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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공간과 커뮤니케이션
  • 환경과조경 2003년 11월
연극 커뮤니케이션과 공간의 이중성 연극은, 작가(또는 연출자)가 관객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예술이다. 또한 이렇게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들도 등장인물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성립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연극은 등장인물들 사이의 ‘허구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작가와 관객 사이의 ‘사실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는 ‘이중적 커뮤니케이션’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극의 이러한 이중성은, 연극의 모든 요소들이 이중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연극의 공간도 예외는 아니어서, 연극에는 작가와 관객이 위치하는 ‘사실 공간’과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허구 공간’ 이라는 두 공간이 존재한다. ‘사실 공간’이 배우, 무대 장치, 오브제 등 실제적인 신체나 사물들이 위치하는 공간이라고 한다면, ‘허구 공간’은 바로 이 실제적인 신체나 사물들의 ‘기호 작용’에 의해 생산되는 공간이다. 사실 공간 - 무대술적 공간 사실 공간을 공식적인 용어로는 무대술적 공간이라 칭하는데, 이는 극장·무대장치·오브제들이 다른 기능은 하지 않고, 그 차체로서만 기능함으로써 구축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두 장소, 즉 ‘상연이 일어나는 장소’와 이 상연을 관람하기 위하여 ‘관객이 위치하는 장소’를 포함한다. 이 두 장소는 극장의 고유한 건축 양식과 규모라는 외형적인 측면에 의해 많은 부분 지배를 받는 불변의 공간이다. 극장의 건축 양식은 일반적으로 무대의 형태에 따라 원형무대(arena stage), 돌출무대(thrust stage), 프로시니엄무대(proscenium stage), 변형무대(flexible stage)로 나뉘는 것을 말한다. 극장의 규모는 주로 객석의 수를 기준으로 판단되지만 더 정확히는 무대의 크기, 천장의 높이, 무대와 객석의 비율, 조명을 위한 전력 용량 등을 통해 파악된다. 극장의 기능은 우선 최초로 관객과의 만남의 형태를 결정(잠정적인)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무대 건축양식에 따라, 원형무대는 제의(또는 의식)적 특성이 강했던 초기 연극의 무대 형태로 배우와 관객이 구분되지 않는 만남이 가능했던 개방된 공간이다. 돌출무대는 제의적인 성격이 없지는 않으나 그러한 성격은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대신 극적인 측면이 대두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면 등장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와 이를 보는 관객의 구분이 생기고, 제의성 보다는 축제성이 강한 고대 그리이스?로마시대의 무대 형태이다. 프로시니엄 무대는 연극에서 제의적인 성격은 거의 사라지고 극적인 측면이 강조되면서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가 구분된 만남, 다시 말해 완전히 차단된(또는 보호된) 거리를 가지고 연극을 관람하는 근대 미학적 만남이 가능한 무대이다. 예술의 전당의 ‘자유소극장과 같은 변형무대는 제의성을 다시 찾으려는 현대에 각광 받기 시작한 무대로, 제의적 만남뿐만 아니라 근대 미학적 만남이 모두 가능한 무대이다. 이처럼 극장은 만남의 형태를 어느 정도 결정을 한다.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공연하는 작품의 성격에 따라 또 공연이 진행되면서 이런 만남의 형태는 바뀔 수 있다. 한편 극장은 연극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역사와 사회상 - 극장이 건축된 시대, 극장과 주변 환경과의 관계 등 - 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예를들어 18세기 프랑스에서 각 지방 도시마다 건축된 극장과 오페라는 당시에 이미 경제권을 거의 장악한 부르주아 계급의 대두를 반영하고 있고, 남산 국립극장의 건설은 당시 공연예술 분야에 있어서 우위성을 확보하기 위한 남북간의 대립적이고 경쟁적인 정세를 반영한다. 