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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조경설계사무소 탐구
분주했던 2024년이 저물어간다. 이번 12월호에는 지난 3년간 이어온 기획 지면 ‘어떤 디자인 오피스’의 마지막 편을 싣는다. 2022년 1월호(405호)에 문을 연 ‘어떤 디자인 오피스’는 한 조경설계사무소의 대표작과 근작을 둘러싼 뒷이야기, 사무소 경영과 생활 등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은 지면이었다. 한국 현대 조경의 역사를 이끌어온 중견 설계사무소뿐 아니라 새롭게 부상하며 활발한 작업 성과를 펼치고 있는 설계사무소, 신생 아틀리에형 스튜디오를 포함한 이 기획에 총 34개 설계 조직이 참여했다. 서른네 편의 ‘어떤 디자인 오피스’ 지면이 훗날 2020년대 한국 조경의 지형과 풍경을 탐구할 수 있는 생생한 자료로 쓰이기를 기대한다.
한국 조경사 50주년을 맞았던 2022년에는 조경하다 열음(윤호준)의 첫 편에 이어 안마당더랩(이범수+오현주), 본시구도(이형석), 오픈니스 스튜디오(최재혁), 엘피스케이프(박경의+이윤주), 조경설계 디원(최철호), 얼라이브어스(김태경+강한솔), 안팎(반형진+정주영), 조경그룹 이작(양태진), CAT 조경설계사무소(김성완+김용희), 조경사무소 사람과나무(오화식)의 이야기를 담았다.
2023년에는 바이런(이남진), 스튜디오 테라(김아연+안형주), HEA(백종현),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안계동), 가원조경설계사무소(안세헌), 디자인 엘(박준서), 듀송플레이스(송이슬+김민호), 공간이오(이주은+오태현), 디멘션조경설계사무소(이동화), CA조경기술사사무소(진양교), JWL(정욱주+원종호)이 ‘어떤 디자인 오피스’ 지면을 꾸렸다.
2024년의 문을 연 디자인 오피스는 기술사사무소 예당(오두환)이었다. 이어서 조경설계호원(김호윤), 라이브스케이프(유승종), 조경작업소 울(김연금), 스튜디오일공일(김현민), HLD(이호영+이해인), Lab D+H(최영준), MDL(송민원), 인터조경기술사사무소(김수연), 우리엔디자인펌(강연주), 서도(홍광호)를 지면에 초대했다. ‘어떤 디자인 오피스’의 마지막 편(440호)은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그룹한어소시에이트(박명권) 이야기다.
3년간의 ‘어떤 디자인 오피스’는 34개 조경설계사무소의 작업과 경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정보 전달형 지면이었지만, 더 나아가 한국 조경계의 내면을 관찰하고 기록한 일종의 아카이브이기도 했다. 조경설계에 관심 있는 이에게는 조경설계사무소의 구체적 현황을, 잠재적 클라이언트에게는 후보 조경가 리스트를, 조경가를 꿈꾸는 학생에게는 각 설계사무소 특유의 스타일과 직장 환경을 탐색하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란다.
본지 편집부가 지면에 초대한 설계 회사는 훨씬 더 많았지만, 여러 계기를 통해 이미 잘 알려진 설계사무소 중 일부는 참여를 고사하거나 다른 사무소들에 지면을 양보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어떤 디자인 오피스’에 담지 못한 여러 조경설계사무소의 경영 현황과 대표 작품이 궁금하다면, 『환경과조경』 2019년 7월호(375호)의 특집 ‘2019 대한민국 조경설계사무소 리포트’를 참고할 수 있다. 이 지면에는 총 88개 설계사무소의 현황과 정보를 모은 바 있다.
