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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DA]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
    낙원paradise은 ‘여기here’가 아닌 ‘또 다른 세계another world’를 의미한다. 지금 내가 발붙인 곳이 아닌 어딘가 다른 곳을 의미하는 낙원이란 말에는 이미 상실의 정서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니 잃어버린 낙원이란, 우리의 상실감을 자극해 ‘낙원’에 대한 그리움을 한층 애틋하게 만든다. 원명원은 중국의 원림 예술이 이미 무르익었던 명·청 원림의 성과를 집대성한 제왕의 궁원이다. 강희제가 ‘최초 원명원’을 옹정제에게 내려준 이래로, 청나라의 전성기인 소위 ‘강건성세’(강희, 옹정, 건륭 134년에 걸친 시기)를 지나 중국이 서구 열강과 충돌하는 도광제, 함풍제 재위기에 이르기까지 원명원은 끊임없이 조영되었다. 청조의 다섯 황제는 500에이커(약 61만 평)가 넘는 땅 위에 100여 개의 전당과 정자가 이루는 ‘낙원’의 풍경을 창조했다. 그러나 원명원은 1860년 영국-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약탈당하고 불살라졌으며, 동치제가 그 일부를 복구했으나 다시 8개국 연합군에 의해 훼손되었다. 중화민국 이래로는 도시화와 현대화에 따른 파괴가 이어졌다. 원명원 약탈은 1970년대 원명원 복원의 움직임이 시작되고서야 비로소 멈추게 된다.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도서출판 한숲, 2015)은 지금은 폐허로 남은 원명원을 중국의 원림사와 문화사, 근현대 정치사를 넘나들며 글로 복원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인 왕롱주는 중국에서 태어나 타이완과 미국에서 공부하고 가르치는 역사학자다. 이 책의 초판은 미국에서 영어로 먼저 출간되었고, 이후 타이페이와 중국에서 중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애초에 저자가 영어로 책을 썼다는 것은 다분히 서구의 독자들을 겨냥한 저술 의도가 있었다고 추측하게 한다. 이 책에는 서구 제국주의에 휘말린 원명원의 운명에 슬픔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제시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물론 역사적 사실의 선택과 배치에서 우리는 저자의 메시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예를들어 화친이 맺어진 날에도 방화가 여전히 계속되었음을 논증한다거나,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원명원을 약탈한 것을 정의의 이름으로 비판했던 빅토르 위고가 원명원의 ‘약탈품’을 소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술하는 장면에서는 서구의 패권주의와 이중적 태도에 대한 냉소를 느낄 수 있다. 서태후(자희 태후)에 대한 기술도 흥미롭다. 함풍제와 서태후의 유명한 로맨스도 원명원에서 시작된다. 청나라를 40년간 지배했던 그녀는 아편전쟁 이후 파괴된 원명원을 재건하려는 욕망을 억누를 수 없었다. 서태후는 군함을 구매하기 위한 자금을 가로채 청의원 보수를 위한 경비로 충당했다. 물론 그녀가 세계사의 거대한 조류 속에서 중국의 운명을 홀로 바꾸기는 어려웠겠지만, 자신의 향락과 원명원에 대한 애정으로 중국을 더 큰 위험에 빠뜨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는 현재 중국의 대표적인 정원으로 이화원을 남겼다. “크게 보면 이화원은 청의원을 보수한 것이지만, 청의원 본래의 설계를 개선하여 모든 건물과 풍경을 극도로 세밀하게 일치시켜 전체적인 공간의 완전성을 추구했다. 정원의 바위는 예술적으로 쌓아올렸고, 그림 같이 자연스런 배경과 시적 상상력을 자아내는 인공 건축은 정교하게 안배했다. 그것이 지금의 이화원이다.” 원명원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욕망과 일상에 대한 묘사는 지금은 없는 이 낙원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원명원이란 문화 유적을 둘러싼 중국 학계의 논쟁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80년대 한껏 고양된 애국심은 원명원의 대대적인 복원에 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과연 복원을 해야 하는지부터 복원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까지 많은 논란이 있었고 합의를 끌어내기 어려웠다. 그때 왕즈리란 인물이 “원명원의 건축 역사에서 설계의 변동은 늘 있었던 일”이라고 일깨우며, 전체 포국은 유지하면서 “낡은 건축을 현재의 필요에 알맞게 리모델링하는 것을 원칙으로 제시”했다. 시대와 생활에 맞게 설계 변동이 있었던 역사 유적이 비단 원명원뿐은 아니리라. 우리도 파괴되고 훼손된 전통 건축을 복원하는 것이 좋은지, 복원한다면 어떤 시점을 원형으로 삼아 복원하는 것이 좋은지, 또 한 시점의 복원을 위해서라면 이후의 역사적 흔적은 없애는 것이 옳은지 늘 논쟁거리다. 원명원의 복원뿐만 아니라 재현의 문제도 떠올랐다. 중국 저장성에 이번 달 실물크기의 복제 원명원, ‘원명신원圓明新園’이 문을 열 예정이라고 한다. 이 원명신원이 처음 계획될 당시부터 반대했다는 실제 원명원 측은 “원명원은 문화유산 자원으로 유일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복제가 불가능하다”면서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한다.1 원명원을 재현(복제)하려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 홍콩부근의 도시 주하이는 서양루, 구주청안, 방호승경을 모방하여 원명신원을 지었다. 그리고 이 원명신원의 첫해 수입은 1.6억 위안이 넘었다. 이러한 상업적 성공은 새로운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 제왕 궁원을 완전하게 복원할 수 있는가? 아니면 불가능한가” 복원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역사가나 건축가 할 것 없이 모두현대화 속에서 어떻게 본래 유적을 보호할 수 있을지 의문을 표했다.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의 저자 왕롱주는 강한 목소리로 말한다. “전통 건축과 원림 공예의 최고 수준의 기술은 이미 알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자금이 충분하면 언제라도 잃어버린 궁원을 다시 세울 수 있지만, 잃어버린 기예는 다시 되찾을 수 없다.” 저자는 원명원 유적 공원이든 복제 원명원이든 상업주의의 위협에 맞서 완전하게 예술적 품위를 재현할 수 없다면 차라리 지금 상태를 온전히 보존할 것을 주장한다. 그것이 역사가인 저자가 제시하는 역사와 대면하는 진정한 방식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도서출판 한숲에서 직접 편집한 첫 번째 단행본이란 의미가 있다. 편집자는 책의 첫 번째 독자다. 지난 몇 달간 원명원이라는 커다란 세계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반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건축물과 사람들의 이름에 편집의 속도를 내지 못하기도 하다가, 원명원이 중국의 근현대사와 맞물리는 부분에서는 원명원의 운명 속으로 빠져들면서 서구의 침탈에 함께 분노하기도 했다. 때로는 중국식 한자의 벽 앞에서 좌절(!)을 느끼기도 했지만, 우리에게도 익숙한 문화의 원형을 발견했을 때의 즐거움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책 한 권을 오래도록(?) 붙잡고 있는 느린 편집자를 진득하게 기다려준 디자이너와 편집장님, 번역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지금은 한동안 함께 했던 원고를 인쇄소에 보내놓고, 새로운 독자 품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마치 잠시 맡아 기르며 정붙인 아이를 입양 보내는 심정이랄까. 부디 두루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편집자의 서재] 경관의 미래 도구, 디바이스, 그리고 건축적 발명들
    여기 이상한 도구를 뒤집어쓰고 있는 우리의 꼬맹이가 있다. 꼬맹이는 지금 굉장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오른손에 설치된 카메라는 개미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을 촬영하고 있으며, 왼손의 카메라는 지면의 풀과 나뭇잎, 작은 모래알 등을 촬영한다. 이 모든 이미지가 한 화면으로 조합되고 꼬맹이의 머리를 덮고 있는 빨간 헬멧으로 전송된다. 조금 전 꼬맹이의 손은 1cm 남짓 움직였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마치 10m를 이동한 것 같다. 굉장히 느린 걸까, 굉장히 빠른 걸까(그림1). 눈속임에 불과할지 모르는 이러한 ‘인지력 확장 기술’이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랜드스케이프…, 그게 도대체 뭐야”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1년 남짓 조경 잡지사에서 근무했다는 놈이 질문 수준하고는….’ 근데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얘기해보자. “이거야!”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답은 많은 사람의 동의를 구할 수 있을까? 그나저나 이 랜드스케이프란 단어, 참 여기저기 잘 붙어 다닌다. 어떤 미드를 보니, (물론 맥락이 참 많이 다르다) 살인 현장을 설명할 때도 이 단어를 쓰더라. 『환경과조경』에서도 이 단어가 등장할 때, 나를 포함한 몇몇이 긴장하기도 한다. 과연 이 단어를 ‘경관’이라고 번역해도 되냐는 문제에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지금 이 책의 제목을 저렇게 번역해 놓아도 될까 싶다. 랜드스케이프든 경관이든 참… 애매~하다.조금 다른 얘기가 될 수 있겠지만, 조경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이 “뭐하고 먹고 살지”라는 고민을 내뱉는 이유의 하나가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 4년 (본인 역시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지만) 이 경관이란 것에 뚜렷한 실체가 없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 해당 분야에 대한 접근 자체를 망설이게 된다고나 할까 그러던 중, 제프 마노Geoff Manaugh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다빈 씨, 혹시 아주 미묘하고 오묘한 방식으로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도와주는 렌즈나 필터, 디바이스, 혹은 중간 다리 격의 도구가 기존의 공간설계(경관 디자인 혹은 조경)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적 있어요? 