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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낭만
나의 고향은 은모래의 도시였다. 물론 일간지 자동차 지면 광고에 등장할 법한 사막 한가운데에 놓인 도시는 아니다. 다만 은은한 은빛이 감도는 모래사장과 저절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빛이 나는 윤슬이 매력적인 강변이 있던 곳이었다. 동네 친구들과 수풀이 우거진 계곡 바위에 올라 다이빙하고, 잡으면 놓기 싫은 아기의 손바닥과 같이 부드러운 감촉의 모래사장을 누볐다. 특히 젖은 몸을 말리기 위해서 푹신한 은모래사장에 앉아 비 온 후 맑아진 강물과 저물어 가는 해가 만들어 내는 윤슬을 오랫동안 바라본 기억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생생한 여름의 낭만으로 남아있다.
불야성의 도시 서울로 오며 그런 낭만을 잠시 잊고 살았다. 여유를 느낄 새도 없이 또 다른 도시의 삶에 적응하느라 하루가 바쁘게 흘러갔다. 다만 운이 좋게도 서울에서 자리 잡은 터전이 한강과 그리 멀지 않아 한강을 자주 지나다녔다. 한강을 자주 지나다니며 수묵화처럼 아무도 밟지 않은 채로 고스란히 쌓여 있는 눈, 산속 깊은 고요한 암자를 둘러싼 대나무 숲처럼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안개 등 날씨가 만들어내는 한강의 다양한 표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낯선 도시의 새로운 낭만을 찾았다는 기쁨과 함께.
한강의 낭만적 풍경을 채집한 수집가로서 한강의 낭만을 조용히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추천한다면 광진교 8번가를 말하고 싶다. 이곳은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의 사이에 놓인 광진교의 8번째 기둥에 위치해 8번가라 불리는 교각 하부 전망대다. 광진교 중앙쯤에 위치한 나선형 계단을 따라 다리 아래로 내려가면 호그와트로 이어주는 킹스크로스 역 9와 4분의 3 승강장처럼 한강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전면이 유리 통창으로 된 둥근 형태의 전망대인데 빈백에 누워 전면의 통창을 통해 한강의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발아래 유리창을 통해 한강의 일렁이는 물결을 보며 물멍을 즐길 수 있다. 특히 교각 하부라는 색다른 공간 안에서 조금 더 가까이 마주할 수 있는 윤슬은 유년 시절의 은모래가 생각날 만큼 곱고 아름다웠다.
만약 이러한 낭만적 풍경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영화 ‘수라’는 사라진풍경 앞에 놓인 사람들을 주목하며 삶의 터전이자, 비단에 놓인 수라는 뜻을 가진 아름다웠던 수라 갯벌을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잃어버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는 갯벌의 조개를 캐던 손으로 매립지의 잡초를 뽑는 어민, 공사를 조금이라도 늦추거나 막기 위해서 밤낮 가리지 않고 여전히 서식하고 있는 멸종위기종을 찾아다니며 갯벌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하는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등 사라진 갯벌이 새롭게 만들어 낸 풍경을 보여준다. 특히 20년 동안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은 새만금에서 잊지 못할 풍경으로 수만 마리의 도요새 군무를 설명하며 “너무나도 아름다운 걸 봤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책임감이 생긴 것 같아요.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아름다운 걸 본죄”라고 말했다.
사실 그들이 수라 갯벌을 잃어버린 것처럼 나도 은모래를 잃어버렸다. 내 고향에서는 더 이상 은모래를 찾아볼 수 없다. 은모래는 이제 나의 기억에만 존재할 뿐. 사라진 은모래의 빈자리를 백년 주기로 찾아온다는 홍수를 막기 위해서 설치된 차가운 콘크리트 제방이 채웠다. 새로운 풍경은 상처의 현존을 가열시킨다고 했나.(각주 1) 삶이 탄생과 죽음 사이에 놓인 것처럼 풍경 역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호시절의 추억과 장면을 균열 내는 풍경은 아리기만 하다. 어느 노랫말처럼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옛사랑을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만나는 것만큼 씁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돌이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시 시작할 수도 없는 불가항력이 만드는 상처 앞에서 무력할 뿐이다.
그래서 내게 마지막으로 남은 낭만적 풍경인 한강만은 지금의 모습 그대로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름다움을 본 죄인보다는 한강의 낭만을 사수한 명예 보안관(?)으로 남고 싶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처럼,(각주 2) 저 한강의 낭만과 아름다움을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 상처를 가열시키는 풍경보다 아름다움을 가열시키는 풍경 속에서 낭만을 품고 싶다.
*각주 정리
1. 김훈, 『풍경과 상처』, 문학동네, 2009.