다시 한 해를 통과한다. 『환경과조경』의 친구가 되어준 독자들과 필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2025년에도 『환경과조경』은 조경 저널리즘의 최전선에서 조경 담론과 문화를 생산하는 역동적 공론장을 꾸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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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감각] Hey DJ play me a song to make me smile(각주 1)
#1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수색역에서 중앙선을 타면 새벽 6시였다. 그 시간에도 앉을 자리가 없어서 한쪽에 선 채로 휴대폰을 꺼냈다. 라디오 앱을 켜고 방송 중 읽지 못한 청취자 문자를 읽는다. ‘새벽 출근을 하며 듣고 있는데 덕분에 힘이 납니다’, ‘제 최애 코너예요’, ‘이번 주말에는 소개해주신 곳으로 꽃구경 다녀올게요.’ 초반에는 지루하다는 평을 받거나 메시지가 몇 통뿐인 날도 있었지만, 댓글 창에는 대체로 반가운 말들이 가득했다. 한아름 선물을 받아가는 기분.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사이 열차는 공덕역에 도착하고, 열차를 가득 메우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방금 전까지 누군가 머물던 자리에 앉아 라디오에 귀를 기울인다. “오늘 어떻게 시작하고 계신가요? 오늘 일단 출발!” DJ의 목소리가 들리면 전철이 지하 구간을 빠져나온다. 창밖으로 건물들이 스쳐가는 동안 노래가 몇 곡 더 흘러나오고, 버드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한강이 보일 때에는 게스트 아나운서가 짤막한 뉴스를 전했다. 노란 큰금계국이 한들거리는 철로를 지난 뒤 내일도 놀러 오라는 클로징 멘트가 들리면 역에 내릴 시간이었다.
#2
작년 11월, 라디오에서 하차했다. 개편은 당연한 일이다. 매년 봄가을이면 수많은 프로그램과 코너가 생기고 사라진다. 그러나 개편이 내 일이 되자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열심히 준비하고 웃으며 진행했던 코너가 개편을 피해가기 어려울 정도로 한참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 이런 생각과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작업실에 늘 틀어두었던 라디오를 치웠다. 그렇게 일 년을 보냈다.
이제 다시 라디오를 꺼내려고 한다.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DJ의 목소리와 여러 프로그램으로 흩어진 PD, 작가님들이 꾸리고 있는 방송이 궁금해서다. 다만 걱정이다. 토도독. 버튼을 돌려 익숙한 주파수에 맞추면 작업실 창가의 빨간 벽돌 건물이 조금씩 뒤로 움직일 것 같다. 꽃이 핀 철도변과 아침의 한강과 건물 숲, 그리고 어두운 지하를 지나 수색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새벽에 가닿을 때까지. 시간이 약이라는 표현은 아무래도 틀린 말인 듯하다.
**각주 정리
1. 제목은 이소라의 노래 ‘신청곡’ 가사에서 가져왔다. “이봐요 디제이, 나를 웃게 해줄 노래를 틀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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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올해의 조경인
제27회 올해의 조경인
심왕섭
환경조경발전재단 이사장
본지는 한 해 동안 조경 분야의 발전에 공헌한 이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8년부터 ‘올해의 조경인’을 발굴·선정해왔다. 올해의 조경인은 홈페이지를 통해 공고 후 이메일, 팩스 등을 통해 독자와 관련 단체, 기관, 업체로부터 후보 추천을 받고, 별도의 ‘올해의 조경인 선정위원회’에서 주요 공적을 토대로 수상자를 선정한다. 학술·산업·정책·특별상 등 4개 부문에서 부문별 1인을 뽑아 총 4인의 올해의 조경인을 선정해왔으며, 2018년부터는 공적을 더욱 뜻깊게 기리고자 단 한 명의 올해의 조경인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꾀했다.
