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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서론만 있는 글쓰기
글이 써지지 않을 때면, 럼블피쉬의 ‘비와 당신’을 무한 반복해 듣는다. 꽤 오래된 습관이다. 다른 곡을 섞어 들을 때도 있지만 그건 상태가 좋을 때의 이야기다. 한곡만 반복해서 듣는 기능이 있는 줄 몰랐을 때는 ‘비와 당신1’, ‘비와 당신2’, ‘비와 당신3’의 방식으로 파일명을 다르게 만들어 놓고 연이어 재생했다. 왜 ‘비와 당신’이냐고 묻는다면, 답변은 몹시 궁색하다. ‘확실히 멜로디가 키보드 두드리기에 최적화되어 있어’라고 황당한 답을 스스로에게 한 적도 있고, ‘다음 문장을 떠오르게 하는 아련한 목소리야’라며 감탄한 적도 부지기수다. 멋쩍게…. 특히나 ‘빛바랜, 사무친, 이젠 괜찮은데, 바보 같은 난, 눈물이 날까’와 같은 노랫말이 흘러나올 때면, 꾸역꾸역 한 문장 한 문장을 메꿔 나가고 있는 나 자신에게 별 이유 없이 관대해진다.
그런데 이번 달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들국화 노래를 이 곡 저 곡 찾아 듣다가1집에 실려 있는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란 제목에 꽂혔다(노래가 아니라). ‘서론만 있는 글쓰기’란 작위적인 제목은 그 후유증이다. 미리 자비를 구한다.
서론 하나, 종이 잡지
몇 해 전, 오스트레일리아의 미래학자 로스 도슨은 국가별 종이 신문의 사망 연도를 발표했다. 한두 나라만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친절하게도() 전 세계 52개국의 종이 신문이 몇 년도에 사라지게 될지를 구체적으로 예측했다. 그는 현재의 디지털 저널리즘의 확산 속도를 볼 때, 2017년 미국에서 가장 먼저 종이 신문이 파산을 선고하고, 2040년이 되면 전 세계의 모든 종이 신문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에서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은 각각 2029년과 2030년, 일본과 중국은 2031년으로 예측했다. 한국은 이보다 빠른 2026년에 이름이 올라 있다. 언론계의 대체적인 반응은 정확한 연도에는 오차가클 수 있지만, 각 언론사의 기조가 ‘페이퍼 퍼스트paper first’에서 ‘디지털 퍼스트digital first’로 전환되고 있는 만큼 그의 예측이 부도수표가 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입장이다. 종이 신문의 내일과 종이 잡지의 미래를 전망하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누군가는 한때 우후죽순 늘어났던 지하철 무가지가 이제 1종 정도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예로 들며 종이 매체가 실제로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1 공짜로 손에 쥐어주어도 사람들이 더 이상 종이를 펼쳐들지 않을 만큼 종이 매체가 사람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한 해가 다르게 기능과 디자인, 휴대성을 강화해서 쏟아져 나오는 모바일 기기의 성장 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물론 종이 신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은 기업 광고가 아닌 ‘독자’를 기반으로 존립하고 있는 독일 신문처럼 종이 신문이 독자와의 소통을 전향적으로 늘려야2 생명 연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새로운 생존 전략에 포커스를 맞추기도 하고, 모바일 기기가 대체할 수 없는 종이만의 매력을 어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디지털 매체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음은 부인하지 못한다. 안타깝지만!
서론 둘, 조경 매체
조경 분야의 매체 환경은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환경과조경’사에서 발행하는 월간 『환경과조경』과 월간 『에코스케이프』 이외에, 『조경세계』라는 제호를 단 잡지도 있고, 일간으로 뉴스를 전달하는 온라인 매체 ‘라펜트’와 주간으로 발행되는 『한국조경신문』도 있다. 『환경과조경』만 존재하던 시기(1982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에는 인사 동정이나 행사 소식과 같은 뉴스부터 새로 완공된 작품, 설계공모 수상작, 비평, 에세이, 답사기, 신제품 소개에 이르기까지 백화점식 콘텐츠 구성이 불가피했다. 당시에는 적지 않은 독자들이 인사 동정이 실려 있는 뉴스 지면부터 펼쳐보았다. 그만큼 정보 창구로서의 역할이 요구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다르다. 이는 꼭 관련 매체가 늘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1980~90년대와 2000년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터넷의 발달에 기인한다. 어느 순간부터 정보가 폭발적으로 넘쳐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달라진 환경 속에서 『환경과조경』은 어떤 콘텐츠에 집중해야 할까?
서론 셋, 저널과 매거진
‘잡지’는 일정한 제호를 가지고 정기적으로 발간되는 출판물을 일컫는다. 동일한 제호와 정기적인 발간이 핵심이다. ‘저널’은 프랑스어인 ‘주르날journal’에서 비롯된 것으로, 1665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주르날 데 사방Journal des savants』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최초의 정기간행물로 인정 받고 있는 이 잡지는 주간으로 발행된 과학 저널이었다. ‘매거진’은 원래 군대의 무기고 또는 총의 탄창을 가리키는 말이 었으나, 1731년 런던에서 발행된 『더 젠틀맨스 매거진The Gentleman’ Magazine』의 제호에서 유래하여 현재는 잡지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한 권의 책에 다양한 주제의 내용이 담겨 있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일컫기 위해 ‘무기고’라는 단어가 쓰였다.3 어쩌면 지식의 탄창, 정보의 무기고 같은 의미였을 수도 있다. 잡지는 신문과 다르게 조금 더 제한적인 독자층을 타깃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보다 세분화된 분야나 주제 혹은 취향과 관련된 ‘깊이’ 있는 지식과 정보를 (신문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지면을 활용하여) 독자들의 무기고에 차곡차곡 쌓아줌으로써 설 자리를 넓혀 나간 것이다. 신문과 잡지는 같은 제호를 사용하여 정기적으로 발간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바로 이런 지점에서 그 성격이 나뉜다.
『환경과조경』이 독자들의 무기고에 무엇을 채워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본론은 시작도 못하고 서론만 세 가지 버전으로 써버리고 말았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더욱 그 빛을 발하는 ‘정제된 정보’를, 오직 여기에서만 볼 수 있는 ‘독자적인 콘텐츠’를, (신문과 달리) 충분히 시간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깊이 있는 읽을거리’를, (온라인 매체와 달리) 손으로 펼쳐 볼 수 있는 ‘편집된 지면’에, 시선과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담아내면 될 일이건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잡지는 무엇이고, ‘누가’ ‘왜’ 종이 잡지를 읽을까를 다시 고민하게 된다. 이 대목을 쓰고 나니,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바보 같은 난, 눈물이 날까”란 럼블피쉬 최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러니, ‘비와 당신’을 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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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언어의 정원
비가 오는 날은 아무래도 좀 별로다. 출근길에 귀찮게 우산도 챙겨야 하고 땅은 질퍽질퍽, 하늘은 또 왜 이렇게 우중충한지, 몸은 비를 피해 건물에서 건물로 빠르게 옮겨 다니는 신세다. 평상시에도 회색탑에 갇혀 사는 건 똑같지만 공간의 선택권을 빼앗긴 기분이랄까.