2. 황인찬, “무화과 숲”, 『구관조 씻기기』, 민음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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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물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사로잡아요
나들이하기에 딱 적절한 온도인데 “날이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 미세 먼지 때문이다. 하늘이 묘하게 부옇다. 얄궂게도 날이 좋으면 미세 먼지 수치가 극에 달했다. 봄날 휴일에 할 수 있는 게 카페를 찾거나 실내 활동을 하는 것뿐이라니. 결국 책장을 뒤적거렸고, 기후위기니 하는 현실을 잊고 싶어서 골라든 게 SF 단편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허블, 2017)이었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한 독서니 우주를 종횡무진하거나 상식 밖 디스토피아를 그린 이야기에 파고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현실성 높은 이야기에 마음을 뺐긴 건 참 이상한 일이었다. 소설 제목이기도 한 ‘감정의 물성’은 이모셔널 솔리드라는 회사가 내놓은 제품이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대상에 물성이라는 단어를 붙인 작명에서부터 잘 팔리겠다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 특성마저 힙하다.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제품.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공포체’, ‘우울체’ 하 는 식으로 이름이 붙고, 파생되는 제품으로 비누나 향초, 손목에 붙이는 패치도 있고요. 지금 유진 씨가 구해온 건 침착의 비누라는 건데, 진짜 비누처럼 써도 되지만 그냥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나 봐요. 10분 정도 사용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감정의물성 #우울체 해시태그와 감성 사진이 인스타그램 피드에 주르륵 뜨는 모습이 연상됐다. 하지만 주인공 정하는 감정의 물성을 플라시보 효과를 이용한 상술로 치부한다. 줄거리보다 사람들이 감성의 물성을 구매하는 이유를 추적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정하는 특히 우울함이나 증오 같은 감정을 사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을 주던가요?”(이모셔널 솔리드 대표)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연인 보현)
김초엽이 (아마) 가장 방점을 둔 답은 보현의 것이었겠지만, 나는 다른 문장을 더 깊게 마음에 새겼다. “물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사로 잡아요. 왜, 보면 콘서트에 다녀온 티켓을 오랫동안 보관해두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 그냥 실재하는 물건 자체가 중요한 거죠. 시선을 돌려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물성을 감각할 수 있다는 게 의외로 매력적인 셀링 포인트거든요.”(동료 유진) 글을 읽는 내 앞에 뜬금없게도 국립현대미술관의 모습이 펼쳐졌다. 정영선의 전시(88쪽)를 보러 온 사람들이 개막 행사를 빼곡하게 채운 그 광경. 유명한 공원 개장식에서보다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 모습이 이런 이벤트가 열리기를 바랐던 긴 기다림으로 읽혀 씁쓸하기도 했다. 조경이라는 건 어떤 장소를 만들어내는 논리이자 시스템인데, 모든 공간을 증강 현실로 재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된다 하더라도 지극히 평면적인 전시가 될 테다) 이를 도면이나 사진, 영상, 음악으로 전할 수 있나? 의구심이 녹아내렸다.
2021년 4월, 성수역과 뚝섬역 사이에 ‘숲, 가게’가 열렸었다. 그곳에서는 떨어진 신당풍나무잎 200그램에 3천 6백만 원이라는 값을 매겼다. 무슨 셈법인가 싶을 텐데, 숲을 이루는 부산물이 만들어지기까지 시간, 생태계에서의 역할, 사람에게 소소한 즐거움과 감성을 전달하는 점까지 부가 가치로 매겨 가격으로 산정한 것이다. 작은 잎에 담긴 가치가 ‘가격’이라는 숫자를 통해 좀 더 유쾌하면서도 명확하게 다가온다.
조경에 물성이 없다고 말하기는 애매하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갖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 가치나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물성이 필요하다. 항우울제만으로는 자신의 우울을 조절할 수 없어 우울체를 사 모으는 아이러니에 뛰어든 보현처럼 말이다. 가시화하기 모호한 조경의 쓸모와 무게를 뒤적이며 이를 드러내기 위한 학예연구사의 노력은 분명 조경의 또 다른 면모를 발굴해낼 것이다. 이 재미있는 시도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물성이 사람들을 쉽게 사로잡았으면 좋겠다. 한 가지 더 바라는 건, 작은 굿즈가 만들어지길. 손에 쥐면 기대감에 찬 사람들이 저마다 모여 떠들며 웅성거리던 그 순간을 쉽게 기억해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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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꿈과 상상력을 키우는 그물놀이터 ‘네트플레이’
그물놀이터로 키우는 상상력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친구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며 꿈과 목표를 이루는 과정을 통해 사회성을 배운다. 예건의 복합놀이시설 브랜드 아이붐I-BOOM은 안전한 놀이 시설물을 통해 아이들의 꿈과 상상력을 키우는 놀이터를 제작하고 있다.
그물놀이터 ‘네트플레이’는 굴곡진 다양한 형태의 네트로 연결된 놀이터다. 아이들은 그물을 오르거나 기어가는 등 어려운 동작을 통해 균형 감각을 익힐 수 있다. 다소 위험도가 있는 놀이는 위험 인지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스스로 안전한 놀이 방법을 만들어 가며 상상력을 키우게 된다.
여러 네트 놀이 시설물을 다양한 조합으로 활용할 수 있다. 아이들의 부상 등을 방지하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또한 네트멀티플레이 등과 같이 미끄럼틀과 연결해서 활용할 수도 있어 아이들에게 다양한 놀이 경험을 제공한다. 이처럼 안전하고 흥미로운 놀이 경험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우고, 역동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게 해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다.
