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은 고립된 섬이 아니다
광주 도심, 버려진 한옥과 동네 마당을 복구해 작지만 특별한 공간을 지역 친환경 자원으로 만들고자 했다. 1965년 지어져 폐가가 된 한옥을 리노베이션했다. 구성 재료의 추출, 가공, 제작 과정에서 세 가지 생태적 원칙을 따랐다. 첫째, 폐기물이나 저평가된 자원을 건축 자재로 사용해 채취, 가공, 사용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한다. 둘째, 토착 지식과 현대 기술을 결합해 저에너지, 저비용으로 품질을 극대화한다. 셋째, 전문 지식, 노동, 자원, 지역의 네트워크 속에서 건축 생산의 역할을 설정한다. 건물은 고립된 섬이 아니다. 어떤 건축물도 그 주변과 지역의 맥락에서 분리될 수 없다. 아무리 신중하게 기획한 프로젝트라도 환경 파괴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옥 리노베이션
너무 낡아 개보수가 불가능한 작은 문간채는 해체했다. 그 잔해에서 다시 쓸 수 있는 요소를 분리해 본채 개보수에 활용했다. 부서진 얇은 콘크리트 포장은 일부 걷어내 식물이 뿌리내릴 수 있는 흙바닥으로 되돌렸다. 각종 폐자재를 재활용해 새 자재의 사용을 줄였다. 지역의 사회적 기업이 입주할 공간과 상시 개방된 정원으로 한옥을 리노베이션했다.
한옥 도편수가 건물 상태를 조사한 결과, 목재가 흰개미 피해로 손상된 것을 발견했다. 지붕, 벽체, 바닥을 우선 걷어내고, 3D 스캔을 기반으로 목재 요소의 크기와 위치를 정확히 파악했다. 낡은 지붕을 걷어내면서 수십 년간 짊어지고 있던 하중이 사라지자 부재들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새 기와를 얹고 적정한 하중을 가해 부재의 수직, 수평을 다시 맞췄다. 취약한 부분을 보강해 한옥 목구조의 안정을 되찾았다.
목구조에 경량 흙 채움 공사를 하고 시멘트로 마감했다. 불규칙한 집의 형태와 전통 기술을 현대적으로 적용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시스템화한 패널 마감재 사용은 지양했다. 지붕 단열재로는 한옥에 흔히 쓰는 흙 혼합물 대신 왕겨를 태워 만든 훈탄을 사용했다. 내외부 벽 마감에 쓴 회반죽은 유럽에서 제작한 샘플과 테스트 패널을 바탕으로 현장과 주변 지역 재료를 활용해 개발한 것이다.
마당과 담
땅을 정리해 아래 흙을 드러낸 뒤, 걷어낸 단단한 포장재는 재사용을 위해 보관했다. 한편의 정원에는 유지·관리가 편하고 회복력이 좋은 식물을 심었다. 시간이 지나면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잘 다듬으면 단정한 정원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화단 가장자리는 부분적으로 수리하고 즉흥적으로 고치기도 했다. 어찌 보면 구멍난 옷을 기우는 작업처럼 보이겠지만 아름다운 방식이었다. 지역의 커뮤니티 공간이 되는 곳이라는 점을 고려해 설계했고, 최소한의 작업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대지와 골목 사이에 새로 세운 담은 한옥과 마당을 에워싸인 느낌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장식적 스크린 역할을 하는 담은 집의 경계를 명확히 하면서도 주변의 단단하고 폐쇄적인 풍경과 대비된다. 담의 재료는 패각 석회와 흙을 혼합해 만든 블록이다.
재료 연구와 개발
한국을 처음 방문한 2022년, 흙 건축, 밀 생산, 시장 상인, 양식 해조류, 전통 옻칠 공예와 관련된 단체와 전문가를 찾고 워크숍을 진행했다. 더불어 지역 산업의 기술과 공예 지식을 결합해 밀짚, 조개껍데기, 건조된 해초 등 지역 자원을 건축 자재로 가공하는 방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패각 석회와 골재 혼합물을 시멘트 블록 제작 기계를 사용해 블록으로 만들고, 열과 압축력만으로 해초 패널을 제작하고, 현장에서 발생한 흙을 전통적인 도자기 타일에 바르는 유약으로 만들었다.
