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 ; 사람과 땅이 어울린 이야기 (14) - 7월, 외부공간의 별난 재료들
목재 - 바깥으로 나온 우물마루
나무는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하다. 과학적인 용어로 얘기하자면 열전도율이 낮은 재료다. 반면 콘크리트와 금속재는 여름에 뜨겁고 겨울에 차다. 돌은 여름에는 시원하지만 겨울에 너무 차다. 사람 몸이 직접 닿을 때 느껴지는 촉감이 그렇다는 얘기다. 예로부터 사람 몸이 직접 닿는 곳의 재료는 천이거나 목재였다. 온돌바닥처럼 온기가 일부러 주어지는 경우가 아니면 말이다. 현 시대에도 외부공간의 의자, 벤치에서 사람의 몸과 맞닿은 부위에 가장 많이 쓰이는 재료가 그래서 목재다. 통나무를 흉내 낸 콘크리트 벤치가 한때 유행한 적이 있지만 그 조악한 형태와 겨울의 차가움 때문에 일찌감치 사라졌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옛날에는 지붕이 있는 정자(亭子)나 루(樓)를 제외하곤 외부공간의 바닥에 나무를 깔지 않았다. 나무는 쉽게 망가지고 또 쉽게 썩는 바람에 비바람에 씻기고 발에 밟히는 외부공간에 두지 않았다. 대신에 신을 벗고 올라서는 집안의 바닥, 즉 신체가 직접 접촉하는 바닥인 마루에는 나무를 깔았다. 마루는 땅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냉기와 열기를 차단하는 기능을 했다. 대청마루에서 여름에 웬만한 더위가 아니면 마루의 나무면에 등을 대고 눕는 것만으로도 시원했다. 나무를 지붕이 없는 외부공간에 쓰는 방식은 물 건너 저쪽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북유럽이나 캐나다 쪽의 목재들은 외부공간에 견딜 정도로 단단하기도 했고 우리처럼 따뜻한 지방에서 자란 나무와는 달리 쉽게 무르지도 않는다. 물 건너 저쪽에서 집의 거실에 붙여 나무바닥면을 외부에 깔 때 그네들은 실내의 공간을 외부로 확장시킨다는 개념을 담았다. 실제로 나무바닥면은 우리가 실내에 있거나 아니면 실내로 들어가기 직전의 중간공간에 놓여 있다는 느낌을 - 일종의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인데 - 전해준다. 우리의 벗은 몸과 친했던 목재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 외부공간의 나무바닥을 밟을 때 들리는 소리, 즉 나무가 끌리는 소리라든지 나무에 힘이 전달되면서 생겨나는 뻐근한 소리들도 과거 실내에서 우리가 마루를 밟을 때 들었던 익숙하고 친근한 소리들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나무바닥면을 볼 때 여차하면 앉아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변공간주변으로 나무바닥면을 - 조경하는 이들은 이걸 목재데크 또는 목재테라스라고 부른다 - 많이 두는 것도 물 쪽으로 발을 내리고 걸터앉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 쪽이 아니라도 나무바닥면은 언제든지 퍼질러 앉아도 좋을 거라는 느낌을 전해준다.
우리는 예부터 우물마루라는 아주 예쁘면서도 쓰임새도 좋은 마루가 있었다. 우물마루는 먼저 세로로 길게 이어지는 장귀틀을 두고 가로에 일정간격으로 동귀틀을 배치한다. 동귀틀과 동귀틀의 사이에 마룻널(널빤지)을 끼우면 우물마루가 완성된다. 장귀틀과 동귀틀의 만남의 모양이 우물 정(井)자를 닮았다하여 우물마루라고 불린다. 못을 사용치 않는 우리의 전통마루이고 그 형태가 친근하면서도 빼어나다. 아쉽게도 외부공간에서 우물마루와 같은 정교한 목재바닥면을 주기는 쉽지 않아서 통상 좁고 긴 판자를 길이로 못으로 이어가는 방식을 사용한다. 우물마루의 모티브를 부산국악원의 마당에 시도했는데 아직 준공전이라 실제 어떤 모습이 될지 모르겠다. 시공후의 모습을 나중에 다시 소개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금속재 - 간결함과 둔중함의 이중성
금속은 재료 중 아마 가장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재료가 아닐까 싶다. 아주 무겁고 둔중한 느낌을 주고 싶거나 또는 정반대로 아주 간결하고 날렵한 느낌을 주고 싶을 때 외부공간을 만드는 이들은 금속재를 고려한다. 금속재를 외부공간의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정말 최근의 일이다. 금속재를 외부공간에 쓰기 시작하는 경향은 다음에 얘기할 플라스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외부공간에 요구되는 표현력의 정도가 점차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고 또 우리가 늘 새로운 것, 즉 특이성을 추구한다는데 그 원인이 있다.