TEL. 031-943-6114 E-MAIL.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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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지사(地史)를 돌보고 가꾸는 조경가
한국 조경 50년사를 대표하는 1세대 조경가 정영선. 그의 삶과 작업을 조명하는 전시회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가 식목일부터 9월 2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4월 17일에는 그의 조경관을 담은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감독 정다운)가 극장 개봉한다. 세계조경가협회IFLA 제프리 젤리코 상을 받은 지난해에 이어 2024년은 가히 정영선의 해라고 할 만하다.
지난 50년간 정영선(조경설계 서안)의 손을 거친 작품은 정확한 목록을 작성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개인과 기업의 정원, 도시 가로와 광장, 근린공원, 기념공원, 생태공원, 산업시설 재활용 공원, 선형 공원, 묘역, 병원, 오피스, 상업시설, 복합문화공간, 공동주택단지, 공장, 캠퍼스, 종교시설과 단지, 테마파크, 리조트, 하천. 그가 다룬 프로젝트의 유형은 조경 직능의 다양성과 복합성 그 자체를 예시한다. 이 방대한 작업을 관통하는 ‘정영선 조경’ 고유의 특징은 무엇일까. 흔히 말하는 ‘자연스러움’, ‘꾸미지 않은 듯한 꾸밈’, ‘한국적 풍경’ 같은 형용어로 그 특징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정영선 조경 특유의 미감을 낳는 설계의 기반은 땅의 시간과 이야기를 읽어내고 주변 경관과 관계 맺는 태도다. 그의 작품은 즉물적이고 감각적이지만 그가 자신의 태도를 설명하는 방식은 관념적이고 이론적이다. 정영선의 글과 말에서 그의 태도를 대변하는 개념을 단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나는 “지사(地史)”를 택할 것이다. 그는 ‘지사’란 지형, 지질, 토양, 인문, 사회, 역사, 문화 등을 포괄하는 시공간적 맥락을 뜻한다고 말한다. 한 인터뷰에서 정영선은 매우 간명하게 조경의 직능을 정의한다. “조경가는 연결사”다. 지사, 즉 땅의 시공간적 맥락을 섬세하게 독해해 설계의 조건과 연결하는 태도가 그의 작업을 가로지른다. 지사를 잇고 엮는 태도를 담은 그의 문장 몇 구절을 옮긴다. “우리가 다루는 대지[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절대 독립되지 않고 시‧공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조경이라는 작업[에서는] …… 관계를 다듬고 설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경관은] 글자의 선택과 배열, 호흡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시’처럼 세심하게 다뤄져야 한다.”
지사를 돌보고 가꾸는 정영선의 설계는 대표작인 희원과 선유도공원을 비롯한 여러 작업에 구현되었지만, 그것을 가장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오설록 티뮤지엄(+이니스프리 제주 하우스)일 것이다. 제주도의 필수 관광 명소로 자리 잡은 오설록 티뮤지엄은 아모레퍼시픽이 1983년부터 일궈온 차나무 재배지인 서광다원 한구석에 있다. 24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차밭은 불모의 황무지인 곶자왈을 개간해낸 역동적인 생산 경관이다. 곶자왈은 지하 깊숙한 곳까지 돌과 자갈이 덮여 있어 지형이 울퉁불퉁하고 가시덤불과 양치류가 얼크러져 정글처럼 빽빽한 제주도 특유의 야생 숲이다. 정영선과 박승진(디자인 스튜디오 loci)은 오설록 티뮤지엄의 새 경관을 직조하면서 건물에 맞붙은 거친 곶자왈 숲의 지형과 수목, 돌과 풀을 그대로 받아들여 재해석했다. 제주 중산간 저지대 고유의 ‘지사’가 쌓인 곶자왈의 원풍경을 돌보고 가꿔 장쾌한 녹차밭 경관의 지사와 연결한 것이다. 오설록 프로젝트는 현재진행형이다. 함께 작업해온 건축가 조민석(매스스터디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둑알을 하나씩 놓아 바둑판 위에 ‘집’을 키우듯 …… 환경과의 관계성을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확장해나가는 느리고 섬세한 과정이었다.”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는 한 원로 조경가의 회고전이 아니다. 조경설계를 개척하고 이끌어온 한 개인의 업적뿐 아니라 한국 조경 50년의 성장사와 그 이면을 새롭게 읽을 수 있다. 다음 50년의 좌표를 질문하고 설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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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감각] 여전히 남아있는 풍경이 있다
설계 수업을 들을수록 책이 늘었다. 조경은 나무를 심는 게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하며 수강한 1학년 기초 설계 스튜디오. 교수님은 대상지를 분석하고 좋은 개념과 콘셉트를 제시하는 것이 나무를 고르는 일보다 먼저라고 했다. 대상지 분석? 좋은 개념? 콘셉트? 이것들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선배들에게 도움을 구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줄기처럼 촉감만 스쳐 갈 뿐 좀처럼 움켜잡을 수 없었다. 책 속에서 단단한 것을 건져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알쏭달쏭한 단어를 만날 때마다 책을 사 모았다.