그래도 가끔은 비를 즐긴다. 정확히 말하면 프레임 속에 채워진 비오는 풍경이 좋다. 대부분은 비를 피해 건물 속에 웅크리고 바깥은 쳐다보지도 않지만, 어떤 장소냐에 따라 그 풍경은 사뭇 다르게 보인다. 막걸리집에서 파전에 동동주 시켜놓고 잠깐씩 창밖을 응시하면,처마를 타고 현악기의 줄처럼 길게 늘어지는 빗줄기가 시야를 적신다. 마음이 착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커피향 은은한 카페에서 내다보는 풍경도 좋다. 특히 처마가 없는 유리창이라면 빗줄기가 씻기듯 흐르는 선은 가히 예술적인 모습이다. 비 내리는 공원은… 글쎄, 좀 애매하다. 비 오는 날 공원을 찾는 이가 있을까? 『언어의 정원』에는 그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비 오는 날 공원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이 작품을 보면 왠지 낭만적이어서 ‘가볼 걸’ 하는 후회가 든다. 어쩌면 내 인연이 더 빨리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헛된 생각이 들 정도다.
『언어의 정원』은 2013년에 개봉한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감독이 직접 재구성한 소설이다. 남녀가 공원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 알게 되고 소통하면서 겪는 내면의 치유와 성장을 다룬 일종의 감성 멜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공원을 중심으로 비 내리는 풍경을 묘사하고, 두 남녀 주인공과 공원, 비의 표현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소설에서는 비의 영역을 확대하고 등장인물을 모두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영상에서 담지 못했던 내용을 해석하듯 각 인물의 이야기와 내면을 자세하게 다룬다. 『언어의 정원』의 원제는 ‘고토노하노니와言の葉の庭’다. 고토하言葉는 말이나 언어를 뜻하는데 한자를 직역하면 ‘말을 적은 잎’이다. 종이가 없던 시절에 파피루스나 나뭇잎에 글을 적었던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이 말을 보다 시적으로 표현한 말이 고토노하言の葉인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만요슈』를 인용한 의미가 제목에담긴 것으로 보인다. 고전 소설은 시를 읊어 인물의 마음을 묘사하는 기법을 쓰는 특징이 있다. 『언어의 정원』은 이러한 기법을 활용해 인물의 내면을 표현함으로써 서정적 분위기를 북돋운다. 그 언어를 구사하고 관계가 시작되는 장소로 공원이 등장한다. 제목은 정원이라는 용어를 채택하고 있지만, 이는 공원과 정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거나 보다 부드러운 표현으로 정원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우렛소리 희미하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면 그대 붙잡으련만”(『만요슈』, 11권 2513번). 떠날 것 같은 남자를 붙잡는 여자의 노래다. 비가 내려 남자가 떠나지 못하길 바라는 내용이다. 『언어의 정원』에서 비는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진다. 감독은 이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비’라고 할 정도로 영상 표현에 신경을 기울이고 소설 속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한다. 비가 내리면 세상은 이어진다. 서로 떨어져 있는 하늘과 대지가 비를 통해 만나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하이데거는 비가 내리는 모습을 “하늘과 대지의 결혼식”이라고 표현했다. 하늘의 태양과 대지의 자양분이 내밀한 관계를 맺어 포도나무가 열매 맺는 모습을 ‘결혼식’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그 가치를 높였다. 여기서는 비가 만남을 주선하는 중매인으로서 역할을 한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상처를 가지고 있다. 소설 속에서 다루기엔 소소해 보일 정도지만, 우리 일상에 대입해 봤을 때 누구나 하나씩 가진 상처 혹은 사연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감정이 이입된다. 현대인은 치열한 경쟁 체제 속에 피로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이로 인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현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청자가 바로 ‘비’로 은유된다. 서로의 영역에서 혼자가 되고 상처 입은 두 사람은 피난처로 공원을 찾았다. 상처는 혼자보다 같이 이겨내는 게 더 쉬운 법이다. 그런데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건 쉽지 않다. 어른이 되어 학교나 직장이 아닌 곳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두 사람은 공원이라는 공공 공간에서 처음 만나고 서로를 통해 치유의 과정에 도달한다. 공원은 개인의 영역이 아니다. 누구의 영역도 될 수 있다. 이에 서로 모르던 두 사람이 대화의 기회를 갖게 되고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공원이 소통의 매개체가 된 셈이다.
“소년의 손이 살그머니 엄지발가락 끝에 닿았다. 뜨거운 숨결이 닿는 감촉에 차디찬 발끝이 흠칫했다. 심장이 콩닥콩닥 뜀박질을 했다. 혹여 소년이 들으면 어쩌나 겁이 날 만큼 고동소리와 숨소리는 격렬했다.” 구두 디자이너를 꿈꾸는 타카오는 마음이 가는 이성 유키노에게 구두를 만들어주고자 공원에서 그녀의 발을 이리저리 만지며 치수를 잰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사실상 베드신이다. 영화 ‘일대종사’(2013)를 보면 양조위와 장쯔이가 겨루는 장면이 있다. 겨루는 과정에 서로의 신체와 호흡이 맞닿고 눈빛이 마주치는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이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하고 교감의 지점을 클로즈업해 관객에게 보여준다. 베드신은 관객에게 등장인물의 심리적 교감을 전달하는 극적 장치다.
