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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한국 조경,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다
    한국 조경 50년 역사의 여운을 짙게 남긴 채 2022년이 저물었습니다. 지난 연말 선유도공원에서 열린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 한국 조경 50년 기념전+IFLA 한국 개최 성과전’은 폭설과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전시회장을 찾은 조경가들은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IFLA의 기조 강연, 스페셜 세션, 라운드테이블, 학생 공모전과 학생샤레트 등을 다시 만나 뜨거웠던 광주의 사흘을 기억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특히 학생들과 젊은 조경인들은 기둥 형식으로 전시한 한국 현대 조경 대표작 50선, 서가에 눕혀 전시한 한국 조경 도서 100선, 바닥에 연도별로 펼쳐 전시한 50년사의 주요 사건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기성세대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작품, 도서, 사건이 젊은 세대에게는 생경하지만 경이로운 역사로 다가온 것입니다. 그러나 50년사의 궤적과 흔적이 낯설면서도 신선하다는 반응은 곧 우리 조경계가 그간 자료의 수집과 저장, 체계적 기록에 소홀했다는 점을 반증하기도 합니다. 전시회에서 만난 한 조경사 연구자는 “한국 조경의 분더카머(Wunderkammer)를 만난 것 같다”는 흥미로운 평을 했습니다. ‘분더카머’는 르네상스기에 유럽에서 유행한, 귀족과 학자들이 자신의 저택에 진귀한 사물을 수집해 진열한 공간입니다. 현대 박물관의 전신에 해당하지만 주로 소유자의 취향을 반영하고 극화한다는 점에서 박물관과 다릅니다. 그가 말한 분더카머는 독특한 역사와 기억의 진열을 뜻하는 것이겠지만, 동시에 흔적의 파편적 집합체를 의미하는 비유이기도 한 셈입니다. 지난 50년간 한국 조경은 도시와 경관, 지역과 환경, 삶과 문화의 틀과 꼴을 직조하며 발전을 거듭했지만, 자료의 저장과 성과의 기록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현대한국조경작품집 1963-1992』(1992), 『한국의 조경 1972-2002: 한국조경학회 창립 30주년 기념집』(2002), 『Park_Scape: 한국의 공원』(2006), 『한국조경의 도입과 발전 그리고 비전: 한국조경백서 1972-2008』(2008), 『한국조경학회 창립 40주년 기념집』(2012), 『환경과조경』 통권 400호(2021년 8월호)를 비롯한 여러 기록물이 백서, 자료집, 작품집 형식으로 출간됐지만, 종합과 체계라는 기준에서 보면 불충분한 점이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난맥을 지난해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2022)을 편집하는 과정에서도마주쳤습니다. 책의 지향점은 한국 조경사 50년의 담론과 작품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데 있었지만, ‘기록’의 측면만 놓고 보자면 아쉬움이 적지 않게 남습니다. 조경 50년사의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체계적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일은 다음 50년을 설계하는 토양이 될 기초 작업이지만, 책의 범위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카이브는 대상과 사건의 진위를 보여주는 가장 일차적인 자료이자 그 기록물의 저장소입니다. “기록의 집적물인 아카이브는 우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진정성에 기반을 둔 두터운 스토리텔링을 구축할 수 있는 토대이며, 과거와 미래와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도 힘을” 지닙니다(박희성, 『환경과조경』 2020년 3월호). 이러한 기록과 저장의 힘을 실험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지난 연말의 기념전은 의미를 획득합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갈 때입니다.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50년, 한국 조경의 시선으로 도시와 경관을 둘러싼 글로벌 이슈를 대면하고 창의적 해법을 마련해가기 위한 필요 조건은 지난 50년의 성과, 작품, 제도, 교육, 인물을 촘촘히 기록하고 면밀히 저장하는 체계적 아카이브입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소실되고 있는 자료와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수집, 정리, 공유, 소통하는 범 조경계 차원의 기획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환경과조경』의 편집도 “한국 조경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하고 내일을 설계하는” 아카이브에 비중을 둘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2023년을 열며 ‘제5회 젊은 조경가’ 수상자인 최윤석(그람디자인 소장)을 특집으로 다룹니다. 에세이 “종합관계기술”에 담은 설계 철학, “여섯 가지 빌드업”으로 구성한 작업 성과, 김모아 기자의 인터뷰, 조혜령과 유청오의 에세이 등으로 꾸린 특집 지면에서 공간과 개인의 삶을 잇는 최윤석의 도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유영수(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과 교수)의 격월 연재 ‘제도가 만든 도시’가 시작됩니다. 도시의 공간적 형태와 현상에 작동하는 제도의 양상을 다각적 차원에서 묻고 살필 것입니다. 설계 작업과 설계사무소 경영의 다채로운 뒷이야기를 담는 ‘어떤 디자인 오피스’의 올해 첫 순서는 ‘바이런’입니다. [email protected]
