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용산공원 아이디어 공모 시상식 및 토론회
    국가공원, 용산공원의 첫 단추를 꿰다지난 10월 19일 심사 결과가 발표된 용산공원 아이디어 공모의 시상식 및 토론회가 2009년 11월 25일 국토해양부 주최로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개최되었다. 이희정 교수(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의 사회로 진행된 1부 시상식에서는 PA를 맡았던 안동만 교수(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의 경과보고 후 임승빈 심사위원장(서울대학교)의 심사평 발표와 공동 2등작과 3등작 수상자들이 각자의 작품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안동만 교수는 용산공원 아이디어 공모의 진행과정 전반에 대해 소개한 후 “용산공원 부지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근·현대사를 겪으며 오랜기간 군사기지로 사용됨에 따라 기형적 도시 구조를 초래했던 곳으로 이제는 국민의 품으로 반환된다는 상징성을 고려하여 국가공원으로 재탄생될 예정”이며, “국민들의 다양한 요구사항을 발전적으로 수용하고 용산공원의 창조적인 미래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구체적 공원 설계에 앞서 아이디어 공모”를 개최하게 되었다고, 이번 아이디어 공모전의 개최 배경과 의의를 소개했다. 심사총평을 통해 임승빈 교수는 “이번 공모전에 출품된 대다수의 작품들이 대상지의 조건을 존중하고 공원의 성격과 개발 방향을 유보하면서 장기적 해법을 모색하는 시각을 보여주었다고 판단”된다며 “아이디어 공모가 실질적인 의미를 갖기 위해 여러 수상작의 관점과 태도가 용산공원과 관련된 다음 단계의 정책과 계획의 기본 철학으로 반영”되기를 기대한다는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수상작품 발표는 2등작 “Evolving History”(윤희연, 최혜영, 신용주, 기효순), “내재된 풍경”(최종훈, 양기욱, 권니아), “Infra-forest Park”(윤웅원, 김정주, 박주현, 류하나, 문지웅), 3등작 “자연, 꾸미지 않는 아름다움”(홍근표, 서태경, 강수연, 신유희, 김민선), “A Performative Park for a Landscape City”(유걸, 고주석, 고아네모네, 박인수), “DHZ”(유현준, 김연희, 노래원, 김인기) 순으로 진행되었고, 개별 작품 발표 후 수상자들이 단상에 모여 수상 소감 및 타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2부 시상식은 윤진환 과장(용산공원기획단 공원정책과)의 사회로 2등작 3작품, 3등작 3작품, 가작 4작품, 입선 20작품에 대한 시상이 진행되었으며, 권도엽 차관(국토해양부)의 격려사와 조세환 회장((사)한국조경학회)의 축사가 이어졌다. 기념 촬영 및 작품 관람 이후에 이어진 3부는 조경진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가 사회 및 좌장을 맡은 가운데 수상작 분석 및 용산공원에 대한 제언을 중심으로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 / 2010년01월 / 261
  • 서울 문묘
    서울 문묘(文廟)는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53번지에 위치하며, 면적은 81,673㎡(약 24,749평)으로 조선 태조 7년(1398) 한성부 동북부 숭교방에 세워진 이후, 유교를 숭상한 조선왕조의 정신적 지주로서 선성(先聖)과 선현에 대한 봉사의 기능을 수행함과 더불어 국가를 경영할 인재의 양성과 교화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는 곳으로, 대성전, 동무, 서무, 신삼문, 명륜당, 동재, 서재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64년 11월 10일 사적 143호로 지정되었다. 造營 _ 서울 문묘는 공자를 향사(享祀)하는 곳으로, 고려 국자감 이래 유학 교육기관의 전통을 이어받아 태조 7년(1398) 도성인 한양에 조영되었다. 이후 정종 2년(1400) 화재로 소실된 것을 태종 7년(1407) 재건하였으나, 임란 때 또다시 소실되어 선조 35년(1602) 대성전이 중건되고, 곧이어 선조 37년(1604) 동ㆍ서무와 신삼문이 차례로 재건되었다. 그리고 선조 39년(1606) 명륜당, 동ㆍ서재가 재건되었고 20년이 지난 인조 4년(1626)에는 정록청, 식당, 존경각, 양현고가, 현종 5년(1664)에는 비천당, 일양재, 벽입재 등이 세워졌다. 숙종 대에는 계성사를 영건하였고, 영조 원년(1725)에는 숭절사, 영조 19년(1743)에는 육일각 등이 세워졌으며, 조선 말 고종 6년(1869) 대대적인 보수를 거쳤고 현재에도 부분적인 보수가 이루어지고 있다. 立地 _ 문묘는 한양지세의 하나인 창덕궁과 창경궁, 종묘로 이어져 내려오는 줄기인 응봉(鷹峰)의 지혈(支穴)에 입지하고 있으며, 인근에는 현재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운 반수가 흘렀다고 한다. 또한 주변환경으로는 반수와 연계된 청계천, 창덕궁 후원과 연접하고 있다. 주변환경으로는 성균관대학교, 창경궁, 종묘 등이 있다. 空間構成 _ 1)配置形式 문묘는 좌우에 좌청룡, 우백호 형태의 언덕이 둘러싸여 있고, 작은 능선이 문묘 뒤편으로 이어져 응봉에 미치고 있다. 즉 응봉의 혈에 위치한 문묘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지형에 위치하며, 전묘후학(前廟後學)의 공간배치를 따르고 있다. 그리고 주요 건물인 대성전과 명륜당은 축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그 자취를 발견하기 어려우나, 문묘의 동ㆍ서ㆍ남쪽 3면에 반수(泮水)가 접하여 흐르고 있는데, 동반수에 향석교, 중석교, 식당교가 있고, 서반수에는 서반수교가 있어 이를 통하여 문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향석교 어귀에 영조때 조영된 탕평비와 비각이 있다. 신삼문을 들어서면 북쪽 중앙에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제향공간이 위치하고 있다. 대성전 정면 동서에는 동무와 서무가 위치하고 있으며, 동무 전면에는 묘정비와 비각이 있다. 신도는 신삼문 어간부터 대성전 어간의 중심축상에 뻗어있으며 기단 앞에서 “ㄱ”자로 꺾여 대성전에 설치된 두 개의 석계 중 서계와 이어져 있다. 그리고 동쪽의 석계인 조계는 “ㄷ”자로 꺾여 북쪽 담장에 선 일각대문인 북장문까지 길게 이어져 있으며, 일부는 중간에 갈라져 동무 북측 동삼문과 연결되어 외부와 통하게 되어 있다. 동삼문 외부, 진사식당 남측 담 바깥에는 하련대가 있다. 한편 서무 서편에는 제향과 관련된 공간이 부설되어 제기고, 전사청, 수복청 등 제향을 준비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어 대성전 동북측 북장문을 지나면 명륜당을 중심으로 하는 강학공간이 나타나는데, 전면 마당 좌우에는 동재와 서재가 마주보고 있으며, 마당에는 성종연간에 재식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위치하고 있다. 또한 명륜당의 배면 동측 높은 곳에는 도서관인 존경각과 활과 화살을 보관하던 육일각이 있다. 그리고 동재의 동편에는 성균관 재생들의 식사를 담당했던 진사식당이 위치하며, 북쪽에는 정록청, 서리청 등의 성균관 관리들의 서무를 담당하던 곳이 있다. 그리고 제관들이 기거하던 향관청과 동, 서월랑은 정록청 북쪽에 위치한다. 명륜당 서북측에는 성균관의 과거장으로 사용된 비천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