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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서론만 있는 글쓰기
글이 써지지 않을 때면, 럼블피쉬의 ‘비와 당신’을 무한 반복해 듣는다. 꽤 오래된 습관이다. 다른 곡을 섞어 들을 때도 있지만 그건 상태가 좋을 때의 이야기다. 한곡만 반복해서 듣는 기능이 있는 줄 몰랐을 때는 ‘비와 당신1’, ‘비와 당신2’, ‘비와 당신3’의 방식으로 파일명을 다르게 만들어 놓고 연이어 재생했다. 왜 ‘비와 당신’이냐고 묻는다면, 답변은 몹시 궁색하다. ‘확실히 멜로디가 키보드 두드리기에 최적화되어 있어’라고 황당한 답을 스스로에게 한 적도 있고, ‘다음 문장을 떠오르게 하는 아련한 목소리야’라며 감탄한 적도 부지기수다. 멋쩍게…. 특히나 ‘빛바랜, 사무친, 이젠 괜찮은데, 바보 같은 난, 눈물이 날까’와 같은 노랫말이 흘러나올 때면, 꾸역꾸역 한 문장 한 문장을 메꿔 나가고 있는 나 자신에게 별 이유 없이 관대해진다.
그런데 이번 달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들국화 노래를 이 곡 저 곡 찾아 듣다가1집에 실려 있는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란 제목에 꽂혔다(노래가 아니라). ‘서론만 있는 글쓰기’란 작위적인 제목은 그 후유증이다. 미리 자비를 구한다.
서론 하나, 종이 잡지
몇 해 전, 오스트레일리아의 미래학자 로스 도슨은 국가별 종이 신문의 사망 연도를 발표했다. 한두 나라만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친절하게도() 전 세계 52개국의 종이 신문이 몇 년도에 사라지게 될지를 구체적으로 예측했다. 그는 현재의 디지털 저널리즘의 확산 속도를 볼 때, 2017년 미국에서 가장 먼저 종이 신문이 파산을 선고하고, 2040년이 되면 전 세계의 모든 종이 신문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에서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은 각각 2029년과 2030년, 일본과 중국은 2031년으로 예측했다. 한국은 이보다 빠른 2026년에 이름이 올라 있다. 언론계의 대체적인 반응은 정확한 연도에는 오차가클 수 있지만, 각 언론사의 기조가 ‘페이퍼 퍼스트paper first’에서 ‘디지털 퍼스트digital first’로 전환되고 있는 만큼 그의 예측이 부도수표가 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입장이다. 종이 신문의 내일과 종이 잡지의 미래를 전망하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누군가는 한때 우후죽순 늘어났던 지하철 무가지가 이제 1종 정도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예로 들며 종이 매체가 실제로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1 공짜로 손에 쥐어주어도 사람들이 더 이상 종이를 펼쳐들지 않을 만큼 종이 매체가 사람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한 해가 다르게 기능과 디자인, 휴대성을 강화해서 쏟아져 나오는 모바일 기기의 성장 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물론 종이 신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은 기업 광고가 아닌 ‘독자’를 기반으로 존립하고 있는 독일 신문처럼 종이 신문이 독자와의 소통을 전향적으로 늘려야2 생명 연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새로운 생존 전략에 포커스를 맞추기도 하고, 모바일 기기가 대체할 수 없는 종이만의 매력을 어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디지털 매체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음은 부인하지 못한다. 안타깝지만!
서론 둘, 조경 매체
조경 분야의 매체 환경은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환경과조경’사에서 발행하는 월간 『환경과조경』과 월간 『에코스케이프』 이외에, 『조경세계』라는 제호를 단 잡지도 있고, 일간으로 뉴스를 전달하는 온라인 매체 ‘라펜트’와 주간으로 발행되는 『한국조경신문』도 있다. 『환경과조경』만 존재하던 시기(1982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에는 인사 동정이나 행사 소식과 같은 뉴스부터 새로 완공된 작품, 설계공모 수상작, 비평, 에세이, 답사기, 신제품 소개에 이르기까지 백화점식 콘텐츠 구성이 불가피했다. 당시에는 적지 않은 독자들이 인사 동정이 실려 있는 뉴스 지면부터 펼쳐보았다. 그만큼 정보 창구로서의 역할이 요구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다르다. 이는 꼭 관련 매체가 늘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1980~90년대와 2000년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터넷의 발달에 기인한다. 어느 순간부터 정보가 폭발적으로 넘쳐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달라진 환경 속에서 『환경과조경』은 어떤 콘텐츠에 집중해야 할까?
서론 셋, 저널과 매거진
‘잡지’는 일정한 제호를 가지고 정기적으로 발간되는 출판물을 일컫는다. 동일한 제호와 정기적인 발간이 핵심이다. ‘저널’은 프랑스어인 ‘주르날journal’에서 비롯된 것으로, 1665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주르날 데 사방Journal des savants』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최초의 정기간행물로 인정 받고 있는 이 잡지는 주간으로 발행된 과학 저널이었다. ‘매거진’은 원래 군대의 무기고 또는 총의 탄창을 가리키는 말이 었으나, 1731년 런던에서 발행된 『더 젠틀맨스 매거진The Gentleman’ Magazine』의 제호에서 유래하여 현재는 잡지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한 권의 책에 다양한 주제의 내용이 담겨 있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일컫기 위해 ‘무기고’라는 단어가 쓰였다.3 어쩌면 지식의 탄창, 정보의 무기고 같은 의미였을 수도 있다. 잡지는 신문과 다르게 조금 더 제한적인 독자층을 타깃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보다 세분화된 분야나 주제 혹은 취향과 관련된 ‘깊이’ 있는 지식과 정보를 (신문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지면을 활용하여) 독자들의 무기고에 차곡차곡 쌓아줌으로써 설 자리를 넓혀 나간 것이다. 신문과 잡지는 같은 제호를 사용하여 정기적으로 발간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바로 이런 지점에서 그 성격이 나뉜다.