또 극장은 이런 시대적 반영과 함께, 그 극장이 역사적으로 어떤 작품들을 상연하였고, 어떤 전통을 고수하고 있으며, 주로 어떤 경향의 작품들을 기획하여 상연하고 있는지에 따라 구축된 내적 이미지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극장의 내적 이미지는 크던 적던 간에 작품에 대한 관객의 ‘기대치’를 형성하는 것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건축가에 의해 만들어진 극장이 불변적인 공간이라면, 연출가?무대디자이너에 의해 만들어진 무대장치와 오브제는 매 작품마다 달라지는 가변적인 공간이다. 무대장치와 오브제는 공연 작품에 대한 연출의 해석에 의거하여 구체적인 만남의 형태를 결정짓는 기능을 한다. 예를들어 프로세니엄 무대라 할지라도 무대장치를 어떻게 하고, 오브제를 어떻게 사용하며, 조명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환상주의 연극이 자각적인 연극으로 될 수도 있고, 그와 아울러 관객과의 만남의 형태도 바뀌게 된다. 전형적인 프로세니엄 무대인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 피콜로 극단(Picolo Theatro di Milano)의 ?두 주인을 섬기는 아를레끼노?. Goldoni작, Streler 연출, 1999년 10월 8-11일. 에서는 객석을 완전히 소등하지 않고, 무대의 후면과 전면을 천막으로 꾸미며, 극행동의 장소가 변할 때마다 관객이 보는 앞에서 오브제들을 옮겨 놓는 등의 방법으로, 닫힌 프로세니엄 극장에서의 공연을 마치 열린 장터에서의 공연 형태로 변형시켰다. 그래서 관객과의 만남의 형태도 보여지는 자와 보는 자의 관계가 아니라 직접 서로 교통하는 관계로 바뀌었다. 무대술적 공간은 이처럼 관객과의 만남의 형태를 결정하는 기능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공간의 구성 요소들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예술적 의미의)에 기초한 순수 미적 기능도 수행한다. 그것은 마치 서예가 글이 가지고 있는 뜻보다는 미적 기능에, 다른 말로 의미생산의 기능보다도 글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더 초점을 맞춘 것과 동일하다. 연극의 관객은 예술의 전당(서울)이나 리슈리외(Richelieu) 혹은 샤이오(Chaillot; 파리) 극장에 들어오면서 건축 자체의 멋에 매료될 수 있고 또 무대장치나 오브제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 사실성, 정교함, 완성도 등으로부터 경탄, 위압감, 그로테스크한 감정 등을 경험할 수 있다. 무대술적 공간은 관객과의 만남의 형태에 영향을 미치고, 작품에 대한 기대치 형성에도 기여를 하며, 건축술이나 무대장치 등으로부터 미적인 효과를 생산하면서, 차후에 수사학적 공간과 함께 연극 작품의 허구적인 이야기와 이 이야기를 통한 함축적인 의미(작품의 주제)의 생산에도 참여하게 된다. 그것은 서예가 우선은 내용보다는 글씨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 글씨의 아름다움을 통해 글이 나타내고자 하는 내용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해짐과 같다. 허구 공간 - 수사학적 공간 연극이 ‘작가와 관객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어떤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 즉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인가(소위 작품의 주제라고 하는)를 소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작가는 어떻게 해야 관객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통해 주제를 전할 수 있을지 고심하게 되고, 그 결과 작품은 수사학적인 성격을 갖게 되는데, 이는 공간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이런 수사학적 성격을 갖는 허구 공간은 무대술적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다른 무엇인가를 지시하는 기능을 수행할 때, 즉 실제로 극장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물들(무대장치, 오브제, 조명 등)이 사물 그 자체(또는 물성)로서의 자신임을 멈추고 ‘기호로 작용(semiosis)’을 시작할 때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극적 공간은 무대 위의 사물들이 1차 기호작용을 통해 구축되는 공간이고, 시적 공간은 2차 기호작용을 통해 구축되는 공간이다. 