『언어의 정원』에서는 이를 구두 치수를 재는 장면으로 대체했다. 감독은 “사랑, 그 이전의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단순히 『만요슈』의 시구만 인용하지 않고 1,300년 전에 쓰인 옛날 가요의 ‘사랑’이란 단어가 담은 정서를 모티브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금의 ‘사랑’이란 단어의 정서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랑’의 영원성을 강조하려 한 것인지, 아니면 ‘사랑’이란 단어를 통해 언령言靈을 확인하려 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 전략이 가슴을 두드렸다. “우렛소리 희미하고 비가 오지 않아도 나는 여기 머무르오 그대 가지마라 하시면”(『만요슈』, 11권 2514번). 사랑의 언어가 비와 함께 파문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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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도시 공원 컨퍼런스, 샌프란시스코 4.11~14
Greater & Greener 2015: Innovative Parks, Vibrant Cities
‘Greater & Greener’는 오늘날 도시 공원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이슈와 도전,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도시계획가 및 설계가, 공공 행정가, 그리고 공원 운영 관리 조직 및 민간 조직의 구성원들이 모이는 국제 도시 공원 컨퍼런스International Urban Parks Conference다. 미국의 각 도시에서 2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본 컨퍼런스에는 매 회 천 명이 넘는 도시 공원 커뮤니티 리더들이 모여 경험을 공유해 왔으며, 도시공원의 디자인과 개발 방식, 운영 관리를 위한 프로그램 및 재정에 대한 지속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건강과 과학기술 등 다른 분야와의 연계 및 논의 확장을 통해 경제와 환경, 사회적 참여의 새로운 콘텍스트에서 공원을 재구축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도록 촉구한다. 이 행사를 개최하고 이끄는 시티 파크 얼라이언스City Parks Alliance(CPA)는 미국의 도시 공원 및 녹지 조성과 지속가능한 운영관리를 위해 앞장서 온 독립적, 범국가적 멤버십 조직으로 2000년 처음 조직된 이래 15년째 활동하고 있다.
혁신적 공원, 활기 있는 도시
이번 컨퍼런스는 ‘Innovative Parks, Vibrant Cities’라는 주제로, 4월 11일에서 15일까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다. 컨퍼런스를 주관한 CPA의 상임이사인 캐서린 네이겔Catherine Nagel은 환영사에서 “도시 공원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이슈-건강, 교육, 거주성과 사회적 혼합에서부터 경제적인 개발과 도시의 회복탄력성- 등 폭넓은 범위에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이에 대한 비전과 혁신 요소들은 지역 단위에서 구현되어야 하며, 이번 컨퍼런스의 무대인 샌프란시스코와 베이 지역Bay Area의 공원 커뮤니티들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도시 공원이 직면하고 있는 많은 일반적 이슈에 대한 창의적인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곳”임을 강조했다.
이번 컨퍼런스의 핵심 어젠다는 도시 공원의 혁신과 활력 있는 도시를 위한 지속가능성의 모색이었으며. 4개의 세부 주제(Advancing Technology, Weaving Parks into 21st century City Planning and Design, Living and Learning in the New Urban Habitat, City Parks 101 and Beyond) 아래 진행되었다. 특히 각 지역 공원 운영관리 조직에 소속된 실무자들이 다수 참여해 실천적인 사례를 공유하고 실현가능성에 기반한 논의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장으로 운영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 심주영 / 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 박사과정 / 2015년05월 /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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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100’ 프로젝트
작은 변화로 서울의 공공 공간을 바꾸는 100가지 아이디어
거리를 천천히 걷다보면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하는 도시 경관들이 눈에 밟힌다. ‘서울100’은 사소하고 소소한 부분이지만 조금 더 걷기 편하고 정돈된 거리로 마주하게 하는 보도 환경 개선부터, 도시를 생동감 있게 만드는 작은 아이디어까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던 일상의 공간을 관찰하고 작은 변화를 상상하는 작은 연구다. 소수의 전문가가 그려내는 마스터플랜이 아닌,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를 지향하며 ‘누구나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공공디자인’을 목표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시작 - RTM100
‘서울100’ 프로젝트는 한 권의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네덜란드에서 도시와 건축을 공부하던 중 『RTM100』이란 미스터리한 책을 만났다. 표지를 넘기면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한 쌍의 도시 경관 이미지가 전과 후 Before & After 형식으로 보인다. 마치 틀린 그림 찾기같은 100쌍의 이미지는 보도 환경·도시 경관 개선에서 유휴 공간 활용에 이르기까지 작은 개입(변화)으로 공공 공간을 변화시키는 아이디어들을 담고 있다. 이는 2010년 벨기에의 URA와 네덜란드의 토포트로닉Topotronic이라는 두 건축 집단에 의해 진행된 스터디의 결과물로AIRarchitecture center of Rotterdam의 후원을 통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공공 건물, 카페 등 로테르담 시민들이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소에 배포되어 공공 공간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작은 기제가 되기도 했다. 그동안 항공사진 위에서 선을 그려가며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설계를 해오던 나에게 이는 신선한 물음으로 다가왔다.
서울100
‘서울100’ 프로젝트는 ‘작은 공간을 자세히 관찰해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작은 연구’라는 의미로 한국에 돌아온 이듬해(2014년)부터 시작했다. 10년 넘게 매 수요일마다 서울의 마을들을 답사하는 건축가 조정구처럼, 공간을 다루는 디자이너로서 눈의 화소 수를 높이는 연습이자 작은 실천들을 긴 호흡으로 이뤄보자는 소박한 마음가짐으로 출발했다. 유명무실하게 놓인 노란색 점자블록부터 도시 속 유휴 공간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풍경을 자세히 관찰하다 보니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던 도시의 일상이 새롭게 다가왔다. 작은 변화로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무채색의 도시 공간에 활기를 줄 수 있는 상상들을 더해 갔다. 매일 아침 현관문을 열고 나와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 통과하는 무수한 도시 공간부터 시작한 ‘서울100’ 프로젝트는 두 명의 동료를 만나면서 박차를 가했다.
- 정성빈 / 마이너스플러스백 대표 / 2015년05월 /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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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mimicry
‘ICD/ITKE 리서치 파빌리온’, 자연의 건축 비법을 파헤치다
“저급한 자는 베끼고, 위대한 자는 훔친다.” 예술적 행위의 속성과 창의적 사고의 핵심을 지적하는 말로 자주 인용되는 피카소의 말이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가 어디서 오는걸까? 독일 슈트트가르트 대학교University of Stuttgart의 컴퓨터응용디자인연구소The Institute forComputational Design(ICD)와 동 대학 건축구조설계 연구소The Institute of Building Structures and Structural Design(ITKE)의 연구진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이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노력을 올해로 6년 째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생체모방biomimicry1 분야의 한 갈래를 지향하며 매년 ‘ICD/ITKE 리서치 파빌리온ICD/ITKE Research Pavilion’이라는 새로운 모습의 공공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ICD/ITKE 리서치 파빌리온 2013-14’는 이 연구의 네 번째 결과물로 인간의 엄지손가락만한 ‘딱정벌레’의 건축 비법을 담고 있다.
