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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 비평: 교차하는 표면들의 좌표
  • 환경과조경 2022년 11월

광장에 온 사람들은 모두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도 영원히 만나지 않을 평행한 선들로 구획된 도로였던 곳에 주어진 선택지는 앞으로 나아가거나 반대로 돌아서 가는 것, 오직 두 가지뿐이었다. 역사적인 변화에 대한 평가는 대개 진보나 퇴행으로 수렴되나, 그것은 상대적인 판단이다. 변화의 방향이 아닌 바라보는 주체의 시선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흔한 정치적 수사도 누군가에게는 그와 반대로 여겨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광화문광장은 그 이전에 비해 어떤 종류의 진전 혹은 퇴행을 보여주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자신이 어느 방향을 보고 서 있는지를 묻는 것일 수 있으나, 그에 답하는 것이 쉽지 않은 까닭은 광장의 바라보는 시선이 앞과 뒤, 둘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킴벌리 크렌쇼(Kimberlé Crenshaw)가 제시한 교차성 이론은 이 같은 다면적 대상을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눈으로 분석할 수 있는 하나의 틀을 제공한다. 앞서 그는 한 사람에 대한 차별 혹은 우위를 야기하는 사회적 위치가 단일한 범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 바 있다. 크렌쇼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인종과 젠더, 계급, 종교, 지역 등 다양한 차원에서 발생하는 소수성과 다수성의 상호 교차 및 중첩의 결과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장소에 대해서도 그것을 긍정 또는 부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잣대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광화문광장 위에는 진보 또는 퇴행을 가름하는 복수의 표면들이 서로 맞물리며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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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민현식, 국립중앙박물관 국제설계경기 가작

 

축: 회복과 파괴

월대 복원은 새로운 광화문광장을 이루는 하나의 축을 암시한다. 그것은 경복궁 남측과 접한 역사광장의 조성, 그리고 궁궐의 축에 따라 편측으로 만들어진 시민광장의 배경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1990년대 시작되어 총독부 철거와 광화문 복원을 거쳐 앞으로도 20년 이상 이어질 문화재청의 경복궁 2차 복원 정비 사업의 한 단계이자 반세기에 걸친 거대한 흐름의 일환이다. 새로운 광화문광장은 적어도 당선안을 기준으로 볼 때 그러한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다.

심사평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당선안의 가장 큰 강점은 ‘역사적 축을 강렬히 형성’한 것이었다. 또한 당선안은 북악산으로부터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흐름을 광장과 주변 건물 옥상으로 연장했으며, 미디어파사드라는 현대 기술을 통해 주변의 도시 경관들을 대신하여 내사산이라는 과거의 풍경을 불러들였다. 여러 계획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나타낸 투시도는 설계안이 이 장소에 과거의 어떤 시점을 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공모 전반을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심사위원장 승효상은 지속적으로 서울이 가진 역사적, 자연적 축의 회복을 강조해왔다. 최근의 사례는 West 8의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당선안일 것이다. 승효상은 여기에서 ‘남산과 세운상가, 종묘와 북악산을 거쳐 백두산으로 흐르는 축의 연결’을 강조했다. 용산공원 당선안의 조감도와 새로운 광화문광장의 투시도는 주변의 현대적 경관을 의도적으로 희석한 반면 저 멀리 뒤편에 그려진 산수화와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로 연결되는 그림처럼 보인다.

1995년 ‘국립중앙박물관 국제설계경기’에 승효상이 민현식과 공동 응모한 작품은 그러한 관점이 드러난 가장 앞선 시기의 프로젝트 중 하나로, 건축가 정기용은 해당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남산과 관악산을 선으로 이음으로써 상승하는 삼각형 마당을 보여주었다. …… 결과가 발표됐을 때 그래도 조그만 기쁨이 있었는데, 그건 이들의 안이 유일하게 ‘서울’이라는 땅을 커다랗게 가늠한 것이었기 때문이다.”1 

