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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식물에게] 아름다운 공간을 지키기 위한 고민
  • 박경탁
  • 환경과조경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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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향지와 육향산 하부의 암반 지형의 회복과 함께 바다와 맞닿았을 육향산의 경관에 집중했다. ©신경섭

 

 

사람의 활동과 관계하는 공간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기능이 그 공간에 담겨야만 한다. 하지만 단지 태어났다고 계속 실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공간이 오래도록 세상 속에서 지켜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이유는 그 공간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을 이루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요소는 보이는 것부터 보이지 않는 것까지 꽤 다양하며 식물은 그러한 요소 중 하나다. 조경가로서 다루어야 하는 대상지를 만날 때 계획의 꽤 이른 단계부터 식물을 포함한 포괄적인 공간의 이미지를 구상하곤 한다. 어쩌면 식재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어떤 조경 요소보다도 다양한 관점과 의견이 있을 수 있는 이야기 꾸러미일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나는 많은 프로젝트에서 ‘어떤 식물을 어떻게 식재할까’ 고민했었고 지금까지도 고민해 오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어떻게 식재를 할까’가 아닌 ‘식재를 해야 할까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할까’를 고민하는 순간도 많아졌다. 이 글 첫머리에서의 표현처럼 세상에 태어날 필요가 있는 공간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오래도록 사랑받게 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최소한의 식재만이, 때로는 그것조차 없어야 할 필요가 있다.

 

최소의 식재

작은 가게들이 모여 있는 꽃 시장을 가면 이 집 저 집 비슷해 보인다. 가게마다 분명 서로 다른 식물이 있지만 방문객이 특별한 목적이나 관심이 없다면 대동소이해 보일 것이다. 만약 단일 수종을 통일성 있게 진열해 놓은 가게나, 빈 공간에 하나의 아름다운 식물만 진열한 가게가 있다면 분명 꽃시장 안에서 상대적으로 그 존재가 잘 드러날 것이다.

 

정원박람회에서도 비슷한 스케일인 다수의 작가정원이 인접해서 위치하게 되면, 작품 간의 차별성이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복잡한 박람회 속에서 작가가 전하려는 이야기나 경험의 순간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얼마 되지 않는 공간에 이용/가용 면적과 식재 면적을 모두 움켜잡고 있는 것보다 단순하고 과감한 방법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더 잘 부합할 수 있다. 아무리 작은 스케일의 정원이라지만 하나의 공간을 계획할 때 주변 환경과의 관계는 결정적인 고려 사항이며, 그 관계는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큰 스케일의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극단적으로 미로와 같이 수많은 경험의 연속을 모두 담을 수도 있겠지만, 반대의 극단으로 큰 스케일 전체를 하나의 경험으로 극대화할 수도 있다. 끝없이 펼쳐진 논밭 가운데 있는 큰 땅과 복잡한 도심 속이나 도시의 끝단 클라이맥스에 위치한 큰 땅에서 같은 방법은 서로 다르게 작동한다. 이러한 생각은 2017년부터 7년간 이끌어온 인스파이어 복합 카지노리조트(Inspire Entertainment Resort) 프로젝트에도 담겨 있다. 선택과 집중, 최소의 식재를 통해 사업비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면서 대상지가 가진 스케일과 주변의 자연환경을 최대한 활용했다. 최소의 비용을 수반하는 최소의 식재 그리고 최대의 효과로 작동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어느 발주처나 품고 싶은 아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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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말 개장을 위해 막바지 공사 중인 영종도 인스파이어 복합 카지노리조트 내 언덕 하늘과 맞닿은 도시 끝에서의 경관을 제공하고, 홈트리(Home Tree)를 바라보며 언덕 위로 올라가면 약 1.8km2의 광활한 유수지와 철새들을 만날 수 있다. ©사이트닷

 

 

환경과조경 430(2024년 2월호수록본 일부


박경탁은 사이트닷(SITEDOT)의 공동 대표로, 서울시립대학교와 하버드 GSD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민우건축사사무소, O3SCOPE, SWA 샌프란시스코 오피스 등에서 설계 실무를 했다. 2022년까지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의 소장으로 팀을 이끌다 2023년 사이트닷에 합류했다. 현재 인스파이어 복합 카지노리조트, 하인즈 퀀텀 랜드마크 타워, 힐링 네이처랜드, 용산파크웨이 등의 조경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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