의생학적 연구
이번 연구는 슈트트가르트 대학교의 건축가 및 공학자들과 튀빙겐 대학교University of Tübingen의 생물학자들의 학제 간 협업을 통해 진행되었으며, 올리베르 베츠Oliver Betz(생물학) 교수와 제임스 네벨시크James H. Nebelsick(지구과학) 교수(이상 튀빙겐 대학교)가 주도한 ‘생체공학과 건축적 모듈에 대한 연구the Module: Bionics of Animal Constructions’가 그 바탕이 되었다. 다양한 동식물에 대한 표본 연구가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딱정벌레의 날개와 복부를 보호하는 껍질인 엘리트론elytron(키틴질 섬유 다발로 구성된 단백질 매트릭스 조직)이 건설 재료의 모델로써 고도의 효율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초 자료가 확보되었다. 보다 구체적인 활용법을 고안해 내기 위해서 다양한 딱정벌레의 엘리트론에 대한 고해상도 3차원 모델이 필요했다. 카를스루에 공과대학교Karlsruhe Institute of Technology에 속한 ANKA 싱크로트론 방사광 시설ANKA Synchrotron Radiation Facility과 광양자·싱크로트론 방사광 연구소Institute for Photon Science and Synchrotron Radiation의 기술력이 결합된 컴퓨터 단층 촬영을 통해 여섯 가지 모델을 추출해냈다. 이렇게 추출된 모델은 튀빙겐 대학교에서 제공한 SEMscanning electron microscope 스캔본과 함께 조합되었고 딱정벌레 껍질의 내부 구조에 대한 분석을 가능하게 했다.
건축 재료로서 엘리트론이 지닌 고효율성은 딱정벌레 껍질의 기하학적 형태와 각 껍질을 구성하는 천연 섬유 합성물natural fi ber composite의 기계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특성은 엘리트론 내 기둥 모양의 이중 곡선 지탱부, 즉 섬유주trabecula에 의해 연결된 이중층 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중층 구조를 이루는 껍질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은 끊임없이 이어진 섬유주를 통해 결합된다. 섬유주 다발의 분포 및 기하학적 결합 방식이 딱정벌레 껍질 전체에 걸쳐 상당한 정도의 변화무쌍함을 보이고 있었고, 이러한 비등방성anisotropic2은 껍질 전체에 걸쳐 부분마다 차별화된 소재적 특질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하여 더욱 안정적으로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구조 논리 및 소재
이렇게 분석해낸 자료를 바탕으로 실제 건축 가능한 형태를 개발하기 위해 이중층 구조 모듈 시스템double layered modular system이 고안되었다. 이 시스템은 유전적으로 발현되는 생체 구조를 공학적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데 사용된다. 추출된 유전 정보의 해석을 바탕으로 수차례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연구가 이루어졌고, 적합한 기계식 제작 방식이 마련되었다. 생성적 디자인generative design(컴퓨터를 활용한 디자인 개발 및 시뮬레이션 기법으로 기계화된 제작 방식에 필요한 알고리즘을 생성해낸다) 기법을 기반으로 이 기계식 제작 방식을 구동시키는 데 필요한 알고리즘을 생성해 냈다.
건축 재료로는 유리 및 탄소 섬유 강화 폴리머가 사용되었다. 이 소재는 중량 대비 강도가 높고 섬유질 배열방식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으로 뽑혔다. 이러한 성형성moldability을 논외로 하더라도, 탄소 섬유 강화 폴리머는 딱정벌레에서 추출된 복잡한 기하학적 형태를 실현하기에 적합한 소재였다. 기존의 섬유 공학적 제조 방식에서는 형태를 만들기 위한 몰드mold가 반드시 요구된다. 몰딩molding 기법은 대개의 경우 지나치게 복잡한 틀과 그에 적합한 특정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건축물에는 부적합한 방식이라고 판단되어 왔다. 또한 어떤 구조를 만드는 데 있어 다수의 몰드와 시간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문제도 안고 있었다. 반면에 이 이중층 구조 모듈 시스템은 하나의 기계 공정 안에서 다수의 모델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로보틱 무심 곡선화 공정
이중층 구조 모듈 시스템을 구동시킬 수 있는 로보틱무심 곡선화 공정robotic coreless winding method 개발이 다음 단계에서 이루어졌다. 이중층 구조 모듈 시스템이 소프트웨어라면, 로보틱 무심 곡선화 공정은 하드웨어가 되는 것이다. 여섯 개의 축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두 대의 산업용 로봇에 고정된 프레임 이펙터frame effector(이하 이펙터)가 회전하며 수지 함침 섬유 다발resin impregnated fiber bundles을 구부리며 조직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하자면, 두 개의 로봇 팔이 뜨개질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처음 두 개의 이펙터에 엮이는 섬유 다발은 팽팽한 직선의 형태를 유지하며 층을 만들어 간다. 이후 일련의 섬유 층이 서로의 위아래에 놓이며 압박을 가하고 원형 방패와 같은 곡면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섬유 곡선화 과정에서 로봇팔의 움직임에는 구체적인 순서가 정해져 있으며, 압력과 곡면기울기 등에 대한 데이터 분석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모든 개별적 섬유에 대한 디자인 통제가 가능하다.
이 한 쌍의 이펙터는 소재가 가진 다양한 기하학적 특성에 맞춰 움직임을 조정하며 초기 설정값 설정에 따라 36개의 부분을 모두 만들어낸다. 무심 곡선화 공정이 개발된 덕분에 여러 개의 개별 몰드를 만들 필요가 사라졌고, 이는 상당한 자원 절약 효과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무심 곡선화 공정은 그 공정 자체에서도 매우 자재 효율성이 높은 제조 공법으로 폐기물을 거의 발생시키지 않는다. 기성 자재를 잘라낼 때 발생하는 폐기물이 거의 없는 것이다.
유리 섬유 층 한 개(경우에 따라 섬유 층 두 개 필요)와 탄소 섬유 층 다섯 개가 하나의 부분을 구성한다. 이 중 첫 번째 유리 섬유 층이 재료의 기하학적 형태를 결정하게되며, 이후의 탄소 섬유 층을 위한 일종의 거푸집으로 기능하게 된다. 탄소 섬유 층은 구조적 강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며, 섬유들의 비등방적 배열을 통해 조금씩 다른 형태를 갖게 된다. 탄소 섬유의 개별적 구조는 각각의 구성 요소에 작용하는 힘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는 포괄적 구조에 대한 유한 요소 분석법finite element analysis(FEA)3을 통해 산출된다.
‘ICD/ITKE 리서치 파빌리온 2013-14’를 구성하는 36개의 부분은 딱정벌레의 엘리트론에서 추출한 기하학적 원리를 따르고 있으며, 전체 무게를 지지하는 데 있어 최소한의 자재를 사용하도록 각기 다른 레이아웃을 갖는다. 기계식 생산 방식을 사용한 덕분에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상당히 줄어든다. 처음 이펙터에 섬유 다발을 연결하고 알고리즘을 입력하는 것만으로 모든 구성요소가 생산되며, 이렇게 생산된 구성 요소를 블록을 쌓듯이 조립하면 파빌리온이 완성된다. 완성된 파빌리온이 차지하는 총 면적이 50m2, 부피는 122m3, 그리고 무게가 593kg으로 적지 않은 규모지만, 구성 요소 하나만을 보면 가장 큰 것도 지름 2.6m에 무게는24.1kg밖에 나가지 않는다. 각 구성 요소가 다소 기괴한 모습을 갖고 있는 것에 비해 최종적으로 나타난 기하학적 형태는 대학교 건물은 물론 주변 공원 풍경에 상당히 잘 어울린다.