조경설계를 그만두면서 이 책들을 버렸다. 자취방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책을 볼 때마다 조경가를 꿈꾸었던 지난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문 앞에 모으니 손수레로 두 짐이 되었고 빠르게 치우고 싶어 고물상에 팔기로 했다. 그런데 한 짐을 내려 두고 집으로 돌아오니 나머지 책이 사라져 있었다. 폐지를 모으는 이웃 할머니가 그새 챙겨간 것이다. 내 책을 뒤적이고 있는 할머니에게 마음대로 가져가시면 어떡하냐고 돌려 달라고 했다. “버리려고 내놓은 거 주워 간 게 잘못이냐?” 할머니는 역정을 냈지만 꿋꿋이 책을 되찾아 와 고물상에 팔았다.
가끔씩 오래 전의 책장을 떠올린다. 어떤 책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무엇을 찾았는지 기억을 되짚는다. 가물가물하다. 왜 동네 할머니와 다투면서까지 책을 되찾아 왔는지 생각해본다. 그냥 두었다면 그 무거운 짐을 챙겨 귀찮은 걸음을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을 텐데. 이해하기 어렵다. 책을 색깔과 크기로 나누어 꽂아 두었던 책꽂이와 해가 갈수록 색이 옅어지던 책등, 테두리가 노랗게 변색된 내지, 그리고 지저분하게 붙여 놓은 포스트잇만큼은 선명하다. 손가락을 적시는 물줄기의 촉감처럼 여전히 남아있는 풍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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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공원
The Opera Park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낭만주의 정원
코펜하겐 전역의 도시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시민을 위한 녹색 공간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A.P. 물러 재단(Møller Foundation)은 코펜하겐 도심 중심부에 위치한 내항 중 하나를 공원으로 만드는 설계공모를 실시했고, 2019년 공모에 당선된 건축 스튜디오 코베(Cobe)는 코펜하겐 내항의 옛 산업용 부지에 새롭게 공원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덴마크 왕립 오페라 극장 옆에 위치한 대상지는 오페라 극장 완공 후 20년 간 줄곧 잔디밭으로 활용됐다. 새로운 주택 개발의 중심지였던 이 장소는 여섯 개의 정원과 온실 등이 조성되며 녹색의 섬으로 변신했다. 오페라 공원이라 불리는 새로운 공공 공원은 밀도 높은 코펜하겐 내항과 대조적인 자연 경관을 만들어 내며 분주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축구장 세 개 넓이의 공원은 북아메리카 숲, 덴마크 참나무 숲, 노르딕 숲, 오리엔탈 정원, 영국 정원, 그리고 중앙 온실과 아트리움이 있는 아열대 정원 등 세계 각지를 대표하는 여섯 개의 정원으로 구성된다.
다양한 정원은 수련 연못, 바닥 분수, 분수에서 나온 물방울이 수면 위로 떨어지며 리드미컬한 물결을 형성하는 미러폰드 등 수공간을 통해 방문객에게 볼거리를 선사한다. 구불구불한 산책로와 유기적으로 결합된 화단은 공원의 여러 요소를 하나로 묶어주며 공간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여섯 개의 정원과 이를 둘러싼 산책길, 세심하게 배치된 조망점이 조화를 이룬다. 코펜하겐의 유서 깊은 낭만주의 정원 양식을 활용해 생물 다양성 감소 및 물 관리와 같은 현대 도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레크리에이션, 휴식, 사색을 위한 공간으로 도시에 꼭 필요한 녹색 오아시스를 제공한다. 공원을 거닐다 보면 도심을 벗어나 자연 속에 푹 빠진 듯한 느낌이 들게 해 도심 한복판에 있다는 걸 잊게 만든다.
모두를 위한 오아시스 무대
연중 내내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공공 장소로 설계된 이 공원에는 전 세계에서 온 628그루 이상의 나무, 8만 개의 다년초 및 관목, 그리고 4만 그루의 구근 식물이 있다. 총 223종의 외래 희귀종과 토착종이 어우러지며 방문객들에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풍경을 선보인다. 식물의 모양, 향기, 색깔, 밀도가 계절에 따라 다채롭게 변화한다. 봄에는 풍부한 색상의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다양한 녹색 그늘을 만들어 내고, 가을에는 빨갛고 노란 톤을 선보이며 겨울에는 상록 소나무와 얼어붙은 연못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 다채로운 수종과 크기의 다양성 덕분에 새와 곤충이 먹이와 은신처를 찾을 수 있는 풍요로운 환경을 제공한다. 코베를 이끄는 단 스투버가드(Dan Stubbergaard)는 “오페라 공원은 코펜하겐 중심부에서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한다. 마치 오페라 무대를 디자인하듯 전경, 중경, 후경이 조화롭게 구성된 경관을 설계했다. 8만 개의 식물과 600그루 이상의 나무가 항구를 바라보며 배치돼 자연스러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일부 지역에는 지형을 높이고 키 큰 나무를 배치해 공간의 배경을 만들고, 항구와 맞닿은 전경에는 지형을 낮추고 키가 낮은 나무를 심어 자연스럽게 항구 경관을 즐길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중앙 온실
공원에는 정원 외에도 카페와 공원 지하주차장이 마련된 중앙 온실이 있다. 호버링 루프(hovering roof)가 있는 유리 구조물을 유기적으로 배치했다. 주변 식물이 비치는 유리 구조물이 공간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며 공원의 풍성한 녹색을 극대화해 방문객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온실과 카페는 코펜하겐의 많은 공원이 황량해지는 겨울에도 오페라 공원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최대300대를 수용하는 주차장 층까지 온실 테라스 구조가 이어지며, 아열대 비오톱이 지하로 흘러 내려가며 지하층과 공원을 수직적으로 연결한다.
