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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로 보는 조경이야기(3): 의미는 차이에서 비롯된다
  • 환경과조경 2010년 2월

작품 읽기의 즐거움
“저 친구 설계 참 잘해”라고 할 때,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 손의 감각이 좋은 것만을 칭하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우리가 막연히 말하는 ‘설계’, 혹은 ‘디자인’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 ‘손’이 하는 창조적 활동을 반추하는, ‘머리’의 이성적인 피드백이 함께 반복되며 여물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과정, 다시 말해 손과 머리가 동시에 뒤엉켜서 같이 그려내는, 물이 산이 되기도 하고 산이 물이 되기도 하는, 지난하면서도 흥분되는 독특한 사유의 과정을 거쳐 설계안을 내어 놓는다. 복잡하고 막연하기만 한 이 디자이너의 고유한 영역, 그 막막함 앞에서 이런 질문을 받기도 한다. 설계 잘하려면 어떻게 해요? 질문자와 똑같은 막막함으로 조언한다. 많이 보고 많이 느껴야지!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는 것, 중요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제대로’ 보느냐이다. 미식가는 허겁지겁 배를 채우는 법이 없다. 음식의 모든 것을‘온’감각을 사용하여 음미한다. 손으로 잡았을 때의 느낌, 입 속에서 퍼지는 재료의 질감, 음식을 씹을때의 치감(齒感)이나 때로는 음식의 온도까지 모든 것이 그 대상에 포함된다. 미식가가 그러한 것처럼, 우리가 다른 이의 작품이라는 ‘성찬’을 읽을 때에는 천천히 두고 두고 곱씹으면서 그 구성요소들 사이에 촘촘히 박혀 있는, 의미의 결들을 찬찬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아! 그러나 아는 만큼 밖에 보지 못한다고 하던가! 아무리 찬찬히 살펴보려 해도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보지를 못한다. 물론 남다른 안목과 연륜으로 본인의 감상을 어렵지 않게 설파할 수 있는 수준 높은 내공의 소유자들도 있겠으나, 모든 이들이 ‘나의 문화유사 답사기’를 써낼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궁여지책으로 단순히 남의 안목을 빌어 작품을 이해하고자 노력하지만 그것은 결국 나의 독해가 아닌, 남의 작품을 남이 읽은 것을 내가 읽어 보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나의 작품 읽기가 독창적인 읽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읽기’는 ‘쓰기’ 위함이다. 디자이너의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역사가도, 비평가도 아닌, 디자이너라면 ‘읽는다’는 행위가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소비’의 행위를 넘어 다시 나의 창작에 의미 있는, ‘생산적 교훈’으로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사유하는 눈’으로 작품을 읽어보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과정에서 맛보게 되는, 형태 요소의 사이사이에 숨겨져 있는 구성의 질서를 스스로의 힘으로 발견할 때 무릎을 치며 감탄하게 되는 기쁨이란 다른 어떤 것에 비할 맛이 아니다.

이를 위해 필자가 취하는 관점에서 작품 읽기의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모든 요소들의 속성들을 분해해 보는 것이다. 지난 연재에서 선유도 공원을 통해 대략 소개한 바와 같다. 질문이라는 형식을 빌어서 요소들을 분해했고, 작가나 상황적 층위를 철저하게 배제하기 위해 형태 요소들의 속성들에 대하여서만 질문을 했다. 구조주의의 핵심 방법인 요소 분해와 연계성은 결국, 이렇게 풀어진 요소들의 속성을 통하여 속성들끼리 의미 있는 관계로 엮어진 실타래, 하나의 계합축(契合軸: 관계들끼리 논리적으로 연합되는 요소 속성들간의 관계선)을 발견하자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의미를 완성하는 매듭, 이른바 ‘구조’가 발견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작가의 의도와 일치할 필요가 없다. 이미 밝혀낸 구조화의 과정만으로 설계시의 유효한 교훈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조로 보는 조경이야기”는 결국은 ‘쓰기 위한 읽기’를 훈련하고자 함에 다름 아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그 중요한 근간을 이루는 두번째의 개념인 ‘차이’로 나타나는 ‘의미’에 관해 설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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