  • [풍경 감각] 먼지 쌓인 책
    2020년 겨울, 『식물 문답』의 마지막 부분을 쓰면서 쓸쓸한 풍경을 상상했다. 잘 팔리지 않아 서점 한 구석에서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책, 악성 재고로 분류돼 쓰레기 처리장으로 보내지는 모습, 멀쩡한 새 책을 빨아들이는 파쇄기의 새까만 입.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출간을 준비하는 일은 즐거웠지만, 원고를 보내고 나면 이런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멈추기 어려웠다. 책의 마지막 꼭지 ‘좋은 시절이 끝날 때’는 이 생각들을 뿌리치려고 쓴 글이다. 책이 크게 실패해도 괜찮기를 바라는 마음 혹은 다짐을 담았다. 위안이 됐던 걸까. 이후로 쓸쓸한 풍경을 떠올리지는 않았지만, 조금 부끄러웠다. 독자가 아니라 나를 위한 글을 책으로 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글을 기억에 남는 부분으로 꼽는 독자를 만나면 지금도 얼굴이 뜨거워진다. 여전히 어떤 걱정이 생기면 내게 필요한 이야기를 노트에 적거나 그려 둔다. 그렇게 노트를 채운 뒤 책장 한구석에 꽂아두고 잊어버린다. 먼지가 뽀얗게 쌓이도록. 언젠가 노트 한 권을 꺼내 먼지를 후 불어내고, ‘나를 위해서라면 좀 어때.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면’이라고 적을 수 있기를. 조현진은 조경학을 전공한 일러스트레이터다. 2017년과 2018년 서울정원박람회, 국립수목원 연구 간행물 『고택과 어우러진 삶이 담긴 정원』, 정동극장 공연 ‘궁:장녹수전’ 등의 일러스트를 작업했고, 식물학 그림책 『식물 문답』을 출판했다. 홍릉 근처 작은 방에서 식물을 키우고 그림을 그린다. [email protected]
  • [어떤 디자인 오피스] 바이런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하는 디자인 그룹
    오피스 철학 좋은 디자인보다 좋은 디자인 오피스 설계만 열심히 하다가 설계를 못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십여 년 전 조경설계사무소를 함께 다녔던 수많은 젊은 조경가 중 지금 현업에 남아있는 숫자가 절반이 안 된다. 당시 조경설계사무소는 밤낮없이 돌아갔다. 야근과 주말 출근이 일상이었지만 조경 설계에 대한 열정과 의욕이 넘치던 시기였고, 나름의 낭만도 있었다. 야근 후 술자리에서도 조경에 대한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3년, 6년마다 찾아오는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건강 상 이유로, 또는 10년 후에도 야근하고 있을 내 모습이 떠올라서,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서 탈조경설계를 결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조경 설계는 꼭 애증의 대상이어야 할까. 조경 설계로 진로를 정할 때 학생들에게 상당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면서 재미있게 다닐 수 있는 조경설계사무소를 만들어 보자고 결심했다. 좋은 디자인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믿음과 함께. 일보다 일상, 사람보다 사이 조경가의 일상이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주로 설계하는 대상이 일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휴식하고, 운동하고, 놀고, 체험하는 공간을 설계하기 때문에 조경가의 일상도 같은 선상에 있어야 그런 경험을 잘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은 재미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할 것이고, 함께 생활하는 동료들과도 업무 외의 다른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이런 사무실의 절반은 놀고 쉬고 먹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넓은 소파와 안락의자, 그리고 탁구대는 사무실을 구상할 때 최우선 순위에 있었고, 실제로도 책상보다 탁구대를 먼저 들여놓았다. 점심시간은 수다스럽고 소란스럽다. 이제는 함성과 비명이 자연스럽기도 하다. 졸리면 참지 말고 잠깐이라도 허리 펴고 누워서 잠을 청할 수도 있다. 한 달의 휴식과 건강한 열한 달 10년 동안 설계사무소를 다니면서 이런저런 기회로 한 달 이상의 휴직을 3번 경험했다. 다른 동료들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이었지만 쉬느냐 그만 두느냐의 갈림길에서 그만두지 않고 잠시 쉬어갈 수 있게 배려해준 같은 팀 동료들 덕분이었다. 신기하게도 한 달 동안 딴짓을 하고 돌아오면 조경 설계와의 권태기를 극복하고 다시 달달한 관계를 회복했다. 그 덕분에 첫 직장에서 10년 넘게 생활할 수 있던 것 같다. 개업하고 직원들이 하나둘 늘어갈 때 정말 감사했다. 