『환경과조경』이 독자들의 무기고에 무엇을 채워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본론은 시작도 못하고 서론만 세 가지 버전으로 써버리고 말았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더욱 그 빛을 발하는 ‘정제된 정보’를, 오직 여기에서만 볼 수 있는 ‘독자적인 콘텐츠’를, (신문과 달리) 충분히 시간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깊이 있는 읽을거리’를, (온라인 매체와 달리) 손으로 펼쳐 볼 수 있는 ‘편집된 지면’에, 시선과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담아내면 될 일이건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잡지는 무엇이고, ‘누가’ ‘왜’ 종이 잡지를 읽을까를 다시 고민하게 된다. 이 대목을 쓰고 나니,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바보 같은 난, 눈물이 날까”란 럼블피쉬 최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러니, ‘비와 당신’을 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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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언어의 정원
비가 오는 날은 아무래도 좀 별로다. 출근길에 귀찮게 우산도 챙겨야 하고 땅은 질퍽질퍽, 하늘은 또 왜 이렇게 우중충한지, 몸은 비를 피해 건물에서 건물로 빠르게 옮겨 다니는 신세다. 평상시에도 회색탑에 갇혀 사는 건 똑같지만 공간의 선택권을 빼앗긴 기분이랄까.
그래도 가끔은 비를 즐긴다. 정확히 말하면 프레임 속에 채워진 비오는 풍경이 좋다. 대부분은 비를 피해 건물 속에 웅크리고 바깥은 쳐다보지도 않지만, 어떤 장소냐에 따라 그 풍경은 사뭇 다르게 보인다. 막걸리집에서 파전에 동동주 시켜놓고 잠깐씩 창밖을 응시하면,처마를 타고 현악기의 줄처럼 길게 늘어지는 빗줄기가 시야를 적신다. 마음이 착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커피향 은은한 카페에서 내다보는 풍경도 좋다. 특히 처마가 없는 유리창이라면 빗줄기가 씻기듯 흐르는 선은 가히 예술적인 모습이다. 비 내리는 공원은… 글쎄, 좀 애매하다. 비 오는 날 공원을 찾는 이가 있을까? 『언어의 정원』에는 그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비 오는 날 공원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이 작품을 보면 왠지 낭만적이어서 ‘가볼 걸’ 하는 후회가 든다. 어쩌면 내 인연이 더 빨리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헛된 생각이 들 정도다.
『언어의 정원』은 2013년에 개봉한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감독이 직접 재구성한 소설이다. 남녀가 공원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 알게 되고 소통하면서 겪는 내면의 치유와 성장을 다룬 일종의 감성 멜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공원을 중심으로 비 내리는 풍경을 묘사하고, 두 남녀 주인공과 공원, 비의 표현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소설에서는 비의 영역을 확대하고 등장인물을 모두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영상에서 담지 못했던 내용을 해석하듯 각 인물의 이야기와 내면을 자세하게 다룬다. 『언어의 정원』의 원제는 ‘고토노하노니와言の葉の庭’다. 고토하言葉는 말이나 언어를 뜻하는데 한자를 직역하면 ‘말을 적은 잎’이다. 종이가 없던 시절에 파피루스나 나뭇잎에 글을 적었던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이 말을 보다 시적으로 표현한 말이 고토노하言の葉인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만요슈』를 인용한 의미가 제목에담긴 것으로 보인다. 고전 소설은 시를 읊어 인물의 마음을 묘사하는 기법을 쓰는 특징이 있다. 『언어의 정원』은 이러한 기법을 활용해 인물의 내면을 표현함으로써 서정적 분위기를 북돋운다. 그 언어를 구사하고 관계가 시작되는 장소로 공원이 등장한다. 제목은 정원이라는 용어를 채택하고 있지만, 이는 공원과 정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거나 보다 부드러운 표현으로 정원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우렛소리 희미하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면 그대 붙잡으련만”(『만요슈』, 11권 2513번). 떠날 것 같은 남자를 붙잡는 여자의 노래다. 비가 내려 남자가 떠나지 못하길 바라는 내용이다. 『언어의 정원』에서 비는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진다. 감독은 이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비’라고 할 정도로 영상 표현에 신경을 기울이고 소설 속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한다. 비가 내리면 세상은 이어진다. 서로 떨어져 있는 하늘과 대지가 비를 통해 만나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하이데거는 비가 내리는 모습을 “하늘과 대지의 결혼식”이라고 표현했다. 하늘의 태양과 대지의 자양분이 내밀한 관계를 맺어 포도나무가 열매 맺는 모습을 ‘결혼식’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그 가치를 높였다. 여기서는 비가 만남을 주선하는 중매인으로서 역할을 한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상처를 가지고 있다. 소설 속에서 다루기엔 소소해 보일 정도지만, 우리 일상에 대입해 봤을 때 누구나 하나씩 가진 상처 혹은 사연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감정이 이입된다. 현대인은 치열한 경쟁 체제 속에 피로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이로 인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현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청자가 바로 ‘비’로 은유된다. 서로의 영역에서 혼자가 되고 상처 입은 두 사람은 피난처로 공원을 찾았다. 상처는 혼자보다 같이 이겨내는 게 더 쉬운 법이다. 그런데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건 쉽지 않다. 어른이 되어 학교나 직장이 아닌 곳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두 사람은 공원이라는 공공 공간에서 처음 만나고 서로를 통해 치유의 과정에 도달한다. 공원은 개인의 영역이 아니다. 누구의 영역도 될 수 있다. 이에 서로 모르던 두 사람이 대화의 기회를 갖게 되고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공원이 소통의 매개체가 된 셈이다.
“소년의 손이 살그머니 엄지발가락 끝에 닿았다. 뜨거운 숨결이 닿는 감촉에 차디찬 발끝이 흠칫했다. 심장이 콩닥콩닥 뜀박질을 했다. 혹여 소년이 들으면 어쩌나 겁이 날 만큼 고동소리와 숨소리는 격렬했다.” 구두 디자이너를 꿈꾸는 타카오는 마음이 가는 이성 유키노에게 구두를 만들어주고자 공원에서 그녀의 발을 이리저리 만지며 치수를 잰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사실상 베드신이다. 영화 ‘일대종사’(2013)를 보면 양조위와 장쯔이가 겨루는 장면이 있다. 겨루는 과정에 서로의 신체와 호흡이 맞닿고 눈빛이 마주치는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이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하고 교감의 지점을 클로즈업해 관객에게 보여준다. 베드신은 관객에게 등장인물의 심리적 교감을 전달하는 극적 장치다.
