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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서울, 경계 긋기와 경계 허물기
    강변도로를 달리면서 혹은 고층 건물에서 서울 시내를 바라보면 나 자신이 서울이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기계 속의 작은 부품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천만이라는 많은 인구가 먹고 자고 일하고 노는 데 큰 불편 없이 작동되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서울은 진정 아무 문제도 없는 도시인가 서울의 사대문 안은 600년의 역사를 지녔으며, 강남으로 확장된 현재의 서울시는 백제 시대부터 계산하면 2,000년의 역사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서울은 짧게는 600년 동안, 길게는 2,000년 동안 진화해온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진화의 과정 중에서도 한국 전쟁 후 부터 현재까지의 60년은 그 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급속한 변화가 이루어진 시기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태에서 세계 도시로 발돋움한 오늘의 서울로 성장하기까지 와우시민아파트 붕괴, 재개발로 인한 철거민 이주,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붕괴, 남산외인아파트 철거 등 많은 시행착오와 아픔이 있었으나, 이러한 성장통이 있었기에 오늘의 서울이 가능했다. 서울의 변화는 대략 2000년을 기점으로 그 전후의 성격이 달라진다. 즉 1990년대까지는 대규모개발 위주의 과격한 변화가 주를 이룬 ‘경계 긋기’ 작업이었다면, 21세기에 접어들면서는 시민의 눈높이에 맞춘 친환경적, 친문화적, 친보행적 개발이 대세를 이룬 ‘경계 허물기’ 작업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개발 방향의 전환은 뉴 어바니즘으로 불리는 보행자 중심의 서구 도시 개발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지만,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방자치제와 지자체장 직선제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표를 의식한 시민 중심의도시 행정이 전국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시민의 피부에 와 닿고 가시적 효과가 큰환경, 교통, 경관, 문화, 복지 등이 도시 행정의 키워드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도시계획의 근간이 되는 토지이용계획은 대표적인 경계 긋기라 할 수 있다. 2000년 이전까지는 지구 생태계의 일부인 토지에 주로 경제적, 기능적 관점에서 상업지역, 공업지역, 주거지역, 녹지지역 등 평면적, 기하학적 경계를 만들고 분리시켜 생태계를 파괴하는 무리한 개발을 관행으로 일삼아왔다. 이러한 무모한 개발을 제어하는 수단으로 등장한 그린벨트 역시 또 하나의 경계 긋기에 지나지 않았다. 1971년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의 대규모 도시 외곽에 그린벨트(도시개발제한구역)가 지정되었는데, 경계선 안과 밖의 차별적 행위제한에 따른 그린벨트 내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그린벨트 해제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2001년 제주도 그린벨트의 전면적 해제를 시작으로 수도권에서도 부분적 해제가 이루어져 개발과 보존의 부자연스러운 구역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초의 한강 개발은 수로를 정비하고 둔치를 조성하여 일면 정돈된 강변 경관을 만들었으나, 이 역시 또 하나의 경계 긋기가 되고 말았다. 모든 제방이 직선형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자연 하천의 모습은 사라지고 물 흐르는 곳과 흐르지 않는 곳을 직선적으로 경계 짓고 말았다. 이러한 비생태적 경계 긋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는 2000년대에 들어 활발하게 진행되는데, 콘크리트의 경직된 경계를 허물고 유연한 자연형 하천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한강공원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1980, 90년대의 주택지 재개발과 재건축은 저층주거지 한가운데에 고층의 나 홀로 아파트를 만들어 기존 주거지와의 물리적·사회적 경계를 만들고 말았다. 기존 도시 조직의 붕괴와 원주민의 낮은 재입주율 등의 부작용이 초래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주민 주도의 ‘도시 재생’ 개념을 도입하여 대규모의 택지 개발보다는 중소규모의 현지 개량 혹은 정비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경계 긋기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서울은 2000년 넘는 역사의 층위가 공존하고 있는 박물관 같은 도시이기도 하다. 