자나 심사위원회가 제출작과 최종 경쟁작에 대해 상세한 리뷰를 제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몇 줄의 형식적인 심사평이라도 발표되면 다행이다. 대부분의 패자는 작품 외적인 모종의 상황 때문에 당선되지 못한 것이라고 의심하며 분루를 삼킨다.
PA(Professional Advisor)라고도 불리는 설계공모의 전문위원은 주최자의 대리자 역할을 한다. 설계공모가 갑자기 늘어난 2000년대 중반 무렵 국내에 도입된 제도다. 나는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앙녹지공간, 광교신도시 호수공원, 동탄신도시 워터프런트, 용산공원 등 몇몇 국제 설계공모의 전문위원단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복잡하지만 도전적인 일이었다. 전문위원단은 설계공모 전반을 기획하고 설계 지침을 쓰고 제공 자료를 만들고 심사위원을 섭외하고 심사 과정을 진행한다. 지명 공모라면 지명 초청자를 선정해 섭외하는 일도 해야 한다. 홍보, 의전, 전시 기획, 작품집 출판까지 관장해야 한다. 가장 당혹스러웠던 경험은 주최자가 공모의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였다. 대상지를 무엇으로 어떻게 쓰겠다는 명확한 의도 없이, 원하는 설계안과 설계자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도 없이 행정 절차의 하나로 공모를 맡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공들여 설계 지침을 작성해도 머릿속에 그렸던 작품이 제출되지 않는 때도 많았다. 지침을 적절하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일 테다. 심사위원으로 초대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작품 자체보다 태도와 스타일에 초점을 두고 심사를 하거나 난데없는 국가 대항전, 감정적 민족주의의 대리전을 펼치는 등, 심사 과정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했다.
다시 하라면 가장 하기 싫은 배역은 심사위원이다. 나에겐 출품자가 몇 달씩 집중하고 몰입해 제출한 성과를 단 몇 시간 안에 평가할 안목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심사에서는 ‘이 작품은 직선이 많아 생태적이지 않다’, ‘저 작품은 정자가 있으니까 한국적이다’라는 수준의 주장이 토론을 주도했다. 첨예한 이권이 걸린 공모에서는 공정성 보장과 투명성 확보를 구실로 심사자 간 토론을 금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마네킹처럼 다소곳이 앉은 심사위원들이 자신의 채점표에 점수만 매기는 풍경이 생중계됐다. 심사위원을 맡기 난감한 더 큰 이유는 인간관계다. 심사위원 후보로 예상되면 선후배와 친구는 물론이고 친구의 친구, 생전 본 적 없는 사람들로부터 전화가 빗발친다. 전화기를 꺼놓아도 소용없다. 연구실 문을 잠그고 없는 척해야 한다. 제출작 제목을 문자 메시지로 보내오는가 하면 패널 이미지 파일이 카톡으로 날아들기도 했다.
설계공모 기획, 설계 지침서 작성, 공모 운영, 심사위원 선정, 심사 진행, 공모 이후 당선작 구현에 이르는 프로세스 전반을 다시 디자인하고 공론의 장에서 토론할 시점이다. 이번 호에는 다섯 명 필자를 초대해 특집 지면 ‘올바른 설계공모를 위하여’를 꾸린다. 최영준(서울대학교 교수)은 한국 현대 조경의 지형 속에서 설계공모가 변천해온 과정을 살피고, 좋은 설계공모의 기준으로 기획자의 선 설계, 참여자의 본 설계, 관람자의 설계 인식을 꼽는다. 이해인(HLD 소장)은 참가 자격, 심사 공정성, 의사 결정 방식, 당선작의 구현 보장이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설계공모의 정상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이승환(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설계공모의 공정성을 둘러싼 문제를 다각도로 짚는다. 일부 설계사무소의 당선 독점, 심사위원 사전 접촉과 로비 등 불공정 문제를 검토하고, 심사위원 선정 및 사전 공개와 관련된 현실적 개선 방안을 논의한다. 정평진(스코어러 대표)은 ‘스코어러’ 데이터베이스와 심사위원 인터뷰집 『코멘터리』 0호를 바탕으로 국토교통부의 설계공모 운영 지침, 심사위원 위촉과 구성, 당선 결과의 양상, 올바른 심사의 기준 등을 검토한다. 임유경(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은 건축공간연구원의 연구를 토대로 공공 프로젝트 설계공모 이후의 설계 변경과 공사 부실 문제를 살피고, 이상과 실제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
2024년 1월부터 이어온 신명진의 연재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를 맺는다. 도시의 공원을 일상의 장으로, 관심의 공간으로, 다시 연구의 대상으로 경험해온 한 밀레니얼 박사의 이야기에 그간 많은 독자의 호응이 있었다.15회에 걸친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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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감각] 손쉬운 다이어트법
아침 수영을 마치고 체중계에 올라선다. 어라, 뜻밖의 몸무게다. 수건으로 몸에 남은 물방울을 꼼꼼히 닦아내고 뜨거운 바람에 머리카락을 바짝 말린 뒤 다시 잰다. 마찬가지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몸무게에 한해서는 언제나 최고 기록을 갱신하는 중이다. 다른 체중계로 재면 다를지도 몰라.