『언어의 정원』에서는 이를 구두 치수를 재는 장면으로 대체했다. 감독은 “사랑, 그 이전의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단순히 『만요슈』의 시구만 인용하지 않고 1,300년 전에 쓰인 옛날 가요의 ‘사랑’이란 단어가 담은 정서를 모티브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금의 ‘사랑’이란 단어의 정서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랑’의 영원성을 강조하려 한 것인지, 아니면 ‘사랑’이란 단어를 통해 언령言靈을 확인하려 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 전략이 가슴을 두드렸다. “우렛소리 희미하고 비가 오지 않아도 나는 여기 머무르오 그대 가지마라 하시면”(『만요슈』, 11권 2514번). 사랑의 언어가 비와 함께 파문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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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위플래쉬
선택과 집중, 그 아찔한 전략
위플래쉬Whiplash(2015년 국내 개봉)는 입소문을 타고 절찬 상영 중인 음악 영화다. ‘재즈 연주자를 위한 공포 영화’, ‘음악 영화 탈을 쓴 무협 영화’라고 알려졌지만 ‘그래봤자 장르가 음악인데 과장이 좀 심한 것 아냐’라고 생각하며 영화를 보러 갔다. 나는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도 무섭고 멀미가 나서 못 타고, 피가 낭자하는 칼부림 영화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심약한 심장의 소유자다. 원빈의 셀프 삭발 장면이 영화 ‘아저씨’에서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다. 그가 제대로 싸우기 시작할 때쯤엔 극장 문을 나와 안전한(?) 장소에서 동행을 기다렸다. ‘채찍질’이라는 의미 그대로 ‘위플래쉬’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마지막 시퀀스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쯤에야 정신이 차려질 만큼 영화 내내 긴박감이 넘친다. 보는 동안 심장 박동수가 평소보다 몇 배는 빨리 뛰었다. 어지간한 자동차 추격신보다 스릴감이 넘쳤고, 칼 한 자루 등장하지 않지만 칼부림 영화보다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아저씨’를 두 번이나 본 강심장인 지인도 비슷하게 느꼈다고 한다.
밴드 지휘자와 드럼 연주자, 이 두 주인공이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이어간다. 스승과의 교감을 통해 음악을 매개로 성장하는 스토리는 사실 진부한 소재다. ‘위플래시’의 특별한 전략은 이 흔한 소재를 완전히 새로운 음악 영화로 바꾸어 놓았다. 스승의 인격과 방식이 올바른지, 과연 제자가 성장한 건지는 별개문제로 두기로 하고, 다음에서는 영화의 성취에 대해 집중해 보기로 한다. 영화는 한 괴물과 점점 괴물이 되어 가는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부딪혀서 결국 어떤 불꽃이 튀는지 그 발화 과정을 드럼이라는 악기의 연주를 통해 전개하고 있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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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회의] 난중일기의 전략
조경 저널리즘과 비평을 고민하다
온라인 미디어의 등장으로 매체의 수가 늘어나고 그 결도 다양해졌지만, 오히려 저널리즘은 풍요 속의 빈곤을 겪고 있다. 실시간으로 바뀌는 검색어와 자극적 헤드라인, 이미지의 향연 속에서 독자들을 사유와 반성, 새로운 시각의 길로 이끌던 저널리즘의 철학은 설곳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특히 급변하는 매체 생태계 속에서 종이 잡지는 존폐의 위기마저 겪고 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인터넷 뉴스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의 포화 속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모니터와 스마트 폰에 빼앗긴 탓이다.
하지만, 조경이나 건축 매체의 환경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종이 매체가 몹시도 고전하고 있다는 점은 동일 하지만, 최근 2~3년 동안 종다양성 측면에서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첫 건축비평지를 표방하며 창간된 『건축평단』(2015년 3월 창간), 건축 과정을 이미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록하는 『다큐멘텀』(2014년 5월 창간), 건축 밖의 사람들과 연대를 모색하며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각도의 논의를 담아내고 있는 『건축신문』(2012년 4월 창간) 등이 연이어 등장한 것이다. 또한 2008년 1월에 창간된 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 역시 그 색깔을 굳건히 지켜나가고 있다. 이도저한 온라인의 시대에 종이를 기반으로 해서 말이다. 이는 2000년대 중반 이전과도 미묘하게 다른 상황이다. 당시 『SPACE』, 『건축과환경』, 『건축문화』, 『건축인 포아』, 『이상건축』, 『플러스』 등의 건축 전문지들은각기 다른 색깔로 이슈와 담론을 생산해냈지만, 그 내용과 형식이 지금처럼 크게 갈리진 않았다. 실험적이라는 (혹은 무모하다는) 느낌이 드는 잡지도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가 (지나치게) 잘 만들어졌지만, 변별력이 커 보이지 않았다. 이후 그 잡지들 중에서 몇몇은 기존의 색깔이 점차 희미해지면서 해외 작품 위주의 화보집으로 바뀌거나 폐간의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확연히 구분되는 포맷과 지향점을 내세운 색다른 종이 매체들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조경 매체는 이와는 사정이 또 다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라펜트’, 주간으로 발행되는 『한국조경신문』, 해외 작품 위주의 『조경세계』 등이 하나둘 새롭게 생겨났지만, 조경 포털이나 주간신문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 실험적이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환경과조경』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2000년대 초반에 두 차례 발간된 조경 무크지 『로커스』가 가장 실험적인 조경 매체였다.