목재나 금속재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한계는 비바람과 세균에 의한 부식에 약하다는 것이다. 목재나 금속재가 외부에 쓰이기 위한 첫 조건은 부식에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재는 벌레나 세균에 취약하고 금속재는 산화에 의한 부식에 취약하다. 외부공간에 목재를 사용하기위해 여러 가지의 목재방부방법이 개발되어 쓰이고 있다. 간혹 독자여러분들이 외부공간에서 약간 청색 끼가 도는 나무 바닥이나 목재시설물들을 만난다면 이는 크롬과 구리 그리고 비소 등의 화합물로 방부처리 (CCA방부)를 한 것으로 보면 된다. 금속재의 경우에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하나는 아예 녹이 슬지 않는 금속을 쓰거나 녹이 슬더라도 녹이 내부까지 침투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금속표면에 페인트칠 등의 도장(塗裝)을 하여 금속표면이 공기와 접촉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다. 도장의 경우 어차피 금속재의 표면에 색을 준다든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금속표면에 칠함과 동시에 금속표면의 부식을 방지하는 이중의 효과를 노리게 된다. 목재의 방부처리도 겉만 도포하는 방식과 압력을 주어 방부제를 목재내부까지 스며들게 하는 방식이 있듯이, 금속재의 도장도 겉만 칠하는 방식과 열처리를 하여 표면과 도료의 접착력을 높이는 방식이 있다.
도장을 하지 않고 금속자체의 표면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은 경우에는 붉은 녹이 쉽게 스는 일반 철재를 사용해서는 곤란하다. 붉은 녹 자체가 고르지 않고 불규칙하게 앉아 보기에 좋질 않고 녹이 내부까지 들어가 결국 철 자체를 무르게 한다. 산화과정에 의해 부스러지는 철의 본질적인 약점은 철과 다른 금속을 합금형태로 섞음으로서 해소된다. 합금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스테인리스강(剛)이다. 스테인리스강은 이름그대로 녹(stain)이 없는(less) 철재를 말한다. 스테인레스강은 철에 크롬을 섞은 합금인데 크롬은 대기 중에 노출되면 산화 막을 형성하여 내부의 원판을 보호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강도도 일반강보다 높고 가공성과 용접성도 우수하다. 무엇보다 표면이 미려하고 밝아 금속재의 깔끔함을 대표하는 재료다. 가격이 높은 것이 흠이고 때에 따라서 표면의 지나친 밝음과 깔끔함이 오히려 다른 공간요소들과 이질감을 초래하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 중략 …
공간을 만드는 이에게 재료의 선택은 공간의 나눔이나 짜임새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자신이 사용할 그림 재료가 목탄인지 수채화물감인지 아니면 유화물감인지를 모르고 있다면 그 그림이 잘 그려질 턱이 없다. 예를 들어, 수채화물감이 갖고 있는 여러 성질, 즉 물의 양으로 색의 농도나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다든지 또는 다른 색과 같이 섞일 수 있다든지 등의 성질은 그것을 사용할 화가에게 기본적인 지식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경주 힐튼호텔의 외부공간을 설계한 이원조경의 작품들이나 도곡동의 아크로빌 외부공간을 설계한 오이코스의 작품들처럼 설계가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재료에 대해 탁월한 안목과 철저한 이해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적지 않다. 이원조경의 작품은 다른 재료보다 특히 돌과 수목에 대해 설계가가 탁월한 안목을 갖고 있음을 잘 말해준다. 이원조경의 설계가가 다른 설계가들과 교류를 갖지 않고 있는 것은 양쪽을 위해 참 아쉬운 일이다. 다음달에는 재료의 마지막 항목으로 수목, 그중에서도 주로 키 큰나무만 중점적으로 얘기하고자 한다. 수목은 조경가들만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재료이자 무기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조경가들이 가장 다루기 어려워하는 재료이기도 하다. 수목으로 여러분들을 뵙는 다음달까지 건강하시기를.