강동의 암사동에서는 원시 시대 주거지가 발굴되었으며, 한성백제 시대의 몽촌토성, 조선 시대의 왕궁, 도성, 정자 등 많은 역사적 유물을 볼 수 있다. 또한 서울은 전후 폐허에서 시작해 짧은 기간 동안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하여 한옥부터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거 양식이 부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는 도시다. 따라서 서울은 서로 다른 시기를 대표하는 지역 간의 시간적 경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역사성과 조화성이 충만한 도시로 발전해야 한다. 최근 들어 도시 개발과 성장의 그늘에서 만들어진 사회 계층 간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면서 환경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많은 도시 가운데 특히 서울은 양극화가 두드러지고 계층 간의 경계가 매우 두껍다고 할 수 있는데, 소외 계층이 평등하게 도시 환경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저소득층 주택과 골목의 개량, 보행 약자를 위한 시설 개선, 노인과 어린이를 위한 복지 시설의 건립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모두 계층 간의 경계를 허무는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서울은 개발과 성장 과정에서 수많은 공간적, 시간적, 사회적 경계를 만들어왔는데, 21세기 들어오면서 이들 경계를 해체하려는 작업이 여러 측면에서 시도되고 있음은 다행이다. 이러한 시도가 성공해야 서울은 진정한 세계 일등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이 이러한 경계 허물기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는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아직도 만연해 있는 경제성 중심의 개발 행태, 전시성 생색내기 행정, 집단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시민 모두가 함께 행복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주민, 전문가, 행정가 등 사회 구성원 모두가 뜻을 모아 장기적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힘을 모아 흔들림 없이 실천할 수 있어야 비로소 경계 허물기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임승빈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를, 버지니아 공과대학교에서 환경설계계획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런던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를 하였고,하버드 대학교에서 객원 교수를 역임하였다. 저서로 『환경심리와인간행태』, 『경관분석론』, 『조경이 만드는 도시』, 『도시경관계획론』 등이 있으며, 한국조경학회, 한국농촌계획학회, 한국경관협의회, 한국인공지반녹화협회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며, 환경조경나눔연구원 원장을 맡아 조경을 통한녹색환경복지의 평등한 구현과 그린유토피아 건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임승빈[email protected] / 환경조경나눔연구원 원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2014년05월 / 313
  • [에디토리얼] 내 고향 서울
    “내 고향 서울은 만인의 타향이다. 그러므로 서울에 고향을 건설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한 뜨내기일 뿐이다.” 얼마 전 열린 한양 도성 학술회의, 작가 김훈의 음성이 가슴을 파고든다. 부산에서 났지만 백일을 갓 넘겨 서울로 이주했으니 내 고향도 서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누가 고향을 물으면 “부산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자랐다”고 답한다. 서울과 고향 사이에 등호를 넣지 못하는 나는 서울의 구경꾼이나 이방인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 서울로 올라온 부모님은 참 이사를 많이 다니셨다. 주민등록초본을 떼어보니 스물 세 개의 주소가 찍혀 있다. 2년에 한번 꼴로 이사를 다닌 셈이다. 덕분에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동네에서 거대 도시 서울의 변화와 발전을 역동적으로 경험하며 성장했다. 내가 서울을 고향이라 말하지 못하는 건 단지 유목민 같았던 이사의 역사 때문일까? 아마도 거주한 장소의 숫자보다는 그곳들에 대한 기억의 상실이 고향의 부재를 낳았을 것 같다. 어쩌면 고향은 공간이기보다는 시간일 것이다. 시간은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고 붙잡을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의 힘을 빌려 시간의 역류를 꿈꾼다. 