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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 도시농업에 관련된 인문학적 이해
  • 환경과조경 2011년 7월

『환경과 조경』은 창사 29주년을 맞이하여 “조경, 도시농업을 말하다”라는 특집을 꾸리면서, 조경과 도시농업 사이의 쟁점이 무엇인지를 검토하여 조경 분야의 도시농업에 대한 건강한 논의를 활성화하고, 또한 조경 분야뿐만 아니라 도시농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통해 도시농업의 현황과 전망에 대한 열일곱 편의 글을 실을 계획이다. 그런 중에 일종의 총론으로 표제와 같은 글을 청해왔다. 그러면서 도시농업(또는 도시농사)이라는 용어의 개념을 밝힘과 동시에 지금 우리가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 달라고 그 세부 내용의 윤곽도 보내왔다.
문제의 의미심장함이 이해되면서도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요청에 선뜻 나서기가 꺼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학에서도 환경미학이라는 분야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데다가, 최근에『미학자가 본 인문도시』(지식산업사)라는 글모음을 펴낸 것이 빌미가 된 듯도 하여 요청을 피해가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우선 조경을 예술의 일환으로 보고, 이에 따라 도시농업과 이념적으로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을 살핀 다음, 이어서 양자의 통합이 예술과 기술의 재통합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끝으로 그러한 재통합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를 아도르느의 자연사 개념에 비추어 반성적으로 점검해 보고자 한다. 길지 않은 글 속에 이와 같은 내용들이 제대로 담길지 자신이 서진 않지만,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그 윤곽이나마 적어 본다.
 
칸트는 자신의 『판단력 비판』(1790)에서 조원술(造園術)을 “자연 산물의 미적 배치”라고 규정한 바 있는데, 이는 풀, 꽃, 관목(灌木), 수목(樹木), 하천, 구릉, 계곡과 같은 다양성을 가지고 대지를 장식하되 자연과는 다르게 배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그는 온갖 꽃들이 피어있는 화단을 넓은 의미에서 회화에 넣고자 했는데, 이 때 회화는 당시에 널리 퍼진 대로 “아름다운 자연을 모방함으로써 마음에 다른 어떤 것도 줄 수 없는 독특한 쾌를 생산하는 활동”이라는 예술 정의의 기본 성격을 공유한다. 이에 반해 농업(또는 농사)은 자연이 운행하는 순리를 파악하고, 이에 따라 자연을 가꿈으로써 인간 생활에 이익을 가져오는 활동일 수밖에 없다. 근대 미학의 특징은 한, 둘 정도 예외가 없지 않으나, 이처럼 미 곧 쾌를 목표로 하는 관조 활동과 실용적 이익을 추구하는 생산 활동을 서로 조화될 수 없을 정도로 갈라놓은 데 있다. 그로 인해 “예술을 위한 예술”이 마치 예술의 최고 경지인 양 호도하는 경향마저 낳게 되는가 하면, 그에 대한 반발로 예술을 현실적 이익의 관점에서만 보아 급기야는 선동, 선전을 정당화하는 궤변이 출현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예술 공예 운동을 주도한 윌리엄 모리스의 제자이기도 한 도시학자 루이스 멈포드는 그의 『예술과 기술』에서 양자의 재통합을 위기에 처한 현대 문명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으로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조경과 도시농업에 대해서도 유사한 처방이 가능할 수 있다. 사실상 문화를 뜻하는 로마적 표기 kultura는 각종 유럽 언어에서 어원으로 통용되고 있는데, 그 근본이 농사임을 상기해봄직하다. 더구나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현대 생활에서 양자의 재통합을 시도하는 일은 실로 중차대한 의의를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를 위한 모델이 과연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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