새로운 공간을 조성하지 않더라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말이죠.” 책 속의 여섯 가지 인터뷰에 공원이나 정원 같은 조경의 주요 대상지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우리가 흔히 경관(조경)이라 부르는 눈앞의 공간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떤 ‘물리적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볼 수 있느냐가 미래의 경관을 구성하는 요소이자 경관의 미래 자체가 될 수 있다. 인지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경이의 디바이스devices of wonder’ 자체가 ‘랜드스케이프’의 범위가 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가 그런 시각적 능력의 변화를 최소 한두 번은 겪게 된다. 갓난아이는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사실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면 처음으로 색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안경 속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 훨씬 넒은 화각으로 같은 세상을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 이젠 그것도 성에 차지 않는지, 새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싶어 여기저기서 드론을 통해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있다. 이 뿐이 아니다. 영화 ‘다크나이트The Dark Knight(2008)’에 나온 건물이나 도시 구조를 스캔하는 3D 소나sonar 기술은 ―사실 많이 과장되었지만― 도시 복원과 관련된 몇몇 설계 및 리서치 분야에서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조금 더 과장을 해보면, 오실로스코프, 굴절 매체, 지진계, 광학 간섭계 등의 디바이스로 분석된 도시의 모습이 네트워크화 되어 시각적 정보로 재구성되는 가상의 도시 또한 가능하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기에 앞서, 이러한 도시에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을 볼 수 있는가에 앞서 ‘얼마나 볼 수 있느냐’에 그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네덜란드의 텐케이트TenCate 사에서 개발한 지오디텍트GeoDetect 기술은 공간 설계가의 눈이 아닌 ‘경관의 눈’으로 작동하는 ‘생각하는 경관’을 꿈꾸게 한다. 환경에 대한 자발적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이 인텔리전트-지오텍스타일intelligent-geotextile 기술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따라 최적의 공간 및 지형 구조로 자기 자신을 변형시키는 AI 그라운드 플로어의 개발을 예측하게 한다. 내 집 앞 공원이 자체적으로 수북이 쌓인 눈을 털어내고, 폭우에 대처해 최적의 배수로를 구성했다가 다시 당신의 아이가 뛰어 놀 수 있는 잔디 광장으로 되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언젠가 아키텍트를 대신해 AI 경관의 보수를 담당하는 공간 땜장이spatial tinkerer라는 직업이 생겨날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을 보느냐, 얼마나 볼 수 있느냐를 넘어 최적의 공간만을 보게 되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내용이 실제 연구되고 있는 분야이고, 여기 소개된 내용은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주어진 경관에 대한 이해의 차이, 그리고 그 차이를 가져오는 기술과 도구, 디바이스, 건축적 발명들이 가득한 세상. 당신의 눈이 경관의 미래, 나아가 미래의 경관 그 자체인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도시재생 아이디어 공모전 ‘국제교류 복합지구’ 마스터플랜 오는 10월 확정 예정
    고가산책단은 지난 4월 용산구에 위치한 카페고가에서 두 번의 고가포럼을 열었다. 첫 번째 포럼은 ‘고가를_묻다’란 제목으로 4월 7일부터 9일까지 72시간 연속특별기획으로 치러졌다. 서울역 고가와 관련해 논란이 되는 ‘고가와 노숙인’, ‘고가와 관광’, ‘고가와 교통’, ‘고가와 시민주도 운영 방안’, ‘고가와 사회적 경제’, ‘고가와 남대문, 봉제 산업’이라는 6개 주제로 현실과 대책을 진단하고 지향점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4월 28일 진행된 두 번째 포럼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에 대해 다루었다. 이날은 다양한 분야에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하고 연구해온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재개발 지역이 새로 형성된 고소득 계층에 의해 대체되고 원래의 거주민들이 비자발적으로 이주하는 현상을 말한다. 서울역 고가를 보행로로 전환하고 북부역세권 개발이 계획됨에 따라 서울역 일대의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이에 따라 발생할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다. 공익형 알박기 프로젝트 조경민 대표(고가산책단, 조반장)는 고가산책단이 조사한 지역의 현황을 먼저 소개했다. 서울역 고가 도로와 인접한 중림동은 개발에 대한 욕구를 키워왔다. 특히 2005년 이전에는 부동산 가격이 평당 300~500만 원이었는데, 북부역세권 개발에 대한 소문이 돌면서 이후 부동산 가격이 10배 이상 뛰었다. 하지만 개발 사업은 시행되지 않았고, 금융위기 이후 건설사가 이 지역에서 대거 빠져나갔다. 더 이상 수익률을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 대규모 개발에 대한 욕구가 사라졌다. 이로 인해 최근까지 부동산 매매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으나 서울역 고가란 이슈를 통해 외부에서부터 부동산 시장이움직이고 있다. 고가산책단은 서울역 고가에 관심 있는 시민들의 활동 플랫폼으로서 ‘서울역 7017 프로젝트’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서울역 근처인 용산구 서계동에 거점(카페고가)을 마련했는데, 조 대표는 “학술적 연구가 아닌 지역 문제의 실제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밝혔다. 고가산책단은 서울역 인근 주민이 되어 젠트리피케이션을 극복하는 ‘공익형 알박기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곳에서 서울역 고가 공원화로 우려되는 주변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대응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겠다는 것. 이어 젠트리피케이션은 개별 대응으로 풀리지 않는 숙제다. 서울역 고가라는 이슈를 시작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의 해법을 마련하고 담론이 형성되길 기대한다”며 포럼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홍대, 그 많던 예술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박태원 교수(광운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과)는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문제 인식’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젠트리피케이션은 지역 불균형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슬럼화된 노후 주택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중산층이 유입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나지자체는 정책적 수단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이용하기도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인구 유입을 위한 대책이라는 것인데, 그 수혜자는 과연 누구일까? 젠트리피케이션의 사례로 홍대가 많이 언급된다. 과거 홍대 인근은 예술인들로 넘쳐났다. 예술인들을 찾는 문객이 늘어나면서 상권이 활성화되었는데, 상권이 살아나자 임대료가 인상되어 예술인들은 홍대를 떠나게 되었다. 여러 지역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사람이 유기체처럼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으면 다른 장소와의 경합에서 승리하고 그 곳은 명소가 된다. 홍대의 경우 예술인들이 만든 문화가 지역을 명소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 문화적 산물을 즐기고자 명소를 찾지만, 명소가 되면 그 주역들은 자신들이 가꾼 터전에서 밀려난다. 박 교수는 “그렇다면 오른 땅값은 전부 땅주인의 몫인 걸까”란 물음을 던지며 “고래가 살기 위해서는 플랑크톤이 필요”하듯 어느 한쪽만의 독식으로는 지속가능한 생존이 어렵다고 경계했다. 지난 4월 30일, 서울시가 ‘잠실운동장 도시재생 구상국제공모’를 공고했다. 이번 공모전은 코엑스에서 잠실종합운동장까지 이어지는 지역 일대를 ‘국제교류 복합지구’로 개발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대상지는 한강과 탄천을 포함한 잠실종합운동장 주변으로 총 95만m2 규모다. 공모 대상지인 잠실종합운동장은 1984년 완공 이후,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연달아 개최하는 등 대한민국 스포츠사와 서울의 도시 개발사에 있어 상징성과 역사적 의미가 큰 장소다. 