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1970년대의 회상
1963년 1월 25일 문화재관리국의 직원으로 들어가서 1968년 11월 1일 사무관이 되어 문화재과의 관리계장이 되었다. 전국의 역사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당시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책이나 논문들이 거의 없었다. 목마른 욕심에 탐독한 책들은 조지훈 저 『韓國文化史 序說』과 박종홍 교수의 『한국철학사』, 『한국의 사상적 방향』, 최문환 교수의 『민족주의 전개과정』등이었다.
1966년 4월 28일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아산 현충사 이충무공 유허』를 보존/정비 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이 지시로 인하여 문화재관리 정책이 달라지게 되었다. 일제식민지 시대의 점(点)의 문화재 관리에서 건축환경이나 사적지의 역사적 경관 가치를 보존 정비하는 면(面)의 문화재 관리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사적지의 정비 사업은 조경 사업이 된 것이다. 현충사 경내 조경 사업은 우리나라 사적지 경관 조성 사업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현충사 사당에 오르는 참배로 주위 소나무 숲은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조성하고 있으며 이 길을 걸어보면 역사를 사색하는 고요함이 있고 건강의 기(氣)를 받는 길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1970년 12월 8일은 퇴계 이황선생이 돌아가신지 400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헬리콥터를 타고 도산서원 상덕사에 참배하러 갔다. 나는 대통령이 탄 헬리콥터에 타고 갔다. 내 소임은 도산서원 가는 길을 안내하는 것과 현장의 유적 설명을 담당하였다. 그런데 문화재관리계장으로 육로로는 도산서원에 가보았지만 비행기 타고 간 일이 없어서 퍽 당황했었다. 박대통령은 많은 유적지(행주산성, 칠백의 총, 제승당, 충렬사, 충민사, 강화도 전적지 등) 보존정화사업을 대통령지시 사항으로 하였다. 이런 때 꼭 정화공사 기공식 전에 설계검토를 받고 특히 조경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래서 1972년부터는 대통령 비서실에 오휘영 조경담당 비서관이 임명되어 조경사업을 정책적으로 이끌었다.
나는 도산서원 조경을 하기위해 문헌조사를 했다. 도산잡영(陶山雜詠), 도산서원 영건기사, 도산별곡 등 문헌자료와 도산서원도의 그림 등을 참고하여 조경설계를 하였다. 호국선현유적을 보존, 정비하는 사업을 모두 이와 같이 문헌자료의 조사 연구와 현황실측조사를 실시하여 추진하게 되었다. 『산림경제』,『양화소록』,『조선왕조실록』,『삼국사기』,『삼국유사』,『신증동국여지승람』등 이런 책 속에서 조경관계 자료를 수집해갔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