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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전문가의 품격
  • 환경과조경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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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남항 국제설계공모의 초기 아이디어 스케치와 아이디어 노트. 조경은 건축을, 건축은 도시를, 도시는 조경을 제안하고 이렇게 제안된 내용을 섞고 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며 작업을 진행했다(예산·법규·구조 등 골치 아픈 내용이 아직 나타나지 않는 아이디어 단계의 일이 가장 자유로운 것 같다). ⓒ오형석

 

13 The Buck Stops Here

 

클라이언트와의 만남

약속 시간보다 30분에서 한 시간 전에 도착해 있다. 차가 막혀서, 내비게이션이 거지 같아서, 길눈이 어두워서, 사무실에 있기 싫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긴 시간이었다, 을로 산 것이…’라는 생각이다.


클라이언트와의 교류

클라이언트(대형 건축설계회사, 회장님, 친구들)는 순수한 영업의 대상인가?

비즈니스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그림이 아닌 술과 골프로 일을 따내야 하나?

그 해답이 이젠 조금 보이는 것 같다.

요즘은 고령화 현상으로 외로운 독거 노인이 많이 생기는 나이 60이 넘어서도 이들과 친구로 지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같이 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공유한 적이 있었으니 친구 되기에 더 쉽지 않을까? 


클라이언트의 두 타입: 

정신적으로 독립심을 주는 부류와 업무적으로 독립심을 주는 부류 

정신적 독립심을 필요로 하는 요구 사항

“드라마틱하고 다이내믹한 그런 거 있잖아요”

“뭐랄까…, 싸면서도 임팩트 있고 사람들의 눈을 확 사로잡는 그런 공간”

“이 예산으로 10배 아니 100배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어야 전문가 아닌가요”

“이걸 내가 할 줄 알고 결정할 줄 알면 왜 전문가한테 맡깁니까”

“뭐라고 말씀 드리긴 뭐한데, 그냥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오늘 회의 내용 반영해서 내일 다시 봅시다.”

“제가 이런 얘기를 했다고요? 기억이 안 나는데요.”


때려치우고 싶은가? 아니면 그냥 때리고 싶은가?

디자이너라면 흔들리면 안 된다.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선禪에 입문이라도 해야 한다. 인간의 진정한 힘은 관점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데 있지 아니한가. 재빨리 클라이언트로 ‘변신’해서 다시 바라봐야 한다. 클라이언트는 잘 모른다. 우리도 우리가 뭘 하는지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잘 모르는데 클라이언트는 오죽하겠는가. 헌데 놀라운 사실은 (솔직히 다 아는 사실이지만) 말이 하나도 안 통하는 외국인도 자기 욕하는 건 느낄 수 있듯이, 일을 잘 모르는 순수한 클라이언트도 우리가 대충하는거 다 안다는 거다. 이런 클라이언트는 프로젝트 진행에 따라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마감 시간에 대해 어느 정도 관대해지는 편이다. 자신이 초기에 잘 모르고 한 일에 대해어떤 보상을 하고자 하는 심리가 아닐까?

어쩌면 클라이언트도 디자이너의 관점을 점차 이해하게 되는 것일 수도….


업무와 관련된 독립심을 필요로 하는 요구 사항

“내가 원하는 결과물의 이미지는 ‘이것’이고 ‘이런’ 분위기가 나왔으면 합니다.”

“이 예산 안에서 당신이 만들 수 있는 대안을 보여주십시오.”

“당신이 전문가이니까 당신이 알아서 하십시오.”

“내가 결정할 것이 무엇입니까”

이런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계획은 명확해진다. 시작과 끝이 있으며, 소위 ‘수정’이 상대적으로 적다. 단,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사소한 것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으며 시간에 대해 엄격하다(클라이언트의 관대함은 프로젝트 초기에만 기대하는 것이 좋다. 특히 시간을 엄수하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없다).

이렇게 아주 상반된 두 클라이언트의 공통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쉬운 선택은 클라이언트가 하고, 어려운 선택과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은 디자이너가 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선택이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며 실현 가능한 범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줘야 한다. 왜? 책임은 디자이너가 모두 지게 되므로. 디자이너라면 언제나 다음의 문구를 염두에 둬야 한다. “THE BUCK STOPS HERE(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집무실 책상에 쓰여 있는 말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이다).”

 

 

14 무너지는 경계

요즘 클라이언트는 도시·조경·건축·인테리어 등 유관 분야를 분야별로 접근한다거나 별도의 접촉을 취하지 않는다. 일 자체의 목표에 부합하기 위해서라면 무기(분야)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분야의 구분은 무의미함’을 전제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건축가에게 외부 공간을 의뢰하고, 조경가에게 건축에 대한 조언을 받는다. 그러다 어떤 분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나타나면, “당신의 능력으로 해결해 줘요”라는 주문을 듣게 된다.

여기서 능력은 ‘당신의 인맥을 총동원하고, 가능한 모든 역량으로 주변 분야를 섭렵하여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들어 내라’는 의미다. 조경 설계 역시 업무 범위의 스펙트럼이 다양하기 때문에 업무 역량을 일반화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래도 조경 분야와 밀접한 디자인 문제 해결 능력과 함께 인접 분야―도시, 건축, 토목, 인테리어, 친환경기술, 경관―와 코웍collaboration work하는 스킬은 반드시 요구된다.

 

 

오형석은 새로운 조경 문화를 고민하던 젊은 조경가 7인과 의기투합해 만든 프로젝트 그룹을 기반으로, 2005년도에 디자인로직을 설립했다. 만 10년 동안 디자인로직을 이끌며 새로운 외부 환경에 대한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으며, 또 다른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디자인을 갈구하고 있다.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 후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환경조경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서인조경과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LH 조경 부문 자문위원, 인천시 도시디자인 자문위원, 코레일 조경 심의위원을 역임했고, 한국도로공사 사옥, 한남더힐 설계공모전에서 당선되었으며, 세종문화회관예술 정원, 호텔 롯데 제주, 용현 SK VIEW 등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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