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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조경비평 봄
  • 환경과조경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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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비평 봄’이 열 번째 봄을 맞았다. 유난히도 추웠던 2005년 이른 봄에 첫 모임을 가졌고, “아, 어서 봄이 왔으면!”이라는 누군가의 탄성에서 모임이름을 땄다. 초창기 문서에 활자로 남아 있는 ‘조경비평 봄’의 지향점은 “조경 비평의 실천 환경 구축, 조경 담론의 생산 기지 조성, 조경 이론과 실천의 연결, 조경과 사회의 상호 개입을 위한 네트워크 조직, 조경 비평의 유통과 저장을 위한 매체 실험”이다. 네 명으로 단출하게 출발했지만, 열 번의 봄을 거치며 이십대 후반부터 오십대 중반에 이르는 여러 세대 스물두 명의 모임으로 성장했다. 고민과 토론의 성과를 모아 『봄, 조경 사회 디자인』(도서출판 조경, 2006), 『봄, 디자인 경쟁시대의 조경』(도서출판 조경, 2008), 『공원을 읽다: 도시 공원을 바라보는 열두 가지 시선들』(나무도시, 2010), 『용산공원: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출품작 비평』(나무도시, 2013), 네 권의 책을 펴냈다.

우리 조경계에서 비평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은 비평의 역할을 다룬 몇 편의 글과 논문이 발표된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됐다. 그러나 공론장을 통해 초보적이나마 비평이 실험된 것은 1998년의 『Locus』 창간호가 처음이다. “작품의 빈곤, 이론과 비평의 부재 속에서 허덕여 온 한국 조경의 문제를 비평의 장을 통해 해소하며, 현실과 대화하는 조경 비평의 실천 환경을 구축한다”는 선언과 함께 “조경의 대안적 담론 공간”을 자임하며 출간된 『Locus』는 “조경과 비평”이라는 부제를 단 2호(2000년) 이후 아쉽게도 명맥을 이어가지 못했다. 『Locus』가 마주했던 가장 큰 난관은 비평 전문 독립 저널로 자립하기 힘든 여건과 구조였다.『Locus』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조경비평 봄’은 지속가능한 비평 환경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다. 첫 번째 전략은 저널이 아닌 단행본 출판이었다. 비평의 생산을 위한 독립 지면을 확보하여 보다 안정적으로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그 결과 ‘조경비평 봄’의 이름을 단 네 권의 단행본을 대략 2년 간격으로 선보일 수 있었다. 두 번째 전략은 잠재 인력의 발굴과 신진 인재의 양성을 통해 비평가 풀을 넓히는 것이었다. 초창기 구성원의 추천으로 몇몇 조경 이론·역사학자, 조경가, 언론인이 모임에 동참했고, (때로는 『환경과조경』의 주최와 후원으로, 몇 차례는 자체적으로) 매년 ‘조경비평상’을 열어 젊은 필진을 키우고자 했다. 이 상을 통해 ‘조경비평 봄’에 동승한 신진 비평가가 아홉 명에 이른다.

얼어붙은 출판 시장에 도전하며 네 권의 책을 내는 가시적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2015년 봄의 ‘조경비평 봄’은 소강 상태를 겪고 있다. 지속가능한 비평활동의 가장 큰 동력이라 할 수 있는 피드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상 작가와 독자의 반응은 비평을 성립하게 하는 토대다.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비평은 ‘창작→작업·작품→경험·감상→비평→창작’이 순환되는 소통의 구조 안에서 작동할 때 의미를 보장받는다. 이 순환 고리의 각 부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비평은 외마디 외침처럼 공허할 뿐이다. 한국 조경의 현실이 아직 비평을 요청하지 않는 수준에 머물고 있거나 비평을 잉여의 사치 정도로 받아들이기 때문일까. “작가도 없고 작품도 없고 사회적 인정도 없는데 도대체 비평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고, 그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비평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한국 조경 비평의 역사가 20년을 훌쩍 넘어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무반응의 원인을 조경계와 독자의 무관심에서만 찾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 지난 10년간 ‘조경비평 봄’이 주력했던 단행본 중심의 활동이 도리어 비평가와 작가, 비평가와 독자, 비평가와 대중 사이의 활발한 쌍방향 소통을 어렵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공모전과 프로젝트를 해내기에 급급하던 물량주의 조경에 반성을 촉구하고자 했던 『봄, 디자인 경쟁시대의 조경』, 보다 대중적인 시선으로 조경과 사회적 가치의 접촉면을 넓히고자 했던 『공원을 읽다』, 다층적 역사와 의미가 복잡하게 뒤엉킨 한 프로젝트를 심층 조명함으로써 조경의 사회적·정치적 개입을 꾀했던 『용산공원』은 완전히 다른 의도로 기획된 책이었다. 그러나 피드백의 공백, 반응의 진공 상태는 마찬가지였다. ‘조경비평 봄’의 매체 전략에 교정이 필요함을 반증한다.

지난 4월 초에 열린 본지 편집위원 회의에서는 저널리즘과 비평을 주제로 다양한 의견이 오고갔다(이번 호 뒷부분에 짧게 줄여 싣는다). 편집위원들은 비평 대상의 다층화와 비평 형식의 다각화라는 이슈를 놓고 차수를 바꿔가며 새벽까지 논의를 이어갔다. 한 달 내내 『환경과조경』과 ‘비평(가)의 자리’라는 숙제가 머릿속을 떠다닌다. 2014년의 리뉴얼 이후 『환경과조경』은 게재 작품이나 공모전에 대해 적어도 한 달에 한 편 이상의 비평을 싣는 편집 원칙을 지키고 있다. 되도록 외부(의 신진) 필자에게 비평을 청탁하고 있지만 본지 기자가 작품을 읽거나 인터뷰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동료 조경가가 평문을 쓰거나 대담을 진행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형식을 실험하고 있다. 그러나 ‘조경비평 봄’의 경우와 크게 다를 바 없이 『환경과조경』의 비평에도 작가나 독자의 후속 반응이나 토론이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비평의 생산뿐만 아니라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이 쉽지 않은 숙제를 함께 풀어갈 신인을 초대한다. 이번 봄에도 『환경과조경』은 ‘조경비평상’을 연다. ‘조경’을 주어로 고민 중인 예비 비평가들에게 조경을 묻고자 한다.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갈 ‘조경비평 여름’을 기다리며 ‘조경비평 봄’이 심사를 맡는다. 마감은 7월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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