기억은 시간의 방향을 거스를 수 있다는 기대감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고향, 그것은 곧 기억이다. 초록의 산야보다 콘크리트 주차장이 더 익숙한 원조 아파트 키드이지만, 나에게도 장소의 기억은 여러 개의 파편으로 조합되어 남아있다. 그러한 단편들의 콜라주가 그나마 나의 고향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서울은 고향의 매개체를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화시켜 왔다. 연 날리던 들판이 롯데월드가 된 건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지금의 로데오거리에선 스릴 넘치는 화약 놀이 카니발이 열렸었고, 타워팰리스 자리에선 총천연색 만국기 아래를 달리며 스케이트를 탔다. 기억할 수 있는 고향이 물리적으로 사라졌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이제 시간을 거스르기 위해, 고향의 파편을 경험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침대 맡에서 아이패드의 스크린을 두 손가락으로 벌리고 오므리기를 반복하며 옛 위성사진을 들여다보는 일뿐이다. 2012년에 서울시가 시행한 ‘서울시민의 고향 인식도’ 조사를 보면 매우 놀랍게도 시민의 81.1%가 서울이 고향이다, 또는 고향 같다고 응답하고 있다. 서울을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중 반은 서울 태생이고, 나머지 반은 다른 지역 출신이다. 이들에게 서울은 고향‘이기’보다는 고향‘이어야’ 하는 도시인 셈이다. 그것은 패티김이 노래한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 …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렵니다”(서울의 찬가, 1969년)라는 역설과 다르지 않다. “아, 우리의 서울, 거리마다 푸른 꿈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서울을 사랑하리라”(서울, 1982년)는 이용의 맹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울, 서울, 서울, 아름다운 이 거리 … 네버 포겟 오 마이 러버 서울”(서울 서울 서울, 1988년)이라는 조용필의 고백도 고향을 갖고자 하는 보편적 욕망의 표상일 것이다. 우리가 서울을 고향이라 여기고 싶은 건 서울이 육백 년의 역사 도시이기 때문이 아니다. 산 많고 강좋은 도시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전쟁의 상흔을 딛고 짧은 시간에 일구어낸 기적 같은 경제 발전때문도 아니다. 63빌딩이나 DDP 같은 화려한 랜드마크가 서울을 고향으로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서울을 고향으로 열망하는 건 서울이라는 도시의 시공간이 일상생활의 현실과, 또 그 기억과 뒤엉켜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은 그의 고향 풍경과 삶을 담은 자전 에세이 『이스탄불』에서 이렇게 말한다. “도시는 우리 자신의 삶과 정신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자신 외에 도시의 중심부란 없다.” 도시의 핵심은 사람이며 삶임을 강조한 것이다. 도시 자체가 정치의 최전선이었던 지난 10여 년간 서울은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꿈꾸었다. 이명박, 오세훈, 박원순 시장은 도시의 구조와 형태를 재조직하고 삶과 문화를 재편성하는 그랜드 플래너를 자임했다. 계획가로서의 서울 시장들, 그들이 선언하고 추진해 온 서울의 비전과 대형 프로젝트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 우리의 희망과 어떻게 접속해 왔는가? 이번 호의 서울 특집은 이런 의문에서 기획되었다. 애초에 구상했던“그들의 서울, 우리의 서울”이라는 주제는 “서울의 오늘을 읽다”로 축소되었지만, 그들의 ‘세계 도시서울’, ‘걷고 싶은 서울’, ‘디자인 수도 서울’, ‘공유도시 서울’, ‘푸른 도시 서울’이 서울을 우리의 고향으로 만드는 일에 어떻게 기여했는가 하는 문제의식은 읽힐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의 정석,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의 조한,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의 이경훈, 『랜드마크; 도시들 경쟁하다』의 송하엽, 『건축·도시·조경의 지식 지형』의 조경진 등 조경, 건축, 도시 분야의 베스트셀러 필자들이 이번 특집에 흔쾌히 참여해 주셨다. 이들은 시정市政, 기억, 거리, 랜드마크, 공원을 단면으로 잘라 건강하고 편리하고 아름다운 도시 살이를 디자인해야 할 우리 전문가들의 과제를 드러내 주고 있다. 김훈은 이렇게 글을 끝맺는다. “나는 내 고향 서울이 만인의 … 고향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한다. 타향사람들아, 서울이 당신들의 고향이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2014년05월 /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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