지난 10월 8일부터 11월 4일까지 후보 추천을 받고, 11월 7일 역대 올해의 조경인 수상자로 구성된 ‘올해의 조경인 선정위원회’를 개최해 심왕섭 이사장(환경조경발전재단)을 최종 수상자로 선정했다. 송년호 특집으로 수상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주요 공적과 수상 소감을 들어보았다.진행 편집부 사진 유청오 디자인 팽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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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올해의 조경인] 심왕섭
“조경계에 훌륭한 인재가 많은데, 올해의 조경인 상을 받으니 쑥스러우면서도 책임감을 더 갖게 된다. 공로로 인정 받은 일들은 모두 홀로 이뤄낼 수 없는 일이었다” 심왕섭 이사장은 여섯 개의 조경 단체장과 재단 회원들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수상 소감을 전했다. 2021년부터 환경조경발전재단 이사장으로 부임한 그는 환경부에 국한됐던 환경조경발전재단 주무관청에 국토교통부를 추가해 2개 부처로 확대했다. 2023년 재단이 공식 조경지원센터로 지정된 후 ‘조경수 거래가격 조사공표 방안연구’, ‘2024년 제14회 대한민국 조경대상’ 주관 등 여러 사업을 추진하며 조경 전문 싱크탱크 기반 조성에 이바지했다. ‘조경인 신례교례회’, ‘조경의 날 기념식’, ‘조경지원센터 간담회’를 추진해 조경인의 소통을 도모했다.
환경조경발전재단 주무관청 확대,
적극적인 소통의 기틀을 마련하다
1992년 제29차 세계조경가대회IFLA 이후 장기적 비전과 정교한 계획을 바탕으로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조경의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고, 조경의 사회 기여도가 커지면서 재단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됐다. 조경 산학 여섯 단체(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사회, 한국환경계획조성협회, 대한건설협회 조경위원회, 대한전문건설협회 조경식재·시설물설치공사업 협의회)가 연합해 2004년, 한국 조경이 도약할 수 있는 발판 구축과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환경조경발전재단을 설립했다. 설립 당시 환경부가 재단의 주무관청이었는데, 조경 정책과 사업 확대의 필요성이 커지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22년부터 정관에 국토교통부를 주무관청으로 변경 및 추가하는 일을 추진했다. “조경에서 필요한 대부분 법이 국토교통부 소관이다. 건설산업기본법과 건설기술진흥법에 명시된 조경은 국토교통부에 뿌리박고 있을 뿐 아니라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공원녹지법)과 2015년 제정된 조경진흥법은 국토교통부가 담당한다. 조경 정책과 사업의 확대와 변화에도 불구하고 환경조경발전재단은 환경부 1개 부처만 주무관청으로 두고 있어 한계에 부딪히게 됐다. 이에 비영리법인 관련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고, 법무부의 업무 편람에 적시한 절차에 따라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재단 이사회 의결을 거쳐 환경부와 국토교통부에 정관 변경 허가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다. 검토와 협의의 과정을 통해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2개 부처로부터 정관 변경 허가 승인을 받게 됐다.”
심 이사장은 주무관청 변경을 위해 새로운 재단 법인을 설립할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서류를 준비했고 절차 이행, 심의, 협의까지 6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오랜 시간 준비한 만큼 다양한 사업 진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국토교통부가 재단 주무관청으로 추가된 후 재단과 정부 간의 소통이 이전보다 강화되고 있어 녹색도시과와 직접적인 협력이 늘어나고 있다. 지속적인 소통 덕분에 조경에서 필요한 부분에 대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이뿐 아니라 그는 재단 정관의 목적 및 사업에 공원녹지법, 조경진흥법과 관련된 사업을 추가했다. “공원녹지법과 조경진흥법은 조경 산업 육성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조경 정책 연구, 사업 발굴을 통해 조경의 진흥을 도모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다. 재단 정관에 이와 관련된 사업을 추가함으로써 국토교통부와 긴밀한 소통과 협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이 생겼다. 조경 분야에서 제안하는 건의 사항이나 법률 개정에서 조경의 영역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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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젊은 조경가
제7회젊은 조경가
원종호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 소장
본지는 한국 조경의 내일을 설계하는 젊은 조경가를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과 생각을 널리 알리고자 지난 2018년 ‘젊은 조경가’ 공모를 제정했다. 참가 대상은 만 45세 이하의 조경가로 공모를 통해 선정한다. 본지 홈페이지를 통해 공고 후 10월 8일부터 11월 4일까지 지원서,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를 접수했다. 이를 바탕으로 11월 8일 ‘젊은 조경가 선정위원회’를 개최해 원종호(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 소장)를 ‘제7회 젊은 조경가’로 선정했다. 수상자의 수상 소감과 인터뷰, 설계 철학, 주요 작품 등은 2025년 1월호 특집 지면에서 조명할 예정이다. 진행 편집부 사진 유청오 디자인 팽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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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젊은 조경가] 원종호
원 종 호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 소장
보이지 않는 조경가의
보이지 않는 조경
*『환경과조경』 2025년 1월호에 ‘조경가 원종호’ 특집을 꾸립니다.