진 양 교 Chin, Yang Kyo·(주) 토문엔지니어링 종합건축사무소 부소장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대학로, 북촌
대학로 이런 길 저런 길을 걷고, 생각하고, 느끼고 하는 것이 도시민들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걸어서 도시를 음미하는 사람에게 대학로처럼 다양한 삶의 무대가 펼쳐지는 길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대학로는 서울의 삶의 결을 더욱 더 따뜻하게 해주고 있다. 대학로의 역사는 19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이 때 동숭동과 연건동에 경성제국대학을 짓고, 이화동, 동숭동, 연건동에 일본인 교수들의 사택 촌을 만든다. 서울에 최초로 조그만 대학마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던 것이 해방이후 서울대의 문리대, 법대, 의대, 미대 캠퍼스가 동숭동 주변으로 포진하면서 현대식 대학가로서의 외관을 갖추어 나간다. 지금 말하는 캠퍼스 타운인 셈이다. 서울대가 관악으로 이전하기 전 까지 문리대 캠퍼스는 토론, 비판, 항거, 낭만이 숨쉬는 공간이었다. 서울 문리대라는 문화적 요소가 동숭동이란 공간을 만들어 낸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대학로는 동숭동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태생된 것이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대학로와 같은 거리에 대한 애착이 강할 수밖에 없다. 1980년대에 들어와 대학로는 커다란 탈바꿈을 강요받는다. 계획적인 설계에 의해 시민들의 다양한 활동을 담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시정부의 노력이라고나 할까. 대학로는 도시설계가인 양윤재 교수의 도시설계 철학과 의지가 농축된 작품이다. 튀는 젊음과 일반시민들의 문화적 욕구에 대한 공간적 수용, 그리고 전통건물과의 조화 등의 설계요소를 적절히 반영시킨 설계이다. 도시와 건축학도들이 성지순례 하듯이 반듯이 들리는 곳이 되었다. 대학로가 어색하지 않고 친근히 다가오는 것은 아마 설계자의 글로벌 스탠다드에 가까운 안목일 것이다. 오늘의 대학로가 애당초에 도시설계자가 구상했던 대학로의 모습인가? 많은 거리감이 있을 것 같다. 이렇게 까지 천박한 자본이 밀려들어올지는 아마 설계자도 예상 못했을 것이다. 길을 걸으며 내 스스로 말한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도시의 정신”,“아 안타깝다”, “전통은 죽어 가는데 이 곳에는 천한 상업주의만 홀로 살아남았나?”. 그러면서도 “다양한 문화를 아우르는 대학로의 넓이와 폭에 푹 빠져 버렸다”. 북촌 잿빛 기와지붕 위에 시커먼 먹구름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서울 600년 역사의 고유한 정취가 북촌을 껴안으면서 한옥보존 동네와 맞닥뜨리는데, 아! 하는 탄성이 나오기 마련이다. 개화사상의 산실인 박규수의 집터, 근대산업의 터전인 풍년상회, 김옥균, 손병희의 집터, 그리고 윤보선의 옛집 등을 만나면서 파란만장한 근대사와 그 속의 인물들과 조우한다. 여기서는 실제 사람의 체취가 밴 고택들과 숨결을 같이 할 수 있다. 근세가 남기고 간 힘으로 버티는 동네, 북촌. 북촌은 예로부터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 사이에 있는 전통 주거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경복궁과 창경궁은 도선성리학 사상에 의해 설계된 궁궐로서 도선왕조의 자연관과 세계관이 설계에 녹아들어가 있다. 이 두 궁궐 사이에 끼어있는 공간에 귀족들의 주거를 위한 주거지역이 형성된 것이다. 한옥은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이 한옥마을을 가꾸기 위한 시민적 공감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루어져 왔다. 1977년 이 지구를 최고 고도지구로 정하여 한옥보다 높은 건축물이 들어서지 못하게 하였으며, 1983년에는 집단 4종미관지구로 지정하여 관리를 해왔다. 개보수 금지와 건축규제 일변도의 한옥보존정책은 거주민들의 생활환경을 악화시키기에 이르렀다. 90년대에 들어서자 일부 한옥거주자들의 반발이 있었다. 지원과 혜택이 없이 규제위주의 시 행정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이다. 1991년 서울시의 규제완화를 계기로 한옥이 헐리고 다세대와 다가구 주택이 들어서면서 한옥의 숫자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동안 눌려왔던 개발에 대한 욕구가 봇물 터지듯 솟아 난 것이다. 2003년 현재 19만 5천 평의 북촌지구에 약 2천2백 여동의 건축물 중 40%인 860 여동의 한옥이 남아있다. 도시에서의 전통주거지는 이방인에게는 등대이기도 하다. 그 도시의 전통을 보면 현재의 도시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서울시의 끈질긴 설득과 대화로 한옥마을을 보존하기 위한 시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한옥마을이 아직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지난 2000년부터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주도로 북촌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주민 스스로 북촌마을 보존에 앞장서도록 유도하고 있다. 북촌프로젝트의 핵심은 전통주거문화를 계승하기 위한 시 정부의 지원책들이다. 예컨데, 한옥 등록제, 소공원조성에 대한 보조금지원, 주차장 건설, 등록된 한옥의 개보수 비용에 대한 부분 보조, 한옥 신축 시 비용의 일부 지원 등 다양하다. 북촌사업을 추진하면서 문제가 여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원 제 무 Won, Jaimu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