보잘 것 없는 스타트업에 흔쾌히 지원해주고 열심히 작업하는 동료들을 위해 소장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던 중에 문득 한 달 휴가를 떠올리게 됐다. 그때의 좋았던 기억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 되었고, 기회를 준 회사에 너무나도 감사했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도 그런 보상을 제공하면 오래 함께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상당히 파격적인 실험이라서 실현 가능성을 걱정했지만, 현재까지는 아무 문제 없이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한 달의 휴식이 건강한 열한 달을 만들고, 내년을 기대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함께하는 작업의 힘 협업의 힘을 믿는 편이다. 한 명의 유능한 디자이너가 단독 작업을 하는 것보다 여러 명의 유능한 디자이너가 협업하면 훨씬 좋은 결과를 만들 가능성이 높아진다.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확신을 갖게 되었는데,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이하 동심원조경)에서 경험했던 경의선숲길 프로젝트가 가장 결정적 계기였다. 연트럴파크로 알려진 경의선숲길 연남동 구간의 경우 안계동 대표(동심원조경)의 기본 골격을 바탕으로, 정욱주 교수(서울대학교)가 특화 설계안을 구상해, 동심원조경 실무진이 실시설계로 정리하는 방식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바이런을 시작하면서 순차적으로 만들어진 강아람, 이남진, 김영찬, 그리고 김영민의 긴밀한 파트너십은 우리가 가진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며, 네 명의 리더가 만드는 강력한 시너지는 바이런이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회사 간의 협업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최근 설계공모 당선작은 협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2021년에 당선된 양천구 목마, 신트리공원 리모델링 설계공모는 스튜디오이공일(이상수 소장)과 공동 출품했고, 2022년의 서남권 보라매공원 테마놀이터 설계공모는 지엘에이디자인(김황순 소장)과 엠엠엠스튜디오(박성준 소장)가 함께 당선작을 만들었다. 사무실은 바이런과 지엘에이디자인, 엠엠엠스튜디오가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공간 공유를 넘어서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하고자 한다. 보라매공원 테마놀이터 작업은 세 회사의 모든 직원이 참여했다. 각자가 아이디어 스케치를 제시하고 각각의 안에 대한 장단점을 분석하여 한 가지 대안으로 발전시켰는데 결과를 넘어서 과정이 매우 흡족했던 작업이었다. 올라운드 플레이어 연구, 기획, 설계공모, 전시, 기본 구상, 기본계획, 기본 및 실시설계, 감리. 바이런이 지난 1년간 수행한 프로젝트의 단계를 나열한 것이다. 현장과 매우 밀접하게 진행되는 감리 업무와 실시설계는 굉장히 괴로운 작업이지만 조경가로서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을 갖추는 과정이기 때문에 반드시 수행할 필요가 있다. 재료와 디테일을 고민하면서 현장감을 쌓아나가고 있다. 또한 잘 만들어진 작품은 우리 아이디어의 설득력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결정적 수단이다. 1년에 최소 한 개 작품을 완공 프로젝트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기본 구상, 기본계획 등의 작업은 평소에 갖고 있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상상을 더해서 기존에 없던 발전적인 디자인을 이끌어내는 즐거운 작업이다. 도시설계 수준의 분석과 전략 설정을 통해 이슈를 도출하고 전략적 계획안을 만드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도시와 조경의 상관관계를 깊게 고민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심층적인 이론적 고찰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연구와 기획 프로젝트도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우리가 다루는 설계 대상지의 규모나 성격도 다양하다. 전통정원, 마을마당, 옥상정원, 베이커리 카페, 아파트 단지, 근린공원, 문화재 보호구역, 놀이터, 야영장, 자연휴양림, 상징 가로, 교량, 대규모 신도시 택지, 탐방로 등이 우리가 소화하는 장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모드 전환이 필요하지만 편식보다는 잡식이 우리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단계와 분야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은 갓 입사한 사원급 직원들에게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고, 회사 입장에서는 효율이 떨어지는 무모한 시도일 수 있다. 하지만 굉장히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풀어나가고 공공성과 안전, 경관적 가치, 건강, 경제성 등 여러 가지 이슈를 복합적으로 다루는 조경 설계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다소 느리고 힘들더라도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방식이다. 