물론 모든 매체가 실험적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종이 잡지를 만드는 이들과 그 (잠재적) 독자들에게 색다른 매체의 등장과 그들의 도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그 매체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환경과조경』만의 색깔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번호에는 그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대폭적인 리뉴얼을 단행한 2014년부터 잡지 제작 전반에 걸쳐 도움을주고 있는 편집위원 다섯 분과 함께 ‘편집회의’를 진행하여 그 내용을 지면에 옮긴다(김진오 편집위원(경희대학교 교수)은 당일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가장 열성적인 독자이기도 한 편집위원들은 잡지 전반에 대한 평가부터 조경 매체의 역할과 비평의 활성화 방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아이디어와 의견을 보태주었다. 먼저, 박승진 소장이 들려준 이야기를 맛보기로 전하며 ‘편집회의’를 시작한다. 그는 요즘 『징비록』을 읽고 있다는데,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난중일기』가 재미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전쟁이 모두 끝난 후 과거를 회고조로 기술한 『징비록』보다는 전쟁터의 한 가운데에서 그 긴박한 순간을 생생하고 치밀하게 묘사한 『난중일기』가 독자 입장에서 단연 재미있고 박진감 넘친다는 것. 한국 조경의 오늘을 기록하고 있는 『환경과조경』은 징비록일까, 난중일기일까? 아니면 손자병법이 되어야 하는 걸까?
김세훈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도시설계전공 교수
김영민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남기준 편집장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국장, 「건축신문」 편집인
박승진 디자인 스튜디오 loci 소장
배정한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서영애 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
- 남기준, 조한결 / 2015년05월 /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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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세대교체
#45
자연보다 더 자연스러운 미스터 브라운의 풍경
1783년 2월 5일, 윌리엄 켄트의 뒤를 이어 30년 이상 영국 조경계를 장악했던 랜슬롯 브라운Lancelot Brown(1715~1783)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68세였지만 아직 왕성히 활동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딸의 집을 방문하러 갔다가 문지방에서 쓰러져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의 부음을 들은 조지 3세는 곧 리치몬드 정원으로 가서 정원사를 붙들고 “미스터 브라운이 죽었다는군. 이제 자네랑 나랑 맘대로 정원을 만들어도 되네”라고 했다는 우스개가 전해진다.
물론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랜슬롯 브라운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 ‘백만 파운드짜리’ 가십을 호레이스 월폴HoraceWalpole (1717~1797)1이 듣고 친구에게 편지로 전한 덕에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한 정원사의 죽음에 이처럼 사회가 들썩였던 경우는 어느 시대에도 없었다. 윌리엄 켄트의 시대에 알렉산더 포프가 있었다면 랜슬롯 브라운의 시대에는 호레이스 월폴과 토머스 훼이틀리Thomas Whatley(1716~1772)2가 있었다. 브라운이 정원을 만들면 이 두 사람은 정원이 완성되기가 무섭게 찾아가서 살펴보고 평론을 남겼다. 작가와 평론가의 수가 극히 한정되어 있기는 했지만 정원 평론을 쓰는 전통이 이 때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훼이틀리는 진지하고 분석적이어서 후세에 의해 ‘최초의 정원 평론가’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호레이스 월폴은 그의 소책자 『모던 가드닝』 외에도 수천 통의 편지를 써서 당대의 정원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남겼다. 특유의 비꼬는 필치로 쓴 풍자적 리뷰는 지금도 즐겨 인용된다.
1744년, 알렉산더 포프를 선두로 하여 풍경화식 정원을 이끈 1세대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이후 1750년대부터 랜슬롯 브라운이 조경 시장을 독점했으므로 다른 사람들의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자타가 인정하는 ‘켄트주의자’였던 월폴은 브라운의 초기 작품인 워릭 캐슬Warwick Castle을 보고 관심을 두기 시작했으며 이후 그의 행보를 유심히 살폈다. 브라운의 작품으로 확인된 것만 모두 170여 개에 달하는데 정원 하나의 규모가 100헥타르에서 1,200헥타르 사이였으므로―용산공원 부지 면적이 약 240헥타르― 결과적으로 브라운이 잉글랜드의 풍경을 새로 만들었다는 말이 크게 과장된 것이 아니다.
처음 워릭 캐슬을 보고 월폴은 이렇게 말했다. “워릭 캐슬은 동화적이다. 내가 거기서 본 풍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즐거웠다. 에이번Avon 강이 굽이치다가 캐스케이드가 되어 쏟아져 내리는 장면이 압권인데 브라운이라는 이가 연출한 것이다. 일을 제대로 한 것 같다. 그는 켄트와 사우스코트의 아이디어를 수용했다. 아이디어의 전파가 주는 효과가 이런 것이다. 워릭 캐슬의 주인 브루크 경은 자연적인 정원 양식을 대담하게 수용했다.”3 월폴은 이십 년후에는 브라운을 명실 공히 켄트의 후계자로 인정했을 뿐 아니라 브라운의 풍경을 ‘개선된 자연improved nature’이라고 정의 내렸다.4
자연 풍경이 완벽하다고 누가 말했던가. 자연이라고 하지만 사실 진정한 자연 풍경은 브라운 시대에도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의 손에 의해 기형화된 풍경의 결점을 보완하고 본연의 잠재력을 살려 완성의 길로 이끌어 주는 것, 이것이 랜슬롯 브라운의 원칙이었다. 그러므로 풍경화‘식’ 정원이라는 개념은 랜슬롯 브라운의 시대가 되면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귀족들은 “우리도 드디어 유명한 미스터 브라운을 초청하여 ‘랜드스케이핑landscaping’을 의뢰했다”라는 내용의 서신을 주고받았다. 정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랜드스케이핑 한다’는 새로운 개념이 자리잡아갔다.
