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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캐서린 구스타프슨
구스타프슨 앤 포터(런던) / 구스타프슨 거스리 니콜(시애틀) 설립자 겸 소장
  • 최이규
  • 환경과조경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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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조경은 캐서린 구스타프슨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30년이 넘는 실무 경력을 통해 그녀가 현대 도시의 공적 경관에 지난 세기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감수성의 지평을 열었음을 부정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프랑스 쉘 본사Shell Petroleum Headquarters의 물결치듯 아름답게 흘러내리는 조형적 사면은 모든 조경가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그녀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왕성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점토 모델을 이용한 디자인 과정, 원예 전문가와의 협업, 3D 밀링머신 CNC, 바닥 분수, 스크림scrim 사용 등 조경 디자인에 있어서 방법론적 혁신을 주도했다. “하늘로 열린 모든 것은 조경가의 영역The sky is mine. For all landscape architects, anything under the open sky is a landscape architecture issue”이라는 그녀의 강렬한 매니페스토는 그녀야말로 세계 조경을 이끌어갈 실력과 담대함을 가진 리더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한다.

최근 대표작인 워싱턴 D.C.의 스미스소니언 아메리칸아트 뮤지엄 중정이 보여주는 섬세함과 고상함의 깊이는 놀랍다. 1,000명 이상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공간은 완전히 비워졌을 땐 ‘스크림’에 의해 더욱 풍부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스크림이란 마치 투명한 막과 같이 얕은 물을 포장면 위에 흘리는 기법이다. 2000년 뉴욕 자연사 박물관 정원에 처음 도입된 이후,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스미스소니언에서 네 곳에 배치된 0.25인치 깊이의 수막은 공간에 통일적인 느낌을 구축하는 한편, 행사가 있을 때에는 마른 포장면이 되어 복합적인 용도로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신발에 묻은 물이 갤러리 입구에 진입하기 전에 마르도록 거리까지 계산하는 철저함도 보였다. 건물의 역사와 기능을 깊이 연구하고 원예 전문가와 협업해 온실과 같은 공간임에도 난대성 식물이 아니라 워싱턴의 온대성 기후에 어울리는 식물로 공간을 구성해 중정의 성격을 지켜냈다.

아이코닉한 조경 공간을 조성하는 디자이너의 대표 주자로 알려졌으면서도 고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대상지의 특수성과 개성에 부합하는 디자인을 주장하는 구스타프슨은 개념적인 면에서 조경 설계의 앞선 이론을 개척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뉴욕 패션기술대학교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FIT)에서 패션을 전공하고 파리에서 활동했다. 프랑스에서 조경이라는 분야에 눈을 뜬 그녀는 베르사유에서 조경을 공부하고 프랑스에서 17년간 설계가로 활동했다. 이후 영국 런던과 미국 시애틀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지금까지 실무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영미권과 프랑스어권 문화와 역사에 두루 해박한 보기 드문 경력을 지녔다. 그녀에 의하면 디자인의 참신함과 신선함은 사회적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할 때 가능하다. 구스타프슨의 디자인에서 언제나 휴먼스케일과 강한 사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Q. 당신과 같이 섬세한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워싱턴 주 야키마Yakima 출신이라는 점이 좀 의외였다. 


A. 내가 조경가로 전환하기 전 패션 디자이너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종종 나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매끄러운 곡선의 지형을 직물의 결에 비유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패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 작업의 영감은 고향인 야키마의 풍경에서 온 것이다. 그곳의 언덕은 마치 물결치듯 흐르면서 매우 조형적인 형태를 띠는데 나에게 공간을 이해하는 방식을 가르쳐주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고원의 사막에서 자랄 수 있는 식물은 오직 세이지브러쉬 뿐이며 얼마 되지 않는 빗물은 수로망을 통해 모여 관개에 이용된다. 야키마 밸리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과 산지로서, 이 지역은 물을 저장하고 집약적으로 활용하는 데 매우 능숙하다. 나의 작업들이 물을 세심하게 통제하는 것은 야키마의 인공적인 수자원 활용에서 배운 것이며 땅을 하나의 형상form으로 이해하는 방식 또한 고향에서 자라며 습득한 것이다.


Q. 당신의 작업에는 ‘기억’이라는 요소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A. 약 10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기억에서 디자인의 영감을 얻어왔다. 기억이란 대상지에 대한 역사를 주조해내며 사람들이 그 장소를 인지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뜻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당신의 부모님장미를 키우는 데 각별한 정이 있었다면, 당신은 장미 화단을 걷거나 장미의 냄새만 맡아도 과거에 일어났던 풍경과 사건들을 회상하게 되고, 그것들이 지금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많은 식물이 그런 역할을 한다. 일례로, 미국 동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례는 단풍나무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 집 주위나 동네를 물들였던 붉고 노란 색의 변화를 기억한다. 그래서 그와 비슷한 조건이 조성되면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낀다. 개인사에서 어떤 변하지 않고 지속하는 것들에 관한 것이다. 영국 런던의 한 정원 프로젝트에서 나는 소위 ‘기억의 식물’이라는 식재 계획을 세웠다. 영국의 평범한 농가에서 흔히볼 수 있는 초화류나 관목들로 구성한 것이다. 그때 이용한 식물은 블루벨bluebells, 수국, 동백 등이다. 할머니와 함께 차를 마시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Q. 패션에서 조경으로 전환한 계기는 무엇인가?


A. 나는 베르사유의 프랑스 국립조경학교Ecole Nationale Superieure du Paysage in Versailles를 다녔는 데, 그것은 순전히 학교가 루이 14세의 채소 정원에 있었기 때문이다. 르 노트르Le Nôtre의 걸작 한가운데 있는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였다. 나는 패션 디자인 일을 하면서 조경이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이라는 단어를 말했을 때, 순간적으로 그것이 나의 길임을 직감했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 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 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 전시해 왔다. 저서로 『시티 오브 뉴욕』(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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