우리의 프로젝트 구 서울역사 옥상정원 바이런의 첫 작품이다. 여러모로 감사한 프로젝트다. 동심원조경 안계동 대표의 적극적인 추천과 품질 보장을 통해 첫 계약을 할 수 있었고, 발주처인 서울시 중구청도 디자인을 구현해주는 데 힘을 실어줬다. 모듈형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플랜터를 적용했고, 색상 대비가 강한 벽돌을 사용하여 원형과 평행 패턴이 교차하는 포장 패턴을 구현했다. 기성품 사용을 지양하고, 계단, 포장, 플랜터 등의 기본적인 구조물의 디테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바이런의 태도를 처음으로 반영한 공간이다. 서울로7017~서울역사 연결통로 정원 김영민 교수가 바이런에 합류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작품이다. 오래된 폐쇄램프 공간을 활용해 서울로7017과 서울역사 옥상정원을 잇는 정원을 조성했다. 본 사업을 추진하기에 앞서 파일럿 프로젝트 성격으로 진행된 사업이었기 때문에, 다소 실험적이더라도 시각적으로 쉽게 인지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고, 그리드 형태의 대형 구조물을 설치하고 인공 식물을 사용해 공중정원을 조성하는 대안을 채택했다. 실시설계 이후에도 현장에 지속적으로 관여하며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국민대학교 명원박물관 전통정원 명원박물관은 국민대학교 후문에 위치한 전통 공간이다. 기존의 전통 공간 주변으로 박물관과 티가든을 신축하면서 방치됐던 녹지 공간을 활용해 품격 있는 전통정원을 조성했다. 제한된 일정과 문화재 심의 등으로 인해 순탄치 않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난 여름 공사를 시작했고, 2023년 봄이면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존의 오래된 한옥과 새로 지어진 박물관 사이의 시간적 간극을 연결해주는 요소로서 전통정원의 모습이 기대된다. 공간시공 에이원(안기수 소장)과 스튜디오 천변만화(이양희 대표)와의 협업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반포대교 하부 그린아트길(반하길) 바이런의 일원이었다가 엠엠엠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독립한 박성준 소장과의 첫 협업 작품으로, 용산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반포대교 고가 하부에 조성한 특색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기존의 고가 하부 공간 활용 사업들이 건축적 접근을 통해 채워졌다면, 이번 사업은 조경을 통한 저비용 고효율의 공간 개선 사례를 만드는 일이었다. 조경만으로 고가 하부 공간 활용의 모범 사례를 만들고자 했고, 경사가 있는 현장 특성을 살려 200m 떨어진 이촌 한강공원에서부터 반하길의 모습이 보이도록 했다. 무단횡단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고, 점토 벽돌로 마감한 아트 폼과 파란 원형 벤치로 조형미를 더했다. 반하길은 도심 내 자투리 땅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보라매공원 테마놀이터 설계공모 2022년을 대표하는 이미지 한 장을 뽑는다면, 보라매공원 테마놀이터 설계공모 패널에 사용한 놀이 활동 유형 다이어그램을 선정하고 싶다. 바이런의 실무진들은 소장의 거칠고 허술한 아이디어를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만들어주는 신기한 능력을 갖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던 작업이었다. 놀이터에 필요한 것은 미끄럼틀, 시소, 그네와 같은 고정된 시설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다양한 놀이 활동을 위한 유연한 공간이라는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잘 활용되고 있다. 우리는 디자인을 고민하는 것 이상으로 디자인을 설명하기 위한 방식에 대해서 깊게 고민한다. 이러한 자세를 이미지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파리공원 아카이빙 전시 2022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구었던 파리공원 작업의 클라이맥스가 되었던 작업이다. 파리공원의 새로운 커뮤니티 공간으로 ‘살롱드파리’가 세워졌고, 파리공원 아카이빙을 주제로 개관 행사의 전시를 준비했다. 역시나 한정된 예산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끌어내야 했기 때문에 바이런의 직원들과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생들이 기획부터 시공까지 원스톱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모형 제작, 리플릿 디자인, 실내 정원 설치 등 모든 작업을 직접 해야 했기에 힘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 되었고 직원들 간의 끈끈한 동료애가 만들어진 계기가 됐다. [email protected]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VIRON)은 강아람, 이남진, 김영찬, 그리고 김영민이 이끌고 있다. 좋은 설계는 좋은 회사에서 나온다는 생각으로 설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www.viron.kr
  • [제도가 만든 도시] 제도의 한계: 제도는 정당한가?