원종호는 서울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했다.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와 현대건설에서 설계와 시공 실무를 경험한 뒤 2017년부터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JWL에서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크고 화려하며 눈에 띄는 조경보다는 보이지 않는 조경, 하지 않은 듯한 조경, 원래 있던 듯한 조경을 통해 완성도 높은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조용하지만 묵직하고 내공 있는 조경가로 기억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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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Gwangju Folly Ⅴ, Re:Folly
순환폴리, 연결된 세계의 집 짓기_배형민
순환 자원_편집부
숨쉬는 폴리_조남호
이코한옥_어셈블+BC 아키텍츠+아틀리에 루마
옻칠 집_이토 도요
에어 폴리_바래
광주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조형물을 마주치게 된다. 이 용도를 알 수 없는 작은 건축물은 쓰임새를 다한 뒤 방치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쩌면 이곳에서 내가 모르는 이벤트가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심기도 한다. 무표정한 도시의 평범한 일상 공간에 새로운 이야기를 입히는 이것의 정체는 ‘광주폴리’다.
폴리는 서양의 정원에 짓던 장식용 건축물에서 유래했다. 본래도 비를 피하거나 잠깐 휴식하며 머무르는 정도로 쓰이는 실용성이 없는 공간이었지만,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Bernard Tschumi)가 라빌레트 공원에서 색다른 시도를 하며 폴리는 새로운 역할을 갖게 된다. 추미는 라빌레트 공원 전역에 120m 간격으로 35개의 폴리를 배치했다. 기능과는 무관한 다양한 형태의 폴리는 자율적인 오브제로 배치되어 기존 건축의 형식을 해체했다. 이후 폴리는 실용적이지 않아도 문화·예술적 특성을 지닌 공공 시설물이라는 의미를 획득했고, 세계 곳곳의 도시와 공원에 폴리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광주폴리는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일환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다. 광주폴리 Ⅰ은 역사적 복원을 주제로, 낙후된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2년 뒤, 광주폴리 Ⅱ는 광주비엔날레에서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바뀌었다. 광주폴리는 공공 공간이 가진 공간·정치적 질서를 탐구했고(2013), 새로운 대중성을 만들고자 ‘맛과 멋’이라는 보편적인 개념에 집중했으며(2017), ‘광주다움’을 주제로 광주 톨게이트를 탈바꿈시켰다(2020).
