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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가 김영민
    설계 철학을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김영민은 조경설계에 앞서 설계를 하는 이유와 설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되물어왔다. 그 고민의 뿌리는 교수라는 직업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사회는 교수에게 설계를 하라고 하면서, 동시에 설계를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한국에서 겸직이 금지된 교수가 설계를 하려면 타인의 이름이 필요하다. 그것이 형식적이든, 실체적이든, 교수 조경가는 설계 과정의 부분이 될 수 있을 뿐이다. 학의 영역에서 교수가 설계를 한다면, 업에 있는 조경가들과는 달라야 하며, 그것이 무엇이냐는 답을 제시하기를 원한다.” 김영민은 그 답으로 “이론을 정초하는 설계”를 내놓고, “이는 당위라기보다 일종의 자발적 결단에 가까운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번 특집의 초점은 김영민의 이론을 정초하는 설계인 ‘모순지도’에 맞춰져 있다. 모순지도의 의미를 설명하는 에세이, 그가 설계하며 발견한 다섯 가지의 모순, 비슷한 길을 걷어온 동지와 함께 설계하고 있는 동료가 바라본 그의 모습과 인터뷰를 담았다. 김영민이 설계하는 법이 더 궁금하다면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한숲, 2016) 탐독을 추천한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김영민 -- 모순지도 _ 김영민 다섯 가지 모순 _ 김영민 이론이 죽은 시대의 설계 _ 김모아 젊은 그대에게 _ 김아연 뜨거운 심장을 가진 육각형 조경가 _ 이남진
    • / 2024년01월 / 429
  • [조경가 김영민] 모순지도(矛盾之道)
    케 보이(Che vuoi), 무엇을 원하는가 몇 해 전 나의 설계 작업을 주제로 한 강연의 제목을 정해야 했다. 나의 설계를 관통하는 개념이 필요했는데, 사실 그때까지 나의 설계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나에게 주어진 모든 프로젝트의 조건은 모두 달랐으며, 설계는 대개 나의 순수한 의지를 구현한 작품이 아니라 수많은 내부와 외부의 욕망을 수용한 일종의 타협적 결과물이었다. 일종의 선언이 필요했던 나는 모순이라는 개념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는데, 모순은 강연을 준비했을 무렵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새로운 광화문광장과 춘천 시민공원 프로젝트의 핵심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관된 지향점을 갖고 이뤄지지 않았던 나의 설계를 하나의 자아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작업을 소급적으로 재구축해 나아가야 했다. 이는 현재 시점의 불완전한 설계적 주체를 상정하고 모순이라는 기호를 관통하는 과거의 누빔점들을 찾아가며 새로운 주체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이었다. 주체는 욕망의 목적지를 규정하는 과정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다. 나의 설계적 자아가 모순이라는 개념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어디인가. i(a) 이상적 자아 결여된 주체가 소급적으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대상은 이상적 자아다. 쉬운 말로 하면, 롤 모델이다. 별 볼 일 없던 시절 누구나 되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 존재한다. 미숙한 주체는 구체적 대상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 상을 구축할 수밖에 없다. 내 설계적 주체의 이상적 자아는 아이젠만(Peter Eisenman)과 타푸리(Manfredo Tafuri)였다. 20대에 내가 이 둘에게 열광했던 건 사실이지만, 내가 그때부터 그들처럼 되기로 결심하고 설계해왔다는 뜻은 아니다. 마흔 살 넘어 내가 소급적으로 찾아낸 이상적 자아가 아이젠만과 타푸리인 것이고, 이들에게 투영된 나의 욕망은 시대에 대한 저항이었다. 저항은 너무 거창한 말 같고 삐딱한 시비 걸기라고 해두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내가 시비를 걸고 싶은 대상은 ‘짓는 조경’이었다. 모두가 디테일의 완성도, 장소의 실체적 경험, 사람들이 잘 쓰는 공간, 아름다운 식재, 이런 것을 설계적 지향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이는 설계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 조건이지 설계의 지향이 될 수 없다. 짓는 조경은 쓸데없는 이론적 강박과 난해한 개념에서 벗어난 자유롭고 본질에 충실한 조경처럼 보인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런 조경은 자칫 어떠한 비판 의식도, 지향점도 상실한 채 도구적 가치만 남은 종속적인 조경이 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예쁘게 잘 지어지고 사람들이 좋아한다면, 조경은 자본에 예속되든, 정치적 선전으로 전락하든, 도시와 환경의 구조를 왜곡시키든, 아무래도 상관 없는가. 물론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소몰(Robert Somol)과 와이팅(Sarah Whiting)이 ‘쿨’한 시대라고 정의한 오늘날 그런 질문 자체가 시대착오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뜨거웠던’ 시대의 영웅인 아이젠만과 타푸리를 내 설계의 상상적 자아로 소환한 것은 조경 신(scene)에서 한 명 정도는 시대 착오적으로 이론과 설계의 관계를 떠들고 다닐 필요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I(A) 자아이상 롤 모델은 어디까지나 어린 시절의 통과 지점일 뿐, 자신이 결국 롤 모델 과 동일시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그래서 주체가 욕망하는 궁극 적 목표는 상상적 대상에 투영되었던 상징적 자아가 된다. 지제크Slavoj Žižek는 정확히 우리가 타인을 모방할 수 없는, 유사성을 벗어나는 지점 의 동일시가 자아이상이라고 설명한다. 모순이라는 개념으로 정의된 설계적 자아는 단순히 그 누군가의 사유와 방식을 따라하거나 특정 현상 에 대한 비판에 머물 수 없다. 모방과 비판을 통해 도달하려는 지점은 보다 구조적인 것이다. 모순을 통해 나의 설계적 자아가 도달하려는 곳은 정확히 내가 짓는 조경을 비판하는 지점인데,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짓는 조경에 시비를 걸었다고 해서 짓는 조경이 패배해 다른 형식의 조경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비판하는 지점은 둘 중 하나만 존재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다. 다시 말해, 내가 추구하는 조경은 ‘짓는 조경’과 함께 그와 반대되는 ‘개념의 조경’이나 ‘이론의 조경’도 공존할 수 있는 조경이다. 우리는 상반되는 지향이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때 양립 불가 능한 상황을 모순이라고 한다. 인간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변증법이라는 보편적 원리를 발명했다. 헤겔에 의해 정교화되고 마르크스에 의해 교조화된 변증법은 현대 사회 체계를 구축한 가장 효과적이며 명증한 작동 기제가 됐다. 그러나 정과 반의 모순을 종합해 새로운 합으로 나아간다는 변증법은 모순을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차이를 소거했다. 