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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걷고 싶은 도시, 질주의 도시
    난폭 운전자가 본 보행 친화 도시 15년 전, 처음 자동차 주행 연습에 나선 날이었다. 차에 동승한 베테랑 강사는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내 안에 잠재된 난폭 운전자의 자질을 발견하고야 만다. 이와 함께 방어 운전이 중요하며 한국에서는 특히 오토바이를 조심하라는 진심 어린 조언도 해 주었다. 늘 이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아서인지 아직 난폭 운전의 유혹에 마음이 흔들린 적은 없지만, 문득 ‘잠재적 난폭 운전자’의 눈으로 본 현대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특히 이들이 보기에 보행 친화적인 도시는 대단히 억압적이고 불편한 장소가 아닐까? 최근 조사에서 미국 도시 중 가장 좋은 보행 환경을 가진도시 3위로 선정된 보스턴이 적절한 예다.1 잠재적 난폭 운전자에게 보스턴은 아주 불편한 장소다(그림1). 우선 차선의 폭이 통상 10피트(약 3m)로 국내 3.2~3.5m 기준보다 좁고, 차선 우측에 있는 자전거 도로와 그 옆의 가로 주차 공간에 출입하는 자전거와 저속 주행 차량에 대해 늘 신경을 써야 한다. 더욱이 도심에서는 무단 횡단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좁은 폭의 일방통행로가 많아서 고속 주행 자체가 어렵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격자형 가로망이 드물어 방향감각을 잃기 쉽고, 주차 요금이 비싸기도 하거니와 빈 공간의 주차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만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 대부분의 미숙한 운전자—여기서의 미숙함은 운전 경력과는 관계가 없다—는 거의 예외 없이 자가 운전자가 된 지 얼마지나지 않아 주차 위반 고지서나 견인 통지서를 받는다. 잠재적 난폭 운전자에게 보행 친화 도시는 곧 무덤이다. 도로는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난폭 운전이 결코 바람직한 행태는 아니므로 보행 친화 도시에 대한 이와 같은 불편함은 응당 감수해야 할 몫이다. 그럼에도 이 대목이 흥미로운 이유는 보행자, 혹은 최단 경로를 따라서 가로를 자유롭게 횡단하려는 사람jaywalker과 자동차 운전자, 특히 고속 주행을 즐기는 조이 라이더joyrider 사이에 종종 갈등 관계가 형성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난폭 운전자에게 보행 친화 도시가 불편한 것처럼 보행자에게 자동차 중심 도시는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다양한 계획 기법을 통해 보행성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동차 의존도가 높은 근·현대 도시에 대한 비판은 이미 20세기 초에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버지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Virginia 피터 노튼Peter D. Norton 교수에 따르면 적어도 미국에서는 이미 1910~1920년대 이후 ‘돼지 같은 난폭 운전자road hog’나 ‘미친 속도광speed demon’ 같은 용어가 보행자 안전을 위협하는 운전자를 비난할 때 널리 쓰이게 되었다.2 같은 시기 보행 중 교통사고 사건을 다루는 법정에서는 대체로 보행권을 옹호하는 판결이 우세했으며, 이에 따라 자동차의 속도를 제한하고 운전자를 계몽해야 한다는 주장이 널리 퍼졌다.3 도로라는 공간을 합법적으로 활보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느냐라는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이용자 간의 신경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미국 시카고에서 옐로우 캡Yellow Cab Company이라는 택시 회사를 설립한 헝가리 태생의 사업가 존 헤르츠John Hertz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다. “우리는 자동차의 시대motor age에 살고 있다. … 이에 따른 교육이 필요하며 자동차 시대에 맞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4 여기서 말하는 책임감에는 아마도 보행자의 안전이 중요한 것처럼 운전자가 신속하게 주행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 역시 포함될 것이다. 헤르츠에 따르면 차량의 주행 공간인 차도에 예고 없이 보행자가 걸어 들어오는 것은 범죄 행위이므로 자동차에 대해 일방적으로 속도 제한을 요구하거나 교통사고 발생에 따른 책임을 묻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도시에서 점차 확고해진 자동차의 우월적 지위에 대한 반성과 비판은 지속되었다. 이를테면 1960년대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는 자동차가 다른 저속 이동 수단 모두를 대체해야 한다는 잘못된 이념에 따라 많은 도로가 도시의 시공간을 집어 삼켜버렸다고 표현했다. 이와 함께 그는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그럴듯한 예시를 덧붙인다. “만약 도로에 차가 없다면 보스턴 역사 지구의 인구 모두가 걸어서 한 시간 이내에 보스턴 공원에 모일 수 있다. 만약 모든 사람이 자동차를 이용한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 영영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5 국내에서도 자동차 중심 도시에 대한 비판은 예외가 아니다. 강병기 전 도시연대 대표는 “(현대) 도시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아스팔트 정글로 바뀌었고, 자동차는 정글의 맹수처럼 엄청난 사람을 살상하고 있다. … 자동차라는 문명의 이기는 … (사람을) 소외시키며 왜소하게 만들고 있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했다.6 가해자와 피해자 이처럼 가해자로서의 ‘자동차’와 잠재적 피해자로서의 ‘보행자’ 혹은 ‘도시민’을 대립 구도로 보며 보행 친화 도시로 의 전환을 주장하는 입장은 오늘날 많은 공감대를 얻고 있다. 소위 “보행삼불步行三不의 도시”—보행이 불안(不安)하고, 불편(不便)하며, 불리(不利)하다—라고 일컬어지는 서울의 가로를 한번 관찰해 보자.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 서서 언제 길을 건너야 할지 노심초사 기다리는 노약자, 배달 음식을 싣고 횡단보도를 질주하는 오토바이와 이를 보며 아이에게 선 주행 후 보행의 슬픈 현실을 알려주는 부모는 물론, 프루인John J. Fruin이 제시한7 보행자 인체 타원만큼의 공간은 고사하고 서로 몸을 완전히 밀착한 상태로 달리는 만원 버스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승객을 흔히 목격할 수 있지 않은가.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 김세훈[email protected]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도시설계전공 교수 / 2015년06월 / 326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전문가의 품격