랜슬롯 브라운은 스물 여섯의 나이에 스토우의 정원사로 채용되어 윌리엄 켄트의 설계대로 시공하며 켄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실무 경력이 많지 않았던 켄트와는 달리 브라운은 정통적인 정원사의 길을 걸었다. 물론 정원사 학교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자신의 고향, 노섬벌랜드의 커크할Kirkharle 수목원에서 십여 년간 일하며 잔뼈가 굵은 것이다. 그러므로 화가의 안목으로 장면, 장면을 세트처럼 연출했던 윌리엄 켄트와는 달리 브라운은 처음부터 풍경을 그 자체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 풍경을 액자에 갇힌 장면의 연속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커다란 전체one great whole로 이해한 것은 당시로서는 혁신적 안목이었다. 그가 생각한 ‘하나의 커다란 전체’는 비교적 단순하게 요약된다. 물, 초원, 숲의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지며 강줄기나 계류를 막아 대형 호수를 만들어서 풍경의 맥을 삼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그의 호수는 대개 긴 호리병 형태를 하고 있는데 마치 자연이 만들어 놓은 것처럼 이리저리 꺾이며 풍경 전체를 굽이굽이 적시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 외에는 수십에서 수백 헥타르의 초원을 펼쳐놓았고 외곽은 숲으로 에워쌌다. 이것이 아무 군더더기 없는 브라운식 자연의 기본형이었으며 그의 모든 작품에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문제는 집이었다. 초원, 즉 자연 풍경이 먼저 있고 그 위에 집이 얹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라고 보았다. 집을 새로짓는 경우에는 별 문제될 것이 없었으나 집이 먼저 있던 경우, 대부분 이탈리아식 정형 정원이나 평면 기하학 정원도 함께 존재했다. 브라운은 이 정원들을 훌훌 뽑아 내버리고 집 바로 앞까지 초원을 끌어들였다. 초원에는 드문드문 나무를 심었는데, 쩨쩨하게 한 그루씩 심지 않고 커다란 덩어리clumps로 심었다. 집을 향해 정면 돌파하는 중앙 축을 버리고 S라인 진입로를 만들어 측면에서 빙 돌아 접근하도록 했다. 길 주변에도 정연한 가로수가 아니라 수목 덩어리를 드문드문 배치했다. 이런 스케일로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 브라운은 강물을 막는 댐 공법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했고 거목을 이식하기 위해 이식 전용 수레도 고안했다.
어떤 땅이 주어져도 이런 자연 풍경으로 ‘개선’할 수 있는 여건은 충분했다. 땅이 갖고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은 사실어디에나 있었으므로 ‘캐퍼빌리티apability’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5 그래서 그의 별명이 캐퍼빌리티 브라운이 되었다. 스타파주를 만들어 세우고 그 주변에 나무를 자연스럽게 배치하던 켄트 스타일에서 아주 멀리 진보한 것이다. 물론 그가 다루었던 땅은 거대한 스케일로 지형을 바꾸고 물줄기를 막아 새로운 자연을 창조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소위 ‘풍경화식’ 정원의 결정적 요소라고 믿는 것들이 모두 랜슬롯 브라운에 의해 ‘완성’되었다. 한바탕 소동을 부리며 공사가 끝나고 나면 그의 풍경은 조용히 가라앉아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호레이스 월폴은 브라운의 부음을 듣고 여러 통의 편지를 썼다. 그 중 위의 가십을 전한 것도 있지만 레이디 오소리에게는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썼다. “그대들 숲의 요정들은 검은 장갑을 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요정들의 시아버지, 마담 네이처의 두 번째 남편이 숨을 거두었습니다.”6 브라운 사후에 그의 명성은 빨리 사라진다. 브라운식 풍경의 완벽한 조화와 평화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낭만주의 시대가 열리며 브라운의 풍경에는 ‘숭고한 전율’이 결여되어 있다고 결론지었다. 19세기 내내 브라운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가 20세기에 들어 와서 다시 명성을 회복한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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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땅의 도시, 기념비적 도시
땅의 도시
전 세계 여러 도시를 걷다 보면 땅의 고유한 형상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 곳을 만나게 된다.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 섬의 북쪽 끝에 있는 스마랑Semarang이라는 도시가 한 예다.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한 자바 섬은 오늘날에도 활화산의 활동 범위 안에서 지진 피해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 ―현재는 일시적 휴전 상태에 있지만― 이른바 ‘땅의 전쟁터’다. 스마랑의 도심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혹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 공항 주변과 마찬가지로 바다와 산자락 사이에 낀 좁은 띠 모양의 땅에 자리 잡고 있다. 도시 면적의 상당 부분이 바다를 향해 완만하게 경사진 판 위에 놓여 있어서 처음 이곳을 방문한 사람도 좀처럼 방향 감각을 잃지 않는다(그림1). 도심 곳곳에 있는 경사진 보행로와 이를 따라 펼쳐진 계단식 주거지, 그리고 그 사이로 불뚝불뚝 솟아오른 언덕은 열대 기후 속에서 스마랑 고유의 도시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땅의 형상은 지역의 기후, 식생, 사람과 함께 도시 환경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가장 원초적인 요소 중 하나다(그림2).
