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걀을 탁자 위에 세울수 있습니까?” 콜럼버스가 모두에게 물었다. “그게 가능한 말이냐”며 사람들은 고개를 젓는다. 이내 달걀 밑을 톡톡 쳐서 깨뜨린 후 보란 듯이 세우는 콜럼버스이다. 누구든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항의가 빗발쳤지만 콜럼버스는 태연하게 “이렇게 세우는 것은 남이 하고 난 다음에는 쉽습니다. 그러나 처음으로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장형태 대표가 야생화를 육종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대한종묘를 세웠던 197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산과 들에 흔한 것들을 뭣하러 키우느냐’며 고개를 저었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식물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으로 전남 구례에 터를 잡고 연구에 매진해 왔다. 지금에 와서야 누구나가 우리꽃의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대한종묘가 설립될 당시만 하더라도 야생화 육종이라는 것은 거의 모험에 가까운 시도였다. 장형태 대표가 콜럼버스와 닮은 점은 바로 이러한 유연한 사고와 굳건한 실천의지가 있다는 점이다. 국가에서 부여한 ‘대한민국 제1호 종자명장’, ‘?신지식농업’이란 호칭도 지금까지 부단한 연구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의 행보에 대해 이젠 우리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결국 대한종묘조경은 약 600여종의 야생화를 연간 100만주 이상 생산하는 국내 최대의 우리식물 생산 기업으로 성장했다.
우리식물 좋다던 농사꾼, 블루오션 개척하다
“아주 기초적인 지피식물로 꼽히고 있는 잔디도 국내에 도입된지는 불과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장형태 대표가 우리식물에 관심을 갖고 회사를 설립한 것이 1979년이니 업체의 역사도 어느덧 30년이 훌쩍 넘어섰다.
그는 처음에 부친의 과수묘목 농사를 도와주면서 취미로 야생화 수집을 시작했다. 한 종 한 종 모으면서 “이렇게 우리 꽃, 우리 식물들이 아름다운데, 왜 이 땅에서 주목을 끌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고, 이후 각종 자생식물 연구서적과 해외사례를 공부하며 이러한 의문들을 확신으로 굳히게 된다. 우리 식물만 보아도 절로 미소를 짓던 농사꾼이 대한민국 자생식물의 개척자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전남 구례군 화엄사로 향하는 길목에 대한종묘가 터를 잡는 시기와도 맞물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