    연재를 시작하며: 제도는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필자는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대형 건축사사무소가 아닌 이른바 아틀리에 사무실에서 건축 실무를 했다. 서른을 훌쩍 넘겨 도시로 전공을 확장해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 전까지, 설득력 있으면서 독창적인 안을 제시하는 것이 십여 년 해왔던 일에서 가장 우선되는 가치였다. 그것은 달리 말해 ‘특수해’를 만드는 것이다. 건축 프로젝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역사 지구나 신도시 중심지를 위한 설계, 쇠퇴한 구도심의 도시재생 계획 같은 도시 스케일의 작업에서도 기본적으로 같은 태도를 취했다. 대상 공간의 특수성과 소유자 또는 이용자의 차별적인 요구를 읽어내고 그것을 부각해 디자인의 근거로 삼거나, 혹은 공간을 구성하고 재료를 적용하는 일반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대담한 형태와 새로운 기능 관계를 취하는 등의 접근 방식이다. 그러나 특수해에 해당하는 개별 공간은 도시계획과 각종 법규, 지침이라는 ‘일반해’의 틀 안에서 만들어진다. 어떠한 개별적이고 임의적인 선택이 이루어지더라도 우리 사회가 합의한 도시 공간의 요소들이 갖춰야 할 기능과 미덕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해는 필요하다. 더욱이 도시의 모든 건축물과 공간 환경이 소위 ‘디자인’을 통해 특수해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 시민 다수가 거주하고 이용하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필요를 담는, 비슷하고 반복되는 공간 요소들이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최소한의 기준인 일반해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렇다 면 우리의 도시 공간이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은 이 일반해에 그 원인도, 해법도 있는 것 아닐까? 근대 이후 도시계획과 각종 공간의 형태 규제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스티븐 마셜(Stephen Marshall)이 엮은 『도시 규제와 계획(Urban Coding and Planning)』(2011)1과 에런 벤-조셉(Eran Ben-Joseph)이 쓴 『도시의 규정(The Code of City)』(2005)2을 비롯해 많은 연구자의 이론적 접근과 여러 나라의 방대한 사례를 되짚는 노력으로 발전해왔다. 한국에서도 2010년대 좋은 도시 공간을 만들기 위한 다수의 제도 개선 연구가 수행되었으며, 그 결과는 관련 법 개정과 정책 수립으로 이어지기도 했다.3 격월로 연재할 글을 통해 필자가 이러한 성과에 견줄 개선 방향과 해법을 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연구를 우리 도시의 현실을 사례로 뒷받침하고자 한다. 이 연재는 일반해가 우리 도시의 보편적인 모습―공간적 형태와 그에 결부된 현상―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그 과정에서 도시의 모습을 구성하는 여러 ‘차원’을 따라 살펴보되 다양한 형식과 위계의 도시 제도와 결부시켜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서 도시계획, 건축 법규처럼 범위가 확정적인 용어를 채택하지 않는 것은 이 연재의 목적이 관련 법제들을 개론적으로 전달하려는 데 있지 않으며,4 몇 가지 법제로 도시의 모습을 설명하는 접근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도시 공간을 만드는 질서는 우리가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합의한 ‘사회적 규약’으로서 ‘제도’여야 하기 때문이다. 제도가 만든 도시의 모습 도시를 정의하는 다양한 관점과 표현이 있지만, 도시는 인류가 만든 가장 복잡하고도 복합적이며 수많은 사람이 물리적으로나 비물리적으로 밀도 높게 개입한 공간적 장치라고 한다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달리 말해 도시는 지극히 인위적인 공간 현상이다. 