    13 The Buck Stops Here 클라이언트와의 만남 약속 시간보다 30분에서 한 시간 전에 도착해 있다. 차가 막혀서, 내비게이션이 거지 같아서, 길눈이 어두워서, 사무실에 있기 싫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긴 시간이었다, 을로 산 것이…’라는 생각이다. 클라이언트와의 교류 클라이언트(대형 건축설계회사, 회장님, 친구들)는 순수한 영업의 대상인가? 비즈니스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그림이 아닌 술과 골프로 일을 따내야 하나? 그 해답이 이젠 조금 보이는 것 같다. 요즘은 고령화 현상으로 외로운 독거 노인이 많이 생기는 나이 60이 넘어서도 이들과 친구로 지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같이 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공유한 적이 있었으니 친구 되기에 더 쉽지 않을까? 클라이언트의 두 타입: 정신적으로 독립심을 주는 부류와 업무적으로 독립심을 주는 부류 정신적 독립심을 필요로 하는 요구 사항 “드라마틱하고 다이내믹한 그런 거 있잖아요” “뭐랄까…, 싸면서도 임팩트 있고 사람들의 눈을 확 사로잡는 그런 공간” “이 예산으로 10배 아니 100배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어야 전문가 아닌가요” “이걸 내가 할 줄 알고 결정할 줄 알면 왜 전문가한테 맡깁니까” “뭐라고 말씀 드리긴 뭐한데, 그냥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오늘 회의 내용 반영해서 내일 다시 봅시다.” “제가 이런 얘기를 했다고요? 기억이 안 나는데요.” 때려치우고 싶은가? 아니면 그냥 때리고 싶은가? 디자이너라면 흔들리면 안 된다.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선禪에 입문이라도 해야 한다. 인간의 진정한 힘은 관점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데 있지 아니한가. 재빨리 클라이언트로 ‘변신’해서 다시 바라봐야 한다. 클라이언트는 잘 모른다. 우리도 우리가 뭘 하는지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잘 모르는데 클라이언트는 오죽하겠는가.헌데 놀라운 사실은 (솔직히 다 아는 사실이지만) 말이 하나도 안 통하는 외국인도 자기 욕하는 건 느낄 수 있듯이, 일을 잘 모르는 순수한 클라이언트도 우리가 대충하는거 다 안다는 거다.이런 클라이언트는 프로젝트 진행에 따라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마감 시간에 대해 어느 정도 관대해지는 편이다. 자신이 초기에 잘 모르고 한 일에 대해어떤 보상을 하고자 하는 심리가 아닐까? 어쩌면 클라이언트도 디자이너의 관점을 점차 이해하게 되는 것일 수도…. 업무와 관련된 독립심을 필요로 하는 요구 사항 “내가 원하는 결과물의 이미지는 ‘이것’이고 ‘이런’ 분위기가 나왔으면 합니다.” “이 예산 안에서 당신이 만들 수 있는 대안을 보여주십시오.” “당신이 전문가이니까 당신이 알아서 하십시오.” “내가 결정할 것이 무엇입니까” 이런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계획은 명확해진다. 시작과 끝이 있으며, 소위 ‘수정’이 상대적으로 적다.단,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사소한 것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으며 시간에 대해 엄격하다(클라이언트의 관대함은 프로젝트 초기에만 기대하는 것이 좋다. 특히 시간을 엄수하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없다). 이렇게 아주 상반된 두 클라이언트의 공통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쉬운 선택은 클라이언트가 하고, 어려운 선택과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은 디자이너가 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선택이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며 실현 가능한 범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줘야 한다.왜? 책임은 디자이너가 모두 지게 되므로. 디자이너라면 언제나 다음의 문구를 염두에 둬야 한다. “THE BUCK STOPS HERE(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집무실 책상에 쓰여 있는 말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이다).” 14 무너지는 경계 요즘 클라이언트는 도시·조경·건축·인테리어 등 유관 분야를 분야별로 접근한다거나 별도의접촉을 취하지 않는다. 일 자체의 목표에 부합하기 위해서라면 무기(분야)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분야의 구분은 무의미함’을 전제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건축가에게 외부 공간을 의뢰하고, 조경가에게 건축에 대한 조언을 받는다. 그러다 어떤 분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나타나면, “당신의 능력으로 해결해 줘요”라는 주문을 듣게 된다. 여기서 능력은 ‘당신의 인맥을 총동원하고, 가능한 모든 역량으로 주변 분야를 섭렵하여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들어 내라’는 의미다.조경 설계 역시 업무 범위의 스펙트럼이 다양하기 때문에 업무 역량을 일반화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래도 조경 분야와 밀접한 디자인 문제 해결 능력과 함께 인접 분야―도시, 건축, 토목, 인테리어, 친환경기술, 경관―와 코웍collaboration work하는 스킬은 반드시 요구된다. 오형석은 새로운 조경 문화를 고민하던 젊은 조경가 7인과 의기투합해만든 프로젝트 그룹을 기반으로, 2005년도에 디자인로직을 설립했다.만 10년 동안 디자인로직을 이끌며 새로운 외부 환경에 대한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으며, 또 다른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디자인을 갈구하고 있다.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 후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환경조경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서인조경과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LH 조경 부문 자문위원,인천시 도시디자인 자문위원, 코레일 조경 심의위원을 역임했고, 한국도로공사 사옥, 한남더힐 설계공모전에서 당선되었으며, 세종문화회관예술 정원, 호텔 롯데 제주, 용현 SK VIEW 등을 설계했다.