2010년 시작된 ‘ICD/ITKE 리서치 파빌리온’의 연구진은 섬유조직합성건축fiber composite construction methods이라는 혁신적인 분야를 이끌고 있다. 이들은 기존의 생체모방 기술이 벨크로velcro(일명 찍찍이)를 시작으로 웨일-파워wale-power(고래, 에너지), 신칸센 고속열차(물총새, 교통), 홍합 접착제(건축·의료) 등 인간의 효율적이고 안전한 삶을 위한 기술에 집중되었던 것을 넘어 이제는 내 뒷마당, 집 앞 공원 등에서도 그러한 기술의혜택을 체감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생체모방 분야의 선구자, 제닌 베니어스Janine Benyus의 말처럼 “셀룰로오스를 처리하여 종이를 만든 것도, 최적화된 화물 배치를 시도한 것도, 방수 혹은 어떤 구조체의 가열 및 냉각을 시도한 것도, 누군가를 위해 집을 지은 최초의 존재도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디자인이 가능할 것이다. 분명 우리 주위의 자연계는 인류가 해야할 일과 상당히 비슷한 종류의 일을 해내고 있다. 게다가 그들의 방법은 지난 수십억 년 동안 지구상에서 우아하고 안전하게 살아올 수 있게 한 보장된 비법이 숨겨져 있다. “당신이 무언가를 발명하고자 할 때마다, 우선 자연이라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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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위플래쉬
선택과 집중, 그 아찔한 전략
위플래쉬Whiplash(2015년 국내 개봉)는 입소문을 타고 절찬 상영 중인 음악 영화다. ‘재즈 연주자를 위한 공포 영화’, ‘음악 영화 탈을 쓴 무협 영화’라고 알려졌지만 ‘그래봤자 장르가 음악인데 과장이 좀 심한 것 아냐’라고 생각하며 영화를 보러 갔다. 나는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도 무섭고 멀미가 나서 못 타고, 피가 낭자하는 칼부림 영화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심약한 심장의 소유자다. 원빈의 셀프 삭발 장면이 영화 ‘아저씨’에서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다. 그가 제대로 싸우기 시작할 때쯤엔 극장 문을 나와 안전한(?) 장소에서 동행을 기다렸다. ‘채찍질’이라는 의미 그대로 ‘위플래쉬’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마지막 시퀀스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쯤에야 정신이 차려질 만큼 영화 내내 긴박감이 넘친다. 보는 동안 심장 박동수가 평소보다 몇 배는 빨리 뛰었다. 어지간한 자동차 추격신보다 스릴감이 넘쳤고, 칼 한 자루 등장하지 않지만 칼부림 영화보다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아저씨’를 두 번이나 본 강심장인 지인도 비슷하게 느꼈다고 한다.
밴드 지휘자와 드럼 연주자, 이 두 주인공이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이어간다. 스승과의 교감을 통해 음악을 매개로 성장하는 스토리는 사실 진부한 소재다. ‘위플래시’의 특별한 전략은 이 흔한 소재를 완전히 새로운 음악 영화로 바꾸어 놓았다. 스승의 인격과 방식이 올바른지, 과연 제자가 성장한 건지는 별개문제로 두기로 하고, 다음에서는 영화의 성취에 대해 집중해 보기로 한다. 영화는 한 괴물과 점점 괴물이 되어 가는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부딪혀서 결국 어떤 불꽃이 튀는지 그 발화 과정을 드럼이라는 악기의 연주를 통해 전개하고 있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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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회의] 난중일기의 전략
조경 저널리즘과 비평을 고민하다
온라인 미디어의 등장으로 매체의 수가 늘어나고 그 결도 다양해졌지만, 오히려 저널리즘은 풍요 속의 빈곤을 겪고 있다. 실시간으로 바뀌는 검색어와 자극적 헤드라인, 이미지의 향연 속에서 독자들을 사유와 반성, 새로운 시각의 길로 이끌던 저널리즘의 철학은 설곳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특히 급변하는 매체 생태계 속에서 종이 잡지는 존폐의 위기마저 겪고 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인터넷 뉴스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의 포화 속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모니터와 스마트 폰에 빼앗긴 탓이다.
하지만, 조경이나 건축 매체의 환경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종이 매체가 몹시도 고전하고 있다는 점은 동일 하지만, 최근 2~3년 동안 종다양성 측면에서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첫 건축비평지를 표방하며 창간된 『건축평단』(2015년 3월 창간), 건축 과정을 이미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록하는 『다큐멘텀』(2014년 5월 창간), 건축 밖의 사람들과 연대를 모색하며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각도의 논의를 담아내고 있는 『건축신문』(2012년 4월 창간) 등이 연이어 등장한 것이다. 또한 2008년 1월에 창간된 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 역시 그 색깔을 굳건히 지켜나가고 있다. 이도저한 온라인의 시대에 종이를 기반으로 해서 말이다. 이는 2000년대 중반 이전과도 미묘하게 다른 상황이다. 당시 『SPACE』, 『건축과환경』, 『건축문화』, 『건축인 포아』, 『이상건축』, 『플러스』 등의 건축 전문지들은각기 다른 색깔로 이슈와 담론을 생산해냈지만, 그 내용과 형식이 지금처럼 크게 갈리진 않았다. 실험적이라는 (혹은 무모하다는) 느낌이 드는 잡지도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가 (지나치게) 잘 만들어졌지만, 변별력이 커 보이지 않았다. 이후 그 잡지들 중에서 몇몇은 기존의 색깔이 점차 희미해지면서 해외 작품 위주의 화보집으로 바뀌거나 폐간의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확연히 구분되는 포맷과 지향점을 내세운 색다른 종이 매체들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조경 매체는 이와는 사정이 또 다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라펜트’, 주간으로 발행되는 『한국조경신문』, 해외 작품 위주의 『조경세계』 등이 하나둘 새롭게 생겨났지만, 조경 포털이나 주간신문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 실험적이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환경과조경』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2000년대 초반에 두 차례 발간된 조경 무크지 『로커스』가 가장 실험적인 조경 매체였다.