오페라 극장과의 연결
랜드스케이프 브리지 위의 회랑은 인접한 덴마크 왕립 오페라 극장과 주차장을 연결하고, 이용자가 날씨와 상관없이 편하게 오갈 수 있게 한다. 온실의 건축 양식을 반영한 회랑의 곡면 유리와 루프 디자인은 구불구불한 공원 산책로를 연상시킨다. 섬으로 연결되는 세 개의 다리 중 하나인 이 연결 통로는 자연의 일부가 항구 운하를 가로지르는 듯한 느낌을 연출하며 조경과 건축을 온전히 하나로 통합한다.
햇빛과 빗물
빗물은 공원의 귀중한 자원으로 덴마크 왕립 오페라 극장 지붕에서 온실 관개에 활용되는 지하 저수 시설로 흘러 들어간다. 빗물 유지·관리를 위해 산책로를 투수성 자갈로 포장하고, 집수정을 통해 빗물을 모아 여과하거나 흡수한다. 랜드스케이프 브리지의 녹색 지붕과 온실은 빗물을 저류하고 공원의 동물을 위한 식량 공급원이 된다. 오페라 극장 옥상의 태양광 패널은 지하주차장, 공원, 온실에 전력을 공급한다. 견고하고 재활용이 가능한 자재를 공원에 활용했다. 풍성한 나무와 식물을 통해 항구와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막고 난기류를 줄여 공원 이용자의 편의성을 도모했다. 높은 지형은 폭우가 내리거나 항구의 수위가 크게 상승할 때 범람으로부터 섬을 보호한다.
글 Cobe
Architect and Landscape Architect Cobe
Collaborator Hansson og Knudsen, Bauer, Redtz Glas og Façade, HSM Industri, GK Danmark, Bravida Danmark, Høyrup & Clemmesen, KONE, Phønix Tag, Jakon, Areo, Terrazzo.dk, Raadvad Maleren, Snedkerierne, OKNygaard, Palmproject Europe, Scanview Systems, Zurface, Retail Reflexions, Vector Foiltech
Engineer Vita, Via Trafik, DBI and Lüchninger Meyer Hermansen
Client The Opera Park Foundation
Location Copenhagen, Denmark
Area 21,500m2
Completion 2023
Photograph Francisco Tirado
코베(Cobe)는 2006년 하버드대학교 GSD 교수인 건축가 단 스투버가드(Dan Stubbergaard)가 설립한 건축 스튜디오다. 특별한 일상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설계 목표로 한다. 대표작으로 코펜하겐 노르트하운(Nordhavn)의 더 사일로(The Silo), 코펜하겐대학교의 카렌 블릭센스 플라즈(Karen Blixens Plads), 독일 아디다스의 글로벌 본사 하프타임(Halftim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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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어탄 전시 센터
Bai’etan Exhibition Center
중국 광저우 주강(Pearl River) 하류에 위치한 바이에탄 전시 센터 조경 프로젝트는 쥐룽 베이(Julong Bay)를 산업 부지에서 탄력 있고 활기찬 복합 용도 구역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기여했다. 대상지는 한때 화물선과 대형 트럭으로 붐비던 곳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간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인근 항저우의 중공업이 점차 쇠퇴해 텅 빈 콘크리트 부지와 버려진 건물만 남게 됐다.
중공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과거의 모습과 한참 멀어진 모습이었다. 홍수 차단벽은 사람과 강을 분리하는 물리적 장벽이 되었다. 넓은 포장도로와 수직 제방은 생태적 가치 향상과 쾌적한 야외 활동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대상지의 특징적 요소들은 이 어수선함에 묻혀 보이지 않았고, 건물 철거 과정에서 발생한 상당량의 잔해를 처리하는 데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디자인 혁신으로 대상지를 변화시키다
2020년, 이 지역은 사무실, 문화, 상업, 주거, 레크리에이션 용도가 혼합된 새로운 도시 지구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규모 3헥타르에 달하는 바이어탄 전시 센터(Bai’etan Exhibition Center) 프로젝트는 일종의 시범 단계다. 이곳을 지역 사회에 다양한 공간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공공 수변 공간으로 바꿔 주강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설계 팀은 대상지의 문화적 정체성을 수용하고 훼손된 생태를 복원하며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건설 및 관리 비용을 낮추기 위해 생태적, 사회적, 경제적 지속 가능성을 통합하는 혁신적 접근 방식을 도출했다.
대상지 고유의 특성을 부각하다
‘리빙 위드 피쿠스(living with Ficus)’라는 설계 콘셉트는 대상지의 독특한 경관 특성을 통해 과거와 미래의 연결을 도모한다. 운하를 따라 조성한 피쿠스 숲은 그늘을 제공할 뿐 아니라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처가 되는데, 이 숲을 보존해 대상지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피쿠스 나무, 창고, 강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패턴을 홍수 차단벽과 난간 디자인에 적용했다. 새로 설치한 피쿠스 카페는 수변을 활성화한다. 카페에서 난 수익은 바이어탄 전시 센터의 운영과 유지·관리 비용으로 사용된다.