변증법에서 모순의 해결은 실상 모순을 없애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는 정과 반의 종합이 아닌 정과 반 하나의 선택이며, 결과적으로 선택되지 않은 다른 하나의 제거를 의미한다. 그래서 변증법의 시스템이 작동하면 할수록 차이는 제거되고 지향은 균질해진다. 균질해진 지향은 사유를 정지시키고 이는 교조화된 폭력이 된다. 이론이 설계를 지배하던 시대에 대한 저항으로 짓는 설계를 지향했지만, 다시 이론을 죽인 시대에 짓는 설계는 또다른 구속이 된다. 그래서 나의 설계적 자아가 궁극적으로 저항하고자 하는 대상은 변증법적 설계이며, 반대로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차이의 설계다. 모순의 길 내가 지향하는 모순지도는 모순을 해결하지 않는 설계다. 서로 상충하는 두 개념, 혹은 두 요소의 차이를 존속시키는 방식의 설계다. 사실 모순은 설계에서 특별한 개념이 아니다. 모든 설계는 모순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문제와 모순은 다르다. 문제는 기능적 해결을 요구한다. 모순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보자. 배수가 잘 안 되는 땅을 물이 잘 빠지도록 바꾸면 문제는 해결된다. 그런데 모순의 관점에서 보면 여기에는 마른 땅과 젖은 땅의 모순이 있다. 젖은 땅을 없애면 문제와 함께 마른 땅과 젖은 땅의 차이도 제거된다.하지만 물이 안 빠지는 땅에 연못과 정원을 만들면 차이를 없애지 않고도 모순을 공존시 킬 수 있다. 전자와 후자 모두 설계 행위다. 그러나 같은 설계는 아니다. 설계를 통해 전자는 가능성이 제거된 땅이 되고, 후자는 전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미 잠재하고 있었던 새로운 공간이 된다. 모순지도의 원칙이나 방법을 물어본다면, 아마도 그런 건 없을 것이다. 방식이 아니라 태도이며 지향이기 때문이다. 내가 변증법의 문제를 비판해온 여러 사상가에게서 얻은 한 가지 가르침이 있다면 새로운 사유의 길은 늘 과거의 사유에 선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새로움이란 없던 것에서 창조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에서 발견된다는 것이 이들이 알려준 진리였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얻은 교훈이라는 점이다. 모든 땅의 문제와 일의 조건은 다르기 때문에 설계의 보편적 규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해서는 안된다. 모순을 공존시키는 설계는 결국 차이의 설계이며, 그 길의 반대편은 획일성과 동일성이기 때문이다. 김영민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고, 설계를 하는 조경가이며, 글을 쓰는 사람이다. 서울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했다. 미국에서 도시설계와 조경설계 실무를 하고, 여러 나라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론적 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 설계를 추구하며, 설계를 각성시킬 수 있는 이론과 비평 작업을 해나가고자 한다. 대표 프로젝트로 ‘행정중심복합도시 도시상징광장’, ‘새로운 광화문광장’, ‘파리공원 리노베이션’ 등이 있다.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 등 십여 권의 책을 썼고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번역했다. 현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과 함께 설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조경가 김영민] 다섯 가지 모순
    조경가 김영민의 작품과 설계 철학을 살펴본다. 그가 지향하는 설계와 과정에서의 고민, 설계 개념의 중심축인 모순을 중심으로 다섯 가지 이야기를 구성했다. 언어의 모순, 광장의 모순, 건축의 모순, 공원의 모순, 정원의 모순 순으로 소개한다. 01. 언어의 모순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은 다음과 같이 건축을 정의했다. “진짜 건축은 오직 드로잉에서만 존재한다(The real architecture only exists in the drawings)”. 이처럼 설계는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한 계획과 방법을 도면에 명시하는 행위다. 조경설계가 단순히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공간이나 대상을 만드는 행위에 그친다면 개념은 필요 없다. 그런데 조경설계의 대상이 기능적 공간 외의 속성, 즉 미, 예술성, 상징성, 장소성 등의 의미를 수반할 때 개념이 개입한다. 개념이 개입하는 순간 설계에서는 말과 사물의 모순이 생긴다. 페터춤토르(Peter Zumthor)에게 설계는 사물에 대한 것이다. 피터 아이젠만의 설계는 사유의 영역에 있다. 모든 조경가는 말과 사물 사이의 어떤 지점을 택해야 한다. 그런데 어떠한 지점을 선택하더라도 그것은 모순의 길이다. 정온(靜穩)과 역동(逆動) 설계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학원을 갓 졸업한 제자와 함께 모란미술관이 주최하는 설계 공모 모란 폴리 2016에 참가했다. 모란미술관에 폴리를 설계하는 공모전으로, 일반적 공모와는 달리 피스풀 다이내믹스(peaceful dynamics)라는 모순적 주제가 주어졌다. 나는 생명이 막 탄생하는 순간, 태초의 감각을 폴리로 구현하고자 했다. 고요한 역동성, 이 상반되는 두 개념을 통해 끌어내고자 하는 건 공간적 대상이라기보다는 시간적 개념에 더 잘 부합한다. 시작은 균질한 평형이 깨지고 새로운 양태로 나아가려는 시간적 경계다. 생명의 발생은 모든 시작의 순간 중에서 가장 고요하면서 역동적인 사건의 기점이다. 그리고 수정체는 시작의 시간적 개념이 공간적으로 결정화된 대상이다. 생명체는 외부의 환경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반응을 해야 하고, 그 반응의 기작은 생명이 진화하며 감각이 된다. 그렇다면 원생의 감각은 어떠한 감각인가. 감각 기관이 분화되기 이전, 원생의 감각은 현실과 실재, 가능성과 잠재성의 경계에서 존재한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실재하는, 가능하지 않지만 잠재하는. 그렇기 때문에 원생의 감각은 고요하면서도 역동적이다. 이제 개념적으로 실재하나 현실의 직관으로는 부재하는 모순의 영역을 현실의 감각 세계로 소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매개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아닌 바보 같은 건물. 현실에 있으면서 비현실적인. 모순적 폴리가 그 매개체다. 폴리의 8m 지름 원형 내부에 2m 지름의 작은 잔디 정원이 있다. 정원 위의 천장은 뚫려 있어 하늘이 보인다. 내부는 끈들의 밀도에 따라 공간이 형성된다. 끈의 배치에 따라 경험되는 감각의 유형과 강도가 달라진다. 배치의 밀도에 따라 시각이 차단되며 개방된다. 반대로 촉각이 개방되며 차단된다. 폴리는 원생의 감각을 담는 매개체다. 인간은 감각을 다섯 개로 분류해 편의상 인식의 체계에 맞추었다. 감각의 유와 종은 어떠한 측면에서는 무한하며, 어떠한 면에서는 단 하나다. 촉각. 모든 감각은 촉각의 일종이며 분화다. 원생의 감각은 분화되기 이전의 감각. 시각, 청각, 후각, 미각이 모두 촉각으로 융해되어 있는 상태다. 따라서 폴리의 내부는 촉각의 공간이다. 이때 촉각은 감각이 모두 분화되고 남은 찌꺼기로서의 촉각이 아니라 분화되기 이전의 촉각이다. 무수히 많은 끈이 만드는 공간을 경험하려면 끈의 장막으로 들어가야 한다. 끈은 밀도가 다르게 배치된다. 밀도에 따라 감각의 강도가 달라진다. 폴리 안에는 촉각만이 존재하는 영역이 있으며 다른 감각을 열어주는 영역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개념적 설정 자체가 모순이라는 점이다. 이미 인간의 감각은 분화되었기 때문에 원생의 감각은 실제로 허구의 감각이다. 인간은 진화의 궤도에서 시각에게 모든 감각의 지배권을 내어주었다. 