광주 전역에 설치된 30여 개의 폴리는 회색 도시에 다양한 색과 활기를 입힐 것이라 기대됐다. 하지만 쓸모가 불분명한 폴리가 갖는 단점도 있다. 아무도 폴리가 지닌 잠재력을 발굴하려 들지 않으면 폴리는 그저 덩그러니 선 조형물에 불과하게 된다. 방치되어 낡아가는 폴리는 안전문제를 일으키기도 했고 시민 사회와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박양우 대표이사(광주비엔날레)는 “광주폴리는 그간 홍보와 활용 측면보다는 만들어가는 과정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 국제적 주목을 받았고 해외에서 폴리를 보러 찾아오는 사람은 많은 반면, 광주 시민에게는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폴리의 활용도를 높이고 지역 시민이 찾는 명소로 만들기 위해, 제5차 광주폴리의 주제를 정하는 데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 답을 찾고자 배형민 감독(제5차 광주폴리,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은 도시 속 폴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골몰했다. 그는 “누정은 과거 한국의 커뮤니티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예술에 대해 논했고 사회에 대해 깊이 토론했다”며 광주폴리가 한국 전통 건축물인 누정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형태의 누정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가야 할까. 광주폴리는 그 주제로 문명사적 과제인 기후변화를 제시했다. “광주폴리의 쓰임과 기후변화라는 맥락에서 ‘순환’이라는 주제를 떠올렸다. 에너지 절약 차원의 수동적인 제스처가 아니라 자원 차원에서 시작해 건축을 짓는 일 자체에서 순환의 원리를 모색했다.”
순환폴리에서 가장 눈을 끈 건 폴리 조성을 넘어 R&D를 함께 진행했다는 점이다. 디자인, 재료, 공법, 시민 활동을 창조적인 순환 과정으로 구현하는 이번 프로젝트에는 재료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했다. 광주와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다양한 영역의 연구자, 장인, 기업의 협업 시스템을 구축했다. 전문가뿐 아니라 시민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도 진행했다. 배형민은 “광주폴리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프로젝트다. 건축과 공예, 디자인의 미래를 제시했고 시대의 과제에 부응했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의 여정은 광주비엔날레가 펼친 도록 두 권에 담겨 있다. 『자원과 과정』, 『사람과 장소』라는 제목에서 순환폴리가 중요하게 여긴 가치가 무엇인지 읽어낼 수 있다. 그 지난한 발걸음을 모두 담을 순 없지만 도록 내용의 일부를 요약해 소개한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광주비엔날레재단
주최 광주광역시
주관 광주비엔날레재단
총감독 배형민(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건축생산 큐레이터 윤정원(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도시 큐레이터 강동영(건축사사무소 라움 대표), 이영미(집합도시 대표)
공예·디자인 큐레이터 차정욱(아넥스 공동대표)
시민프로그램 큐레이터 이혜원(대진대학교 미술만화게임학부 교수)
미디어 큐레이터 김그린(아넥스 공동대표)
주제 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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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순환폴리, 연결된 세계의 집짓기
기후변화의 시대, 건축의 역할은 무엇인가? 시민과 함께 기후위기를 풀어가는 건축은 어떤 모습일까? 2022년 봄에서 2024년 가을까지, 2년 6개월 동안 제5차 광주폴리의 총감독으로 제기한 질문들이다. ‘순환폴리’의 기치를 내걸며 구현된 네 개 프로젝트는 그 해답을 ‘순환경제’에서 찾았다. 자원의 탐사와 발굴, 연구 개발, 디자인, 공법, 시민 활동 모두 창조적이고 실험적인 순환 과정으로 구현됐다.
지금 세계 곳곳의 크고 작은 기관, 기업, 정부, 연구자, 디자이너가 모든 분야에서 순환의 세계를 향해 매진하고 있다. 건설과 재료 산업의 경우 탈시멘트, 탈플라스틱 아젠다를 중심으로 순환 자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대부분이 실험실의 성과로 한정되어 있다. 순환폴리가 특별한 것은 친환경 자원, 재활용 건축에 대한 탐색이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되는 도시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일상 건축 환경을 이루는 새로운 자재와 공법의 성능을 모니터링해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획이며 순환의 건축이 실용적이고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200년간 선형적인 경제 사회 체제가 지배했다. 에너지, 쓰레기,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대량 생산이 소비를 거쳐 대량 폐기로 직행한다. 환경에 대한 악영향과 관계없이 우리의 의식주는 이윤의 논리로 결정되었다. 환경 파괴와 탄소 배출의 피해를 사회 전체가 떠안았던 시대의 논리다. 그 결과 지구적 스케일에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고 기후변화라는 문명사적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지역 농수산업의 부산물이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는 동안, 같은 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수입하고 산수가 파괴된다.