물론 모든 매체가 실험적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종이 잡지를 만드는 이들과 그 (잠재적) 독자들에게 색다른 매체의 등장과 그들의 도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그 매체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환경과조경』만의 색깔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번호에는 그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대폭적인 리뉴얼을 단행한 2014년부터 잡지 제작 전반에 걸쳐 도움을주고 있는 편집위원 다섯 분과 함께 ‘편집회의’를 진행하여 그 내용을 지면에 옮긴다(김진오 편집위원(경희대학교 교수)은 당일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가장 열성적인 독자이기도 한 편집위원들은 잡지 전반에 대한 평가부터 조경 매체의 역할과 비평의 활성화 방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아이디어와 의견을 보태주었다. 먼저, 박승진 소장이 들려준 이야기를 맛보기로 전하며 ‘편집회의’를 시작한다. 그는 요즘 『징비록』을 읽고 있다는데,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난중일기』가 재미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전쟁이 모두 끝난 후 과거를 회고조로 기술한 『징비록』보다는 전쟁터의 한 가운데에서 그 긴박한 순간을 생생하고 치밀하게 묘사한 『난중일기』가 독자 입장에서 단연 재미있고 박진감 넘친다는 것. 한국 조경의 오늘을 기록하고 있는 『환경과조경』은 징비록일까, 난중일기일까? 아니면 손자병법이 되어야 하는 걸까?
김세훈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도시설계전공 교수
김영민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남기준 편집장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국장, 「건축신문」 편집인
박승진 디자인 스튜디오 loci 소장
배정한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서영애 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
- 남기준, 조한결 / 2015년05월 /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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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세대교체
#45
자연보다 더 자연스러운 미스터 브라운의 풍경
1783년 2월 5일, 윌리엄 켄트의 뒤를 이어 30년 이상 영국 조경계를 장악했던 랜슬롯 브라운Lancelot Brown(1715~1783)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68세였지만 아직 왕성히 활동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딸의 집을 방문하러 갔다가 문지방에서 쓰러져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의 부음을 들은 조지 3세는 곧 리치몬드 정원으로 가서 정원사를 붙들고 “미스터 브라운이 죽었다는군. 이제 자네랑 나랑 맘대로 정원을 만들어도 되네”라고 했다는 우스개가 전해진다.
물론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랜슬롯 브라운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 ‘백만 파운드짜리’ 가십을 호레이스 월폴HoraceWalpole (1717~1797)1이 듣고 친구에게 편지로 전한 덕에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한 정원사의 죽음에 이처럼 사회가 들썩였던 경우는 어느 시대에도 없었다. 윌리엄 켄트의 시대에 알렉산더 포프가 있었다면 랜슬롯 브라운의 시대에는 호레이스 월폴과 토머스 훼이틀리Thomas Whatley(1716~1772)2가 있었다. 브라운이 정원을 만들면 이 두 사람은 정원이 완성되기가 무섭게 찾아가서 살펴보고 평론을 남겼다. 작가와 평론가의 수가 극히 한정되어 있기는 했지만 정원 평론을 쓰는 전통이 이 때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훼이틀리는 진지하고 분석적이어서 후세에 의해 ‘최초의 정원 평론가’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호레이스 월폴은 그의 소책자 『모던 가드닝』 외에도 수천 통의 편지를 써서 당대의 정원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남겼다. 특유의 비꼬는 필치로 쓴 풍자적 리뷰는 지금도 즐겨 인용된다.
1744년, 알렉산더 포프를 선두로 하여 풍경화식 정원을 이끈 1세대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이후 1750년대부터 랜슬롯 브라운이 조경 시장을 독점했으므로 다른 사람들의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자타가 인정하는 ‘켄트주의자’였던 월폴은 브라운의 초기 작품인 워릭 캐슬Warwick Castle을 보고 관심을 두기 시작했으며 이후 그의 행보를 유심히 살폈다. 브라운의 작품으로 확인된 것만 모두 170여 개에 달하는데 정원 하나의 규모가 100헥타르에서 1,200헥타르 사이였으므로―용산공원 부지 면적이 약 240헥타르― 결과적으로 브라운이 잉글랜드의 풍경을 새로 만들었다는 말이 크게 과장된 것이 아니다.
처음 워릭 캐슬을 보고 월폴은 이렇게 말했다. “워릭 캐슬은 동화적이다. 내가 거기서 본 풍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즐거웠다. 에이번Avon 강이 굽이치다가 캐스케이드가 되어 쏟아져 내리는 장면이 압권인데 브라운이라는 이가 연출한 것이다. 일을 제대로 한 것 같다. 그는 켄트와 사우스코트의 아이디어를 수용했다. 아이디어의 전파가 주는 효과가 이런 것이다. 워릭 캐슬의 주인 브루크 경은 자연적인 정원 양식을 대담하게 수용했다.”3 월폴은 이십 년후에는 브라운을 명실 공히 켄트의 후계자로 인정했을 뿐 아니라 브라운의 풍경을 ‘개선된 자연improved nature’이라고 정의 내렸다.4
자연 풍경이 완벽하다고 누가 말했던가. 자연이라고 하지만 사실 진정한 자연 풍경은 브라운 시대에도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의 손에 의해 기형화된 풍경의 결점을 보완하고 본연의 잠재력을 살려 완성의 길로 이끌어 주는 것, 이것이 랜슬롯 브라운의 원칙이었다. 그러므로 풍경화‘식’ 정원이라는 개념은 랜슬롯 브라운의 시대가 되면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귀족들은 “우리도 드디어 유명한 미스터 브라운을 초청하여 ‘랜드스케이핑landscaping’을 의뢰했다”라는 내용의 서신을 주고받았다. 정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랜드스케이핑 한다’는 새로운 개념이 자리잡아갔다.