시각의 지배성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현대인이 경험의 주체인 이상 원생의 감각은 시각을 통해서 유도된다. 감각의 끈들은 강렬하다. 폴리의 형태는 시각적으로 기하학적이고 단순한 원형이다. 가장 찬란한 시각적 감각이 사라질 때, 원경이 아닌 극도의 근경이 솟아오를 때 순간순간 원생 감각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다. 바보의 건축 폴리에서. 폴리가 완공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술관을 찾았는데 단체로 견학 온 유치원생들이 까르르 대며 폴리에 들어가고 있었다. 매우 앳되어 보이는 선생님은 아이들의 사진을 찍다가 셀카도 찍었다. 그 모습을 보며 공모에 제출했던 현학적 수사와 개념 풀이는 과연 어떠한 역할을 하는 것인 지 자문해 보았다. 표상(表相)과 내재(內在) 실행을 전제로 하지 않는 아이디어 공모는 현실의 제약이 없어 모든 게 가능할 것만 같다. 하지만 현실의 대상지가 주어질 때 그 무게는 그렇게 가볍지 않다. 한국은행 앞 분수광장과 같은 대상지인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이곳은 일제강점기부터 경성의 중심지였다. 경성의 최대 번화가였던 혼마치와 메이지마치의 입구였고, 은행 본점들과 함께 경성을 대표하는 미쓰코시 백화점이 있던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신세계 백화점 본점이 자리 잡은 서울의 중심지 중 하나다. 1970년대 이후 이곳은 분수대로 기억되어 왔다. 그런데 이 광장의 문제도 바로 이 분수대에 있었다. 1930년대부터 광장에 원형 분수대를 설치했는데, 1978년에는 이일영의 조각 15점으로 이루어진 조각 분수상으로 바뀐다. 분수대 가운데 설치된 8층탑은 서울의 여덟 문과 여덟 산을 상징한다. 그리고 탑신 주변의 대형 군상은 가족, 예술, 건설을, 입상은 애국, 번영, 충효, 평화, 총화, 풍화를 상징한다. 1970년대 한국 사회의 지향을 보여주는 이 분수대는 산업화 시대 근대화 이념을 직설적으로 외치고 있다. 이 분수대 앞에서 노년층은 본인의 젊은 시설을 회상하며 향수에 잠길 수도 있겠지만, 이곳을 바쁘게 스쳐 가는 대부분 이들에게 이 분수대의 메시지는 시대착오적이거나 공허한 과거의 흔적이다. 대상지에서 한참 사람들을 관찰했다. 이 분수대를 바라보는 이는 거의 없었다. 무표정하게 지나가는 이들에게 이 분수대와 주변의 녹지는 길을 막는 거대한 장애물로만 느껴졌다. 대상지는 이 분수대 때문에 활용하기도 어려웠다. 중심부를 거대하게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광장에서 새로운 활동이 일어나기도 어려웠으며, 휴식을 취하려 해도 마땅히 앉을 장소가 없었다. 굳이 머물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시선은 분수대로 향하는데, 조각이 전하려는 이야기는 일방적이고 강압적이어서 한참 보기에는 불편했다. 사실 저 분수대는 사라지는 것이 맞았다. 육중하고 직설적인, 저 불편한 남근적 분수대가 사라지면 수많은 가능성이 열린다. 아마도 이 공모 주최 측의 의도는 분수의 제거일 것이며, 대부분의 공모 참가자는 저 분수를 없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분수를 없애기로 하면 또 다른 모순적 지점에 부딪힌다. 이미 30년 가까이 저 분수는 이곳의 장소성을 규정해 왔다. 지금은 의미를 상실한 1970년대의 가치와 이념도 분명 우리의 일부다. 좋든 싫든 우리는 그 1970년대를 딛고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만들었다. 효용이 다했다고 사라져야 한다면 많은 것을 우리는 버려야 한다. 그래서 분수대를 존속시키면서 없애는 모순적인 설계를 제안했다. 분수대를 반전시켰다. 말 그대로 지면을 기준으로 분수대를 뒤집었다. 분수대의 형상은 주형을 떠 유리로 제작한다. 과거의 상징인 청동의 조각과 돌의 탑은 가장 가볍고 투명한 유리의 형태로 역전된다. 지하의 뒤집힌 조각은 과거가 여전히 우리의 일부로 남아 다른 방식으로 존재해 현재의 가치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로써 지상을 차지하고 있는 남근적 분수대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분수대의 상징성은 자궁과도 같은 공간으로 내화된다. 숨겨진 역동적 지하의 세계에 마련된 신전은 과거를 새로운 상징으로 치환하고 지상은 살아 있는 잠재성을 위한 표면이 된다. 역전된 분수대는 물을 담는 수반이 된다. 수평의 수반은 사람들의 시선을 외부로 열어준다. 번잡한 도로와 광장을 막는 나무나 시설을 들여놓지 않으려 했다. 가장 많은 이야기를, 그리고 변화의 풍경을 담고 있는 도시적 경관을 바라볼 때 멈추어 바라보는 자리가 머무는 자리가 된다. 이미 가장 역동적인 무대가 있었음을 발견할 때 사람을 위한 객석이 마련된다. 수반의 주변에는 잔디광장을 만든다. 사람은 잔디를 밟을 수 있다. 맨발로 거닐 수 있고 누울 수 있다면 다른 일도 하게 된다. 이곳에는 사람이 모이게 된다. 사람이 거닐 수 있는 반경의 도심 일대에 유일하게 열린 녹색이기 때문이다. 물이 담긴 수반은 지하에서는 투명한 천창이자 조형물이다. 투명하기에 빛은 지하로 들어온다. 그러나 물이 있기에 빛은 강하지 않고 여과된 투영이 된다. 유리 수반의 아래에는 작은 정원을 만든다. 회현 지하상가와 신세계 백화점 지하의 결절점에 놓이는 이 지하의 공간은 비밀의 정원이다. 이곳은 도시의 분주함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시적 공간이 된다. 그 시는 가장 강렬했고 희망에 넘쳤고 동시에 가장 어두웠던 1970년대의 메시지가 역전된 오늘날을 위한 위로의 시다. 이 안은 1등 없는 공동 2등 안으로 뽑혔다. 몇 개월 뒤에 공모전을 주최한 구청에서 연락이 왔다. 이곳의 새로운 미디어 분수를 설치하는 프로젝트에 관한 자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미국의 저명한 조경가가 설계를 진행한 안이었다. 새로운 안에는 지금의 분수대보다 세배는 높아 보이는 거대한 미디어 기둥이 솟아 있었다. 인공(人工)과 자연(自然) “어떻게 녹색으로 처리할 수 없을까요?” 조경가로서 가장 많이 듣는 모순적 요청 중 하나는 인공물을 어떻게든 녹색으로 처리해달라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왜 그런 인공물을 만들었단 말인가. 이런 요청은 대부분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불가능한 요청으로 판명 난다. 첫째, 시기의 문제. 대부분 시기가 한여름인지 한겨울인지 상관없이 당장 녹색을 원해서 안 된다. 둘째, 장소의 문제.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이 아닌데 녹색을 원해서 안 된다. 셋째, 관리의 문제. 식물을 심을 수 있다 하더라도 곧 죽어버리거나 엄청난 관리가 필요한 상황에서 녹색을 원해서 안 된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는 하나의 무지 혹은 착각으로 귀결되는데, 자연의 식물이 인공물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번 자문도 그랬다. 서울로7017과 서울역 북측에 폐쇄된 주차 램프를 연결하는 프로젝트 자문을 해야 했다. 이미 서울역 롯데마트 야외주차장에 옥상정원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서울시는 공공건축가에게 연결 공간에 구조물 설계를 의뢰했다. 이미 있는 낡은 건물 위에 구조물을 올리는 일이라 건축가는 경량의 비계 구조물을 제안했다. 예쁘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 구조물은 누가 보더라도 임시 공사장을 연상시켰고 빨리 철거하라는 민원이 빗발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래서 식재로 구조물을 가려 공사 시설 같은 느낌을 완화할 방법이 없는지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대상지는 식물이 자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극악한 조건을 갖고 있었다. 자연 지반이 전혀 없었고 구조물이 낡아 새로 토심을 확보할 수도 없었다. 주변 건물로 인해 항상 강풍이 불어 웬만한 식물은 이번 생은 빨리 마감하겠다고 결심할 것 같았다. 