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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백년 수도서울, 도시환경의 맥을 짚어본다 ; 풍수로 본 서울 도시공간의 합리성
    -풍수의 보편성 문제 서울이란 땅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 하지만 서울이 거쳐온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전근대적인 왕조시대의 중심지에서 자본주의의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도시의 역할과 구조가 혁명적으로 변해왔다. 봉건시대에 있어서 서울을 만든 풍수의 놀 리가 이미 질적 변화를 경험한 거대도시 서울에 대하여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가 불분명한 것이다. -음양론과 역의 사상 음양론과 역이라는 풍수사상의 기반을 살펴볼 때 생명가치의 존중과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화해를 통한 삶의 지속성 추구가 중시됨을 알 수 있다. 이것이 풍수의 정신이며 서울은 이러한 정신이 투영되어 비로소 원형을 갖게 된 것이다. -서울의 풍수 서울의 땅은 삼각산과 한강의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이들이 음양의 두 중심축인 셈이다. 삼각산은 서울 강북지역의 전역에 산맥을 뻗어 지기를 흘려보낸다. 한강은 서울 전역에서 흘러나온 물을 모아 흘러간다. 삼각산에서 뻗은 주맥이 만든 서울의 중심이 북악산이다. 삼각산이 서울전체를 주관한다면 북악산은 사대문(四大門) 즉 이 내명당(內明堂)이다. 내명당의 물은 청계천으로 모여들어 한강과는 역방향으로 흐른다. 내명당은 인왕산과 낙산 그리고 남산으로 보호된다. 좌우용호(左右龍護)와 주산(主山)인 북안, 안산(案山)인 남산은 각각 짜여진 도시이다. 전후좌우, 안과 밖 그리고 위 아래의 균형이 잘 잡혀있다. 이중환(李重煥)이 택리지(擇里志)에서 ‘온 나라 산수의 정교함과 신령함이 모인 곳’으로 서울을 묘사한 이유도 음양의 조화가 치밀했던데 있었다고 보여진다. -서울 풍수의 의의 일제 식민지 시절부터 서울의 공간은 음양의 조화가 파기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음을 상징하는 ‘자연’ ‘보전’ ‘비움’ ‘소박’ ‘전통’ 등과 같은 가치들은 쇠퇴하고 ‘성장’ ‘인공’ ‘채움’ ‘화려함’ ‘현대’ 등의 양(陽)의 가치만 강조되어졌다. 도시화에 따른 여러 가지 부작용들은 풍수적 입장에서 음양의 조화를 무시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이해된다. 현재 서울의 공간은 풍수로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상황이 이와같음에도 풍수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과거의 맥을 되짚어 봄으로써 당면한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다. -건강한 서울을 위한 풍수의 제언 서울의 도심에서 쇠락하는 기능들이 발생하고 이들이 공간이동 혹은 소멸하는 경우에 그들이 점유했던 공간을 새로운 기능으로 채울 것이 아니라 그냥 비워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학교, 군부대, 공장, 등이 이전하고 난 뒤 생기는 공간은 자연생태로 복원하기 위해 비워두는 것이다. 이것이 어려우면 최소한 구릉지대나 산줄기에 위치한 기능들이라도 소멸하면 이곳만이라도 비어워야 한다. 비움은 잠재력을 재충전하는 것이며 변화속에서 살아남은 융통성을 남겨두는 것이다. 비워진 공간은 서울에 고갈된 음(陰)의 성격을 살려주고 나아가 사람들의 가치관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키워드 : 풍수, 음양론 ※ 페이지 : p74~p79
    • / 1994년02월 / 70
  • 6백년 수도서울, 도시환경의 맥을 짚어본다 ; 민가정원
    민가란 우리 조상들이 살아왔던 주거공간이요, 민가정원이란 주거공간 속에서 자연을 노래하고,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겼던 대상이었으므로 대단히 중요한 문화유산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도시화와 개발이라는 명분하에 대개의 주거문화유산들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으며 도시내에 기록과 유적마저도 찾아볼 길이 없다. 본고에서는 이런 측면에서 뿌리찾기작업의 일환으로 조선시대 서울의 민가와 민가정원에 대해 기록에 의해 더듬어보고 그나마 남아서 유형문화재 및 민속자료로 지정된 유산들에 대해 정리 언급하면서 향후 이들 민가정원의 발굴 및 복원 계승의 필요성과 과제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조선시대 서울의 사회적 배경신분계층에 따른 주거의 위치와 주택규모는 적어도 기록상에 나타나는 사대부 또는 서민주택의 원형과 정원의 규모를 짐작하는데 도움이 되며, 이중에서 문화가치가 높은 민가와 정원을 발굴하고 복원하는데, 또 그 유적을 보전하는데 참고가 되리라고 생각된다.-민가주택 및 정원의 기록과 원형--개괄적인 서울의 주거문화 형태19세기 이후의 서울의 주거형태를 보면 고래등같은 큰 기와집과 게딱지같은 작은 초가들이 한데 모여있고 관청이나 왕실, 사당과 같은 관 건물과 일반사가집들이 역시 한데 어울려서 크고 작은 건물, 관과 민의 건물들이 뒤섞인 모습을 보였다. 1896년 이후 10년간의 호적대장에 의하면 당시 성안의 서린방이나 장통방같은 곳에는 1백칸을 넘는 가옥들이 여럿 있었고 50칸을 넘는 집들은 전체 성안에 2백체를 웃돌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동시에 10칸 이하의 집들도 성안 전체의 절반 이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와같은 다양한 규모의 집들이 서로 혼재되어 한쪽 1백여칸 집이 있는 바로 곁에 10칸에 20, 30칸짜리 집들이 뒤섞여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그중에는 기와집이 있는가 하면 초가집들도 서로 섞여 있게 마련이었다.