  •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캐서린 구스타프슨 구스타프슨 앤 포터(런던) / 구스타프슨 거스리 니콜(시애틀) 설립자 겸 소장
    오늘날의 조경은 캐서린 구스타프슨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30년이 넘는 실무 경력을 통해 그녀가 현대 도시의 공적 경관에 지난 세기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감수성의 지평을 열었음을 부정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프랑스 쉘 본사Shell Petroleum Headquarters의 물결치듯 아름답게 흘러내리는 조형적 사면은 모든 조경가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그녀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왕성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점토 모델을 이용한 디자인 과정, 원예 전문가와의 협업, 3D 밀링머신 CNC, 바닥 분수, 스크림scrim 사용 등 조경 디자인에 있어서 방법론적 혁신을 주도했다. “하늘로 열린 모든 것은 조경가의 영역The sky is mine. For all landscape architects, anything under the open sky is a landscape architecture issue”이라는 그녀의 강렬한 매니페스토는 그녀야말로 세계 조경을 이끌어갈 실력과 담대함을 가진 리더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한다. 최근 대표작인 워싱턴 D.C.의 스미스소니언 아메리칸아트 뮤지엄 중정이 보여주는 섬세함과 고상함의 깊이는 놀랍다. 1,000명 이상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공간은 완전히 비워졌을 땐 ‘스크림’에 의해 더욱 풍부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스크림이란 마치 투명한 막과 같이 얕은 물을 포장면 위에 흘리는 기법이다. 2000년 뉴욕 자연사 박물관 정원에 처음 도입된 이후,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스미스소니언에서 네 곳에 배치된 0.25인치 깊이의 수막은 공간에 통일적인 느낌을 구축하는 한편, 행사가 있을 때에는 마른 포장면이 되어 복합적인 용도로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신발에 묻은 물이 갤러리 입구에 진입하기 전에 마르도록 거리까지 계산하는 철저함도 보였다. 건물의 역사와 기능을 깊이 연구하고 원예 전문가와 협업해 온실과 같은 공간임에도 난대성 식물이 아니라 워싱턴의 온대성 기후에 어울리는 식물로 공간을 구성해 중정의 성격을 지켜냈다. 아이코닉한 조경 공간을 조성하는 디자이너의 대표 주자로 알려졌으면서도 고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대상지의 특수성과 개성에 부합하는 디자인을 주장하는 구스타프슨은 개념적인 면에서 조경 설계의 앞선 이론을 개척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뉴욕 패션기술대학교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FIT)에서 패션을 전공하고 파리에서 활동했다. 프랑스에서 조경이라는 분야에 눈을 뜬 그녀는 베르사유에서 조경을 공부하고프랑스에서 17년간 설계가로 활동했다. 이후 영국 런던과 미국 시애틀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지금까지 실무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영미권과 프랑스어권 문화와 역사에 두루 해박한 보기 드문 경력을 지녔다. 그녀에 의하면 디자인의 참신함과 신선함은 사회적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할 때 가능하다. 구스타프슨의 디자인에서 언제나 휴먼스케일과 강한 사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Q. 당신과 같이 섬세한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워싱턴 주 야키마Yakima 출신이라는 점이 좀 의외였다. A. 내가 조경가로 전환하기 전 패션 디자이너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종종 나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매끄러운 곡선의 지형을 직물의 결에 비유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패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 작업의 영감은 고향인 야키마의 풍경에서 온 것이다. 그곳의 언덕은 마치 물결치듯 흐르면서 매우 조형적인 형태를 띠는데 나에게 공간을 이해하는 방식을 가르쳐주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고원의 사막에서 자랄 수 있는 식물은 오직 세이지브러쉬 뿐이며 얼마 되지 않는 빗물은 수로망을 통해 모여 관개에 이용된다. 야키마 밸리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과 산지로서, 이 지역은 물을 저장하고 집약적으로 활용하는 데 매우 능숙하다. 나의 작업들이 물을 세심하게 통제하는 것은 야키마의 인공적인 수자원 활용에서 배운 것이며 땅을 하나의 형상form으로 이해하는 방식 또한 고향에서 자라며 습득한 것이다. Q. 당신의 작업에는 ‘기억’이라는 요소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A. 약 10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기억에서 디자인의 영감을 얻어왔다. 기억이란 대상지에 대한 역사를 주조해내며 사람들이 그 장소를 인지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뜻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당신의 부모님장미를 키우는 데 각별한 정이 있었다면, 당신은 장미 화단을 걷거나 장미의 냄새만 맡아도 과거에 일어났던 풍경과 사건들을 회상하게 되고, 그것들이 지금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많은 식물이 그런 역할을 한다. 일례로, 미국 동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례는 단풍나무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 집 주위나 동네를 물들였던 붉고 노란 색의 변화를 기억한다. 그래서 그와 비슷한 조건이 조성되면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낀다. 개인사에서 어떤 변하지 않고 지속하는 것들에 관한 것이다. 영국 런던의 한 정원 프로젝트에서 나는 소위 ‘기억의 식물’이라는 식재 계획을 세웠다. 영국의 평범한 농가에서 흔히볼 수 있는 초화류나 관목들로 구성한 것이다. 그때 이용한 식물은 블루벨bluebells, 수국, 동백 등이다. 할머니와 함께 차를 마시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Q. 패션에서 조경으로 전환한 계기는 무엇인가? A. 나는 베르사유의 프랑스 국립조경학교Ecole Nationale Superieure du Paysage in Versailles를 다녔는 데, 그것은 순전히 학교가 루이 14세의 채소 정원에 있었기 때문이다. 르 노트르Le Nôtre의 걸작 한가운데 있는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였다. 나는 패션 디자인 일을 하면서 조경이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이라는 단어를 말했을 때, 순간적으로 그것이 나의 길임을 직감했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 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전시해 왔다. 저서로 『시티 오브 뉴욕』(공저)이 있다.