폐쇄 램프 아래 공간이 있었으나 정화조배관과 공조 설비가 잔뜩 있어 난감했다. 나는 녹색으로 무엇을 시도하든 망할 것이라는 저주 같은 자문 의견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마음 편하게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담당 공무원에게 연락이 다시 왔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냐고, 그냥 내가 프로젝트를 맡아주면 안 되겠냐고. 어 라? 원래는 안 되는 것이지만 조경왕이 맡으면 달라질 수 있지. 덥석 미끼를 물어 버렸다. 일단 입체적 격자 형태의 구조물에 담쟁이 따위를 올려봤자 별 효과가 없어 보였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기존의 격자 단위를 분절해 입방체 안에 더 작은 입방체가 들어있는 마트료시카 같은 구조를 제안했다. 그리고 그 구조를 녹색으로 덮어 떠있는 거대한 식물의 구름 같은 하늘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문제는 추가된 구조체와 식물의 무게를 기존 건물이 견딜 수 있냐는 점이었다. 구조기술사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했다. 나도 학부 때 건축을 전공했는데 내가 한번 풀어보기로 했다. 램프 가장 아래층에 자연 기반처럼 보이는 조그만 땅에 전체 구조를 지탱할 수 있는 트러스 기둥을 제안해 전체 하중을 받는 안을 그렸다. 그 안을 보고 구조기술사는 다른 사람을 알아보라고 했다. 그래서 알아봤는데 안을 보고 모두 자기들은 맡을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 OMA의 특수 입면을 풀었다는 회사를 소개받았고, 대표님은 안 되는 게 어디 있냐고 환하게 웃었다. 물론 실무자들의 표정은 일그러졌지만. 어쨌든 된다고 하니 서울시에도 해결될 것 같다고 보고를 했다. 팀장님은 내가 만든 거대한 신단수 같은 녹색의 인공 구조물을 무척 좋아했고 예산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 한 주무관이 물었다. “그런데 저 식물은 진짜 식물이죠?” 물론 가능하다고 말하려다가 뒷감당이 두려워 요새 가짜 식물도 진짜 같다고 대답했다. 가짜 식물이라는 이야기에 좋아하던 팀장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는 겁을 주었다. 당장 가을에 완공해야 하고 겨울에 사람들이 볼 텐데 진짜 식물로는 다 죽어요. 관리도 절대 안 됩니다. 책임질 수 있겠어요? 마지못해 모두가 가짜 식물로 가는 데 동의했다. 일은 착착 진행되는 듯했다. 과장님도 오케이, 팀장님도 오케이, 부시장님이 문제였다. 그냥 한마디를 하셨다. 너무 과한데. 모든 것이 재검토에 들어갔다. 우선 30m 길이의 신단수 기둥이 날아갔다. 나는 예전의 구조기술사에게 읍소를 했다. 다시 어떻게 구조 해결이 안 될까요? 기술사는 마지못해 몇 개의 추가 입방체와 가짜 식물들을 허용해 주었다. 원안에 비하면 거의 탈모 수준의 엉성한 녹색 구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서울의 가장 큰 나무는 존재하지 않으니 프로젝트의 새로운 스토리를 짜야했다. 사람들이 진입하는 공간에는 진짜 식물이 심긴 정원을 만들었다. 가을에는 갈색이지만 봄에 다시 녹색으로 변하는 자연 그대로의 시간성을 담는 정원이다. 하늘에는 가짜 식물로 이루어진 인공의 정원이 있다. 추운 겨울에도 녹음이 우거진 하늘 정원은 초현실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램프 바닥에는 숨겨진 비밀의 정원이 있다. 간접광만으로 자랄 수 있는 음지 식물과 함께 흙 위에 자갈과 모래, 바크를 덮은 마른 정원으로 꾸몄다. 지하의 비밀 정원에는 자연스럽게 씨앗들이 날아와 잡초가 자라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의도되지 않았던 식물들로 채워진 지하의 정원은 점차 색이 바래지는 하늘의 인공 정원과 대비를 이룬다. 가장 푸르렀던 인공의 자연과 가장 회색빛이 었던 야생의 자연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역전된다. 시공 팀의 피, 땀, 눈물로 프로젝트는 기간에 맞춰 완공됐고 원래 꿈꾸었던 그대로는 아니지만 꽤 멋진 인공과 자연이 공존하는 정원이 만들어졌다. 철이 바뀌고 이듬해 늦은 봄에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공공 미술품을 폐쇄 램프에 설치해야 하는데 정원을 철거해도 되겠냐고. “어쩔 수 없죠”라고 대답했다. 사실 진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환경과조경429호(2024년 1월호)수록본 일부
    • 김영민 / 2024년01월 / 429
  • [조경가 김영민] 인터뷰: 이론이 죽은 시대의 설계
    삐딱한 시선이 조경에 닿기까지 -수상 축하드립니다. 시상식에서 이미 들었지만, 독자들에게도 간단한소감을 부탁드릴게요. “몇 차례 젊은 조경가에 지원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고사했던 터라 조금 민망하기도 합니다. 이 공모의 취지가 말 그대로 젊은 조경가, 지금 막 사무소를 연, 설계를 잘하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조경가를 조명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교수가 지원하는 건 아니라고 봤죠. 지원했다가 떨어지면 머쓱할 것 같기도 했고요.” -마음을 바꾸게 된 이유는요. “추천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도 굳건했는데, 이번 해가 나이 제한 때문에 상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이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다른 이유도 있었어요. 최근 들어 바이런과 함께 본격적으로 설계 활동을 한 뒤로 교수가 설계하는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라고요. 교수면 연구와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라는 걸까. 하지만 설계를 가르치는 교수인데 설계를 하지 않을 수 있나. 의문이 들어 이야기를 나눠보니 포인트는 그거였어요. 교수라면 업과 경쟁하는 설계가 아닌 교수만이 할 수 있는 설계를 해야 한다는 것. 나름대로 그런 설계를 하고 글로서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스스로도 명료하게 정리하지 못한 상태였더라고요. 이번에 지원서를 작성하고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교수가 할 수 있는 설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수상자분들이 공모 지원과 특집 준비를 하며 자신의 작품과 설계 철학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그간 썼던 글을 봤는데, 퍼싱 스퀘어 개조 공모 평문에 유년 시절을 로스앤젤레스에서 보냈다는 얘기가 있어요.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LA라고 하는데 다들 농담인 줄 알아요. 아버지가 그쪽에서 공부를 해서 저도 한 살부터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LA에서 보냈거든요. 1학년을 다 마치지 못하고 왔으니 교포 문화가 몸에 깊이 배었다거나 정체성에 혼란을 겪거나 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LA에 대한 막연한 향수가 있긴 하고요.” -대학에서는 건축과 조경을 공부했네요. 복수전공을 한 건가요? “네. 조경학과에 입학했는데, 사실 처음에는 건축에 관심이 있었어요. 과학고를 다녔는데, 학교 특성상 과학과 수학에 특화된 수업이 주였고 미술 같은 과목은 전혀 없었죠. 그런데 특이하게 소설을 읽는 데 시간을 제일 많이 썼어요. 제가 원래 좀 삐딱한 구석이 있거든요. 만화나 영화를 봐도 세상을 구하는 주인공보다는 악당들이 더 흥미로웠어요. 모두가 A라고 하면 괜히 B라고 답하고싶어 하고요. 주변 사람들이 모두 과학과 수학에 집중하고 있으니 나는 좀 다르고 싶은 거예요. 