-기록에 나타난 민가와 민가정원여기에 소개하는 민가와 민가정원들은 소유자가 조선 6백년을 통털어 대표성이 있는 인물이고, 정원에 관한 기록이 반드시 있고, 문헌적・고증적 자료의 수집이 가능한 것으로서 향후에도 서울의 민가정원을 이해하고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서울 600년사와 기타 기록에 의한 사례들을 모아 정리하고 도신화해 본 것이다.-현존하는 고주택・민가정원서울시내에 남아 있는 주택과 정원중에서 가치가 있는 것들은 대개 사적, 지방 유형 문화재나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으므로 이들을 중심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민가와 민가정원은 사적1점 지방 유형문화재3점과 민속자료 22점뿐으로 이중 대표적인 민가정원은 성락원(城樂苑), 석파정(石波亭), 부암정(付岩亭)이다. -서울의 지형경관적 조건과 민가정원의 위상청계천을 따라 1910년 고종 당시 도성내에 있던 다리의 숫자만도 76개 도성외 10개가 있었다고 하니 개천이 얼마나 컸고 깨끗하였으며 주변경관이 좋았는가를 짐작 할 수 있다. 다라서 사대부집 민가의 배치는 주로 산세와 수경관이 겸비된 곳에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민가는 건축적으로 조정(朝庭)에서 정해준 규모를 초과해서 짓지는 않았지만 대지의 규모와 주변 풍광은 크게 재재를 받지 않았으므로 자연을 벗하고 노래할 수 있는 곳에 택지를 택하여 가치있는 것들이 많았다.민가는 사람이 살았던 생활공간이요. 그 정원은 생활의 장으로써 외부공간이다. 세계 어디를 가 보아도 선진국일수록 옛 선조들의 정신을 기리고 관광자원화 하기 위해 역사유적을 중요시하고 있다. 파리가 그렇고 프랑크푸르트, 런던, 로마, 보스톤이 그렇다. 남들은 비록 짧은 역사와 넓지 않은 문화속에서 과거를 들추어내고 보존 전시하여 그 나라를 빛내는데 우리 서울은 있는 것 마저 파괴하고 유념해 두지 않으니 도대체 어불성설인 것이다. ※ 키워드 : 민가, 민가정원, 민가정원의 유적 ※ 페이지 : p52~60
    • / 1994년02월 / 70
  • 6백년 수도서울, 도시환경의 맥을 짚어본다 ; 수도 서울, 숲의 생태계
    생태계는 사람, 동물, 미생물 등의 생물과 물, 기후, 토양 등 생물을 둘러싼 주변의 무기환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서로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어 영향을 주고 받으며 균형을 유지하여 나간다. 생태계는 또한 물질이나 에너지를 통하여 끊임없이 순환한다. 가량 식물들은 태양에너지를 받아들여 물질을 생산하는 생산자이며, 이것에 의존하는 동물들은 소비자이다. 식물과 동물은 분해자(分解者) 또한 환원자를 통하여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불교의 윤회사상은 생태계의 원리와 일맥 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인구의 증가와 산림수도 서울의 인구는 현제 1천1백만명을 넘고 있는데 조선 초기 수도를 정할 당시에는 약 10만을 조금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후에는 서서히 증가하였으나 해방과 6・25동란 이후 급격히 증가하였다. 현재 서울시의 자연공원과 근린공원의면적은 1989년말 현재 약 16,800ha로 서울시민 1인당 녹지면적은 약 15㎡이다. 이 면적은 일본 동경의.1.15㎡,요꼬하마 1.32㎡,오오사까 1.42㎡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며 미국의 뉴욕, 로스엔젤레스, 영국의 런던과 비슷한 수준이다.-서울시민의 산림에 대한 의식표본적으로 조사한 바로는 서울 시민의 약 55%가 일상적으로 집에서 산이 보이는 곳에 거주하고 있으며, 66%가 1년에 최소 한번 이상 근교의 산을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림의 중요성에 대하여 묻는 질문에 대하여는「목재 생산기능」, 「수원(水原)의 함양(涵養)」,「풍치경관(風致景觀)의 보전」「동식물의 보호」중에서 조사에 답한 사람의 74%가 「수원(水原)의 함양(涵養)」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다음으로 20%가 동식물의 보호, 4%가 풍치경관의 보전, 나머지 2%가 목재생산이 중요하다고 응답하였다.-서울시 도시 숲의 실태현재 서울에서는 원시적인 숲은 거의 없어져 버리고 정도의 차는 있어도 사람의 영향하에 있는 자연 즉, “사회화된 자연”으로 변해 버렸다. 도시내에 있는 숲은 바로 이 “사회화된 자연”의 전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로수 현황서울시의 가로수는 전국의 26%로 27만여 그루가 생립하여 있다. 구성비율을 보면 양버즘나무가 49.4%, 은행나무가 36.8%, 은단풍이 3.6%, 수양버들이 2.4%, 그 외 벚나무와 느티나무 등 모드 25종으로 구성되어있다.-숲의 관리 방향우리 시민들은 환경적, 인위적으로 자칫 쇠퇴할 우려가 있는 이 “사회화된 도시숲”을 되살릴 의무를 가지고 보호해야 한다. 나아가 가능한 자연에 가깝게 도시 숲은 조성, 유지 관리하는 생태적 관리를 해야하며, 그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도시 숲을 인간과 같은 하나의 살아있는 자연생태계의 일원으로 인식함과 아울러 공존공생하고 하는 인식이 필요하다. ※ 키워드 : 생태계, 산림, 도시 숲, 가로수 현황, 숲의 관리※ 페이지 : p69~p73
    • / 1994년02월 /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