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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 글로벌 예술섬] 비평: 인간과 자연, 유토피아의 의미를 묻는 노들 예술섬 공모
  • 조순익
  • 환경과조경 2024년 7월

2005년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위해 시작됐던 노들섬 프로젝트는 수차례의 공모와 건설을 거친 뒤 지금에 이르렀다. 이번 공모에서는 국내 건축가 네 팀은 안타까운 고배를 마셨고, 떠오르는 논쟁적인 영국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헤더윅 스튜디오)의 ‘소리 풍경(Soundscape)’이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발주처의 공모 의도와 절차에 대한 의구심부터 당선작에 대한 호불호 논란까지, 그야말로 건축계의 여러 관점을 한꺼번에 엿볼 수 있는 요즘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작년에 헤더윅의 신간 『더 인간적인 건축(Humanize)』을 번역하고 올해 출간을 기다리던 참에 이 공모 결과를 접했고, 궁금한 마음에 너덧 시간에 걸친 공개 심사 영상을 찾아서 봤다. 여러 모로 한국 건축의 현 상황을 잘 보여준 의미 있는 발표회였다. 도시의 아이콘을 만들려는 발주처의 공모 의도가 확실히 공표되었고, 초대된 국내외 건축가들이 취한 접근도 인상적으로 대비되었다. 당선작은 공모의 의도에 가장 부합한 것으로 보이며, 당선작 선정에 관해 심사위원들 간의 이견은 없었다고 언론은 전한다. 하지만 건축계의 온라인 공론장에서는 여전히 당선작에 대한 불호가 상당해 보이고, 국내 건축계의 불황 속에서 용산 일대의 개발주의에 랜드마크 건축을 동원하려는 시 당국의 움직임은 당선작에 대한 불호를 더 부채질하는 느낌이다.


헤더윅의 당선작은 서울시의 아이콘주의에 동원된다는 의심을 피해 갈 수 없지만, 작품 자체는 단순한 아이콘을 넘어 사회적 자연의 매력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단지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대중이 머무를 객석의 용도로 공중 공간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자연과의 조화를 꾀한 안이기 때문이다. 다만 헤더윅의 말대로 구조물을 떠받치는 기둥을 예술가와의 협업으로 얼마나 아름답게 장식할지, 그리고 얼마나 다채롭고 유기적인 조경이 이뤄질지가 관건일 것이다. 구조물과 유리된 채 모래알처럼 분산된 조경과 무표정한 고가도로 하부를 남긴 서울로7017을 재탕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의 실험 정신이 한국에서 얼마나 예산 초과를 하지 않고 제대로 실현될지 지켜볼 일이다. 그에 비해 위르겐 마이어는 구름을 개념으로 하여 전반적으로 더 시적이면서도 무난한 현실감이 느껴지는 매력적인 안을 발표했지만, 헤더윅의 더 극적이고 음악적인 제안에 심사위원단의 맘이 기운 듯하다. 해외 건축가 세 팀 가운데 작년 1차 대시민 포럼에서 발표된 디자인을 비교적 일관되게 유지한 경우는 헤더윅과 비야케 잉겔스(BIG)로 보이는데, 잔물결을 주제로 한 비야케의 안은 상징성이나 시학, 기능, 심지어 발표 면에서도 모두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다.

 

아울러 국내 건축가들의 발표를 보면서 인상적으로 느낀 점 하나는, 노들섬의 윤곽과 둘레길의 유행 때문인지 몰라도 참여한 모든 국내 건축가의 안에서 중정형 회로 개념이 가족유사성처럼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강예린+SoA는 타원형 둘레길 자체가 주된 콘셉트고, 나은중+유소래(네임리스건축사사무소)는 비정형적으로 흘린 산책로를 두었음에도 그 위에 직사각형 회로를 덮었으며, 김찬중(더시스템랩건축사사무소)은 타원형 회로를 복수로 증식시켜 중간 중간 자르고 가지를 친 느낌이다. 신승수(디자인그룹오즈건축사사무소)는 길보다 벽의 객석에 가까워 보이지만 역시 길이 회로처럼 공간을 두르고 있다. 작년 1차 포럼에서는 이런 가족유사성이 발견되지 않았었다. 1년간 무 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공개된 1차 경쟁작들을 보면서 모두 이렇게 유사한 기하학에 이끌리게 된 계기라도 있었던 것일까? 경쟁의 압박 속에서 작위적인 선을 그리지 않겠다는 합리성에 대한 강박이 작동한 것이었을까? 뭐가 됐든 간에 노들섬처럼 그야말로 자연 속에 펼쳐질 공간에서도 자유로운 선을 느끼기 어렵다면, 도시의 격자에 매여 사는 대중은 어디서 인간의 자유로운 선을 느껴야 할까?

 

[크기변환]노들섬_비평-01.jpg
1차 대시민 포럼에서 발표한 노들 글로벌 예술섬 디자인안 (설계자 이름은 설계 지침 내 초청 건축가 기준으로 작성)

 

 

환경과조경 435(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 이 글은 필자가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수정·확장해 쓴 글이다.


조순익은 건축과 도시, 디자인, 비평 분야를 전문으로 작업해온 번역가로, 다수의 단행본과 간행물을 번역했다. 주로 정신 분석과 문화 비평의 관점에서 건축 현상을 해석하는 데 관심이 있으며, 저서로 『보는 기계와 읽는 인간: 건축문화 텍스트 읽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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