지역 자원 조사, 네트워크 구축, 프로토타이핑(prototyping), 재료 실험을 거쳐 최종 생산과 현장 적용이 이루어졌다. 다양한 배경과 전문 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이 과정을 함께했다. 패각류와 해조류의 경우, 프랑스에서도 재료 연구가 진행됐다. 대륙과 해양을 넘나드는 자재, 학습, 지식 교류로 이코한옥을 완성했다.
2023년 11월 패각류와 폐골재를 배합해 야외 벤치를 만드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기존 창고를 철거하며 나온 콘크리트, 시멘트 벽돌, 기와, 지붕의 흙, 폐목재를 마당 한편에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 워크숍에서 조선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으로 구성된 팀과 함께 콘크리트 덩어리와 시멘트 벽돌을 망치로 깨 골재로 만들었다. 생석회를 일정 시간 물과 반응시켜 만든 핫라임과 모래알 크기로 분쇄한 굴 패각을 혼합했다. 벤치의 판을 만드는 작업은 다짐 흙벽과 유사하게 거푸집에 혼합물을 넣어 손다짐 달구로 다진다. 굴패각과 현장에서 수집한 재료가 문양으로 벤치의 문양처럼 켜켜이 드러났다. 워크숍은 재료 실험이자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했다.
이코한옥의 의미
이코한옥은 전통 지식과 현대 도구를 결합하는 방식의 유용성과 지혜를 보여주면서, 전통 공예 기술로 소규모 유지·보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자원과 물질의 흐름을 지역 산업과 연결해 기존의 풍경, 기계 장치, 인프라를 토대로 새로운 경제 가치를 창출한다. 새로운 기술과 자재가 기성 건축 문화를 어떻게 바꿀지 막연히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건설 산업에 종사해온 사람들이 보유한 기술과 경험을 최대한 활용한다.
실험실(개발)에서 공장(반복)으로, 그리고 현장(최종 실행)에 이르기까지 수평적 지식과 문화 양식, 즉 세심하고 회복 가능한 생태적 생산 방식을 중시했다. 이러한 방법론은 지역의 문화적, 물질적 자원을 깊이 이해하는 여러 협력자에게 의존한다. 공동의 접근과 이해는 작은 프로젝트가 더 큰 가능성을 내포할 수 있게 해주었고, 지역의 산업·생산자·시공자가 수용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냈다. 정리 김모아
순환폴리의 조경
순환폴리에서는 광주폴리 둘레길과 함께 폴리 대상지의 조경설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과거 폴리 프로젝트의 오브젝트적 성격을 넘어, 폴리가 도시 조직의 일부가 되어 시민들에게 활용되게 하고자 함이다. 이를 위해 Vnh와 안팎은 ‘이코한옥’과 ‘옻칠 집’의 조경설계 및 시공, 시민 참여 조경 프로그램의 기획과 운영을 담당했다.
공공의 마당
한옥만의 사적 마당이 아닌 공공의 마당이자 정원을 제공하고자 했다. 버려진 한옥이 단일 입구를 통해 오가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담장의 일부를 터 동네 안쪽의 좁은 골목과 연결함으로써 통과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되어 동네 골목 커뮤니티의 일부가 되었다. 인접한 골목을 걸으면서부터 정원의 식재들을 엿볼 수 있고, 작지만 풍요로운 마당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다. 마당에는 작가와의 협업으로 만든 화덕과 우물이 배치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코한옥의 툇마루에 앉아 조경을 즐기기도 하고, 우물에서 손을 씻는 등 이 공간에 잠시 참여했다 지나간다.
순환 재료 시스템과 디자인
재생과 순환이라는 프로젝트 주제에 어떻게 동조할 수 있을 것인가에서 설계를 시작했다. 이코한옥의 건축은 광주와 호남 지역 등 광역적 순환 자원의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다. Vnh은 조경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대상지 내에서의 순환 재료, 순환 자원 시스템을 구현했다. 이를 통해 대상지의 맥락과 자원의 생명력을 연장하고자 했다.