모든 사람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사회적 지속가능성은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고려 사항 중 하나였다. 대상지는 누구든 무료로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며, 곳곳의 유연한 공간은 다양한 활동을 수용한다. 웨어하우스 광장(Warehouse Plaza)의 자생나무 숲은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 있고 그늘을 제공하며, 콘크리트 포장으로 재정비된 미셸리아 야드(Michelia Yard)는 캐주얼한 야외 파티 장소로 쓰인다.
환경을 생각하는 장소를 만들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자재를 재사용하고 대상지를 최대한 보존했다. 기존의 벽돌, 콘크리트, 목재 기둥을 재활용하고, 홍수 차단벽을 바 테이블 또는 벤치와 일체화했다. 대상지에서 자라던 수목 대부분을 그대로 보존해 서식지 보존을 꾀하고 방문객에게는 충분한 그늘을 제공하고자 했다. 더불어 조립 방식으로 데크와 홍수 차단벽을 피복해 자재를 쉽게 분해하고 재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벤치와 바 테이블, 난간, 데크에는 빠르게 자라나며 재생이 용이하고 튼튼한 대나무를 사용했다. 대상지 전역에 쾌적한 야외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넓은 그늘 공간을 조성했다. 이는 인근 건물의 에어컨 사용량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낸다. 또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재료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량을 줄이기 위해 현지에서 자재를 조달하고 지역 업체와 협업했다.
도시의 회복탄력성을 높이고 자연 서식지를 복원하기위해 자연 기반 해법을 모색했다. 새로 조성한 대규모 녹지는 편안한 야외 공간을 제공하고 지역 경관을 개선할 뿐 아니라 열섬 현상과 인근 건물의 에어컨 사용량을 효과적으로 감소시킨다. 빗물 정원과 투수성 포장은 빗물 유출수의 82% 가량을 대상지 내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새로 심은 식물은 모두 지역 자생종이기 때문에 관개용수 사용량을 줄이고, 야생 동물에게 귀중한 서식지를 제공한다. 기존의 단단한 제방을 돌 개비온으로 대체해 수생 생물이 살 수 있는 서식처도 마련했다.
바이어탄 전시 센터는 중국 최초로 SITES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으며, 현재 광저우 내 탈산업화 지역의 도시재생을 위한 지속가능한 모델로 자리 잡았다.
영향
모든 작업이 끝난 뒤 지역 및 전국 언론이 바이어탄 전시 센터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다뤘다. 주변 지역 사회와 그레이트 베이 지역(Great Bay Area)도 이 프로젝트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그레이트 베이 지역의 주요 개발사 중 하나이기도 한 클라이언트는 바이어탄 전시센터는 “광저우에서 가장 큰 지속가능한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대상지의 역사를 품은 공장, 마을, 도시를 재개발하고 관리하는 전 과정을 아우른다는 점”에서 환경적 관점뿐 아니라 사회적 관점에서도 중국 산업 브라운필드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글 Sasaki
Landscape Architect Sasaki(Zhang Dou, Zhu Yu, Zhou Zhangkan, Song Yi, Liu Jing, Yifaat Ayzenberg Shoshan, Victor Vizgaitis)
Local Design Institute Pubang Landscape
Client Guangzhou Zhujiang Industrial Park Investment Development
Location Khlong Toei, Bangkok, Thailand
Area 26,850m2
Completion 2021
Photograph SAVOR
사사키(Sasaki)는 도시설계, 건축, 토목 등과의 협업을 통한 다학제간 디자인을 추구하며 전 세계의 대규모 국제 업무지구, 문화지구, 고등교육 캠퍼스, 소규모 오피스 등을 설계해왔다. 다양한 스케일의 설계 경험을 바탕으로 대상지의 문제점을 다차원적으로 분석해 넓은 스펙트럼의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유연한 도시설계와 균형 잡힌 프로그램, 역동적인 공공 영역 등을 아우르는 마스터플랜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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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침의 공원
Park of Encounters
독일 하이델베르크 시에 새로 조성된 마주침의 공원(Park of Encounters)에 방문하면 옛 캠프벨 막사(Campbell Barracks) 진입 광장에 놓인 사운드 아트 설치 작품 ‘기억의 목소리(The Voice of Memory)’를 지나게 된다. 로빈 위노그론드(Robin Winogrond)는 권력과 통제를 상징하는 건축적, 장소적 유물을 85년간 지속됐던 군 점령기를 체험할 수 있는 워크 인 사운드(walk-in sound) 설치 작품으로 재탄생시켰으며, 이를 통해 인간과 인간의 우연한 마주침을 표현했다. 1930년대부터 수십 년간 나치의 군사 독재 장소, 미군 기지와 나토 사령부로 쓰였던 이곳은 현재 활력이 넘치는 지역으로 개발되고 있다. 대상지의 어두운 과거를 외면하는 대신 역사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곳으로 조성해 전쟁의 의미, 집단 기억, 과거 서사에 대한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역사에 접근하기
2018년 로빈 위노그론드는 스튜디오 풀칸(Studio Vulkan)과 협력해 공원 국제 설계공모에서 1등을 차지했다. 대상지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유적지의 역사와 만남을 통해 방문객들의 호기심과 성찰을 유발시킬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설계안을 제시했다. 역사를 다루는 다양한 방식 중 유물을 활용해 역사적 내러티브와 일상적 이용을 병치하는 방법을 택했다. 재해석, 재설정, 탈맥락화, 재명명된 이곳의 유물과 역사적 공간은 캠프벨 막사와 전쟁의 역사를 어렵지 않게 경험할 수 있게 돕는다.