한강과 탄천으로 둘러싸인 잠실종합운동장 일대는 도심 속 수변 공간으로서 잠재력이 큰 장소이며, 공항 접근성(김포공항 30분대 직결)이 좋고 철도 교통 요충지(KTX 동북부 연장, GTX 타당성 검사 진행, 신분당선 등)로 점쳐지는 등 교통 인프라 중심지로서의 가능성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잠실종합운동장은 시설이 노후화되어매년 100억 원 규모의 유지·관리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다. 또한 올림픽대로와 탄천 동·서로가 대상지 내외를 단절시켜 시민들이 수변 공간으로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고립된 공간은 대부분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서울시는 2013년 9월 ‘2030서울플랜’을 발표하고, 역사·문화 도심인 한양 도성, 국제금융 도심인 여의도·영등포와 더불어 삼성역과 잠실종합운동장 일대를 포함한 강남을 국제업무 도심으로 설정했다. 2014년 4월에는 이를 구체화하는 ‘서울 경제비전 2030’의 일환으로 수립된 ‘코엑스~잠실종합운동장 일대 종합발전계획’을 통해 이 일대를 네 가지 핵심 산업(국제업무, MICE1, 스포츠,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이 융합된 ‘국제교류 복합지구’로 조성할 계획을 밝혔다. 서울시는 이번 공모를 통해 잠실종합운동장 일대의 가치와 잠재력을 재조명하고 새로운 도시 미래상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어, 이를 향후 ‘국제교류 복합지구’ 조성에 활용할 것이라 밝혔다. 5월 6일 확정·공고된 ‘잠실운동장 도시재생 구상 국제공모’의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도시·건축·조경·부동산 개발·경영·관광·문화 등에 관련된 전 세계의 모든 개인이나 법인이 단독 또는 공동으로 참가할 수 있다(최대 5인). 공모의 공간적 범위는 한강, 탄천을 포함한 잠실종합운동장 일대로 필요 시 범위를 확대하고 주변 지역과의 연계 방안을 제안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올림픽대로 및 탄천 동·서로 지하화, 동부간선도로 램프와 주차장 이전, 보행 브리지 연결 등을 전제하고 있다. 이번 구상은 잠실종합운동장을 중심으로 코엑스, 탄천, 한강 지역과 적극적인 연계를 유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시설별 계획(안)은 주경기장을 제외한 운동장 시설을 재배치하고 그에 따라 발생하는 여유 공간을 MICE 복합기능 집적지로 사용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주경기장은 그 역사성을 고려해 리모델링을 통한 경관 개선 사업을 진행하고 그 외의 시설은 가이드라인에 포함된 필수 기능과 그에 따른 각 시설의 최소 규모(야구장: 25,000석 내외, 전시·컨벤션 시설: 전용면적 15,000m2 이상, 수영장: 관중석을 제외한 1급 공인수영장 기능 수행 등)에 따라 새로운 위치로 재배치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단, 조성 기간 동안 야구, 수영 등의 체육 기능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계획한다. 서울시는 올림픽도로 지하화에 따라 야구장과 같은 주요 체육 시설이 한강 지역과 연계될 수 있도록 하는 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안은 탄천과 한강을 연결하는 공중 보행로의 도입과 현 야구장과 학생 체육관 부지를 코엑스 일대와 연계한 MICE 복합 기능 집적지로 개발하겠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현 예시안의 시설별 위치와 규모 등은 향후 국제공모의 결과와 마스터플랜 수립 과정에서 조정될 예정이다. 참가 등록은 6월 2일까지이며(http://www.jamsil-idea.org), 작품 접수는 8월 11일~12일 양일간 진행된다. 시는 9월 1일~2일 양일간의 작품 심사를 통해 9월 4일 당선작을 발표할 예정이다. 심사위원단은 구자훈 교수(한양대학교), 닐 커크우드Niall G. Kirkwood 교수(하버드 대학교), 김영준 대표(김영준도시건축), 알레한드로 자에라 폴로Alehandro Zaera-Polo 대표(AZPML), 김남춘 교수(단국대학교), 오동훈 교수(서울시립대학교), 롤랑 빌링어RolandVillinger 대표(McKinsey & Company), 김갑성 교수(연세대학교, 예비 심사 위원)로 구성되었다. 서울시는 우수작 3팀(각 1억 원), 가작 5팀(각 3,000만 원)을 선정할 것이라 밝혔으며, 수상 팀이 향후 진행될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리모델링 설계공모’를 추진할 경우 지명초청권을 부여할 계획이다. 시는 공모 결과를 반영해 오는 10월까지 ‘국제교류 복합지구’ 마스터플랜을 확정할 예정이다. 한편, 서울시는 이번 사업과 관련해 기존 ‘종합무역센터주변지구 제1종지구단위계획구역(2009)’을 ‘국제교류복합지구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변경·확대를 확정했다. 또한 사업 대상지 내 민간 영역 개발 방안으로 도시계획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민간에서 진행하는 사업 내용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을 택했으며, 관련된 세부 사항을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코엑스 부지 등 민간 부지 사업 추진에 대한 사전 협상이진행 중에 있으며, 지난 13일에는 제7차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열어 옛 한전 부지를 이번 사업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확정지었다. 사전 협상에 따른 ‘공공 기여’ 방안과 관련해서는 ‘도시관리계획변경(용도 지역 상향 등)으로 인한 토지가치 상승분 이내’, ‘증가되는 용적률의 6/10에 해당하는 토지면적(제3종일반주거를 일반상업지역으로 변경 시 40% 내외)’ 등의 공공 기여량에 대한 기준이 정해졌으며, 그 제공 범위, 방법, 제공 시기 등은 아직 조율 중에 있다. ‘국제교류복합지구’의 총 사업 규모는 2조~3조 원 사이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양다빈 / 2015년06월 / 326
  • 젠트리피케이션은 서울역 고가를 넘어올까? 고가산책단의 두 번째 고가포럼
    악순환의 고리, 문화백화현상 김남균 회장(맘편히장사하고픈 상인모임)은 ‘문화백화현상’을 소개하며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은 결국 공멸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문화백화현상은 김회장이 제안한 개념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어떤 공간에 예술가들이 이주해 터를 잡는다. 이후 예술인들과 교류하는 사람들이 유입되는데, 유동 인구가 늘어나면 자본이 투입되기 시작한다. 이후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합세하면서 임대료가 올라가며 집값에도 영향을 미쳐 감당하기 어려운 예술가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된다. 프랜차이즈가 상가를 점령하면서 문화의 다양성과 소비의 매력이 떨어져 30대 이상의 구매력 있는 연령층의 이탈이 발생한다. 포화 상태에 이른 상점들은 팔아도 이윤이 남지 않게 되며 프랜차이즈는 철수하고 유동인구는 감소한다. 빈 점포가 늘어나 건물주들의 부도로 이어진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상황에 이른다. 김 회장은 법 제도를 보완함으로써 이러한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법은 젠트리피케이션을 가속화하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면 일정한 수준의 임대료는 보호되지만 오히려 임대료가 높은 세입자는 보호되지 않는다. 건물주가 바뀔 때 기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서는 환산보증금액(보증금+월세×100)이 일정 수준 이하(서울은 4억 원, 수도권과밀억제권역은 3억 원, 광역시는 2억 3천만 원)인 임차인에게만 5년 계약 갱신 요구권을 인정해주었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높은 임대료를 거둬들이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를 개선하는 안을 담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지난 5월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었다. 개정안은 건물주가 바뀌더라도 최초 임차 시기부터 5년간 영업 기간을 보장하는 조항을 넣었다. 또한 임대인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지 못하게 손해배상 규정도 추가했다.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요구·수수하는 행위’,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으로 하여금 권리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한 경우’,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에게 현저히 고액의 차임과 보증금을 요구한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과 계약 체결을 거부한 경우’를 방해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어길 시 임차인은 임대차 종료 후 3년 이내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임차인이 방해 행위를 입증하고, 감정평가액 산정과 변호사 선임 비용도 부담하도록 규정해 실제로 권리를 보호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임차인이 다음 임차인을 고를 수 있고, 계약이 끝난 후 2개월간 유예기간을 두는 내용도 담겨 있다. 하지만 보호 기간이 5년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과 재건축의 보상 범위가 없다는 맹점이 있다. 김 회장은 이를 두고“최소 법으로 10년은 보호해야 실효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진 이사(동림피앤디)는 “어떤 규제도 완벽하지 않다”며 규제에 앞서 의식 변화를 위한 캠페인을 제안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여러 도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에 대해 김남균 회장은 “의식의 변화도 필요하지만 법이 의식을 만들기도 한다”며 법 제도를 정비하고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악순환이 반복되고, 건물주도 앞에서 언급한 문화백화현상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김 회장의 주장이다. 