우선 극적 공간은 사건의 공간적 배경, 즉 그곳이 어떤 장소인지, 실내인지 실외인지, 도회지인지 시골인지, 왕족이나 귀족의 저택인지 아니면 소시민이나 농부의 집인지, 또 상상적 세계인지 현실적 세계인지를 말해준다. 그러면서 동시에 무대장치나 소도구 또는 의상costume(오브제로서의)의 스타일style을 통해 시간적 배경, 즉 그때가 어떤 시대인지, 고대 그리스 시대인지, 엘리자베스 시대인지, 고전 시대인지, 아니면 다가올 미래의 시대인지도 말해준다. 극적 공간은 다시 ①‘잠재적 공간’과 ②‘상연된 공간’으로 나뉜다. 뮈세Musset의 로렌자치오Lorenzaccio의 예를들면, 배경이 되는 피렌체Florence는 실재하는 도시이지만, 잠재적 공간은 작가가 수사학적 효과를 위해 강조하고 변형시킨 장소로서의 피렌체이고, 상연된 공간은 다시 연출가에 의해 재해석되어 무대 위에 구체적으로 구축된 피렌체를 말한다. 이 둘이 일치하기는 거의 힘들다. 후자는 극장 규모, 무대 기술, 제작비 등에 항상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여하튼 사건은 상연된 공간 속에서 어떤 구체성을 갖게되고, 이런 구체성 속에서 배우와 관객은 인식적 감성적 측면 모두에서 생생한 현실감을 가지고 연극에 참여하게 된다. 한편 시적 공간은 극적 공간이 관객의 수준에서 수용될 때, 즉 배우의 신체와 사물이 2차 기호작용을 할 때 구축되는 공간이다. 장 아누이(Jean Anouilh)의 안티고네(Antigone)의 극적 공간은 테베의 왕궁이다. 그런데 이 공간은 여러 계기에 의해 당시의 공간, 말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시(Vichy)정부 수반의 집무실로 인식되는데, 바로 이 공간이 시적 공간이다. 시적 공간은 모든 연극 공간의 함축적 읽기와 관계된다. 극적 공간으로부터 연극 밖의 사회?문화적 세계상(고대 그리이스의 무대공간과 사회상), 등장인물들 사이의 사회적 권력 관계(고전주의 연극에서 무대 상에는 부재하나 항상 모든 사건에 개입하는 국왕), 자아의 심리 영역(공간의 지형학으로부터 종합적 심리 현상) 등이 읽혀지고, 이러한 읽기로부터 다시 연극 작품의 주제로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극적 공간과 시적 공간은 각각 독립된 개별적 공간이 아니라 서로 겹쳐있는 공간이다. 즉 허구 커뮤니케이션과 사실 커뮤니케이션은 모두 동일한 한 공간 안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극적 공간으로부터 시적 공간으로의 이동은 실제 경험이 아니라 인식 과정에 의한 것이며, 이 인식은 작가의 전략적 글쓰기에 의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연극이 이중 커뮤니케이션의 예술이라는 사실은 연극의 모든 기능작용도 이중으로 일어나며, 공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연극 공간은 작가와 관객, 배우의 신체와 무대장치, 사물들이 위치하는 사실 공간과 이 허구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허구 공간으로 나뉜다. 사실 공간을 다른 말로는 무대술적 공간이라고 하는데, 이는 다시 극장과 같은 불변 공간과 이 극장에 무대 장치와 오브제, 배우들의 신체가 채워지면서 구축되는 상연의 공간, 다른 말로 가변 공간으로 나뉜다. 불변 공간은 잠정적이기는 하지만 작가와 관객과의 만남의 형태를 결정하면서 동시에 그 건축물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가변 공간은 그 공간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이 그 자체로 기능할 때 구축되는 공간으로, 미적 효과를 일으키는 기능을 한다. 허구 공간은 사실 공간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이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기호로 작용하기 시작할 때 구축되는 공간이다. 항상 작가는 관객과 가장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할 것을 바라기 때문에, 허구 공간은 또한 수사학적이다. 이 수사학적 공간은 우선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시?공간적인 장소로서 기능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작품의 함축적인 의미(주제)를 발견하게 하는 시적 기능도 수행하는 공간이다. 서 명 수 Seo, Myung Soo ?연극 평론가, 중앙대 불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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