집으로 돌아와 체중계를 꺼낸다. 계기판이 흔들리며 높은 숫자 중 하나를 고르려고 해서 재빠르게 내려온다. 그리고 저울을 옮긴다. 벽에 기대어 세워두고 발로 밀어 몸무게를 잰다. 7㎏ 남짓. 바늘 끝이 아주 가볍다. 다이어트 그까짓 것, 정말 쉬운 일이다. 1월마다 결심해온 체중 감량. 올해는 해낼 수 있을까. 그래도 바늘이 가리키던 숫자처럼 마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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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스케이프] 카트린 드 메디치와 디안 드 푸아티에
슈농소 성의 두 여인
여인들의 성
프랑스 루아르 지방에 가면 동화에나 나올 법한 성이 줄지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눈에 띄게 아름다운 것이 슈농소 성(Château de Chenonceau)이다. 슈농소 성은 마치 셰르(Cher)강 위에 떠 있는 것처럼 축조된 우아하고 독특한 건축물이다. ‘여인들의 성’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여인들의 손으로 빚고 완성하고 다듬기도 했지만, 여러 미망인의 한과 넋이 서린 곳이기 때문이다. 이 성에서 살다 간 여인들 이야기가 모두 흥미롭지만, 카트린 드 메디치(Catherine de Medici)(1519~1589)와 디안 드 푸아티에(Diane de Poitiers)(1499~1566)의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두 여인 모두 매우 특별한 인물이었으며 이 둘이 만들어 남긴 테라스 정원이 지금도 나란히 존재하고 있다. 정원은 사이좋게 나란히 존재하지만, 사실 두 여인은 연적이었다.
카트린은 앙리 2세(Henri II)(1519~1559)의 사랑을 받지 못한 왕비였고, 디안은 그의 영원한 연인이었다. 정실부인을 두고 젊은 정부를 얻는 경우가 많은데, 이 세 사람의 경우는 그것이 뒤바뀐 관계였다. 정부 디안이 왕비 카트린보다 스무 살이나 많았다. 카트린이 열네 살에 동갑내기 앙리에게 시집갔을 때, 이미 마흔에 가까운 디안이 앙리의 연인으로 확고부동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디안은 왕에게도 20년 연상의 여인이었던 것이다. 왕이 40세로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는데 그때 디안은 60세였다. 어떻게 그 나이 되도록 사랑받을 수 있었는지 많은 이가 지금도 궁금해 한다. 글쎄, 앙리 2세와 디안은 그저 연인 관계였을까? 왕에게 디안은 보호자였다가 연인이 되었고, 정치적 조언자이자 생의 동반자였으며, 여신과 같은 숭배의 대상이기도 했다. 카트린과 디안의 경쟁 구도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슈농소 성을 둘 다 탐냈으나 여기서도 디안이 이겼다. 앙리 2세가 죽은 뒤 카트린은 형식상 왕실 재산이었던 슈농소 성을 반환받아 그곳의 여주인이 되었으며 그 대가로 디안에게 쇼몽 성을 주었다. 쇼몽은 해마다 가든쇼가 개최되는 곳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성이다. 슈농소 성을 먼저 소유했던 디안의 삶과 그녀가 만든 정원부터 잠시 살펴볼까 한다.