역사적 공간의 변화
대상지의 역사가 담긴 주요 공간(포럼, 라운지, 문화 시장, 전시장, 체크 포인트, 시민 공원)의 정체성을 새롭게 담기 위해 ‘기억과 숙고’를 주요 키워드로 설정했다.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공원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게 구성하고, 1970년대의 감시 카메라, 관제소, 가구 등 발견된 유물들을 세피아 색으로 칠했다. 추상화되고 맥락에서 분리된 ‘발견된 오브제’들은 녹슬거나 오래된 사진과 같은 경관을 연출한다. 파편화된 군사 공간은 여러 시대에 사용됐던 포장 자재를 파쇄하고 재활용해 만든 붉은 밴드로 통합했다.
연병장이었던 공원 중심에 포럼 공간을 조성했다. 군사 훈련을 했던 장소는 만남, 담론, 교류, 놀이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잔디밭은 연병장의 공허한 분위기를 개선하고 기존 연병장의 형태에 대한 단서로 작용하도록 설계했다. 현대적 방식으로 물을 제어했는데, 이를 빗물정원 형태로 공원에 적용했다.
*환경과조경432호(2024년 4월호)수록본 일부
글 Robin Winogrond
Concept and Realization Robin Winogrond with Studio Vulkan
Realization Local Landscape Architecture Office Faktorgrüen
Team Robin Winogrond with Studio Vulkan, Faktorgrün, Denkstatt sàrl, Ibv Hüsler, Salewski&Kreds Architeckten
Collaborators Sound Installation ‘The Voice of Memory’
Sound Specialist: Jonas Weber
Historic Research: Matthias Kohler
Client City of Heidelberg, Iba Heidelberg
Location Campbell Baracks, Heidelberg, Germany
Area 28ha
Design 2018~2021
Completion 2022
Photograph Thilo Ross, Daniela Valentini, Robin Winogrond, J. Zilius
로빈 위노그론드(Robin Winogrond)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활동하는 조경가이자 도시설계가다. 자신의 설계 접근 방식을 ‘지리의 매력을 찾아서(in search of geographical re-enchantment)’라고 표현하며, 분위기, 상상력, 주변 환경 등을 중요한 설계 기반으로 여긴다. 설계뿐 아니라 강의, 심사, 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슈투트가르트 미술대학교에서 전시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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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도스 스마트 스포츠 공원
Ordos Smart Sports Park
중국 오르도스(Ordos) 지역의 캉바스(Kangbashi)는 공공 장소에서 건강한 생활을 누리고자 하는 시민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도시 광장 ‘스제(Shijie)’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스마트 스포츠 공원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교통 요충지에 자리 잡은 광장은 주거지, 사무용 건물, 학교, 전시장에 둘러싸여 있다. 이 개방형 도시 광장의 규모는 19.7헥타르에 달하는데, 조각 작품 ‘스제’와 공공 편의 시설, 게이트볼 경기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공간 구성과 동선이 체계적이지 않을 뿐더러 서비스 공간이 충분치 않아 활용률이 낮은 상황이었다.
19.7-8.7×106: 오르도스 대지의 특성
오르도스는 사막, 대초원, 강이 8만7천km2에 달하는 땅에 펼쳐진 지역이다. 볜 바오양(Bian Baoyang)은 이 독특한 공존 경관을 공원의 공간 경험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오르도스의 쿠부치(Kubuqi) 사막과 무쓰(Mu Us) 사막은 북서풍의 영향을 받는 곳이다. 바람으로 인해 북서쪽 경사는 완만하고 남동쪽 경사는 급격한 사구가 형성되는데, 이를 모티브로 삼아 공원의 미세 지형을 조성했다. 대초원의 경우 수천수백 년의 지질학적 역사가 땅에 새겨진 곳으로, 이 대초원을 공원의 배경으로 삼아 설계했다. 훙류(Hongliu) 강은 우선(Wushen) 현의 남북을 지그재그로 가로지르며 흐르고, 다라터(Dalate) 현의 서쪽에서 시작한 황하가 동쪽으로 빠져나간다. 이러한 강의 곡선을 공원의 동선으로 차용했다. 물결이 치는 듯한 동선의 형태는 공원에 활기와 속도감을 부여하고, 휴식을 취하거나 가족과 친구를 만나기 위한 섬 같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모든 세대를 위한 스포츠 공원
대상지의 지역 특성에서 영감을 얻어 공원의 틀과 동선을 구상했다. 원형 도로는 대초원의 강물을, 파란색 길은 오르도스의 하늘과 강에 비친 모습을 상징한다. 기존의 조형적 테마 도로를 공원의 중심축으로 유지하며 주요 동선을 강화했다. 연령과 운동 유형에 따라 필요한 기능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분류하고 이를 설계에 적용했다. 북서쪽 나대지에는 표준 규격의 미니 축구장, 농구장, 테니스장, 배드민턴장, 탁구장 등 운동을 전문적으로 즐기는 이와 가벼운 레저 생활을 원하는사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공원 중심에는 어린이 광장이 있다. 이외에도 청소년을 위한 사이클장, 장년층을 위한 종합 운동장을 조성했다. 기존의 게이트볼장에는 프로 경기를 할 수 있는 게이트볼 경기장을 추가했다. 수목 생육이 어려운 알칼리성 토양 지역은 여름에는 모래밭,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활용했다. 새로 마련된 물놀이장과 감지 센서로 작동하는 분수대는 물을 활용한 놀이를 더 적극적으로 즐기게 한다.