랜슬롯 브라운은 스물 여섯의 나이에 스토우의 정원사로 채용되어 윌리엄 켄트의 설계대로 시공하며 켄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실무 경력이 많지 않았던 켄트와는 달리 브라운은 정통적인 정원사의 길을 걸었다. 물론 정원사 학교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자신의 고향, 노섬벌랜드의 커크할Kirkharle 수목원에서 십여 년간 일하며 잔뼈가 굵은 것이다. 그러므로 화가의 안목으로 장면, 장면을 세트처럼 연출했던 윌리엄 켄트와는 달리 브라운은 처음부터 풍경을 그 자체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 풍경을 액자에 갇힌 장면의 연속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커다란 전체one great whole로 이해한 것은 당시로서는 혁신적 안목이었다. 그가 생각한 ‘하나의 커다란 전체’는 비교적 단순하게 요약된다. 물, 초원, 숲의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지며 강줄기나 계류를 막아 대형 호수를 만들어서 풍경의 맥을 삼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그의 호수는 대개 긴 호리병 형태를 하고 있는데 마치 자연이 만들어 놓은 것처럼 이리저리 꺾이며 풍경 전체를 굽이굽이 적시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 외에는 수십에서 수백 헥타르의 초원을 펼쳐놓았고 외곽은 숲으로 에워쌌다. 이것이 아무 군더더기 없는 브라운식 자연의 기본형이었으며 그의 모든 작품에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문제는 집이었다. 초원, 즉 자연 풍경이 먼저 있고 그 위에 집이 얹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라고 보았다. 집을 새로짓는 경우에는 별 문제될 것이 없었으나 집이 먼저 있던 경우, 대부분 이탈리아식 정형 정원이나 평면 기하학 정원도 함께 존재했다. 브라운은 이 정원들을 훌훌 뽑아 내버리고 집 바로 앞까지 초원을 끌어들였다. 초원에는 드문드문 나무를 심었는데, 쩨쩨하게 한 그루씩 심지 않고 커다란 덩어리clumps로 심었다. 집을 향해 정면 돌파하는 중앙 축을 버리고 S라인 진입로를 만들어 측면에서 빙 돌아 접근하도록 했다. 길 주변에도 정연한 가로수가 아니라 수목 덩어리를 드문드문 배치했다. 이런 스케일로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 브라운은 강물을 막는 댐 공법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했고 거목을 이식하기 위해 이식 전용 수레도 고안했다.
어떤 땅이 주어져도 이런 자연 풍경으로 ‘개선’할 수 있는 여건은 충분했다. 땅이 갖고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은 사실어디에나 있었으므로 ‘캐퍼빌리티apability’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5 그래서 그의 별명이 캐퍼빌리티 브라운이 되었다. 스타파주를 만들어 세우고 그 주변에 나무를 자연스럽게 배치하던 켄트 스타일에서 아주 멀리 진보한 것이다. 물론 그가 다루었던 땅은 거대한 스케일로 지형을 바꾸고 물줄기를 막아 새로운 자연을 창조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소위 ‘풍경화식’ 정원의 결정적 요소라고 믿는 것들이 모두 랜슬롯 브라운에 의해 ‘완성’되었다. 한바탕 소동을 부리며 공사가 끝나고 나면 그의 풍경은 조용히 가라앉아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호레이스 월폴은 브라운의 부음을 듣고 여러 통의 편지를 썼다. 그 중 위의 가십을 전한 것도 있지만 레이디 오소리에게는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썼다. “그대들 숲의 요정들은 검은 장갑을 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요정들의 시아버지, 마담 네이처의 두 번째 남편이 숨을 거두었습니다.”6 브라운 사후에 그의 명성은 빨리 사라진다. 브라운식 풍경의 완벽한 조화와 평화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낭만주의 시대가 열리며 브라운의 풍경에는 ‘숭고한 전율’이 결여되어 있다고 결론지었다. 19세기 내내 브라운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가 20세기에 들어 와서 다시 명성을 회복한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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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땅의 도시, 기념비적 도시
땅의 도시
전 세계 여러 도시를 걷다 보면 땅의 고유한 형상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 곳을 만나게 된다.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 섬의 북쪽 끝에 있는 스마랑Semarang이라는 도시가 한 예다.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한 자바 섬은 오늘날에도 활화산의 활동 범위 안에서 지진 피해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 ―현재는 일시적 휴전 상태에 있지만― 이른바 ‘땅의 전쟁터’다. 스마랑의 도심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혹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 공항 주변과 마찬가지로 바다와 산자락 사이에 낀 좁은 띠 모양의 땅에 자리 잡고 있다. 도시 면적의 상당 부분이 바다를 향해 완만하게 경사진 판 위에 놓여 있어서 처음 이곳을 방문한 사람도 좀처럼 방향 감각을 잃지 않는다(그림1). 도심 곳곳에 있는 경사진 보행로와 이를 따라 펼쳐진 계단식 주거지, 그리고 그 사이로 불뚝불뚝 솟아오른 언덕은 열대 기후 속에서 스마랑 고유의 도시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땅의 형상은 지역의 기후, 식생, 사람과 함께 도시 환경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가장 원초적인 요소 중 하나다(그림2).
환경과 랜드스케이프
우리는 땅을 생각할 때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게 된다. 하나는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물리적 환경 요소로서의 땅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대지가 다른 대지보다 더 크다든가, 집을 지을 땅을 인접한 도로면보다 높여야 한다는 개념이 포함된다. 다른 하나는 객관화하기 어려운 측면, 이를테면 주관적 지각과 심미적 판단 대상으로서의 땅이다. 도심외곽으로 확장되며 농경지를 잠식하고 있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보며 혐오감을 느낀다든가, 훼손되지 않은 자연 속 에덴동산에 앉아 있는 듯한 편안함을 느끼는 감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런 맥락에서 프랑스의 지리학자 오귀스탱 베르크Augustin Berque는 ‘근대적 랜드스케이프를 넘어’라는 글에서 ‘환경environment’과 ‘랜드스케이프landscape’를 구분한다.1 그에 따르면 ‘환경’이란 사회·자연·공간의 관계에 대한 사실적·객관적 개념이다. 그에 반해 ‘랜드스케이프’는 이러한 관계에 대한 사회적·주관적 지각이자 다양한 해석과 가치 부여의 결과다. 특히 도시 환경 속에서 땅은 첨예한 경제적 요구와 다양한 사회적 바람을 담고 있다. 따라서 땅을 이해할 때는 그 사실적 측면과 더불어 지금의 랜드스케이프로 재구성된 과정과 원인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지형과 숨은 지형
이렇게 도시 안에 자연 그대로의 땅이 좀처럼 남아 있지 않고 태초에 땅이 가진 본질적 아름다움이 사라졌다며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다. 하버드 대학교의 앙투안 피콘Antoine Picon 교수에 의하면 적어도 서구에서는 초기 산업 혁명기를 전후로 도시가 자연 속에 자리 잡는 시대가 저물고 도시 환경 자체, 이를테면 초고층 타워와 아파트 단지, 굴뚝과 가로등, 네온 사인과 간판이 다른 도시 공간을 위한 배경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2 사실적 환경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생성된 랜드스케이프가 점차 주요 도시 맥락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아가 렘 콜하스와 같은 건축가는 1990년대 전후로 도시 외부가 아닌 내부에 땅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특질, 이를테면 경사진 언덕과 숲을 연상시키는 기둥, 산책로와 같은 내부 가로를 적층시키는 일련의 계획안을 발표했다(그림3). 공항, 터미널,금융 센터, 지하 쇼핑몰, 호텔과 컨벤션 센터와 같은 초대형 시설이 과거 작은 도시에 해당하는 유동 인구와 프로그램을 수용하게 되면서 새로운 도시 공간의 모습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도시 공간은 전경이자 배경, 즉 그 자체로 훌륭한 랜드스케이프일 뿐 아니라 이후 만들어질 다른 도시 형태나 새로운 사회적 활동을 위한 밑바탕이 되고 있다.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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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입금과 이스트와 불꽃
7 입금을 대하는 디자이너의 자세
오래전 학교 수업 시간이었나, 졸업 작품 크리틱 시간이었나. 눈망울 초롱초롱한 ―아차 ‘초롱초롱하다’는 표현이 떠오르는 걸 보니, 졸업 작품 크리틱 때는 아닌 듯하다― 학생,그러니까 어린이(학부생부터 대리 미만의 직원을 이르는 매우 주관적인 용어)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교수님, 언제 설계하길 잘했다고 느끼세요”
“설계에서 보람은 어디서 찾으시나요”
“좋은 설계를 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 이런 초롱초롱한 질문에 난 몹쓸 답변을 하고 말았다.