정기용의 말처럼 기울어진 계획안의 삼각형 마당에서 바라본 남측과 북측 투시도는 주변의 풍광을 가리는 양 옆의 건물군 사이로 각각 관악산과 남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로운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 뒤편 광화문역 연결 통로에서 세종문화회관 방향으로 진입하는 경사면, 해치마당에서 바라본 풍경은 승효상과 민현식의 국립중앙박물관 설계안의 ‘상승하는 삼각형 마당’과 일정 부분 닮아있다. 좌우의 광화문 계단과 미디어월은 광장에 진입하기 전, 주변의 건물군을 시야로부터 은폐하고 오직 광장의 수평면 위로 북악산의 모습만을 남겨둠으로써 잠시나마 과거의 경관을 체험케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특정 시점을 도시에 투사하는 경향은 비단 서울뿐 아니라 여러 장소에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통일 뒤 15년간 통독 베를린의 총괄계획가였던 한스 슈팀만(Hans Stimmann)은 장벽이 가르고 있던 포츠담 광장(Potsdamer Platz)을 나치 이전의 도시 구조로 되살리는 ‘비판적 재건’ 기조 아래 만들고자 했다. 당시 ‘포츠담 광장 국제설계경기 심사’에 참여했던 렘 콜하스(Rem Koolhaas)는 사퇴 후 일간지에 다음 내용을 담은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포츠담 광장) 공모 심사는 나의 건축 활동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이 같은 자멸적 행위가 국제 설계공모라는 구실을 필요로 함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파렴치함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광장이 현대 건축의 경연장이 되는 것을 막아낸 한스 슈팀만은 퇴임 후 베를린을 최악과 최고, 모두로부터 구해냈다는 평가를 얻었다. “복원이라 부르는 것은 파괴의 가장 나쁜 수단”이라고 했던 존 러스킨(John Ruski)n의 말이 건물뿐 아니라 도시와 경관에도 해당될 수 있다면, 용산공원과 광화문광장처럼 역사적 아픔을 가진 ‘한 많은 땅’을 치유하는 방법들 가운데 ‘그 사건들 이전과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은 현재로서 가장 파괴적인 선택 중 하나일 수 있다.


동상: 탈식민과 근대화

해치마당을 등지고 선 이순신 장군 동상의 존재는 새로운 광화문광장이 바라보고 있는 축의 방향과는 전혀 달랐던 동상 건립 당시의 지향점을 증언하고 있다. 당선안은 광장의 한가운데 서 있던 동상을 그와 조금 더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보이는 역사마당으로 이전하고 광장 전체를 비워둘 것을 제안했으나, 여론의 반대가 기존의 자리를 고수하길 원했다.

그 동상이 언제부터, 왜 거기에 있어야 했는가를 묻는 것은 과거의 광장, 즉 세종로가 무엇을 표상하는 장소였는가를 밝히는 일이기도 하다. 세종로에 이순신 장군 동상을 제작한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한 것은 반일 정서가 가장 격화됐던 한일협정 이듬해 1966년 광복절이었다. 같은 해 4월과 12월에는 각각 아산 이순신 사당의 성역화 사업과 광화문 복원이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추진되었다. 협정 체결 후 격화됐던 한일협정반대운동은 종료되었으나, 해방 이후 20여 년간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던 반일 감정의 분출은 일본의 문화와 일상생활에서의 잔재를 청산하고자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3공화국의 연속된 행적들은 일제로부터 독립한 탈식민국가의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동상의 건립은 근대화를 표상하는 상징거리 경관을 만든 하나의 요소이기도 했다. 당시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앞에 콘크리트로 복원된 광화문의 변경된 건립 위치와 공법, 전면의 현대적인 마천루 양식으로 계획된 두 개의 정부종합청사, 세종로의 차도 확폭은 이순신 장군 동상과 기단 규모의 확대로 이어졌다. 동상 제막식 연설에서 박정희는 위대한 조상 충무공의 정신을 본받는 것은 곧 “조국 근대화의 과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앞선 ‘한일회담 타결에 즈음한 특별담화문’에서 일본에 대한 패배주의와 열등의식은 “근대화 작업을 좀먹는 가장 암적인 요소”라며 이를 넘어서야 한다는 극일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반동적인 성격의 정치 주체에 의해 만들어진 이때의 이순신장군 동상과 콘크리트 광화문은 민족 정체성과 더불어 극일과 근대화를 표상하는 모뉴먼트로서 과거로 회귀하려는 현재의 광장과 달리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당시 시인 서정주는 “콘크리트라면 굳이 광화문을 복원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건 웃음거리 아닌가?”라며 조롱했던 반면, 중건추진위원 중 한 사람인 건축가 정인국은 이를 복원이 아닌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표상하는 최신의 재료와 기술력을 발휘한 하나의 모뉴먼트로 볼 것을 주문했다.