건축역사학자 스피로 코스토프(Spiro Kostof)가 이의를 제기한 것처럼,5 비정형적 도시 조직을 가진 옛 도시들을 으레 ‘자연발생적’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심지어 도시 형태적 우월성의 근거로 삼는 것은 도시의 본질과 어긋난다.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길과 그에 이어지는 독특한 형태의 광장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중세 도시 시에나(Siena)도 실은 의도적으로 계획된 디자인을 엄격하게 강제한 결과다.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일견 혼돈 그 자체인 옛 이슬람 도시들조차도 특유의 종교와 문화에서 기인한 일관된 배치 원칙을 품고 있다.6 즉 도시를 식물의 자생 군락지처럼 지리적 특성이나 기후 조건의 필연적 결과라고 해석하는 것은 도시의 모습을 설명하거나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 충분치 않다. 결국 도시의 모습, 즉 도시 공간의 형태와 거기서 일어나는 공간적 현상은 사람에 의한 의식적 행위의 집합적 질서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2023년 현재, 서울을 비롯한 대한민국 대도시의 모습을 설명하는 질서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떻게 작동해 왔을까? 한국전쟁 이후 도시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 등 사회경제적 틀이 가장 근본적인 질서를 구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이유라면 그 어떤 것도 용인되었다는 뜻이다. 부동산을 매개로 한 자본 축적의 욕망 또한 우리 도시의 강력한 주형(鑄型)으로서 우선순위를 차지해왔다. 물론 이를 공공의 이익에 반하지 않도록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상위의 가치 질서가 실제 도시 공간에 투영되어 구현되는 과정에는 다양한 위계의 법정, 비법정 계획과 수많은 법규와 지침 등으로 구성되는 실행 질서가 작동한다. 이 연재는 한국 도시의 모습을 만든 여러 위계의 질서 중 이 실행 질서에 초점을 맞추며, 이를 ‘제도’라는 용어로 표현하고자 한다. 근대 이후 도시를 만드는 제도는 그 지위 자체로 합리성과 공공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가정되어 그 강제력을 인정받는다. 한국의 현대 도시제도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많은 학자와 실무자가 지속적으로 비판해왔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다수가 느껴왔듯, 도시 제도는 완전하지도 의도한 대로 작동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든다. 또한 본질적으로 도시 제도는 특수해가 아닌 일반해의 성격이 강하므로 현실의 다양한 상황에 획일적으로 적용될 때 오히려 불합리한 결과를 야기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공공의 이익과 특정 집단의 이익 사이를 중재하기보다 오락가락한다. 그 와중에 개개인은 수혜와 대가의 계산서에 일관성이 없다고 느낄 수 있다. 이 연재에서는 제도가 만든 도시의 모습에서 특히 이런 점들을 다각적 차원으로 들춰내고자 한다. 이번과 다음 회에서는 그에 앞서 제도에 대한 더 근본적인 질문, 즉 제도는 정당한지 그리고 효율적인지 다룬다.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이리저리 헤집는 방식으로. 각주 정리 1. Stephen Marshall ed., Urban Coding and Planning, London: Routledge, 2011. 2. Eran Ben-Joseph, The Code of the City: Standards and the Hidden Language of Place Making , Cambridge: The MIT Press, 2005. 3. 대표적으로 건축공간연구원이 수행한 ‘건축의 품격 향상을 위한 건축물 형태 규제 개선방안 연구’(2011), ‘근린생활환경 향상을 위한 건축물 규제 개선 기본방향 연구’(2012), ‘사람 중심 가로 조성을 위한 도시설계 연구’(2015), ‘장소기반 전략계획을 위한 도시계획체계 개선방안 연구’(2018) 등이 있다. 4. 