공동체는 있는가 남기범 교수(서울시립대학교 도시사회학과)는 “도시의 변화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젠트리피케이션의 현상을 일부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도시재생 전략의 하나로 다양한 마을공동체사업이 시행되고 있는데, 사업의 주역으로 나선 공동체가 부동산 임대료 상승으로 내몰리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런데 남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상이 진짜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따르면 폐쇄적이지만 중산층이 오히려 공동체의 형태를 잘 형성하고 있다. 문화를 통한 도시재생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항력을 키우자는 주장들이 제기되지만, 지역 공동체가 그들만의 문화를 도시 전체에 적용하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게 남 교수의 생각이다. “나만 주장하는 문화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문화를 통한 도시의 경쟁력이 시각적으로나 외부인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인정받을 수 있는 형태냐를 따져볼 일이다.” 설재우(서촌지역활동가)는 “지역의 변화가 단순하게 경제적 논리로 변하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사실 “상인들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기 때문에 쫓겨나는 것”이라며 변화의 맥을 달리 봤다. 그에 따르면 본인의 장사나 활동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나 주변에 주는 피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주변 환경을 돌아보지 않는 상인이나, 친한 사람끼리만 모인 공동체가 그 지역의 주민들과 소통하지 않으면서 이해만을 바란다는 건 모순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상이 되는 공동체 혹은 개인이 지역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지역과 정보를 공유하는 최소한의 노력은 하는가를 먼저 따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꽃(문래동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 413)도 지역과의 관계 맺기가 중요하다는 의견에 힘을 보탰다. 건축가 홍윤주(진짜공간)는 문화예술인들이 마을 사람을 쫓아내기도 한다고 지적했는데, 삶터에 대한 배려가 없는 도시에서의 예술을 무조건 ‘선善’이라 규정하는 시각은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잡히지 않는 해법, 함께 풀어갈 숙제 이날 포럼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많은 이야기오갔는데, 화두를 던지는 정도로 일단 마무리 되었다. 시리즈로 계속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니 차후 더 많은 담론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여러 관점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몇 가지 대안도 제시되었다. 법 제도의 정비와 캠페인을 통한 인식 제고, 세입자의 지역 사랑, 관계 맺기 등이 문제 해결의 단서가 되었다. 그런데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관이나 정부 관계자가 관조하는 입장이 아닌 주체가 되어야 실행 가능성이 보이는 일도 있고, 여러 이해당사자가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는 특정되지 않는다. 연관된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서울역 고가를 매개로 논의를 진행했지만, 이는 고가만이 아니라 지역 전체의 문제다. 유기체로서 도시의 구성원이 함께 풀어갈 숙제다. 고가산책단이 제시할 새로운 모델도 기대된다.
  • 고가 위에서 즐기는 피크닉 서울역 고가 시민 개방 행사 ‘고가에서 봄’ 고가 아래에서는 고가 공원화 사업 반대 시위 열려
    서울의 중심부, 고층 빌딩 숲 사이로 노란 파라솔이 펼쳐지고, 차도와 철로 위 지상 17m 높이의 고가에 녹색인조 잔디가 길게 깔렸다. 시민들은 파라솔 아래에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나눠 먹고 몇몇은 선베드에 누워 한낮의 오수를 즐기기도 했다. 잔디 위에서는 DJ가 틀어주는 흥겨운 비트의 음악이 울렸다. 영상 24도의 초여름 날씨에 고가 위에 설치된 커피 매대와 아이스크림 트럭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음료와 아이스크림을 사갔다. 축제와 같은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피크닉이 벌어졌다. 미리 체험하는 서울역 고가의 미래 지난 5월 10일 서울 중구 서울역 고가 도로에서 서울시가 주최한 서울역 고가 시민 개방 행사 ‘고가에서 봄’이 개최되었다. 이번 행사는 지난 2014년 10월, 44년 만에 보행자에게 개방되었던 첫 번째 시민 개방 행사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되었다. 이날 고가에는 폭 6m, 길이 400m의 인조 잔디밭이 조성되고 그늘막, 매트, 의자 등이 비치되어 앞으로 공원으로 조성될 고가의 모습을 시민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연출되었다. 다양한 부대 행사도 마련되었다. 남대문시장 쪽에서 진입하는 구간에는 서울역 주변 지역의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한 사진전이 펼쳐져 서울역 고가에 얽힌 역사를 돌아볼 수 있게 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린 고가 중앙 구간에서는 인디밴드 12팀의 공연이 열려 오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또한 전 구간에 총 4개의 ‘할말 부스’를 설치해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과 이날 행사에 대한 소감을 남길 수 있도록 했다. 시민들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프로그램도 마련되었다. 이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이동 도서관이 고가 위에 올라 왔다. 시민들은 1만 권의 도서를 비치한 이동 도서관에서 햇살을 즐기며 책을 읽는 여유를 만끽했다. 한편, 서울역 고가 아이디어 시민공모전에서 1위를 한 ‘도보환승센터’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도입해 운영하기도 했다. 서울역 고가 주변을 관광 동선으로 만들어 안내자와 함께 걸으며 골목의 역사와 문화를 돌아보는 ‘산책버스’를 두 가지 코스(남산방향, 청파동 방향)로 선보였다. 만리동 초입과 연결되는 구간에서는 금호타이어에서 지원하는 가족 화분 만들기 체험이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체험에 참여한 시민들은 한 손에는 꽃 모종을 다른 손에는 삽을 쥐고 저마다 개성 있는 화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서울역 고가의 전 구간은 행사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날 행사에는 총 4만8천여 명(서울시 추산)의 시민들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1만3천여 명이 다녀간 지난 2014년 첫 개방 행사 때보다 약 3배 이상 많은 인원이다. 12시께 고가를 방문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역 고가는 도심 속 새로운 휴식 공간이될 것”이라며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의 긍정적 효과를 홍보했다. 고가 아래에선 ‘불통 시장’ 외쳐 한편 남대문 시장 쪽 고가 아래에서는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에 대한 대규모 반대 시위 집회가 열렸다. 서울 남대문시장 상인회와 중구 일대 주민 약 150여 명이 모여 공원화 사업 반대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소통 시장인 줄 알았더니 불통 시장”이라며 반대 구호를 외쳤다. 이날 반대 시위에 참석한 이충웅 대체도로건설 범시민대책위원장은 “우리의 입장은 제일 먼저 대체 도로를 확보하라는 것”이라며 “대체 도로가 확보되어야지만 지역 경제가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역고가 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은 하루에 약 4만6천여 대로 추산된다. 따라서 고가 도로가 보행자만 통행할 수 있는 공원으로 바뀌면 남대문 시장으로 유입되는 동서간선 차량이 우회할 수밖에 없어 교통체증이 유발되고 이에 따라 손님이 줄어 지역 경제가 침체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남대문 상인들의 우려에 대해 박원순 시장은 이날 “서울역 북부 역세권 개발을 빠르게 추진하겠다. 코레일 및 여러 민자 사업자들과 협의해서 대체 도로도 함께 만들겠다”며 새로운 경제 활력을 창출하고 교통 문제도 해결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에 반대하는 상인과 주민들은 박 시장이 등장하자 항의의 표시로 고가도로에서 행진을 하려다 경찰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 서울역 고가 행사에 참여한 동대문구 주민 최희금 씨는 “서울역 고가 위에 올라와서 보니 사방이 탁트여 있어서 아름다운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서울의 중심지인데다가 주변에 역사 깊은 건물과 랜드마크와 연결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아 올 수 있는 도심 휴식처가 될 것 같아 이 사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았다”면서도 “옆에서 상인들이 시위하는 것을 보고 궁금한 마음도 들었다. 그들이 왜 이 사업에 대해 반대하는지, 사업이 시행되면 얼마만큼의 피해가 생기는지, 해결 방법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도 이 자리에서 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행사에 참가한 소감을 말했다.