매일 고전소설과 역사책에 파묻혀 있으니 친구들이 문과 가야 하는데 학교 잘못 온거 아니냐고 말하곤 했죠. 순수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학원을 운영한 어머니의 영향인지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기도 했어요. 아주 어렸을 때의 꿈은 만화가였는데, 슬쩍 그 뜻을 내비쳤다가 어머니가 만화책을 싹 다 내다버리는 통에 마음을 접었죠. 제 성향을 깨닫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문적이면서 예술적인 학문이 건축밖에 안 떠올랐어요. 사실 조경은 잘 몰랐는데, 어머니 지인 중에 건축학을 공부하신 조경학과 교수님이 있었어요. 그 분이 건축과 조경을 같이 공부하는 건 어떻겠냐고 조언을 해주셨죠. 그래서 조경학과에 들어가면서 건축학과 수업도 일찌감치 함께 듣기 시작했어요.” -결국에는 조경을 선택하셨네요. “건축을 실제로 배워보니 설계 교육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흥미로웠어요. 그런데 건축의 특성상 자유로운 창작보다는 퍼즐처럼 맞추는 식의 설계를 하는 면이 있어요. 예를 들어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설계할 경우, 수도 위치에 따른 욕조와 변기의 위치, 변기와 벽 사이의 거리, 전기 배선 위치 등을 한 번에 고려해 조립하듯 공간을 만드는 거죠. 이런 면이 좀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조경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느껴졌고요. 그러던 중 칼 스타이니츠(Carl Steinitz) 교수의 한 인터뷰를 봤는데 대답이 인상적이었어요. 가장 잘한 프로젝트가 뭐냐는 질문에, 계곡을 개발하는 사업에서 건축과 토목과 논의하고, 그곳을 왜 개발하면 안 되는지 피력해서 그대로 둔 프로젝트를 뽑았더라고요. 멋있었어요. 조경을 해야겠다 싶었죠. 건축은 기본적으로 구축에서 출발해요. 그에 상응하는 비움이라는 개념이 있지만 조경과는 완전히 다르죠. 그대로 두는 것만으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조경이 특별하게 느껴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축은 참 매력적인 학문이고, 그래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조경설계 시스템과 담론이 조금 만 들어졌지만, 대학에 다닐 당시에는 서점에 조경 서적 코너가 없었어요. 반면 건축은 풍부했죠. 그 담론들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조경에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학생들에게 늘 건축에 대해 공부 하라고 말해요. 많은 사람이 건축이 조경을 잘 모르고 오해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조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건축을 더 몰라요.” -워낙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대학 시절은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해요. “사실 대학 시절에 공부를 엄청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교수님이 우스갯소리로 서울대에 학사 경고 시스템이 있었다면 너희 중 반은 경고를 받았을 거라며 반성하라고 할 정도였죠. 물론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하긴 했지만, 그 목표가 올 A를 받는다는 식은 아니었어요. 여행도 많이 다녔고 책도 많이 읽었죠. 모든 건 제로섬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건 맞지만, 하나에 깊게 파고드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싫증을 잘 내는 편이거든요. 어느 달은 책 한 권 읽지 않다가 어느 달은 주구장창 책 읽는 데만 몰두하기도 하고, 설계하다가 재미없어 글 쓸래 하고 글만 쓰기도 하고요. 이런 성정이 언어, 책, 운동 등 다양한 데 깊고 얕은 관심을 두게 만든 거 같아요.” -졸업 후 여러 가지 선택지 중 유학을 택했네요. “당시 보통 학교나 설계사무실에서 외국 조경가들의 작품을 참고하면서 설계를 했거든요. 그래서 기왕 설계를 시작할 거라면 막연하게 그들에게 한 번 배우고 그쪽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가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을 텐데,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없나요. “학교 수업을 통해 배우기보다 동료들한테 많이 배웠어요. 이론이나 지식을 얻은 게 아니라 태도와 분위기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버드GSD의 공간 구조가 특이해요. 건물 절반 이상이 스튜디오인데, 테라스식으로 되어 있고 벽이 없어 개방적입니다. 자연스럽게 건축이나 도시 등 다른 과의 스튜디오를 볼 수 있죠. 입학 동기 중 건축과에 전설적인 인물 두 명이 있었어요. 한 명은 양성구 건축가인데, 세계적 공모전을 휩쓸어서 건축가를 꿈꾸는 학생들의 영웅 같은 사람이었죠. 다른 한 명은 봉일범 교수(국민대학교)인데 대학생 시절에 마이클 헤이스(Michael Hays)의 『1968년 이후의 건축이론』(2010)을 번역한 사람이었습니다. 같은 유학생이지만 봉일범 교수는 이미 그때 10권 분량의 책을 집필하는 중이었어요. 마이클 헤이스 책이 어려운데 어떻게 이해했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읽어보니 어려워서 그가 책에 인용한 모든 책을 다 읽었다고 답하더라고요. 대단하죠. 그 둘에게 큰 영향을 받았어요. 교수 중에는 칼 스타이니츠가 떠올라요. 광역적 맥락에서 계획적 조경설계를 하는 교수인데, GIS 컴퓨터 분석 시스템을 만들었고 ArcGIS 프로그램을 개발한 에스리Esri 사의 대표예요. 그에게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건축과 도시를 공부하고 도시 및 지역계획 박사학위까지 받은 뒤 29살의 젊은 나이에 하버드 교수가 됐는데, 왜 조경학과 교수가 됐는 지 물은 적이 있어요. 스타이니츠 교수가 이렇게 답하더라고요. 박사 과정에 들어가기 전 20대 시절 세계 일주를 해보고 싶어서 인도와 동남아쪽을 둘러봤대요. 1960년대 즈음일 텐데, 여행하면서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들의 환경을 바꿔줄 수 있을까. 건물을 바꾼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도시의 문제도 아니고, 고민하다 보니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는 건 조경이라는 결론에 다다른 거죠. 그의 말투가 굉장히 단호해요. 학생들의 말을 끊고 자신의 의견을 펼치기도 하는데 너무 명료한 주장에 반박을 할 수가 없죠. 미국 경관생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처드 포먼(Richard Forman)의 수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야외 수업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2박 3일 정도 텐트나 캐빈에서 묵으며 생태 조사를 해야 하거든요. 그날도 생태 조사를 나가 늦은 밤 둘러앉아 있었는데, 한 학생이 왜 본격적으로 생태 연구를 하는 곳이 아닌 하버드 GSD를 택했냐고 물었어요. 포먼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교수와 박사, 연구자만 읽는 것에 회의를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연구를 하는 이유는 생태적 설계를 통해 환경 파괴를 막는 것인데 이 원리를 현실에 적용하는 설계가와 계획가에게 알리려면 어떻게 할까 고민한 결과 하버드 GSD를 찾게 되었다고요. 그 흔들림 없는 대답이 마음에 깊이 남았어요. 