말하자면 오늘날 광장과 동상은 서로 뒤집힌 채 등을 맞대고 있는 상태로, 그 간극은 목조로 복원된 현재의 광화문과 철거된 콘크리트 광화문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깊다. 때문에 동상이 공공 미술로서 지니는 의미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을 수 없다. 발전주의 국가의 경제 성장 모델은 시효를 다해 저성장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도시를 부강하게 만들어줄 혈관이라 믿었던 도로들은 이제 공원과 보행로에 자리를 내주어 도시의 숨길이 되었다. 중앙청과 그 정문 역할을 했던 콘크리트 광화문은 철거되어 서로 다른 박물관의 전시품이 되었고, 정부종합청사는 과천, 대전, 세종 등 지방으로 그 부처와 기능들이 분산되었으며, 맞은편 제2정부종합청사가 계획됐던 의정부지는 복원을 앞두고 있다. 민족이라는 정체성 역시 저출생과 인구 절벽이 추동하는 다문화 공동체에서 점차 구심으로서의 힘을 잃어 갈 것이다. GDP와 임금, 구매력에서 한일의 역전 현상이 나타나는 지금 동상이 그렸던 극일과 근대화라는 미래상은 점차 과거의 것이 되어가고 있으나, 그럼에도 오늘날 탈식민의 과제는 경복궁 복원이라는 회귀적인 방식으로 지속되고 있다. 동대문과 남대문이 일제의 도시 건설 과정에서 파괴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가 임진왜란 당시의 왜군 장수의 입성을 기념하려는 목적 때문임을 생각하면, 궁궐의 복원이 곧바로 과거의 극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극일의 표상으로서의 동상과 더불어 탈식민에 대한 강한 콤플렉스를 드러내는 것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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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광화문광장(2009년 사진)과 새로운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의 위치를 옮기지 않고 유지했다.

 

 

중세 도시의 모뉴먼트와 광장, 건축물의 유기적 관계를 예찬한 카밀로 지테(Camillo Sitte)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이전을 비판적 사례로 언급한 바 있다. 동상의 크기와 색채에 적합한 스케일과 배경, 그리고 주변의 다른 모뉴먼트와의 관계에 따라 조각가가 선택했던 기존 위치에서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옮겨진 동상은 환경과 고립된 요소로서 동떨어져 총체적 의미를 발현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다비드 상과 반대로 자신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환경이 달라져 오직 홀로 과거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어서 그는 광장 중앙에 모뉴먼트를 세우지 않고 비워야 하는 몇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먼저 통행에 장애를 초래할 뿐 아니라 같은 축선 상의 건물 혹은 그 입구를 시야에서 감추게 되고, 다양한 방면에서의 접근이 가능해짐에 따라 복수의 배경을 갖게 되는 것 또한 모뉴먼트의 의미를 드러내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뿐 아니라 전면에서 광화문을 가로막고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배경을 달리하는 세종대왕 동상의 위치는 지테가 지적한 것과 동일한 문제를 지닌다. 이는 공공 미술로서 두 동상의 성패를 결정짓는 지점이자 당선안의 제안대로 동상을 이전해야 했던 이유다.

 

환경과조경 415(2022년 11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정기용, “‘비움’에 대한 근원적 성찰”, 『월간미술』 1999년 9월호.


참고자료

강난형, 송인호, “1960년대 광화문 중건과 광화문 앞길의 변화”, 『건축역사연구』 101, 2015.

염운옥, “‘제국의 심장’에서 ‘시민의 광장’으로: 런던 트래펄가 광장”, 『영미연구』 39, 2017.

염복규, “1960-2000년대 광화문 공간의 재구축에서 ‘전통과 현대’”, 『문화와융합』 44, 2022.

카밀로 지테, 손세욱, 구시온 역, 『도시·건축·미학』, 태림문화사, 2000.

오장근, “광장의 언어 지테(Sitte)의 시선에서 바라본 광장의 구조와 의미 이해하기”, 『기호학 연구』 40, 2014.

서울 의정부지 유구보호시설 조성 설계공모 2단계, 서울시, 2022.

정기용, “‘비움’에 대한 근원적 성찰”, 『월간미술』 1999년 9월호.

이은영, 『우리 시대 엘리트의 몫』, 미술문화, 2001.

존 러스킨, 현미정 역, 『건축의 일곱 등불』, 마로니에북스, 2012.

제공건축, ‘우리의 사적인 광장’, 2019. www.jegong.com/blank-2

안진희, 배정한, “광장에 대한 공론의 생성과 공간적 반영”, 『도시설계』 78, 2016.


정평진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건축전문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여러 매체에 도시와 건축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2020 ‘사회적 건축: 포스트코로나 젊은건축가 공모’에서 대상을, 2022년 『환경과조경』 ‘조경비평상’에서 가작을 수상했다. “도시는 공통재(commons)”라는 믿음으로, 공공 공간의 좀 더 사적인 점유 형식과 공개공지 및 공공 미술 등 사적 영역의 좀 더 공적인 활용 방식을 상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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