    • 조한결 / 2015년06월 / 326
  • ‘서울 수목원’, 서울역 고가의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다 ‘서울역 7017 프로젝트’ 당선작 발표
    지난 5월 13일, 서울시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의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4월 27일 기술 심사에 이어 본 심사가 29일 진행되었으며, 승효상 서울시 총괄건축가(심사위원장)를 포함해 국내외 건축·도시·조경 전문가 5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평가에 참여했다. 심사 결과 최종 당선작으로 네덜란드 건축가인 비니 마스Winy Mass(MVRDV)의 ‘서울 수목원The Seoul Arboretum’이 선정되었다. 2, 3등작은 조성룡(조성룡도시건축)의 ‘서울역고가: 모두를 위한 길The Seoul-Yeok-Goga: Walkway for All’과 조민석(매스스터디스)의 ‘흐르는 랜드마크: 통합된하이퍼 콜라주 도시Continuous Landmark: Unified Hyper-Collage City’가 수상했다. 이번 공모전은 국제 지명 초청 공모의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수상작 3팀을 비롯해 후안 헤레로스Juan Herreros(estudio Herreros), 마르틴 라인-카노Martin Rein-Cano(Topotek 1), 창융허Chang Yung Ho(Atelier FCJZ), 진양교(CA 조경기술사사무소) 등 총 7팀이 참가했다. 최종 심사 결과 발표에 앞서 5월 10일에는 산책과 소풍 장소로 서울역 고가를 개방하는 ‘고가에서 봄’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서울역 고가 도로, ‘사람길’을 제안하다 당선작인 비니 마스의 ‘서울 수목원’은 서울역 고가를 대상지 주변 17개의 보행길과 연계된 하나의 공중 정원으로 만들겠다는 설계안을 제안했다. 서울시에 식재되어 있는 수목을 가나다순으로 심고, 그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를 유도해 지역 활성화를 촉진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승효상 심사위원장은 “서울역 고가를 넘어선 지역으로 녹색 공간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점과 시민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프로세스를 중시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폭 넓은 지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서울역 고가의 가장 큰 문제로지적되었던 안전성을 개선하는 데에서 다른 작품보다 높은 디테일을 보여주었다”고 밝혔다. 비니 마스는 같은 날 진행된 인터뷰에서 “설계 개념인 수목원은 목적이 아닌 다양한 맥락을 이어주는 도구로 제시한 것으로 파편화된 도시 맥락을 연결하고 그 과정에 시민의 소통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매개체로 기능할 것”이라고 당선작을 설명했다. 2등작인 조성룡의 ‘서울역 고가: 모두를 위한 길’은 고가를 따라 놓인 주요 도시 거점에서 비롯된 7개의 공간(이야기)을 제안하고 이를 기존 고가 위아래로 중첩되며 이어지는 3개의 보행로로 엮어 내겠다는 안을 선보였다. 김영준 MP(김영준도시건축)는 “로컬 디자이너로서 시간에 따른 지형과 서울역 일대의 변화에 대한 리서치와 면밀한 분석 내용이 두드러졌으며, 이를 기반으로 제시한 비용 절감과 운영·관리의 방식이 우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이 오히려 안전성과 운영·관리라는 근시안적인 필요성만을 충족시키는 다소 소극적인 제안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리서치 내용과 서울역 고가가 갖는 문제에 대한 분석력이 두드러진 것에 비해 최종적으로 제시된 설계안이 구체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3등작인 조민석의 ‘흐르는 랜드마크: 통합된 하이퍼 콜라주 도시’는 서울역 고가의 서쪽 끝부터 동쪽 끝까지 이어지며 8개의 공간 개념(산의 재구축, 환영광장, 평범한 산책길, 흐르는 랜드마크, 도시등불, 도시마당, 3차원 역사 복원, 서울성곽 연결)을 통해 마치 콜라주처럼 각 공간의 경험을 하나의 시퀀스로 이어준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기본 가이드라인에 제시된 구조 보강과 관련된 내용을 균형감 있게 선별하여 부분적인 고가 철거 작업을 진행하고 유용한 부분만을 활용하자는 안이었다. 김영준 MP는 “7개 작품 중 가장 완결적인 형태를 제안한 안이었다. 서울역 고가의 문제를 구체적인 디자인을 통해 잘 풀어내었으나, 기존 고가의 상당 부분을 철거하거나 변형한다는 점이 역사성을 존중하자는 공모의 의도와 상충되었다”고 전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먼 ‘서울 수목원’ 승효상 심사위원장은 “현재 1등작으로 선정된 비니 마스의 작품도 서울역 고가의 확정적인 미래상이 아니며, 그 모습을 찾기 위한 밑그림으로 기능할 것”이라했다. 서울시는 앞으로 프로젝트가 완료될 때까지 지역 주민 설명회, 분야별 전문가 회의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수렴하며 당선안을 구체화할 예정이라 밝혔다. 덧붙여 “설계 범위에 대한 구체적인 협상을 진행한 후 6월 중으로 비니 마스와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라 전했다. 조성일 본부장(서울시 도시안전본부)은 “본격적인 구조 보강작업은 10월부터 시작되고 작업 진행 상황에 따라 구간별로 단계적 시공이 이루어질 것”이라며 향후 사업진행 과정을 설명했다. 덧붙여 “모든 구간을 2017년까지 완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으며, 2017년 3월까지 전체 사업 대상지 중 일부 구간만을 완공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아직 전체 구간의 완공 시기는 정해진 바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 당선작 발표에 앞선 지난 5월 7일, 교통 문제 해결과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을 담은 ‘서울역 일대 종합 발전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구조 보강 작업 시 실시될 교통 통제에 따라 발생할 교통 혼잡을 최소화하기 위한 우회경로 확보사업이 포함되어 있다. 시는 동서 간선 도로 보강, 숭례문 서측 교차로 신설 등 주변 16개 교차로에 대한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모든 공사는 교통 통제가 이루어지는 시기인 10월 전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조본부장은 “교통 개선 계획에 따른 공사가 완료되고 서울경찰청과 교통 통제에 대한 협의가 마무리되면 서울역 고가에 대한 전면 교통 통제를 시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시는 ‘서울역 북부 역세권 개발’을 앞당기는 계획을 통해 서울역 고가 도로의 대체 교량을 건설하는 사업이 최대한 이른 시기에 실시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북부 역세권 개발 계획은 서울역 옆 철로 부지에 대형 컨벤션 센터와 호텔 등을 짓는 사업으로, 지난 2008년부터 민간 사업자 공모를 진행했지만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업자를 찾지 못했다. 서울시는 용적률이나 인센티브 등 규제 완화를 통해 빠르면 오는 9월 사업 공모에 나설 계획이라 밝혔다. 하지만 사업자를 찾더라도 ‘서울역 7017 프로젝트’가 완공되기 전까지는 대체 교량 설치가 어려울 것이라 예측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역 7017 프로젝트’는 노후화된 서울역 고가를 녹지·문화·소통의 공간으로 재생하고 쇠퇴한 공간에 활력을 불어 넣어 지역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해 나가기 위한 시도”라며 이번 공모전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날 비니 마스는 “좋은 프로젝트에는 항상 복잡한 상황과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그만큼 잡음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잡음이 더 많은 가능성과 논의를 일으킨다는 것도 분명하다”며 ‘서울 수목원’이 많은 사회적 참여를 유도하는 촉매로 기능하길 기대했다. 그러나 당선작 발표 소식을 들은 일부 시민들은 “사업 계획에 대한 계약을 확정하기에 앞서 얼마나 많은 의견 수렴이 가능할지”, “완공 후 유지·관리비는 어떻게 충당할지”, “서울역 고가 수목원 조성에 따른 교통 체증은 어떻게 해결할지” 등 이번 사업에 대한 의문과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본지는 다양한 가능성과 현실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를 분석하고 향후 ‘서울 수목원’과 서울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이슈를 되짚어보고자 『환경과조경』 327호(2015년 7월호)에 지명 초청작 7작품과 비평을 수록할 예정이다.