흔적을 존중하는 디자인: 버려진 한옥의 마당에서 대상지의 시간을 기억하고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는 흔적이 무엇일지 고민했고, 마당 콘크리트 바닥의 일부를 존치하기로 했다. 콘크리트는 오래되어 낡고 얼룩진 질감, 오염, 크고 작은 균열을 갖고 있었다. 틈새로 잡초가 자라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단단한 바닥을 이루고 있어 사람들이 모이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문간방, 화단, 정화조 및 파이프 등 폐한옥을 재건축하며 반드시 철거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격으로 콘크리트는 파손된다. 철거 중 기존 균열을 따라 자연스럽게 깨어진 콘크리트의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마당 중심에 위치한 이 콘크리트는 이코한옥을 방문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밟는 곳이며 새로운 플랫폼이 되었다.
재료의 수집과 새로운 적용: 한옥과 대상지에서 나온 각종 재료를 수집해 새로운 방식으로 배치하고 활용했다. 외부에서 새롭게 반입하는 재료를 최소화했고, 실제로 각 조경 요소를 매개하는 잡석 포장 외에는 새 재료를 도입하지 않았다. 일종의 재활용이자 자급자족의 방식이다.
틈틈이 현장을 탐색하며 활용할 수 있는 재료를 수집했다. 한옥 철거 과정에서 나온 재료에는 바닥 콘크리트와 구들장, 화단의 조경석이 있었다. 구들장은 마당의 디딤석으로 재활용했다. 전통 난방 방식인 구들장에 사용된 판석들은 그 형태와 크기가 디딤석으로 쓰기에 매우 적절했다. 과거 건축 내부에서 마감재 안에 가려져 있던 재료가, 이코한옥에서는 마당으로 옮겨지고 노출되어 사람들이 직접 만질 수 있는 요소로 적용됐다. 화단 경계석으로사용됐던 다양한 크기의 돌은 마당과 골목을 이어주는 계단으로 재탄생했다.
한옥 건축 중 여분으로 남거나 파손되어 사용하지 못한 재료는 기와, 꼬막 패각류, 라임벽돌이 있었다. 독특한 색감과 질감, 곡선의 모듈을 평면적 패턴으로 배치하거나 입면적으로 쌓아올려서 사용했다. 암키와는 마당의 중요 요소인 화덕과 우물을 강조하는 악센트 포장재로 사용했다. 표면에 노출된 기와 단면을 이용해 다양한 패턴 조합을 실험해 결정했다. 기와 패널 사이의 채움재로 꼬막 패각을 썼다. 건축이 개발한 라임벽돌에 사용한 꼬막 패각과 같은 것으로, 파쇄되기 전에 가져와 둥글고 거친 입자와 질감을 느낄 수 있게 활용했다. 또한 기존 담장의 콘크리트 기초 때문에 식재 토심 확보가 어려워 단이 있는 화단을 만들어야 했는데, 상대적으로 반경이 작고 높은 수키와를 쌓아올려 마당의 수직적, 입면적 조경 요소로서 배치했다. 따뜻하고 색다른 색감과 질감을 가진 기와를 다양하게 사용함으로써 조경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구현할 뿐 아니라 건물과의 재료 연계성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코한옥 조경의 설계와 공사에서 가장 큰 특징은 ‘불확실성’이었다. 콘크리트 플랫폼의 형태나 구들장 및 조경석의 형태, 크기, 개수는 책상에서의 예상 도면과 일치하지 않았다. 재료의 양도 한정되어 있었다. 예측해 치수화하기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많기에, 현장에서 다양한 테스트와 시행착오가 이루어졌다. 도면의 형식으로 캐드가 아닌 스케치를 선택한 이유도 이러한 불확실성에 즉각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불확실성은 오히려 설계에 대한 신선한 감각과 역동성을 깨우는 즐거움을 주었다.
시민들의 참여, 조경 식재를 통한 도시재생 워크숍
수집해 재배치한 조경 요소들은 디자인 콘셉트의 특성상 다양한 재료를 마당에 콜라주한 것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이러한 여러 요소를 하나로 아우르는 것이 식재의 역할이다. 키가 큰 사초류에 들꽃 같은 초화류를 더해 자연스러운 색감이 섞인,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정원을 조성하고자 했다. 기존 마당에 동백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는데, 이를 그대로 두어 새로운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요소로 사용했다.
