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의 시대, 건축의 역할은 무엇인가? 시민과 함께 기후위기를 풀어가는 건축은 어떤 모습일까? 2022년 봄에서 2024년 가을까지, 2년 6개월 동안 제5차 광주폴리의 총감독으로 제기한 질문들이다. ‘순환폴리’의 기치를 내걸며 구현된 네 개 프로젝트는 그 해답을 ‘순환경제’에서 찾았다. 자원의 탐사와 발굴, 연구 개발, 디자인, 공법, 시민 활동 모두 창조적이고 실험적인 순환 과정으로 구현됐다.
지금 세계 곳곳의 크고 작은 기관, 기업, 정부, 연구자, 디자이너가 모든 분야에서 순환의 세계를 향해 매진하고 있다. 건설과 재료 산업의 경우 탈시멘트, 탈플라스틱 아젠다를 중심으로 순환 자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대부분이 실험실의 성과로 한정되어 있다. 순환폴리가 특별한 것은 친환경 자원, 재활용 건축에 대한 탐색이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되는 도시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일상 건축 환경을 이루는 새로운 자재와 공법의 성능을 모니터링해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획이며 순환의 건축이 실용적이고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200년간 선형적인 경제 사회 체제가 지배했다. 에너지, 쓰레기,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대량 생산이 소비를 거쳐 대량 폐기로 직행한다. 환경에 대한 악영향과 관계없이 우리의 의식주는 이윤의 논리로 결정되었다. 환경 파괴와 탄소 배출의 피해를 사회 전체가 떠안았던 시대의 논리다. 그 결과 지구적 스케일에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고 기후변화라는 문명사적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지역 농수산업의 부산물이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는 동안, 같은 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수입하고 산수가 파괴된다.
이런 생산-소비-폐기의 경로가 방대한 산업 체제로 고착되어 “신진대사의 균열”이라는 현대 문명의 위기를 초래했다. 견고하게 굳어진 산업들이 바뀌어야 하기에 순환 체제로의 전환은 연구와 실험, 탐색과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의 시대에는 사물을 만드는 방법, 사물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전환의 과정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듯이 집을 짓는 방식, 도시 공간을 만드는 방식을 바꿔 나가야 한다.
지역의 협업 순환
이런 순환폴리의 정신에 따라 다양한 배경의 건축팀을 선정했다. 영국의 어셈블(Assemble), 벨기에의 BC 아키텍츠(Architects), 남프랑스의 아틀리에 루마(Atelier Luma)로 구성된 팀, 일본의 이토 도요Ito Toyo, 그리고 한국팀은 전진홍과 최윤희가 이끄는 바래, 조남호가 이끄는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 모두 네 개 팀을 선정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재료와 구법에 실험적인 자세로 접근하는 건축가들이다.
* 환경과조경 440호(2024년 12월호) 수록본 일부
배형민은 건축역사가이자 비평가이며 큐레이터다. 생각과 글, 이미지 공간, 설치 등을 엮어 대중과 소통하고 다양한 사람과 협업하는 전시 기획의 재미에 푹 빠져있다. 2008년, 2014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큐레이터로 참여해 2014년에는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 광주디자인 비엔날레 수석 큐레이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협력 감독, 삼성미술관 플라토 초대 큐레이터 등 전시 현장에서 활동해왔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환경대학원에서 학·석사,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다. 『한국건축개념사전』을 공동 저술·편집했고,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The Portfolio and the Diagram)』, 『감각의 단면』, 『아모레퍼시픽의 건축』 등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