멋진 꼰대랄까요. “넌 틀려, 난 알아”라고 말하는데 불쾌하기보다 내가 저 나이가 되면 저런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졸업 후에는 귀국하지 않고 SWA에서 일을 했어요. 입사 과정이 궁금해요. “아틀리에 성격의 사무소를 갈지, 더 큰 규모의 사무소를 갈지 고민하며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중에 잡 페어가 열렸어요. 분위기를 볼 겸 방문했다가 SWA 부스에 들렀습니다. 인터뷰 분위기가 좋았는데 회사 위치가 오렌지카운티더라고요. 학교를 다니며 오렌지카운티에 위치한 회사에서 인턴을 했는데, 평화로운 동네라 그런지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져서 그 지역 사무소는 피하고 싶었어요. 아쉬웠죠. 그런데 잠시 뒤 SWA 직원 두 명이 작업물을 보고 싶다며 저를 찾아왔어요. 포트폴리오도 없는 상태라 노트북으로 그래픽 몇 점을 보여줬고 자연스럽게 인터뷰로 이어졌죠. 망설이던 차에 두 분이 LA 오피스를 냈다는 말을 해서 관심이 갔어요. 연 지 2년 밖에 안 된 사무소고, 기존 SWA와 달리 공모전 참여 등을 하려고 본사에서 독립한 사무소라고 하더라고요. 근무 조건도 마음에 들어서 입사하게 됐습니다.” -SWA 생활이 지금의 설계에 영향을 끼친 점은 없나요. “SWA는 스튜디오의 연합체에요. 스튜디오마다 디자인 소장(principal)이 다르죠. 학교 설계 스튜디오와 비슷하다고 보면 돼요. 그래서 SWA의 색은 색이 없는 거예요. 만약 제 설계에 어떤 색이 느껴진다면 제가 있던 스튜디오를 이끌었던 디자인 소장의 영향이 아닐까 합니다.” 학의 영역에서의 설계 -6년 정도 SWA에서 일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시립대에 교수로 부임했어요. 교수가 되면 겸직 문제로 설계를 자유롭게 할 수 없는데, 아쉽지는 않았나요. “마의 3의 배수라는 말 아세요? 3년, 6년, 9년처럼 3의 배수가 되는 해 마다 직장 생활에 위기가 찾아온다는 말이죠. SWA에 6년 정도 근무했 을 무렵, 저 역시 회사를 옮겨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어요. SWA 스튜디오에는 각각 디자인 소장과 매니지먼트 소장이 있어요. 3년차 만에 상급자들이 회사를 떠나면서 제가 스튜디오의 3인자가 됐죠. 디자인 소장이 저를 키워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지 일찌감치 매니지먼트를 시켰어요. 문제는 제가 프로젝트 하나를 담당하는 위치에 서다보니, 흥미로워 보이는 프로젝트는 디자인 소장이 맡아버리게 되는 거예요. 지루하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서울시립대에서 설계교수를 뽑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지원하게 됐어요. 사실 최종 발표에서 파워포인트 자료의 폰트 가 깨지는 바람에 당황했거든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자료를 보며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죠. 그런데 오히려 그 상황을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좋은 평을 받았나 봐요. 운이 좋았습니다.“ -학교 선배가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를 김영민 교수의 지도를 받아 참여했던 게 기억나요. “막 교수가 됐을 무렵 제 설계교수 모델은 명확했어요. 정욱주 교수(서울 대학교)와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처럼 활동하는 걸 상상했죠. 미국에 있을 당시 두 분이 큰 공모에 참여하는 걸 보며 재미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시가 2008년이었는데,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진 때였어요. 대부분 의 프로젝트가 중단된 터라 한국의 조경설계 여건이 더 좋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교수가 되면 일이 밀려 들어올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해외 유학파 교수의 조경설계가 신선하게 느껴지던 시기가 저물고 있었던 것 같아요. 6년이라는 설계 경력이 조금 짧기도 하고, 대형 공모전도 줄 어드는 추세였습니다. 교수가 된 지 얼마 안된 터라 수업 준비를 하느라 바쁘니,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 같은 기회가 조경설계를 해볼 수 있는 기회였죠. 그게 교수가 된 뒤 참여했던 첫 설계일 거에요. 지금도 많 은 조경설계 교수가 비슷한 프로젝트로 학생들과 설계를 해요. 한국의 경우, 공무원법과 사학법에 따라 교수는 겸직을 할 수 없으니까요. 처음 큰 건축 공모전에 참여하게 된 것도 우연이었어요. 본래 다른 교수에게 협업 요청을 했는데, 그분이 일정이 바빴고 대안으로 저를 추천해주었더라고요.” -자기소개서에 ‘학의 영역에서의 설계’, ‘학과 업의 공유지대’라는 표현 이 있어요. “교수만이 할 수 있는 설계”와 연결되는 지점일까요. “맞아요. 몇 해 전부터 교수만이 할 수 있는 설계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어요. 어렴풋하게 답을 내리자면 이론적 담론을 만드는 설계가 아닐 까 해요. ‘조경비평 봄’을 하면서, 작가론이 뚜렷한 한국 조경가가 있는 지 고민해본 적이 있어요. 쉽게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건축 역시 1990년대가 역사상 가장 실무가 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었고, 담론이 풍부했 던 때에요. 2000년 이후부터 꺾이기 시작했죠. 그 결정탄을 날린 게 렘 콜하스였구요. 이론이 왜 필요하지 않은지를 이론적으로 설명한 희대의 천재죠. 그 결과 핫한 설계의 시대가 저물고 쿨한 설계의 시대가 도래했 어요. 핫한 설계는 쉽게 말하면 아방가르드로 볼 수 있어요. 건축, 조경, 도시가 부조리한 사회를 개혁해야 하며 공공성을 가져야 하죠. 쿨한 설 계는 말 그대로 쿨한 태도를 취하는 거에요. “돈을 추구하는 게 나빠? 건축에 꼭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해? 어려운 얘기하지 말자. 보기에 좋고 멋지네, 느낌 있으면 됐잖아” 하는 식으로요. 최근에는 짓는 조경이 중 요해졌죠. 그게 쿨한 설계를 닮았어요. 의미를 담지 않고 보기에 좋은 설계를 하면 되는 면죄부가 되어주기도 하거든요.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있어요. 건축은 핫이 쿨에게 패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논쟁이 있었거든 요. 그런데 조경은 없었어요. 기존 세대의 조경에 대한 치열한 비판 의식 없이 건축의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인 경향이 없지 않아 있죠. 지금의 짓는 조경은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의 짓는 건축과는 다르다고 봐요. 짓는 조경이 나쁘다라는 말이 아니에요. 하지만 짓는 조경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예술로서 조경을 주장한다면, 예술이 꼭 행복하고 좋은 것만은 뜻하지 않기에 더욱 다양한 조경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겠 죠. 어떤 조경이 필요한지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야 하고, 그러한 설계를 나는 교수로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설계 철학으로 모순지도를 이야기했죠.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 하기』에 비슷한 문장이 있더라고요. “정을 활용하고 변형한 반의 디자 인까지 넉넉히 표용한다.” 모순지도를 이 문장의 확장판이라고 봐도 되나요. “그런 문장을 썼었군요. 지금 생각났어요. 그때부터 모순지도의 씨앗이 제 안에 있던 모양입니다. 모순지도의 방식으로 설계를 하겠다고 규정 했던 것은 아니지만요. 