    • 양다빈 / 2015년06월 / 326
  • Waterlicht 네덜란드 베스터보르트, 심해에 잠기다
    ‘우주쇼space show’라는 이름의 다양한 천체 현상이 지구인의 눈앞에 펼쳐진다는 뉴스를 간간히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천체 현상은 자주 일어나지도 않고, 관측환경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으며, 날씨가 좋아도 한 지점에서 길게는 수 시간, 짧게는 몇 분에 불과한 시간동안만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희소성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이유이지 않을까. 지난 2월 말, 네덜란드의 라인Rijn 강과 에이설IJssel 강 사이에 위치한 베스터보르트Westervoort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빛의 쇼가 펼쳐졌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두 시간 반. 4헥타르의 땅에 펼쳐진 물빛이라는 뜻을 가진 푸른빛의 양탄자, ‘바터리히트Waterlicht’가 바로 이번쇼의 주인공이다. 150분의 마법, 바터리히트 바터리히트를 디자인 한 단 로세가르데Daan Roosegaarde(스튜디오 로세가르데 대표)는 “최신 LED 조명 기술이 접목된 빔을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가상의 홍수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며 “제방 위를 따라 걷다가 방수로 flood channel에 다다르면 마치 심해에 빠져 있는 듯한 느낌에 젖어들 것”이라고 이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바터리히트에 적용된 기술은 기본적으로 ‘스모그 프리파크Smog Free Park’ 프로젝트에 사용했던 방식과 동일한 것으로, 빛이 공기 중의 입자에 부딪혀 산란되는 효과를 발전시킨 것이다. 조명과 날씨 그리고 시간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광대한 대지 위에 펼쳐진 푸른빛은 다수의 LED 조명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중첩시킨 강력한 세기의 빔이 산란된 것이다. 대상지 주변부를 따라 여러 개의 프로젝터를 놓아 기기마다 뿜어내는 빔이 공기 중에서 서로 교차하도록 했다. 프로젝터에 설치된 전동기는 주기적으로 빔의 방향을 변화시켜 이러한 효과가 더욱 배가되도록 했다. 조명만큼이나 중요한 요소가 날씨와 시간이었는데, 땅과 수면의 온도 변화에 따라 수증기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간대에 맞춰 빛을 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광경을 볼수 있는 시간은 저녁 7시 반부터 열시까지, 단 두 시간반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 이전은 충분히 어둡지 않고, 그 이후에는 공기 중의 수증기 입자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사회적 디자이너 로세가르데 바터리히트를 만든 로세가르데는 패션에서 건축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적 디자이너다. 그는 ‘일단 저지르고, 직감을 따를 것Just do it and follow your intuition’이라는 그의 신념처럼 자유분방하고 직관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다양한 기법과 소재를 적용한 프로젝트를 선보여 왔다. 그럼에도 바터리히트처럼 로세가르데의 작품을 설명할 때 반드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빛’이다. 그의 전작들을 살펴보면, 아무런 조명이 없는 도로를 달리는 야간 주행 차를 위한 녹색 빛의 ‘글로잉 라인스Glowing Lines’, 자동차의 움직임에 반응해 빛이 나는 조명을 설치한 ‘스마트 하이웨이Smart Highway’, 오래된 암스테르담 중앙역의 전면부를 무지갯빛 디스플레이로 새롭게 단장한 ‘레인보우 스테이션Rainbow Station’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세련된 빛의 예술을 선보이고 있다. 로세가르데는 자신의 작업을 ‘시적 테크놀로지technopoetry’라 부르며,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단순히 예쁜공간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고 말한다. 최첨단 기술의 적용과 인식의 변화라는 두 가지 요소 사이를 오가는 작품을 선보이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가 ‘2015년 네덜란드 100대 친환경 리더’의 5위권에 오르고, 『포브스Forbes』가 발표한 ‘창조적 변화를 이끄는 100대인사’에 선정되기도 한 데에는 디자인을 통해 사회적 공헌과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목표 의식이 있다. 그렇다면 이 푸른빛의 양탄자는 어떨까? 대지 예술, 그 이상의 메시지 이번 프로젝트에서 파트너십을 구성한 라인 강과 에이설 강을 관리하는 수자원협회의 헤인 피에페르Hein Pieper 회장은 작년 발간된 OECD 리포트를 언급하며, “네덜란드의 제방 설계와 시공 능력의 수준은 세계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그래서인지 네덜란드 해안가를 둘러싼 제방 너머의 물이 갖고 있는 파괴적인 힘을 인지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며 이번 프로젝트가 단순한 대지 예술로서 기획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바닷물을 막고 있는 제방에는 문제가 없다. 국민의 인식 부족이 이러한 홍수 예방 문제에 있어 가장 큰 적”이라며 사람들에게 네덜란드의 상당 부분이 해수면 아래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피부로 느끼게 하고 이러한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물에 잠긴 도시를 경험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단했으며, 바터리히트는 5월 초 이 프로젝트의 국가적 파급력을 눈여겨 본 ING 그룹과 라인 박물관Rijnmuseum의 후원을 받아 암스테르담 박물관 광장Museumplein Amsterdam에 설치되기도 했다. 피에페르 회장은 “물의 예술(제방)에 대한 관리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 중요할 수도 있다”며 이번 프로젝트가 갖는 의의를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랐다. 사람들이 하루 동안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정보의 80%이상이 이미지 기반의 시각적인 효과에서 비롯된다고한다. 우주쇼에 등장한 여러 행성과의 눈 마주침이 천문학적 지식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것처럼, 바터리히트는 수천만 원 규모의 광고나 인터넷 배너보다 이러한 직간접적 경험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 양다빈 / 2015년06월 / 326
  • [시네마 스케이프] 버드맨 기대되는 과정의 미덕