디안 드 푸아티에
루브르 박물관에 다이애나 여신을 그린 유화 한 점이 있다. 전신상 크기인데 사냥의 여신 다이애나가 나체로 활을 손에 들고 활통을 맨 채 사냥개 한 마리를 동반하고 숲속을 걷는 장면이다. 이 그림의 모델이 디안이었다고 한다. 디안은 다이애나의 프랑스식 이름이다. 1550년경에 그린 것이니 디안이 50세가 넘었을 때 모델을 선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플레이보이』 잡지 표지를 장식한 마돈나를 연상하면 될 것 같다.
평범한 외모의 카트린과는 달리, 디안은 빼어난 미모에 품위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냉수욕을 하고 건강한 식단과 운동은 기본이었으며, 허브 추출물로 만든 천연 크림을 직접 고안해 피부 관리를 철저하게 했다고 한다. 한편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며 사업 수완이 뛰어나 앙리를 설득해 슈농소 성을 선사 받았는데 성의 증축과 관리에도 철저했다.
당시 성이란 그저 화려한 거처에 그치지 않았다. 귀족들에겐 작물을 재배하는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디안은 주변의 땅을 사들여 영토를 넓히고 성 주변을 숲으로 둘렀으며 뽕나무를 잔뜩 심어 수입을 세 배로 늘렸다고 한다. 정원 만들기와 가꾸기에도 심취해서 당시 프랑스에선 아직 새로웠던 이탈리아 르네상스풍으로 12,000㎡ 규모의 테라스 정원을 조성했다. 이때 물속에 대를 쌓고 그 위에 정원을 만드는 대범함을 보였다. 중앙에 분수를 설치하고 이를 중심으로 종횡의 축을 내고 다시 대각선의 축으로 나누었다. 이로써 모두 여덟 개의 구획이 탄생했는데 각 구획은 운동과 놀이 공간, 식재 공간으로 분류했다. 주변의 숲에 정원사들을 보내 9천 줄기의 야생 딸기와 제비 꽃 뿌리를 캐게 해 정원에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은 수월한 관리를 위해 잔디로 구획을 채우고 토피어리를 심어 간소화했다.
디안은 원래 궁중에서 왕자를 돌보는 임무를 맡았었다. 조선시대와 비교한다면 동궁전의 상궁이었던 셈이다. 앙리가 아홉 살 되던 해 스페인에 볼모로 가서 4년간 머물렀던 일이 있다. 그때 스페인으로 떠나는 어린 앙리를 디안이 따뜻하게 안아주었다는데, 앙리가 그 따뜻한 품을 평생 잊지 못했던 것 같다. 앙리의 젊은 아내 카트린에게 질투나 경쟁심을 느낄 필요가 없었거나 현명했거나 둘 중 하나였던 것 같다. 후사를 생각해 자신에게만 엉겨 붙는 앙리를 카트린의 침실에 들여보내 남편의 의무를 다하게 했다고 한다. 카트린은 앙리 2세와의 사이에서 열 명의 자녀를 낳았다. 디안은 재테크의 귀재여서 축적한 재산도 많았고 성도 여러 채 소유하고 있었기에 말년에는 자신의 성에서 조용히 살다가 1566년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카트린 드 메디치
그 똑똑했던 디안도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점이 있었다. 겸손하고 명랑하기만 했던 카트린이 두뇌회전이 엄청난 능력자라는 사실이었다. 카트린 드 메디치는 1519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에서 태어났다. 출생 직후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었는데 어머니로부터 엄청난 부를 상속받아 너도나도 탐내는 신붓감이었다. 증조부인 교황 레오 10세의 보호 아래 친척들의 집에서 자라다가 잠시 수도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레오 10세의 뒤를 이어 카트린의 후견인이 된 교황 클레멘스 7세는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의 둘째 아들에게 카트린을 시집보냈다. 프랑스에서의 삶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카트린은 앙리를 보자마자 반했다고 하는데, 앙리는 카트린에게 별 관심이 없었고 그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었다. 막대한 지참금에 더해 밀라노를 넘겨받기로 했으나 후견인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었다. 밀라노를 넘겨주기는커녕 지참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이로써 지참금 외에는 볼 게 없던 카트린은 낯선 프랑스 궁중에서 완전히 찬밥이 되고 말았다. 인물이 뛰어나지도 않고 프랑스어도 서툴고 남편의 사랑도 받지 못하는, 신분도 격에 맞지 않은 상인의 딸, 카트린을 피렌체로 돌려보내라는 소리가 높아졌다. 숙부의 배신으로 돌아가도 별 볼 일 없음을 알게 된 카트린은 홀딱 반한 앙리의 곁에 남기 위해 납작 엎드리는 전략을 취했다. 이를 본 프랑수아 1세가 카트린의 총명함을 간파해 총애했고 프랑스 궁중에 남게 했다. 왕위 계승자였던 태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바람에 카트린의 남편인 둘째 왕자 앙리가 왕으로 등극하고 카트린은 왕비가 된다. 그렇다 해도 처음엔 크게 달라진 바 없다가 열명의 왕자와 공주를 차례로 낳으며 카트린은 서서히 입지를 굳혀가기 시작했다.