다양성을 포용하는 조경 -김영민 교수가 펜을 잡고 설계 도면을 그리는 모습을 상상한 적이 없어요. 주로 기본설계의 틀이나 개념을 세우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남진 소장의 에세이를 보니 직접 도면을 그리기도 하나 봐요. “기본설계 틀이나 개념에 관심이 많긴 하지만, 당연히 도면도 그립니다. 협업하는 팀원의 성향에 따라 제 역할을 조절합니다. ‘용산공원 설계 국 제공모’에서는 모든 공간을 세세히 그릴 필요가 없었어요. 그 역할은 최신현 대표(씨토포스)가 하니까요.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의 경우에도 제가 공간을 디테일하게 설계하지 않았어요. 주로 큰 개념을 던졌죠. 하지만 이런 설계만 해서는 안 돼요. 이 부분이 교수의 설계가 비판을 받는 지점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춘천 시민공원 마스터플랜 설 계공모’에서는 모든 다이어그램과 설계안을 직접 그렸어요. 그런데 사실 요즘은 프로젝트를 할 때 모든 설계를 혼자 컨트롤하는 설계는 지양하려 합니다. 다른 직원들이나 학생들이 설계를 통해 성장의 가능성을 못 느낄 수도 있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전부 컨트롤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합니다.” -개념에서 출발하는 설계를 하는데, 혹시 형태적 시그니처는 없나요. “개념적 방향은 가닥이 잡혔지만, 형태의 방향은 없는 것 같아요. 모순 지도는 제 설계의 개념적 정체성이니까요.” -말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지고 있는데 자기 설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적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몇몇 칼럼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패배록”(라펜트, 2020년 6월 10일)은 용기가 있어야 쓸 수 있는 글이라 재미있게 읽었어요.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건 담론이 없다는 거예요. 저는 말할 수 있는 채 널이 적다고 생각하는 편이고요. 건축의 경우, 오래 지속되지 않더라도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획이 일어나거든요. 건축에서 기획 한 ‘종이와 콘크리트’ 전시의 토론에 가봤는데, 너무 놀라웠어요. 교수, 학생, 소장 등 여러 사람이 자유롭게 논쟁하더라고요. 교수의 말에 학 생도 편안하게 반박할 수 있는 분위기였어요. 조경에도 그런 토론의 장 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그게 교수의 역할이기도 하죠. “패배록”에 이어 이해인 소장(HLD)이 “정신승리록”이라는 글을 써 응답했을 때 너무 기뻤어요. 아쉽게도 이야기가 더 이어지진 않았지만요.” -앞서 광화문광장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개인적 궁금증인데, 광장과 공원은 어떻게 달라야 하나요. -앞서 광화문광장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개인적 궁금증인데, 광장과 공원 은 어떻게 달라야 하나요.“광장은 공원이 되면 안 돼요. 우리가 광장에 대해 오해하는 점이 있어 요. 광장의 핵심이 비움은 맞지만, 우리 광장의 비움은 서양 광장의 비 움과 같을 수 없습니다. 서양 광장에서 비움이 의미를 갖는 건 주변이 낮고 빽빽하기 때문이에요. 광화문광장의 경우 주변을 도로가 두르고 있죠. 광장을 마당의 개념과 혼동하는 경우도 있는데, 마당은 한옥이라 는 건물이 있어야 의미를 갖습니다. 광장이 적절한 비움을 갖게 되면 그 주변의 존재가 드러나요. 광화문광장의 경우, 광장을 비워 북악산이나 경복궁의 존재를 드러나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비울 경우, 거대한 바닥과 광장 주변의 고층빌딩이 부딪치게 돼요. 그 충돌을 완화할 요소가 녹지였습니다. 광장의 비움을 유효하게 만드는 건 이 녹지의 비율이에요. 공원의 녹지와는 다르죠. 다 숲으로 만들어서도 안 되고요. 일정 부분은 숲으로 어떤 부분은 건물과 광장을 연결하는 매개 로 쓰며 다양한 녹색을 만들어내려 했어요.” -‘벽과 경계의 정원’ 설명에 눈이 가요. “정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없 이 유행되는 양상에 대해 정원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했죠. “꽃과 식물을 가꾸는 문화가 활성화되고 다양한 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지만 정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없는 상태에요. 조경이 탄 생할 때 정원과의 전투가 있었거든요. 랜드스케이프 가드닝landscape gardening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로 바뀌며, 그 싸움에서 패배한 정원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원은 공원이 사회적 인프라로 자리매김하면서 상실 한 예술적 가능성을 살릴 수 있는 매체라 봅니다. 슬픈 공원이나 외로 운 공원은 이상하지만, 슬픈 정원이나 외로운 정원은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정원은 꼭 공공적이거나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공간으로 기능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거라 봅니다. 아파트 조경 역시 정원에 가까워요. 정원의 한 가지 속성이 사적이라는 점이 니까요. 그런데 묘한 점이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사적 공간이라는 거죠. 이 독특한 형태의 정원을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제대로된 담론 을 만들어내지 않으려는 게 아쉬워요. 사실 아파트 조경이 조경 산업에 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잖아요. 국민의 반 이상이 아파트에 사는 시대에 사람들은 어쩌면 공원보다 아파트 내 정원에 자주 방문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식물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지도 궁금해요. “식물이 조경의 전부는 아니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에요. 저는 식물 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매체라고 봐요. 특히 식물은 ‘시간성’을 부여 하는 독특한 매체에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같은 계절은 물론이고 낮과 밤 시시각각 변하며 조경에 시간성을 만들어주죠. 조경에서 식물을 빼면 건축과 다를 바가 없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조경은 어떠해야 할까요. “조경은 자꾸 건축이나 토목이 되기를 욕망해요. 조경이 무엇인지에 대 해 고민하는 대신, 조경은 왜 건축처럼 할 수 없는지, 토목처럼 될 수 없 는지, 예술과 같을 순 없는지 이야기하려고 해요. 어쩌면 조경의 정체성 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무언가가 되기를 욕망하는지도 모릅니 다. 정체성이 없다는 걸 약점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자유로움을 무기로 삼기 바랍니다. 건축에는 뚜렷한 본질이 있어요. 피라미드가 원형이고, 완벽한 영속불멸을 꿈꾸죠. 조경에는 이런 강박이 없어요. 조 경은 무엇이든 될 수 있죠. 다양성의 시대에 이보다 큰 장점이 있을까요. 다만 조경이 다 같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주류가 주류를 정복하는 조경이 아니라 형태를 추구하는 조경, 개념을 추구하는 조경, 관계를 추구하는 조경, 짓는 것을 추구하는 조경 등 다양한 모양의 조경이 공존하기를 바랍니다.”
