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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정원] 일본의 명원24 에도 시대 말기의 정원(2)
  • 에코스케이프 2016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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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쓰지 동정 스케치(출처: 大橋治三·齊藤忠一, 1998, p.192)

 

 

다이쓰지 정원

 

다이쓰지大通寺는 텐표天平 15(743) 도다이지東大寺의 삼강三綱으로 있던 쇼텐(承天, 승천) 화상和尙이 고호잔(高峰山, 고봉산) 산꼭대기에 관세음보살을 봉안하고 개창開創한 절이다.

 

이때 쇼텐화상은 고호잔 산기슭에 흑송을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흑송을 심은 연유가 무엇이었는지 알려진 것이 없다. 이 절은 가마쿠라鎌倉 시대 초기에 고토바인後鳥羽院의 칙원사(치쿠간지, 勅願寺)가 되면서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으며, 에이쿄永享 원년(1429)에 월 계량국月溪良掬 선사에 의해 조동종 소속의 절로 종파를 바꾸었다. 현재의 가람은 호레키宝曆9(1759)부터 칸세이寬政 말년(1800)까지 정비공사로 완성한 것이다. 가람의 정비와 더불어 정원의 조성도 이루어졌는데, 정원은 여러 건물이 정비되는 칸세이 5(1793)부터 분카文化 10(1813)까지 21년간 지속해서 만들어 완성한 것이라고 한다. 정원을 만든 이는 야카케矢掛에 거주하던 중서원병위中西源兵衛, 다옥원병위茶屋源兵衛라는 별칭을 가졌는데, 이것을 보면 이 사람은 다정일미茶庭一味의 경지에 도달한 모양이다. 작정자인 중서원병위는 정원을 매우 좋아해 그가 살아있던 90세까지 관아락정거사觀阿楽庭居士라는 법명法名으로 불렸다고 한다(大橋治三·齊藤忠一, 1998, p.192).

 

정원은 본당本堂인 방장方丈 건물에서 북쪽으로 돌출돼 건축한 개산당開山堂을 사이로 동쪽과 서쪽에 만들어진 까닭에 동쪽의 정원을 동정東庭, 서쪽의 정원을 서정西庭이라고 부른다. 정원 후면부는 본래의 지형을 이용해 1, 2, 3산이라고 부르는 3개의 산을 축산해 에도 말기의 축산 취향을 볼 수 있다. 개산당의 남북 축선을 연결하는 1산의 정상에는 삼존석조三尊石組를 배치했다. 이 삼존석조는 동서 양쪽 정원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어 어느 쪽 정원에서 보더라도 정원의 수직적 중심으로서의 상징성을 가진다.

 

동정은 방장 건물과 서원書院 건물의 후면부에 조성된 후정後庭에 해당한다. 툇마루에서 보면 좌측 축산 위에 삼존석조가 정상에 우뚝 솟아있고, 정면으로는 축산 상부에서 흘러내리는 폭포와 못 그리고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폭포는 축산의 상부로부터 흘러내려 온 물이 작은 못에 고였다가 다시 계류로 흐른 뒤 적당한 지점에 이르러 높지 않은 곳에서 떨어지도록 조성한 직폭 형태를 보인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은 다시 좁은 계류를 흘러 서정 쪽으로 흘러가서 작은 못에 입수된다. 축산의 중간 지점, 삼존석조 하부에는 양쪽 날갯돌을 가진 학석조鶴石組를 설치했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흐르는 계류 우측에는 학석조와 짝을 이뤄 구석조龜石組를 설치했다. 구석조는 못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출도 형식을 갖추고 있다.

 

서정은 동정으로부터 흘러넘친 물이 좁은 수로를 흐르다가 개산당 후면부를 지나면서 폭이 넓은 계류로 바뀌고, 이 물이 토교土橋 밑으로 조성한 수로를 통해서 못에 고이도록 만들어진 수체계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수로의 후면부에는 삼존석조와 연결되는 연산석조連山石組를 설치했는데, 이것은 오백나한에 해당하는 상징적의미가 있다. 요사채 바로 앞에 조성한 작은 못 위에는 얇은 판석으로 석교를 만들어 정원을 둘러보도록 동선을 연결하고 있다. 단순한 관상식이 아니라 회유식의 기능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이쓰지의 동정은 삼존석조, 폭포, (太鼓, 다이코)처럼 위로 휜 석교, 그리고 폭포를 반영하는 산등롱山燈籠이 작정을 위한 주요 요소가 된다. 이것을 보면 다이쓰지의 동정은 세이간지靑岸寺 정원의 구원실성(久遠実成, 온지쓰죠)을 연상시킨다. 전체적인 구성을 볼 때 이 정원은 단순히 산수화적인 풍경만이 아니라 선적禪的인 요소들이 잘표현된 선정禪庭으로서의 격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大橋治三·齊藤忠一, 1998).

 

다이쓰지 정원의 전체 면적은 1150m2 정도로 넓지 않은 편인데, 정원의 후면부로 고호잔의 봉우리가 보여 정원의 범위를 먼 곳까지 확대하고 있다. 이 정원도 에도시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차경 기법을 적용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다이쓰지를 그린 옛 그림을 보면, 동정과 서정의 모습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게 그려져 있어 이 정원의 원형이 잘 유지·보존돼 지금까지 이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에도 정원의 후면부에 고호잔의 봉우리를 강조해 그린 것을 보면, 정원의 조성에 있어서 차경 기법이 매우 중요하게 적용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홍광표는 동국대학교 조경학과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조경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경기도 문화재위원경상북도 문화재위원을 지냈으며사찰 조경에 심취하여 다양한 연구와 설계를 진행해 왔다현재는 한국전통 정원의 해외 조성에 뜻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저서로 한국의 전통조경한국의 전통수경관정원답사수첩』 등을 펴냈고, “한국 사찰에 현현된 극락정토”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또 한국조경학회 부회장 및 편집위원장한국전통조경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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