    • 최이규 /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지소장 / 2015년06월 / 326
  • [재료와 디테일] 불의 아들, 화강석
    지구는 거대한 돌덩이다. 우리는 어디서든 돌을 볼 수 있다. 돌과 함께 한 인류의 역사는 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석과 돌무덤 등 기념비적 이용부터 시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석조 건조물에 이르기까지 석재 문화는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로마의 판테온, 중세의 교회 건축 등 석조 건조물에는 그 시대와 민족의 생활 양식과 풍토가 표현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불교문화의 산물인 신라의 석굴암과 다보탑, 백제의 미륵사지 석탑 등이 있다. 석재 기술은 기념비를 넘어서 일반 서민의 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맷돌 등 일상 생활에 필요한 도구에서부터 돌확, 석등 등 정원 점경물과 교량의 상판과 기둥, 화단의 마감벽 등 구조재를 포함해 그 종류가 다양하다. 서양 문화의 수입과 경제 발전을 겪으며 이러한 장식재로서의 쓰임이 더욱 본격화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석재의 대부분을 이루는 화강석의 강도가 워낙 강해서 실용성이 높다는 점이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강화했을 것이다. 가공이 어렵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근래에는 특유의 장중함과 미려함을 살릴 수 있는 가공 기술의 발달로 인해 석재의 이용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흔하게 볼 수 있던 돌이 고급 재료의 가능성을 보여주게 되면서 구조재 보다는 장식재로 더 많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돌은 그 생성 기원에 따라 화성암, 퇴적암, 변성암,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조경용으로 쓰이는 대표적인 석재는 화성암의 일종인 현무암과 화강암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화강석(화강암)이다. 현무암은 마그마가 땅 위로 분출되거나 지표 부근에서 빠르게 굳어서 생긴 암석인데 반해, 화강암은 땅 속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서서히 굳어져 생긴 암석으로 그 결정 입자가 현무암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고 강도 역시 높다. 또한 문양으로 나타나는 결정 입자의 크기나 모양 또는 구성 물질이 다양하다는 측면도 화강석이 자재로서 갖는 장점이다. 이 화강석을 쓰임에 알맞게 쪼개어 가공하는 방법에는 돌눈에 따라 구멍을 일렬로 파고 쇄기를 박아서 쳐내는 방법과 기계톱으로 얇게 켜내는 방법이 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결의 무늬는 시간을 거스르는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돌 자체가 갖고 있는 생성과정의 유구함이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 이대영[email protected] /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 엘 소장 / 2015년06월 / 326
  • [공간 공감] 석파정
    흥선대원군의 별서로 잘 알려져 있는 석파정石坡亭은 개인 소유의 서울시 유형문화재다. ‘석파정’이라는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거대한 암반 비탈의 자연 경관을 적극적으로 감상 요소로 끌어들인 공간이다. 소재가 석파정이다보니 한국 전통 공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서술로 흐르기 십상이지만, 그러한 관점은 다른 글에서도 많이 볼 수 있으니 자연과 인공 간의 균형감을 중심에 놓고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자연스러움’은 한국의 조경가에게 부여된 의무 같은 덕목이다. 자연 소재를 활용하는 설계 분야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경관이라는 공공재를 다루는 분야이다 보니 억지스러움을 피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간의 자연스러움을 어떤방식으로 구현하고 있을까? ‘자연은 직선을 싫어한다. Nature abhors a straight line’는 명제는 18세기의 한 영국인이 처음으로 제시했지만, 우리 설계 동네의 가이드라인처럼 통용되고 있다. 이 문구는 조금 더 확장되어 자연과 인공, 곡선과 직선의 이분법적 인식에 대한 토론을 생산하기도 하였다. 흥미로운 건 은연중에 곡선이 자연 혹은 자연스러움의 대변인의 지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직선과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곡선이 자연과 밀접하다는 인식은 논리적으로 명쾌하지 않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 다섯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했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 정욱주[email protected] /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2015년06월 / 326
  • 광교신도시 C1블록 Gwanggyo New Town Block C1