  • [조경가 김영민] 젊은 그대에게
    꽃으로만 설계하는 것은 위험하다. 금방 저물기 때문이다. 젊음을 무기로 하는 것은 위험하다. 곧 사라지기 때문이다. 언젠가 사라질 젊음을 주목하고 상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젊은 작가상, 젊은 예술가상, 젊은 과학자상, 젊은 건축가상. 그 취지를 들여다보면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홍보’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 “한국 조경의 미래를 설계하는 젊은 조경가를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과 생각을 널리 알리고자 매년 선정” 한다는 ‘젊은 조경가’의 취지에 비춰 볼 때도 그의 수상은 수상하다. 발굴되어야 하는 존재도 아니고 널리 알릴 필요도 없는, 이미 한국 조경계의 큰 기둥이기 때문이다. ‘젊음’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수상에 의심쩍은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의외라고 생각했으니까. 오히려 그래서 더 걱정스러운 마음이다. 기성 조경가이자 교육자로서 그가 보여준 역량과 가치가 ‘그들만의 리그’를 우려하는 눈초리로 위축되지 않을까 여러 마음이 교차한다. 나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료이자 동지다. 나이로 치면 선배겠지만 그를 처음 만난 게 우리 대학에 임용되는 과정 중이었던 터라 그와의 첫 출발 자체가 동료다. 그래서 술자리에서도 쉽게 말을 놓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젊은’이라는 곧 사라질 형용사를 제거한 온전한 설계 교육자 김영민에 대해 짧게 얘기하려 한다. 설계 교육과 설계 실무의 중간 영역 설계를 가르치며 설계 프로젝트를 해온 나의 활동 영역을 이렇게 표현해 왔다. 설계 교육과 설계 실무의 중간 영역. 그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혹자는 왜 교수가 이 좁은 설계 실무 바닥까지 탐내냐고 질책하기도 한다. 교수의 타이틀로 모두가 어렵게 성취하는 일을 쉽게 가져간다면 당연히 들어도 될 비판이다. 우리는 그러한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쉬운 존재들이다. 그러나 조경이라는 실용 학문에서 교수자의 실무적 감각은 미래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량이다. 특히 설계 교과목을 가르치는 자들은 실무에서 부딪치는 시행착오에 대한 해법과 실무에서 결여된 새로운 비전을 교육적으로 번역해 학생들에게 전달할 의무를 가진다고 믿는다. 그는 그러한 점에서 실무와 교육, 이론과 현실 그 중간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설계 교수다. 나는 그와 설계 교육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화려함에 가려져 있던 교육자로서의 그의 참된 모습을 비로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음을 대표하는 것이 전진과 성취라면, 그래서 기성세대를 비판하는 것이 젊음의 특권이라면, 이제 그는 그것을 바탕으로 공유와 분배를 고민할 시점에 곧 설 것이고, 그 비판의 정점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무거운 책임의 시대로 들어설 것이다. 그렇게 그는 앞으로 설계 교육의 리더로 또 다른 모습을 당당히 증명하리라 믿는다. *환경과조경429호(2024년 1월호)수록본 일부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건축대학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조경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을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제주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경관 개선사업 설계팀의 디자인 감독을 맡았다.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드러내는 시학을 표현하고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 한다.
  • [조경가 김영민] 뜨거운 심장을 가진 육각형 조경가
    김영민 교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7년이었다. 당시 국내 조경 분야 베스트셀러였던 노란색 표지의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조경, 2007)을 접하면서, 번역자인 그의 이름이 유난히도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해는 내가 조경에 입문한 첫 해였고, 새로운 학문을 접한 나에겐 너무나도 어려운 책이었다. 이런 난해한 내용의 책을 직접 한 줄씩 풀어서 써내려간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 글을 이해조차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큰 충격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개념이 한국에 소개되어 유행하던 시기였고, 지면이나 수업에서 자주 언급되던 핫한 키워드였기에 더욱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김영민은 나에게 벽과 같은 존재였다. 김영민 교수를 다시 만난 건 그가 서울시립대학교에 부임한 이후 몇년이 지난 2017년 겨울이었다. 그의 존재를 알게 된 지 10년 만에 처음 실제로 만나게 된 것이다. 젊은 조경가 몇 명의 사적 모임(그 이후 ‘조경이상’이라는 모임으로 발전하게 됐다)이었는데, 그 자리에서도 그는 동양과 서양을 넘나들며 조경과 건축, 그리고 철학의 대서사를 역설하고 있었다. 여전히 지적 소화력이 평균 이하였던 나에겐 그의 똑똑해 보이는 두상이 빛나보였다. 이후 몇 번의 모임을 더 가지고 두세 건의 프로젝트를 같이 할 기회가 생기면서 조금씩 친밀도를 높여갔지만 여전히 거리감을 느낀 건사실이었다. 나와는 차원이 다른 스펙과 범접할 수 없는 해박한 지식을 갖춘 그와 대화를 하게 되면 나의 무지함이 쉽게 드러날 것만 같았다. 2020년 3월, 강아람 대표, 김영찬 소장과 함께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VIRON)을 창업했다. 소소한 시작을 응원하기 위해 몇몇 조경가가 새 사무실에 와 저녁 식사를 함께했는데, 그때 김영민 교수도 기꺼이 참석했다. 많은 격려를 받으며 앞으로의 험한 과정을 헤쳐 나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헤어졌는데, 당시 김영민 교수의 마지막 인사가 아직도 생생하다. “도움이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기억하기로 똑같은 말을 그날에만 세 번 정도 되풀이했다. 한두 번이었으면 예의상 파이팅하라는 뜻으로 알고 가볍게 넘겼을 텐데 그날의 인사는 진심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김영민 교수와 함께 작업할 기회를 계속 엿보게 되었던 것 같다. *환경과조경429호(2024년 1월호)수록본 일부 이남진은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현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VIRON)을 이끌고 있다. 좋은 설계는 좋은 회사에서 나온다는 생각으로 설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