당시엔 이탈리아가 문화적으로 프랑스에 월등히 앞서 있었다. 카트린은 시집갈 때 피렌체의 의상 디자이너와 요리사를 데리고 갔는데, 이들을 통해 세련된 패션과 우아한 생활 방식이 프랑스 궁중에 전파됐다. 그뿐 아니라 이탈리아 요리가 주목받아 후일 유명해지는 프랑스 요리의 시작이 되었다는 사실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카트린은 남편이 사망한 뒤 권력을 손에 쥐며 본격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드러내게 된다. 아들 셋이 차례로 왕위를 이었으나 일찍 죽거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까닭에 실제로는 카트린이 정치를 틀어쥐었다. 당시 프랑스는 아직 왕권이 확립되지 않았고, 특히 종교 분쟁으로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이 매우 어지러운 격변의 시대였다. 게다가 왕실의 피를 이어받은 높은 귀족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아들의 왕위를 지키는 것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메디치 가문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카트린의 ‘정치 본색’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카트린의 차남 샤를르 9세가 통치하던 1572년 여름, 그 유명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이 일어났다. 원래 구교와 신교의 화합을 위해 둘째 딸 마고를 신교의 지도자 앙리 드 나바르와 혼인시켰으나 그 혼인을 보러 온 신교도와 구교도 사이에 처참한 살상이 시작되어 화합은 물 건너갔다. 종교 분쟁은 이후 오랜 시간 유럽을 뒤흔들게 된다. 1993년에 ‘여왕 마고’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는데, 영화 속에서 카트린은 검은 옷을 입은 악녀로 묘사된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일은 물론 아니다.
카트린의 슈농소 성
카트린은 슈농소 성을 가장 사랑하는 거처로 삼고 상당한 재정을 투자해 성을 확장하고 아름답게 꾸몄다. 디안이 이미 건설을 시작한 셰르강 교량을 완성하고 그 위에 2층짜리 갤러리를 추가해성의 독특한 외관을 완성했다. 1557년에 완공된 이 갤러리는 무도회장이 되었다. 카트린은 슈농소 성을 거처가 아니라 정치적 무대로 활용했다. 그녀는 이곳에서 화려한 연회와 행사를 자주 열어 자신의 권력과 영향력을 과시했다. 1560년에는 아들 프랑수아 2세의 즉위를 기념하는 프랑스 최초의 불꽃놀이가 슈농소에서 펼쳐지기도 했다.
디안에 대한 감정이 어땠는지 알 수는 없다. 주변에서는 디안의 코를 잘라서 내치라고 했다는데카트린은 그 대신 슈농소 성을 반환하라고 했다. 이에 디안은 그 대신 쇼몽 성을 달라고 요구했고 카트린은 이에 응했다. 부동산 가치로만 본다면 쇼몽 성이 훨씬 낫다. 그 사실을 카트린이 모를리 없었지만 슈농소 성을 빼앗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간절했던 것 같다. 디안은 끝까지 유리한 거래를 한 것이다.
슈농소에 입성한 카트린은 바로 증축 작업에 들어간다. 우선 뽕나무 농장의 규모를 확장해 수익을 더 올리고 조류관을 지어 진기한 새들을 길렀다. 이탈리아에서 올리브 나무를 들여와 대량으로 심었는데 기후에 잘 적응했다고 한다. 디안의 정원은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둔 대신 한 귀퉁이에 도서관 겸 문서고를 지었다. 디안과 달리 카트린은 책을 좋아했고 지리학, 천문학, 물리학, 수학에 두루 지식이 풍부했다. 또한 건축적 재능도 뛰어나 파리의 튀일리 궁전과 정원 외에도 많은건축물 축조에 관여했다.