이런 생산-소비-폐기의 경로가 방대한 산업 체제로 고착되어 “신진대사의 균열”이라는 현대 문명의 위기를 초래했다. 견고하게 굳어진 산업들이 바뀌어야 하기에 순환 체제로의 전환은 연구와 실험, 탐색과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의 시대에는 사물을 만드는 방법, 사물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전환의 과정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듯이 집을 짓는 방식, 도시 공간을 만드는 방식을 바꿔 나가야 한다.
지역의 협업 순환
이런 순환폴리의 정신에 따라 다양한 배경의 건축팀을 선정했다. 영국의 어셈블(Assemble), 벨기에의 BC 아키텍츠(Architects), 남프랑스의 아틀리에 루마(Atelier Luma)로 구성된 팀, 일본의 이토 도요Ito Toyo, 그리고 한국팀은 전진홍과 최윤희가 이끄는 바래, 조남호가 이끄는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 모두 네 개 팀을 선정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재료와 구법에 실험적인 자세로 접근하는 건축가들이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배형민은 건축역사가이자 비평가이며 큐레이터다. 생각과 글, 이미지 공간, 설치 등을 엮어 대중과 소통하고 다양한 사람과 협업하는 전시 기획의 재미에 푹 빠져있다. 2008년, 2014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큐레이터로 참여해 2014년에는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 광주디자인 비엔날레 수석 큐레이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협력 감독, 삼성미술관 플라토 초대 큐레이터 등 전시 현장에서 활동해왔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환경대학원에서 학·석사,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다. 『한국건축개념사전』을 공동 저술·편집했고,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The Portfolio and the Diagram)』, 『감각의 단면』, 『아모레퍼시픽의 건축』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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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순환 자원
Circulation Resource
순환자원지도
순환 자원에는 지역의 자연 자원, 폐자원, 공예 기술 등 인적 자원, 가공 및 제작이 가능한 기업과 연구 시설의 인프라 자원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한국은 유럽이나 미국보다 지역 범위가 국소적일 수밖에 없으며 기술 및 인프라 확보가 지역 안에서만 이루어지기 어렵다. 순환폴리의 지역을 정의하는 데 자연소재 및 폐자원 등은 광주를 중심으로 약 100km 이내 범위, 전남 및 전북 일부를 중심으로 살폈다. 2차 가공 및 건축 재료 공급을 위한 연구 제조 시설은 네트워킹과 협력 의지에 따라 주체들이 설정됐다. 자원은 가능한 한 지역 기반으로 하되 지식, 연구, 디자인 역량은 국내외를 넓게 포섭한다는 것이 순환폴리의 정신이자 방법론이다.
미역
이코한옥과 에어 폴리팀은 호남 일대 답사와 프로젝트 리서치를 하며 미역이란 자원에 주목했다. 완도와 고흥의 해조류 양식장과 가공 공장을 방문해 미역, 다시마, 김의 채취, 가공, 유통 현장을 탐사했고, 이는 해조류를 프로젝트의 주재료로 삼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두 팀 모두 바다에 버려지는 미역 줄기를 수거하는 기업과 협업해 해조류를 원료로 한 바이오 플라스틱, 내장재 패널, 기와 유약, 한지, 미장재를 개발해 폴리에 사용했다.
패각
수산물 중 패각류는 채취, 가공, 유통 과정에서 폐기물이 유난히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패각 재활용은 건강한 땅과 바다를 보호하는 자원 순환의 핵심이다. 패각에서 추출되는 석회는 쓰임새가 다양하다. 지금도 시멘트의 필수 재료로 쓰이지만, 국내에서는 대부분 석회암 산지에서 자연을 훼손하며 생산된다. 서구에서는 고대부터 사용해 온 건축 재료지만, 강한 초기 강도와 반 투수성을 요구하는 현대의 기준에 반한다. 이코한옥팀은 패각류 석회를 벽돌, 미장, 유약 등의 재료로 다양하게 활용했다.