    서울역 고가 현상설계 프레젠테이션 당일 새벽, 최종 발표 자료와 함께 제출할 모델을 마무리 중이다. 한편에서는 모델 사진 촬영을 위해 조명 세팅이 한창이다. 새로 만들 건물과 기존 건물을 어떻게 구분하여 표현할지, 나무는 철사로 만들지 아니면 이쑤시개로 만들지 시험하고 있다. 메이플로 제작된 베이스는 무게도 엄청날 뿐더러 크기도 3m가 넘어서 어떻게 운반할지도 걱정거리였다. 24시간 영업하는 분식집에서 사온 떡볶이를 안주 삼아 맥주를 한 잔 걸치니 지난 몇 달간의 작업이 몇 시간 후면 끝난다는 설렘에 곧 다가올 긴장도 잠시 잊게 되었다. “설마 비 오는 건 아니겠지”라고 누군가 우스갯소리를 한 것 같은데 아침이 되자 거짓말처럼 비가 왔다. 부랴부랴 덮개가 있는 용달차로 변경하고 계획보다 한 시간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고정해서 이동시키기 힘든 고가와 건축물 모델을 미리 포장해서 시청에 먼저 도착했다. 심사장 주변에 화물용 엘리베이터로 올라올 모델 운반 동선을 파악하고 마무리 작업할 공간을 확보해 두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모델이 도착했고 막내 스태프는 칼과 본드가 든주사기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찰나에 오래전 잠원동에서 족구하던 막내 시절이 생각났다. 담배 연기로 자욱한 사무실에서 밤새도록 연필 가루와 본드 냄새에 빠져 지내면서 서른 살이 되기 전에 각혈하며 장렬하게 전사할 것 같아 불안하던 시절이었다. 동기들은 ‘조경’하고 있는데 나는 왜 여기서 칼과 본드를 들고 스티로폼을 자르고 창문틀이나 붙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후로 징그럽게 오랜 시간동안 ‘조경’하며 살게 될지 그 짧았던 시절에는 몰랐다. 이제 심사장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여러명이 힘을 모아 육중한 모델을 옮긴다. 드디어 그동안 들인 노력에 대해 평가 받는 시간이 되었다. 결과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 과정이 중요하다는 판에 박힌 표현이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 과연 적합할까? 누구나 인정받기 원하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고 싶지 않은가.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 한국조경사회, 다수공급자계약제도 세미나 상생의 길은 무엇일까
    지난 5월 14일 한국조경사회(회장 황용득)는 ‘조경시설물 디자인 침해 및 다수공급자계약 세미나’를 푸르지오밸리에서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디자인권 보호와 침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를 만들고, ‘다수공급자계약제도’의 탄력적 운영에 관해 조경계 각 부문의 의견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조달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다수공급자계약제도’에 관해서는 설계·시공·자재 등 각 부문의 입장과 개별 기업의 상황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진다. 건강한 조경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세 부문이 고르게 생존·성장해야하며, 이를 위해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이번 세미나 참여자들의 공통적 의견이다. 종합토론 시간 플로어에서는 이러한 논의를 토론회로 끝내지 말고 향후 위원회를 구성해서 실행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견도 개진되었다. 본지는 문제의식을 폭넓게 공유하기 위해 이번 세미나에서 다뤄진 ‘다수공급자계약제도’와관련된 내용을 지면에 옮긴다. MAS의 이해 발표 김성환 조달청 쇼핑몰기획과 사무관 다수공급자계약제도MAS란? 다수공급자계약제도Multiple Award Schedule(이하 MAS)란“공공기관의 다양한 수요 충족을 위해 품질ㆍ성능ㆍ효율 등이 같거나 유사한 물품을 2인 이상의 공급자와 계약하는 제도”를 말한다. 쉽게 말해 공공기관을 위한 온라인 쇼핑몰이다. 수요기관은 민간 온라인 쇼핑몰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나라장터 쇼핑몰을 통해 직접 물품을 선택해 구매한다. 제도 시행 초기에는 TV, 냉장고, 컴퓨터 등 민간에서도 흔히 거래되는 상용 제품 위주로 계약이 체결되어 있었는 데, 최근에는 조경시설물 등으로 그 대상 범위가 확대되는 추세다. 계약 대상의 기본 요건은 ‘상용화’ 및 ‘경쟁성’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품질 요건을 충족하는 물품이어야 한다. 일례로 조경시설물 중 퍼걸러는 계약 업체가 100여 개로 상당히 많은 업체의 제품이 등재되어 있다. 어떤 품목을 새롭게 MAS에 등재하려면 신규 계약 공고를 내는데, 연간 거래 실적이 3천만 원 이상인 기업이 3개사 이상이 있고, 공통 상용 규격 및 시험 기준이 존재하는 물품을 대상으로 한다. 상용 규격은 대개 단체표준을 따르는데, 만약 없다면 조달청에서 정한 규격이 있는 품목을 그 대상으로 한다. 표준 규격이 없는 경우는, 경쟁이 어렵기 때문에 수의계약과 비슷한 형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달청에서는 납품실적이나 경영 상태 등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자를 대상으로 가격 협상을 통해 연중 단가 계약을 체결한다. MAS의 특징은 공급자 중심의 단일 기업이 조달하는 방식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다수 업체에서 조달받는 방식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조달물자의 다양화로 수요기관의 선택권이 확대된다는 장점이 있다. 일정 금액미만의 경우 수요기관이 바로 납품을 요구하게 되지만, 일정 금액 이상이면 7개사가 경쟁해 평가한 뒤 납품을 요구하게 된다. 조달 업체에는 일정한 요건(신용평가등급 B- 이상, 납품실적 3건 이상)을 충족하는 경우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일정한 요건이란 가격, 품질, 기술인증 등 기본적인 수준의 조건이며, 그 수준을 완화하는 중이므로 좀더 많은 업체의 참여가 가능해질 것이다. 조달 업체에 진입한 후에도 계약 이행 과정에서 다양한 방법(가격인하, 할인행사, 2단계 경쟁 등)으로 경쟁이 실시된다. 조달청은 MAS를 확대하기 위해 작년 신규 물품을 크게 확대했으며, 앞으로 품목을 계속 늘려갈 예정이다. 2014년 기준 5,568개의 업체와 계약을 맺었는데, 이 가운데 중소기업이 98%를 차지한다. 2단계 경쟁 제도 MAS 2단계 경쟁은 중소기업의 물품의 경우 1억 원 이상은 의무적으로, 5천만 원 이상 1억 원 미만은 선택적으로 이루어진다(대기업 물품의 경우 5천만 원 이상부터 의무적으로 적용된다). 수요기관이 5개 대상 업체를 선정하면 종합쇼핑몰시스템이 추가 2인을 제안요청 대상자로 자동선정하게 된다. 대상 업체의 제안서 평가 기준은 가격, 적기납품, 품질검사 등이다(종합평가 또는 표준평가를 활용). 조달 업체가 제안서를 제출할 때 제안가격은 제안요청 시점의 쇼핑몰 계약단가 이하로 가능하다. 단 중소기업간 경쟁물품은 계약가격의 90%까지만 허용하는 가격 하한선이 있다(즉, 현재 계약단가의 10% 초과 인하 불가).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은 때는 쇼핑몰 계약가격을 제안한 것으로 간주된다. 조달청과 계약을 하는 순간, 납품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제안요청 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다. 만약 납품업체로 선정되었는데 납품을 하지못하면 계약불이행이 되어 제약이 가해진다. 따라서 2년간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계약관리 측면에서 신경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2015년 주요 제도 개선 내용 MAS와 계약을 맺기 위해서는 적격성평가 신청 시 납품실적, 원산지 표시 등의 서류를 잘 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종종 단체 표준이 없는 경우 규격서가 세밀하게 작성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주의해야 한다. 2015년 제도를 개선하면서 그간 많은 민원이 제기되었던 납품실적 제출 요건이 완화되었다. 사회적 약자 기업에 대한 납품실적이 3건에서 2건으로 완화되었고, 재계약에 대한 납품실적 인정기간이 2년에서 3년으로 확대되었다. 더불어 공공기관 납품실적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MAS 업무처리규정을 개정하면서(2015년 3월 1일 시행) 계약가격 비교시스템을 구축해 우대가격(민간 거래 가격과 동일하거나 낮은 가격) 위반을 시스템으로 자동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위반할 경우 거래정지나 환수를 진행하게 된다.