카트린은 5,500m²의 규모로 테라스 정원을 지었는데, 성 본채를 사이에 두고 디안의 정원과 마주 보는 형국이었다. 전체적으로 약간 사다리꼴이며 그 중앙에 커다란 원형 연못을 만들었다. 정원 가꾸기에는 디안만큼 관심이 크진 않았다. 테라스 정원에 어떤 식물을 심었는지에 관한 기록은 남기지 않았다. 다만 당시의 풍습대로 약초와 향기나는 식물을 심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지금은 정원사들이 절기에 따라 경계 화단에 초화류를 심고 벽에 기대어 장미도 심어 두었다.
당시 유럽의 왕실이나 귀족들에게 백성이란 무지렁이에 지나지 않았다. 민생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들은 사소한 죄를 지어도 무지막지한 벌을 받았는데, 그들이 무자비하게 형벌 받는 장면을 구경하며 연회의 안줏감으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묘사된다. 동양의 민民이라는 개념은 아직 없었다. 그러므로 카트린이나 디안의 능력과 삶을 감탄의 눈으로 바라볼 일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과 특권을 오로지 그 자체를 지키는 데 썼을 뿐이다.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은 프로이센의 공주로 태어나 바이로이트의 여주인으로 살았던 빌헬르 미네(Wilhelmine von Bayreuth, 1709~1758)다. 18세기 소위 계몽주의를 살았던 여인인데, 계몽이라는 관점에서 정말로 개선된 것이 있었을지 기대해 본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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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밀레니얼도 이미 옛날 이야기
75%를 위한 공원
25%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21세기 말이다. 시간이 반드시 직렬로 흐르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근현대 교육의 수혜자에게 감지되는 시간이란 앞으로만 쏟아진다. 따라서 앞으로 21세기는 이제 75% 남아있을 뿐이다. 우리는 겨우 몇 년 만에 AI를 필두로 세상이 끝없이 변해 가는 것을 지켜 보고 있다.(각주 1) 누군가는 그 변화의 선두에 서 있고, 누군가는 뒷자락에서 페이스 맞추어 가며 달려가고, 또 어떤 사람은 옆에 서서 이 행렬을 지켜보거나 곁눈으로 흘기고 있다.
한 심야 토크쇼의 호스트 존 올리버(John Oliver)는 몇 년 전 로봇 시대에 앞으로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 조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비판적 사고,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 사회적 지능을 요구하는 직업.” 다만 “우리가 아는 직업 중 이런 직업은 없고 이제부터 찾아봐야 한다”는 것이 해당 섹션의 안타까운(!) 결론이었다. 결국 자신의 머릿속을 까뒤집는 한이 있더라도 뿌리부터 다시 생각해야 된다는 이야기다.
여러 호에 걸쳐 조금씩 언급했지만,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격변하는 도시 사회를 위해 어떤 공원을 상상해야 하는가. 조경은 미래에 유의미한 업역으로 남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이용을 위한 공원은 어떤 모습을 갖추게 될까.
에피소드 1. 단계적 MZ 거부 운동(과 그 외 소식)
너도나도 MZ라는 단어를 남발한다. 1988년생 밀레니얼로서 당당히 이 구분을 거부하는 바다. 한때는 기계 속 펼쳐진 세계에 열광했지만, 이제는 자우림의 노래 “20세기 소년소녀”(각주 2)를 흥얼거리며 ‘어린 시절의 갬성이 그리운’ 걸 보면 밀레니얼 시대는 이제야 ‘돌이켜볼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듯하다.
기술이 빠르게 변하고 사회도 그에 맞춰 가속도가 붙는 만큼 이 두 세대를 한 덩이로 잡아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일견 이해가 된다. 하지만 사회는 앞으로 전진하는 동시에 돌고 돈다. 나선형의 미래를 바라보며,(각주 3) 지금 조성되는 공원과 정원은 앞으로 얼마나 유의미할지, 또는 얼마나 ‘추후 재설계’의 여지를 두고 조성되어야 하는 것일지 궁금해진다. 단계별 조성으로 대표되는 조경의 리질리언스 실천이 그저 “기본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서 내외부의 혼란을 저항하는” “그저 버티는 것 뿐”인 설계 패러다임이라는 리차드 웰러(Richard Weller)의 비판은, 우리 시대의 풀리지 않는 문제를 꼬집는다.(각주 4) 우리는 여전히 돌고만 있다.