    광교신도시는 수원시와 용인시에 걸쳐 조성되는 행정 복합 자족 신도시로, 2018년 경기도청이 입주하면서 도시가 완성될 예정이다. 광교 C1블록은 주상 복합용지로 경기도청 부지와 이웃하고 있으며, 신분당선인 경기도청역(2016년 개통)에 맞닿은 광교신도시의 중심 지역이다. 제일모직은 특화설계와 시공을 통해 호반건설의 세 가지 브랜드인 호반베르디움(아파트), 메트로큐브(오피스텔), 아브뉴프랑(상업 시설)이 복합된 단지에 유럽풍이라는 동일한 이미지를 계획했다. 단지 구조 단지 북쪽에는 호반베르디움 아파트 7개동이 입지하고 있으며, 남쪽에는 스트리트 몰 형태의 아브뉴프랑Avenue France과 메트로큐브Metrocube 오피스텔 2개 동이 위치해 있다. 광교신도시 중심 상업 지구와 경기도청을 연결하는 중심 보행축이 단지의 활력을 도모할뿐만 아니라, 광교산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수류 순환망을 단지 내의 수로와 연못, 벽천으로 연결해 지속가능한 친환경 단지를 형성했다. 호반베르디움 C1블록의 베르디움Vertium은 ‘정원’을 모티브로 아늑한 주거 공간을 조성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로툰다, 정원 소품 및 수경 요소를 활용했고, 식재의 경우 한국적 감성을 녹여 고전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는 전략으로 접근했다. 높은 건물과 좁은 인동 간격 때문에 항상 그늘지는 부분에는 음지에 강한 수목을 심었다. 더불어 암석 정원, 조각 정원, 초화 정원 등 여러 테마의 정원을 도입해 다양한 경관의 주거단지로 계획했다. 로툰다 정원: 베르디움 단지의 가장 중심이 되는 커뮤니티 지역으로, 근린생활시설 전면에서 바라볼 때 시각적 프레임이 되는 공간이다. 로툰다와 무대, 여신상정원 소품, 초화원 등을 통해 유럽 정원의 이미지를 구현하고자 했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잔디 공간에는 대형 팽나무(R120)를 심고 다양한 높이의 주목과 계수나무를 심어 경관성을 높였다. 또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마운딩을 조성하는 등 높낮이를 조율해 한 폭의 회화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했다. 암석 정원 & 초화 정원: 아브뉴프랑과 연결되는 진입부로, 많은 통행이 예상되는 공간이다. 차량 동선 때문에 생긴 녹지섬과 건물에 의해 발생한 음지로 인해 조경 공간 조성에 제한이 컸던 지역이다. 이에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경관석을 활용하고 소나무와 보리수, 화살나무, 초화류를 심어 녹지섬을 암석 정원으로 조성함으로써 건물로 위요된 수직감을 완화했다. 이 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음지 지역에는 초화 정원을 조성해 휴식과 즐거움이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조각 정원: 베르디움 아파트와 옥상 정원이 연계되는 전이 공간은 단지 동쪽 지역의 중심 휴게 공간으로 조성했다. 정원의 배경을 장송, 다간형 청단풍, 배롱나무 및 하부 지피, 관목 식재로 계절감을 부여했으며, 가제보와 봄의 여신상, 토피어리 등을 통해 유럽의 감성을재현했다. 호반베르디움 옥상 정원: 조경 공간이 부족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상가의 옥상을 정원으로 조성했다. 단지 내부에 1개 층 정도의 높이로 3단 화계를 도입하고 소나무, 배롱나무, 산수유나무, 공작단풍 등을 식재해 한국적 경관미를 구현했다. 또한 옥상 정원은 퍼걸러, 앉음벽, 운동 시설, 산책로 등 독립 정원으로 조성해 편의성과 활용도를 더했다. 시공 호반건설 조경시공 제일모직 리조트·건설 부문 건축 및 조경설계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특화설계 제일모직, 더 시스템 랩 건축사사무소(중심상가지역) 위치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광교택지개발지구 C1블록 대지면적 38,570.00m2 조경면적 9,156.52m2 준공 2015 제일모직(구 삼성에버랜드)은 1955년 조경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산업시설, 주거단지, 공공시설, 상업 오피스등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국내 조경의 역사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해 오고 있다. 전문 역량과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최대의 식물 연구소를 비롯해 디자인, 영업, 소재 조달, 시공, 조경 관리 등 조경 사업 관련 전 조직이 구축되어 있어, 외부 공간의 가치를끌어내기 위한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 제일모직 / 제일모직 / 2015년06월 / 326
  • 그린다는 것, 만든다는 것 그 즐거움을 이야기하다
    대담 김용택·이홍선 소장 “조경설계사무소 소장 두 분을 한 자리에 모셨다”라고 썼다가 지웠다가, 다시 썼다. 두 분 모두 설계뿐만 아니라 시공과 관리까지, 마치 원스톱 서비스처럼 제공하고 있어서다. 게다가 별도의 시공팀도 꾸리고 있고, 한 분은 가식장까지 갖고 있다. 사무실 풍경은 다른 설계사무소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두 분의 동선은 사뭇다르다. 특히 현장이 한창 바쁘게 돌아가는 봄부터 가을까지의 동선은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때보다 현장에 있을 때가 더 많고, 나무를 구하러, 새로운 소재를 찾으러 전국을 누빈다. 주말도 따로 없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아침 6시 30분부터 현장이 돌아간다. 그 여파로(?) 이번 대담을 위한 답사도 토요일 오전 7시부터 시작되었다(사실은 개인 정원이다 보니 집 주인의 일정에 맞춰 토요일에 방문했다). 게으른 에디터에겐 꼭두새벽에 가까운 아침 7시에 만난 까닭은 길에서 버리는 시간을 줄여보고자 한 것. 그렇게 분당에서 출발해 가평을 거쳐 판교로, 다시 분당으로 돌아와 대담이 마무리된 시간은 오후 3시. 정원 두 곳을 둘러보고 식사도 하고 대담도 2시간여 진행했지만, 해는 아직도 중천에 떠 있었다. 김용택 소장은 다음날 여주 주택정원에 심어야 할 나무를 사러가야 한다며 대담이 끝나자마나 과천 쪽으로 차를 몰았다. 이른바 ‘디자인-빌드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는 설계사무소 소장의 일과를 엿볼 수 있는 하루였다. 