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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평] 9회 말 구원 투수의 딜레마
    여느 수도권의 교외와 마찬가지였다. 길 양옆으로 즐비한 짝퉁 르네상스 양식의 모텔, 빅토리아풍의 펜션, 촌스러운 대형 폰트로 붕어찜과 매운탕을 광고하는 원색의 요란한 간판들…. 그 어지러운 풍경에 눈이 쉬이 피로해지지만 그럼에도 양평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푸르렀다. 차창 밖으로는 굽이굽이 산과 강이 근경, 중경, 원경으로 계속 펼쳐졌다. 양평은 분명히 녹시율이 높다. 국내 최초의 ‘치유의 숲’이 들어설 만큼 산림 자원이 풍부하다. 한마디로 양평은 일상 탈출을 꿈꾸는 자의 안식처다. 서울 시민에게는 한 시간 안팎을 투자하면 고밀도 회색 도시에서 벗어나 풀과 흙 내음이 가득한 전원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경제학적으로 말하자면 시간과 비용의 투자에 비해 꽤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입지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양평에는 전원주택, 레저 시설뿐만 아니라 기업의 연수원도 많이 자리 잡고 있다. 산 좋고 물 맑은 서울 교외에서 업무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리프레시와 함께 각종 세미나와 워크숍을 진행하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Healing in Nature’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는 현대 블룸비스타 또한 그런 목적으로 계획된 기업 연수 전문 리조트(시공 중에 호텔로 변경)다. 마무리 투수와 조경가의 상관관계 흥미롭게도 블룸비스타의 건물은 여타의 리조트 같이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남영동 대공분실의 외관을 설계 모티브로 삼은 듯한 무채색의 차갑고 각진 도심 속 오피스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십 몇 층의 날카로운 매스가 남한강을 향해 쌍둥이처럼 서 있는 모습은 전원 풍경을 기대하며 도시를 떠났던 사람들에게는 뜻밖의 정경일 것이다. 게다가 가파른 기울기의 경사로 이루어진 땅에 지하 주차장을 끼워 넣고 그 자락에 건물과 시설을 앉히다 보니 수직의 높은 콘크리트 벽과 지하 주차장의 입구가 무엇보다 도드라지는데, 이 또한 사람들이 양평에서 기대하는 ‘양평’의 모습은 아님이 틀림없다. 왠지 첨단화된 신도시에서 볼 수 있는 오피스 건물 같기도 하고 최신식 아파트 단지의 입구 같기도 하다. 어쨌든 여기까지 와서 반가울 만한 얼굴은 아니다. 탈도시 아니 탈서울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다지 성공적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세련된 도회지풍의 분위기를 내뿜기 때문이다. 즉, 건축적 측면에서 블룸비스타는 ‘양평’하면 으레 연상되는 탈서울적 체험을 충분히 만족시키지도 못하고, 또 강렬하게 전달하지도 않는다. 외부 환경과 건축물의 조화를 통해 전체 경관의 완성도를 높여야만 하는 조경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만큼 어려운 과제도 없을 게다. 건축가로부터 구체적인 작업을 위해 캔버스를 넘겨받을 때 왠지 억울한 심정까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젠장, 또 9회 말 구원 투수구나… 어떤 구속과 구질로 극적인 역전승을 이끌어내야 하나 고민스러울 만한 상황이다. 고심 끝에 찾은 해법이 바로 외부 공간의 ‘대비’와 ‘중재’다. 양평의 자연성을 극대화시켜 경험하게 하는 것과 동시에 건물의 인공미를 순화시키는 전략이었다. 전략과 전술에 관하여 먼저 대비를 위해서 크게 두 가지 다른 이미지의 공간을 엮었다. 이 두 가지는 다름 아닌 건물과 직접 맞닿아 있는 모던한 공간과 산과 이어진 자연적인 공간이다. 