*환경과조경443호(2025년 3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무섭다.
2. “비틀즈의 무지개, 오즈의 마법사, 듀란듀란의 노래”로 시작하는 이 곡은 사실 X세대를 위한 이야기다. 하지만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20세기 소년』을 읽고 자란 이들에게도 넌지시 울림을 준다.
3. 일본 애니메이션 ‘천원돌파 그렌라간’(2007)의 테마. 필자는 몇 번이나 돌려보고 한참 울었다.
4. Richard Weller, “The Landscape Project”, in The Landscape Project, Richard Weller and Tatum Hands eds., AR&D, 2022, p.11.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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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퍼니처] 토인디자인
지속가능한 쉼과 삶을 위한 디자인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쉼
흔히 현대 도시의 삶을 표현할 때 생존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지만 생존의 반의어를 생각하면 선뜻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는 현대 도시에서 생겨나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에너지의 응축을 해소하려는 조치로서 생겨났으며, 치유의 개념을 가진 대표적 도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현대 도시엔 생존보다 치유가 필요하다. 도시는 특유의 기능과 화려한 겉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질주하고 있다. 브레이크 없이 질주만 한다면 존재가 지속될 수 없다는 걸 도시의 구성원은 이제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멈춰야 할지, 어떻게 쉬어야 할지 막막함을 느낄 때도 있다. 답답한 일상이나 생업에서 벗어나 잠시 멈추는 것만으로도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해소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를 ‘쉼’이라 부르지만 쉼의 형태는 사람들의 개성만큼 다양하고 계속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쉼’의 형태와 랜드스케이프를 결합하는 퍼니처를 연구하며, 자연과 가까워지려는 인간의 행위가 불편하지 않게 현대인의 생활상을 적절히 반영하고자 노력한다. 이는 조경이란 분야가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방향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모두를 수용하는 유니버설
누구에게나 평등한 사회는 인류가 추구해야 할 사회의 최종적인 진화 형태이며 모두가 힘을 합쳐 마땅히 도착해야 할 종착지다. 하지만 현실은 추구하는 이상과는 거리가 멀고 21세기로 넘어온 지 20년이 지난 현재도 쉽지 않은 문제다. 예를 들어 조경 시설에 흔히 적용되는 계단은 휠체어로 진입할 수 없고, 테이블, 벤치 등 시설의 높이가 모든 사람이 사용하기에 적당한 높이인지 검증이 필요하다. 또한 일률적인 간격의 자전거 거치대는 다양한 크기의 자전거를 모두 수용하기 어렵다.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접근법이 중요하며, 이러한 것이 모든 종류의 의사 결정에 당연히 포함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환경과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사용자들을 최대한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반려동물과 동행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영혼의 개념이 있는 영적 동물이다. 무리를 이루거나 짝을 찾아 함께하기를 원하며 인간의 심연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고독의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공동의 목표 또는 취향을 공유하기 위한 커뮤니티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생겨나고 성장하고 쇠퇴하고 있다. 인간의 최소 구성단위인 가족의 개념도 시대가 변화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다양한 형태로 적응하며 진화하고 있다. 개인의 일상을 공유하고 유대를 형성하고 안식처가 되어주는 동반자의 모습도 이제는 반드시 인간일 필요는 없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 천만 시대에 도달할 만큼 다양한 동반자가 출현하는 시대다. 이와 같은 현대의 동반자 형태는 공공 시설의 영역에서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와 요구에 발맞춰 반려동물이 인간과 조화롭게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진화하는 티하우스
조경 시설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단순히 휴식을 보조하는 옥외 시설, 산책로에 군데군데 놓인 벤치와 차양막이 있는 시설. 보통 떠올리는 과거의 시설들이다. 현재는 생활 방식의 변화와 기능의 세분화가 이루어지며 휴게 시설들이 변화무쌍하게 진화하고 있다. 특히 다수의 시민을 수용하는 공공 시설로 기능했던 퍼걸러는 이용 주체와 커뮤니티의 구성에 발맞춰 고유한 개성을 드러내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가령 냉난방이 가능한 실내 공간, 각종 모임을 지원하는 내부 가구들, 주변의 정취를 즐기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야외 테라스까지 건축과의 경계를 허무는 형태의 퍼걸러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복층형 티하우스는 신축 아파트 단지 내부 주요 공간의 랜드마크로 기능하는 공공 휴게 시설이다. 단순히 잠시 쉬어가는 시설로 활용됐던 과거의 퍼걸러들과 달리 주민들이 머물 수 있는 생활 공간의 개념을 담아냈다. 이용자의 편의성을 최대한 고려한 디자인을 통해 마치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고자 했다.