    • 김정은 / 2015년06월 / 326
  •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파리, 혁명 전야
    #48 오 샹젤리제 - 앙투안 와토 바다 물거품에서 솟아오른 비너스가 육지에 첫 발을 디딘 곳은 펠로폰네소스의 키테라Cythera 섬이었다. 프랑스 로코코 화가 앙투안 와토Antoine Watteau (1684~1721)는 ‘키테라 섬으로 가는 길’ 혹은 ‘키테라 섬의 순례’ 등의 제목으로 비슷한 그림을 세 번 그렸다. 포구에 정박한 배와 배를 타고 순례를 떠나려는 듯 여행복을 입고 지팡이를 든 남녀를 그린 것이다. 첫 번째 그림은 초기작이었던 까닭에 인물들의 동작이 다소 경직되어 있다. 미술사적으로 보면 나중에 그린 원숙한 그림들이 훨씬 흥미롭겠지만 조경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바로 이 첫 번째 그림에 관심이 간다. 그림의 배경에 희미하게 보이는 구조물 때문이다. 이 구조물은 실존하는 것으로 파리 센 강변에 있는 생 클루Saint Cloud 정원의 캐스케이드 난간이다.1 문제는 그림의 해석이다. 그림을 보는 사람은 ‘그림 속 인물들이 배를 타고 멀리 그리스의 키테라 섬으로 순례를 가려나 보다’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센 강을 건너서 맞은편의 생 클루 정원으로 가려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비너스의 섬 키테라는 ‘사랑의 섬’이라고도 불린다. 파리 역시 사랑의 도시인데 파리를 키테라 섬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굳이 그리스까지 갈 필요가 있나. 강 건너 아름다운 생 클루 정원으로 가면 되는 것을. 그림 속 인물들이 실제로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소위 사랑의 정원으로 일컬어지는 곳이 목적지이니 여행자체가 사랑을 찾아가는 길에 대한 비유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현실도 아니고 상상의 세계도 아닌, 단순하게 연극 무대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키테라 섬의 순례’라는 연극의 한 장면을 그린 것일 수도 있다. 인물들의 화려한 여행 의상이 그런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다. 오히려 무대 의상에 더 어울린다. 이렇게 모호한 그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까닭은 당시 사회를 들뜨게 했던 연극과 연회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17세기는 유럽 연극의 중심지가 이탈리아에서 파리로 옮겨간 시대이기도 했다. 과시욕이 무척 강했던 무대 체질의 루이 14세에 의해 연극이 크게 번성 했다. 그는 대단한 연출가이기도 했다. 궁정 생활 자체가 연극이 되어 갔다. 아침에 기침하는 순간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일거수일투족, 대화 하나 하나가 각본에 의해 움직였다. 베르사유 궁과 정원은 궁정 생활이라는 연극을 종일 공연하는 거대한 무대였다. 앙투안 와토는 바로 이런 루이 14세 시대를 살았던 화가였다. 와토의 삶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다. 작품처럼 신비한 인물이었다. 그는 네덜란드 국경 지방의 발랑시엔 출신이었다. 내성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으로 사람들 속에 섞여 살지 못했으므로 다른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고 그 덕에 현실과 연극, 가면과 얼굴 사이에 큰 차이가 없음을 간파했다. 18세에 활동을 시작하여 만 35세에 결핵으로 숨을 거둘 때까지 불과 15년 남짓 작품 활동을 했으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새로운 장르를 창출해냈다. 1717년, 와토는 파리의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등록하기 위해 그림을 한 점 제출했다. 그것이 ‘키테라 섬의 순례’ 시리즈 중 두 번째 그림이었다. 첫 번째 그림이 너무 연극 무대 같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왕립 아카데미에서 요구하는 형식에 맞추어 다시 그렸다. 그럼에도 심사위원들은 이 출중한 그림을 어느 분과에 소속시켜야 할지 판단을 하지 못했다. 역사화도 아니고 전쟁화도 아니며 신화를 소재로 한 것도 아닌데 다가 초상화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다고 풍경화로 분류하기에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았다. 논의 끝에 ‘품격 있는 야외 연회를 그린 그림fête galante’이라고 정의내렸고 이것이 새로운 장르로 확립되어 갔다. 이 그림을 연회 장면으로 해석한 것은 그림 속 등장인물 대부분이 제목과는 달리 배 타러 온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선착장에서 떨어져 남녀 한 쌍씩 짝을 지어 풀밭에 눕거나 앉아 있는데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포즈가 아니다. 오히려 야외에서 벌어지는 연회 장면을 연상시킨다. 물론 그림 왼쪽에서 배에 올라타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어딘가 행선지를 향해 떠난다기보다는 물놀이를 하려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돛대 주변을 분주히 날아다니는 큐피드와 어린 천사들, 그리고 오른쪽에 서 있는 비너스 동상은 굳이 사랑을 찾아 먼 곳으로 떠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곳이 바로 사랑의 섬인 것이다. 사랑의 연회는 이미 시작되었다. 앙투안 와토의 ‘품격 있는 야유회’ 작품 중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그림이 또 한 점 있다. 1719년경에 그린 샹젤리제Champs-Élysées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샹젤리제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명품 상점이 즐비한 파리의 대로를 떠올리게되지만 실은 그 길 양쪽으로 펼쳐져 있는 샹젤리제 정원을 말하는 것이다. 샹젤리제는 엘리시안의 들Elysian Field, 즉 그리스 사람들이 사후에 가는 극락이다. 그러니 샹젤리제 정원은 파리 사람들의 지상 낙원일 것이다. 이 샹젤리제 정원 역시 루이 14세의 조경가 앙드레 르 노트르André Le Nôtre(1613~1700)가 1667년에 디자인한 것이다. 원래 농경지였던 곳인데 튈르리 정원의 축을 연장하여 넓은 가로수 길을 내고 길 양쪽에 숲을 만들었다. 가로수 길에는 느릅나무를 두 줄로 심고 길이 끝나는 곳을 원형 광장으로 마무리했다. 이 광장이 지금은 열두 개의 도로가 방사형으로 모이는 원형 교차로가 되었으며 가로수 길 역시 폭도 넓어지고 길이도 연장되어 지금의 샹젤리제 거리가 되었다. 샹젤리제의 숲은 바로크의 원칙에 따라 질서 정연한 격자형으로 조림되었고 숲 한가운데에 긴 육각형의 공터를 만들어이를 샹젤리제라 불렀다. 비록 격자형으로 나무를 심었다고는 하지만 나무 사이의 공간이 넉넉하므로 세월이 흐르면서 숲 속에 수많은 사각형의 공간이 형성되었다. 여기에 파리지엔들이 모여들어 품격 있게 야외 연회를 즐겼다. 앙투안 와토의 그림은 바로 이런 장면을 포착한 것이다. 여인들의 비단옷, 등을 보이고 있는 신사의 한 쪽 어깨에 걸친망토와 실크 스타킹, 이들의 우아한 포즈와 토실하게 살이 오른 아이들로 미루어 보아 상류층의 야유회임에 틀림이 없다. 높은 대 위에 잠들어 있는 여신상이 장면의 한가로움을 더욱 강조해 준다. 그런데 나무가 자라고 있는 양상을 보면 격자형의 질서가 많이 흐트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물론 사실과 다르다. 앙투안 와토가 화가적 재량을 발휘하여 르 노트르의 디자인을 ‘수정’한 것이다. 그것이 우아한 야유회의 분위기에 더 적합하다 여겼을 것이다. 그로부터 약 오십 여년 후, 이 그림을 보고 지금의 우리처럼 “어, 여기가 샹젤리제야”했던 인물이 있었다. 클로드앙리 와틀레Claude-Henri Watelet(1718~1786)라는 재력가 겸 미술 수집가였다. 그는 와토의 그림을 보며 이런 식으로 르 노트르의 질서를 약간 흩트리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라 여겼다. 그의 책상 위에는 루소의 저서, 영국의 훼이틀리와 챔버스 등이 발간한 정원 책이 쌓여 있었다. 센 강변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그는 수년 전부터 그곳에 정원을 조성하면서 계속 아이디어를 모으는 중이었다. 챔버스의 중국풍 영국 정원이라는 것에 관심을 두고 중국식 목교도 만들어 세웠으며 훼이틀리가 제안한 방식대로 장식 농장을 만들기 위해 물레방아, 낙농장, 양봉장 등 농업과 관계된 스타파주를 넣었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풍경을 만들고자 하니, 바로크의 후예로서 자연을 그대로 모방하는 데 거부감이 느껴졌다. 이 때 앙투안 와토의 그림이 해답을 주는 듯했다. 정형적 원칙을 그대로 둔 채 조금만 어지럽힌다면 적절한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파리의 풍경화식 정원은 이렇게 조심스럽게 시작되었으며,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사랑과 놀이와 아름다움을 담고자 했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고정희[email protected] /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 2015년06월 /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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