*환경과조경432호(2024년 4월호)수록본 일부
글 PLAT ASIA
Architects PLAT ASIA
Principal Designer Bian Baoyang
Design Team Zhang Xiaozhan, Wang Xiaochun, Guo Lulu, He Xiaohui, Guo Xin, Yang Lu, Ma Xuan, Hao Qiang, Ji Lei, Bi Baihui, Liu Yuan, Zhu Feng, Zheng Yubin, Yu Siyang, Yang Geng, Yang Dongmei, Xue Heng, Liu Mei
Landscape Construction Design PLAT ASIA
Architecture Construction Design HUACHENGBOYUAN
Engineering Technology Group
Construction Contractor XINGTAI Group
Construction Supervision Inner Mongolia SHOUXIN
Clients Kangbashi District Forestry and Greenery Service Center, Ordos
Client Principals Wang Yonggang, Liu Junwei, Han Ping
Client Teams Zhangle, Guo Kexin, Zhu Yuan, Li Dehua, Mao Jianxiao
Location Kangbashi District, Ordos, China
Area 19.7ha
New Building Area 1,180m2
Max Height 9m
Completion 2023. 7.
Photograph Holi Landscape Photography
플랫 아시아(PLAT ASIA)는 2010년 동양의 문화적 배경을 공유하는 볜 바오양(Bian Baoyang)과 정동현이 베이징에 설립한 사무소다. 국제적 건축가, 설계가와 함께 사회적 상황에 대한 꾸준한 연구와 분석을 바탕으로, 미래의 주거 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최적의 생활 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건축, 도시, 조경, 인테리어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폭넓은 경험을 기반으로 공원, 호텔, 리조트, 아트 센터, 식당, 복합 센터, 사무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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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피에드 인 강남
LE PIED in Gangnam
인구 감소라는 시대적 변화로 인해 1~2인 가구가 증가하며 소형 주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능과 규모보다 개인 삶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차별화된 주거 공간을 원하고 있다.
르피에드 인 강남은 강남의 중심지이자 역세권에 위치하며 고급 주거 공간을 표방한다. 피에드아테르(Pied-ATerre)는 프랑스어로 ‘발’을 뜻하는 피에드(Pied)와 ‘땅’을 의미하는 테르(Terre)의 합성어로 ‘땅에 발을 딛다’를 뜻하며,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이 내가 머무는 곳이라는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다. 피에드아테르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는 주거 공간의 대명사가 되었고, 상류층의 주거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 ‘르피에드LE PIED 인 강남’은 저층부의 고전적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아치형 블록 마감과 상층부의 그리드 형태의 현대적인 입면 디자인의 조화로운 설계를 선보인다.
단지 개념에서 파생된 ‘르피에드 가든’이란 개념을 적용해 외부 공간에서부터 실내 공간까지 공간의 기능과 환경에 부합하는 차별화된 정원을 계획했다. 단지 특성상 조경 공간이 건물 전면의 공개공지와 옥상 공간, 단지 중앙의 전이 공간, 실내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부 공간인 건물 전면의 공개공지는 저층부 커뮤니티 시설과 연계해 가로변 휴게 공간과 건물 내외부에서 바라본 시각적 경관이 특화된 정원으로 계획했다. 옥상은 친환경 설계를 고려해 비오톱 정원으로 구상했다. 단지 중심부의 중정은 내외부의 전이 공간이다. 이곳의 불리한 자연 채광과 건축물의 단조로운 경관을 해소하기 위해 인조목과 지피를 활용한 녹색 공간을 계획해 단지의 대표 공간으로 조성했다. 사우나, 헬스장 등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과 연계한 실내 조경을 통해 어디서든 자연을 만날 수 있다.
*환경과조경432호(2024년 4월호)수록본 일부
글 김종민 기술사사무소 예당 소장
사진 유청오
기본·실시설계 가원조경설계사무소
특화설계 기술사사무소 예당
시공 현대건설, 삼연이앤씨
발주 미래에이엠디
위치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321-7, 8번지
규모 140세대
대지면적 1,647.9m2
조경면적 312.46m2
준공 202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