환경과 랜드스케이프
우리는 땅을 생각할 때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게 된다. 하나는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물리적 환경 요소로서의 땅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대지가 다른 대지보다 더 크다든가, 집을 지을 땅을 인접한 도로면보다 높여야 한다는 개념이 포함된다. 다른 하나는 객관화하기 어려운 측면, 이를테면 주관적 지각과 심미적 판단 대상으로서의 땅이다. 도심외곽으로 확장되며 농경지를 잠식하고 있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보며 혐오감을 느낀다든가, 훼손되지 않은 자연 속 에덴동산에 앉아 있는 듯한 편안함을 느끼는 감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런 맥락에서 프랑스의 지리학자 오귀스탱 베르크Augustin Berque는 ‘근대적 랜드스케이프를 넘어’라는 글에서 ‘환경environment’과 ‘랜드스케이프landscape’를 구분한다.1 그에 따르면 ‘환경’이란 사회·자연·공간의 관계에 대한 사실적·객관적 개념이다. 그에 반해 ‘랜드스케이프’는 이러한 관계에 대한 사회적·주관적 지각이자 다양한 해석과 가치 부여의 결과다. 특히 도시 환경 속에서 땅은 첨예한 경제적 요구와 다양한 사회적 바람을 담고 있다. 따라서 땅을 이해할 때는 그 사실적 측면과 더불어 지금의 랜드스케이프로 재구성된 과정과 원인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지형과 숨은 지형
이렇게 도시 안에 자연 그대로의 땅이 좀처럼 남아 있지 않고 태초에 땅이 가진 본질적 아름다움이 사라졌다며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다. 하버드 대학교의 앙투안 피콘Antoine Picon 교수에 의하면 적어도 서구에서는 초기 산업 혁명기를 전후로 도시가 자연 속에 자리 잡는 시대가 저물고 도시 환경 자체, 이를테면 초고층 타워와 아파트 단지, 굴뚝과 가로등, 네온 사인과 간판이 다른 도시 공간을 위한 배경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2 사실적 환경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생성된 랜드스케이프가 점차 주요 도시 맥락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아가 렘 콜하스와 같은 건축가는 1990년대 전후로 도시 외부가 아닌 내부에 땅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특질, 이를테면 경사진 언덕과 숲을 연상시키는 기둥, 산책로와 같은 내부 가로를 적층시키는 일련의 계획안을 발표했다(그림3). 공항, 터미널,금융 센터, 지하 쇼핑몰, 호텔과 컨벤션 센터와 같은 초대형 시설이 과거 작은 도시에 해당하는 유동 인구와 프로그램을 수용하게 되면서 새로운 도시 공간의 모습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도시 공간은 전경이자 배경, 즉 그 자체로 훌륭한 랜드스케이프일 뿐 아니라 이후 만들어질 다른 도시 형태나 새로운 사회적 활동을 위한 밑바탕이 되고 있다.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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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입금과 이스트와 불꽃
7 입금을 대하는 디자이너의 자세
오래전 학교 수업 시간이었나, 졸업 작품 크리틱 시간이었나. 눈망울 초롱초롱한 ―아차 ‘초롱초롱하다’는 표현이 떠오르는 걸 보니, 졸업 작품 크리틱 때는 아닌 듯하다― 학생,그러니까 어린이(학부생부터 대리 미만의 직원을 이르는 매우 주관적인 용어)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교수님, 언제 설계하길 잘했다고 느끼세요”
“설계에서 보람은 어디서 찾으시나요”
“좋은 설계를 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 이런 초롱초롱한 질문에 난 몹쓸 답변을 하고 말았다.
“난 입금 될 때.”
입금은 좋은 것이다. 클라이언트가 지녀야 하는 여러 덕목 중 가장 으뜸을 꼽는다면 단언컨대 ‘입금’일 것이다. 입금의 효과에 대해 순차적으로 알아보자.
입금이 되면
1. 할리우드 스타는 영화 촬영 전까지 식스팩과 S라인을 만들고, 가수는 행사장까지 가속 페달을 밟을 것이며, 주부는 투 플러스 한우를 굽겠지만, 디자이너는 플러스펜과 롤지를 안고 밤샐 준비를 할 것이다.
2. 아름다운 안(최소한 본인의 마음에 드는 계획안)을 만들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몸이 피곤해도 맑은 정신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으며, 클라이언트의 사소한 변경도 달갑게 수용할 것이다.
3. 거의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그러하듯이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처리해야 할 일과 설계 변경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간다. 그럼에도 디자이너는 마지막 입금을 생각하며 최종 마무리에 여념이 없다.
4. 완료되었다(설계안 제출, 준공, 납품, 털어냄, 던져줌, 끝, 쫑과 같은 다양한 용어가 난무함). 그리고 입금이 되면 디자이너는 뒤풀이(과도한 취미 생활, 가족 행사, 골프, 술, 여행 등)를 꿈꾸며 또 다시 밤샐 준비를 한다.
그러나 보통 이런 질문에는
‘나의 노력으로 지구가 조금 아름다워졌고…’,
‘나의 작품에 다른 사람들의 좋은 평가가 수반되고…’,
‘나의 수많은 관찰과 애정으로 자신과 공공의 선을 위해 노력할 때…’ 등,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답변을 해야 한다.
“난 입금될 때”라는 답변에 대한 변명을 하자면, 로직을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당시에 나의 머릿 속의 95%는 ‘다음 달 월급’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항산항심1에 근거한 사고방식에 젖어 있던 것이다. 비슷한 속담으로 ‘쌀독에서 인심난다’, ‘사흘 굶어 도둑질 아니할 놈 없다’ 정도를 들 수 있겠다. 보다 훌륭한 안(플랜, 디자인)을 위한 열정이 폭발하기 위해서는 ‘입금’이라는 촉매가 필요하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입금은 디자이너의 열정을 끓어오르게 한다. 그 당시 질문했던 어린이가 지금이라도 이런 속사정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8 돈이 전부가 아닌 가치에 대한 탐구
언젠가 예비군 소집일에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한 15년 만이던가 순간 반가운 마음에 호구조사로 화제가 넘어갔다. 초등학교에는 이과 문과의 구분도 없어 추측할 길이 없으니, “뭐해서 먹고 사냐”, 또 “살만하냐” 뭐 이런 식의 질문이 오고갔다. 그 동창은 구로에서 간판 회사를 한다고 했다. 하도 쓰러지고 새로 생기는 가게가 많은 와중에 자리를 잘 잡아 돈을 쓸어 담고 있다고 했다. 중학교 졸업 후 바로 간판 사업에 뛰어들었고, 잔뼈가 굵어져 지금의 위치까지 오르게 되었다고 했다.그 당시 내가 버는 것의 열 배 정도 버는 것 같았고, 이젠 좀 살만하다며 뿌듯해 했다.그는 나에게 많은 야근과 적은 봉급으로 어떻게 생활을 하냐며 측은해 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난 이렇게 생각했다.‘디자인과 조경 설계는 공공의 선을 위한 일이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평생 직업이므로 상관없다…’라는 생각이었느냐고 아니다. 솔직히 그것보다는 ‘예비군 훈련 끝나고 납품해야 하는데…’라는 생각밖에 없었고, 그러다가 ‘야근하느라월급 쓸 시간이 없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순간 떠올라 피식 웃고 말았다.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고 돈은 생각보다 (혹은 예상대로) 많이 벌지 못했다(그래도 생활은 했으니 벌었다고 해야 하나.그런데도 아직까지 조경 설계를 직업으로 갖고 있고 그래서 ‘그리고’ 있다. 이유가 뭘까?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과연 설계가 돈을 벌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걸까?’