특별한 전이의 장치 없이 병치되어 연결된 이들 공간은 각 개별 공간의 체험을 더욱 강렬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예를 들어, 원래는 수영장으로 조성될 예정이 었던 건물에 접한 남서측 인공 지반의 공간은 도시적인 형태와 소재의 데크와 수경 시설로 이루어진 다목적 이벤트 공간이다. 반듯하게 잘 짜인 건축적인 벽으로 구획된 중정의 모습을 지닌 이 공간은 사실 서울 시내 고급 레스토랑의 앞마당과 같은 느낌이다. 특히, 야외 강연 등의 행사를 수용하기 위해 조성된 계단식 스탠드에서 느껴지는 세련된 조형미와 깔끔하게 다듬어진 재료의 물성은 - 비록 시점의 끝에는 자연스러운 배경으로 연출된 소나무 군식이 있을지라도 - 이곳이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양평’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게끔 한다. 그런데 그 현대적인 스타일의 벽과 계단을 넘어가면 바로 산자락의 지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소담한 수목원 형태의 후원을 만나게 되는데, 이러한 대비가 전해주는 느낌은 사뭇 강렬하다. 특히 그 ‘낭만의 공간’과도 같은 산책로를 걷다 보면, 사시사철 변하는 숲의 자연성이 이전의 정형성과 대비가 되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뭐니 뭐니 해도 이런 이분법적인 이미지를 중재하는 가장 지배적인 조경 요소는 물이다. 조경 소재로서 물은 특별한 힘을 지녔다. 정靜과 동動, 규칙과 불규칙, 빛과 그림자 등 상반되는 특성이 함께 내재되어 있는 물은 아무리 정형적인 형태의 수반에 갇혀 있어도 잔잔한 움직임과 소리를 만들어내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자연을 만나게 한다. 민병욱은 1975년생으로, 경희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환경대학원과 네덜란드 바허닝헨 대학교(Wageningen University)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ArizonaState University)에서 환경설계 및 계획에 관련된 이론으로 박사 학위를받으면서 학제간 교육과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동심원과 오이코스등에서 다양한 조경 및 도시 관련 실무 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다. 얼마전까지 계명대학교 생태조경학과에서 교수로 지냈고, 현재는 경희대학교환경조경디자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 민병욱[email protected] /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교수 / 2015년05월 / 325
  • [칼럼] 잡지를 만드는 어떤 방식
    아는 사람은 아는, 『연필 깎기의 정석』이라는 책이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만화가이면서 연필 깎기의 장인을 자처하는 데이비드 리스가 쓴 책이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어떻게 연필을 ‘날카롭게’잘 깎을 것인가! 주머니 칼, 외날 휴대용 연필깎이, 다구형 휴대용 연필깎이, 이중날 회전식 연필깎이 등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연필 깎는 방법을 소개하는데, 완독은 달랑 2시간이면 충분하다. 작가는 “닳아서 뭉툭해진 연필 촉을 깎는 것은 그만의 독특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쉽게 비유하자면 보석을 닦아서 더 반질반질 윤이 나고 원래의 완벽한 형태가더 잘 드러나도록 하는 일과 비슷하다”며 연필 깎는 행위에 콧기름을 바른다. “인간이 만든 이 단순한 물건(연필)은 개인의 권능을 배가시킨다”고 어느 공학 칼럼니스트가 말했다지만, 그래봤자 하찮은 연필 깎기 따위가 뭐라고. 하지만 천성이 ‘호갱’과라 책을 읽은 뒤 한동안 연필 깎는 재미에 빠졌다. 솔직히 말하면 다양한 형태의 연필깎이 모으는 재미를 누린 거지만. 