“난 입금 될 때.”
입금은 좋은 것이다. 클라이언트가 지녀야 하는 여러 덕목 중 가장 으뜸을 꼽는다면 단언컨대 ‘입금’일 것이다. 입금의 효과에 대해 순차적으로 알아보자.
입금이 되면
1. 할리우드 스타는 영화 촬영 전까지 식스팩과 S라인을 만들고, 가수는 행사장까지 가속 페달을 밟을 것이며, 주부는 투 플러스 한우를 굽겠지만, 디자이너는 플러스펜과 롤지를 안고 밤샐 준비를 할 것이다.
2. 아름다운 안(최소한 본인의 마음에 드는 계획안)을 만들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몸이 피곤해도 맑은 정신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으며, 클라이언트의 사소한 변경도 달갑게 수용할 것이다.
3. 거의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그러하듯이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처리해야 할 일과 설계 변경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간다. 그럼에도 디자이너는 마지막 입금을 생각하며 최종 마무리에 여념이 없다.
4. 완료되었다(설계안 제출, 준공, 납품, 털어냄, 던져줌, 끝, 쫑과 같은 다양한 용어가 난무함). 그리고 입금이 되면 디자이너는 뒤풀이(과도한 취미 생활, 가족 행사, 골프, 술, 여행 등)를 꿈꾸며 또 다시 밤샐 준비를 한다.
그러나 보통 이런 질문에는
‘나의 노력으로 지구가 조금 아름다워졌고…’,
‘나의 작품에 다른 사람들의 좋은 평가가 수반되고…’,
‘나의 수많은 관찰과 애정으로 자신과 공공의 선을 위해 노력할 때…’ 등,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답변을 해야 한다.
“난 입금될 때”라는 답변에 대한 변명을 하자면, 로직을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당시에 나의 머릿 속의 95%는 ‘다음 달 월급’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항산항심1에 근거한 사고방식에 젖어 있던 것이다. 비슷한 속담으로 ‘쌀독에서 인심난다’, ‘사흘 굶어 도둑질 아니할 놈 없다’ 정도를 들 수 있겠다. 보다 훌륭한 안(플랜, 디자인)을 위한 열정이 폭발하기 위해서는 ‘입금’이라는 촉매가 필요하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입금은 디자이너의 열정을 끓어오르게 한다. 그 당시 질문했던 어린이가 지금이라도 이런 속사정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8 돈이 전부가 아닌 가치에 대한 탐구
언젠가 예비군 소집일에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한 15년 만이던가 순간 반가운 마음에 호구조사로 화제가 넘어갔다. 초등학교에는 이과 문과의 구분도 없어 추측할 길이 없으니, “뭐해서 먹고 사냐”, 또 “살만하냐” 뭐 이런 식의 질문이 오고갔다. 그 동창은 구로에서 간판 회사를 한다고 했다. 하도 쓰러지고 새로 생기는 가게가 많은 와중에 자리를 잘 잡아 돈을 쓸어 담고 있다고 했다. 중학교 졸업 후 바로 간판 사업에 뛰어들었고, 잔뼈가 굵어져 지금의 위치까지 오르게 되었다고 했다.그 당시 내가 버는 것의 열 배 정도 버는 것 같았고, 이젠 좀 살만하다며 뿌듯해 했다.그는 나에게 많은 야근과 적은 봉급으로 어떻게 생활을 하냐며 측은해 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난 이렇게 생각했다.‘디자인과 조경 설계는 공공의 선을 위한 일이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평생 직업이므로 상관없다…’라는 생각이었느냐고 아니다. 솔직히 그것보다는 ‘예비군 훈련 끝나고 납품해야 하는데…’라는 생각밖에 없었고, 그러다가 ‘야근하느라월급 쓸 시간이 없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순간 떠올라 피식 웃고 말았다.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고 돈은 생각보다 (혹은 예상대로) 많이 벌지 못했다(그래도 생활은 했으니 벌었다고 해야 하나.그런데도 아직까지 조경 설계를 직업으로 갖고 있고 그래서 ‘그리고’ 있다. 이유가 뭘까?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과연 설계가 돈을 벌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걸까?’
물론 몇몇 조경 디자이너는 많은 돈을 벌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그저 중산층 정도의 수입으로 수수한 삶을 살아간다.사실 적당하고 일관된 보수의 확보는 어느 직업이든 중요한 문제이지만, 조경 설계는 오늘날 부의 기준에서 돈버는 분야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조경 설계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면 어떤 이유에서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보통 사람들은 설계를 한다고 하면 건축 설계, 인테리어 설계를 떠올리는데, 조경 설계를 한다고 하면 이런 반응이 대부분이다.
“아… 예, 좋은 일 하시는 거죠”
(좋은 일이죠…)
“고속도로 변에 많은 그거죠”
(그러니까요…)
“돈 많이 벌 수 있다던데.”
(뭐 그럴 수도…)
“아! 공원 설계, 그거죠”
(난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데…)
“그거 전망이 좋다던데요”
(20년 전에도 그랬지…)
오형석은 새로운 조경 문화를 고민하던 젊은 조경가 7인과 의기투합해만든 프로젝트 그룹을 기반으로, 2005년도에 디자인로직을 설립했다.만 10년 동안 디자인로직을 이끌며 새로운 외부 환경에 대한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으며, 또 다른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디자인을 갈구하고 있다.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 후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환경조경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서인조경과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LH 조경 부문 자문위원,인천시 도시디자인 자문위원, 코레일 조경 심의위원을 역임했고, 한국도로공사 사옥, 한남더힐 설계공모전에서 당선되었으며, 세종문화회관예술 정원, 호텔 롯데 제주, 용현 SK VIEW 등을 설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