밀
국내산 밀 부산물 재활용에 관심을 두고 지역 생산자와 협업을 도모했다. 하지만 수확 시기에 맞추어 밀 부산물을 수거, 보전할 수 있는 방도를 찾지 못해 밀을 활용한 자재 개발은 무산됐다. 이코한옥팀은 밀 대신 왕겨를 지붕과 벽의 단열재로, 볏단을 벽체 틀로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택했다. 해충이나 부패 방지를 위해 왕겨를 태워 훈탄을 만드는데, 볏짚에 비해 변형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코한옥 조성 시 천연 안료와 배합 촉진제 등 훈탄의 기능적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는 재료 실험을 시도했다.
옻칠
옻칠은 옻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으로 만든 천연 수지다. 중국 대륙과 히말라야 지역, 한반도와 일본이 주요 산지지만, 실용적으로 옻칠을 채취하는 지역은 한정된다. 과거 옻나무가 국내에 산재했으나 현재 국산 옻칠은 원주에서만 채취된다. 국산 옻칠은 문화재 보수 등 극히 한정적인 곳에만 쓰인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현재 고급 옻칠을 포함해 대부분의 옻칠 제품은 중국산과 동남아산 옻칠을 원료로 사용한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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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숨쉬는 폴리
Breathing Folly
지속가능성의 의미
전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기후 재난은 우리의 삶이 근대적 질서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새로운 세계라는 걸 비극적으로 확인해 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코로나19 팬데믹도 근본적인 전환의 한 양상이었다. 역사적으로 전염병은 위기이자 기회였다. 14세기 유럽인들은 서유럽의 흑사병 이후 신을 향한 기도보다 위생 검역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는 신권에서 왕권으로 변화되는 권력 이동의 계기가 됐고, 인본주의 르네상스의 토양이 됐다고 한다. 21세기 인류는 과학, 의학이 발전된 환경에서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에 잘 대처한 듯이 보이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미약하다.
기후변화가 문명사적 위기임에 틀림없지만 기회일 수 있을까. 건축은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탄소 배출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건설 분야에서 ‘지속가능성’은 해묵은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건축의 대응은 생산의 근원을 그대로 둔 채 재생 에너지 기술을 덧대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재생 에너지를 위한 노력을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윤리적 차원을 포함한 건축 생산의 근원적인 변화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입버릇처럼 말하는 지속가능성은 기술적 도구에 의존하는 수단에 머물 수밖에 없다. 단열과 밀폐에 의해 단절된 공간에 에어컨, 열 교환 시스템을 설치한 패시브하우스는 인간을 ‘사이존재’가 아닌 환경과의 교감을 상실한 고립된 객체로 전제하는 것이다.
생태환경미학
숨쉬는 폴리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실천으로 친환경 소재를 활용하고 광주폴리를 하나로 연결하는 의미를 담았다. 외피의 성능과 인상, 공기의 흐름을 만드는 공간의 형태, 설비 시스템 등 그동안 조남호 소장이 다른 프로젝트에서 시도했던 숨쉬는 건축의 형식을 세부 기술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생태환경미학의 건축에 다가가는 하나의 분명한 발걸음이었다. 특히 목재라는 소재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탄소를 저장할 수 있으며 구축되는 시스템에 따라 건축물의 수명이 다한 후에도 계속해서 사용될 수 있어 탄소 배출량이 매우 적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건축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조남호)
친환경 컨설턴트 이병호(한국부동산원)
시공 제작 수피아건축
태양광 패널 고호솔라
위치 광주시 동구 동명동 92-9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는 조남호 대표가 이끄는 건축사사무소다. 역사의 선례로부터 지혜를 얻고, 새로운 건축을 만들어 가는 조직으로서 공동의 지향점과 구성원 각자의 고유성을 존중하는 집단으로 정착해가고 있다. 생태환경미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숨쉬는 폴리를 구상하고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