얼마 전 우연히 인사를 나눈 한 건축가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어떤 잡지를 만들고 싶으세요” 우물쭈물하다 던진 엉성하고 짧은 답이 이랬다. “혹시 『연필 깎기의 정석』이란 책 보셨나요? 어떤 잡지를 만들고 싶다기보다, 그런 방법으로 잡지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 덜 떨어진 이상주의. 절지류 더듬이만큼 감각을 가동해도 생존할까 말까인 게 흔히 말하는 상업 잡지의 숙명인데, 한가롭게 연필심이나 다듬는 스탠스를 입에 올리다니. 맞다. 한 달단위의 상업 매거진을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꾸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실시간으로 전개되는 엔터테인먼트 소식을 부모님 안부 묻듯 챙겨야 하고, 유명 해외 도시 통신원을 써서라도 인구 서베이하듯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확인해야 하고, 브랜드들의 제품 프레젠테이션 행사에 쉼 없이 출석 도장을 찍어야 하고, 시즌마다 열리는 패션 컬렉션에 기자를 보내 두 계절 앞선 스타일 동향을 곳간에 쌓아둬야 안심이 될까 말까다. 노출 빈도가 빈번해진 배우 차승원과 최지우가 같은 소속사에 몸담고 있다는 디테일은 기본, 요즘 트렌드의 최고봉인 ‘먹방’ 프로그램에 등장한 셰프 몇몇과 안면 정도는 트고 있어야 기자들과의 기획회의에서 말발이 선다. 직접 라임을 타진 못해도, ‘언프리티 랩스타’ 파이널 라운드에 치타와 제시와 육지담이 올랐고 최종 우승은 치타의 차지였다는 걸 줄줄 꿰고 있으면 반 발자국 앞선 안도를 누릴 수 있다. 정리하면, 상업 잡지의 최전선에서 승리하려면 링 위에 오른 복서처럼 전신의 감각이 팽팽하게 살아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것도 당대의 복서 매니 파퀴아오처럼. 흥미로운 건 이 ‘어마무시’한 각축장에도 역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전문지가 아닌 종합지의 독자는 말 그대로 이동 타깃이다. 연령대와 성별 정도만 거칠게 가를 뿐 나머진 복불복이다. 전문지가 해당 분야의 선도적 담론 앵글에 전력 투구를 한다면, 종합지는 다양한 길 앞에서 서성거리는 운명을 타고 난 셈이다. 매 호마다 빠지지 않는 고명 같은 기사 소스가 연예인인 건 그 때문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만한 만인의 관심사는 없으니까. 상업지의 꽃이라 불리는 여성 패션지 발행일 직전의 포털사이트에는 각각의 매체가 진행한 연예인 화보가 경쟁하든 디지털 가판에 늘어선다. 아쉬운 건, 한때 ‘기사의 꽃’이라 불렸던 스타 화보의 감도를 좀체 찾을 길 없다는 점이다. 사진에 찍힌 워터 마크를 지우면 이게 어느 매체의 결과물인지 알 방법도 없다. 상업적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전방 공격수로 연예인을 내세웠지만, 골 결정력은 계량되지 않는다. 다른 어느 장르보다 트렌드에 민감해야하는 상업지의 요즘은, (주관을 잔뜩 묻혀 전하면) 그래서 더 재미없다. 회고조로 읊자면,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매체 각각의 개성이 묻어나던 시절이었다. 필드 위에서 기사 소스를 묻고 찾던 시절이었다.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요즘 기사 소스의 베이스 캠프는 포털과 케이블 TV와 SNS인 게 현실이다. 트렌드를 좇는다고 천지 사방을 누볐지만 그게 사실은 모니터 속 포털 화면이거나 리모컨으로 핸들링한 케이블 TV이거나 엄지로 재단한 SNS 세계인것. 역설은 여기서 생겨난다. 누굴 찍어도 흔하고 뻔한 화보로 귀결되듯, 차별적 경쟁을 위해 진행한 기사의 결과 역시 도긴개긴인 것. 그 와중에 세 개의 베이스 캠프에서 조성된 트렌드에선 인공 감미료 맛이 풍긴다. 복기하면 그 획일적 맛을 매체가 각자 취향을 앞세워 따로 느낀다고 생각할 뿐, 아예 트렌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물론 시장에서의 생존을 위해 연예인과 트렌드라는 두 축을 다루지 않을 도리는 없다. 월간 『인터스텔라』가 아닌 다음에야, 우리 모두는 지구라는 행성에 발붙이고 종이 잡지와 운명을 같이 하는 중이니까. 