물론 몇몇 조경 디자이너는 많은 돈을 벌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그저 중산층 정도의 수입으로 수수한 삶을 살아간다.사실 적당하고 일관된 보수의 확보는 어느 직업이든 중요한 문제이지만, 조경 설계는 오늘날 부의 기준에서 돈버는 분야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조경 설계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면 어떤 이유에서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보통 사람들은 설계를 한다고 하면 건축 설계, 인테리어 설계를 떠올리는데, 조경 설계를 한다고 하면 이런 반응이 대부분이다.
“아… 예, 좋은 일 하시는 거죠”
(좋은 일이죠…)
“고속도로 변에 많은 그거죠”
(그러니까요…)
“돈 많이 벌 수 있다던데.”
(뭐 그럴 수도…)
“아! 공원 설계, 그거죠”
(난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데…)
“그거 전망이 좋다던데요”
(20년 전에도 그랬지…)
오형석은 새로운 조경 문화를 고민하던 젊은 조경가 7인과 의기투합해만든 프로젝트 그룹을 기반으로, 2005년도에 디자인로직을 설립했다.만 10년 동안 디자인로직을 이끌며 새로운 외부 환경에 대한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으며, 또 다른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디자인을 갈구하고 있다.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 후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환경조경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서인조경과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LH 조경 부문 자문위원,인천시 도시디자인 자문위원, 코레일 조경 심의위원을 역임했고, 한국도로공사 사옥, 한남더힐 설계공모전에서 당선되었으며, 세종문화회관예술 정원, 호텔 롯데 제주, 용현 SK VIEW 등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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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슈벤두 샤르마
어포레스트 설립자 겸 디렉터
숲이 상품이 될 수 있을까? 정원이나 공원을 만드는 일이라면 자격을 갖춘 전문가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숲, 그것도 자연의 모습을 꼭 빼닮은 숲 또한 기업의 이윤 추구 영역이 될 수 있을까? 좀처럼 확신이 안선다. 우리에게 숲 만들기란 그저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식의 공익 광고 혹은 초록색 작업복으로 상징되는 새마을 운동을 연상시키거나 목재로 쓰기 위한 열대우림, 캐나다의 대규모 조림 사업 등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건강한 숲 자체가 상품이 되는 세상으로 진입했다. 여기서 ‘건강함’이란 휴양림 광고에 쓰일 법한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높은 종다양성과 생태계 서비스를 묘사하는정확한 표현이며 숲으로서의 엄격한 자격 기준을 통과 함을 의미한다. 인도의 무모한 청년, 슈벤두 샤르마가 설립한 숲 만들기 전문 기업 어포레스트가 해내고 있는 일이다.
‘숲, 1년에 1미터 성장 보장’, 어포레스트가 내건 마케팅 캐치프레이즈다. 상당히 인상적인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심지어, 샤르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00년 걸려야 만들어지는 숲을 10년 내에 만들어 드립니다”, 혹은 “10년 걸려야만들어지는 숲을 1년 만에 만들어 드립니다”. ‘숲이 무슨 콩나물시루도 아니고 정말 가능한가’ 한편으로 궁금하기도 하고 영 미심쩍기도 하다. 비밀은 뭘까? 너무 당연하지만 우리가 종종 잊고 사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이 서로에게 의존적이라는 사실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중에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어포레스트가 만들어내고 있는 숲의 핵심은 바로 그러한 상호 의존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숲이란 그저 나무의 집합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새, 벌레, 동물, 온갖 종류의 다양한 식물이 함께 할 때 온전히 숲이라 불릴 만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조화, 하모니와 건전한 경쟁을 통해서 숲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샤르마는 생태적으로 조화롭고 지속가능한 숲은 훌륭한 비즈니스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원래 토요타 공장에서 일하던 산업 엔지니어였다. 어느 날 공장 주변 숲 조성을 위해 방문한 일본의 저명한 식물학자 아키라 미야와키Akira Miyawaki 박사의 강연을 듣고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후 숲 만들기를 새로운 일생의 업으로 삼고 진로를 바꾸었다. 즉 어포레스트는 미야와키의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잠재 자연 식생potential natural vegetation 이론’과 경험에서 출발했다.
이에 더하여 어포레스트는 공학적 마인드와 IT 문화, 인도라는 지역적 환경을 접목시켰다. 과학적인 프로젝트 진행 방식과 효율성 추구, 모니터링, 경이로운 퍼포먼스에 있어서는 전직 엔지니어로서의 면모를 숨길 수가 없다.
어포레스트의 방식이 처음부터 모두에게 환영 받은 것은 아니다. 환경운동가에게 접근했더니 놀랍게도 그들은 숲을 만드는 일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조경가에게 갔더니 그들은 오히려 그 자리에 있던 것들조차 깡그리 베어버리고 다른 대륙에서 수입해 온 잔디밭을 만드는 데에만 열중했다. 샤르마는 결국 양쪽 모두에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 숲을 만드는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샤르마의 ‘종다양성’은 추상적인 구호이거나 우리와 상관없는 먼 열대우림에서나 거론될 만한 과학 용어가 아니다. 그는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생물다양성을 우리 이웃에서 지금 이 순간 만들어 내고 있다.
Q. 히말라야 산맥을 바라보는 북인도 카쉬푸르Kashipur가 고향인데, 지금은 인도 IT 산업의 중심인 방갈로르Bangalore에 살고 있다.
A. 산록부의 매우 작은 마을이다. 우리 집 뒷마당에서는 히말라야의 산들을 바라볼 수 있다. 이곳의 특별한 점은 인도 최대의 야생 호랑이 보호 구역인 짐 콜벳 국립공원Jim Corbett National Park과 매우 가깝다는 점이다. 실제로 호랑이 사냥이 벌어지기도 한다. 인도판 아프리카인 셈이다. 내가 뒷마당에 숲을 만들고 난 후 나무들이 자라 더 이상 산이 보이지는 않는다.