이번 대담은 잡지에 연재되고 있는 ‘공간 공감’이 촉매가 되었다. ‘공간 공감’ 멤버(김아연, 김용택, 박승진, 이홍선, 정욱주)들의 답사를 몇 차례 따라간 적이 있는데, 두 분의 설계관이 비슷한 듯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미묘한 ‘차이와 다름’의 실체가 궁금해진 것이다. 회사 설립 이후, 설계한 곳을 직접 시공하는 원칙을 지켜나가는 공통점도 있어서 대담자로 적격이었다. 특히 김용택 소장은 정영선 대표의 조경설계 서안에서 10년을, 이홍선 소장은 이교원 대표의 이원조경에서 18년을 근무하고 독립한 점도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이원조경과조경설계 서안에서의 경험이 지금과 같은 시스템의 디자인 오피스를 만들게 된 가장 큰 원인이었을 터. 더구나 이교원·정영선 대표는 인구에 회자되는 뚜렷한 작품을 남긴 조경가이니 만큼 그에 얽힌 이야기도 궁금했다.1 담백하다 vs 단단하다 남기준(이하 남): 김용택 소장님이 설계·시공한 가평주택정원(이하 가평)과 이홍선 소장님이 설계·시공한 운중동 주택정원(이하 운중동)을 둘러보았다. 먼저 가평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 그동안 ‘공간 공감’ 답사를 여러 차례 같이 다니셨지만, 서로의 작품을 보신 적은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홍선(이하 이): 건축과 정원의 조화가 돋보였다. 세컨드하우스로서의 장소성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건축 설계도 주변과 잘 어울렸다. 정원을 소개해주시면서 김 소장님이 ‘설렁설렁 했다’고 하셨는데, 꽉 채우려하지 않고 절제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담백하고 공간감이 좋은 정원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과하게 채우려 했다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됐을 것이다. 여러 디테일에서 여백이 느껴지도록 한 점이 경관을 확장시킨 효과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식재 패턴이다. 컬러나 높이, 질감의 조화가 좋고, 무엇보다 심플한 점이 매력적이다. 남: 장점만 이야기하는 것은 반칙이다. (웃음) 아쉬웠던 점은 없었나? 이: 주차장과 주택 사이에 꽤 단차가 있는데,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동선에서 (건축가의 의도도 있었겠지만) 자작나무가 심긴 화단 때문에 약간의 중압감이 느껴졌다. 그 부분을 좀 감추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리고, 아쉬운 점은 아니지만 나와 스타일이 좀 다르다고 느낀 곳은 건축 전면부다. 만약 내가 설계했다면, 건축 매스가 작은 편이 아니니까 건물 앞에 나무를 대서 좀 가렸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단풍나무나 산딸나무, 벚나무 등 의 교목이 적절히 자리 잡고 있지만, 좀 더 적극적인 제스처를 썼을 것 같다. 물론 건축가들은 굉장히 싫어하는 경우가 많은데, 꼭 나무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들 때면 설득을 한다. 김용택(이하 김): 건축가들과 작업 할 때, 미리 조심하는 부분도 있다. 건축가가 좋아할만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전체 공간의 조화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작은 디테일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성향 탓이 더 클 것이다. 좀 더 돋보이고강하게 연출하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작업을 하다보면 늘 줄이게 된다. 이: 그래서인지, 건축과의 호흡이 좋아 보인다. 예를 들어, 노출 콘크리트 가벽이 정원에서 오브제 역할도 해주고 적절히 외부를 가려주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건축 설계가 정원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느낌도 든다. 건축가와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는지가 궁금하다. 김: 가평 정원을 함께 한 건축가 같은 경우, 첫 프로젝트는 꽤 힘들었다. 건축가는 별 말이 없었는데, 직원들이 미리 걱정을 해서 대안 요구를 상당히 많이 했다. 하지만 첫 번째 결과가 만족스럽게 나온 후로는 전적으로 내게 맡기고 있다. 지금은 건축주만 설득이 되면 내 의견이 거의 반영된다. 그리고 건축가라고 해서 모두가 건축물 앞에 나무 심는 걸 꺼려하는 것도 아니다. 단독 주택에 살고 있는 건축가들은 특히 그렇다. 설계자가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주택에 살아보면, 집 가까이 있는 나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일도 건축가의 집 바로 앞에 나무를 심으러 가야 한다. 이 소장님이 ‘적극적인 제스처’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렇게 프레임을 강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요즘은 많이 든다. 최근에 경기정원박람회나 세종시 푸르지오의 작가정원, 국립수목원 내의 정원 등 공공적인 성격의 정원을 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그에 대한 고민이 더 커졌다. 건축과 별개의 공간에 정원만 자리 잡는 경우인데, 임팩트 있는 디테일이나 프레임이 없으제스처를 썼을 것 같다. 물론 건축가들은 굉장히 싫어하는 경우가 많은데, 꼭 나무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들 때면 설득을 한다. 김용택(이하 김): 건축가들과 작업 할 때, 미리 조심하는 부분도 있다. 건축가가 좋아할만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전체 공간의 조화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작은 디테일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성향 탓이 더 클 것이다. 