단지 바람이 있다면 잡지 볼륨의 한 귀퉁이에라도, 연필을 어떻게 깎아야 잘 깎는 것인지 말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다. 두툼한 트렌드 기사와 셀레브리티 화보를 앞세워 많이 팔리는 잡지도 필요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생각을 전하는 한 페이지짜리 기사가 ‘앙꼬’처럼 곳곳에 숨어있는 잡지도 필요한 거 아닐까. 오로지 흥미본위뿐인, 팔리기 위해서라면 도핑도 불사할 것 같은 요즘 상업지 시장에서 딱 낙오될 소리라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 잽을 잘 치는 복서가 훅 한 방에 승부를 거는 복서보다 유능하고 매력적이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지 않은가. 문일완은 남성지로 입문해 여성 패션지, 종합지, 현재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에 이르기까지 20년 넘게 잡지를 만들고 있다. 경력의 대부분을 남성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일로 채웠지만, 정작 남자들의 본능적 로망으로 불리는 시계, 자동차, 패션 등엔 별 관심이 없다. 김성근 야구와 혼자 영화보기, 그래픽 노블과 르포물을 사들이는 게 최근의 낙이다.
    • 문일완[email protected] /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루엘』 편집장 / 2015년05월 / 325
  • [에디토리얼] 조경비평 봄
    ‘조경비평 봄’이 열 번째 봄을 맞았다. 유난히도 추웠던 2005년 이른 봄에 첫 모임을 가졌고, “아, 어서 봄이 왔으면!”이라는 누군가의 탄성에서 모임이름을 땄다. 초창기 문서에 활자로 남아 있는 ‘조경비평 봄’의 지향점은 “조경 비평의 실천 환경 구축, 조경 담론의 생산 기지 조성, 조경 이론과 실천의 연결, 조경과 사회의 상호 개입을 위한 네트워크 조직, 조경 비평의 유통과 저장을 위한 매체 실험”이다. 네 명으로 단출하게 출발했지만, 열 번의 봄을 거치며 이십대 후반부터 오십대 중반에 이르는 여러 세대 스물두 명의 모임으로 성장했다. 고민과 토론의 성과를 모아 『봄, 조경 사회 디자인』(도서출판 조경, 2006), 『봄, 디자인 경쟁시대의 조경』(도서출판 조경, 2008), 『공원을 읽다: 도시 공원을 바라보는 열두 가지 시선들』(나무도시, 2010), 『용산공원: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출품작 비평』(나무도시, 2013), 네 권의 책을 펴냈다. 우리 조경계에서 비평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은 비평의 역할을 다룬 몇 편의 글과 논문이 발표된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됐다. 그러나 공론장을 통해 초보적이나마 비평이 실험된 것은 1998년의 『Locus』 창간호가 처음이다. “작품의 빈곤, 이론과 비평의 부재 속에서 허덕여 온 한국 조경의 문제를 비평의 장을 통해 해소하며, 현실과 대화하는 조경 비평의 실천 환경을 구축한다”는 선언과 함께 “조경의 대안적 담론 공간”을 자임하며 출간된 『Locus』는 “조경과 비평”이라는 부제를 단 2호(2000년) 이후 아쉽게도 명맥을 이어가지 못했다. 『Locus』가 마주했던 가장 큰 난관은 비평 전문 독립 저널로 자립하기 힘든 여건과 구조였다.『Locus』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조경비평 봄’은 지속가능한 비평 환경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다. 첫 번째 전략은 저널이 아닌 단행본 출판이었다. 비평의 생산을 위한 독립 지면을 확보하여 보다 안정적으로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그 결과 ‘조경비평 봄’의 이름을 단 네 권의 단행본을 대략 2년 간격으로 선보일 수 있었다. 두 번째 전략은 잠재 인력의 발굴과 신진 인재의 양성을 통해 비평가 풀을 넓히는 것이었다. 초창기 구성원의 추천으로 몇몇 조경 이론·역사학자, 조경가, 언론인이 모임에 동참했고, (때로는 『환경과조경』의 주최와 후원으로, 몇 차례는 자체적으로) 매년 ‘조경비평상’을 열어 젊은 필진을 키우고자 했다. 