식재는 시민들이 식물을 직접 심고 가꾸며 공간 조성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다. 공공 마당의 역할을 정원 조성의 과정에서부터 부여하고자 대중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2회의 시민 참여 조경 워크숍을 기획해 실행했다.
일반 시민 대상 워크숍의 전반부는 ‘흔적을 통한 조경설계와 도시재생’을 주제로 진행됐다.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폐기물을 활용한 조경 프로젝트와 이코한옥의 조경설계의 목표와 진행 과정을 소개했다. 후반부에는 이코한옥 현장에서 식물 심기 체험을 진행했다.
전문가 대상 워크숍은 근 미래에 조경가로 성장해 지역 조경 문화를 이끌어갈 조경 전공 학생들을 초대했다. 조경 식재에 대한 전문 지식을 교육하고 그 내용을 몸소 체험해볼 수 있도록 식재 현장 실습을 진행했다.
워크숍은 아이 동반 참가자 등 다양한 성격의 시민들에게 지역 사회와 도시재생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내가 함께 만든 공공의 자원’은 시민들의 주인의식을 높이고 프로젝트의 공공성을 확장시켰다.
완공 후 세 달이 지난 지금,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동네 주민들의 소소한 참여의 흔적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지난번에는 우리가 심지 않은 새로운 꽃을 발견했고, 어디선가 무의 씨앗이 날아와 자라고 있다. 이곳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역동적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는 공공의 마당이자 정원이 되기를 기대한다. 글 신다영 진행 김모아 디자인 팽선민
건축과 R&D 어셈블+BC 아키텍츠+아틀리에 루마
R&D 윤정원(건축생산 큐레이터, 서울시립대학교), 김형기(조선대학교 건설재료연구실), 서울시립대학교 TAD Lab
제작 지원 드림라임, 클레이맥스, 고령기와, 세진플러스, 홍익휴먼스
시공과 설계 지원 스튜가하우스+어반소사이어티+송련재+일신공예사+현진건축+한옥사랑
조경 이상훈(전남대학교)+신다영(Vnh)+안팎
공예 김시월공예연구소, 장지방, 가라지가게, 스튜디오 오유경
3D 스캔&모델링 테크캡슐
위치 광주시 동구 동명동 209-106
어셈블(Assemble)은 런던을 기반으로 건축, 예술, 디자인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한다. 기존 자원을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인프라로 활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그에 맞는 조직을 세우기도 한다. 제임스 비닝(James Binning)과 마크 게비건(Mark Gavigan)이 참여했다.
BC 아키텍츠(BC Architects)는 건축, 연구, 재료 혁신의 교차점에서 활동하는 하이브리드 조직으로, 벨기에를 기반으로 지역 자원과 공예를 현대적 설계 관행에 통합하는 데 집중한다. 로렌스 베케만(Laurens Bekemans)과 요한 우베르(Yohann Hubert)가 건축 서사와 설계 실행을 이끌었다.
아틀리에 루마(Atelier LUMA)는 생태 지역적 접근법을 개척한 팀이다. 특정 지역을 구성하는 문화적, 환경적 층위를 조사·분석하고, 디자인을 통해 저평가된 자원에 새 용도를 부여한다. 농부와 건축가, 장인과 대학 실험실 사이를 전에 없던 방식으로 연결하기도 한다. 다니엘 벨(Daniel Bell), 헤나 버니(Henna Burney), 산드라 레부엘타 알베로(Sandra Revuelta Albero)가 함께했다.
Vnh는 현시대와 근 미래에 필요한 도시의 공공 영역과 조경설계를 탐구하는 조경설계사무소다. 뉴욕에서 12년간 필드 오퍼레이션스(Field Operations)에서 도시, 건축, 조경 기반의 폭넓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력을 바탕으로 신다영 대표와 이상훈 디렉터가 2024년에 설립했다. 대규모 도시설계 프로젝트부터 섬세한 디테일을 요구하는 소규모 디자인까지 다양한 작업을 수행한다. 땅 본연이 주는 자원과 영감을 바탕으로 사람을 위한 생기 있는 공간을 디자인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