누구나 이용하는 슬로프 전망대
공공의 편의성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 중에는 사회적 약자를 고려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보통 전망 시설은 각종 공원이나 명소의 주변 경관을 편하게 즐기기 위한 목적의 시설이지만, 누구에게나 접근이 가능한 시설은 아니다. 가령 전망대 진입 시 계단밖에 없는 공간에서 신체가 불편한 이용자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상층부로 올라갈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점을 고려해 누구나 편하게 진입할 수 있는 배리어 프리 전망 공간을 만들고 있다. 2층 구조의 전망대형 퍼걸러인 스카이네스트는 기존 계단 진입부 외에 휠체어로도 올라갈 수 있는 경사의 슬로프를 만들고, 진입부 핸드레일에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판을 설치해 다양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누구나 차별 없이 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전망 공간을 만들고자했다.
진입 장벽을 낮춘 인피니트 트랙
올라타서 이용하거나 베어링으로 운동 범위가 제한적인 운동 시설은 획일적인 운동 형태를 제공해 이용자의 흥미를 감소시킨다. 이러한 운동 시설의 구동부 베어링은 소모품으로 지속적인 유지·관리가 필수적으로 동반된다. 발판이 있는 운동 시설은 물리적 제약이 있는 사용자에게는 높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트랙형 운동 시설인 인피니트 트랙은 이러한 점을 보완했다. 지정된 발판에 올라가서 사용해야 하는 제약을 줄이고 방위나 높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본인의 체중과 근력에 맞게 운동의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게 했다. 모듈의 형태를 자유롭게 제작할 수 있어 맞춤형 구성이 가능한 시설로 사용 공간의 성격이나 주요 이용 계층에 맞게 조합해 각 공간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신개념 운동 시설이다. 베어링의 사용을 최소화해 유지·관리가 기존 운동 시설보다 용이하다.
자원 순환의 세덤 퍼걸러
첨단 기술과 자연이란 상반된 요소가 시대적 요구로서 공존한다. 자연환경과의 조화를 꾀하는 시도로서 식재와 조합된 시설물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일상에서 벗어난 휴식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시설들은 플라스틱, 스틸 등 인공 자재의 노출을 최소화하고, 목재, 석재 등 자연적 소재를 우선적으로 활용하고 자연의 느낌을 연출할 수 있는 식재 등을 시설에 접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세덤 퍼걸러는 빗물을 활용해 지붕의 식재에 관수를 하고 물탱크에 저장 후 남는 물은 수도꼭지를 통해 재활용할 수 있는 휴게 시설이다. 자원의 재생산 개념을 바탕으로 버려지는 물까지 다시 사용하는 자원순환을 통해 비용 절감 등 경제적인 효과를 가질 수 있게 했다.
반려동물과 조화를 꾀하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 천만 시대에 가족 같은 동물들과의 동행은 시대적 흐름이다. 인간들만 사용할 수 있는 공공 시설은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없기에 아쉬움이 생길 수 있다. 동행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시설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다양한 시설이 필요해지고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놀 수 있는 놀이대와 반려동물의 생활 패턴을 고려한 제품 개발을 통해 인생의 동반자라고 할 수 있는 반려동물과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토인디자인은 토털 스트리트 퍼니처 디자인 브랜드로 트렌드를 고려한 현대적 감성의 디자인을 추구하며,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자연을 보존하는 동시에 이용자에게 기능성과 편안함을 제공하며 빠르게 변해가는 삶의 방식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다양한 커뮤니티를 수용할 수 있게 돕는 스트리트 퍼니처를 만든다. 궁극적으로 주변 환경과 사회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이용자들의 이용 패턴을 연구해 지속가능한 인간의 쉼과 삶을 위한 디자인을 구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