이 상을 통해 ‘조경비평 봄’에 동승한 신진 비평가가 아홉 명에 이른다. 얼어붙은 출판 시장에 도전하며 네 권의 책을 내는 가시적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2015년 봄의 ‘조경비평 봄’은 소강 상태를 겪고 있다. 지속가능한 비평활동의 가장 큰 동력이라 할 수 있는 피드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상 작가와 독자의 반응은 비평을 성립하게 하는 토대다.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비평은 ‘창작→작업·작품→경험·감상→비평→창작’이 순환되는 소통의 구조 안에서 작동할 때 의미를 보장받는다. 이 순환 고리의 각 부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비평은 외마디 외침처럼 공허할 뿐이다. 한국 조경의 현실이 아직 비평을 요청하지 않는 수준에 머물고 있거나 비평을 잉여의 사치 정도로 받아들이기 때문일까. “작가도 없고 작품도 없고 사회적 인정도 없는데 도대체 비평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고, 그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비평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한국 조경 비평의 역사가 20년을 훌쩍 넘어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무반응의 원인을 조경계와 독자의 무관심에서만 찾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 지난 10년간 ‘조경비평 봄’이 주력했던 단행본 중심의 활동이 도리어 비평가와 작가, 비평가와 독자, 비평가와 대중 사이의 활발한 쌍방향 소통을 어렵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공모전과 프로젝트를 해내기에 급급하던 물량주의 조경에 반성을 촉구하고자 했던 『봄, 디자인 경쟁시대의 조경』, 보다 대중적인 시선으로 조경과 사회적 가치의 접촉면을 넓히고자 했던 『공원을 읽다』, 다층적 역사와 의미가 복잡하게 뒤엉킨 한 프로젝트를 심층 조명함으로써 조경의 사회적·정치적 개입을 꾀했던 『용산공원』은 완전히 다른 의도로 기획된 책이었다. 그러나 피드백의 공백, 반응의 진공 상태는 마찬가지였다. ‘조경비평 봄’의 매체 전략에 교정이 필요함을 반증한다. 지난 4월 초에 열린 본지 편집위원 회의에서는 저널리즘과 비평을 주제로 다양한 의견이 오고갔다(이번 호 뒷부분에 짧게 줄여 싣는다). 편집위원들은 비평 대상의 다층화와 비평 형식의 다각화라는 이슈를 놓고 차수를 바꿔가며 새벽까지 논의를 이어갔다. 한 달 내내 『환경과조경』과 ‘비평(가)의 자리’라는 숙제가 머릿속을 떠다닌다. 2014년의 리뉴얼 이후 『환경과조경』은 게재 작품이나 공모전에 대해 적어도 한 달에 한 편 이상의 비평을 싣는 편집 원칙을 지키고 있다. 되도록 외부(의 신진) 필자에게 비평을 청탁하고 있지만 본지 기자가 작품을 읽거나 인터뷰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동료 조경가가 평문을 쓰거나 대담을 진행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형식을 실험하고 있다. 그러나 ‘조경비평 봄’의 경우와 크게 다를 바 없이 『환경과조경』의 비평에도 작가나 독자의 후속 반응이나 토론이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드물다. 비평의 생산뿐만 아니라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이 쉽지 않은 숙제를 함께 풀어갈 신인을 초대한다. 이번 봄에도 『환경과조경』은 ‘조경비평상’을 연다. ‘조경’을 주어로 고민 중인 예비 비평가들에게 조경을 묻고자 한다.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갈 ‘조경비평 여름’을 기다리며 ‘조경비평 봄’이 심사를 맡는다. 마감은 7월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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