한국어로 쓰였으나 전공자도 이해하기 어려운 법 조항을 옮기는 것은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 5. Spiro Kostof, The City Shaped: Urban Patterns and Meanings Through History , London: Thames & Hudson, 1991, pp.10, 70~71. 6. Marshall, 앞의 책, p.10.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디자인 및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 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 [모던스케이프] 주택 정원의 유행
    소설가 이효석(1907~1942)은 ‘낙엽을 태우면서’(1938)에서 낙엽을 타는 냄새가 갓 볶은 커피와 잘 익은 개암이 생각날 정도로 좋다고 했지만, 삼십여 평의 뜰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쌓이는 낙엽을 긁어모으는 게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잔뜩 푸념을 늘어놓았다. 낙엽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비에 젖거나 흙 속에 묻혀 지저분해지니 날아 떨어지는 족족 뒷시중 들 듯 치워내야 했으니, 정원 관리가 번거로워도 부지런히 챙겨야 하는 일임을 아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공감할 만한 표현이다. 한편으로 벚나무, 능금나무, 단풍나무, 담쟁이의 초록빛이 사라지고 칙칙한 낙엽으로 뒤덮인 상황을 묘사한 글을 읽다 보면, 문득 작가의 정원이 궁금해진다. 교수이자 작가인 이효석이 몸소 가꾸던 정원일 것인데, 이 시절 지식인의 주택 정원은 과연 어땠을까 싶은 것이다. 수필이 발표된 1930년대는 일부 계층에서 주택에 정원을 두는 것이 유행이었다. 주택 정원에 관심을 두고 가꾸기에 열중한 이는 대체로 문학인, 음악인, 교수, 사업가 등이었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해외 유학 경험이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효석과 함께 구인회(九人會) 동인이었던 소설가 이태준(1904~미상)은 도성 밖 성북동으로 이사하고 ‘나무와 꽃 속에 싸인 초옥草屋’을 꾸몄다. 지금은 수연산방이라는 전통 찻집으로 바뀌었지만, 이태준 생전에는 음악을 전공한 부인 이순옥과 함께 마당 곳곳에 다양한 수종을 심고 가꾸어서 대중 잡지에 정원이 소개될 정도였다. “샛노란 꽃이 산들거리고 파초와 석류나무가 있으며, 담장에는 한련과 봉선화, 다알리아, 씨 없는 개량종 해바라기를 식재했다. 나무를 집 울타리 삼아 뺑 둘렀고 그 아래에는 갓나무, 진달래, 채송화, 백일홍을 가득 심었다. 정원 한편에는 텃밭을 두어 채소를 심었다.” 특히, 부인 이순옥의 화초에 대한 설명은 매우 흥미롭다. “이 다알리아는 일본서 주문해왔는데 보통 다알리아는 꽃이 피면 무거워서 고개를 숙이는데 이것은 그대로 꼿꼿하게 서있다고 해서 사왔어요. 그리고 이 해바라기는 꽃 가운데 씨가 생기지 않고 가운데서부터 꽃잎이 족– 연달아 나와서 여간 이쁜 게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프랑스 어떤 유명한 미술가가 이 꽃을 보고 기가 막히게 감탄하고 칭찬을 했다고 해서 사다 심었어요.” 정원에 심기 적절한 원예 품종이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었다는 사실도 신선하지만, 정원에 해바라기를 심게 된 이유가 (어쩌면 반 고흐일지도 모르는) 어느 유명한 화가의 해바라기에 대한 감상평 때문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참고문헌 길지혜·박희성, “1920~30년대 한국 주택정원 인식과 정원가꾸기 양상”, 『한국조경학회지』 50(2), 2022, pp.138~148. “나무와 꽃 속에 싸인 초옥, 소설가 이태준씨 댁”, 『신가정』 1933년 6월호. “自然的으로 만든 庭園, 은행가 김연수씨 댁”, 위의 책. “장안의 국제결혼 스윝홈순례 류일한씨”, 『여성』 1937년 11월호. 이효석, ‘낙엽을 태우면서’, 1938. 사진 출처 그림 1. “조선말을 사랑한 선비 작가 이태준”, 「한겨레」 2015년 10월 1일. 그림 2. “나무와 꽃 속에 싸인 초옥, 소설가 이태준씨 댁”, 『신가정』 1933년 6월호, pp.127~129. 그림 3. 『신가정』 1933년 6월호.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