좀 더 돋보이고강하게 연출하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작업을 하다보면 늘 줄이게 된다. 이: 그래서인지, 건축과의 호흡이 좋아 보인다. 예를 들어, 노출 콘크리트 가벽이 정원에서 오브제 역할도 해주고 적절히 외부를 가려주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건축 설계가 정원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느낌도 든다. 건축가와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는지가 궁금하다. 김: 가평 정원을 함께 한 건축가 같은 경우, 첫 프로젝트는 꽤 힘들었다. 건축가는 별 말이 없었는데, 직원들이 미리 걱정을 해서 대안 요구를 상당히 많이 했다. 하지만 첫 번째 결과가 만족스럽게 나온 후로는 전적으로 내게 맡기고 있다. 지금은 건축주만 설득이 되면 내 의견이 거의 반영된다. 그리고 건축가라고 해서 모두가 건축물 앞에 나무 심는 걸 꺼려하는 것도 아니다. 단독 주택에 살고 있는 건축가들은 특히 그렇다. 설계자가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주택에 살아보면, 집 가까이 있는 나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일도 건축가의 집 바로 앞에 나무를 심으러 가야 한다. 이 소장님이 ‘적극적인 제스처’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렇게 프레임을 강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요즘은 많이 든다. 최근에 경기정원박람회나 세종시 푸르지오의 작가정원, 국립수목원 내의 정원 등 공공적인 성격의 정원을 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그에 대한 고민이 더 커졌다. 건축과 별개의 공간에 정원만 자리 잡는 경우인데, 임팩트 있는 디테일이나 프레임이 없으면 영 모양이 나오지 않는다. 건축적인 요소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다. 또 그동안 상당히 많은 정원을 디자인했는데, 대부분 비슷한 패턴으로 하다보니까 내 정원이 스스로 식상해지기도 했다. 이 소장님은 건축을 전공하셔서 그런지 나와는 스타일이 꽤 달라 보인다. 이: 반대로 내가 만드는 정원에는 잔잔한 터치가 부족한 점이 항상 아쉽다. 다양한 요소를 활용한 연출 방식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김 소장님과 작품을 함께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 느슨하고 비어보이지만, 소재와 물성의 믹스가 자연스럽고 거기서 나오는 공간감이 좋다. 가평 정원을 보면서 부족한 점을 많이 배웠다.
    • 남기준 / 2015년06월 / 326
  • 운중동 주택정원
    이곳은 판교 운중동에 위치한 34세대로 이루어진 타운하우스 중 한 세대다. 모든 설계가 그러하겠지만 특히 나 정원에서는 주변 환경이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 타운하우스는 단지 전체를 금토산이 감싸고 있지만 각 세대 건축물의 육중한 매스가 앞과 뒤,옆으로 가지런하게 배치되어 있어 시원하게 트인 공간감이 없고 활용할 만한 경관도 부족하다. 이 세대 역시 정원 전면을 앞집의 거대한 매스가 벽처럼 막고 있다. 그나마 동측 면이 조금이나마 금토산과 닿아 있어 정원과 산의 시각적인 연계가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클라이언트 또한 산과 바로 맞닿아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세대를 구입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정원설계의 주요 개념은 금토산과의 시각적 연계와 숲과 같은 밀도 있는 연출을 통해 앞집의 벽면을 가리는 것이 되었다. 후정에 해당하는 본 정원은 거실 전면의 출입창과 연결된, 옆으로 길다란 형태의 공간이며, 건물 옆면을 따라 주 출입구와 이어지는 좁은 통로가 있다. 클라이언트와 정원에 대한 생각을 나누며 부부가 정원에 대해 매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낙엽이 뒹구는 자연스럽고 운치 있는 분위기를 선호하고 텃밭을 가꾸는 것을 좋아했는데, 아내는 디자인을 전공해서 그런지 정원도 매우 세련되고 깔끔하게 정돈된 스타일을 원했다. 이러한 클라이언트 부부의 성향과 길쭉한 공간의 형태를 고려하여 정원의 중앙에 넓은 잔디 마당을 두고 양측에 서로 상반되는 분위기를 가진 두 개의 테라스를 만들었다. 조경설계·시공 factory L 위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대지면적 492m2 조경면적 237m2 이홍선은 건축을 전공하고 조경 분야에 입문했다. 새로운 공간 인식을 바탕으로 건축과 조경이 어우러진 공간창출을 시도해 왔으며, 디자인과 시공을 연계하여 작품을 실제로 구현하는 데 가치를 두고 있다. 이원조경에서 오랜 기간 실무 경력을 쌓은 후 독립하여 factory L을 창립하였다. 홍익대학교 건축학부에서 ‘조경 및 환경디자인’을 강의하였으며, 현재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에서 ‘정원 및 외부공간 설계스튜디오’를 맡고 있다.factory L은 2006년 설립 이래 SK 판교 아펠바움, SK논현 아펠바움, 용인 보정동 루시드 에비뉴, 국순당 사원동, 용인 아란유치원, 오뚜기 게스트 하우스, 카페 안도(ANDO), 목동 SBS 등 다양한 유형과 스케일의 외부공간을 조성해 왔다. 설계, 시공, 관리를 함께 진행하여한 장의 그림에 그치지 않는 완성도 높은 실제 공간을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가평 주택정원