Q. ‘Afforestt’에서 t가 왜 두 개인가?
A. 하하.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회사를 차리기로 결정했을 때 ‘Afforest.com’이라는 도메인 명은 이미 태국의 어떤 사람이 사용하고 있었다. 벤처 기업으로서 도메인명을 구매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두 번째 이유는 조금 전에 말했던 짐 콜벳을 기리기 위해서다. 그는 사냥꾼이었는데 마을을 공격하는 호랑이 수백 마리를 처치해 소중한 인명을 구했기 때문에 인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곧 갈등의 원인이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이의 영역을 침범한 농토 개간과 숲의 소실이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짐 콜벳은 인도에 처음으로 야생 동물 보호 구역과 국립공원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당시 대부분의 영국인은 인도를 그저 제국주의의 시장으로만 생각했지만 짐 콜벳은 인도의 땅과 인도인을 살리기 위해 일했다. 두 개의 t는 그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회사의 이름이 ‘Corbett Forest Making Company’일 정도였다. 물론 고민 끝에 결국 Afforestt로 바꾸긴 했지만 짐 콜벳에 대한 존경의 표시다.
그런데 나의 일본인 친구가 tt를 나무 木자 두 개로 쓰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주었고 지금 우리 로고에 그렇게 표현되어 있다. 영어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자를 안다면 수풀 ‘林’자는 읽을 수 있으니 더 좋지 않은가.
Q. 웹사이트에서 밝히고 있는 사업 내용에 의하면 어포레스트는 ‘자연적이고 야생적이며 관리가 불필요하고 자생적인 숲’을 만드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데 언뜻 들으면 어포레스트가 만들려고 하는 결과물은 노지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자연스럽게 씨앗이 날아와 생기는 숲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고객의 입장에서 굳이 어포레스트의 서비스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A. 어포레스트 방식은 그러한 자연적인 숲의 생성과정을 몇 배로 활성화 시키는 것이다. 즉, 100년이 흘러야 생길 수 있는 숲을 우리는 10년 안에 만들 수 있다. 10년이 걸리는 숲 정도는 하루아침에(그만큼 짧은 기간에) 만들어낼 수 있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 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전시해 왔다. 저서로 『시티 오브 뉴욕』(공저)이 있다.
- 최이규 /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지소장 / 2015년05월 /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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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와 디테일] 갈라지고 썩어야 나무
나무는 흔하다. 조금만 나서면 숲이 있고 가로수가 있다. 우리가 거주하는 집에서도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소재가 나무다. 또한 나무는 시간을 거슬러 석기 시대 이전부터 인류에게 중요한 생활의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그만큼 잠재의식과 유전적 기질에서부터 친근한관계에 있는 소재다. 이러한 목재로 만든 시설물은 내가 일하는 설계사무실의 모니터 화면 속에서도 늘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다. 아마도 우리가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소재라는 점에 그 이유가 있는 듯하다. 물가를 따라 흐르는 수변 데크, 산길을 따라 설치되는 산책 데크와 산 정상의 전망 데크, 그리고 그 옆에 자리한 목재로 만든 방갈로 등은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으로 조합된다. 결국 사람들이 가장 편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어 쉽게 설득할 수 있다는 장점에 계획안 이곳저곳에 그려 넣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다분히 감성적인 면을 강조한 결과인 듯하다.
그러나 실시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그렇게 열심히 예쁜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고 설득한 뒤 가장 먼저 ‘검열’되는 소재가 바로 이 목재다.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는 곳도 있고 필요한 곳에 최소한으로만 사용토록 압박하고 다른 고강도의 재료로 바꾸기 일쑤다. 고가의 재료라는 점에서 초기 투자비에 부담을 주기도 하거니와 지속적인 유지·관리가 필요한 소재라는 점이 이러한 상황을 낳는 경우를 자주 경험했다. 감성적으로 친환경 소재임을 강조하며 클라이언트를 설득하지만 결국 시공할 땐 목재보다 덜 친환경적이고 강도 높은 재료를 사용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 친환경에 대한 계량화된 데이터 구축, 목재의 부패를 지연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찰, 경비 절감 방안의 정량적 설득이 필요하다. 잠시 목재가 친환경적이지 않은 소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친환경이라는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환경에 부담을 덜 주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을 텐데, 목재는 숲의 나무를 베어야 만들 수 있는 자재이므로 결국 숲의 파괴를 가져오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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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양재동 꽃시장
3월 말 양재동 꽃시장을 찾았다. 초본이나 원예 용품을 사러 종종 들르는 곳이니 새로울 것은 없지만, 오늘은 보고자 하는 각이 좀 틀리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양재동 꽃시장은 시장 본연의 기능 외에도 공공 공간으로서 매력이 넘치는 장소이니, 멀티태스킹을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이 고안되면 좋겠다는 의견이 중점적으로 제시되었다. 사실 양재동 꽃시장은 설계 스튜디오에서도 단골손님으로 다뤄질 정도로 이슈와 설계거리가 푸짐한 곳이다. 조경의 가장 중요한 재료 중 하나인 초화가 팔리는 시장이니, 전문가들의 재료 공급처이자 동시에 대중의 조경 인식이 반영되는 장소라 할 수 있다.
공간에 대한 디자인을 논하기에 최적의 소재는 아니지만 시장이라는 인프라가 어떻게 다층적으로 활용되어 장소 가치를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를 하기에는 맞춤한 장소다. 시장, 공원 그리고 정원 문화란 관점에서 양재동 꽃시장을 재조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싱거운 언급이지만 이곳에는 볼만한 초화가 가득하다. 색색의 갖가지 초화는 봄을 알리는 전령사뿐만 아니라 계절 변화의 바로미터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 때문에 초화 구입이 아니라 견학이나 아이쇼핑을 위해서 이곳을 찾는 이들도 꽤 된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부대시설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개의 도매시장이 판매 시설 이외에 다른 편의 시설을 갖추는 데 인색하듯이 양재동 꽃시장 역시 예외가 아니다. 도매 유통이 주로 이루어지고 전문가가 주 고객인 시장이니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보다 대중적이고 흥미로운 시장이 되기 위해서는 판매나 편의 시설의 보완이 필요하다. 참고할 만한 사례로는 유럽에서 일반화된 가든 센터가 있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했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