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주 ([email protected])
요즘 어디를 가도 자작나무가 쉽게 눈에 띈다. 자작나무는 수피가 하얗고 수간이 수직으로 곧게 뻗어 공간에 세련미를 더해준다. 회색의 콘크리트 건물 앞에 서 있으면 무거운 분위기를 중화시켜주고, 주변이 화려한 곳에서는 시선을 정돈해주는 느낌이 든다. 단조로운 공간에 때론 포인트가 되기도 하는 여러모로 훌륭한 미적 효과를 자랑하는 조경 소재다. 자작나무는 이런 장점을 가져 조경용으로 많이 쓰이는데, 알고 보면 식재 기반과 관리, 기타 생육 조건을 맞추기가 까다롭기로 손꼽힌다. 이 나무는 묘목은 잘 활착되지만 큰 나무는 이식이 어려워 ‘점’ 수가 높으면 하자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 대부분 큰 나무를 심는 조경공사에선 주의를 요하는 나무다.
지난해 발표된 논문 『아파트 조경변화에 따른 조경수목하자 경향 연구』(2014)에 따르면 자작나무는 2013년 기준 39%의 높은 하자율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LH 수목하자 현황에도 자작나무의 하자율은 약 40% 이상으로 높게 나타난다. 설계 개념을 구현하기 위해서 자작나무를 꼭 심어야 하는데 현장의 조건이 생육에 부적합한 경우가 종종 생긴다. 시공업체에서는 하자의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보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자작나무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상을 대체할만한 수종을 찾기가 여간어렵지 않아 그냥 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같은 현장을 다음에 찾아가면 수목이 있던 자리가 빈자리로 남아 있거나 고사목으로 심겨 있는 경우도 더러 있다.
설계 단계에서 상황을 판단해 적절한 수종을 선정했다 하더라도 시공 과정에서 대상지가 생육 조건이 맞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있다. 한 예로 계획대로 시공을 할 경우 높은 하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 현장이 있었다. 원안대로 시공을 하려면 식재 여건을 개선하거나 수종을 변경해야 해 발주처에 건의를 했다. 또한 공사를 강행할 경우 이후 철저한 유지관리가 없이는 생육이 어려울 것이란 설명도 함께 했다. 감독관도 내용에는 공감하는 듯 했지만 결국 그대로 공사를 진행하라고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이후 하자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는 온전히 시공사에 있었다.
나무는 저마다 선호하는 환경이 있다. 적절한 환경에 놓여야 올바른 생육이 가능하다. 이 문제를 시공사가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나무의 하자를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 개발된다 해도 적절하지 않은 환경에서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나무는 조경 공간에서 저마다의 기능과 역할을 한다. 이를 따져 필요에 따라 식재 수목을 선정한다. 그중 심미적 효과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여기에 더해 식물의 생육에 필요한 요건과 환경 등 여러 요소를 함께 고려해 조경공사를 수행하게 되는데, 다른 요소들에 비해 식물 자체는 비교적 소홀하게 다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쾌적한 환경에서 거주하기 위해 주변에 나무를 심는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환경이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자신과 맞지 않으면 주변 여건을 개선하거나 자신에게 맞는 환경으로 옮겨 쾌적한 주거환경을 조성한다. 나무도 자기가 좋아하는 곳에 살아야 건강해진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나무도 건강해야 주변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게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