    두 친구의 집 건축가의 소개로 가평의 한 마을에 자리한 두 집의 정원을 동시에 설계하게 되었다. 두 집의 건축주는 친구사이로 한 건축가와 같이 집을 짓고 있었다. 건축주들은 서울에서 사업을 하며 거주하고 있으면서 가평에 세컨드 하우스 개념으로 집을 지었다. 그러나 두 건축주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한 사람은 완벽한 조건을 갖춘 주택을 원했고, 다른 한 사람은 건물의 규모도 작게 하고 정원도 기본 골격만 갖춘 채 조금씩 만들어 가는 개념을 선호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정원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어, 나름 공부도 하며 이상적인 정원의 모습을 꿈꾸고 있었다. 조금씩 건축주들과 의견을 조율하며 정원을 만들어 갔다. 정원이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자 누구보다 행복해 하는 건축주들 덕분에 나 역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정원 일의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한 프로젝트였다. 한 건축주는 프로젝트 시작 전에 정원에 심고 싶은 식물 리스트를 준비해서 보여줄 정도로 열성이었고, 또 다른 건축주도 별도의 농장을 가꾸며 여러 가지 식물을 직접 재배하고 있는 중이었다. 해외 정원 책자를 보여주며 이런 스타일의 정원을 원한다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만큼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건축 이미지와의 조화를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다소의 조정 과정을 거쳤다.전원 주택은 기본적으로 입지가 가장 중요하다. 좋은 풍광을 가지고 있으면 정원에 많은 공을 들이지 않아도 훌륭한 정원을 연출할 수 있다. 두 집 모두 주변 경관이 훌륭했다. 특히 멀리 보이는 산세의 실루엣이 매력적이 었다. 윗집은 드라마틱했고 아랫집은 평온했다. 가평 윗집 조경설계·시공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 건축설계 경영위치 건축사사무소 대지면적 1,095m2 조경면적 418.71m2 가평 아랫집 조경설계·시공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 건축설계 경영위치 건축사사무소 대지면적 965m2 조경면적 335.94m2 김용택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환경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조경설계 서안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2001년부터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부암동 반계별서와 평창동 정원 등 정원 작업을 주로 하고 있으며, 조경 작품이 주변 환경에 동화되도록 장소의 특성에서 얻은 모티브를 구체화하는방식으로 설계를 하고 있다.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는 다양한 유형의정원과 공원, 각종 건축 옥외공간을 조성해 왔다. 설계에만 그치지 않고공사와 감리까지, 설계된 모든 부지를 실제로 조성하는 것을 원칙으로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양수리 주택을 시작으로 다수의 주택 정원과한국 정원, 치료 정원, 주제 정원 등을 조성하였고, 공원 조성 및 마을만들기 등 공공 영역의 조경 프로젝트도 수행하였다. 생태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풍경 만들기를 추구하고 있다.
    • 김용택 /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 / 2015년06월 / 326
  • 우에야스 아르테스 Huellas Artes
    산티아고의 중심지인 우에야스 아르테스Huellas Artes에 흩뿌려진 화려한 색조의 향연은 사람들의 발자국을 산티아고 시의 예술적 궤적으로 탈바꿈시켰다. 시민과 관광객들은 산티아고 다운타운의 활력 있는 문화 지구인 베야스 아르테스Bellas Artes 지하철역을 끊임없이 스쳐 지나가며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우에야스 아르테스는 바로 이러한 인파를 바탕으로 가동되는 문화적 엔진이자 완전히 개방된 외부 공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하기 위한 매개 공간이다. 이 프로젝트는 특별한 기능이 없던 지하철역 광장에서 추진되었다. 지하철역으로 끊임없이 몰려드는 인파 속에서 광장을 다양한 행위를 유도하는 일종의 촉매로 재생시키는 것이프로젝트의 핵심 아이디어였다. 프로젝트에 사용된 재료는 폴리에틸렌으로 코팅된 다양한 크기와 색상의 면 테이프밖에 없다. 이 재료는 의복, 즉 이미 존재하던 공간 위에 덮이며 주어진 구조의 새로운 공간적 가능성을 열어 보이는 광장의 옷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새로 제시된 공간에는 셀카 월selfie wall과 예술가를 위한 곳이 있고 노점 자리, 화살표, 벤치 등 다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 만남의 지점들이 있다. Design 100architects Client Metro Cultura Santiago Location Merced Rd. Mosqueto Rd. Santiago, Chile Area 744m2 Completion 2014. 5. 22. Photographs Ines Subtil(subtilography.com) 100아키텍츠(100architects)는 2013년 중국 상하이에 설립된 건축도시설계사무소로 마르시알 헤수스(Marcial Jesus), 마달레나 살레스(Madalena Sales), 파블로 후이카(Pablo Juica)가 공동 대표로 있다. 현재는 상하이와 칠레의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가로 설계와 도시적 개입에 중점을 둔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으며 사람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역동적 공공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디자인과 리서치 중심의 실무를 넘어 완공된 프로젝트에서 벌어지는 활동을 촬영하고 이를 온라인 방송 시스템을 통해 공유하며 아이디어를 나누는 활동도 하고 있다.
    • 100architects / 100architects / 2015년06월 /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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